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서현이 욕실에서 나왔을 때, 하승민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아마 지유나 전화를 받고 떠난 거겠지.’그녀는 비웃듯 입꼬리를 씩 올렸다.그때, 이번에는 지서현의 휴대폰이 울렸다.화면을 내려다보니 발신자는 이윤희였다.그녀는 버튼을 눌러 전화를 받았다.“서현아, 유나가 오늘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했어. 너도 와서 같이 놀아.”지서현은 이윤희가 이렇게 친절할 리가 없다는 생각에 고민하다 이렇게 대답했다.“네. 지금 갈게요.”소아린은 이 소식을 듣자마자 급히 찾아왔다.“서현아, 내가 보기엔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 같아. 게
왕우현이 몸을 돌려 떠나려는 때, 고우섭이 갑자기 그를 불러 세웠다.“잠깐만요.”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왕우현이 멈춰서자 고우섭은 날 선 눈빛으로 지서현을 쏘아보았다.“지서현 씨, 당신 인간 맞아요? 그래도 키워주시고 먹여주신 아버지인데 어떻게 그렇게 모질게 대할 수가 있는 겁니까?”그의 말에 주변에 있던 부잣집 도련님들도 거들 듯 토론하기 시작했다.“출신이 나쁜 건 그렇다 쳐도 성격까지 저렇게 이기적이고 냉철하다고?”“돈 좀 있다고 아버지를 버려? 완전 속물 그 자체네.”“하승민 대표가 왜 저런 여자를 아내로 들였지?
왕우현이 떠난 후, 지유나는 이윤희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엄마, 왕우현 씨가 대체 지서현의 어떤 약점을 쥐고 있는 걸까요?”이윤희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유나야, 그건 우리가 신경 쓸 필요 없어. 우린 그냥 지서현이 네 상대가 못 된다는 것만 기억하면 돼. 앞으로 그 애는 왕우현 씨의 장난감이 될 테니까.”지유나는 이윤희의 확신에 찬 대답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시골에서 온 지서현 따위가 어떻게 감히 하승민의 아내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단 말인가?지유나는 지서현에겐 왕우현 같은 남자가 딱 어울린다고 생각했다.“엄마, 정
하승민은 문득 과거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지유나가 막 귀국했을 무렵, 샤넬 가방을 눈여겨봐 하승민은 그녀를 위해 조현우에게 바로 구매해 그린 타워로 보내라고 말했었다.그러다 지서현이 그 가방을 발견하고는 그토록 환하게 웃으며 했던 말.“이 가방, 정말 예쁘네요.”그녀는 정말 기뻐 보였다.비록 그 가방이 지서현을 위한 것이 아니었지만.고민하던 하승민은 아무렇지 않은 듯 담담하게 말했다.“지서현은 샤넬 가방을 좋아해.”유정우는 그의 대답에 만족한 듯 입꼬리를 씩 올렸다.“고맙다.”이때, 고우섭이 거칠게 문을 열고 들어
지서현은 사진을 급히 상자에 넣어 다시 닫았다.“할머니, 이건 제 어린 시절 사진이에요. 너무 못나서 보여줄 수 없어요.”그러자 김옥정은 웃으며 지서현에게 물었다.“우리 서현이가 못난 적이 있었나?”그때, 옆에 있던 박남수가 먼저 대답했다.“절대 그럴 리 없습니다.”지서현은 따뜻한 김옥정과 박남수의 말에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그녀는 숟가락을 들고 준비한 수프를 한 입 먹었다.그 순간, 또다시 도우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도련님.”지서현은 고개를 들어 보았고 이내 하승민이 돌아온 것을 발견했다.김옥정은 웃으며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우고 오늘 밤 네가 직접 1억을 내 손에 가져와. 그렇지 않으면 내일 너의 사진이 해성 전역에 퍼질 거야. 오늘 밤, 난 지서현 너만 기다릴 거다.”왕우현은 이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수화기 너머 지서현은 휴대폰을 꼭 쥔 채 서 있었다. 그때, 그녀의 등 뒤에서 하승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네 양아버지랑 통화하고 있었어?”익숙한 소리에 지서현이 뒤를 돌아보자 하승민이 어느새 방안에 들어와 있었다.그의 시선은 지서현의 손에 들린 상자에 머물렀다. 이윽고 키가 크고 듬직한 하승민의 실루엣이 그녀 앞
방금 전, 하승민은 발코니에 서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유정우가 지서현에게 샤넬 한정판 가방을 건넸지만 그녀는 받지 않았다.지서현은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당신이 유정우 씨에게 제가 가방을 좋아한다고 말한 거예요?”하승민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대답했다.“아닌가? 내가 알기론 넌 가방 좋아하던데.”지서현은 그 대답에 피식 웃더니 담담히 말을 이어갔다.“아니, 전 안 좋아해요. 전 더 비싼 걸 좋아하죠. 다이아몬드 목걸이 같은 거? 그러니까 다음엔 유정우 씨한테 다이아 목걸이를 사라고 말씀하세요.”하승민의 잘생
하승민은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말씀하세요.”“10년 전, 왕우현 씨는 아동 성추행 및 학대, 강간 미수 혐의로 수감되었습니다.”서류 위에 서명하던 하승민의 손이 뚝 멈췄다.금세 정신을 차린 하승민은 충격에 휩싸여 조현우를 올려다보았다.“그 피해자가... 설마 지서현인가?”조현우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맞습니다. 사모님의 양아버지, 왕우현은 끔찍한 인간쓰레기입니다.”하승민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눈빛엔 날이 섰다.그는 오래전부터 지서현과 그녀의 양아버지 사이에 뭔가 숨겨진 사연이 있다고 느꼈다.하지만
지유나, 지예슬, 그리고 이윤희도 마치 따귀를 맞은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지서현은 하승민을 바라보았다.“하 대표님, 이제 제 말 믿으시겠죠?”그녀의 맑은 두 눈은 영롱하게 빛났고 소문익의 품에 안겨 있는 모습에 하승민의 잘생긴 얼굴은 먹구름이 낀 것처럼 어두워졌다.‘이 요망한 여자가! 소문익까지 자기 치마폭에 둘러싸다니, 정말 대단한 여자야!’“서현아, 너 쇼핑하러 온 거잖아. 어때? 마음에 드는 원피스 있어?”점원은 곧바로 레이스 원피스를 가져왔다. “이 원피스가 손님께 아주 잘 어울리실 것 같습니다.”지서현은 고
소문익이 왔다.지유나 일행은 어제 동연당에서 소문익을 만났었기에 오늘 다시 만나자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소문익은 지서현 옆으로 다가왔다.“서현아, 잠깐 전화 받느라 밖에 나갔었는데 무슨 일 있었어? 뭔가 재밌는 걸 놓친 것 같은데.”지서현은 붉은 입술을 끌어올렸다.“아니. 타이밍 딱 맞춰서 잘 왔어. 다들 내 남자친구인 당신을 보고 싶어 했거든..”지서현은 소문익에게 눈짓했다.소문익은 바로 눈치채고 지서현의 가녀린 어깨에 팔을 둘렀다.“이분들은?”지서현은 한 명씩 소개했다.“이분은 지씨 가문 어르신, 이윤희 씨, 지
지예슬은 곧바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붉은 입술을 말아 올렸다.“서현아, 부러워할 것 없어. C신은 내 남자친구야. 우리 곧 결혼할 거라고.”지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재산이 열 배로 늘었다며? 그럼 그 돈은 어디 있어? 그 C신이라는 사람이 언제 준다고 했어?”박경애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게...”“말 안 했나 보네요. 돈이 들어온 것도 아닌데 C신이 열 배든 백 배든 마음대로 말할 수 있겠죠. 아까도 말했지만 그 C신이라는 사람은 사기꾼이에요. 알아서들 하세요.”지예슬은 곧바로 화를 냈다. 남자친구가 C신이라는 사
하승민의 잘생긴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누가 준 거야?”지서현은 눈썹을 치켜뜨며 말했다.“남자친구요!”남자친구?하승민의 잘생긴 얼굴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지서현이 전에도 남자친구가 있다고 했던 게 기억났다. 이제 그 남자친구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네 그 돈 많은 남자친구 말이야?”“네. 맞아요.”하승민은 냉소했다.“비싼 차를 몰고 좋은 집에 살게 해주다니 돈 좀 쓰는 모양인데. 해성이 좁은 동네인데, 도대체 네 남자친구가 누군지 감도 안 잡히네.”지서현은 입꼬리를 올렸다.“하 대표님, 내 남자친구가 누군지 모
지서현은 황급히 걸음을 옮겼다.그러나 하승민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지서현, 나한테 할 말 없어?”지서현은 맑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무슨 할 말?”하승민은 입술을 깨물었다.“네가 몰고 다니는 고급 차, 살고 있는 고급 아파트, 다 어디서 난 거야? 누구 돈 쓴 거냐고.”지서현은 가녀린 등을 꼿꼿이 펴고 말했다.“하 대표님, 어쨌든 당신 돈은 안 썼으니까 상관없잖아요. 더는 말씀드릴 게 없네요.”지서현은 가려고 했다. 그러나 하승민의 큰 키는 마치 벽처럼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지서현은 붉은 입술을 살짝
이윤희와 지예슬은 지유나가 바닥에 엎어져 있는 것을 보고 놀라 급히 달려가 그녀를 구하려 했다.“당장 유나를 놔줘!”“세 번째 경고입니다. 이제 내보내겠습니다!”결국 지유나, 지예슬, 이윤희는 모두 제성아파트에서 쫓겨났다. 쾅 소리와 함께 제성아파트의 대문이 그들 앞에서 닫혔다.세 사람은 모두 할 말을 잃었다.그들은 이런 수모를 당해 본 적이 없었다. 특히 지유나는 하승민과 함께 다니면서 항상 환대받았는데 이렇게 푸대접을 받고 쫓겨나다니, 생전 처음이었다.지예슬도 화가 났다.“다 서현이 때문이야! 유나야, 도대체 어떻게
이윤희가 말했다.“서현아, 하 대표님 미행 안 했다고 하더니, 결국 여기까지 따라왔잖아!”“너 진짜 무섭다. 승민 오빠가 9층에 사는 것까지 알고 있었어? 너 완전 스토커잖아. 정신병원 가 봐야 하는 거 아니야?”지서현은 하승민을 쳐다보며 물었다.“하승민, 9층에 살아요?”하승민은 901호 문패를 가리켰다.“나 여기 살아.”“아.”지서현은 902호 문 앞으로 가서 비밀번호를 눌렀다. 드르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지유나, 지예슬, 그리고 이윤희는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지서현이 902호에 산다고?정말 제성
‘아니, 그럴 리가?’하승민은 스스로가 우스웠다. 어떻게 지서현을 그 눈부시게 아름다운 동연당 설립자와 같은 사람으로 생각했을까?‘하 대표님, 저 좀 태워다 주시겠어요?'방금 지서현이 차 밖에서 자신을 태워달라고 했었다. 하승민은 웃음이 나왔다. 자기 차가 있으면서 일부러 저런 말을 하다니, 분명 지유나를 약 올리려는 것이었다.자신을 놀리려는 의도도 있었다.지서현은 점점 더 대담해지고 있었다.그때 지유나, 지예슬, 이윤희가 차에 올라탔다. 지유나는 조수석에, 지예슬과 이윤희는 뒷좌석에 앉았다. 하승민은 액셀을 밟았고 롤스로
지서현은 어이가 없었다. 그때 마침 새로 산 차가 도착했다.“난 여기서 차 기다리고 있었어. 이만 가볼게.”“차를 기다려? 택시?”지유나가 웃었다.“서현아, 병원 앞에서 택시 잡기 힘들 텐데?”지서현은 평소에 택시를 타고 다녔기에 지유나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지예슬은 지서현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서현아, 넌 정말 한심해. 다른 선배들은 다들 집도 있고 차도 있는데, 넌 아직도 택시 타고 다니잖아. 천재 소녀라는 말이 아깝다.”이윤희는 지예슬의 팔을 잡아당겼다.“예슬아, 그만해. 서현이도 불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