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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 쓴맛

last update Fecha de publicación: 2026-10-09 19:09:52

미래의 몸이 순간 미세하게 떨리자, 진희는 기다렸다는 듯 다시 평온한 의사의 가면을 쓰고 레이저 팁을 미래의 피부 위로 부드럽게 움직였다.

그는 어깨의 붉은 기를 세심하게 살피며 치료에 집중했다. 화려한 옷을 입고 왔지만, 그 아래 감춰진 상처를 어루만지는 그의 손길은 더없이 경건하고도 뜨거웠다. 다정한 연인과 차가운 의사, 그 아슬아슬한 경계를 넘나드는 진희의 태도에 미래는 숨조차 크게 쉴 수 없었다.

치료가 끝난 후, 진희는 미래의 얼굴을 조심스럽고도 확신에 찬 두 손으로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마치 세상에 미래와 자신 단둘뿐이라는 듯, 강렬하고도 깊은 눈빛이 그녀의 시선을 붙들었다.

"치료받은 부위는 오늘 하루 물이 닿지 않게 해주세요. 재생 크림은 제가 처방해 드린 걸로, 아침저녁으로 얇게 펴 바르시고요."

그는 말을 잇다 말고, 느릿한 손길로 미래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귀 뒤로 다정하게 쓸어 넘겨주었다. 그의 손끝이 미래의 귓가를 지나 쇄골 부근을 길게 스치고 지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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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치동에 미래가 없다   174. 일촉즉발

    "아, 왜 계속 통화 중이야……!"결국 전화를 포기한 유진맘은 답답한 속을 가라앉히기 위해 아파트 상가 지하에 있는 마트로 차를 돌렸다. 마트 옆 작은 커피숍 테라스 쪽을 지나치던 그녀의 눈에 익숙한 얼굴들이 들어왔다. 민서맘을 비롯해 지호·지원 엄마인 최수진, 그리고 반 여자아이 엄마들이 모여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마침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는 분위기였다."어머, 유진 어머니~!""안녕하세요!""담에 뵐게요.""안녕히 가세요."서로 가볍게 인사를 나누며 헤어지려던 찰나, 유진맘은 다급함을 이기지 못하고 민서맘의 팔을 덥석 잡았다. 민서맘과 수진은 다음 주에 있을 여자아이들 인라인 스케이트 수업 간식 담당 건으로 이야기를 마저 나누던 참이었다."민서맘! 나 좀 잠깐만 봐봐. 숨 좀 돌리고…… 자기 저번에 진원맘이랑 월드베스트피부과 유진희 원장이랑 뭔가 묘하다고 했었지? 나 그거 오늘 진짜로 봤어!"그 순간, 옆에서 가방을 챙기던 수진의 손이 멈췄다.'……안 돼.'수진의 머릿속에, 며칠 전 아침 주차장에서 본 두 사람의 모습이 섬광처럼 스쳐 지나갔다.민서맘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네? 오늘요? 어디서요?""나 지금 피부과 다녀오는 길인데, 시술실 문이 살짝 열려 있더라고. 처음엔 그냥 진원맘이 누워 있길래 시술받나 보다 했는데, 글쎄……!"유진맘은 흥분해서 말을 잇다가, 곁에 서 있던 수진의 눈치를 슬쩍 살피며 목소리를 낮췄다."유진희 원장이 진원맘 베드 옆에 딱 붙어 앉아가지고 직접 머리를 귀에 꽂아주고 있는데, 눈빛이 아주 그냥…… 꿀이 떨어지다 못해 달달해 죽으려고 하더라고! 자기가 저번에 얘기했던 그 묘한 분위기, 그거 진짜 맞는 거지?!"수진은 자기가 들킨 것도 아닌데 심장이 쿵 하고 떨어져 내려, 하마터면 숨이 멎을 뻔했다. 등골이 오싹하게 서늘해지며 머릿속에서 비상벨이 울렸다. 여기서 유진맘의 의심이 확신으로 굳어지면, 대치동 한복판에 폭탄이 터지는 건 시간문제였다.수진은 바짝 마르는 입술을 혀로 축이며,

  • 대치동에 미래가 없다   173. 통화중

    처음엔 그저 레이저실 베드에 누운 환자겠거니 했다. 하지만 누워 있는 사람의 단아한 옆모습이 낯익은 대치동 학부모, '진원 엄마'라는 것을 알아보는 순간, 유진맘의 발걸음이 멈췄다.더 놀라운 것은 그다음이었다.유진희 원장이 환자를 대하는 평소의 깔끔하고 매너 있는 태도를 벗어나, 마치 연인을 바라보듯 한없이 다정하고 애정 어린 표정으로 미래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꽂아주고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공기는 의사와 환자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끈적하고 깊었다.유진맘은 너무 놀라 숨이 턱 막혔다.'내가 지금 뭘 본 거지?'당황한 그녀가 눈을 비비며 다시 레이저실 안을 들여다보았을 때는, 이미 진희가 차분하게 기계를 만지며 시술을 준비하는 평범한 원장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머릿속이 하얗게 뒤엉켰다.'잠깐만…….'유진맘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얼마 전 파리크라상에서 민서맘이 넌지시 던졌던 의미심장한 말들이 뇌리를 스쳤다.'진원 엄마랑 유진희 원장, 둘이 같이 있는 걸 두 번이나 봤는데…… 볼 때마다 뭔가 묘해요.'설마설마하며 웃어넘겼던 그 말이 화살처럼 박혔다.'생각해 보자…… 나도 유진희 원장한테 레이저 시술 몇 번이나 받았잖아. 원장이 워낙 젠틀하고 친절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저렇게 옆에 바짝 앉아서 머리를 넘겨주고, 눈에서 꿀이 떨어지는 표정을 지은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어?'그날 자신이 했던 말도 떠올랐다. 비주얼끼리 같이 있으면, 뭔 짓을 안 해도 그냥 그렇게 보이는 거라고.'근데 이건…… 가만히 있는 게 아니잖아.'아니었다. 그것은 환자를 대하는 의사의 친절이 아니라, 명백히 한 여자를 향한 남자의 눈빛이었다.심장이 쿵쾅거리고 손에 식은땀이 맺혔다. 대치동 학부모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가십을 목격했다는 충격에 휩싸여, 유진맘은 수납을 마치자마자 허겁지겁 병원 밖으로 걸어 나왔다.자동문이 열리고 바깥 공기가 밀려들자마자, 그녀는 참지 못하고 가방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민서맘의 번호를 눌렀다.……

  • 대치동에 미래가 없다   172. 살짝 열린 문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한 미래는 차를 몰아 필라테스 스튜디오로 향했다. 화상 때문에 당분간 물에 들어갈 수 없으니, 수영 대신이었다. 운동을 쉬지 말라던 성웅의 목소리가 여전히 귓가에 맴돌았다.오랜만의 방문이었지만, 강사는 미래를 보자마자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미래 님은 정말 공백기가 무색하시네요. 오랜만에 오셨는데도 코어 자세나 근육 밸런스가 어쩜 이렇게 그대로이신지 몰라요. 워낙 평소에 관리를 잘해오셔서 그런가 봐요."강사의 말대로 미래는 늘 자기 관리에 철저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늘따라 그 칭찬이 허공에 겉도는 메아리처럼 느껴졌다. 매트에 오른 미래는 흐트러짐 없는 동작을 유지하려 애썼지만, 어젯밤의 충격과 가시지 않은 서늘함이 근육 마디마디를 무겁게 짓눌렀다.운동이 끝나고 샤워를 마친 미래는 스튜디오 근처의 단골 샌드위치 가게로 향했다. 창가 자리에 앉아 커피와 샌드위치를 주문해 놓고 멍하게 허공을 바라보던 그때, 휴대전화 화면이 반짝이며 진동했다."엄마! 나 오늘도 아빠 덕분에 시험 진짜 잘 봤어!"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서윤의 목소리는 한껏 들떠 있었다."이번에 통합사회도 헬이었거든? 애들 다 어렵다고 난리인데, 1등급 컷이 90점도 안 될 것 같대. 근데 엄마, 나 진짜 잘 봤어. 어제 아빠가 짚어준 데서 거의 다 나왔어! 아빠 진짜 최고야, 진짜 천재 아니야?"서윤이 신나서 아빠를 치켜세울 때마다, 미래의 가슴속은 쿵 하고 내려앉았다.'아빠 최고'라는 그 순진무구한 찬사가, 지금 이 순간 미래의 목을 조르는 날카로운 올가미처럼 다가왔다. 성웅의 치밀한 교육열과 다정한 아빠로서의 면모가 빛날수록, 그 완벽한 가정의 그늘 아래서 은밀하게 이중생활을 하는 자신의 위태로움이 더욱 선명하게 대비되었다. 미래는 서윤의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한 채, 애써 입술을 깨물며 마른기침을 삼켜야 했다.샌드위치 가게를 나온 미래는 차를 몰고 곧장 피부과로 향했다. 운전하는 내내 머릿속은 온통 진희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다

  • 대치동에 미래가 없다   171. 손대지 마

    그는 더 이상 파고들지 않았다. 그저 지친 듯 미래의 어깨에 얼굴을 묻으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오늘은 진짜 몸이 부서질 것 같네…… 그냥 이렇게 자자."성웅은 말 그대로 너무나 피곤하다는 듯 미래를 품에 꼭 안은 채 눈을 감았다. 따뜻하고 거대한 체온이 미래를 옥죄어 왔다. 진희와의 뜨겁고 아슬아슬했던 시간의 기억과, 성웅의 품 안에서 숨이 막혀오는 현실의 무게가 교차하며, 미래의 눈가로 차가운 눈물이 소리 없이 흘러내렸다.전날 밤, 형과 나눈 무거운 대화와 알코올의 독한 취기가 겨우 가신 아침. 진희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며 눈을 떴다.하지만 눈을 뜨자마자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형의 경고도, 현실의 죄책감도 아니었다. 머릿속은 온통 오직 한 사람, 미래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다. 형이 자신 때문에 얼마나 가슴 아파하는지, 그 눈빛에 담긴 애틋한 만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형의 그 아픈 마음을 헤아려 당장이라도 이 위태로운 인연을 끊어내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마음이 통제되는 것은 별개의 일이었다. 끊어내려 할수록 심장은 오히려 더 거세게 아려왔다.아침부터 미래에게 안부 문자 한 통, 목소리 한 번 들을 수 있다면 이 미칠 듯한 그리움이 조금은 숨 쉴 틈을 찾을 텐데. 대치동이라는 거대한 울타리 속에서 완벽한 아내이자 엄마로 살아가야 하는 미래에게, 먼저 연락을 취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닿을 수 없기에, 참아야만 하기에, 보고 싶은 감정은 몇 배, 아니 몇십 배로 불어나 진희의 숨통을 사정없이 조여왔다.아침 햇살이 창가를 두드릴 무렵, 미래는 일찍 일어나 서윤의 등교를 조용히 도왔다. 시험 기간이라 아침을 거르기 쉬운 아이를 위해, 정례는 말없이 서윤이 가장 좋아하는 따뜻한 쇠고기뭇국을 끓여 식탁에 올렸다. 그 묵묵한 배려 속에서 정례가 건네는 무언의 응원을 느낀 미래는 가슴 한켠이 뭉클해지는 것을 느꼈다.새벽 4시까지 서윤의 공부를 봐주던 성웅은 오전 8시가 되자 눈을 떴

  • 대치동에 미래가 없다   170. 목줄

    아무도 듣지 못할 그 이름을 허공에 흘려보내며, 진희는 쓰린 속을 움켜쥔 채 소파에 무력하게 주저앉았다. 독한 술기운이 온몸을 잠식하고 정신이 아득해져 가는 그 찰나의 순간까지도,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은 오직 하나뿐이었다.끝이 정해져 있는 비극이라 할지라도, 내일이면 다시 숨 막히는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 할지라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녀를 너무나도 품고 싶다는 애절한 그리움. 진희는 밀려오는 고통과 슬픔을 고스란히 삼킨 채, 위스키의 서늘한 취기 속에 위태로운 잠 속으로 깊이 가라앉아 갔다.깊은 새벽 4시. 고요한 침실 안으로 성웅의 묵직한 발소리가 스며들었다. 침대에서 선잠을 자던 미래는 인기척에 눈을 파르르 뜨며 깨어났다. 이틀 전 청평에서 진희와 나눴던 뜨겁고도 아슬아슬했던 온기가 아직 피부에 남아 있는 것만 같은 지금, 남편인 성웅의 존재는 견딜 수 없을 만큼 거북하고 무거운 압박으로 다가왔다.미래는 급히 이불을 추스르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지금까지 하셨어요? 지금 몇 시예요……? 이제 제가 서윤이 옆에 있어줄게요."성웅은 피곤에 붉어진 눈을 깜빡이며 미래의 팔목을 가볍게 잡아 다시 침대에 눕혔다."아냐, 서윤이 공부 다 끝내고 방금 겨우 잠들었어. 잠깐 눈 좀 붙이고 6시 30분에 일어난다고 알람까지 세 개나 맞춰놨더라고. 안 가도 돼."도망치듯 벗어나려는 미래를, 성웅은 그대로 품에 가두듯 침대에 도로 눕혔다. 미래는 온몸이 굳어가는 것을 느끼며 간신히 목소리를 쥐어짰다."성웅 씨…… 밤새셨는데, 쉬세요."성웅은 대답 대신 몸을 일으켜 미래의 위로 다가왔다. 피로에 찌든 얼굴이었지만, 그의 눈빛은 묘한 소유욕과 애정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는 헝클어진 미래의 머리카락을 다정하게 쓸어넘기더니, 이내 손가락으로 미래의 턱 끝을 부드럽게 들어 올렸다."난 너 안고 싶은데."나직하게 속삭인 성웅이 그대로 고개를 숙여 미래의 입술을 향해 다가왔다. 입술이 닿기 직전, 미래는 참을 수 없는 배덕감과 거부감에 사로잡혀 급히 고개

  • 대치동에 미래가 없다   169. 65층의 불빛

    진수는 한참 동안 말을 고르듯 바닥을 응시하다가,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진희가 숨을 멈추자, 진수는 차마 동생의 민낯을 직시하지 못하겠다는 듯 시선을 돌린 채 말을 이었다."네 차가 주차되어 있어서 네가 온 줄 알고 안으로 들어갔는데…… 지하에서 문이 열려 있어서, 영화 소리가 크게 들리더라. 그래서 내려갔는데…… 네가 누구와 함께 있는지 보게 됐어."진수는 형으로서의 체면과 매너를 지키며 구체적인 장면까지는 입에 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짧은 몇 마디만으로도, 진희가 그곳에서 무엇을 했는지, 형이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는지 설명하기엔 충분했다.진희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온몸의 피가 역류하는 듯한 충격과 함께 눈앞이 아득해졌다. 순간적으로 모든 것을 숨기고 부인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하게 얽혔다. 하지만 진희는 이내 파르르 떨리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차갑게 식어가는 맥주캔을 두 손으로 꽉 움켜쥐었다.거짓말로 치졸하게 빠져나가기엔, 진수는 진희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고 신뢰하는 형이었다. 게다가 정신과 전문의로서 자신의 모든 내면을 꿰뚫어 보는 형 앞에서 얄팍한 핑계는 통하지도 않을뿐더러, 스스로의 치부를 감추겠다고 형과의 신뢰를 저버리는 것은 진희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진희는 붉어진 눈시울을 숨기지 않은 채,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천천히 진수를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에는 도망치려는 기색 대신, 모든 것을 마주하겠다는 참담하지만 단단한 결연함이 서려 있었다."형……."진희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렸지만, 그 속에는 거짓 없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미안해. 형한테 그런 모습 보여서…… 정말 미안해."거짓말을 덧붙이는 비겁한 선택 대신, 진희는 모든 사실을 정면으로 인정하고 형 앞에 자신의 진심을 털어놓기로 마음먹었다. 그런 동생을 바라보는 진수의 깊은 눈빛은, 안타까움과 복잡한 탄식으로 짙게 물들어갔다.진수는 동생을 향한 무거운 눈빛을 거두지 않은 채, 천천히 맥주캔을 내려놓으며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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