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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위스키 

last update Petsa ng paglalathala: 2026-09-07 15:31:23

미래는 완전히 식어버린 쓴 커피를 억지로 한 모금 삼켰다. 지독한 피로감이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남들에게 손가락질받지 않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다. 남편의 명예에 걸맞은 완벽한 아내가 되기 위해 내면을 죽였다. 매일같이 몸매를 뼈 깎듯 관리했고, 아이들의 학원 스케줄을 완벽히 통제했으며, 남편의 화환 심부름까지 군소리 없이 해냈다. 화려한 VVIP 파티에 참석해 우아하게 미소 지었고, 교양 있게 잔을 부딪쳤다.

하지만 이 완벽한 연극 속에서, 인간 '안미래'의 수고로움을 진심으로 알아주는 존재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미래는 자조적인 실소를 터뜨렸다. 아무도 없었다. 정말 단 한 명도.

2월의 바람이 뺨을 매섭게 할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미래는 홀로 차가운 양재천 산책로를 걸었다. 마른 갈대들이 바람에 쓸려 서글픈 소리를 내며 흔들렸고, 강물은 겨울 햇살을 차갑게 튕겨내며 흘렀다. 저 멀리 건너편으로 도곡동 최고급 펜트하우스의 거대한 통창들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저렇게 먼발치에서 바라보면 모든 것이 무결하고 완벽해 보였다. 높고, 넓고, 찬란하게 빛나는 상류층의 집.

멀리서 보면 늘 그랬다. 세상의 모든 완벽해 보이는 것들은, 기어이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가 썩어가는 속을 직접 대면해야만 비로소 비극을 드러내는 법이었다. 오늘도 그녀는 대치동의 완벽한 '좋은 엄마'였다.

그날 밤이었다. 아이들이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자, 거대한 아파트 안에는 다시금 무거운 적막이 내려앉았다.

미래는 막 샤워를 마치고 나온 참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실크 슬립 위에 부드러운 로브를 가볍게 걸친 채, 거울 앞에서 젖은 머리칼을 말리고 있었다. 그때, 화장대 위 휴대폰이 짧은 진동과 함께 화면을 밝혔다. 남편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위스키]

단 한 단어였다. 그 어떤 문장 부호도 다정한 수식어도 없는 오만한 명령어.

미래는 드라이기 전원을 끄고 안방 거실로 향했다. 미니 홈바에서 묵직한 글렌피딕 병을 꺼냈다. 성웅의 크리스탈 잔에는 얼음을 한 톨도 섞지 않은 순수한 위스키 원액만을 채웠다. 차갑고 독한 본연의 상태 그대로. 반면 자신의 잔에는 동그란 얼음을 두 개 채워 넣었다. 호박빛 액체가 투명한 얼음 능선을 타고 스르륵 천천히 흘러내렸다.

두 개의 잔을 받쳐 들고 침실 문을 열었다. 성웅은 침대 헤드에 넓은 등을 기댄 채 무심히 앉아 있었다. 상의를 완전히 탈의한 상태였다. 쉰하나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그의 신체는 세월의 흐름을 잔인하게 배신하고 있었다. 철저하고 지독한 자기 관리가 만들어낸 몸. 군더더기 하나 없이 단단하게 갈라진 근육질의 체형이었다.

미래는 그 압도적인 신체를 시선으로 담아내며 조심스레 잔을 건넸다. 저 단단한 몸을 가진 사내와 자그마치 17년이라는 세월을 부벼 가며 살았다. 그런데 비극적이게도, 여전히 그의 신체를 마주할 때면 본능적으로 시선이 머물고 말았다. 그 당연한 생리적 이끌림이 미래를 가끔 지독하게 서글프게 만들었다. 저토록 완벽하고 훌륭한 육체를 가진 남자가, 어째서 그 육체 안에 깃든 자신을 하나의 온전한 인간으로는 바라봐주지 않는 것일까.

성웅이 잔을 받으려 손을 뻗다가 멈칫했다. 미래의 손에 들린 두 번째 위스키 잔을 발견한 탓이었다.

"마시게?" 그의 눈에 아주 미미한 경이와 놀라움이 스쳤다.

"네, 오늘은 저도 깊게 푹 자고 싶어서요."

성웅은 잠시 로브 사이로 드러난 미래의 하얀 쇄골을 지시하듯 바라보더니, 이내 제 잔을 들어 독한 원액을 단 한 모금에 목 뒤로 털어 넣었다. 미래 역시 잔을 기울였다. 얼음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흘러든 위스키는 차갑고도 부드럽게 타들어 갔다.

성웅은 미래가 입술로 가져가려던 위스키 잔을 손에서 빼앗았다.

아직 절반이나 남아 있었다.

하지만 다시 마실 틈을 줄 생각은 없는 듯 잔을 협탁 위에 내려놓았다.

그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미래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마셨으니 됐다.

이제부터는 내가 원하는 대로 할 테니, 넌 맞춰주면 된다.

십칠 년을 함께 산 미래에게 굳이 말로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성웅만의 신호였다.

성웅의 손이 로브 안으로 거침없이 파고들었다. 다정하게 매듭을 풀어주거나 천천히 벗겨주는 낭만 따위는 애초에 없었다. 흐트러진 로브 사이로 풍만하게 부풀어 오른 미래의 가슴이 드러나자 그의 시선이 즉시 그곳에 꽂혔다.

커다란 손이 한쪽 가슴을 움켜쥐었다.

성웅의 큰 손에도 다 담기지 않을 만큼 풍만한 가슴이었다. 손가락 사이로 부드러운 살이 밀려나왔다. 그는 익숙하게 가슴을 주무르다 단단해진 젖꼭지를 입에 물었다.

마치 배고픈 사자가 먹잇감을 발견한 것처럼 망설임이 없었다.

미래의 입술 사이로 짧은 숨이 새어 나왔다.

성웅은 그 반응을 확인하자마자 손을 아래로 내렸다. 허리를 훑고, 둥글게 솟은 엉덩이를 힘껏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더 아래로 내려갔다.

그의 손은 미래의 몸을 너무 잘 알았다.

어디를 어떻게 건드려야 숨이 달라지고, 어느 순간 힘이 풀리는지. 십칠 년이라는 시간 동안 몸으로 외워버린 여자였다.

미래의 호흡이 빠르게 흐트러졌다.

정서적 교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결혼생활. 낮에는 서로에게 너무나 멀어진 남자와 여자.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시간이 시작되면 그 답답함이 잠시 녹았다.

성웅이 자신의 욕구를 미래에게 풀어내듯, 미래 역시 성웅의 능숙한 손을 빌려 자신의 욕구를 풀었다.

그의 손가락이 깊숙이 파고들어 익숙한 곳을 자극하자 미래는 더 이상 신음을 참지 않았다.

“으…….”

성웅의 호흡도 거칠어졌다.

깊은 대화도 없었다.

서로의 마음을 묻지도 않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간만큼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가장 솔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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