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설은 그녀가 사탕 한 통을 들고 오는 것을 보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소희 씨는 단것을 엄청 좋아하는데 임 대표님은 그녀가 설탕을 너무 많이 먹어서 몸에 좋지 않을까 봐 그녀가 많이 먹지 못하게 했거든요. 오늘 부인과 함께 있으니 소희 씨는 또 자신을 통제할 수 없을 거 같네요."머크 부인은 소희를 바라볼 때 눈빛에는 특별한 빛을 띠었다."임 대표와 소희 씨의 사이가 아주 좋아 보이네요."소희는 가볍게 웃었다."그는 너무 제멋대로예요."은설은 과장한 말투로 말했다."소희 씨, 이렇게 아닌 척하며 은근히 자랑하면 나 진짜 질투해요. 이런 카리스마가 넘치는 애인은 구하기 엄청 힘들다고요!"머크 부인은 놀라며 물었다."소희 씨가 은근히 자랑했다고요?"은설과 소희는 눈을 마주치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리고 은설은 인내심 있게 머크 부인에게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듣고 나서 머크 부인은 소희를 보고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소희 씨 확실히 은근히 자랑했는걸요!"말을 마치자 그녀들은 동시에 웃기 시작했다.......저녁에 샤워를 마치고 구택이 소희의 등에 바디크림을 발라줄 때 소희는 입을 열었다."도운박 씨는 힐드 부부를 데리고 뮤지컬 보러 갔어요. 구택 씨도 함께 가야 하지 않을까요?"그녀는 낮에 본 일을 구택에게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랐다.그녀는 구체적인 대화 내용을 듣지 못해서 행여나 오해라도 해서 앞으로 구택과 운박 사이에 간격이 생길까 봐 두려웠다. 결국 두 사람은 앞으로 함께 비즈니스를 해야 했으니. 그러나 말하지 않으면 그녀는 또 구택이 방심하여 운박에게 속을까 봐 두려웠다.이리저리 생각하다 그녀는 결국 그 일을 직접 말하지 않고 그냥 이렇게 그에게 귀띔을 해주며 그가 그녀의 뜻을 이해해 주길 바랐다.구택은 침대 옆에 앉아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소희 씨는 뮤지컬 안 좋아하잖아요. 그래서 내가 같이 있어 줄게요."소희는 침대에 엎드려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구택 씨가 나한테 말했을 때 나는 구택 씨가
머크 부인은 무척 놀라워하며 말했다. "그래요?"은설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보러 가요!"머크 부인은 고개를 돌려 힐드에게 말한 후 무척 기뻐해하며 은설과 자리를 떠났다.두 사람이 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빨간 탱크톱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손에 차를 들고 다가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도 대표님, 미스터 머크!"운박은 즉시 일어나 힐드에게 소개했다."김여울 씨라고요, 방금 뮤지컬의 여주인공이 바로 그녀예요."힐드의 눈에는 놀라움이 드러났다."미스 김, 아주 훌륭해요!"여울은 부드럽게 웃었다."미스터 머크의 앞에서 뮤지컬을 공연하다니, 정말 제 영광인걸요."그녀는 힐드의 옆에 앉았다."미스터 머크는 또 어떤 뮤지컬을 보고 싶나요? 제가 여기서 간단하게 불러줄 수도 있는데요."운박은 웃으며 말했다."잠깐 전화 좀 받고 올게요. 여울 씨가 나 대신해서 미스터 머크 잘 챙겨주고."여울은 부드럽고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미스터 머크는 저의 귀한 손님이니까 도 대표님께서 안심하세요."운박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힐드와 인사를 한 뒤 몸을 돌려 나갔다.어둡고 밀폐된 극장 안에는 힐드와 여울 두 사람만 남았다.대략 10여 분이 지난 후 운박은 바깥의 나무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다가 여울이 걸어오는 것을 보고 일어나 눈살을 찌푸렸다."왜 이렇게 빨리 나왔어?"여울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그는 뮤지컬 노래를 듣고 싶지 않다고 말했어요. 여기에 온 이유는 단지 그의 부인을 위해서라고요. 그리고 내가 아무리 눈짓해도 그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어요. 죄송해요 도 대표님, 이번엔 내가 도와줄 수 없을 것 같네요!"운박의 눈에는 놀라움이 스쳤다. 그는 팔을 내밀어 여울의 어깨를 감싸며 고개를 숙여 그녀의 얼굴에 뽀뽀를 했다."괜찮아, 어차피 나도 네가 그 독일놈과 함께 있는 게 너무 아까웠어."여울은 애교를 부리며 운박을 살짝 밀었다."도 대표님은 말을 참 달콤하게 해요."운박은 웃으며 말했다."너 먼저 가, 나중에
다음 날 아침, 소희가 깨어났을 때 날은 이미 밝았고 태양은 그녀의 얼굴을 비추었다.구택은 침대 옆에 앉아 햇빛을 등지고 잘생긴 얼굴로 부드럽게 말했다."일어날래요?"소희는 다가와 그의 다리에 기대며 꼼짝도 하지 않으려 했다.구택은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길쭉한 손가락으로 그녀의 머릿결을 다듬어 주었다. "요 이틀 동안 뭐 놀았어요?"소희는 눈을 반쯤 가늘게 뜨고 그에게 이틀 동안 어디에 가서 놀았는지 보고했다. 그녀도 이미 숲속의 성에 가 보았다. 그녀가 상상했던 것과 똑같았다.4살 전, 그녀의 가장 따뜻한 추억은 이웃집 언니가 낡은 동화책 한 권을 들고 그녀에게 이야기를 들려준 것이었다. 백설공주, 완두콩 공주, 재스민 공주...... 그녀들은 모두 성에서 살았고 왕자님과 행복하게 살았다.성에 다가가는 순간, 그녀는 어린 시절을 되찾은 것 같았고, 기억 속 깊은 곳의 따뜻함을 되찾았다.구택이 물었다."스케이트장에 가 봤어요?""스케이트장이요?" 소희는 그의 다리에서 고개를 들어 눈을 반짝였다.한 시간 후 소희와 구택은 스케이트장 안에 서있었다. 두 사람은 모두 옷을 갈아입었고 구택은 소희에게 프로텍터를 입혀주고 있었다."신발은 발에 맞아요?" 구택은 반쯤 쪼그리고 앉아 그녀에게 무릎 프로텍터를 입혀주며 부드럽게 물었다."네." 소희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오늘 안 바빠요? 미스터 힐드 만나러 가지 않아도 돼요?""며칠 동안 바빴으니 좀 쉬어야죠. 저녁에 연회가 있으니까 그때 우리 같이 가요."구택은 일어서서 그녀의 손을 잡았다."나 따라와요, 긴장하지 말고요."소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손을 잡은 사람이 구택이기 때문일까, 그녀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 남자는 항상 그녀에게 충분한 안정감을 가져다줬다.안정감은 그녀에게 있어 낯설고 또 이상한 느낌이었다.이렇게 큰 스케이트장에는 그들 두 사람밖에 없었다. 소희는 원래 몸이 날렵하여 구택을 따라 두 바퀴 돌자 그중의 요령을 터득하고 그의 손을 뿌리
은설은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고 두 배가 스치고 지나가는 찰나 소희는 그녀가 새로운 루비 목걸이를 한 것을 보았다.식사 후 소희와 구택은 돌아가서 잠시 낮잠을 잤다. 오후에 두 사람은 호숫가에 가서 낚시를 했다. 해가 거의 져갈 때 하인이 와서 구택에게 연회를 어디에 차리냐고 물었다.저녁에 사람들은 잔디밭에서 식사를 했다. 긴 테이블에는 새하얀 식탁보, 은색 등대, 아름다운 금변 도자기 그릇, 정교한 요리가 있었고 따사로운 밤바람은 사람들로 하여금 몹시 유쾌하게 했다.해가 지자 주위의 등불이 조금씩 켜졌고, 멀리서 나는 불고기 향기와 마지막 노을은 공기 속으로 사라졌다.며칠 동안 함께 지내면서 사람들은 이미 서로 익숙해져서 어색하지 않았고 분위기도 무척 즐거웠다.은설은 구택이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서 소희에게 아이스 주스 한잔 건네주었고 소희는 한 모금 마신 뒤 감격스러운 눈빛으로 은설을 바라보았다.힐드와 얘기를 나누고 있던 구택은 갑자기 고개를 돌려 몸을 살짝 숙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아이스 주스 마실래요?"소희는 멈칫하다 웃으며 고개를 저으며 침착하게 말했다."아니에요!""그래요?" 구택은 가볍게 웃었다."오늘은 소희 씨가 좀 편하게 즐겼으면 했는데, 싫으면 내가 가져갈게요."말을 마치고 그는 손을 뻗어 소희 앞에 있는 주스를 가져갔다."......"맞은편 은설은 입을 가리고 어여쁘게 웃으며 눈빛에는 부러움도 있었다.이 남자는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때도 계속 소희를 지켜보며 챙겨주고 있었다.구택은 하인더러 소희가 가장 좋아하는 복숭아 요구르트를 가져와 컵에 따르게 했다."음식 좀 먹고 마셔요. 찬 거 너무 많이 마시지 말고요."소희는 순식간에 기분이 좋아졌다. 사람들만 없었으면 그녀는 그에게 키스까지 하고 싶었다.(흠, 저녁에 돌아가서 해줘도 마찬가지야.)운박은 사람 시켜서 운성의 한 오래된 가게에 가서 그들이 직접 만든 매실주를 사 오라고 했다. 머크 부인은 한 입 맛보고 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바로 이
은설은 또 주사위 하나와 책 한 권을 꺼냈다."주사위를 던져서 던진 포인트에 따라 책에 상응하는 벌칙대로 벌받는 거예요, 어때요?"머크 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재밌네요."소희도 당연히 의견이 없었다.하인은 곧 은설의 말에 따라 "시민, 경찰, 도둑"이라고 쓴 쪽지 3개를 준비했고, 세 사람은 선후로 손을 뻗어 제비를 뽑았다.소희는 마지막에 뽑았고 그녀의 쪽지는 “시민”이었다. 즉, 그녀는 어떻게 해도 벌칙을 받지 않을 것이고 차분하게 다른 사람이 알아맞히기만을 기다리면 되었다.머크 부인은 "경찰"을 뽑았다. 그녀는 소희와 은설을 바라보며 그들 두 사람의 표정에서 누가 "도둑"인지 분별하려고 했다.소희는 태연했고 은설은 위장을 잘했다. 그녀는 심지어 구경하는 척하며 소희에게 눈짓을 했다.그러나 바로 이 동작이 머크 부인으로 하여금 그녀가 “도둑”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은설은 쪽지를 꺼내며 믿기지 않은 듯 말했다."내가 들통날 리가 없는데요? 머크 부인은 어떻게 알아맞혔죠?"머크 부인은 환하게 웃었다."제발이 저린 사람만이 자꾸 딴짓을 하기 좋아하거든요. 나는 마침 은설 씨가 딴짓하는 것을 봤고요.""부인님 너무 대단한걸요. 나도 벌칙 받을게요!"은설은 주사위를 들고 힘껏 던졌다.그녀가 던진 숫자는 1, 3, 6이었고 합치면 10 이었다. 그 벌칙이 적혀진 책에서 10에 대응하는 벌칙은 "여기 있는 남자와 각각 1분씩 포옹한다"였다.벌칙을 받지 않으면 술을 세 잔 마시거나 노래 한 곡을 불러야 했다.은설은 눈을 크게 떴다. 그녀는 운박과 힐드를 포옹하는 것은 모두 문제가 없다고 느꼈지만 구택의 낯선 사람은 가까이 다가오지 말라는 카리스마는 정말 그녀로 하여금 감히 그에게 이런 요구를 제기하지 못하게 했다. 아마 그녀가 막 입을 열 때 그는 그녀를 던져버릴 것이다.그녀는 감히 벌칙을 받지 못하고 결국 노래를 불렀다.그녀는 한 소절만 불렀는데, 아주 듣기 좋았고, 머크 부인은 그녀를 위해 가볍게 박수를 쳤다.그리고 세 사
구택은 그녀의 손을 잡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뭐라고 했어요?"소희는 얼굴이 빨개지며 그의 귓가에 대고 부드럽게 말했다."안아줘요, 그리고 키스도 해줘요. 네?"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고 반쯤 취해 있었다. 은은한 매실주 향기가 그의 얼굴을 스치며 구택은 순간 심장이 멎은 것만 같았다. 그는 그윽하게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나의 영광이죠!"주위에는 환호성과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소희는 쑥스러움에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녀는 그가 가벼운 키스만 할 줄 알았지만 구택은 다른 사람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그들 단둘이 있는 것처럼 짙은 키스를 해주었다.소희는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남자의 팔을 꽉 잡고 냉정을 유지하려 애쓰며 그를 밀치고 고개를 숙이고 예의 있게 말했다."고마워요."그리고 그녀는 재빨리 그에게서 일어나 세 사람이 게임을 하는 곳으로 돌아갔다.그녀는 태연자약하고 침착한 척했지만, 오직 그녀 자신만이 지금 심장이 얼마나 빨리 뛰고 있는지 알고 있었고, 귀밑까지 뜨거워졌다.은설은 부러워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로맨틱하네요. 나도 이 벌칙 받았으면 좋겠는걸요."머크 부인은 상냥하게 소희에게 주스 한 잔을 따른 뒤 고개를 돌려 은설에게 웃으며 말했다."우리도 가능한 한 은설 씨를 만족시킬게요!""좋아요, 모두들 나 좀 도와줘요!" 은설은 시원하게 웃었다.따뜻한 밤바람에 화기애애한 분위기, 세 사람은 유쾌하게 게임을 했다. 소희는 술에 취하며 점차 테이블 위에 기대며 은설이 노래 부르는 것을 볼 수밖에 없었다.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온화하며 완전 노래 부르기에 적합한 목소리였다. 게다가 그녀의 아름다운 눈빛은 여자가 봐도 설렜다.뒤에 익숙한 기운이 다가오자 남자는 몸을 숙여 그녀를 안고 머크 부인과 은설에게 말했다."미안해요, 소희 씨가 많이 취한 것 같네요. 내가 그녀를 데리고 돌아가서 좀 쉴게요.""임 대표님 마음대로 해요. 사양하지 말고요!"머크 부인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녀도
잔디밭의 연회에서. 소희가 떠난 후 은설은 머크 부인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머크 부인도 점점 술에 취했다.힐드는 다가와 머크 부인을 품에 안으며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부인도 이렇게 술을 마시며 취한 지 꽤 오래됐어요. 오늘 그녀는 틀림없이 매우 즐거웠을 거예요."은설도 술을 많이 마셨지만 여전히 방긋 웃었다."오늘 모두 즐거웠네요."힐드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운박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부인을 데리고 돌아가서 쉴게요. 내일 다시 보죠."운박은 웃으며 말했다."부인님도 많이 취한 것 같은데 은설과 같이 부인님을 바래다 주죠."말이 끝나자 그는 은설에게 눈짓을 했다.불빛 아래, 은설은 원래 술을 마셔서 얼굴이 약간 빨개졌지만 이때 조금씩 하얗게 변하기 시작했다. 술을 많이 마셔서 반응이 느려졌는지 그녀는 멍하니 서 있었다.운박은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눈에는 웃음기가 없어지며 그녀를 재촉했다."뭐해, 얼른 가!"은설은 비로소 반응한 듯 낮은 소리로 대답하고는 힐드와 함께 머크 부인을 부축하며 그들이 지내는 별장으로 돌아갔다.깊은 밤, 밤바람은 따뜻했지만 은설은 손발이 차가웠다. 뒤돌아보니 운박은 이미 떠났고 방금까지 떠들썩하고 소란스러웠던 잔디밭은 그릇밖에 남지 않은 텅 빈 채로 무척 쓸쓸했다.그녀의 목에 있는 루비는 눈부신 빛을 반짝이고 있었는데 이는 오늘 운박이 그녀를 데리고 가서 산 것이었다. 그는 이미 그녀의 오늘 밤을 위해 미리 돈을 지불했던 것이다.주얼리는 차가웠고 그녀의 마음속까지 시리게 만들었다. 그녀는 갑자기 웃으며 고개를 들어 힐드를 향해 매혹적으로 눈썹을 치켜올렸다."미스터 머크, 오늘 밤, 정말 멋져 보이네요!"힐드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 파란색의 눈은 바다처럼 깊었다. 그는 천천히 웃었다."고마워요!"두 사람은 머크 부인을 침실로 데려가자마자 하인이 인차 와서 그녀를 섬겼다.힐드는 하인더러 물러나게 하고는 자신이 직접 머크 부인에게 옷을 갈아입히며 그녀를 안고 샤워하러 갔다.은설과 하인은 침
그녀는 운박과 지내고 있는 별장으로 돌아갔다. 운박은 아직 자지 않았는데 그녀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 약간 놀랐다."왜 이렇게 빨리 돌아왔어?"은설은 나무 난간에 기대어 담담하게 웃었다."당신을 실망시켰는걸. 힐드는 내가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나 봐."운박은 실망했고 좀 이상했다."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아마도 나한테 힐드가 바람을 피울 정도로 그런 매력이 없어서일걸."은설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침대로 걸어갔다."피곤해서 먼저 잘게."운박은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가서 쉬어."은설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고 표정도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침실에 들어가 방문을 닫고서야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으며 눈을 감고 천천히 눈물을 흘렸다.이튿날, 소희는 구택의 품에서 깨어났다. 날은 이미 완전히 밝았고 햇빛은 얼굴에 내리쬐며 무척 화창하고 열렬했다.어젯밤은 확실히 좀 방자했다. 소희는 온몸이 불편했고 머리는 술에 취해 현기증이 났다.구택은 그녀를 달래며 일어나서 아침을 먹게 했다. 아직 식사를 하고 있을 때 운박의 비서가 와서 운박이 구택과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며 구택을 청했다.구택은 운박을 급히 만나러 가지 않고 먼저 소희와 함께 아침을 먹은 뒤 또 하인더러 소희에게 보신탕을 끓여 주라고 분부했다.소희가 말했다."도운박 씨한테 급한 일이 생겼을지도 몰라요. 그렇지 않으면 아침 일찍 와서 구택 씨 부르지도 않을 거고요. 나 신경 안 써도 돼요.""응, 불편하면 침대에 가서 좀 누워요. 금방 다녀올게요." 구택은 그녀의 볼에 키스하고 하인에게 당부한 후에야 운박을 만나러 나갔다.소희는 허벅지가 시큰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워서 외출하기 싫어 구택이 떠난 후 아예 방으로 돌아가 책을 보았다.운박이 사는 별장 안, 은설은 아침 일찍 머크 부인에게 불려갔고, 서재에는 운박만 있었다.구택을 보자 운박은 마중 나오며 웃으며 물었다."소희 씨는 괜찮아요?"구택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술에 취해서 좀 불편한 거 빼고는 큰 문제 없어요.""그럼
“역시 이런 식으로 문제가 될 줄 알았어요.”은서는 싸늘한 눈빛으로 말하자, 손기수가 물었다.[이제 어떻게 하죠?]구은서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장말숙한테 손자가 있잖아요. 그 애를 데려가요. 안전한 곳에 숨겨두고 지켜여.”이에 손기수는 비죽 웃으며 말했다.[그건 납치 아닌가요?]“이건 우리 엄마 뜻이에요.”은서는 그 말을 강조하듯 단호하게 말했다.“일만 제대로 끝내면, 보수는 두 배로 줄 거예요.”그제야 손기수는 만족스레 웃으며 대답했다.[좋아요. 저한테 맡기세요.]은서는 다시 신신당부했다. “숨겨두기만 해야 해요. 절대 다치게 하면 안 돼요.”이에 손기수는 급히 말했다.[우리가 어떻게 감히 그런 짓을 하겠어요!]은서는 차가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우리 엄마 말씀만 잘 따르면,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거예요.”모든 게 은정을 내쫓는 날까지만 버티면 그만이었다. 장말숙의 아들이 위협되지 않게 만들어야 했고, 지금 중요한 건 은정을 최대한 빨리 강제로 떠나게 만드는 일이었다.두 시간 후.오현빈이 급히 은정에게 전화를 걸었다.[형님, 큰일이에요. 장말숙 아주머니 손자가 납치당했어요!”은정의 눈빛이 차갑게 되었다. 그와 유진의 계획은 장말숙의 아들이 철없는 무뢰한이라는 걸 이용해, 서선영 쪽 사람들과 충돌이 일어나게 만들고 그 사이에서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었다.그런데 서선영은 한 수 더 앞질렀다. 직접 손자를 납치해 버린 것이다. 은정은 느긋한 듯 말했지만, 말투엔 서늘한 살기가 묻어났다.“왜 못 막았어?”현빈이 대답했다.[도착했을 땐 이미 데려가고 난 뒤였어요. 아이는 집에 혼자 있었고요.]장말숙은 요즘 일을 그만두고 손자를 돌보고 있었다. 자기 아들은 놀기 좋아하고 도박을 일삼으며 최근 큰 빚까지 졌고, 며느리는 친정으로 들어가 버렸다.장말숙이 서선영의 돈을 받은 것도 빚을 갚고 며느리를 다시 불러들이기 위한 것이었다.그날 점심을 먹고 잠시 슈퍼에 다녀온 사이, 손자가 납치된 것이다.은정은 알고 있
“아주머니는 분명 그날 일에 대해 알고 있어요. 그 사람한테 직접 확인하러 갈 거예요!”임유진은 말을 끝내자마자 그대로 뛰쳐나갔다.“유진아!”구은서는 몇 걸음 뒤쫓았지만, 유진은 이미 계단 아래로 사라지고 있었다. 은서는 굳게 이를 악물며 눈살을 찌푸렸다.서선영이 집에 없다는 걸 알자, 그녀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장말숙 아주머니 잘 지켜봐요. 유진이 그날 일 알아보려고, 지금 그 사람 찾으러 갔으니까.”그러나 서선영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걔가 뭘 안다고 찾아?]은서는 차분히 말했다.“유진은 임씨 집안 사람이야. 찾으려면 못 찾을 사람이 없죠.”이에 서선영의 말투도 조금 무거워졌다.[알았어. 내가 금방 사람 붙여서 장말숙 감시하라고 할게.]은서는 이어서 냉랭하게 따져 물었다.“절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는다면서요? 근데 걔는 어떻게 안 거예요?”유진이 알았다는 건, 임씨 가족들까지도 이미 감지했다는 뜻이었다. 이에 은서는 불안감에 입술을 꾹 눌렀다.서선영은 얼버무리며 말했다.[아마 도우미 중 누가 말실수했을 거야. 다시 철저히 단속해 둘게. 걱정하지 마. 소문 좀 난다 해도 너한테까지 영향은 안 가. 넌 그냥 조용히 대본 연습이나 해.][이번 영화, 내가 네 외삼촌 꼬드겨서 겨우 투자받은 거 알지? 이번 기회 잘 잡아야 해. 딴 건 신경 쓰지 마. 연기만 잘하면 돼.]은서는 그 말에 더욱 날카로워졌다. 이번 영화는 유명 감독의 대작이었고, 은서에게는 이미지 회복의 유일한 기회였다. 그렇기에 서선영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나 곧 촬영 들어가요. 그러니까 이번 일 절대 망치지 마요.”[알았어!]서선영은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유진은 급히 차로 돌아와 깊게 숨을 들이쉰 후, 곧장 은정에게 전화를 걸었다.“서선영 쪽에서 곧 움직일 거예요.”[알고 있어. 이미 준비해 뒀어.]은정의 목소리는 침착했고, 유진은 안심하며 숨을 내쉬었다.이윽고, 은정이 조용히 말했다.[고생 많았어.]이에 유진은 입꼬리를 살짝 올
“아파요!”유진은 짧은 비명을 내뱉으며 순식간에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녀는 팔을 뻗어 구은정의 목에 매달리듯 안으며, 자기 얼굴을 숨기려 했다.이에 은정은 그녀의 어깨를 쓸어내리며 허스키한 목소리로 낮게 웃었다.“왜 예전 같지 않아? 예전엔 몰래라도 키스하려고 했으면서, 이젠 실컷 하라고 해도 도망치기 바쁘네.”유진은 은정을 꼭 안으며 눈가가 붉게 물들었지만 속은 터질 듯 행복했다. 이제는 몰래 키스할 필요가 없다. 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할 수 있었다.은정은 유진의 발그레한 귀에 입을 맞추며 낮게 속삭였다.“전에 난 늘 걱정했어. 네가 그냥 어린 마음에 나한테 끌리는 거라고. 그저 신기하고 새로워서, 가질 수 없으니까 더 마음이 가는 거라고.”“우리가 진짜로 사귀게 되면 금세 질릴 거라고. 나는 사실 정말 재미없는 사람이야. 총 쏘고 싸우는 것 빼곤 할 줄 아는 게 없어.”“요즘 애들이 좋아하는 것도 몰라. 마음도 더 이상 젊지 않아.”“그래서 넌 언젠가 내가 생각보다 별거 아니라는 걸 깨닫고, 그 마음이 식을까 봐 두려웠어.”유진은 목이 메어, 콧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그럼 내가 기억 잃었을 때, 왜 다시 나한테 다가왔어요?”은정은 예전엔 그렇게 차갑게 거절했던 사람인데, 교통사고 한 번 났다고 갑자기 사랑하게 된 걸까? 혹시 죄책감 때문은 아니었을까?그런 생각이 유진을 계속 불안하게 했다. 잠시 침묵하던 은정이 조용히 말했다.“아마 너 없는 세상이, 정말로 견딜 수 없을 만큼 어둡고 차가웠기 때문일 거야.”그 말에 유진의 가슴은 요동쳤다. 그녀는 조용히 몸을 일으켜 은정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마음 깊은 곳까지 꿰뚫어 보려는 듯, 어둠을 걷어내고 자신의 빛으로 은정의 세상을 덮어주려는 듯한 눈빛이었다.유진은 다시 한번, 은정에게 입을 맞췄는데, 이번엔 더욱 깊고 부드러운 입맞춤이었다.은정은 곧 유진을 세게 안았고, 불같이 뜨거운 열기가 유진을 감쌌다. 죽음 같은 어둠 속에서 되살아난 사람처럼, 은정의 키스는
“그 사람들이 설마...”유진은 커다란 눈을 뜨고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이에 구은정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네가 생각한 그대로야.”유진은 믿기지 않는 듯 놀람과 동시에 깊은 자책의 기색을 띄웠다.“결국 내가 이렇게 만든 거잖아요.”“자꾸 그런 식으로 네 탓 하지 마.”은정은 그녀의 뺨을 다정하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너는 둘 사이의 더러운 사정도 몰랐잖아.”유진은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서선영은 그래도 이해가 가. 근데 구은서는 왜 그렇게까지 자기 엄마한테 협조한 거예요?”“자기 명예가 달린 문제인데, 게다가 지금은 연예인이잖아요. 설령 피해자라 해도, 그런 얘기 퍼지는 게 좋을 리 없잖아요.”은정은 깊은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대답했다.“십몇 년 전 그 일 땐, 은서는 진짜로 몰랐던 것 같아. 내가 샤워 끝내고 나왔을 땐 자고 있었고, 서선영이 소리 지르고 난리 쳐도 안 일어났거든.”“그땐 그냥 서선영한테 이용당한 거지. 근데 이번엔 서선영이 어떻게 설득했는지는 나도 몰라.”유진은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서선영은 정말 너무 악랄했다. 자기 딸까지도 그런 식으로 이용한다면, 못 할 짓이 뭐가 있을까?더구나 서선영은 알고 있었다. 이런 식의 루머가 은정에게 가장 치명적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게 바로 구은태에게도 가장 아픈 약점이라는 것을. 그래서 서선영은 또다시 그 수를 썼다.유진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중얼거렸다.“그때 전화받은 아주머니, 그 사람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찾을 수는 있어. 하지만 서선영한테서 돈을 받았고, 아마 협박도 받았을 거야.솔직히 말해줄 가능성은 작아.”은정은 냉정하게 말하자, 유진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그래도 찾아봐야죠. 당장 데리고 가서 집에 가서 진실을 말하게 해야 해요!”은정은 유진의 손목을 붙잡았는데, 목소리는 단호하면서도 부드러웠다.“서두르지 마.”“어떻게 안 서둘러요! 지금 이미 밖에선 온갖 소문이 돌고 있다고요!”유진이 답답해하며 소리치자,
“그날 밤 전화했을 때 말이야.”유진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그게 바로 그날이었어요?”“그래.”은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그는 서선영이 무슨 짓을 꾸미는지 몰랐다. 혹시 다시는 유진을 볼 수 없게 될까 두려워, 마지막으로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서 전화를 걸었다.사실은 유진에게 자기 집으로 와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끝내 그 말이 목구멍에서 나오지 않았다.유진은 자책하듯 말했다.“나도 그때 뭔가 이상하단 걸 느꼈어. 근데 안 찾아갔어요.”은정은 유진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말했다.“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그때는 이미 깊은 밤이었고, 유진은 단지 모호한 한 통의 전화로 구씨 저택까지 달려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유진의 마음속은 여전히 무겁고 미안했다.“내가 갔더라면, 그 여자의 계략이 통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는데요.”“유진아, 우리 이제 과거에 대해 그만 후회하자. 응?”은정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유진을 바라보며 말하자,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중요한 건, 서선영 모녀의 거짓말을 어떻게 밝혀낼지였다.“그 여자가 떠나라고 하니까, 진짜 떠나려던 거예요? 도대체 언제부터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됐어?”유진이 화가 난 듯 말하자, 은정은 그녀를 바라보며, 차가운 듯 부드러운 눈빛으로 대답했다.“내 명예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어. 네가 그 일 알고 나서 날 더 미워할까 봐, 그게 무서웠지.”호텔에서 유진이 여씨 집안 가족 모임에 참석한 걸 봤을 때, 그는 마음이 무너졌다.자신은 온몸이 상처투성이고, 앞으로도 더러운 과거 때문에 손가락질받을 인생인데, 그런 자신의 곁에 유진을 두는 게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했다.유진은 따뜻하면서도 가슴 아픈 눈빛으로 은정을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유진은 두 손으로 은정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안개 낀 듯한 눈동자가 그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은정의 어두운 그림자를 밀어내고 그 마음속까지 빛으로 채우려는 듯한 눈빛이었다.이번에는 유진이 먼저 입을 맞췄는데, 그 키스는 애틋하고 따스했
“정말 못됐어요. 그런데도 난, 이렇게 좋아하니까.”유진은 코끝을 훌쩍이며 속삭이듯 말하자, 은정의 눈빛이 짙게 가라앉았고, 유진을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유진은 흐느낌 속에 물었다.“그래도 또 떠날 거예요?”“안 떠나.”은정은 마치 유진의 몸이 자기의 일부라도 된 것처럼 꼭 끌어안았다.유진은 입술을 꾹 다물었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도 입가엔 참을 수 없이 번지는 미소가 피어올랐다.멀찍이서 둘을 바라보던 소희는 마침내 안도한 듯 미소를 지었고, 잠시 바라보다 조용히 돌아섰다.은정은 티켓 환불을 마치고, 유진의 손을 꼭 잡고 공항 로비를 빠져나왔다.그때 소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유진이는 맡길게. 잘 달래줘. 난 먼저 갈게.]은정은 묵직한 음성으로 대답했다.“소희, 정말 고마워.”[혹시 집안 문제, 도와줄 일 있으면 말해.]은정은 원래의 냉정한 눈빛을 되찾으며, 대답했다.“아니, 내 일은 내가 해결할게.”[그래.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해. 임씨 집안 쪽 설득도 내가 도와줄 수 있어.]은정은 낮게 웃었다.“혼자 힘으로 안 되면 그때 부탁할게.”전화를 끊은 뒤, 유진이 옆에서 물었다.“소희, 갔어요?”“응. 우리 집에 가자.”은정은 다시 유진의 손을 꼭 잡았다.유진은 그날 회사에 가지 않고, 전화를 걸어 휴가를 냈다. 이경 아파트로 돌아오자마자, 문을 열고 들어선 은정은 유진을 번쩍 안아 들고 그대로 입을 맞췄다.유진은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고, 두 다리로 그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세게 은정을 끌어안고 입맞춤에 응했다.유진의 반응은 은정을 더욱 자극했고, 입술은 불꽃처럼 뜨거웠다. 은정은 강렬함과 부드러움을 오가며 끊임없이 유진의 반응을 확인했고, 만족할 만한 대답을 얻었을 때에야 숨을 고르며 입술을 떼었다.유진은 숨을 헐떡이며 눈을 반쯤 감고 있었다.“언제 기억난 거야?”은정은 유진의 입술 위에서 낮게 물었다.유진의 커다란 눈동자엔 얇은 안개 같은 물기가 맺혀 있었고, 눈가엔 눈물 자국이 남아 붉
“나쁜 놈!”유진은 이를 악물고 욕설을 내뱉으며, 손등으로 눈물을 거칠게 닦고는 그대로 뛰쳐나갔다.허둥지둥 엘리베이터를 내려가던 중, 예상치 못하게 1층 현관 앞에서 막 차에서 내리는 소희와 마주쳤다.유진은 달려가 소희를 끌어안으며, 눈물로 목소리가 떨렸다.“소희야. 그 사람, 갔어.”소희는 차가운 눈빛으로 유진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손을 들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침착하게 말했다.“지금쯤 공항 도착했을 거야. 얼른 차 타. 우리가 가서 막자.”유진은 울먹이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응.”차에 올라탄 후, 소희는 아침 출근길 교통체증을 피해 가능한 한 빠른 길로 달렸다. 조수석에 앉은 유진은 여전히 망연자실한 얼굴이었다.소희는 유진을 스치듯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두려워하지 마. 이번엔, 걔가 지구 반대편까지 도망친다 해도 내가 꼭 데려올게.”유진은 이를 악물며 눈물 맺힌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응.”공항에 도착하자, 소희는 시계를 확인했다.“지금쯤이면 막 보안 검색대 들어갔을 거야. 넌 안으로 들어가. 난 밖에서 기다릴게.”유진은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사람들이 북적이는 공항 안을 정신없이 뛰어다녔다.탑승 게이트 앞, 마침내 수많은 인파 속에서 그토록 익숙하고, 아프도록 그리운 구은정의 뒷모습을 발견했다.너무 긴장한 탓일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은정이 거의 들어가려던 순간, 유진은 겨우 목을 눌러 뜨거운 한마디를 토해냈다.“서인!”이에 은정의 발걸음이 멈췄고, 순간 고개를 홱 돌렸다. 사람들 사이 너머로, 유진이 서 있었다.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친 그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지나가는 사람들, 소음, 움직임. 모든 게 멀어지고, 과거와 현재가 한꺼번에 겹쳤다.처음 만났던 순간. 잃어버린 가방을 찾아 건네주던 은정의 등.“정말 대단해.”감탄하던 유진의 눈빛. 차가웠던 은정의 반응. 하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은정이 궁금했고, 따랐고, 그렇게 샤브샤브집에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다.유진은
방연하는 어이없다는 듯 여진구를 바라보며 말했다.“선배, 지금 진심이에요? 머리 괜찮아?”여진구는 연하를 째려보았다. 연하는 주변의 예쁘게 꾸며진 꽃길과 풍선을 둘러보며 부러움 섞인 말투로 말했다.“이거 진짜 예쁘네요. 나도 나중에 이런 대접 한번 받아볼 수 있을까요?”“너한테 고백할 남자가 이런 것도 못 하면, 내가 대신 해줄게.”진구는 시원하게 말하자, 연하는 헛웃음을 지으며 받아쳤다.“미리 감사 인사드릴게요, 여진구 사장님.”그 시각, 유진은 집에 돌아왔지만 마음은 여전히 뒤숭숭했고, 계속 뭔가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그날 밤은 뒤척이기만 하다가, 새벽이 되자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아침 7시가 되자, 임유민이 방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 문에 기대선 그는 느슨하게 말했다.“누나, 이번 주 금요일 우리 학교 축구 경기 있어. 내가 수비수로 나가는데, 학교에서 가족 참관 받는대. 올래?”유진은 고개를 들어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좋지. 꼭 응원하러 갈게.”유민은 그녀가 짐을 싸는 걸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근데 누나, 짐은 왜 싸?”유진은 노트북을 가방에 넣으며 말했다.“이젠 다시 이경 아파트로 돌아가려고.”유민은 조금 놀랐다.“안 돌아가겠다고 하지 않았어?”유진은 눈을 내리깔며 담담하게 대답했다.“가고 싶어졌어.”유민은 문에 기댄 채 웃으며 중얼거렸다.“역시 내 예상이 맞았네. 근데 이번에는 그렇게 바보처럼 굴지 마.”유진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뭐라고?”이에 유민은 씩 웃었다.“엄마는 아침 일찍 나갔고, 할머니한테는 꼭 인사하고 가. 안 그러면 또 가출했다고 난리 나실걸.”유진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집에 없을 땐, 네가 좀 더 착하게 굴어. 할머니 기분 잘 맞춰 드리고.”유민은 양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말했다.“그건 숙모한테나 하라고.”유진은 참지 못하고 푸흐 웃음을 터뜨렸다. 짐을 정리한 후, 운전기사에게 짐을 차에 실어달라 부탁하고 자신은 할머니에게 인사드리
유진은 은정이 차를 타고 떠나는 모습을 직접 보고 나서야 다시 호텔 위층으로 돌아갔다. 혹시나 여씨 집안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할까 봐 대비해야 했다.라운지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흩어졌고, 유진이 그 안으로 들어섰을 때, 여씨 집안의 두 명의 며느리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셋째네는 평소에 그렇게 거칠게 굴더니, 오늘 자기 아들이 그렇게 당했는데도 조용하네?”다른 여성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들었는데 인후가 아가씨를 모욕해서 그렇게 된 거라더라고요. 이 일, 임씨 쪽이 알게 되면 여인후 가만두지 않을걸요?”“그래서였구나! 근데 때린 사람이 누군데?”“그건 잘 모르겠어요.”유진은 고개를 돌려 벽에 기대었다. 그 순간, 조금 전 은정의 어두운 눈빛과 먹먹한 표정이 머릿속을 스쳤고, 가슴이 다시 시리게 아파왔다.그때 여진구가 메시지를 보내오자, 유진은 핸드백을 챙겨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유진아!”호텔 정원에서 진구가 유진을 발견하고는 반갑게 다가왔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꽃다발을 꺼내려 했지만 유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선배!”이에 진구는 웃으며 말했다.“먼저 말해봐.”유진은 진지한 표정으로 진구를 바라보며 말했다.“선배, 전 늘 당신을 선배로, 좋은 친구로 생각했어요. 그 이상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어요.”“오늘 가족 모임에 참석하면서 다들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부디 오해가 더 커지지 않도록, 할아버지랑 어른들께는 확실히 말씀드려 주세요.”진구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직 아무 말도 꺼내지도 않았는데, 유진은 이미 자신의 마음을 간파하고,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선을 그어버린 것이다.유진은 미소를 지었지만 그 표정엔 피곤함이 묻어났다.“조금 피곤해서 먼저 갈게요. 할아버지께는 대신 인사 부탁드려요.”유진은 말을 마치고 돌아섰다.몇 걸음만 걸었을까? 그 순간, 뒤쪽 정원에 불이 환하게 밝혀졌다. 형형색색의 하트 모양 꽃장식이 환하게 빛났고, 수많은 풍선과 조명이 하늘로 떠올랐다. 몽환적이고 낭만적인 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