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단은 너무 깊이 생각에 빠진 나머지 손동작을 잠시 멈췄다.김단의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소한이 물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오?”김단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소한은 옆에 있는 옷을 집어 입고 그녀를 한 번 쳐다본 후 말을 이었다. “형님 일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낭자가 나설 필요 없소. 서원 공주는 낭자가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오.”김단은 소한의 말에 호의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았다.하지만 소한은 그녀가 이미 공주를 처리할 마음을 먹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병서에 기록되어 있기를 ‘적을 공격하는 것보다 좋은 방어는 없다’고 했다.물러서는 것만으로 더 이상 자신을 보호할 수 없을 때, 공격하는 것이야 말로 자신을 보호하는 최선의 방법이다!김단은 고개를 숙인 채 대답하지 않았다.과거 십여 년간 함께 지낸 세월 탓에 소한은 김단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김단이 아무 말 없이 침묵하는 것을 본 소한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 것이오?”김단은 그제야 고개를 들어 소한을 바라보았다.이미 들킨 이상 숨길 필요도 없었다.어찌 됐든 소씨 집안 두 도련님들은 주상을 등에 업고 잘나가는 사람들이었고, 그녀보다 더 많은 발언권을 갖고 있었다.서원 공주가 주상에게 이간질하여 그로 하여금 소씨 집안에 원한을 품게 하는 것보다 지금 당장 소한과 손을 잡고 서원 공주를 주상의 눈 밖에 나게 하는 편이 나았다.이에 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주상의 신임을 얻고 싶습니다.”그녀가 말한 것은 총애가 아니라 신임이었다.총애를 얻는 것은 사실 쉽다. 그 예로 그녀의 의술로 주상의 눈에 들면 총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주상의 신임을 얻는 것은 매우 어렵다.그녀는 이에 대한 방법을 몰랐으나, 소한은 알고 있을 것이다.소한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김단을 바라보았다. “낭자가 서원 공주를 상대하려는 것이오?”그녀가 이렇게 커다란 야심을 품고 있을 줄은 몰랐다.그
그말에 중전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김단은 이 방 안에서 다른 사람이라면 아마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라 생각했다!안타깝게도 그녀는 황후와 맞설 용기가 없었고, 지금은 공주만을 상대할 생각이었다.이에 그녀는 반응하지 않았다.하지만 서원 공주는 김단을 보며 질책하듯 말했다. “김씨 낭자, 왜 아무 말도 안 하는 것이오?”지금 상황이라면 당황하여 머리를 조아리고 충성을 맹세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김단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서원 공주를 보며 말했다. “소신이 무슨 말을 해야 합니까?”서원 공주는 당황했다.중전이 거의 김단을 저격하며 그녀가 해칠 마음을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 말했는데, 그 뜻을 알아듣지 못했단 말인가?정말 멍청하기 짝이 없지 않은가! 일단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중전을 바라보았다.중전은 김단을 바라보며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궁궐에서는 김씨 낭자가 명의에게 사사받아 의술이 매우 뛰어나다고 소문이 나있소. 더욱이 지금은 공주의 신임을 얻어 궁궐에 들어와 의녀가 되었지. 하지만 낭자가 세답방에서 나온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나는 낭자의 의술을 믿을 수가 없소.”비록 소씨 집안 큰 아들의 다리를 그녀가 치료했다 하더라도 중전은 여전히 의심을 품고 있었다.김단은 대답했다. “주상 전하께서 소신에게 마마님들의 몸조리를 도우라고 명하셨지만, 마마님들께 꼭 소신의 약을 드셔야 한다고 강요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중전 마마께서 소신을 믿지 못하신다면 소신의 약을 받으시고 바로 버리시면 됩니다.”그녀들의 몸조리를 돕는 이유는 어의원에서 약재를 점검할 때 공주의 유산 후 몸조리를 위한 처방을 내렸다는 것을 숨기게 하려는 것뿐이었다.그러니 중전이 그걸 마시든 안 마시든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중전은 김단이 적어도 두세 마디의 변명이라도 할 줄 알았지, 이렇게 바로 약을 버리라고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사실 그녀는 주상이 갑자기 궁궐 비빈들의 몸조리를 명한 것에 의심을 품었다.
김단의 말에 중전과 서원 공주는 깜짝 놀랐다.서원 공주가 먼저 정신을 차리고 낮은 목소리로 꾸짖었다. “낭자, 자네가 나를 위해 입바른 말 몇 마디를 해줬다고 함부로 지껄이지 마시오! 우리 어마마마는 그 누구보다 건강하신 분이오. 1년 전쯤 한 번 편찮으셨던 것 말고는 아무 이상이 없으셨는데, 어떻게 독에 중독될 수 있단 말이오?”김단도 불안했다!그녀는 서원 공주의 몸조리를 해주려고 왔다가 우연히 중전의 맥을 짚은 것이지, 이렇게 큰 일이 벌어질 줄은 생각도 못 했다!사실 그녀도 이를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였다.어쨌든 중전은 서원 공주의 친어머니고, 중전이 독살되면 서원 공주는 뒤에서 그녀를 도와줄 사람이 줄어드는 것이다.하지만 의원으로서 죽어가는 사람을 외면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고, 중전의 신임을 얻으면 훗날 자신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이에 김단은 사실대로 말한 것이다.“공주 마마께 아룁니다. 소신이 감히 거짓말을 할 수는 없사옵니다. 중전 마마의 맥은 특이하여 소신이 명의께서 주신 의서를 보지 않았더라면 맥에 아무 이상이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이 말을 들은 중전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러니까 낭자 말은 내 맥을 다른 사람이 짚었더라면 내가 중독되었다는 것을 알아내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오?”어조에는 김단을 향한 불신이 뚜렷하게 느껴졌다.서원 공주도 말을 거들었다. “김단, 자네가 공을 세우고 싶어 안달이 난 것은 알겠지만, 중독이라는 것은 자네가 함부로 입에 올릴 수 있는 것이 아니오!”“소신은 그런 생각을 한 적 없습니다.”김단은 미간을 찌푸린 채 말했다. “중전 마마의 맥을 보니 중독되신 지는 이미 10년도 넘은 것 같습니다!”“말도 안 되는 소리!”중전은 분노하며 소리쳤다. “난 지난 10년 넘게 건강했단 말이오!”“그것이 바로 이 독이 무서운 이유입니다!”김단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독은 안색을 붉게 만들 뿐, 천천히 몸 속으로 잠식합니다. 겉보기에는 건강해 보이지
그 말인 즉, 김단은 이미 중전이 월경불순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하지만 김단은 계속해서 말했다. “월경불순 외에도 마마께서는 복통 증상이 있으셨을 것이고, 최근 몇 달 동안 더욱 심해지셨을 겁니다. 월경량은 적고 그 색은 검은색을 띠며, 종종 진행이 끊겼다 이어졌다 하며 보름 간 지속되셨을 겁니다.”이 말을 들은 중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어의원에 궁궐 여인들의 월경 기간을 기록하는 담당자가 있다 하더라도 이렇게 자세하게 기억할 수는 없을 것이다.김단이 이렇게 정확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어딘 가에서 본 내용만으로 말하는 건 아니라는 뜻이었다.순간 그녀의 표정이 험악하게 바뀌었다.서원 공주는 중전의 안색을 살피고 무언가를 알아차린 듯 미간을 찌푸린 채 김단을 보며 말했다. “또 할 말이 있는 것이오?”김단은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중전 마마께서는 최근 잠자리에 드는 것이 매우 어려우셨을 것이고, 간신히 잠들어도 악몽에 시달리셨을 겁니다. 다음 날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셔도 기력이 없으셨을 겁니다.”모두 맞는 말이었다.하지만 중전은 심호흡을 하고 말했다. “네가 말한 것들은 별로 특별한 일이 아니다.”수 어의가 말하기를 걱정과 생각이 너무 많아도 잠자리에 들기 어렵고 악몽을 꿀 수도 있다고 했다.그럼에도 김단은 이어서 말했다.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신기한 것은 중전 마마께서 잠을 잘 못 주무시는데도 안색이 붉고, 기력이 없으심에도 정신은 매우 또렷하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증상들이 바로 방금 소신이 말한 독이 몸 안에 잠복하여 겉모습을 정상으로 보이게 만든다는 것입니다.”말이 끝나자 방 안은 조용해졌다.중전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서원 공주도 입을 꾹 다물었다.다만 두 사람의 표정에는 놀라움이 담겨 있었다.김단은 고개를 숙인 채 두 사람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렸음에도 두 사람이 입을 열지 않자, 김단이 참다 못해 말했다. “중전 마마께서 소신을 믿지 않으신다면 좀 더 기다려 보시지요.
세 번의 침술만으로 각혈을 하게 한다니?중전은 미간을 찌푸리며 싸늘한 눈빛으로 물었다. “각혈을 하지 않으면 어찌 할 것이오?”“소신이 중전 마마를 심려케 한 것이니, 중전 마마께서 내리시는 벌을 따르겠습니다!”김단이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것을 본 중전은 결국 승낙했다.하지만 김단에게 바로 침을 놓게 하지 않고 어의원에 사람을 보내 수 어의를 불러오라고 했다.수 어의는 김단이 잘못을 저지른 줄 알고 불안해하며 달려왔고, 중전에게 인사를 올리자마자 말했다. “마마, 부디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십시오. 김씨 낭자가 지금 의녀이긴 하나, 소신을 따른 지는 고작 한 달 남짓입니다. 혹 잘못을 저지른 것이라면 지난 몇 년 간 소신이 최선을 다해 마마를 모신 공을 헤아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수 어의는 어의원의 원장으로서 궁궐에서 의술이 가장 뛰어났다. 과거 중전이 갑작스레 기침을 했을 때도 수 어의는 사흘 밤낮 동안 중전의 침소에서 그녀를 간호했다.자연스레 그는 중전의 신임을 얻었다.그런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은 중전은 김단이 방금 한 말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나서 물었다. “네 생각에 낭자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느냐?”수 어의는 속으로 깜짝 놀랐지만 말했다. “중전 마마께 아룁니다. 소신은 마마의 맥에서 이상을 발견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김씨 낭자가 명의에게서 의술을 배웠으니, 정말로 마마의 불편을 진단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낭자가 목숨을 걸고 보증하겠다고 하니 중전 마마께서 한번 기회를 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좋다.”중전은 빠르게 대답하고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낭자의 목숨은 값어치가 덜 하니 네 목숨으로 보증을 서는 것이 어떻겠느냐?”이 말을 들은 김단은 깜짝 놀랐다.그녀는 그제야 서원 공주의 무고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버릇이 누구를 닮은 것인지 알게 되었다.수 어의의 두려움에 찬 시선을 받은 김단은 매우 확고한 눈빛으로 대답했다.그녀는 의원이 가르쳐 준 의술을 믿었고, 자신의 판
그녀는 중전을 침상에 엎드리게 하고 옷을 벗겨 등을 드러나게 했다.그리고 은침을 집어 등 뒤 세 부위 혈자리에 하나씩 꽂았다.중전은 등 뒤에서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그리고는 아무 느낌도 느껴지지 않았다.각혈은커녕 어떠한 느낌도 없었다!효과가 서서히 나타나지 않을까 싶어 중전은 잠시 기다렸다.하지만 등이 시원해졌을 뿐 각혈의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중전은 미간을 찌푸리고 김단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에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 “아주 겁을 상실한 낭자일세, 감히 나를 속이려 하다니! 게 누구 없느냐!”명령이 떨어지자 궁녀 몇 명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중전이 말했다. “김씨 낭자를, 웩...”말이 끝나기도 전에 중전은 갑자기 구역질을 시작했다.다량의 검은 피가 쏟아져 나와 하마터면 궁녀들에게까지 튀길 뻔했다.궁녀들은 모두 겁에 질렸다.중전은 더더욱 겁에 질렸다.눈앞의 검은 피는 먹물처럼 까맸다. 그녀가 토해낸 것이었다!김단만이 그저 담담한 모습으로 앞으로 나아가 손수건을 집어 중전의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주었고, 손수건을 옆에 있는 궁녀에게 건넸다. “가져가서 수 어의에게 확인하게 하거라.”“예.”궁녀는 공손히 대답하고 손수건을 들고 나갔다.잠시 뒤, 문밖에서 수 어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매우 흥분한 목소리였다. “중전 마마께 아룁니다. 손수건의 피를 보아, 정말로 심각한 독에 중독된 것이 분명합니다!”그는 목숨을 건졌다고 생각했다!하지만 방 안에 있던 중전은 수 어의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피를 토해낸 순간, 중전은 김단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다.그녀는 10년 넘게 독에 중독된 것이다. 어쩌면 서원을 낳은 직후에 누군가 독을 넣은 것일지도 모른다!누구일까?누가 이렇게 잔인한 짓을 벌인 걸까?도대체 누가 그녀의 목숨을 노리고 있음에도 바로 죽이지는 않으려 하는 것일까?옆에 있던 김단은 창백해진 중전의 얼굴을 보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마마, 계속 치료해도 되겠습니까?”중전은 정신을 차리
서원 공주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지만, 방 안의 사람들을 이끌고 무릎을 꿇어 예를 올리며 주상을 맞이했다.주상은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와 사람들을 둘러본 후 입을 열었다. “모두 일어나시오!”말을 마친 그는 김단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중전의 상태는 어떻소?”주상도 중전이 독에 중독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이 분명했다.김단은 방금 서원 공주에게 했던 말을 다시 한번 말했다.주상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지만, 미간은 찌푸려져 있었다. “짐은 줄곧 중전이 건강하고 안색이 좋아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곤 했소. 그런데 그것이 중독 때문이었다니! 도대체 누가 감히 중전에게 독을 먹인 것이란 말인가!”그의 말이 끝나자 방 안은 조용해졌다.10여 년 전부터 중독되어온 독이니 누구도 감히 범인을 특정 지을 수 없었다!심지어 중전의 마음속에는 주상 역시 용의자 중 한 명이었다!하지만 김단은 이때 뭔가 생각난 듯 미간을 찌푸렸지만,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서원 공주가 앞으로 나와 주상의 팔짱을 끼고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아바마마, 오늘 아바마마께서 김씨 낭자에게 궁궐 비빈들의 맥을 짚고 몸조리를 도우라고 명하신 덕에 어마마마께서 독에 중독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김씨 낭자가 열흘만 늦었어도 약도 듣지 않고 손을 쓸 수 없게 되었을 것이라 하였습니다!”주상은 깜짝 놀라 말했다. “그렇게 심각했단 말이냐? 그렇다면 공주 네가 네 어미를 구한 것이나 다름없구나! 네가 짐을 설득하지 않았다면 짐이 명을 내리지도 않았을 것 아니냐!”서원 공주도 그렇게 생각하는 듯 손으로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아바마마께서 자비롭고 어진 마음으로 궁궐 여인들을 생각하셨기에 어마마마의 목숨을 구하신 것입니다.”김단과 수 의원은 옆에 서서 서로 칭찬하는 부녀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얼마나 지났을까, 부녀의 이야기가 끝나자 주상은 뭔가 생각난 듯 김단을 바라보며 말했다. “명의의 제자라더니 정말 짐을 놀라게 하는 솜씨를 가졌소.
김단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쩌면 누군가 마마의 의식주에 손을 썼을 수도 있습니다. 마마께서 밤낮으로 독에 노출되도록 말입니다.”주상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그 독은 도대체 어떤 종류의 독인 것이오?”김단은 사실대로 대답했다. “의서에 기록되기로 이 독은 몸 안에 잠복하여 겉모습을 아름답게 하여 화월이라 부릅니다. 약왕곡에서 처음 발견된 독입니다.”약왕곡?!익숙하면서도 낯선 지명이 갑자기 튀어나오자 주상은 순간 숨을 들이켰다.약왕곡은 명성이 자자하며 의술과 독술 모두 유명한 곳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주상이 접했던 것은 약왕곡의 치료 약뿐이었다.약왕곡의 독을 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하지만 약왕곡의 독은 구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값만 넉넉히 지불한다면 말이다!누가 중전을 독에 노출시킨 것인지 주상은 여전히 알 수 없었다.오히려 그의 마음속에는 다른 걱정이 생겼다.그는 김단을 향해 손짓했다. “이리 와서 짐의 맥을 짚어 보시오.”중전은 깊숙한 궁궐에서 긴 세월을 살았음에도 독에 중독되었다. 그것도 이렇게 치명적인 독에 말이다.그렇다면 주상인 그 역시 독에 중독되는 것이 이상하지는 아닐 것이다.김단은 공손하게 예를 올리고 앞으로 나아가 주상의 맥을 짚었다.“어떠하오?”주상이 약간 걱정스러운 눈치로 물었다.김단은 손을 거두고 나서 말했다. “주상 폐하의 옥체는 건강하시고, 맥에도 이상이 없습니다.”주상은 안심하며 손을 거두고 김단을 바라보았다. “중전이 독에 중독되었다는 사실은 절대 소문 내지 마시오. 짐이 암암리에 이 일을 조사할 것이니!”“예.”김단은 공손하게 대답하고 고개를 숙인 채 그의 옆에 서 있었다. 그녀의 태도는 매우 온순했다.김단은 속으로 주상조차 중전의 소식을 듣고 다급히 달려갔는데, 다른 궁궐의 비빈들이 어떻게 이 소식을 모를 수 있을지 생각했다.그때 주상이 갑자기 물었다. “진산군 댁으로 돌아가 본 적이 있으시오?”김단은 속으로 표정을 구기며 대화의 주제가 너무 갑자기 전환되었
김단은 맹영지를 소하가 있는 곳으로 보게 하였다.허나 맹영지는 반응이 느리고,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에 소하를 바라보지 않았다.“소하라고 하는 사내입니다. 기억하십니까?”김단은 여전히 부드러운 말투로 물었다.허나 소하의 이름을 들어도, 맹영지는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았다.이러한 그녀의 모습에 소하의 눈동자가 어두워졌다.“이리 상황이 좋지 않을 줄은 몰랐소.”김단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소하 오라버니께서는 염려하지 않으셔도 돼옵니다. 제가 최선을 다하여 낭자를 보살 피겠나이다.”곧이어 소하의 시선이 김단을 향했다.찌푸린 미간은 펴질 줄 몰랐다.차마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무슨 말을 해야 하는 것인가.사실 그는 맹영지가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눈앞의 감회는 그저 오늘날과 이전의 다름에서 온 것이라 말할까,마음에는 김단의 안위만 생각하고 있으니, 다른 생각 하지 말라고 말할까.헌데 만일 그녀가 신경도 쓰지 않았다 하면, 할 말이 없지 않은가.소하는 여러 생각에 휘잡혔다.허나 생각했던 말은 내뱉지 않았다.“중전 마마께서 낭자와 맹 낭자를 처소로 들이시는 것은, 분명 다른 생각이 있으실 것이오. 그 뜻이 무엇인지 알고 있소?”김단이 고개를 저었다.“사실 저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였나이다.어쩌면 맹 씨 집안 때문이 아니겠습니까?”“어찌 되었든 간에, 낭자가 중전의 처소로 들어갔으니 호랑이 굴에 들어간 것과 같소. 항상 조심해야 하오.”“소하 오라버니, 염려하지 마시옵소서.제게는 오라버니께서 가르쳐 주신 방도가 있지 않사옵니까.”그녀의 말에 소하가 고개를 숙이고 미소를 지었다.“돌을 은침으로 대신하여, 민대부를 반나절 동안 아우성치게 하지 않았소.”“반나절이라니요, 반 시진도 가지 못했나이다!”김단은 소문이란 무서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소하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그래도 큰 인물이 되지 않았는 가.”“스승이 잘 가르쳐 준 덕분입니다.”김단은 서로 치켜세우는 상황에 웃음을 터트렸다.“중전 마마께서 기다리
해가 서쪽 하늘에 기울 무렵, 김단이 맹영지를 데리고 궁으로 들어갔다. 경씨가 옆에 서있었다.그의 얼굴에는 염려가 가득했다. 허나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전하가 김단에게 맹영지와 함께 궁으로 들라는 명을 내리지 않았는 가.만일 대군께서 한양에 계셨다면 막을 수 있었을 터, 한낱 마부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궁궐은 워낙 넓고, 궐 안의 금군 중에는 무예가 뛰어난 자들이 넘쳐 난다.더하여 내각에는 임금을 지키는 호위들이 따로 존재한다.자신이 몰래 궁에 들어가 낭자를 지키려 든다면, 날이 밝기도 전에 역적이라 오해를 받아 온몸이 찢길지도 모른다.김단은 경씨의 표정을 보고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경씨 도령, 염려하지 마시 옵소서. 제 몸 하나는 제가 잘 챙길 수 있사옵니다.하물며 소하 오라버니는 금군의 총령이니, 만일 무슨 일이 생기게 되어도 도움을 청할 수 있나이다.”경씨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부디 조심하시오.”경씨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숙희가 붉은 눈가를 한 채로 입을 열었다.“아씨, 노비는 궁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옵니까?”숙희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그저 김단과 함께 궁으로 들어가고 싶었다.혹여 무슨 일이 생기면, 도움을 줄 수 없다 하여도 자신이 뒤집어쓸 수 있지 않은가.허나 김단은 만일 하나 일이 생겨도, 숙희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나는 그저 작은 의녀에 불과해.중궁전에 거처하면서 내 몸종까지 데려간다 하면, 중전의 사람을 꺼려 한다면서 입을 놀릴 것이야.”숙희는 어렴풋이 그저 둘러대는 것일 뿐이라 느껴졌다.허나 반박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궁 안의 규칙이 수도 없이 많은 탓에,진정 구설수가 생길 수도 있지 않은 가.혹여 자신이 아씨를 해할 수도 있지 않은가.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숙희는 참을 수 밖에 없었다.뜬 눈으로 김단이 맹영지와 함께 궁궐 문으로 다가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양쪽으로 큰 성벽이 둘러쌓여 있어,알 수 없는 압박감에 맹영지가 긴장을 했다.그녀의 두 손은 김단의 팔을 꼭
“황공하옵니다, 마마.”향 하나를 다 피우고 나서야, 김단은 중전의 처소를 떠났다.그리고 서아름을 살피기 위해, 복화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서아름은 처음 만났을 때 보다 많이 말라 있었다.안색도 이전보다 훨씬 좋아졌다.허나 자신의 나인 앞에서는 이따금 지친 기색을 보였다.마치 나인에게 곧 죽을 사람처럼 행실 하곤 했다.다행히도 나인은 눈치가 없었다.하루 종일 놀기만 하고, 서아름을 살필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그 덕에 서아름도 마음이 편했다.김단을 보자 서아름이 서둘러 그녀를 배웅했다.“의녀께서 오셨나이까! 어서, 안으로 들이시옵소서!”김단은 서아름에 끌려 방 안으로 들어갔다.그녀는 물을 따라 주었다.“다 의녀의 덕분이옵니다. 근래에 걸음걸이도 훨씬 가벼워졌나이다!”사람의 몸은 아프지 않아야, 건강하다는 것을 인지 할 수 있다.낮에는 정신이 또렷하고, 밤에는 편히 잘 수 있었다.허나, 김단의 안색이 그녀와 반대로 어두웠다.“오늘 날, 전하께서 중전 마마를 옆에 두시고 숙원 마마의 상태에 대해 여쭈셨나이다.소신은 전하께 마마의 몸이 연약하지만,아이는 무탈하다 아뢰었사옵니다.”서아름이 움찔했다.그녀는 덕빈을 오랜 시간 시중을 든 사람이다.어찌 김단의 뜻을 모를 수 있는 가.자신은 살지 못하지만, 아이는 살 수 있다는 뜻이다.서아름은 한참을 움직이지 않다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아이만 무탈하면 돼옵니다. 소인은 그저 덕빈께 아이 하나만 남겨두는 것만으로 족합니다. 아이만 무탈하면, 제 미천한 목숨 하나가 중요하겠나이까.”김단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그녀는 서아름에게 알려 주고 싶었다.아이와 그녀의 목숨은 똑같은 것이라고.사람의 목숨에는 신분이 없듯이, 미천한 목숨이라는 것은 없다.더하여 귀식환 제조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제조에 성공만 하면, 서아름을 궁에서 떠나 새로운 삶을 보낼 수 있었다.허나 김단은 끝까지 말하지 못했다.귀식환 제조를 성공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실패로 돌아간다
김단은 중전의 뜻을 금방 알아챘다.중전이 서아름을 해하려는 가장 큰 이유는, 그녀 뱃속의 아이 때문이었다.만일 김단이 아이가 무탈하다 말했다가, 훗날 서아름이 아이와 함께 목숨을 잃게 되면, 임금이 그녀를 의심할 것이 뻔하다.중전은 김단에게 눈치를 주고 있었던 것이다.김단은 시선을 거두었다.고개를 숙인채, 자신의 발만 쳐다보며 말했다.“중전 마마께서 내려주신 귀한 보약 덕에, 숙원 마마의 태아는 무탈 하옵니다. 숙원 마마께서 끝까지 버텨내신다면, 태중의 용태는 무사히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을 것이옵니다!”김단의 말에도 중전의 살기 서린 눈빛은 여전했다.허나 임금은 만족한 듯, 미소가 짙어졌다.그는 뒤를 돌아 중전을 바라보았다.그녀의 손을 잡고는 다정하게 말했다.“다 중전 덕분이오.”중전은 살기 서린 눈빛은 온데간데 없고, 온화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임금의 칭찬에 그저 미소를 지어 보였다.“주상께서 후궁의 일을 신첩에게 맡기셨으니, 어찌 주상의 근심을 덜어드리지 않겠사옵니까.”“잘하셨소!”곧이어 임금은 몸을 뒤로 옮기더니, 중전의 귓가에 속삭거렸다.중전이 부끄럽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기다리고 있겠나이다.”“하하하, 알겠소.”임금은 그제야 손을 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짐은 아직 정사가 남았소, 자네는 중전 곁에서 말동무를 해주시오.”뒷부분은 김단을 향한 말이었다.김단은 예, 라 대답하며 임금을 배웅했다.임금이 자리를 떠나자마자, 중전이 김단을 바라보았다.쌀쌀한 말투로 그녀에게 말했다.“보아하니, 의녀는 주상의 총애를 받아 자신의 주관이 뚜렷 해지셨소.”중전의 말투에 김단의 심장이 철렁했다.김단은 서둘러 무릎을 꿇었다.“부디 중전 마마께서 노여움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소신은 마마를 위함이었나이다.”그녀의 말에 중전이 코웃음을 쳤다.그제야 천천히 물어보았다.“말해 보시오.”“부디 마마께서 깊이 헤아려 보시옵소서. 전하께서 후손을 이토록 중히 여기시거늘, 만일 소신이 숙원 마마의 태중이 위태롭다 아뢰
임금은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수고가 많았다.”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중전이 입을 열었다.“전하, 신첩 또한 의녀가 수고가 많다 생각하옵니다. 영지를 돌보시는 것도 벅차신데, 궁중의 후궁들까지 살펴야 하시니 말이옵니다. 차라리 영지를 신첩의 처소로 옮겨 이곳에서 돌보게 하는것이 어떠하옵니까? 의녀는 본디 평양 대군의 관저에 임시로 거처 중이시고, 그런 곳에 사람을 데려가는 것이, 체면상 온당치 않은듯하여 감히 아뢰옵니다.”평양 대군 관저에 김단은 손님에 불과하다.어찌 손님이 손님을 데려갈 수 있단 말인 가.하물며 맹 씨 집안의 자녀가 평양 대군 관저에 머무는 것에 대해 소문이 퍼질지도 모른다.임금도 같은 생각이다.맹영지를 중전의 처소에 머물게 하는 것이, 평양 대군의 관저에 머무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중전은 맹영지의 친 고모이며, 처소에서 병을 돌보는 것이 수월하지 않은가.허나 미간을 찌푸린 채 말했다.“허나 맹 가의 계집은 이 자만 알아본다 하지 않았소? 만일 이곳으로 옮겨,소란을 피우게 된다면 중전의 병세를 더욱 악화 시킬지도 모르오.”임금은 중전을 걱정하고 있었다.다정한 말투에 중전의 뺨이 벌겋게 달아올랐다.“염려하지 마시 옵소서. 의녀도 처소로 옮겨와 머물면 되지 않겠나이까.”맹영지가 알아보는 사람이 김단 뿐 이라면, 김단을 중전의 처소에 머무르게 하면 되지 않는가.그녀의 말에 김단의 얼굴이 굳어졌다.중전의 자신의 제안이 마음에 들은 모양이다.“그리하면 의녀도 수고를 덜 하겠지 않나이까.”임금도 중전의 제안이 마음에 들었다.곧이어 김단을 향해 물었다.“자네는 어찌 생각하는 가?”김단은 내키지 않았다.궁중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허나 김단은 공주의 사람이다.공주와 중전이 같은 편이니, 중전의 제안을 감히 거스를 수는 없었다.곧이어 절을 하고 말했다.“중전마마의 각별한 보살핌에 몸둘바를 모르겠나이다.”그녀의 대답은 다른 자가 듣기에는,중전의 제안에 만족한 것처럼 보였다.옆에
김단의 미소를 보아도, 맹 씨 부인은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맹 씨 집안의 안주인이 되어서, 어찌 김단의 속과 겉이 다르다는 것을 모를 수 있겠는 가.비록 미소를 짓는 모습이 온화하기 그지없지만, 자칫하면 그들을 물어 집안을 피바다로 만들 수 있었다.또한 김단의 뒤를 봐주는 자들은, 감히 그들이 거들떠도 보지 못하는 인물들이 아닌가.오늘 김단은 말리려고 하지도 않았다.오히려 맹 씨 집안의 체면을 고려하여, 그녀가 맹영지를 데려가지 않은 것이다.이러한 생각에 맹 씨 부인은 답답함을 느꼈다.허나 김단을 향해 미소를 짓고 나서야 자리를 떴다.맹 씨 부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김단의 미소가 점차 사라졌다.곧이어 숙희가 김단의 곁으로 다가갔다.목소리를 낮추고는 물었다.“맹 아씨의 친 모친이옵니다. 어찌 친 딸을 해하겠나이까, 혹여 아씨께서 너무 깊게 염려를 하신 것이 아니옵니까.”“내가 그 생생한 본보기가 아니더냐.조금만 생각하면 알게 되는 법이지.”김단은 말하면서 맹영지에게 시선을 돌렸다.맹영지는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금색의 계화 꽃잎이 떨어지고,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고개를 숙여 자신의 치마를 바라보았다.만일 맹 씨 부인이 ‘맹영지의 상황이 이리 심각할 줄 몰랐다’ 라는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김단이 직접 맹영지를 맹 씨 집안의 마차로 올려 보냈을 지도 모른다.자신의 피가 흐르는 친 자식을, 어찌 사, 오 년 동안 상황을 몰랐던 것일까.마치 그녀가 세답방에 버려지고, 삼 년 동안 어떠한 안부도 묻지 않는 그 자들과 같은 모습과 같았다.허나, 정승댁은 세답방이 아니다.맹영지는 노비가 아닌 그저 댁의 맏며느리가 되기 위해 정승댁으로 향한 것이다.어찌 친부모가 되어 아무것도 모를 수 있겠는 가.더하여 중전이 독이 맹 씨 집안의 소행이라 의심을 품고 있는 중이다.오히려 정승댁이 맹 씨 집안보다 더 안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겉으로는 물러선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한 수 앞을 보아 맹영지를 이곳에 머무르게 한
맹 부인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손을 거두고 두려운 표정으로 맹영지를 바라보았다.“어찌 이럴 수 있으십니까?”무언가 떠오른 것 마냥 김단을 향해 바라보았다.“의녀, 영지가..”김단은 그제야 미소를 지어 보였다.곧이어 맹영지의 곁으로 다가갔다.“다 나았나이다.”그녀의 한 마디에 맹영지는 천천히 진정을 되찾았다.두려운 눈빛이 점차 평온해졌다.맹 씨 부인은 이러한 모습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곧이어 김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낭자께서는 소인만 알아볼 수 있으십니다. 다른 이들이 다가간다 하여도,밀쳐 내실 겁니다. 부인도 똑같이 밀쳐 내실 것이옵니다. 제 몸종도 낭자에게 긁혀 손에 상처를 입었나이다.”김단의 말이 끝나자마자, 숙희가 맹 씨 부인에게 손을 보여 주었다.어제 맹영지에게 긁혀 생긴 상처였다.다행히도 김단의 설득 아래,맹영지는 드디어 숙희를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그제야 그녀의 시중을 들게 해 주었다.김단의 말에 맹 씨 부인의 얼굴이 굳어졌다.“오늘 데려 가지 못한다는 뜻이옵니까?”“아니옵니다.”김단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소인은 그저 맹 낭자께서 이곳에 계시는 게 나을 듯 하옵니다. 허나, 낭자께서는 맹 씨 집안의 자식이 아니 옵니까. 부인의 뜻을 따르겠나이다.”데려 가는 것이 결코 좋지 않다는 뜻이다.현재의 맹영지의 상황으로 보아, 억지로 데려 가는 수 밖에 없었다.부모가 되어 어찌 자식에게 좋지 않은 선택을 한단 말인 가.맹 씨 부인은 어찌 할 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대감이 맹영지를 데려오라고 신신당부했었다.허나 이 상황에 평양 대군 관저의 문을 나갈 수 있다 한들,맹영지가 소리치는 모습에 다른 이들이 소문을 퍼트릴 수 있다.잠시 생각하고는 입을 열었다.“의녀께서는 높은 의술을 가지고 계시라 믿나이다. 혹여 영지를 잠재울 수 있는 수가 있사옵니까?”‘잠’ 이라 했지만, 사실 기절을 시킬 수 있는지 물어본 것이다.그리해야 조용히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김단이 고개를 끄덕였다.“소인에게 약은
이튿날 아침, 김단은 궁무를 맡지 않았기에 평양관저에 머물며 맹영지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탓인지 맹영지의 눈빛에는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김단의 곁에 있을 때만큼은 그녀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조용한 정원, 김단은 맹영지와 함께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계수나무 아래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숙희가 건네준 과자가 들려 있었고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번져있었다. 맹영지는 고개를 들어 만개한 계화를 바라보며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 어제 소하가 평양관저를 찾아왔으나 그는 맹영지와의 만남을 최대한 피하려 애썼다. 아마도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함이었을 것이다.김단은 맹영지를 바라보며 과거 소하가 왜 그리도 그녀를 칭찬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한때 소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여인답게 그녀는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하지만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가까웠던 두 사람이었는데 맹영지는 어쩌다 소하에게 독을 먹이려 했던 것일까?김단은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맹영지의 몸과 마음이 회복되면 그때 자연스럽게 그 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김단이 생각에 잠겨 있던 찰나 평양관저의 겸인이 급히 달려와 말했다.“아가씨, 맹가 사람들이 도착했습니다.”이런 큰일이 발생했으니 맹씨 집안에서 그녀를 보러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김단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겸인에게 말했다.“알겠소. 이리로 모셔오시오.”잠시 후, 맹씨 부인이 정원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김단에게 예를 갖추어 인사한 뒤 슬픈 눈으로 자신의 딸을 바라보았다. “김 의원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의원님이 아니었다면 제 딸이 그 짐승 같은 자에게 학대받으며 살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맹씨 부인의 눈동자가 붉어졌다.김단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맞이하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과찬이십니다, 맹씨 부인. 민태훈, 그 자의 말에 따르면 맹영지 아가씨의 병은 이미 4~5년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완전히 회
소한은 코웃음을 치며 말없이 등을 돌렸다.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소하의 조용한 목소리가 방안의 침묵을 깨뜨렸다.“이번에는 정말 잘했어.”영의정 저택에서 벌어진 일은 소한이 형벌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소하의 귀에 들어갔다. 만약 소한이 과감하게 영의정 저택에 침입하지 않았다면 김단은 쉽게 그곳을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비록 민씨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김단을 해치지 못한다고 해도 그녀가 겪었을 모욕과 고통은 상상하기 어려웠다.소하의 갑작스러운 칭찬에 소한은 많이 당황한 듯했다.“제가 충동적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때로는 그 충동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지.”소한은 아무 말 없이 그저 김단의 얼굴을 떠올렸다. 처음에 그녀도 자신을 발견하고 놀란 듯했지만 곧 냉랭한 표정으로 일관하였다. 김단은 마차에 오를 때까지 자신에게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다.과거의 그녀였다면 그가 나타나자마자 바로 그의 품에 안기며 그를 향해 미소 지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그녀는 너무나도 차갑게 변해버렸다. 자신을 외면하는 그녀가 소한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그는 자신이 무엇을 잃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큰 실수를 저질렀는지를 다시금 깨달았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꽉 쥐며 굳게 결심했다.그는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 위해 이미 어떤 대가든 치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반 시진 후, 김단은 방 안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그러자 숙희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불렀다.“아가씨?”김단은 정신을 차리고 숙희를 바라보았다.“무슨 일이냐?”“두 도련님께서는 모두 돌아가셨습니다.”김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방금 전 발생한 일을 되새겨 보았다. 그녀는 소한이 오랫동안 계획해 온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자신을 선택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에도 그는 소가를 위해, 전하를 위해 심지어 임원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그러나 그녀만은 제외였다.그녀는 소한이 자신의 어머니를 걱정하는 척하며 평양관저로 따라온 것도 단지 자신의 동정심을 얻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상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