차가운 검날이 목에 대이자, 김단의 몸이 순간 경직되었다.그녀의 인상에는이각은 분별 있고 예의 바른 사람으로, 그녀에게 항상 따뜻하고 공손하게 대했다.심지어 조금 전에 소하의 명에 따라 그녀를 밖으로 내쫓을 때도 손에 힘을 잘 조절했다.그녀는 한 번도 이각이 자신의 목숨을 위협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그러나 지금, 그녀는 감히 움직이지 못하고 눈빛 속에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소하도 언제부터인지 발악하는 것을 멈추고 그녀를 보고 있었다.캄캄한 밤, 그의 차가운 눈동자는 마치 지옥에서 온 악귀처럼 야경과 창호지를 뚫고 정확히 그녀를 향했다. 차가운 한기가 그녀의 등에 스며들었고, 마음속 공포는 조금 전에 이각이 갑자기 검을 그녀의 목에 댈 때보다 더 강렬하게 일었다.하지만, 극한 고통이 또다시 소하를 둘러쌌다.소하의 온몸이 극도로 발악하더니, 고통스러운 소리가 그의 꼭 다문 입에서 새어 나왔다. 그 순간, 이각의 낮은 목소리가 김단의 귓가에서 다시 울려 퍼지며, 그 소리는 그녀의 마음 속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다.“큰 아씨, 이제 됐어요? 우리 주인이 이렇게 죽을 만큼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직접 보시니 어때요? 제 말 잘 들어요! 죽기 싫으면 당장 꺼져요!”이각의 말이 끝나자, 검이 김단의 목에서 내렸다. 이각은 힘껏 김단을 밖으로 밀어냈다. 김단은 떠밀려서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이각을 봤고, 이각은 침울한 표정으로 사람을 죽일 듯한 신처럼 누구도 소하의 방에 다가가지 못하게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지금, 김단은 자기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소하의 고통스러운 울부짖음 때문에 이각은 완전히 분노한 상태다.그녀는 자기가 한 글자만 더 말했다가는 이각이 정말 검으로 그녀의 심장을 찌를까 봐 걱정했다.그래서 그녀는 겉옷을 움켜쥐고 자기 방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방문이 닫히고, 끝없은 캄캄함이 밀려오자, 김단의 귀에도 소하의 고통스러워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숙희의 깊은 숨소리밖에 들리지 않았
김단은 꼬박 밤새고,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마당에는 숙희만 분주하게 일하고 있었다. 숙희는 김단을 보고 인사를 올리며 다가왔고, 김단은 자기도 모르게 소하의 방을 바라보며 조용히 물었다.“소하 오라버니는 오늘 나왔었어?”숙희는 고개를 흔들면서 김단처럼 소리를 낮춰 말했다.“큰 도련님은커녕, 이각의 그림자도 못 봤어요.”김단은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무조건 그녀가 어제저녁에 몰래 훔쳐봐서, 두 사람 모두 그녀를 보고 싶지 않은 것이다!그녀는 이렇게 생각하고는 또 물었다.“진산군댁 의원을 만날 방법이 있어?”진산군댁의 의원은 약왕곡에서 나오신 분이셔서 의술이 일반 의원보다 많이 뛰어나다.예전에 김단이 명정대군께 맞아서 죽을 뻔했을 때도 의원이 그녀를 살렸다.그러나, 약왕곡은 이상한 곳이다. 소문에 의하면 약왕곡은 어떤 병도 다 치료할 수 있으나, 다 고치면 한평생 약왕곡에 남아야 한다고 들었다. 약왕곡 주인의 허락 없이 절대로 나갈 수 없다고 한다.또 어떤 사람은 약왕곡 주인은 치료한 병자들을 양왕곡에 남겨서 약과 독을 시험하게 하고, 병이 다 치료되어 약왕곡에 들어간 사람은 독 때문에 죽든지, 아니면 살아도 죽는 것보다 못하다고 말했다.진산군댁의 의원은 약왕곡에서 도망쳐 나왔다고 한다. 그는 과거를 들춰내기 싫어하고, 요 몇 년에는 약왕곡 사람이 여기저기 수색하여 그를 찾아서, 그는 진산군댁의 대문에 나가본 적이 없었다.그래서 그녀가 진산군댁 밖에서 의원을 만나는 것은 조금 어렵다.숙희는 의원이 어디에서 왔는지 잘 모르지만, 의원이 밖에 나가기 싫어하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그럼, 아씨가 진산군댁에 가면요?”이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다.그러나 김단은 이미 진산군댁과 틀어졌고 더군다나, 그녀도 진산군댁의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이렇게 하자, 내가 편지 한 통을 쓸 테니, 네가 의원에게 가져다줘.”그녀는 말을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 소하가 어젯밤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상세히 편지에 적어
김단은 자기를 격려하며 소하 방으로 가려 했는데, 시녀 한 명이 오더니 김단에게 인사했다.“큰 아씨, 마님께서 상의할 일이 있으시다고 바깥 대청에 오라고 하십니다.”상의할 일?김단은 뭐 상의할 게 있는지 모르지만, 대청에 도착해 보니 임원도 있었다.소씨 부인은 김단을 보자, 아주 반갑게 불렀다.“단이야, 어서 와.”김단은 앞으로 다가가서 임원을 한 번 보고 나서 소씨 부인에게 물었다.“어머님, 무슨 일 있습니까?”소씨 부인은 목록 하나를 김단의 손에 넣었다. 당연히 임원에게도 하나 줬다.소씨 부인이 말했다.“내일이면 너희들이 결혼하고 처음으로 친정에 가는 날이잖아. 내가 너희들을 위해 가져갈 선물을 준비했다. 잘 봐봐, 빠진 것은 없는지, 뭐 더 넣을 게 있는지?”임원은 목록을 한 번 훑어본 후, 다시 소씨 부인에게 건네며 얌전하게 입을 열었다.“어머님께서 너무 잘 준비해 주셨습니다. 따로 더 넣을 게 없습니다.”말이 나온 김에, 임원은 김단을 곁눈질로 보며 다시 소씨 부인에게 말했다.“친정에 가져갈 선물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저도 할 얘기가 있는데, 언니가 승낙해 줄지 모르겠어요.”김단은 시선을 내려다보면서 임원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대꾸도 안 했다.소씨 부인은 어색해진 것을 보고 나서서 물었다.“무슨 일인데?”임원은 그제야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저는 제 혼수의 절반을 소씨네 재산에 넣으려고 합니다.”이 말을 듣자, 김단이 내려다보는 눈빛에는 비웃음이 가득했다. 혼수의 절반을 소씨네 집에 준다고? 참 대범하구나.이 말은 그녀도 절반을 내놓으라는 뜻인가?참말로 우습군!소씨 부인도 놀랐다.“그런 도리가 어디 있어?”자고로, 혼수는 여자의 재산이다. 진산군댁의 큰 마님처럼 시간이 얼마나 흘렀어도 혼수는 여전히 그녀의 손에 쥐어져 있으며, 그녀가 누구에게 주고 싶다면 그 누구도 말릴 수 없다.가끔 시댁의 가정형편이 안 좋으면 여자는 자기 혼수를 시댁에 주면서 현모양처인 것을 뽐내기도 한다. 하지만, 소씨네
김단은 소씨 부인의 반응을 보고 가볍게 웃으면서 고개를 흔들었다.그러나, 완전히 소씨 부인을 탓할 일도 아니다.어쨌든, 그녀가 예전에 소한을 얼마나 좋아했는지는 소씨 부인이 가장 잘 알고 있다. 비록 지금 그녀가 소하에게 시집갔지만, 소씨 부인은 여전히 마음속으로 걱정할 수 있다. 그래서 이렇게 대놓고 그녀를 떠보는 것인지, 아니면 경고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하지만, 김단은 이 일에 아무런 관심이 없고, 오히려 다른 일을 걱정했다.김단은 목록을 소씨 부인에게 돌려주면서 말했다.“저는 부모님이 안 계셔서 내일 친정에 갈 필요도 없고 선물도 필요 없습니다.”소씨 부인은 멍하더니, 다시 웃었다.“단이야, 어찌 그런 말을 하니? 네 부모님은 진산군댁에서 잘 지내고 있잖니?”김단의 표정이 갑자기 차가워졌다.소씨 부인은 김단의 표정이 바뀐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계속 말했다.“나도 요 몇 년 너와 네 부모님 사이에 오해가 있다는 것을 알아, 그래도 그들은 너를 키운 정이 있잖아. 우리 소씨네 집안 며느리가 돼서 그렇게 무정하면 안 된다. 네가 진산군댁에서 시집온 것은 아니지만, 네 혼수는 진산군댁의 큰 마님이 준 것이 아니냐? 어찌 됐든, 내일 네가 진산군댁에 가 보는 것이 맞아!”김단은 그제야 이 일을 상의하려는 건지 알아차렸다.김단이 말하기도 전에, 옆에 있던 임원이 먼저 입을 열었다.“맞아요. 언니, 언니가 떠나고 나서 아버지와 어머님은 언니를 많이 보고 싶어 했소. 지금, 우리 모두 시집 나왔으니, 지난 일은 다 잊어버리고, 내일 집에 가서 아버지와 어머님을 한 번 부르면 아무 일도 없어질 것이오. 가화만사성이란 말이 있지 않소!”임원의 말을 듣자, 소씨 부인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소씨 부인은 김단이 아직 냉담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보고는 따라서 웃음기를 빼며 김단의 손을 잡고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바른대로 말할게. 네 어머님이 편지를 보내서 내일 꼭 너를 진산군댁으로 보내라고 부탁했다. 어쨌든 네 어머님이 너를 어떻게 아꼈는지는
김단은 말을 마치고 돌아서서 나가려 했다. 그때 임원이 갑자기 빠르게 다가오더니, 덥석 그녀의 옷자락을 잡았다.“언니!”김단은 갑자기 불쾌해져 힘껏 자기 옷을 잡아당기면서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임원을 바라봤다.“동서, 또 호칭을 틀리게 불렀소.”“언... 형수님...”임원은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언니가 세답방에서 3년 동안 고생한 거 알고 있소. 진산군댁에 원한이 있어서 아버님, 어머님께서 고가를 들여 준비한 약도 바르고 싶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소. 하지만, 두 분이 아무리 당신 친 부모가 아니더라도 당신을 그렇게 오랜 세월을 키웠는데 어찌 감정이 없겠소? 내일 나랑 같이 가시오. 제발!”임원은 말하면서 눈물을 뚝뚝 흘렸지만, 마음은 온통 소씨 부인에게 있었다.조금 전에 김단이 상처를 보인 것은 분명히 소씨 부인의 연민을 받고 싶어서 그럴 것이다. 그녀는 김단이 생각대로 되지 못하게 할 것이다!그녀는 소씨 부인에게 김단의 상처가 진산군댁과 아무런 상관이 없고, 심지어 진산군댁은 김단을 치료해 주었고 김단이 옹졸해서 계속 진산군댁을 원망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김단이 진산군댁에게 잘못한 것이지 진산군댁은 김단에게 잘 못한 것이 없다!임원의 말을 들은 소씨 부인은 참말로 마음이 움직였다.“단이야, 난 네 어머님이랑 관계가 좋아서 그녀가 너를 어떻게 아꼈는지 내 눈으로 똑똑히 봤다. 원이 말이 맞아, 지나간 일은 다 잊어버려! 네 마음에 원한이 남아있어도 그저 가서 밥 한 끼 먹으면 돼. 먹고 나서 오면 되잖아. 별일 아니야.”소씨 부인이 임원을 도와서 말하자, 임원은 더 격동되었다.그녀는 앞으로 가서 김단의 손을 잡았다.“언니, 저랑 같이 돌아간다면 무엇이든 하라는 대로 하겠소. 언니!”임원이 김단의 손을 잡는 힘이 점점 커졌다.김단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드디어 임원이 뭘 하고 싶은지 알았다.눈물을 흘리고 있던 임원의 눈이 반짝거리더니 김단이 그녀를 떠밀었듯이 뒤로 넘어갔다.그러나, 김단이 중요한 시기에 그녀의
김단의 말을 듣자, 임원의 눈에는 두려움이 더 많아지더니, 눈물을 줄줄 흘렸다.이번에는 정말로 무서워서 운 것이다.김단이 비웃었다.“하지만, 당신이 일부러 일을 만드니, 나도 여기서 동서의 도움에 인사드려야지오.”김단은 소하를 불러낼 방법이 없었는데, 임원이 기회를 준 셈이다.임원은 김단의 말이 무슨 뜻인지 당최 이해할 수 없었다.김단의 눈이 갑자기 흉악해지더니 임원을 잡고 따귀를 두 대 세게 쳤다.‘팍, 팍’맑은 따귀 소리가 나자, 소씨 부인은 황급히 일어서서 막으려 했다.“단이야! 뭐 하는 짓이야! 빨리 손 놔!”김단이 소리를 높이며 말했다.“난 이미 진산군댁과 연 끊은 지 오래됐는데, 당신은 여러 번 찾아와서 귀찮게 했소. 난 오늘 당신에게 본때를 보여줘야겠소. 이후로 당신이 더는 진산군댁의 일로 들먹일 수 있는지 봐야겠소!”김단은 이렇게 말하고는 또 임원의 뺨을 두 번 때렸다.소씨 부인은 놀라서 고함쳤다.“뭣들 하고 있어, 빨리 둘을 끌어내라!”옆에 있던 시녀와 머슴애들이 그제야 반응하고 바삐 다가가서 김단을 붙잡았다.숙희는 자기 아씨가 괴롭힘을 당한 것을 보자, 바로 달려가 시녀와 머슴애들과 몸싸움을 벌였다.숙희는 혼자서 두 사람을 상대할 수 있지만, 상대방 사람이 너무 많아서 결국에는 김단을 끌어냈다.그러나, 김단은 잡아당기기 전에 힘을 빌려 임원의 가슴을 걷어찼다.“망할 것들, 멀리 떨어져 있거라!”임원은 차여서 뒤로 넘어갔는데, 다행히도 소씨 부인이 붙잡았다.그러나 김단이 너무 세게 차자 임원은 겨우 제자리에 섰지만, 여전히 가슴을 움켜쥐고 급하게 숨을 쉬고 있었다.소씨 부인은 이런 광경을 처음으로 본다.그녀는 아들 둘을 키웠지만, 그들이 싸우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그런데 지금, 며느리가 집에 들어온 지 이틀밖에 안 됐는데 사람을 때린다니, 그녀는 참을 수 없어 김단을 손가락질하며 욕했다.“너! 네가 세답방에 3년 있었으면 성질이 좀 죽을 줄 알았더니, 예전과 똑같이 사납고 예의가 없구나! 우리
소하는 여전히 어두운 표정이다.“그럼, 내가 오지 않으면 정말 3일 동안 꿇을 셈이오?”김단은 고개를 흔들면서 말했다.“쓰러지는 척하려고요.”전에 임원도 쓰러지는 척하면서 벌을 면했다.소하는 살짝 한숨을 내쉬더니 어쩔 수 없듯이 말했다.“같이 가시오. 아버님과 어머님이 대청에서 기다리고 있소.”시집온 큰 아씨가 작은 아씨를 때렸으니 큰일이어서 책망을 듣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김단은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서더니 앞으로 두 발짝 가서 소하를 막았다.“지금, 이각이 없어서 그래요. 아니면 감히 막지도 못해요.”김단은 이렇게 말하고는 품에서 약병을 꺼냈다.“소하 오라버니께서 제가 쓸데없이 참견한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저 정말 아주 훌륭한 의원을 알고...”“쓸데없다는 걸 알면 됐소.”소하는 차가운 목소리로 김단의 말을 끊었다.김단이 그가 발병할 때의 모습을 본 것에 대해 그는 아직도 마음에 두고 있다.어쨌든 그는 예전에 위엄이 있는 장군이어서 그만의 존엄과 자부심이 있다!그는 다른 사람에게 그가 벌레처럼 꼬이고 발버둥 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다!이렇게 생각하자, 소하의 얼굴은 더 어두워졌고 미간에도 난폭한 기운이 가득했다.“이렇게 오랜 시간동안 이 집에서는 이각 외에 누구도 이 일을 모르고 있소. 그러니깐 김 낭자도 쓸데없는 일을 만들지 않았으면 하오!”그는 김단에게 그의 부모님 앞에서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이다!김단은 지금 이 순간 소하를 무서워한다는 것을 승인한다.그러나, 그녀는 빨리 진정하고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소하 오라버니는 이 오랜 세월에 정말로 누구도 당신의 고통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나요?”이 말을 듣자, 소하는 미간을 찌푸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뜻이오?”“그날 밤, 소한도 들었어요.”김단은 소하를 바라보며 정색하여 말했다.“제가 우리 결혼한 그날 밤에 소한이 오동나무 위에 있었다고 말했잖아요. 저도 다 들을 수 있는 소리를 소한이 듣지 못했겠어요? 하지만, 그는 그대로 갔어요.
소하의 마음 한구석에서 뭔가가 녹기 시작했다.소하는 김단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조심스럽게 약병을 그의 다리에 놓고, 두 손의 가느다란 손가락을 보았다. 그녀는 아주 간절한 말투로 말했다.“딱, 한 번만 시험해 봐요!”소하의 눈빛이 그녀의 손가락에서 점점 아래로 내려가, 그녀의 손목에 있는 상처를 발견했다.그는 오랫동안 군 생활을 해서 그녀의 상처가 새로운 것과 옛것이 섞여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봤다.그녀가 조금 전에 명정대군께 맞아서 죽을 뻔했다는 것을 떠올리니...그럼, 그녀가 명정대군께 맞기 전에는 또 무엇을 겪었는가?세답방에서의 3년, 그녀는 도대체 무엇을 겪었는지?멀리서 재촉하는 소리가 전해왔다.“큰 도련님, 큰 아씨, 대감과 마님께서 대청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소하는 그제야 정신이 돌아와, 그녀가 아직도 내밀고 있는 두 손가락을 보더니 미간을 찌푸리면서 그의 큰 손으로 그녀의 두 손가락을 잡고 눌렀다.“이것은 두 번이라는 뜻이오.”김단은 멍하더니 그제야 소하가 약을 시험해 보겠다고 승낙한 것을 알고 좋아서 웃었다. 눈에는 꽃이 피는 것 같았다.그 순간, 소하는 그녀의 웃음이 하늘에 있는 햇빛보다 더 눈부시다고 느꼈다.그가 주시할 수 없을 정도로 눈부셨다.그래서 그는 고개를 숙이고 손을 거둬들어 약병을 소매 주머니에 넣었다.김단은 기쁘며 일어서서 소하의 뒤에 돌아가서 의자를 밀며 대청으로 갔다.대청에 도착하기 전에 소하는 살짝 고개를 기울여 낮은 소리로 말했다.“표정을 주의하시오.”김단은 바로 웃음기를 거두고 알았다고 하고는 소하를 밀고 대청에 들어섰다.소씨 대감은 차가운 표정으로 상석에 앉았는데 위엄이 가득했다.소씨 부인은 아직도 화가 나서 김단을 보기 싫다는 듯, 김단이 온 것을 보고 바로 고개를 돌렸다.임원은 옆에 앉아서 허약한 모습으로 가슴을 움켜쥐고 있었고 볼은 빨갛게 부어 있었다.소한 역시 옆에 앉아 있었다. 그는 오늘 군에 있어야 했지만 소씨 부인이 불러왔다.그는 임원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는 임
이튿날 아침, 김단은 궁무를 맡지 않았기에 평양관저에 머물며 맹영지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탓인지 맹영지의 눈빛에는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김단의 곁에 있을 때만큼은 그녀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조용한 정원, 김단은 맹영지와 함께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계수나무 아래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숙희가 건네준 과자가 들려 있었고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번져있었다. 맹영지는 고개를 들어 만개한 계화를 바라보며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 어제 소하가 평양관저를 찾아왔으나 그는 맹영지와의 만남을 최대한 피하려 애썼다. 아마도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함이었을 것이다.김단은 맹영지를 바라보며 과거 소하가 왜 그리도 그녀를 칭찬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한때 소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여인답게 그녀는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하지만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가까웠던 두 사람이었는데 맹영지는 어쩌다 소하에게 독을 먹이려 했던 것일까?김단은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맹영지의 몸과 마음이 회복되면 그때 자연스럽게 그 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김단이 생각에 잠겨 있던 찰나 평양관저의 겸인이 급히 달려와 말했다.“아가씨, 맹가 사람들이 도착했습니다.”이런 큰일이 발생했으니 맹씨 집안에서 그녀를 보러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김단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겸인에게 말했다.“알겠소. 이리로 모셔오시오.”잠시 후, 맹씨 부인이 정원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김단에게 예를 갖추어 인사한 뒤 슬픈 눈으로 자신의 딸을 바라보았다. “김 의원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의원님이 아니었다면 제 딸이 그 짐승 같은 자에게 학대받으며 살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맹씨 부인의 눈동자가 붉어졌다.김단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맞이하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과찬이십니다, 맹씨 부인. 민태훈, 그 자의 말에 따르면 맹영지 아가씨의 병은 이미 4~5년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완전히 회
소한은 코웃음을 치며 말없이 등을 돌렸다.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소하의 조용한 목소리가 방안의 침묵을 깨뜨렸다.“이번에는 정말 잘했어.”영의정 저택에서 벌어진 일은 소한이 형벌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소하의 귀에 들어갔다. 만약 소한이 과감하게 영의정 저택에 침입하지 않았다면 김단은 쉽게 그곳을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비록 민씨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김단을 해치지 못한다고 해도 그녀가 겪었을 모욕과 고통은 상상하기 어려웠다.소하의 갑작스러운 칭찬에 소한은 많이 당황한 듯했다.“제가 충동적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때로는 그 충동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지.”소한은 아무 말 없이 그저 김단의 얼굴을 떠올렸다. 처음에 그녀도 자신을 발견하고 놀란 듯했지만 곧 냉랭한 표정으로 일관하였다. 김단은 마차에 오를 때까지 자신에게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다.과거의 그녀였다면 그가 나타나자마자 바로 그의 품에 안기며 그를 향해 미소 지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그녀는 너무나도 차갑게 변해버렸다. 자신을 외면하는 그녀가 소한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그는 자신이 무엇을 잃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큰 실수를 저질렀는지를 다시금 깨달았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꽉 쥐며 굳게 결심했다.그는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 위해 이미 어떤 대가든 치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반 시진 후, 김단은 방 안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그러자 숙희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불렀다.“아가씨?”김단은 정신을 차리고 숙희를 바라보았다.“무슨 일이냐?”“두 도련님께서는 모두 돌아가셨습니다.”김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방금 전 발생한 일을 되새겨 보았다. 그녀는 소한이 오랫동안 계획해 온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자신을 선택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에도 그는 소가를 위해, 전하를 위해 심지어 임원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그러나 그녀만은 제외였다.그녀는 소한이 자신의 어머니를 걱정하는 척하며 평양관저로 따라온 것도 단지 자신의 동정심을 얻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상처
김단은 아무 말 없이 소한을 부축하며 걸었다. 궐에서 나오는 길은 유난히 길고 고요했다. 그들의 발걸음은 무겁고 느렸으며 말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있었다.궐문에 도착했을 때 소한의 마차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는 아마도 말을 타고 왔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의 상태로 다시 말을 타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된 김단은 곁에 있던 경씨에게 부탁했다.“도령님, 장군님을 먼저 집으로 모셔다 주실 수 있겠습니까?”그러자 소한이 놀란 듯 김단을 바라보며 물었다.“내게 약을 발라주지 않겠다는 것이오?”김단도 당황해하며 되물어 보았다.“소가에는 의원이 없습니까?”소한은 김단의 물음에 할 말을 잃었다. 자신의 의도가 너무 노골적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어머니께서 내가 또 다쳤다는 걸 아시면 얼마나 걱정하겠소? 그러니 그냥 근처에서 치료받을 것이오. 낭자는 신경 쓰지 말고 먼저 돌아가시오.”김단은 그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그렇다면, 먼저 평양관저로 함께 가서 약을 바르시죠.”소한은 그녀의 제안에 놀란 기색을 내비쳤다.“불편하지 않겠소?”김단은 그를 바라보며 단호히 말했다.“괜찮습니다.”그렇게 소한은 김단과 함께 평양관저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들을 맞이한 것은 김단의 몸종 숙희였다.소한을 발견한 그녀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그러자 김단이 숙희를 달래는 듯한 목소리로 차분히 말했다.“숙희야, 장군님을 객실로 안내해 주거라. 나는 약을 준비하러 가야겠구나.”그녀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김단의 지시를 따랐다.객실에 혼자 남은 소한은 조심스럽게 상의를 벗고 등을 드러냈다. 그의 등에는 형벌로 인한 상처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그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등을 바라보며 오늘의 형벌이 생각보다 가볍지 않았음을 깨달았다.하지만 그는 김단이 이 상처를 보면 마음 아파할 것이라 생각하며 기대감으로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잠시 후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약을 들고
긴장감이 맴도는 분위기 속에서 전하는 이해 안 되는 듯한 어투로 물었다,“조선의 장군인 네가, 수많은 전공을 세운 네가, 원하는 여인 하나 얻는 것이 그리 어렵단 말이냐? 어찌 김단 하나 때문에 수년간 공들여 쌓아온 모든 것을 무너뜨리려 하는 것이야? 그 낭자가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느냐?”전하의 말투는 엄중했지만 그 속에는 실망과 안타까움이 섞여 있었다.그러자 소한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그렇습니다.”전하는 눈썹을 찌푸리며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김 의원, 들었소?”그 순간 소한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조용히 서있는 김단이 있었다. 그녀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담담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소한은 그녀의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가 이 모든 대화를 들었다는 사실에 당황했지만 그녀의 표정에서는 어떠한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소한은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물었다.“김단, 왜 이곳에 있는 것이오?”그녀는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와 무릎을 꿇고 전하에게 예를 올렸다.“소녀 김단, 전하를 뵙습니다.”전하는 손짓으로 그녀를 일으키며 말했다.“일어나거라. 오늘 발생한 일에 대해 자세히 말해 보거라.”김단은 소한을 보지 않기 위해 시선을 정면에 고정한 채 차분하게 사건의 전말을 설명했다. “제가 직접 목격한 바는 없습니다. 하지만 민대부를 제외하고는 영의정 댁 장남의 부인에게 감히 손을 댈 수 있는 자는 없을 것입니다.”전하는 그녀의 말을 듣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맹 낭자의 상처를 확인하기 위해 두 명의 궁녀를 보내겠다. 평양관저에서 확인해 보도록 하거라.”학대의 이유가 무엇이든 맹영지는 필시 중전의 친척이었다. 만약 폭력을 가한 사람이 민대부라고 할지라도 이는 중전의 가문을 모욕하는 행위와 다름없었기에 결코 그를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전하는 소한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어쩌면 네 죄가 묻힐 수도 있겠구나.”민씨 가문의 잘못이 드러나게 된다면
소한은 곧바로 병사들과 함께 어서재에서 물러났다. 그가 다시 돌아왔을 때는 이미 향 한 자루가 탈 정도의 시간이 흘러 있었다.소한이 걸어 들어오는 것을 본 전하는 하던 일을 멈추고 냉랭하게 물었다.“영의정이 너를 더 때리라고 명하지 않았느냐?”소한은 조용히 전하 앞으로 걸어가 무릎을 꿇고 허리를 곧게 세운 채 대답했다.“전하의 깊은 뜻을 아는 자입니다. 그러니 더 심한 처벌을 요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전하는 코웃음을 치며 다시 물었다.“그렇다면, 내 뜻이 무엇이더냐?”소한은 고개를 들어 전하를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전하께서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대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겁니다. 그래서 영의정을 불러 제가 벌을 받는 장면을 직접 목격하게 하셨죠. 그리고 동시에 제가 전하의 사람이라는 것을 명확히 하셨습니다. 전하께서는 영의정이 이 사실을 눈치채기 바라신 것 아니었습니까?”전하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손에 들고 있던 붓을 책상에 내던지며 소리쳤다.“이 불경한 자식아! 내 너를 아낀다고 해서 이렇게 제멋대로 행동해도 된다고 생각하느냐? 영의정 저택 외에 또 어디에 첩자를 심어두었느냐?”소한은 눈을 내리깔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3품 이상의 모든 관료의 집에 첩자를 두었습니다.”그 말을 들은 전하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소한을 가리켰지만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였다.그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짓더니 한참 동안 방안을 서성이었다.잠시 후 그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다시 한번 소리쳤다.“네가 감히! 그렇게 많은 곳에 첩자를 심어두고 무슨 일을 꾸미려는 것이냐? 이렇게 행동하면 내가 소씨 집안을 멸문시켜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소한은 여전히 고개도 들지 못한 채 조용히 말했다.“저도 위험한 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전하께서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다섯 해 전, 저희 소가는 거의 멸문 당할 뻔했습니다.”그 해 소하가 지닌 병권은 다른 집안의 탐욕스러운 먹잇감이 되었고 그로 인해 조정의 문
김단은 그제야 잊고 있었던 민태훈을 떠올렸다.그녀는 맹영지를 몸종에게 맡기고 민태훈 곁으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그의 허벅지에 박힌 은침을 뽑아냈다.침이 빠져나가자마자 민태훈은 마치 고통에서 해방되기라도 한 듯 온몸의 긴장이 풀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한 가닥의 은침이 이토록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큰 마님은 김단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그녀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고 말이다.그때 경씨가 마차를 몰고 도착했다. 김단과 몸종이 맹영지를 부축하며 걸어 나오자 경씨는 놀란 얼굴로 다가와 안부를 물었다.“낭자, 괜찮소?”방금 전 김단이 영의정 저택에서 곤란한 상황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소한은 급히 그녀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덕분에 한발 늦게 도착한 경씨는 자신이 더 일찍 김단을 챙기지 못한 것을 자책하며 말했다.“내가 미처 신경 쓰지 못했소.“김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럽게 대답했다.“저는 괜찮습니다. 먼저 맹 아가씨를 평양관저로 모시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그는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김단과 몸종이 맹영지를 부축하며 마차에 오르자 경씨는 바로 마차를 출발 시켰다.김단은 마차에 오르기 전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조용히 서 있는 소한에게로 향했다. 소한은 그녀를 바라보며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김단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려버렸다. 소한은 그런 김단의 뒷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보더니 옅은 미소를 지었다.그 후 소한은 곧장 궁으로 향했다.어서재에 도착한 그는 곧바로 무릎을 꿇고 앉아 오늘 영의정 저택에서 있었던 일을 전하에게 보고했다.그의 말을 들은 전하는 노여움을 감추지 못하며 소한을 꾸짖었다.“네가 감히 허락도 없이 영의정 저택을 침입했단 말이냐? 정말 대담하구나! 내가 너를 벌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느냐?”그러나 소한은 그저 묵묵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벌을 달게 받겠습니다.“전하는 그의 담담한 태도에 더 분노하며 외쳤다.“민가
김단은 민씨 부인의 말에 담긴 의미를 정확히 파악했다.보내서는 안 된다라...오늘 이 자리에서 맹영지뿐만 아니라 김단 자신도 민가를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김단은 민씨 부인이 자신의 아들을 위해 이런 결정을 내릴 줄 몰랐다.그녀는 자신의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선택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김단의 눈빛이 서서히 날카롭게 변해갔다. 그녀의 내면에서는 분노와 실망이 교차했다.큰 마님은 민씨 부인의 표정을 보고 심각한 상황임을 직감했다.맹영지의 몸에는 증거가 남아있었고 그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게 된다면 엄청난 파장을 불러올 것이다.하지만 지금 김단을 보내지 않는다면 그녀는 분명 궐로 들어가 이 일을 고발할 게 뻔했다.지금 김단을 적으로 돌린다면 그에 따른 후과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큰 마님은 사랑하는 손자를 바라보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김단을 보내면 민태훈의 입지가 위험해질 것이고 보내지 않는다면 민가 전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었다. 그러기에 그녀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그때, 한 하인이 급히 달려와 외쳤다.“큰 마님! 소 장군님께서 오셨습니다!”소 장군? 소한을 말하는 것인가?그의 이름이 언급되자 큰 마님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소한이 이렇게 빨리 이곳에 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김단도 그가 왜 이곳에 나타났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녀가 생각에 잠긴 사이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큰 마님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뵙게 되어 송구합니다.”모두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것은 당당하게 정원으로 걸어 들어오는 소한의 모습이었다.“소한, 주인의 허락도 없이 들어오다니! 대체 영의정 저택을 무엇으로 보시는 것이오? 이곳은 마음대로 들락날락할 수 있는 곳이 아니오.”소한은 그 말을 한 사람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이런 무례를 범한 것은 제 잘못입니다. 곧 전하 앞에서 사죄드리지요.”그는 정원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더니 큰 마님에게 다가가 정중히 인사했다.
머뭇거리는 그들의 모습에 김단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마님, 만약 지금 이 자리에서 저를 막으신다면 저는 곧장 궐로 가 이 모든 일을 고할 것입니다.”그녀의 말은 칼날처럼 날카로웠고 그 안에는 확고한 결의가 담겨 있었다.김단의 말이 끝나자 민가의 사람들은 긴장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큰 마님은 눈썹을 찌푸리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그녀는 김단이 단순한 의원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김단은 진산군 댁의 적녀이자 평양원군의 의남매이다. 그리고 그녀는 소가의 두 형제와도 깊은 인연이 있었다. 지금 그녀를 적대시하는 것은 곧 여러 권세 있는 가문을 적으로 만드는 것과 다름없었다.큰 마님은 민태훈을 바라보았다. 그는 고통에 찬 얼굴로 땀을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그녀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팠다.그러나 동시에 마음속에는 김단에 대한 의심도 피어올랐다. 만약 그녀의 말이 과장된 것이라면 민씨 가문은 부당한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한참을 고민하던 큰 마님은 굳게 결심한 듯 민씨 부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네가 직접 확인해 보거라. 만약 낭자의 말이 거짓이라면 반드시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민씨 부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김단과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김단은 조심스럽게 맹영지의 소매를 걷어 올렸다. 그녀의 팔 안쪽에는 선명한 멍 자국이 여러 개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민씨 부인은 숨을 들이켰다.“이런 상처가… 정말로…”그녀가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자 김단은 차분하게 말했다.“다리 쪽은 더 심각합니다. 보시겠습니까?”민씨 부인은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이 상처, 정말로 태훈이의 짓입니까?”김단은 잠시 침묵하더니 그녀의 말에 대답해 주었다.“제가 직접 본 것은 아닙니다.”그 말에 민씨 부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우리 태훈이는 절대 그럴 애가 아닙니다. 어릴 적부터 착하고 작은 생명도 소중히 여기던 사람이었단 말입니다.”김단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지만 겉으로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공주의 이름이 거론되자 민씨 일가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스쳤다. 그러나 큰 마님은 여전히 태연한 표정을 유지한 채 입을 열었다.“낭자가 공주의 명을 받고 우리 영의정 저택에 들어와 병자를 돌보는 것은 알겠소. 허나 공주의 허락 없이 사람을 해치는 것은 무엄한 일이오. 공주라 할지라도 국법을 지켜야 하지 않겠소? 그러니 함부로 공주의 이름을 빌어 협박하지 마시오.”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김단은 박수를 치며 말했다.“참으로 옳은 말씀이십니다.”민가의 큰 마님은 김단이 드디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자신을 치켜세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김단의 입가에는 더욱 짙은 미소가 떠올랐고 눈빛에는 경멸이 스쳤다.“공주님께서도 국법을 지키셔야 하는데 민가의 사람들은 더욱 그러셔야 하지 않겠습니까?”민가의 사람들은 일제히 소리를 높이며 반박했다.“그게 무슨 뜻이오? 우리 민씨 일가는 예로부터 법을 준수하며 국법에 어긋나는 일을 한 적이 없소!”“김 의원께서 자신의 잘못을 덮기 위해 우리 민가에 누명을 씌우려는 것 아니오?” 김단은 그저 조용히 서서 그들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두려운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김단의 이런 차분한 태도가 큰 마님의 신경을 건드렸다.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김단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큰 며늘 아씨는 중전마마의 친조카이시며 공주자가의 사촌이십니다. 그래서 제가 그분의 치료를 맡게 되었지요. 원래는 상태가 호전되고 있었으나 오늘 갑자기 증상이 악화되었습니다. 이는 분명 누군가가 큰 며늘 아씨의 회복을 방해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의원으로서 제 환자가 이곳에서 고통받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으니 제가 데려가야겠습니다. 만약 제 앞을 가로막으신다면 다음번에는 민대부님의 다리에 은침을 꽂아 버릴 것입니다.”이에 큰 마님은 지팡이를 바닥에 세게 내리치며 외쳤다.“허튼소리 마시오! 낭자의 의술이 부족해서 생긴 일을 왜 우리한테 덮어씌우려는 것이오?”“맞소! 무슨 명의의 제자라더니... 다 헛소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