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MELDEN이소정은 순종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한겸 오빠, 어서 들어가 보세요.”그러자 임한겸이 다정하게 말했다.“그럼 너랑 설아는 먼저 집에 가 있어. 기사한테 집까지 데려다주라고 할 테니까 여기 생신 잔치 끝나면 바로 너희한테 달려갈게.”임한겸은 세심하게 뒷일까지 챙겼다.“오빠, 나랑 설아는 집에 가고 싶지 않아요! 비록 어르신께서 설아를 인정하지 않으시지만 설아는 할아버지를 무척 따르고 존경하거든요. 못 들어가게 하신다면 할 수 없지만 저랑 설아는 밖에서라도 자리를 지키며 생신을 축하드리고 싶어요. 다 끝나면 그때 같이
“아버지, 설아가 지금 밖에 와 있어요. 아주 착하고 예의 바른 아이예요. 할아버지가 들어오라고 하면 들어오고 허락하지 않으시면 조용히 밖에 머물면서 할아버지 생신을 축하드리겠다고 했어요. 그런 손녀라면 분명 좋아하실 거예요.”염한나는 코웃음을 쳤다. 그녀가 보기에 사생아 임설아는 어머니 이소정을 그대로 닮은, 사람 마음을 구슬리는 데 능한 여자였다.임정훈은 단칼에 거절했다.“돌려보내.”단호한 한마디였다.임한겸이 놀라 외쳤다.“아버지.”임정훈이 차갑게 말했다.“방금 한나가 한 말 중에 하나는 맞아. 미도 만이 우리 임
곧 다음 날이 밝았다.오늘은 임정훈의 생신이었다.임씨 가문의 본가는 온통 등불과 장식으로 꾸며져 있었고 대문 밖에는 고급 승용차들이 줄지어 세워져 있었다.행사는 매우 성대하게 치러지고 있었다.몇몇 명문가의 아가씨들이 모여 흥분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이번에 임정훈 회장님의 생신 연회 정말 성대하네요.”“그럼요. 이번에 임씨 가문이 크게 연회를 여는 거잖아요. 재계에서 이름 있는 사람들은 다 왔다던데요.”“저기 봐요. 임정훈 회장님 나오셨어요.”오늘의 주인공 임정훈이 모습을 드러냈다.그는 검은색 개량한복을 입고 지팡이
임정훈의 목소리는 매우 기분 좋아 보였다.“미도야 지금 뭐 하고 있어?”임미도가 대답했다.“할아버지, 지금 드레스 피팅 중이에요. 내일 할아버지 생신 연회에 입고 가려고요. 미리 말씀드릴게요. 할아버지, 꼭 복 많이 받으시고 만수무강하세요.”임정훈은 크게 웃었다.“하하하. 미도야, 네 효심은 잘 알겠다. 내일 정우와 함께 꼭 시간 맞춰 와야 한다.”유정우의 이야기가 나오자 임미도는 그가 출장 갔다는 사실을 굳이 먼저 말하지 않았다.“네, 할아버지. 시간 맞춰 갈게요.”“그래, 그래. 그리고 몸도 꼭 잘 챙겨야 한다.
유정우가 떠난 뒤 임미도는 우유를 한 모금 마셨다.그가 가지 않는다면 그녀가 혼자서 상대하면 된다.그녀는 이미 임씨 가문이라는 전장에서 수년간 치열하게 싸워왔기에 이번에도 혼자서도 상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임미도는 자신만만하게 휴대폰을 꺼내 이나연에게 전화를 걸었다.“여보세요. 미도 언니. 좋은 아침이에요.”“좋은 아침이야. 내가 부탁했던 드레스 도착했어?”내일 할아버지의 생신 연회가 있기에 그녀는 이미 이나연에게 부탁해 최고급 맞춤 드레스를 주문해 두었다.이나연이 말했다.“미도 언니, 저도 지금 전화하려고
유정우는 몇 마디 변명하려 했다.“저...”한희주가 말했다.“됐어요. 도련님. 설명은 변명 같아요. 도련님이 그분에게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도련님이 제일 잘 아시잖아요!”유정우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는 확실히 참지 못할 때가 있었다.그때 임미도가 아래층으로 내려왔다.“저 왔어요.”유정우가 고개를 들었다. 오늘 임미도는 노란빛의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길게 웨이브 진 머리를 낮게 틀어 올린 그녀의 귀에는 진주 귀걸이 두 개가 달려 있었다.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아름다운 분위기였다.마침 찬란한 아침 햇살이 통유리창을
“지서현.”하승민의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무겁게 정적을 갈랐다.“소문익 씨하고 연락됐어?”그의 입에서 소문익의 이름이 흘러나오자마자 지서현의 심장이 철렁하고 무너져 내렸다.반사적으로 주먹을 움켜쥔 그녀는 아무 말 없이 하승민을 바라보았다.여전히 검은 수트 차림의 익숙한 모습이었지만 그의 눈빛은 너무나도 냉정하고 낯설었다.하승민은 천천히 입술을 움직였다.“혹시 전화하다가 갑자기 끊기지 않았어?”지서현의 숨이 턱 막혔다.“혹시 소문익 씨한테 무슨 짓... 한 거야?”하승민은 담담했다.“한 번 다시 걸어보지 그래. 이
박경애가 가장 먼저 묘비 앞으로 다가섰다.차가운 돌 위에 손을 얹고 마치 무슨 자애로운 모정이라도 되는 듯 입을 열었다.“건후야, 엄마가 왔다.”그 말에 지서현의 눈썹이 꿈틀하며 올라갔다.‘엄마? 지금, 그 입으로 감히...’곧이어 지해준이 허리를 굽히며 절을 했다.“형, 나 해준이야.”지동욱도 뒤따라 나섰다.“형, 나도 왔어.”묘비 앞에는 어느새 국화꽃들이 줄지어 놓였다.그 광경이 참으로 그럴듯했다.겉으로 보기엔 잘 차려진 위로와 사죄였지만 지서현의 눈에는 위선과 연기가 가득한 한 편의 희극으로밖에 보이지 않았
이윤희 부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박경애를 바라봤다.“어머니, 지금 우리 유나를 버리시겠다는 거예요? 우리는 한 가족이잖아요!”그러자 지예슬이 차갑게 끼어들었다.“가족? 지금 와서 무슨 가족이에요? 지유나가 지서현 행세하면서 얻은 이익은 다 당신들 몫이었잖아요. 우린 얻은 게 뭐가 있었죠? 잘될 때는 혼자 꿀 빠시더니 이제 와서 함께 죽자는 거예요?”지동욱 부부도 급히 말을 거들었다.“예슬이 말이 맞아요. 죄는 지은 사람이 받는 거예요. 우리는 절대 유나 때문에 같이 망할 수 없어요!”이윤희는 혈압이 솟구치는 듯 기가 막
“훗.”소아린이 비웃듯 콧방귀를 뀌었다.“전에 그 난리 났을 땐 한 번도 안 나타나더니 이제 와서 눈치 보면서 찾아와? 진작에 그렇게 하지 그랬어.”그러나 곧 그녀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거두고 진지하게 지서현을 바라보며 물었다.“그래도 결정은 네 몫이야. 하 대표가 정말 널 만나고 싶어 하는데 넌 어떻게 하고 싶어?”지서현은 천천히 손을 배 위로 올렸다.아직 작고 여린 생명이 품 안에 있음을 느끼며 부드럽게 배를 쓰다듬었다.“이미 끝난 일이야. 그 사람과 더는 할 말도 없고 얼굴도 보고 싶지 않아. 그냥 돌려보내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