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한이 군에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매우 늦은 시간이었다.전에 며칠처럼, 그는 임원이 있는 곳에는 눈길을 한번도 돌리지 않고 곧바로 서재로 갔다.그가 겉옷을 벗기도 전에 임원이 먼저 서재의 문을 두드렸다.그녀는 밖에 있었다. 달빛에 비친 그녀는 약간 허약해 보였다.소한은 자기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며 귀찮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무슨 일이오?”임원도 제 발 저렸는지, 계속 고개를 숙이며 소한이 그녀의 눈에서 당황함을 읽을까 봐 감히 소한을 볼 수 없었다. 그저 고개를 약간 기울여 뒤에 있는 시녀를 한 번 보고 나서 말을 이었다.“어머님께서 소한 오라버니가 늦게 돌아오면 아주 힘들 거로 생각하셔서 특별히 주방에 삼계탕을 준비하라고 하셨어요.”그녀는 삼계탕을 소씨 부인께 덮은 것은 저녁에 소씨 부인이 확실히 말했었고, 또 그녀가 삼계탕을 준비했다고 하면 소한이 먹지 않을까 봐 두려워서 그랬다.소씨 부인이 준비하라고 한 것을 듣자, 소한은 몸을 약간 비켰다.“놔두거라!”시녀는 공경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서재에 들어가서 삼계탕을 탁상에 올렸다.소한이 알아차릴까 봐, 임원은 일부러 영희를 데려오지 않고 다른 시녀랑 왔다.시녀가 삼계탕을 놓은 것을 보자, 임원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어머님께서 저보고 소한 오라버니가 다 마시는 것을 지켜보라고 했습니다.”이 말을 듣자, 소한의 안색은 더 어두워졌다. 그가 입을 열기 전에 임원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소한 오라버니가 아무리 저를 싫어한다고 해도 저를 궁지로 몰면 안 됩니다.”이 말은 소씨 부인이 시킨 일을 잘 못해서 소씨 부인의 미움까지 받으면 그녀는 정말로 이 집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뜻이다.임원이 계속 고개를 숙여 소한이 그녀의 표정을 볼 수 없는 탓인지, 예전에 눈시울을 붉히며 그녀의 눈물을 보여주는 모습보다 지금이 더 가련해 보였다.더군다나, 오늘 처음으로 처가댁에 인사하러 갔는데 그가 먼저 떠나서 좀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소한은 드디어 한 발짝 물러났다.그는
그는 양손으로 임원의 어깨를 잡았다.곧이어 임원을 밀쳐냈다.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낭자, 이게 뭐 하는 짓이오!”임원은 이런 식으로 타인에게 밀쳐지는 것이 처음이었다.그녀는 수치스러웠다.하지만 여기서 실패하면 다시 돌아갈 수 없다.곧이어 여러 생각에 감정이 북받쳐 눈물이 터졌다.그리고 소한의 품에 달려들었다.“소한 오라버니, 소녀를 가엾이 여겨 주시옵소서. 다른 것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저 아이를 갖고 싶을 뿐이옵니다...”소한은 벽에 걸린 검을 들었다.검 칼집이 임원의 어깨를 막았다.악마에 씐 것 같은 그녀의 모습이 수상하기 그지없었다.어찌 아이를 입에 올리는 것일까.이때, 아랫배에서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처음 느끼는 기분에 소한은 몸이 얼어붙었다.그제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챘다.그 삼계탕이다!소한은 임원을 바라보았다.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네가 감히 나에게 약을 탄 것이냐?”임원은 이미 눈물범벅이었다.그녀는 자신에게 약 말고 다른 방법이 없다는 표정이었다.소한은 모든 진실을 알아낸다고 했다.하지만 진실을 알게 되면 지금보다 더 자신을 미워할지도 모른다.다른 방법이 없지 않은가.아이가 생기면 이후의 명예와 부는 지킬 수 있다.“소한 오라버니, 이번 한 번만 눈감아 주시옵소서. 제게 아이만 주실 수 없겠사옵니까?”그리고 그의 앞에서 옷을 벗었다.수치스러워도 임원은 자기 자신을 설득하기 바빴다.자신은 소한의 아내로서, 소한과 어떤 짓을 하든 이상하지 않다.그저 한 번 시도를 해보는 것뿐이지 않은가.곧이어 임원은 헐벗은 몸으로 그의 앞에 섰다.소한의 약 반응은 더욱 거세졌다.뜨거운 열기에 쥐고 있던 검도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임원은 깜짝 놀랐다.곧이어 약이 효과가 나타났다고 알아챘다.그러고는 다시 소한의 품에 달려들었다.부드러운 몸은 마치 뱀을 연상케 했다.“소한 오라버니, 제가 잘 모시겠습니다...”여인의 체취에 소한은 반응이 더욱 커졌다.두 손이 천천
한편, 방 안.소하는 고통 속에 몸부림치고 있었다.오늘 숙희가 의원에게 처방전을 받고 약을 사왔다.소하의 족욕을 위한 약이었다.가져온 약재는 세 시진 동안 작은 불에 푹 삶아야 한다.그리고 소하가 발작을 일으킬 때, 두 발을 약재에 넣으면 된다.하지만 소하는 고통 때문에 온몸을 비틀었다.이각 혼자서 감당하지 못하여 김단이 돕기 위해 안으로 들어왔다.한 사람은 소하가 수레 의자에서 떨어지지 못하게 어깨를 눌렀다.또 한 사람은 약재를 담은 목통이 엎어지지 않게 소하의 다리를 잡았다.향을 다 피우자 소하의 몸부림이 작아졌다.김단과 이각이 잠시 숨을 돌렸다.이때, 방 문이 덜컥 열렸다.소한이 쓰러지듯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이각은 그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작은 도련님!”그는 소한 다리에 난 피를 바라보았다.다시 고개를 돌려 소하의 상황을 살폈다.몸부림이 심하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서둘러 소한을 일으켰다.소한은 더 이상 몸에 힘이 남지 않았다.만약 다리의 통각이 그의 이성을 잡고 있지 않았다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을 것이다.그는 이각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호흡이 가빠지고, 두 눈이 자연스럽게 김단을 향했다.소한은 미간을 찌푸렸다.어찌 김단이 이곳에 있단 말인 가.곧이어 본능이 시키는 대로 김단을 향해 걸어갔다.하지만 몇 발자국 가지 못하고 자리에 쓰러졌다.이각은 서둘러 그를 부축했다.“작은 도련님, 어디 아프십니까? 몸이 뜨거우십니다.”김단도 깜짝 놀랐다.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한 소한의 모습이 과거의 자신을 연상케 했다.자신이 약에 취했을 때도 같은 모습이었다.하지만 누가 소한에게 약을 탄 것일까.설마, 임원 인가.이때, 소하의 목소리가 들렸다.“이각, 소한을 데리고 차가운 물에 담궈라.”소하의 안색은 창백했다.방금 병이 발작한 뒤로 호흡이 약해진 것 같았다.하지만 소한이 약에 취했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곧이어 이각은 소한을 데리고 욕통이 있는 곳으로 옮겼다.그는 소한을 욕통 안
방금 전의 분노가 차가운 물에 의해 냉기로 변했다.김단은 조금이라도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곧이어 소한은 억지로 시선을 돌렸다.눈을 감고 고개를 저었다.“괜찮네.”이각은 여전히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하지만 자신의 주인이 더 걱정되었다.붕대를 감고 괜찮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작은 도련님께서는 잠시 여기에 계십시오. 노비가 다시 돌아와 도와드리겠사옵니다.”곧이어 소하에게 발걸음을 옮겼다.소하의 다리 약은 적어도 한 시진은 발을 담궈야 했다.김단은 이각 혼자 챙기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기다렸다.그리고 시진이 다 되자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그다음 날.김단은 눈을 뜨자마자 소하를 보러 갔다.그녀의 첫 치료라 상황을 살펴야만 했다.문을 두드리고 작게 말했다.“소하 오라버니, 들어가도 되겠사옵니까?”하지만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김단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이 시각이면 소하가 이미 일어났을 터였다.어찌 아무 대답이 없는 것일까, 혹여 족욕을 한 것이 부작용을 일으킨 것일까.걱정되는 마음에 말투가 조급해졌다.“소하 오라버니, 괜찮으십니까? 소,소녀 들어가겠나이다!”문을 열려고 하자 안에서 문이 열렸다.문을 연 사람은 소한이었다.몸에 밀착된 옷 한 벌만 입은 채 머리를 풀어 내렸다.차가운 얼굴에는 무심함이 가득했다.어두운 표정으로 김단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김단은 소한이 있는 줄 몰랐다는 표정이었다.그가 정신을 차리고 자리를 떠난 줄만 알았다.그녀는 방 안으로 시선을 옮겼다.“소하 오라버니는 어찌 되셨사옵니까?”소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어젯밤 김단이 소하를 보살피던 모습이 뇌리에 스쳐 지나갔다.순간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그는 손을 내밀어 김단을 방 안으로 끌어당겼다.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김단이 제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방문이 닫힌 상태였다.소한은 그녀를 문에 밀착시켰다.한 손으로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다른 한 손으로는 그녀의 옆을 가로 막아 도망칠 기회조차
소한의 말은 김단의 심기를 건드리고 말았다.“소한 장군, 저는 이제 장군의 형수입니다. 소하 오라버니와 저는 거짓 혼례를 한 적이 없나이다, 하물며 그렇다 하더라도 장군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사옵니다! 비켜주세요!”그리고 있는 힘껏 소한을 내밀었다.하지만 소한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오히려 자신의 손이 자연스럽게 소한의 가슴팍에 올려졌다.그의 열기가 손으로 통해 전달되었다.마치 불이 타는 것 같았다.서둘러 자신의 손을 빼려고 했지만 소한은 힘을 풀지 않았다.“단아...”머리 위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쉰 목소리에 애처로운 말투였다.소한은 이전에도 이렇게 그녀를 부른 적이 없다.김단이 움찔거렸다.깊게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김단의 눈에는 분노, 고집 그리고 알 수 없는 붉은 기운이 서려있다.하지만 말투는 차가웠다.“소 장군께서는 가문의 추문이 돌게 할 생각 이십니까?”소한이 눈살을 찌푸렸다.그리고 더 이상 김단에게 화를 낼 수 없었다.화를 누르고, 낮게 대답했다.“그저 나를 화나게 하려는 것을 알고 있소, 어젯밤 나는…”약에 취해서 온통 낭자 생각뿐이었다,라고 소한은 말하고 싶었다.그는 그제야 자신의 마음을 깨달았다.자신은 김단을 사랑하고 있었다.하지만 김단은 그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듣고 싶지 않습니다! 그만 놔주십시오!”소하의 마당에는 사람이 별로 없다.하지만 가끔씩 하인들이 청소를 하러 온다.그들에게 들켜 추문이라도 나면 큰일이다.김단은 마음이 다급해졌다.하지만 소한은 여전히 꼼짝하지 않았다.목소리는 더욱 애처로워졌다.“단아, 내 말 좀 들..”“싫습니다!”김단은 화가 잔뜩 났다.그녀는 소한이 약에 취해 머리가 이상해진 줄 알았다.참으로 운이 안 좋은 날이지 않은가.소한이 역겨운 말을 이어서 하려고 하자, 김단은 어쩔 수 없이 그의 팔목을 물었다.세게 꽉 깨문 탓에 결국 옷에도 피가 묻고 말았다.그녀는 소한이 곧 힘을 풀 것이라 생각했다.김단의 입안에 피비
마침 이각이 소하를 데리고 돌아오는 길이었다.김단이 자신의 방에서 나오자 소하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입을 열려고 하자 그녀의 빨개진 눈가를 발견했다.소하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김단은 이때 소하를 마주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곧이어 깊게 숨을 들이켜고는 생각을 빠르게 정리했다.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물었다.“서방님, 아침부터 어딜 갔다 오시는 길입니까?”아무 일 없는 듯 대하는 그녀의 행동에 소하는 마음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그는 자신의 방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방 문이 열려 있고, 안에는 사람의 그림자가 움직이고 있었다.소하는 김단이 가까이 다가와서야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낮은 목소리에는 희미한 분노가 담겼다.“누가 괴롭혔느냐.”김단이 움찔거렸다.그제야 자신의 표정을 감추었지만 소하에게 들키고 말았다.김단은 소하가 걱정을 할까봐 고개를 저었다.“아니, 아닙니다.”소하는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이때, 소한이 옷차림을 가지런히 한 채로 방 안에서 나왔다.소하와 마주치자 예의를 갖추었다.“형님.”하지만 소한의 시선은 여전히 김단에게 향해 있었다.소하는 상황을 유심히 살폈다.그리고는 갑자기 손을 들어 물건을 그에게 내던졌다.빠른 속도에 놀랐지만, 소한은 재빨리 손을 뻗어 물건을 잡았다.물건은 다름 아닌 약병이었다.그는 약병을 구하기 위해 아침 일찍 출가했었다.춘약은 해독약이 따로 있다.약 기운이 사라진다 하여도, 다시 발작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만들어진 해독약이다.소한이 관저에서 약에 취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소 씨 가문에 추문이 생길 것이다.그리하여 어쩔 수 없이 소하가 직접 찾아가 자문을 구한 것이다.하지만 자신이 자리를 비웠을 때, 김단이 괴롭힘을 당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생각하면 할수록 소하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졌다.하지만 소한은 눈치를 채지 못했다.약병을 만지작거리며 답했다.“형님, 고맙습니다.”하지만 소하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소한은 그제야 소하의
김단은 소하가 자신을 걱정하는 것을 알고 있다.허나, 소하와 소한은 친 형제가 아닌가.어젯밤, 소한이 약에 취해 제일 먼저 도움을 청한 사람은 소하였다.더하여 소하도 아침 일찍 출가하여 해독제를 구해 오지 않았는 가.이 일 만으로도 두 형제의 우애가 얼마나 깊은 지 알 수 있다.3년 뒤에 떠날 자신 때문에, 두 사람 사이에 금이 가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다음부터 주의하겠사옵니다.”소한과 단둘이 만나지 않으면 될 일이다.소하는 김단의 뜻을 알아채고 아무 말 하지 않았다.상황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침묵을 유지하던 이각이 입을 열었다.“도련님, 노비가 보기에 오늘 날이 참 맑습니다. 저 그네를 놓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그의 말에 김단도 말을 더했다.“소하 오라버니께서도 그네를 타고 싶사옵니까?”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방에서 조식을 가져오던 숙희가 들어왔다.그네를 놓는다는 말에 그녀는 크게 흥분했다.“그네를 놓습니까? 노비도 돕겠사옵니다!”숙희의 기쁨이 전달이라도 되었는지, 소하의 입가가 올라갔다.김단은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이각이 숙희를 향해 손을 저었다.“도울 필요 없소, 아씨 조식이나 서둘러 챙기시오. 그런 일은 내가 하면 되오.”숙희는 돕고 싶었다.하지만 아씨가 배가 고플까 봐 고개를 끄덕였다.곧이어 조식을 들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김단도 숙희를 따라 들어갔다.조식을 다 먹고 숙희와 같이 방을 나올 때쯤, 이각은 그네를 거의 완성했다.오동나무 아래로 밧줄 하나와 목판으로 그네가 걸려있었다.그네가 단단한 지 확인하기 위해,이각이 밧줄을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확인을 끝내고, 숙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얼른 오시오!”숙희는 “예!” 라고 답한 뒤, 나비처럼 이각에게 달려갔다.그녀가 그네 위에 앉자, 이각이 뒤에서 밀어주었다.오랫동안 그네를 논 적이 없어서 그런지 더 신났다.“높게, 더 높게..”이각은 숙희의 말 대로 힘을 더 썼다.그 바람에 숙희가 거의 날아갈 것 같았다.숙희는 비명을 질렀다.
그네를 타는 김단의 모습은 마치 날개를 펼쳐 나는 것 같았다.모든 장면이 아름다운 탓에 꿈같이 느껴졌다.소하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졌다.비록 보이지 않는 장애물이 그를 아름다움과 떨어지게 했지만,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이때, 김단이 고개를 그를 향해 돌렸다.미소를 지은 채 그를 불렀다.“서방님, 와서 밀어 주시겠나이까?”소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하지만 두 손은 이미 수레바퀴에 올려져 있었다.이때, 이각이 김단을 향해 걸어갔다.“제가 하겠사옵니다!”자신의 주인이 쓸데없는 힘을 쓰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숙희가 그를 잡았다.그녀가 이각을 살짝 쳤다.“눈치도 없소?”이각은 자리에 얼어붙었다.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는 소하가 이미 김단의 뒤에서 천천히 그네를 밀고 있었다.그네가 움직이자 김단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뒤에 있던 소하도 마찬가지였다.두 사람의 모습에 이각의 코끝이 찡했다.사실 그는 자신이 모시던 도련님은 이미 오 년 전에 죽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그 장면에 도련님이 다시 살아온 것만 같았다.“숙희, 고맙네.”이각이 작게 속삭였다.마치 아름다운 장면을 자신이 방해할까 싶었다.숙희가 이각의 생각을 알 리가 없었다.“그네는 자네가 놓지 않았소?”대체 무엇이 고맙다는 것 일까.한편, 김단은 만족하지 못한 것 마냥 숙희처럼 크게 외쳤다.“서방님, 조금 더 세게 밀어주시겠나이까.”그녀의 말에 소하는 옆으로 살짝 비켜서 그네를 밀었다.김단이 소하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그네를 오랫동안 놀지 못하여 더 놀고 싶은 마음이었다.더하여 그녀는 소하의 힘을 알고 있었다.그네가 점점 높아지자 김단의 마음도 날아갈 것만 같았다.높은 곳에 다다를 때마다, 자신이 한 마리의 새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어쩌면 저 높은 벽으로 날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이때, 김단은 순간 손을 놓고 말았다.소하가 깜짝 놀랐다.김단이 이런 식으로 날아갈 줄은 전혀 몰랐던 표정이다.“악!”세
이튿날 아침, 김단은 궁무를 맡지 않았기에 평양관저에 머물며 맹영지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탓인지 맹영지의 눈빛에는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김단의 곁에 있을 때만큼은 그녀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조용한 정원, 김단은 맹영지와 함께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계수나무 아래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숙희가 건네준 과자가 들려 있었고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번져있었다. 맹영지는 고개를 들어 만개한 계화를 바라보며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 어제 소하가 평양관저를 찾아왔으나 그는 맹영지와의 만남을 최대한 피하려 애썼다. 아마도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함이었을 것이다.김단은 맹영지를 바라보며 과거 소하가 왜 그리도 그녀를 칭찬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한때 소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여인답게 그녀는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하지만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가까웠던 두 사람이었는데 맹영지는 어쩌다 소하에게 독을 먹이려 했던 것일까?김단은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맹영지의 몸과 마음이 회복되면 그때 자연스럽게 그 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김단이 생각에 잠겨 있던 찰나 평양관저의 겸인이 급히 달려와 말했다.“아가씨, 맹가 사람들이 도착했습니다.”이런 큰일이 발생했으니 맹씨 집안에서 그녀를 보러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김단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겸인에게 말했다.“알겠소. 이리로 모셔오시오.”잠시 후, 맹씨 부인이 정원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김단에게 예를 갖추어 인사한 뒤 슬픈 눈으로 자신의 딸을 바라보았다. “김 의원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의원님이 아니었다면 제 딸이 그 짐승 같은 자에게 학대받으며 살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맹씨 부인의 눈동자가 붉어졌다.김단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맞이하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과찬이십니다, 맹씨 부인. 민태훈, 그 자의 말에 따르면 맹영지 아가씨의 병은 이미 4~5년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완전히 회
소한은 코웃음을 치며 말없이 등을 돌렸다.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소하의 조용한 목소리가 방안의 침묵을 깨뜨렸다.“이번에는 정말 잘했어.”영의정 저택에서 벌어진 일은 소한이 형벌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소하의 귀에 들어갔다. 만약 소한이 과감하게 영의정 저택에 침입하지 않았다면 김단은 쉽게 그곳을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비록 민씨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김단을 해치지 못한다고 해도 그녀가 겪었을 모욕과 고통은 상상하기 어려웠다.소하의 갑작스러운 칭찬에 소한은 많이 당황한 듯했다.“제가 충동적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때로는 그 충동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지.”소한은 아무 말 없이 그저 김단의 얼굴을 떠올렸다. 처음에 그녀도 자신을 발견하고 놀란 듯했지만 곧 냉랭한 표정으로 일관하였다. 김단은 마차에 오를 때까지 자신에게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다.과거의 그녀였다면 그가 나타나자마자 바로 그의 품에 안기며 그를 향해 미소 지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그녀는 너무나도 차갑게 변해버렸다. 자신을 외면하는 그녀가 소한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그는 자신이 무엇을 잃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큰 실수를 저질렀는지를 다시금 깨달았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꽉 쥐며 굳게 결심했다.그는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 위해 이미 어떤 대가든 치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반 시진 후, 김단은 방 안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그러자 숙희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불렀다.“아가씨?”김단은 정신을 차리고 숙희를 바라보았다.“무슨 일이냐?”“두 도련님께서는 모두 돌아가셨습니다.”김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방금 전 발생한 일을 되새겨 보았다. 그녀는 소한이 오랫동안 계획해 온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자신을 선택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에도 그는 소가를 위해, 전하를 위해 심지어 임원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그러나 그녀만은 제외였다.그녀는 소한이 자신의 어머니를 걱정하는 척하며 평양관저로 따라온 것도 단지 자신의 동정심을 얻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상처
김단은 아무 말 없이 소한을 부축하며 걸었다. 궐에서 나오는 길은 유난히 길고 고요했다. 그들의 발걸음은 무겁고 느렸으며 말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있었다.궐문에 도착했을 때 소한의 마차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는 아마도 말을 타고 왔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의 상태로 다시 말을 타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된 김단은 곁에 있던 경씨에게 부탁했다.“도령님, 장군님을 먼저 집으로 모셔다 주실 수 있겠습니까?”그러자 소한이 놀란 듯 김단을 바라보며 물었다.“내게 약을 발라주지 않겠다는 것이오?”김단도 당황해하며 되물어 보았다.“소가에는 의원이 없습니까?”소한은 김단의 물음에 할 말을 잃었다. 자신의 의도가 너무 노골적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어머니께서 내가 또 다쳤다는 걸 아시면 얼마나 걱정하겠소? 그러니 그냥 근처에서 치료받을 것이오. 낭자는 신경 쓰지 말고 먼저 돌아가시오.”김단은 그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그렇다면, 먼저 평양관저로 함께 가서 약을 바르시죠.”소한은 그녀의 제안에 놀란 기색을 내비쳤다.“불편하지 않겠소?”김단은 그를 바라보며 단호히 말했다.“괜찮습니다.”그렇게 소한은 김단과 함께 평양관저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들을 맞이한 것은 김단의 몸종 숙희였다.소한을 발견한 그녀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그러자 김단이 숙희를 달래는 듯한 목소리로 차분히 말했다.“숙희야, 장군님을 객실로 안내해 주거라. 나는 약을 준비하러 가야겠구나.”그녀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김단의 지시를 따랐다.객실에 혼자 남은 소한은 조심스럽게 상의를 벗고 등을 드러냈다. 그의 등에는 형벌로 인한 상처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그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등을 바라보며 오늘의 형벌이 생각보다 가볍지 않았음을 깨달았다.하지만 그는 김단이 이 상처를 보면 마음 아파할 것이라 생각하며 기대감으로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잠시 후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약을 들고
긴장감이 맴도는 분위기 속에서 전하는 이해 안 되는 듯한 어투로 물었다,“조선의 장군인 네가, 수많은 전공을 세운 네가, 원하는 여인 하나 얻는 것이 그리 어렵단 말이냐? 어찌 김단 하나 때문에 수년간 공들여 쌓아온 모든 것을 무너뜨리려 하는 것이야? 그 낭자가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느냐?”전하의 말투는 엄중했지만 그 속에는 실망과 안타까움이 섞여 있었다.그러자 소한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그렇습니다.”전하는 눈썹을 찌푸리며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김 의원, 들었소?”그 순간 소한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조용히 서있는 김단이 있었다. 그녀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담담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소한은 그녀의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가 이 모든 대화를 들었다는 사실에 당황했지만 그녀의 표정에서는 어떠한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소한은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물었다.“김단, 왜 이곳에 있는 것이오?”그녀는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와 무릎을 꿇고 전하에게 예를 올렸다.“소녀 김단, 전하를 뵙습니다.”전하는 손짓으로 그녀를 일으키며 말했다.“일어나거라. 오늘 발생한 일에 대해 자세히 말해 보거라.”김단은 소한을 보지 않기 위해 시선을 정면에 고정한 채 차분하게 사건의 전말을 설명했다. “제가 직접 목격한 바는 없습니다. 하지만 민대부를 제외하고는 영의정 댁 장남의 부인에게 감히 손을 댈 수 있는 자는 없을 것입니다.”전하는 그녀의 말을 듣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맹 낭자의 상처를 확인하기 위해 두 명의 궁녀를 보내겠다. 평양관저에서 확인해 보도록 하거라.”학대의 이유가 무엇이든 맹영지는 필시 중전의 친척이었다. 만약 폭력을 가한 사람이 민대부라고 할지라도 이는 중전의 가문을 모욕하는 행위와 다름없었기에 결코 그를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전하는 소한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어쩌면 네 죄가 묻힐 수도 있겠구나.”민씨 가문의 잘못이 드러나게 된다면
소한은 곧바로 병사들과 함께 어서재에서 물러났다. 그가 다시 돌아왔을 때는 이미 향 한 자루가 탈 정도의 시간이 흘러 있었다.소한이 걸어 들어오는 것을 본 전하는 하던 일을 멈추고 냉랭하게 물었다.“영의정이 너를 더 때리라고 명하지 않았느냐?”소한은 조용히 전하 앞으로 걸어가 무릎을 꿇고 허리를 곧게 세운 채 대답했다.“전하의 깊은 뜻을 아는 자입니다. 그러니 더 심한 처벌을 요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전하는 코웃음을 치며 다시 물었다.“그렇다면, 내 뜻이 무엇이더냐?”소한은 고개를 들어 전하를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전하께서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대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겁니다. 그래서 영의정을 불러 제가 벌을 받는 장면을 직접 목격하게 하셨죠. 그리고 동시에 제가 전하의 사람이라는 것을 명확히 하셨습니다. 전하께서는 영의정이 이 사실을 눈치채기 바라신 것 아니었습니까?”전하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손에 들고 있던 붓을 책상에 내던지며 소리쳤다.“이 불경한 자식아! 내 너를 아낀다고 해서 이렇게 제멋대로 행동해도 된다고 생각하느냐? 영의정 저택 외에 또 어디에 첩자를 심어두었느냐?”소한은 눈을 내리깔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3품 이상의 모든 관료의 집에 첩자를 두었습니다.”그 말을 들은 전하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소한을 가리켰지만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였다.그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짓더니 한참 동안 방안을 서성이었다.잠시 후 그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다시 한번 소리쳤다.“네가 감히! 그렇게 많은 곳에 첩자를 심어두고 무슨 일을 꾸미려는 것이냐? 이렇게 행동하면 내가 소씨 집안을 멸문시켜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소한은 여전히 고개도 들지 못한 채 조용히 말했다.“저도 위험한 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전하께서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다섯 해 전, 저희 소가는 거의 멸문 당할 뻔했습니다.”그 해 소하가 지닌 병권은 다른 집안의 탐욕스러운 먹잇감이 되었고 그로 인해 조정의 문
김단은 그제야 잊고 있었던 민태훈을 떠올렸다.그녀는 맹영지를 몸종에게 맡기고 민태훈 곁으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그의 허벅지에 박힌 은침을 뽑아냈다.침이 빠져나가자마자 민태훈은 마치 고통에서 해방되기라도 한 듯 온몸의 긴장이 풀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한 가닥의 은침이 이토록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큰 마님은 김단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그녀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고 말이다.그때 경씨가 마차를 몰고 도착했다. 김단과 몸종이 맹영지를 부축하며 걸어 나오자 경씨는 놀란 얼굴로 다가와 안부를 물었다.“낭자, 괜찮소?”방금 전 김단이 영의정 저택에서 곤란한 상황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소한은 급히 그녀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덕분에 한발 늦게 도착한 경씨는 자신이 더 일찍 김단을 챙기지 못한 것을 자책하며 말했다.“내가 미처 신경 쓰지 못했소.“김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럽게 대답했다.“저는 괜찮습니다. 먼저 맹 아가씨를 평양관저로 모시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그는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김단과 몸종이 맹영지를 부축하며 마차에 오르자 경씨는 바로 마차를 출발 시켰다.김단은 마차에 오르기 전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조용히 서 있는 소한에게로 향했다. 소한은 그녀를 바라보며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김단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려버렸다. 소한은 그런 김단의 뒷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보더니 옅은 미소를 지었다.그 후 소한은 곧장 궁으로 향했다.어서재에 도착한 그는 곧바로 무릎을 꿇고 앉아 오늘 영의정 저택에서 있었던 일을 전하에게 보고했다.그의 말을 들은 전하는 노여움을 감추지 못하며 소한을 꾸짖었다.“네가 감히 허락도 없이 영의정 저택을 침입했단 말이냐? 정말 대담하구나! 내가 너를 벌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느냐?”그러나 소한은 그저 묵묵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벌을 달게 받겠습니다.“전하는 그의 담담한 태도에 더 분노하며 외쳤다.“민가
김단은 민씨 부인의 말에 담긴 의미를 정확히 파악했다.보내서는 안 된다라...오늘 이 자리에서 맹영지뿐만 아니라 김단 자신도 민가를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김단은 민씨 부인이 자신의 아들을 위해 이런 결정을 내릴 줄 몰랐다.그녀는 자신의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선택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김단의 눈빛이 서서히 날카롭게 변해갔다. 그녀의 내면에서는 분노와 실망이 교차했다.큰 마님은 민씨 부인의 표정을 보고 심각한 상황임을 직감했다.맹영지의 몸에는 증거가 남아있었고 그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게 된다면 엄청난 파장을 불러올 것이다.하지만 지금 김단을 보내지 않는다면 그녀는 분명 궐로 들어가 이 일을 고발할 게 뻔했다.지금 김단을 적으로 돌린다면 그에 따른 후과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큰 마님은 사랑하는 손자를 바라보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김단을 보내면 민태훈의 입지가 위험해질 것이고 보내지 않는다면 민가 전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었다. 그러기에 그녀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그때, 한 하인이 급히 달려와 외쳤다.“큰 마님! 소 장군님께서 오셨습니다!”소 장군? 소한을 말하는 것인가?그의 이름이 언급되자 큰 마님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소한이 이렇게 빨리 이곳에 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김단도 그가 왜 이곳에 나타났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녀가 생각에 잠긴 사이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큰 마님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뵙게 되어 송구합니다.”모두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것은 당당하게 정원으로 걸어 들어오는 소한의 모습이었다.“소한, 주인의 허락도 없이 들어오다니! 대체 영의정 저택을 무엇으로 보시는 것이오? 이곳은 마음대로 들락날락할 수 있는 곳이 아니오.”소한은 그 말을 한 사람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이런 무례를 범한 것은 제 잘못입니다. 곧 전하 앞에서 사죄드리지요.”그는 정원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더니 큰 마님에게 다가가 정중히 인사했다.
머뭇거리는 그들의 모습에 김단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마님, 만약 지금 이 자리에서 저를 막으신다면 저는 곧장 궐로 가 이 모든 일을 고할 것입니다.”그녀의 말은 칼날처럼 날카로웠고 그 안에는 확고한 결의가 담겨 있었다.김단의 말이 끝나자 민가의 사람들은 긴장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큰 마님은 눈썹을 찌푸리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그녀는 김단이 단순한 의원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김단은 진산군 댁의 적녀이자 평양원군의 의남매이다. 그리고 그녀는 소가의 두 형제와도 깊은 인연이 있었다. 지금 그녀를 적대시하는 것은 곧 여러 권세 있는 가문을 적으로 만드는 것과 다름없었다.큰 마님은 민태훈을 바라보았다. 그는 고통에 찬 얼굴로 땀을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그녀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팠다.그러나 동시에 마음속에는 김단에 대한 의심도 피어올랐다. 만약 그녀의 말이 과장된 것이라면 민씨 가문은 부당한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한참을 고민하던 큰 마님은 굳게 결심한 듯 민씨 부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네가 직접 확인해 보거라. 만약 낭자의 말이 거짓이라면 반드시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민씨 부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김단과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김단은 조심스럽게 맹영지의 소매를 걷어 올렸다. 그녀의 팔 안쪽에는 선명한 멍 자국이 여러 개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민씨 부인은 숨을 들이켰다.“이런 상처가… 정말로…”그녀가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자 김단은 차분하게 말했다.“다리 쪽은 더 심각합니다. 보시겠습니까?”민씨 부인은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이 상처, 정말로 태훈이의 짓입니까?”김단은 잠시 침묵하더니 그녀의 말에 대답해 주었다.“제가 직접 본 것은 아닙니다.”그 말에 민씨 부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우리 태훈이는 절대 그럴 애가 아닙니다. 어릴 적부터 착하고 작은 생명도 소중히 여기던 사람이었단 말입니다.”김단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지만 겉으로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공주의 이름이 거론되자 민씨 일가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스쳤다. 그러나 큰 마님은 여전히 태연한 표정을 유지한 채 입을 열었다.“낭자가 공주의 명을 받고 우리 영의정 저택에 들어와 병자를 돌보는 것은 알겠소. 허나 공주의 허락 없이 사람을 해치는 것은 무엄한 일이오. 공주라 할지라도 국법을 지켜야 하지 않겠소? 그러니 함부로 공주의 이름을 빌어 협박하지 마시오.”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김단은 박수를 치며 말했다.“참으로 옳은 말씀이십니다.”민가의 큰 마님은 김단이 드디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자신을 치켜세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김단의 입가에는 더욱 짙은 미소가 떠올랐고 눈빛에는 경멸이 스쳤다.“공주님께서도 국법을 지키셔야 하는데 민가의 사람들은 더욱 그러셔야 하지 않겠습니까?”민가의 사람들은 일제히 소리를 높이며 반박했다.“그게 무슨 뜻이오? 우리 민씨 일가는 예로부터 법을 준수하며 국법에 어긋나는 일을 한 적이 없소!”“김 의원께서 자신의 잘못을 덮기 위해 우리 민가에 누명을 씌우려는 것 아니오?” 김단은 그저 조용히 서서 그들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두려운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김단의 이런 차분한 태도가 큰 마님의 신경을 건드렸다.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김단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큰 며늘 아씨는 중전마마의 친조카이시며 공주자가의 사촌이십니다. 그래서 제가 그분의 치료를 맡게 되었지요. 원래는 상태가 호전되고 있었으나 오늘 갑자기 증상이 악화되었습니다. 이는 분명 누군가가 큰 며늘 아씨의 회복을 방해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의원으로서 제 환자가 이곳에서 고통받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으니 제가 데려가야겠습니다. 만약 제 앞을 가로막으신다면 다음번에는 민대부님의 다리에 은침을 꽂아 버릴 것입니다.”이에 큰 마님은 지팡이를 바닥에 세게 내리치며 외쳤다.“허튼소리 마시오! 낭자의 의술이 부족해서 생긴 일을 왜 우리한테 덮어씌우려는 것이오?”“맞소! 무슨 명의의 제자라더니... 다 헛소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