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소희가 나아갔다. 밖은 긴 복도였고, 천장의 백열등은 차가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소희는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복도로 들어섰다. 복도 양쪽에는 실험실과 창고가 있었으며, 유리문 너머로 다양하고 이상한 기계들이 보였다.소희는 계속해서 안쪽으로 걸어갔다. 주위는 고요하고 적막했지만,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손톱으로 유리를 긁는 듯한 소리와 야생 짐승의 포효 같은 소리였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걸어간 소희는 매우 견고한 큰 문 앞에 도착했다. 문에는 비밀번호가 걸려 있었다.소희는 간미연에게 지시를 내렸고, 미연은 30초 만에 비밀번호를 해킹했다. 그리고 소희가 비밀번호를 입력하자, 대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문 안으로 들어간 소희는 복도 양쪽의 유리문 넘어 풍경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소름이 돋았다. 같은 복도, 같은 유리방이지만 유리방 안에는 기계나 수술 도구가 아닌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 사람들은 이미 정상이 아니었다. 눈이 튀어나오고 사지가 퇴화한 사람들은 마치 외계인처럼 보였다. 그리고 거의 3미터에 달하는 거인들은 마치 원시 거인처럼 보였는데, 피부가 투명해져서 혈관과 내장이 선명하게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누군가 들어오자, 이 사람들은 유리에 부딪혀 사나운 표정을 지으며 소희를 향해 포효했다. 거인은 거대한 손바닥으로 유리를 두들겨 유리벽이 흔들렸다. 각 유리 방 바깥에는 영어로 된 라벨이 붙어 있었고, 실험 데이터였는데 알고보니 이들은 모두 실험 대상이었다.최근 실험을 받은 사람들도 있었고, 아직 의식이 남아 있는 사람들은 유리에 기대어 처참하고 애처로운 표정을 지으며 소희에게 구조를 호소했다. 소희는 그들의 절망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만약 자신도 그렇게 변했다면, 차라리 죽고 싶을 것이다.소희가 더 안쪽으로 걸어갈수록 더욱 손발이 차가워지고 등골이 오싹해졌다.‘오빠가 이곳에 있을까?’소희는 유리 방 안의 모든 사람을 바라보며, 그들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며, 친숙한 인물이 있을까 두려워했다. 유리 방은
분명히 남궁민은 웰오드와 대화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소희는 매일 밤 야식을 배달했지만, 찾고자 하는 사람을 찾지 못했다. 소희가 찾는 그 사람은 야식조차 먹지 않는 자제력을 가진 사람인가? 그리고 소희는 다시 지하 11층에 갔지만, 아무런 소득도 없었다. 하지만 소득이 없다는 것도 좋은 소식이었다. 적어도 소희의 오빠가 실험을 받는 사람 중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했으니까.소희는 이틀 동안 쉬기로 결정했다. 매일 소희가 가장하는 여성 메이드는 아침마다 목과 목덜미가 아파 의사를 찾아보기로 했으니까.그날 밤, 소희와 민은 바의 바텐더 앞에 나란히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양재아는 바에서 특별 제작된 메이드복을 입고 다가와 소희와 민에게 두 잔의 술을 건네며 말했다. “제가 대접할게요!”그러자 민은 신사처럼 웃으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고마워요!”민의 말에 재아는 얼굴이 붉어지며 대답했다.“별말씀을요, 여러분이 저에게 많은 도움을 주셔서 저도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어요!”이때 소희가 물었다. “남자친구 만났어요?”그러자 재아는 슬프게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저를 일부러 피하고 있는 것 같아요.”하지만 재아는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 사람이 요하네스버그를 떠나지 않는 한, 저는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그래요!” 민은 재아의 생각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소희는 민을 한번 쳐다보고 재아에게 조언했다. “이 사람의 말은 듣지 마세요. 찾지 못하면 빨리 돌아가고요. 여기는 여전히 위험해요.”그러자 재아는 고민에 빠졌다. “조금만 더 기다려볼게요!”재아는 멀리서 여기까지 왔고, 남자친구의 입에서 직접 듣지 않고는 마음을 접을 수 없었다. 재아가 떠난 후, 민은 소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은 분명 연애를 해본 적이 없을 것 같네요!”소희가 눈썹을 추켜세우며 물었다. “왜 그렇게 말하죠?”“직감이에요!” 민은 이마를 짚으며 소희를 탐스럽게 바라보며 말했다. “하늘이 날 보내 당신을 개화
남궁민은 잠시 당황했고 소희는 이미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민은 잔에 든 술을 마셨고, 조금 우울해졌다. ‘이 세상에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또 있다고?’민은 그런 생각에 불만을 품었고, 소희가 결국은 연애에 빠진 사람이라고 확신했다. 연애에 미쳐 사는 사람들은 사실과 진실을 구분하지 못하니까.다음 날 이른 아침, 웰오드의 사람들이 와서 민을 찾아왔다. 레이든이 돌아왔으니 만나러 오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민은 이번에는 거절하지 않고 소희와 함께 갔다.소희는 이전과 같은 카페에서 기다리며, 민이 웰오드와 함께 흰색 대문으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사실 소희는 신비로운 레이든이 도대체 누구인지 직접 보고 싶었다. 그들이 소희를 남궁민과 함께 들어가지 못하게 한 것은 정말로 이러한 비밀 협력에 여자가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인지, 아니면 경계하기 때문인지 몰랐다.소희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마주 보이는 사무실 건물을 살펴보았는데 거기에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민은 레이든의 회의실에서 마주 앉았다. 들은 대로 레이든은 은색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그 마스크는 민의 눈과 코를 가렸다. 얼굴을 가로지르는 긴 흉터는 입꼬리까지 이어져 있었고, 그 모습은 매우 무서웠다. 그런 상처를 입었다면 당시 얼마나 위험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레이든의 체구는 크고 건장했으며, 앉아 있는 자체만으로도 방 안에 강한 압박감이 흘렀다.민은 레이든의 맞은편에 앉아 있었고, 표정에는 엄숙함이 더해졌다. “전설 속의 레이든 씨를 만나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레이든은 마스크 뒤에서 무표정하게 민을 바라보며 말했다. “남궁민 씨가 원하는 이익 분배는 동의할 수 있지만, 조건을 하나 더 추가하고 싶습니다.”그러자 민은 차분하게 말했다. “어떤 조건인지 말해보세요.”“당신이 데려온 여성, 라일락을 원합니다.” 레이든은 음울한 목소리로 말하자 민의 눈빛이 깊어졌다. “라일락? 당신이 라일락을 알고 있나요?”“그건 당신이 신경 쓸 일이 아닙니다. 그저 그 여자를 우
남궁민이 카페에 들어올 때, 소희는 지루해 보이며 잡지를 넘기고 있었다. 그리고 민이 들어오자 소희는 고개를 들며 물었다. “레이든을 만났어요?”“만났죠!” 민이 앉으며 팔걸이에 팔을 올리고 조롱하듯 말했다. “소문대로, 마스크를 쓰고 있었어요. 정말로 신비주의의 끝판왕인 것 같더라고요. 도대체 무엇을 숨기려는 건지 모르겠네요.”“그러면 협력은 어떻게 됐어요?” “그럭저럭, 아직 몇 가지 세부 사항을 더 논의해야 하죠.” 민이 소희를 돌아보며 약간의 호기심이 발동해 물었다. “여기에 와서 도대체 누구를 찾는 거예요?”소희는 깊은 눈빛으로 천천히 대답했다. “내 오빠요.”“오빠?” 민이 웃으며 말했다. “오빠가 온두리에 있어요?”“네, 여기서 오빠를 본 사람이 있다고 들었어요.”“사진 있어요? 보여줘 봐요. 나도 찾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까.”“고마워요!” 소희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괜찮아요. 내가 직접 찾을 거니까.”민은 소희의 정체에 대해 궁금해하면서도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모두 조용히 앉아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바라보며 각자의 생각에 잠겼다. 낮 시간의 요하네스버그는 정말 조용하고, 환경도 아름다워서 어느 각도로 보아도 마음을 사로잡는 풍경이었다.밤이 되자, 민이 집을 나서기 전에 다시 소희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조급해하지 않고 혼자서 바로 향했다.민이 막 앉았을 때, 피부가 하얀 젊은 여자가 다가와 민의 무릎 위에 바로 앉았다. 여자는 술을 한 모금 마시고 민의 입술에 다가갔다. 민은 오는 이를 거부하지 않고 고개를 숙여 여자와 키스를 나누었다.10 분 후, 여자는 민을 이끌고 자신의 방으로 향했고 민은 여자의 허리를 감싸 안고 가볍게 대화를 나누었다. “얼마나 오래 있었어?”“일 년.” 여자는 약간 애교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어떻게 왔어?”“혼자 왔죠. 여기서 돈을 많이 번다고 해서요.”“얼마나 벌었는데?”“미워요!”두 사람은 장난치며 계단을 올라 방문
남궁민의 얼굴색이 갑자기 변했다. “당신은 알고 있어요?”“아주 잘 알고 있죠.”민은 실제로 서희의 죽음에 대해 조사를 해보았지만, 서희의 죽음은 내부적으로도 비밀에 부쳐졌고, 용병계와도 연관이 없었다. 서희가 죽은 후, 서희와 관련된 모든 것은 마치 서희가 이 세상에 존재한 적이 없던 것처럼 지워졌다. 그래서 민이 큰 노력을 기울여도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다. 몇 년 동안 이 사건은 민의 마음 한편에 남아있는 응어리였다. 레이든은 당시의 사건뿐만 아니라 민에 대해서도 매우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랬기에 민은 눈을 가늘게 뜨고 레이든을 바라보며, 이 사람이 정말로 무서운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민이 저택에 돌아왔을 때 소희는 아직 자지 않고 있었다. 소희는 방금 임구택과 화상통화를 마치고 물을 마시러 내려오려고 했는데, 민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놀랐다.“이렇게 일찍 돌아왔다고요?”민은 그녀를 보며 웃으며 말했다. “나를 맞이하려고 특별히 내려왔나 보죠?”“물 마시러요!” 소희는 담담하게 대답하며 주방으로 걸어갔다. 그러고는 냉장고에서 차가운 물병을 꺼냈고, 민에게 물었다. “필요하세요?”민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위가 좀 불편해요.”“그럼 일찍 자요!” 소희가 말하며 물병을 들고 계단을 올라갔다.“잠깐!” 민이 그녀를 보며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불편하다고 말했는데, 조금도 신경 쓰지 않나요?”소희가 돌아보며 냉담하게 말했다. “내가 당신의 신변 보호를 담당하는 것뿐이죠. 그리고 위통은 죽음에 이르지 않아요. 제 책임 범위 밖입니다!”소희의 말에 민은 할 말을 잃었다. 소희의 모습이 계단 구석에서 사라지자, 민은 눈썹을 추켜세웠다. 이렇게 냉정하지만 또 이토록 흥미로운 보디가드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다음 날, 소희가 일찍 일어나 아래층으로 내려왔을 때, 민은 이미 일어나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소희를 기다리고 있었다. 소희가 다가가자 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소희를 위해 의자를 빼주었다. “오늘 아침은 다양한
남궁민이 문을 들어서자마자 소희는 카페로 발걸음을 옮겼다. 소희는 커피와 초콜릿케이크를 주문했는데, 커피를 반쯤 마시던 중 갑작스레 민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리고 전화를 받은 소희가 말했다. “여보세요?”“라일락!” 민의 목소리가 급했다. “조건이 타결되지 않았어.”민의 말은 갑자기 끊겼고, 전화는 끊어졌다.소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카페를 빠르게 나와 맞은편으로 달려갔다. 입구의 경비원이 소희를 막으려 했지만, 소희는 경비원의 옷깃을 움켜잡고 경비원의 머리를 단단한 호두나무 문에 부딪혔다.이전에 한 번 들어갔던 적이 있어서 내부 구조에 익숙했던 소희는 가장 빠른 속도로 7층에 도착해 문을 두드리지 않고 발로 차 버렸다. 문을 열자 민이 의자에 묶여 눈을 크게 뜨고 소희를 바라보고 있었다.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고 뒤이어 다섯 명의 건장한 남자가 소희에게 달려들었다. 소희는 공중으로 솟구쳐 한 남자의 팔을 잡고 뚜두둑 소리와 함께 그대로 꺾었다. 그리고 남자의 다리를 밟고 뛰어오르며 다른 남자의 목에 주먹을 날렸다.소희의 움직임은 빠르고 강력했으며 순식간에 두 명이 소희의 손에 쓰러졌다. 나머지 세 명이 다시 달려들었을 때, 소희의 손에서 차가운 빛이 번뜩이며 단검이 한 남자의 팔에 깊숙이 박혔다. 소희는 칼날을 뼈에 닿게 하고 세게 돌리고 찔러 비명이 방안에 울려 퍼졌다.소희는 남자를 밀쳐내고 나머지 두 사람에게 칼을 휘둘렀다. 그러나 갑자기 소희의 등에 찌릿한 고통이 느껴졌고, 공격하는 동작이 느려졌다. 그리고 소희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등에 박힌 것을 뽑아냈는데 마취 바늘이었다.소희는 황급히 민을 바라보았다. 소희의 뒤쪽은 방어하지 않았는데, 그곳에는 오직 민뿐이었다. 민은 이미 밧줄이 풀려 있었고, 손에는 마취총이 들려 있었다. 민은 소희를 향해 총을 천천히 내리면서 미안하다는 듯 깊은 눈빛을 보냈다.소희는 민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묻고 싶었다. 그 사당, 그 명패, 그 사진 때문에 민에게 경계를 풀었었
남궁민은 소희가 자주 앉던 자리까지 걸어가 소희 자리의 맞은편에 앉았다. 소희가 주문했던 커피는 반쯤 남아 있었고, 초콜릿케이크는 한 입도 먹지 못한 채 그대로였다. 소희는 자신의 전화를 받자마자 분명 급히 달려온 것이었다. 소희는 민을 보호하기 위해 간 것이다.민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마치 굉장한 무게가 가슴을 누르는 것처럼 숨이 턱 막혔다. 그리고 스스로 세뇌했다. 그저 한 여자일 뿐이라고, 너무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하지만 소희가 끌려가는 순간부터 민의 불안은 점점 쌓여만 갔고, 이제는 거의 공포로 변해갔다. 레이든은 실험을 위해 소희를 사용하겠다고 했고, 그것이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했지만, 모두가 알고 있듯이 그 건물에 들어간 사람이 다시 나올 수는 없었다.민은 접시 속의 초콜릿케이크를 바라보다가 소희가 자신을 바라보던 마지막 눈빛을 떠올렸다. 그것은 배신감으로 가득 찬 눈빛이었으며, 믿을 수 없다는 듯한 증오가 서려 있었다. 민은 눈을 감고 그만 생각하자고 생각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빠르게 카페를 떠났다....밝게 불이 켜진 실험실에서, 소희는 침대 위에 누워 있었고 주위에는 각종 기계가 배치되어 있었다. 세 명의 의사가 하얀 보호복을 입고 침대 앞에 서서 무표정하게 소희를 바라보았다. 공기는 차가워져 굳어지는 듯했고, 천장의 백열등만이 눈부신 빛을 발하고 있었다.간호사가 차가운 약품을 담은 카트를 밀고 왔고, 의사 중 한 명이 소희의 꼭 닫힌 눈을 확인한 후, 다른 의사에게서 받은 주사기로 소희의 가는 팔에 푸른 액체를 천천히 주입했다....강성오후 5시, 소설아가 대표의 사무실에 들어와 일정을 보고했다. “사장님, 오늘 저녁의 명향 와인 파티는 돌핀 호텔 37층 연회장에서 열리고 8시부터 시작됩니다.”임구택은 파일을 보며 다소 정신없는 상태로 대답했다. “알았어요.”설아는 잠시 말을 멈추고 음성을 부드럽게 낮췄다. “오늘 저녁 제가 시간이 있어서 사장님과 함께 갈 수 있습니다.”하지만 구택은 고개도 들지 않고 대
“정말이에요?” 소설아가 농담조로 말했다. “소문에는 제가 임구택 사장님을 보좌할 만큼 능력이 있어서 그렇다고 하잖아요!”구택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오늘의 설아가 평소와 다르다고 느꼈다.“물론이죠, 물론이죠! 임구택 사장님의 비서로 일할 수 있는 업무 능력이야말로 보통 사람과 비교할 수 없죠!”다른 사람들도 잇따라 칭찬을 아낌없이 보냈다.“설아 씨가 사장님 곁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보좌해 온 것을 보면, 재능과 결단력이 눈에 띄죠!”“설아 씨는 능력뿐만 아니라 이렇게 예쁘기까지 하니, 정말 사장님이 부럽습니다.”“사장님 곁에서야만 설아 씨 같은 인재를 영입할 수 있죠!”...설아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평소에는 냉정한 얼굴에 온화한 미소가 번졌다. 구택은 이런 파티에 참석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설아도 싫어했지만, 오늘은 파티에 참석하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느꼈다.설아가 말을 꺼내지 않아도, 사람들이 구택 앞에서 설아의 가치에 대해 언급할 것이다. 설아는 구택의 곁에서 오래 있었지만, 아마 구택은 설아 존재를 잊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상기시켜 줄 필요가 있었다.설아는 더 이상 구택의 곁에서 미적지근하게 지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소희가 강성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것은 하늘이 자신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설아는 반드시 이 기회를 잘 살려야 했다. 파티 내내 설아는 구택의 곁을 지키며 밤새 칭찬을 받았다.밤 10시가 되자 구택은 파티에서 떠났고, 설아는 그텍의 뒤를 따라 걱정스럽게 물었다. “사장님, 술을 많이 드셨는데, 괜찮으세요?”구택은 돌아서 차갑게 설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 왜 있는 거죠?”그러자 설아는 곧바로 대답했다. “명향 그룹의 딸이 저랑 친구라서, 저를 초대했거든요.”구택은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둘만 있었고, 설아는 심장이 빠르게 뛰며 낮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지난 주말에 쇼핑몰에서 노정순 사모님을 만났어요. 그때 저를
“그날 밤 전화했을 때 말이야.”유진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그게 바로 그날이었어요?”“그래.”은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그는 서선영이 무슨 짓을 꾸미는지 몰랐다. 혹시 다시는 유진을 볼 수 없게 될까 두려워, 마지막으로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서 전화를 걸었다.사실은 유진에게 자기 집으로 와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끝내 그 말이 목구멍에서 나오지 않았다.유진은 자책하듯 말했다.“나도 그때 뭔가 이상하단 걸 느꼈어. 근데 안 찾아갔어요.”은정은 유진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말했다.“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그때는 이미 깊은 밤이었고, 유진은 단지 모호한 한 통의 전화로 구씨 저택까지 달려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유진의 마음속은 여전히 무겁고 미안했다.“내가 갔더라면, 그 여자의 계략이 통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는데요.”“유진아, 우리 이제 과거에 대해 그만 후회하자. 응?”은정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유진을 바라보며 말하자,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중요한 건, 서선영 모녀의 거짓말을 어떻게 밝혀낼지였다.“그 여자가 떠나라고 하니까, 진짜 떠나려던 거예요? 도대체 언제부터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됐어?”유진이 화가 난 듯 말하자, 은정은 그녀를 바라보며, 차가운 듯 부드러운 눈빛으로 대답했다.“내 명예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어. 네가 그 일 알고 나서 날 더 미워할까 봐, 그게 무서웠지.”호텔에서 유진이 여씨 집안 가족 모임에 참석한 걸 봤을 때, 그는 마음이 무너졌다.자신은 온몸이 상처투성이고, 앞으로도 더러운 과거 때문에 손가락질받을 인생인데, 그런 자신의 곁에 유진을 두는 게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했다.유진은 따뜻하면서도 가슴 아픈 눈빛으로 은정을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유진은 두 손으로 은정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안개 낀 듯한 눈동자가 그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은정의 어두운 그림자를 밀어내고 그 마음속까지 빛으로 채우려는 듯한 눈빛이었다.이번에는 유진이 먼저 입을 맞췄는데, 그 키스는 애틋하고 따스했
“정말 못됐어요. 그런데도 난, 이렇게 좋아하니까.”유진은 코끝을 훌쩍이며 속삭이듯 말하자, 은정의 눈빛이 짙게 가라앉았고, 유진을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유진은 흐느낌 속에 물었다.“그래도 또 떠날 거예요?”“안 떠나.”은정은 마치 유진의 몸이 자기의 일부라도 된 것처럼 꼭 끌어안았다.유진은 입술을 꾹 다물었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도 입가엔 참을 수 없이 번지는 미소가 피어올랐다.멀찍이서 둘을 바라보던 소희는 마침내 안도한 듯 미소를 지었고, 잠시 바라보다 조용히 돌아섰다.은정은 티켓 환불을 마치고, 유진의 손을 꼭 잡고 공항 로비를 빠져나왔다.그때 소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유진이는 맡길게. 잘 달래줘. 난 먼저 갈게.]은정은 묵직한 음성으로 대답했다.“소희, 정말 고마워.”[혹시 집안 문제, 도와줄 일 있으면 말해.]은정은 원래의 냉정한 눈빛을 되찾으며, 대답했다.“아니, 내 일은 내가 해결할게.”[그래.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해. 임씨 집안 쪽 설득도 내가 도와줄 수 있어.]은정은 낮게 웃었다.“혼자 힘으로 안 되면 그때 부탁할게.”전화를 끊은 뒤, 유진이 옆에서 물었다.“소희, 갔어요?”“응. 우리 집에 가자.”은정은 다시 유진의 손을 꼭 잡았다.유진은 그날 회사에 가지 않고, 전화를 걸어 휴가를 냈다. 이경 아파트로 돌아오자마자, 문을 열고 들어선 은정은 유진을 번쩍 안아 들고 그대로 입을 맞췄다.유진은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고, 두 다리로 그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세게 은정을 끌어안고 입맞춤에 응했다.유진의 반응은 은정을 더욱 자극했고, 입술은 불꽃처럼 뜨거웠다. 은정은 강렬함과 부드러움을 오가며 끊임없이 유진의 반응을 확인했고, 만족할 만한 대답을 얻었을 때에야 숨을 고르며 입술을 떼었다.유진은 숨을 헐떡이며 눈을 반쯤 감고 있었다.“언제 기억난 거야?”은정은 유진의 입술 위에서 낮게 물었다.유진의 커다란 눈동자엔 얇은 안개 같은 물기가 맺혀 있었고, 눈가엔 눈물 자국이 남아 붉
“나쁜 놈!”유진은 이를 악물고 욕설을 내뱉으며, 손등으로 눈물을 거칠게 닦고는 그대로 뛰쳐나갔다.허둥지둥 엘리베이터를 내려가던 중, 예상치 못하게 1층 현관 앞에서 막 차에서 내리는 소희와 마주쳤다.유진은 달려가 소희를 끌어안으며, 눈물로 목소리가 떨렸다.“소희야. 그 사람, 갔어.”소희는 차가운 눈빛으로 유진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손을 들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침착하게 말했다.“지금쯤 공항 도착했을 거야. 얼른 차 타. 우리가 가서 막자.”유진은 울먹이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응.”차에 올라탄 후, 소희는 아침 출근길 교통체증을 피해 가능한 한 빠른 길로 달렸다. 조수석에 앉은 유진은 여전히 망연자실한 얼굴이었다.소희는 유진을 스치듯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두려워하지 마. 이번엔, 걔가 지구 반대편까지 도망친다 해도 내가 꼭 데려올게.”유진은 이를 악물며 눈물 맺힌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응.”공항에 도착하자, 소희는 시계를 확인했다.“지금쯤이면 막 보안 검색대 들어갔을 거야. 넌 안으로 들어가. 난 밖에서 기다릴게.”유진은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사람들이 북적이는 공항 안을 정신없이 뛰어다녔다.탑승 게이트 앞, 마침내 수많은 인파 속에서 그토록 익숙하고, 아프도록 그리운 구은정의 뒷모습을 발견했다.너무 긴장한 탓일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은정이 거의 들어가려던 순간, 유진은 겨우 목을 눌러 뜨거운 한마디를 토해냈다.“서인!”이에 은정의 발걸음이 멈췄고, 순간 고개를 홱 돌렸다. 사람들 사이 너머로, 유진이 서 있었다.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친 그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지나가는 사람들, 소음, 움직임. 모든 게 멀어지고, 과거와 현재가 한꺼번에 겹쳤다.처음 만났던 순간. 잃어버린 가방을 찾아 건네주던 은정의 등.“정말 대단해.”감탄하던 유진의 눈빛. 차가웠던 은정의 반응. 하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은정이 궁금했고, 따랐고, 그렇게 샤브샤브집에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다.유진은
방연하는 어이없다는 듯 여진구를 바라보며 말했다.“선배, 지금 진심이에요? 머리 괜찮아?”여진구는 연하를 째려보았다. 연하는 주변의 예쁘게 꾸며진 꽃길과 풍선을 둘러보며 부러움 섞인 말투로 말했다.“이거 진짜 예쁘네요. 나도 나중에 이런 대접 한번 받아볼 수 있을까요?”“너한테 고백할 남자가 이런 것도 못 하면, 내가 대신 해줄게.”진구는 시원하게 말하자, 연하는 헛웃음을 지으며 받아쳤다.“미리 감사 인사드릴게요, 여진구 사장님.”그 시각, 유진은 집에 돌아왔지만 마음은 여전히 뒤숭숭했고, 계속 뭔가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그날 밤은 뒤척이기만 하다가, 새벽이 되자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아침 7시가 되자, 임유민이 방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 문에 기대선 그는 느슨하게 말했다.“누나, 이번 주 금요일 우리 학교 축구 경기 있어. 내가 수비수로 나가는데, 학교에서 가족 참관 받는대. 올래?”유진은 고개를 들어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좋지. 꼭 응원하러 갈게.”유민은 그녀가 짐을 싸는 걸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근데 누나, 짐은 왜 싸?”유진은 노트북을 가방에 넣으며 말했다.“이젠 다시 이경 아파트로 돌아가려고.”유민은 조금 놀랐다.“안 돌아가겠다고 하지 않았어?”유진은 눈을 내리깔며 담담하게 대답했다.“가고 싶어졌어.”유민은 문에 기댄 채 웃으며 중얼거렸다.“역시 내 예상이 맞았네. 근데 이번에는 그렇게 바보처럼 굴지 마.”유진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뭐라고?”이에 유민은 씩 웃었다.“엄마는 아침 일찍 나갔고, 할머니한테는 꼭 인사하고 가. 안 그러면 또 가출했다고 난리 나실걸.”유진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집에 없을 땐, 네가 좀 더 착하게 굴어. 할머니 기분 잘 맞춰 드리고.”유민은 양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말했다.“그건 숙모한테나 하라고.”유진은 참지 못하고 푸흐 웃음을 터뜨렸다. 짐을 정리한 후, 운전기사에게 짐을 차에 실어달라 부탁하고 자신은 할머니에게 인사드리
유진은 은정이 차를 타고 떠나는 모습을 직접 보고 나서야 다시 호텔 위층으로 돌아갔다. 혹시나 여씨 집안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할까 봐 대비해야 했다.라운지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흩어졌고, 유진이 그 안으로 들어섰을 때, 여씨 집안의 두 명의 며느리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셋째네는 평소에 그렇게 거칠게 굴더니, 오늘 자기 아들이 그렇게 당했는데도 조용하네?”다른 여성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들었는데 인후가 아가씨를 모욕해서 그렇게 된 거라더라고요. 이 일, 임씨 쪽이 알게 되면 여인후 가만두지 않을걸요?”“그래서였구나! 근데 때린 사람이 누군데?”“그건 잘 모르겠어요.”유진은 고개를 돌려 벽에 기대었다. 그 순간, 조금 전 은정의 어두운 눈빛과 먹먹한 표정이 머릿속을 스쳤고, 가슴이 다시 시리게 아파왔다.그때 여진구가 메시지를 보내오자, 유진은 핸드백을 챙겨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유진아!”호텔 정원에서 진구가 유진을 발견하고는 반갑게 다가왔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꽃다발을 꺼내려 했지만 유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선배!”이에 진구는 웃으며 말했다.“먼저 말해봐.”유진은 진지한 표정으로 진구를 바라보며 말했다.“선배, 전 늘 당신을 선배로, 좋은 친구로 생각했어요. 그 이상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어요.”“오늘 가족 모임에 참석하면서 다들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부디 오해가 더 커지지 않도록, 할아버지랑 어른들께는 확실히 말씀드려 주세요.”진구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직 아무 말도 꺼내지도 않았는데, 유진은 이미 자신의 마음을 간파하고,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선을 그어버린 것이다.유진은 미소를 지었지만 그 표정엔 피곤함이 묻어났다.“조금 피곤해서 먼저 갈게요. 할아버지께는 대신 인사 부탁드려요.”유진은 말을 마치고 돌아섰다.몇 걸음만 걸었을까? 그 순간, 뒤쪽 정원에 불이 환하게 밝혀졌다. 형형색색의 하트 모양 꽃장식이 환하게 빛났고, 수많은 풍선과 조명이 하늘로 떠올랐다. 몽환적이고 낭만적인 풍
“여진구 제대로야. 임씨 집안 딸이랑 결혼하면 우리 집안의 공신 되는 거지. 할아버지도 계속 웃고만 계시잖아. 아이, 우린 왜 그런 복이 없을까.”“네가 저 아가씨랑 결혼했으면, 진구 대신 네가 후계자 됐겠지.”누군가 농담을 건네자. 여인후는 코웃음을 치며 비꼬듯 말했다.“너희는 저 여자가 뭐 대단한 줄 아는 모양인데, 내 눈엔 그냥 싸구려야. 한쪽으론 우리 집안 며느리 노릇하려 들고, 한쪽으론 구씨그룹 사장한테 붙어먹고 있다니까?”순간 주변이 조용해졌고, 다른 한 명이 조심스레 물었다.“그거 어떻게 알아?”“내가 봤다니까, 거짓말일 것 같아? 할아버지 생신 잔치 때, 임유진이 구은정이랑 서로 잡고 끌고 하는 장면 내가 직접 목격했어.”인후는 비웃듯 말했다.“진구는 그걸 모르고 좋아 죽고 있겠지. 이미 유진한테 다른 남자가 생긴 줄도 모르고.”이에 사람들 사이에선 탄식이 터져 나왔다.“저 아가씨는 겉으론 참 청순해 보였는데, 의외네.”인후는 유진이 자신을 무시했던 걸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고, 진구에 대한 질투도 더해져 그의 말은 점점 도를 넘었다.“겉으로 고상하고 순해 보이는 애들이, 뒤로는 더 음란한 거 몰라? 저런 여자가 제일 문란하게 노는 법이지.”“쾅!”갑작스레 문이 거칠게 열렸고, 인후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지만, 상대의 얼굴을 확인하기도 전에 강한 주먹이 얼굴을 가격했다.그 한 방에 코뼈가 부러지고, 머릿속은 울려댔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정신이 아찔했다.문 안으로 들어온 남자는 등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살기 서린 기운을 뿜어내며, 냉혹한 기세로 여인후를 주먹질하고 발길질했다.순식간에 그 자리에 있던 몇몇 여씨 집안 사촌 형제들도 함께 맞았다. 차례차례 쓰러져 바닥을 뒹굴었다.유진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중, 옆방에서 들려온 날카로운 비명과 고통스러운 신음을 듣고 깜짝 놀라 즉시 방향을 틀어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고는 멍하니 굳어버렸다.바닥엔 네댓 명이 쓰러져 있었고, 은정은 여인후의 머리채를 붙잡고
그날 밤, 여씨 집안의 한 어르신이 귀국해, 강성의 모 유명 5성급 호텔에서 가족 만찬이 열렸다.임유진은 여진구와 함께 도착했다. 메인 테이블은 여씨 직계 가족들로만 채워져 있었고, 무려 30명 가까이 앉을 수 있는 커다란 원탁이었다.진구의 할아버지 옆자리에 앉아 있던 백발의 노인은 그의 큰할아버지였다. 회장님의 친형으로, Y국에서 거주하다 이번에 가족을 데리고 일시 귀국한 것이다. 그만큼 이번 가족 모임은 여씨 집안에서 굉장히 중요한 자리였다.유진은 처음에는 단순히 가족들끼리 조용히 저녁식사를 하는 줄 알고 있었다. 자신을 초대한 것도 분위기만 맞춰주면 될 줄 알았다.하지만 파티장에 들어서자, 진구는 유진을 이끌고 바로 메인 테이블로 향해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드렸다.한혜란 여사와 여순호도 유진을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고 따뜻하게 인사를 건넸다.여순호는 직접 자신의 큰형에게 유진을 소개하며 자애로운 웃음을 지었다.“우리 진구가 신뢰하는 아가씨야.”그러고는 자기 옆자리에 의자를 추가해 유진이 외부인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옆에 앉게 했다.물론 유진은 임씨 집안의 딸이라는 명확한 신분이 있긴 하지만, 이토록 특별하게 대우하는 것을 보며, 진구와 유진의 관계는 이미 대부분의 사람 머릿속에서 확정된 분위기가 되었다.순식간에 파티장 안은 칭찬과 축하, 아첨의 말들로 가득 찼고, 진구와 동년배의 친척 중 몇몇은 눈에 띄게 부러움과 질투를 숨기지 못하며 억지로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유진은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자리는 단순한 가족 식사가 아니었다. 이에 유진은 재빨리 핸드백을 챙겨 나갈 구실을 찾고 파티장을 빠져나왔다.호텔 복도 쪽으로 나와서야 숨을 돌린 유진은 진구에게 따졌다.“선배 왜 말 안 했어요? 오늘 선배 큰할아버지 귀국한 날이고, 집안 전체가 다 모이는 행사였다는 걸요. 처음부터 알았으면 나 안 왔을 거예요.”“할아버지가 꼭 널 데려오라고 했어. 부탁이라기보단 명령이었지.”진구는 웃으며 말했으나, 유진은 고개
정현준은 업무 능력은 있었지만, 결국 남녀 문제로 스스로 무너졌다. 임유진과 관련된 일이 정리되자 여진구는 한결 가벼운 표정으로 말했다.“오늘 저녁, 우리 집에서 가족 모임 있어. 같이 가자.”그러자 유진은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가족 모임에 내가 왜 가요?”이에 진구는 반짝이는 눈으로 말했다.“우리 할아버지가 널 보고 싶대. 지난번 생신 때는 제대로 인사도 못 했다면서, 꼭 데리고 오라고 하셨어. 그리고 나도 할 말이 있어.”사실 진구는 오늘 저녁, 유진에게 고백할 계획이었다. 유진은 진구의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 한다는 말에 더는 거절하지 않았다.“몇 시에 가면 돼요?”“저녁 7시쯤. 내가 호텔로 데려다줄게.”“그래요.”진구는 미리 소혜와 시양의 해고를 결정해 두었기에, 두 사람의 자리를 대신할 인력을 미리 배치해 두었고, 업무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유진이 사무실로 돌아오자, 마케팅 부서 직원들이 하나둘 들어와 그녀에게 사과를 전했다.“팀장님, 저희가 소혜 씨한테 휘둘려서 그랬어요. 정말 죄송해요.”“앞으론 함부로 휩쓸리지 않을게요. 이번 일로 크게 깨달았어요.”“눈으로 본 게 다가 아니더라고요. 그깟 사진 몇 장으로 괜한 오해 했네요.”...유진은 담담하게 모두의 사과를 받아주며 말했다.“괜찮아요. 이미 지난 일이고, 전 이 일로 누구 미워하지 않아요. 앞으로 일에만 집중하죠.”유진의 대인배적인 반응에 부서 내에서의 평판은 확 올라갔다. 유진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신뢰와 존재감을 동시에 확보했다.더 이상 누구도 진구 라인이라는 말로 그녀의 실력을 깎아내리려 하지 않았다. 어쩌면 현준이 사직과 업무 인수인계를 하러 다시 회사에 오게 된다면, 자신이 예전에 소혜에게 했던 말을 떠올릴지도 모른다.타협이 안 되면, 뿌리째 잘라낸다는 그 말, 소혜는 그 말을 흘려들었다. 그리고 현준도 이와 얽히고설켜 끝내 유진이 베어내야 할 대상이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업무를 마치기 전, 진구는 방연하에게 메
곽시양은 임유진의 사무실에서 30분 넘게 있다가 나왔다. 복도로 나서자 동료들의 시선이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졌다.시양은 다들 자신이 승진한 걸로 수군대는 줄 알고 웃으며 지나치려 했지만,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료 한 명이 다급하게 말했다.“시양 씨, 얼른 회사 이메일 확인해 봐요.”시양은 곧장 사내 메일함을 열어봤고, 그 내용을 확인한 뒤 3분 넘게 멍하니 서 있었다.그러고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눈에 잡히는 물건을 움켜쥐고 그대로 진소혜를 향해 달려들며 집어던졌다.소혜도 가만히 있지 않았고, 두 사람은 한순간에 몸싸움으로 번졌다. 동료들이 달려와 가까스로 둘을 떼어놓자, 시양은 눈에 광기를 담고 소리쳤다.“진소혜, 이 악랄한 년! 팀장님도 모함하고, 나도 똑같은 수법으로 뒤통수 쳐? 너 같은 건 세상에서 그냥 사라져버려야 해!”소혜도 물러서지 않았다.“미쳤어? 그게 왜 내 탓인데? 그딴 더러운 짓을 해놓고 몰래 찍혔다고 나한테 화를 내?”“너야! 너밖에 없잖아!”시양은 미친 사람처럼 소혜에게 다시 달려들려 했다. 이때, 현준이 달려 나와 그녀를 막으며 말했다.“진정 좀 해!”“꺼져!”시양은 손을 뻗어 정현준의 뺨을 그대로 후려쳤고, 그녀의 눈에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당신이 날 찍었지! 그리고 진소혜한테 넘겼지! 둘 다 정말 비열해!”현준도 결국 폭발했다.“유혹한 건 당신이 먼저였잖아!”시양은 그대로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아악!”유진은 사무실 문 앞에 서서 이 난장판을 조용히 지켜봤다. 몇 마디 오가는 대화를 듣는 것만으로도 상황이 어찌 돌아간 건지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시양은 입사 이후 내내 소혜에게 눌려 지냈다. 겉으론 아첨하며 따라다녔지만, 소혜가 자신을 무시하고 조롱하듯 대하던 걸 속으로는 원망하고 있었다.시양은 현준이 소혜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회사에서도 소혜에게 특혜를 줬던 그를 시양은 일부러 유혹했다. 현준을 차지해 소혜를 공격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현준은 시양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