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은지는 휴대폰을 꺼내 지유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수아가 영화관에서 늦게까지 기다리다가 물에 빠진 생쥐 꼴로 돌아갔다는 말에 지유나는 깔깔 웃었다.“진짜 웃겨 죽겠네. 임씨 가문의 막내면 또 어때요. 얼굴이 예뻐야지. 은지 씨, 너무 잘했어요. 조군익은 이젠 완전히 푹 빠진 것 같은데요.”하은지는 미소를 지었다.“유나 언니,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내일 더 재밌는 일이 있을 거예요.”“누가 엄수아더러 지서현이랑 어울리래요? 우리한테 덤빈 게 잘못이지. 이번 일은 엄수아에게 좋은 교훈이 될 거예요. 은지 씨, 좋은 소식 기다
엄수아는 조군익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 도대체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었다.알고 보니 조군익은 집안의 압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신에게 접근했고 예쁘다고 칭찬하며 약혼까지 했던 것이다. 사실 그의 눈에 자신은 그저 추녀에 불과했다.이것이 그의 진심이었다니.엄수아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수아야, 은지가 다치는 걸 더 이상 볼 수 없어. 죽어 마땅한 건 바로 너 이 못난이야.”조군익은 잔인하게 말을 내뱉고 돌아서서 가버렸다. 엄수아는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눈가에는 눈물이 금세 차올랐고 그녀는 입을 틀어막은 채 여자 기
하승민의 긴 손가락이 허공에 멈췄다.“하 대표님, 어서 출발해요. 수아를 빨리 찾아야 해요.”하승민은 백미러로 지서현을 흘끗 보았다. 지서현은 뒷좌석에 앉아 계속 휴대폰만 보고 있었다. 얼굴은 다소 창백했는데 맑고 깨끗한 얼굴이 더욱 투명해 보였다.지서현의 신경은 온통 엄수아에게 쏠려 있어 하승민을 힐끗 한 번 쳐다본 것이 전부였다.이제 두 사람은 하나는 앞에 하나는 뒤에 앉아 마치 남처럼 멀어진 사이가 되어버렸다.하승민은 시선을 거두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알았어.”...엄수아는 계속 울고 있었다. 너무 슬펐다.
검은 티셔츠와 검은색 긴 바지를 입은 소년이었다. 엄수아는 그가 진세윤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진세윤과 조군익은 세경대의 두 킹카로 불렸다. 조군익은 햇살처럼 밝고 잘생긴 부잣집 도련님이었고 많은 여학생들이 그의 팬이었다. 하지만 진세윤은 차가운 성격에 혼자 다니는 것을 좋아해서 여학생들은 그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밤이 되면 여학생 기숙사에서는 그에 관한 이야기로 떠들썩했다.엄수아는 진세윤을 바라보았다. 진세윤이 흉악범을 홱 잡아당기자 흉악범은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음흉한 표정으로 욕설을 퍼부었다.“죽고 싶어. 감
진세윤은 위치를 알려주었다.“사람은 기절했어요... 쓸데없는 소리 말고 포상금이나 제 계좌로 보내세요...”엄수아는 그가 누구에게 전화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얼른 그의 재킷을 입어 드러난 몸을 가리고는 택시를 짚고 일어나 진세윤에게 고마움을 전하려 했다. 하지만 그때 멀리서 익숙하고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수아야! 수아야! 어디 있어?”지서현이었다.엄수아가 다시 뒤돌아보았을 때 진세윤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어쩜 저렇게 빨리 갈 수 있지? 고맙다는 인사도 직접 전하지 못했는데.’...하승민과 지서현이 찾
‘이 경찰관은 진세윤을 찾는 건가? 설마 아까 진세윤이 이 경찰에게 전화를 건 거였나?’엄수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갔어요.”경찰관은 더 묻지 않고 말했다.“빗방울 살인마는 저희가 데려갑니다. 내일 아가씨는 조서 작성에 협조해주십시오.”“알겠습니다.”엄수아가 대답했다.“지금 장마라 소나기가 곧 올 것 같으니 이런 날씨에 돌아가긴 위험합니다. 바로 앞에 휴게소가 있으니 가서 따뜻한 물로 씻고 옷 갈아입으세요. 감기 걸리지 마시고요.”경찰관은 친절하게 당부했다.하승민, 지서현, 엄수아는 다 젖은 데다 늦가
지서현은 맑고 투명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붉은 입술을 살짝 올려 미소 지었다.“하 대표님 주변엔 사장님들이 많잖아요. 괜찮은 사람 있으면 소개 좀 해 주세요.”하승민은 그녀를 흘끗 보더니 시선을 돌리고 목에 맨 넥타이를 풀었다. 그리고 잠시 후 무덤덤하게 말했다.“괜찮은 사람 있으면 소개해 줄게.”“고마워요. 하 대표님.”그때 욕실 문이 열리고 재빨리 샤워를 마친 엄수아가 나왔다.“서현아, 얼른 들어가서 씻어.”지서현은 사양하지 않고 욕실로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씻은 사람은 하승민이었다. 그가 욕실에 들어갈 때쯤 지서
지서현과 엄수아는 한 이불 속에 폭 파묻힌 채 잠들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엄수아가 물었다.“서현아, 너 그런 남자 만나본 적 있어?”“어떤 남자?”엄수아의 머릿속에 짧은 머리의 잘생긴 얼굴이 떠올랐다.“차갑고 터프한데 싸움도 잘하고... 좀 무섭기도 한...”지서현은 옷걸이에 걸린 검은색 야구 점퍼를 바라보았다. 원래 엄수아가 입고 있었는데 조심스럽게 걸어 둔 걸 보니 엄수아를 구해 준 남자 옷인 게 분명했다.지서현은 웃으며 말했다.“진세윤 그 킹카를 말하는 거야?”엄수아는 고개를 끄덕였다.“응, 맞아.”
지유나, 지예슬, 그리고 이윤희도 마치 따귀를 맞은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지서현은 하승민을 바라보았다.“하 대표님, 이제 제 말 믿으시겠죠?”그녀의 맑은 두 눈은 영롱하게 빛났고 소문익의 품에 안겨 있는 모습에 하승민의 잘생긴 얼굴은 먹구름이 낀 것처럼 어두워졌다.‘이 요망한 여자가! 소문익까지 자기 치마폭에 둘러싸다니, 정말 대단한 여자야!’“서현아, 너 쇼핑하러 온 거잖아. 어때? 마음에 드는 원피스 있어?”점원은 곧바로 레이스 원피스를 가져왔다. “이 원피스가 손님께 아주 잘 어울리실 것 같습니다.”지서현은 고
소문익이 왔다.지유나 일행은 어제 동연당에서 소문익을 만났었기에 오늘 다시 만나자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소문익은 지서현 옆으로 다가왔다.“서현아, 잠깐 전화 받느라 밖에 나갔었는데 무슨 일 있었어? 뭔가 재밌는 걸 놓친 것 같은데.”지서현은 붉은 입술을 끌어올렸다.“아니. 타이밍 딱 맞춰서 잘 왔어. 다들 내 남자친구인 당신을 보고 싶어 했거든..”지서현은 소문익에게 눈짓했다.소문익은 바로 눈치채고 지서현의 가녀린 어깨에 팔을 둘렀다.“이분들은?”지서현은 한 명씩 소개했다.“이분은 지씨 가문 어르신, 이윤희 씨, 지
지예슬은 곧바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붉은 입술을 말아 올렸다.“서현아, 부러워할 것 없어. C신은 내 남자친구야. 우리 곧 결혼할 거라고.”지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재산이 열 배로 늘었다며? 그럼 그 돈은 어디 있어? 그 C신이라는 사람이 언제 준다고 했어?”박경애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게...”“말 안 했나 보네요. 돈이 들어온 것도 아닌데 C신이 열 배든 백 배든 마음대로 말할 수 있겠죠. 아까도 말했지만 그 C신이라는 사람은 사기꾼이에요. 알아서들 하세요.”지예슬은 곧바로 화를 냈다. 남자친구가 C신이라는 사
하승민의 잘생긴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누가 준 거야?”지서현은 눈썹을 치켜뜨며 말했다.“남자친구요!”남자친구?하승민의 잘생긴 얼굴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지서현이 전에도 남자친구가 있다고 했던 게 기억났다. 이제 그 남자친구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네 그 돈 많은 남자친구 말이야?”“네. 맞아요.”하승민은 냉소했다.“비싼 차를 몰고 좋은 집에 살게 해주다니 돈 좀 쓰는 모양인데. 해성이 좁은 동네인데, 도대체 네 남자친구가 누군지 감도 안 잡히네.”지서현은 입꼬리를 올렸다.“하 대표님, 내 남자친구가 누군지 모
지서현은 황급히 걸음을 옮겼다.그러나 하승민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지서현, 나한테 할 말 없어?”지서현은 맑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무슨 할 말?”하승민은 입술을 깨물었다.“네가 몰고 다니는 고급 차, 살고 있는 고급 아파트, 다 어디서 난 거야? 누구 돈 쓴 거냐고.”지서현은 가녀린 등을 꼿꼿이 펴고 말했다.“하 대표님, 어쨌든 당신 돈은 안 썼으니까 상관없잖아요. 더는 말씀드릴 게 없네요.”지서현은 가려고 했다. 그러나 하승민의 큰 키는 마치 벽처럼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지서현은 붉은 입술을 살짝
이윤희와 지예슬은 지유나가 바닥에 엎어져 있는 것을 보고 놀라 급히 달려가 그녀를 구하려 했다.“당장 유나를 놔줘!”“세 번째 경고입니다. 이제 내보내겠습니다!”결국 지유나, 지예슬, 이윤희는 모두 제성아파트에서 쫓겨났다. 쾅 소리와 함께 제성아파트의 대문이 그들 앞에서 닫혔다.세 사람은 모두 할 말을 잃었다.그들은 이런 수모를 당해 본 적이 없었다. 특히 지유나는 하승민과 함께 다니면서 항상 환대받았는데 이렇게 푸대접을 받고 쫓겨나다니, 생전 처음이었다.지예슬도 화가 났다.“다 서현이 때문이야! 유나야, 도대체 어떻게
이윤희가 말했다.“서현아, 하 대표님 미행 안 했다고 하더니, 결국 여기까지 따라왔잖아!”“너 진짜 무섭다. 승민 오빠가 9층에 사는 것까지 알고 있었어? 너 완전 스토커잖아. 정신병원 가 봐야 하는 거 아니야?”지서현은 하승민을 쳐다보며 물었다.“하승민, 9층에 살아요?”하승민은 901호 문패를 가리켰다.“나 여기 살아.”“아.”지서현은 902호 문 앞으로 가서 비밀번호를 눌렀다. 드르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지유나, 지예슬, 그리고 이윤희는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지서현이 902호에 산다고?정말 제성
‘아니, 그럴 리가?’하승민은 스스로가 우스웠다. 어떻게 지서현을 그 눈부시게 아름다운 동연당 설립자와 같은 사람으로 생각했을까?‘하 대표님, 저 좀 태워다 주시겠어요?'방금 지서현이 차 밖에서 자신을 태워달라고 했었다. 하승민은 웃음이 나왔다. 자기 차가 있으면서 일부러 저런 말을 하다니, 분명 지유나를 약 올리려는 것이었다.자신을 놀리려는 의도도 있었다.지서현은 점점 더 대담해지고 있었다.그때 지유나, 지예슬, 이윤희가 차에 올라탔다. 지유나는 조수석에, 지예슬과 이윤희는 뒷좌석에 앉았다. 하승민은 액셀을 밟았고 롤스로
지서현은 어이가 없었다. 그때 마침 새로 산 차가 도착했다.“난 여기서 차 기다리고 있었어. 이만 가볼게.”“차를 기다려? 택시?”지유나가 웃었다.“서현아, 병원 앞에서 택시 잡기 힘들 텐데?”지서현은 평소에 택시를 타고 다녔기에 지유나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지예슬은 지서현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서현아, 넌 정말 한심해. 다른 선배들은 다들 집도 있고 차도 있는데, 넌 아직도 택시 타고 다니잖아. 천재 소녀라는 말이 아깝다.”이윤희는 지예슬의 팔을 잡아당겼다.“예슬아, 그만해. 서현이도 불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