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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둠 속에서 가장 안전한 곳

Penulis: 세련을담다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09-07 19:56:33

코트가 바닥으로 미끄러졌다.

남자의 한 손은 미래의 허리를 단단히 감싸고, 다른 손은 가녀린 팔을 붙들었다. 중심을 잃은 그녀는 그대로 그의 허벅지와 가슴에 기대고 말았다.

“천천히 숨 쉬세요. 시스템이 잠시 오작동한 겁니다.”

“저…… 흑…….”

실크 블라우스는 얇았다.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가느다란 허리와 그 아래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곡선이 천 너머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유진희의 숨이 짧게 멎었다.

의사로서 수없이 사람의 몸을 접해온 남자였다. 그런데 제 품으로 무너진 이 여자의 몸은 이상할 만큼 낯설고 강렬했다. 작고 가녀린 줄만 알았던 몸에 성숙하고 아름다운 굴곡이 숨어 있었다.

떨어져야 했다.

그러나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미래도 본능적으로 남자의 팔을 움켜쥐었다. 손끝에 단단한 근육이 잡혔다. 힘이 풀린 다리는 그의 허벅지에 닿았고, 얼굴 가까이에서는 넓은 가슴이 호흡을 따라 오르내렸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남자였다.

그런데 서로의 몸은 이미 상대를 기억하기 시작했다.

어둠은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래서 더 위험했다. 눈 대신 손끝과 피부가 상대를 알아가고 있었으니까.

“제가 꽉 잡고 있으니 안심하세요.”

남자의 팔에 힘이 조금 더 들어갔다.

사방이 막힌 공간, 멈춰버린 기계, 낯선 남자의 품. 분명 무서워야 할 상황이었다. 그런데 미래는 자신이 어둠 때문에 떠는 것인지, 이 남자와 너무 가까이 붙어 있어서 떠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의 팔 안이 이상하리만큼 안전했다.

“혹시 폐쇄공포증이 있으신가요?”

“잘…… 모르겠어요.”

“숨이 엉켜서 그래요. 제 호흡을 따라 하세요. 천천히 들이마시고.”

미래는 낮은 목소리에 이끌리듯 숨을 들이마셨다. 깨끗한 섬유 향과 묵직하고 서늘한 남자의 체취가 가슴 깊이 들어왔다.

“이제 내쉬고.”

그가 시키는 대로 길게 숨을 뱉었다.

“잘하고 계십니다.”

그 짧은 칭찬이 가슴 한가운데 박혔다.

십칠 년의 결혼생활 동안 남편에게 단 한 번도 듣지 못한 말이었다.

호흡이 진정되자 다른 감각들이 깨어났다. 와이셔츠 너머로 전해지는 심장 박동, 귓가를 스치는 숨결, 자신을 보호하듯 감싼 단단한 팔.

이 정중하고 따뜻한 남자는 대체 누구일까.

“안에 사람 있습니까? 조금만 기다리세요!”

밖에서 외침이 들렸다. 문틈으로 가느다란 빛이 스며들었다.

미래는 정신을 차린 사람처럼 재빨리 남자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바닥의 코트를 집어 들고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바로잡았다.

문이 강제로 열리자 직원과 구조대원들이 몰려들었다.

진희는 여자의 얼굴을 확인하려 했지만 사람들에게 가로막혔다. 그가 본 것은 멀어지는 스커트 자락과 코트 깃을 움켜쥔 하얀 손뿐이었다.

그리고 복도에 남은 은은한 향기.

그것이 전부였다.

진희는 제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여자의 허리와 등을 감쌌던 온기가 손금 사이에 화인처럼 남아 있었다.

주먹을 쥐었다가 다시 펴보았다.

지워지지 않았다.

회복실에서 대표원장이 연신 허리를 숙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안미래 님. 하필 오픈 날 이런 사고가 생겨서…….”

“아니에요. 제가 겁이 많아 유난을 떨었는걸요.”

미래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미소를 지었다. 조금 전 낯선 남자의 품에서 숨을 헐떡이던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얼굴이었다.

“오늘은 먼저 가볼게요.”

행사장으로 돌아온 진희에게 사람들의 목소리는 물속처럼 멀게 들렸다. 예약 문의도, 얼굴을 봐달라는 농담도 비즈니스 미소로 받아냈지만 신경은 온통 손바닥에 남은 감각으로 향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른다.

그런데 손이 그 여자를 기억했다.

같은 시각, 달리는 차 안에서 미래도 손바닥을 펼쳐보았다.

‘제가 꽉 잡고 있으니 안심하세요.’

그녀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남편이 아닌 남자의 목소리였다.

그런데 그 말을 다시 듣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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