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미래는 안방 거실 홈바에서 글렌피딕 병을 꺼냈다.
성웅의 잔에는 얼음 없이 원액을 따르고, 자신의 잔에는 동그란 얼음을 두 개 넣었다. 호박빛 술이 투명한 얼음을 타고 흘러내렸다.
침실에서 성웅은 상의를 벗은 채 침대 헤드에 기대 있었다. 쉰하나라는 나이가 무색한 몸이었다. 철저한 자기 관리로 다져진 넓은 어깨와 단단한 근육.
미래는 여전히 남편의 육체에 끌리는 자신이 서글펐다. 저토록 훌륭한 몸을 가진 남자가 왜 그 안에 있는 자신은 한 사람으로 바라봐주지 않는 걸까.
성웅이 미래의 잔을 보고 물었다.
“마시게?”
“오늘은 저도 푹 자고 싶어서요.”
미래가 잔을 기울이자 성웅은 아직 절반이나 남은 술을 빼앗아 협탁에 놓았다.
십칠 년을 함께 산 미래는 그 신호를 알았다.
내가 지금 원하니까, 이제 네가 맞추라는 뜻.
성웅의 손이 로브 안으로 들어왔다. 매듭을 다정히 풀어주는 과정은 없었다. 그는 드러난 아내의 몸을 익숙하게 움켜쥐었다.
어디를 만져야 숨이 달라지고, 어떤 자극에 힘이 풀리는지 너무 잘 아는 손이었다.
낮에는 마음을 외면하면서 밤에는 몸의 가장 은밀한 반응까지 기억하는 남자.미래의 호흡이 흐트러졌다.
정서적 교류는 사라진 결혼이었다. 그런데 이 시간이 시작되면 답답함이 잠시 녹았다.
성웅이 자신의 욕구를 아내에게 풀 듯, 미래도 남편의 능숙한 손을 빌려 제 욕망을 풀었다.
깊은 대화도, 마음을 묻는 말도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침대 위에서만 두 사람은 가장 솔직했다.
미래는 익숙하게 남편을 만족시켰고, 성웅은 자신의 욕구가 채워질 때까지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그러면 미래도 어느새 절정에 가까워졌다.
처음 사랑했을 때는 달랐다. 작은 표정 하나를 놓칠까 서로를 바라봤다.
지금 미래는 남편의 얼굴 대신 눈을 감고 제 몸 안에서 일어나는 감각에만 집중했다. 사랑을 확인하지도, 다정함을 기대하지도 않았다.
절정이 가까워지자 성웅은 미래를 자신의 위로 끌어올렸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았다. 십수 년 동안 수도 없이 맞춰온 몸이었다.
미래가 움직일 때마다 성웅의 호흡이 무너졌다.
평소에는 절대 흐트러지지 않는 남자. 낮에는 아무리 애써도 얻지 못하는 그의 반응을,
침대에서만큼은 미래가 마음대로 끌어낼 수 있었다.
사랑도 다정함도 아니었다.
서로의 몸으로 서로의 욕망을 가장 정확히 자극하는 것.
그것이 이 부부에게 남은 가장 솔직한 관계였다.
성웅은 미래를 다시 끌어안고 더 깊고 강하게 움직였다. 두 사람의 호흡과 몸이 내는 소리가 침실을 채웠다. 사랑한다는 말도, 예쁘다는 말도,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도 없었다.
마침내 두 사람의 몸이 거의 동시에 크게 떨렸다.
한동안 거친 숨소리만 남았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성웅은 숨이 가라앉기도 전에 몸을 떼었다. 아내를 안아주지도, 잘 자라는 말을 건네지도 않았다. 침대에서 일어나 곧장 욕실로 향했다.
문이 닫히고 샤워기 물소리가 들렸다.
미래는 흐트러진 침대 위에 혼자 남았다.
조금 전까지 가장 깊은 곳까지 맞닿았던 남자가 문 하나 너머에 있었다. 그런데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남자보다 더 멀게 느껴졌다.
욕망이 끝나면 성웅은 언제나 미래에게서 멀어졌다.
협탁 위 위스키 잔의 얼음은 모두 녹아 있었다.
미래는 흐릿해진 술을 한 모금 마셨다. 싱거웠다. 처음의 강한 향도, 목을 태우던 뜨거움도 사라졌다.
처음과 너무 달라져 버린 것.
자신의 결혼과 닮아 있었다.
욕실에서 나온 성웅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리에 누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숨이 깊고 규칙적으로 변했다.
미래는 천장을 바라보았다.
저 완벽한 육체 안의 마음은 언제부터 이렇게 멀어졌을까. 언제부터 서로의 눈을 보지 않게 됐을까.
남편은 오늘도 자신의 몸을 원했다. 어디를 만져야 자신이 무너지는지도 정확히 알았다.
그런데 엘리베이터가 멈춰 무서웠다는 말에는 고작 ‘이제 괜찮지?’라고 답했다.
그때, 어둠 속 남자의 목소리가 귓가에 되살아났다.
‘제가 꽉 잡고 있으니 안심하세요.’
‘잘하고 계십니다.’
미래는 눈을 감았다.
한 남자는 자신의 몸을 전부 알면서 마음을 보지 않았다.
다른 남자는 이름조차 모르면서 흔들리는 숨을 알아차렸다.
욕망과 애정.
그 둘은 몸이 닿는 방식이 아니라, 한 사람의 두려움을 알아보는 방식에서 갈라지는지도 몰랐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미래는 자신이 오래전부터 외로웠다는 것을 더는 부정할 수 없었다.
밤 열한 시가 넘은 시각.미래는 침대 한쪽 끝에 모로 누워 있었다. 욕실에서는 성웅이 샤워하는 물소리가 쏴아 하고 끊임없이 흘러나왔다.이불 속에서 미래는 휴대폰 화면을 몇 번이나 켰다 껐다. 메시지 창에는 진희의 이름이 떠 있었다.[진희 씨, 내일 오전 11시에 우리 엄마가]거기까지 쓰고, 미래의 손가락이 멈췄다. 뭐라고 해야 할까. 우리 엄마가 당신을 만나러 간다고. 당신 앞에서 무슨 말을 할지 나도 모르겠다고.그때, 욕실의 물소리가 뚝 그쳤다.미래는 황급히 쓰던 글자를 하나하나 지웠다. 그리고 휴대폰을 베개 밑으로 밀어 넣은 채 눈을 감았다.딸깍, 욕실 문이 열리고 축축한 수증기와 함께 성웅이 걸어 나왔다.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대충 털어 낸 성웅은, 등을 돌린 채 누워 있는 미래를 내려다보며 짧게 말했다."위스키 가져와."언제나처럼 명령조였다. 부탁도, 질문도 아닌.미래는 잠시 그대로 누워 있다가, 아무 말 없이 몸을 일으켰다. 안방 거실 홈바에서 위스키를
"아…… 아니에요. 아니라고요."미래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왜 내 말을 안 믿어요. 수아랑 통화했어요. 수아가…… 서윤이 미국 들어갈 때 같이 햄튼 집에 가자고 전화한 거예요."성웅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천천히, 아주 천천히 미래에게로 걸어왔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가까워질수록 성웅의 눈빛이 더 서늘하게 가라앉았다.그리고 두 손으로 미래의 양어깨를 꽉 움켜쥐었다."햄튼?"성웅이 미래의 두 눈을 쏘아보았다.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꿰뚫을 듯한 눈빛이었다."햄튼 놀러 가자고 했는데, 눈물 짜내면서 얘기해?""…….""말해 봐. 내가 너한테 못 해 준 게 뭔데."어깨를 쥔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뼈마디가 으스러질 것만 같은 통증에 미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성웅 씨…&hellip
끊긴 휴대폰을 귀에서 떼지도 못한 채, 미래는 한참을 그대로 앉아 있었다.내일 오전 열한 시. 유진희 원장님한테.엄마의 마지막 목소리가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엄마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었다. 진료실 의자에 앉아 진희를 빤히 쳐다볼 엄마의 얼굴이 눈앞에 그려지자, 손끝부터 싸늘하게 식어 갔다.그때, 손 안의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미래의 어깨가 움찔 튀어 올랐다. 또 엄마일까. 떨리는 눈으로 화면을 내려다본 미래는, 그제야 막혔던 숨을 내쉬었다.화면에 찍힌 이름은 제시카(수아)였다."미래야…… 너 진도가 어떻게 된 거야? 말 좀 해 봐, 궁금해 미치겠는데……. 내가 시차가 완전 꼬여서 정신 못 차리다가 이제야 좀 잡혔어. 중간에 파리 다녀왔었거든. 그래서, 지금은 대체 어떤 상태인 거야?"수아의 밝은 목소리를 듣는 순간, 미래의 목울대가 뜨겁게 막혀 왔다.미래는 안방 문 쪽을 흘끗 돌아보았다. 문 너머 어딘가에 정례 이모가 있었다. 미래는 휴대폰을 든 채 안방 욕실로 걸어 들어가 문을 닫았다. 그리고 샤워 부스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참아 왔던 눈물이 툭툭 터져 나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주방에서 정례 이모가 고개를 내밀었다."아이고, 사모님 오셨어요.""네, 이모. 다녀왔어요."평소 같으면 "점심은 드셨어요?" 하며 따라 나왔을 정례 이모가, 오늘따라 행주를 쥔 채 미래의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미래는 그 어색함을 미처 눈치채지 못한 채 안방으로 들어가 조용히 문을 닫았다.침대 끝에 걸터앉은 미래는 한참 동안 휴대폰 화면만 내려다보았다. 부재중 전화 세 통. 그리고 짧은 메시지 하나.[엄마: 전화 받아.]미래는 긴 숨을 한 번 들이쉬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신호음이 채 두 번도 가기 전에 전화가 연결되었다."야. 너 그놈, 월드베스트피부과 유진희 원장 맞지?"인사도 없었다. 다짜고짜 날아든 그 이름에, 미래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엄마가 그걸, 어떻게……."
미래의 몸이 굳은 것은, 아주 짧은 한순간이었다.화면 위에서 깜빡이는 '엄마'라는 두 글자가, 서늘한 손처럼 미래의 목덜미를 움켜쥐는 것만 같았다. 재산 증여 소송, 절대 헤어질 생각도 하지 말라던 차가운 목소리, 숨 막히는 그 집의 공기까지. 잊고 있던 모든 것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진희가 숨을 고르며 미래를 올려다보았다. 받으라고도, 받지 말라고도 하지 않았다. 그저 미래의 허리를 감싼 손에 가만히 힘을 줄 뿐이었다.지이잉—. 지이잉—.미래가 진희의 두 뺨을 감싸 쥐고 내려다보았다. 젖은 눈동자 속에 처음 보는 단단한 빛이 서려 있었다.미래가 진희의 입술을 삼키듯 입을 맞추었다. 엎어진 휴대폰이 몇 번 더 웅웅 울리다 이내 잠잠해졌다. 그 소리마저 두 사람의 거친 숨결에 묻혀 사라졌다.진희는 미래를 끌어안은 채 몸을 돌려 다시 침대 위로 눕혔다. 그리고 놓치지 않겠다는 듯, 더 깊이 미래 안으로 파고들었다."아…… 진희 씨…… 아……!"더 이상 아무것도 끼어들 틈이 없었다. 엄마도, 남편도, 세상의 시선도. 미래는 진희의 목을 끌어안은 채 그 리듬에 온몸을 맡겼고, 진희는 미래의 이름을 부르며 점점 더 깊고 뜨겁게 미래를 채워 나갔다.마침내 정점의 순간, 미래의 등이 활처럼 휘어 올랐다."하아…… 아아……!"억눌렸던 모든 것이 터져 나오는 듯한 신음이 방 안을 가득 메웠다. 진희 역시 미래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 낮고 깊은 숨을 토해 냈다. 두 사람의 몸이 동시에 떨리며, 하나로 녹아내렸다.격렬했던 숨결이 천천히 잦아들었다.진희는 땀에 젖은 미래를 품에 깊숙이 끌어안은 채, 오래도록 그 등을 토닥였다. 아까 미래가 잠들기 전 하지 못했던 말이, 이제야 목울대를 넘어 올라왔다."미래 씨가 내 시간을 빼앗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진희의 손끝이 미래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오히려 그동안 차갑게 얼어붙어 있던 내 삶에, 미래 씨가 들어와서…… 비로소 내가 살아 있다는 걸 느끼게 해 줬어요. 부모님 돌아가시고, 가족 말고
진희의 손끝이 풀어진 블라우스 자락을 어깨 너머로 천천히 밀어냈다. 실크가 미끄러지듯 흘러내리며, 하얀 어깨선과 매끄러운 팔이 오후의 햇살 아래 드러났다.진희는 서두르지 않았다. 드러난 어깨에 한 번, 쇄골에 한 번, 입술을 꾹꾹 눌러 새기듯 입을 맞추고 나서야, 미래의 등 뒤로 손을 돌려 레이스 속옷의 후크를 풀었다.가느다란 끈이 어깨를 타고 스르르 흘러내렸다.그 순간, 진희는 숨 쉬는 것도 잊은 채 미래를 바라보았다. 햇살을 머금은 뽀얀 살결 위로, 둥글고 탐스러운 가슴이 수줍게 모습을 드러냈다. 진희를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그 끝은 이미 꽃봉오리처럼 발갛게 피어올라 있었다."……미래 씨, 진짜 예뻐요."낮게 가라앉은 진희의 목소리에, 미래의 얼굴이 발그레하게 물들었다.진희는 미래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어느 때보다도 깊이, 어느 때보다도 다정하게.그건 단순한 애무가 아니었다. 15년 동안 홀로 얼어붙어 있던 그 가슴에 온기를 불어넣듯, 상처 입은 마음 위에 향기를 한 겹 한 겹 덧입히듯. 진희의 손바닥이 부드러운 곡선을 따라 감싸 쥐었다가 놓아주고, 그 위로 따스한 입술이 내려앉았다. 혀끝이 꽃봉오리를 천천히 맴돌다 머금을 때마다, 미래의 몸이 저도 모르게 활처럼 휘었다.평소보다 더 느리게, 더 부드럽게, 더 소중하게.마치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을 다루는 사람처럼."아…… 아……."미래의 입술 사이로 녹아내리는 듯한 신음이 흘러나왔다."진희 씨…… 너무 좋아요……."그 목소리에 진희가 애무를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눈을 반쯤 감은 채 발갛게 달아오른 미래의 얼굴. 진희의 입가에 사랑스러워 어쩔 줄 모르겠다는 미소가 번졌다.진희는 몸을 일으켜 미래의 입술에 촉, 입을 맞추었다.그러자 미래가 진희의 뒷머리를 감싸 쥐더니, 살며시 자신의 가슴께로 다시 끌어내렸다. 멈추지 말라는 듯, 더 해 달라는 듯. 그리고 부끄러움에 젖은 목소리로 작게 속삭였다."진희 씨…… 깨물어 주세요."진희의 눈썹이 장난스럽게 올라갔다."우리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