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순희는 난처한 얼굴로 자기 딸을 바라보았다. 하순희는 소희를 함정에 빠뜨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씨 집안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앞으로 강성이나 경성 모두에서 그들의 집안은 설 자리가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소희는 업계에서 매우 유명하고 몇몇 재벌가와 연이 닿아 있지만, 결국 권력 없는 디자이너일 뿐이었다. 더군다나 이제 보니, 소희가 디자인 업계에서 재기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 그들은 양심을 저버리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시연아, 나가!” 소정수가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싫어요!” 시연은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저었다. “소희를 돕지 않더라도 더 이상 그녀를 곤란하게 만들지는 말아 주세요, 제발요!”소찬호도 문을 밀고 들어왔다.“아버지, 어머니, 소희 누나를 괴롭히면 저도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찬호는 이제 고등학생이었고, 키는 거의 180cm에 다다랐다. 그리고 잘생긴 얼굴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이에 하순희는 이를 악물고 소정수와 눈을 맞춘 후 결심한 듯 이씨 집안을 바라보았다.“죄송합니다만, 당신들의 말대로 할 수는 없어요. 이 돈도 가져가세요!”하순희는 그 카드를 다시 밀어 넘기자 맞은편의 남자는 냉소하며 말했다.“아이들이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어른이라면 사리 분별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소정수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우리는 이 일에 더 이상 관여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게시글을 삭제하거나 소희를 비방하는 일을 하지 않을 겁니다.”“당신들이 이씨 집안과 어떻게 대처하든 상관없습니다. 우리는 원하지 않는 일을 하지 않을 겁니다.”“맞아요!” 하순희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우리도 돈을 좋아하지만 양심을 팔 수는 없어요.”남자는 냉소적으로 말했다.“두 분 정말 다시 생각해 보지 않겠습니까?”“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가세요!” 하순희는 결심한 듯 성격대로 시원하게 말했다. “어차피 소희도 이미 당신들에 의해
소시연의 아버지도 궁금해하며 다가오자, 시연은 눈을 굴리며 말했다.“제 추측이에요!”“소희와 연락이 된다면 소희에게 전화를 걸어, 잠시 강성으로 돌아오지 말고 외부에서 몸을 피하라고 하렴.” 하순희는 한숨을 쉬며 걱정 어린 눈빛으로 말했다. “우리 집안은 당분간 이씨 집안과 고택의 압박을 받겠지만, 우리 스스로 운에 맡겨야겠구나.”“아버님이 소희에게 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지 않기를 바라야지.”그러자 소찬호가 말했고 시연도 동의한다는 듯 말했다.“두려워하지 마세요. 저와 누나가 있으니까요!”“엄마, 아빠, 소희 편에 확고히 서야 해요. 오늘의 결정은 분명 옳은 선택이에요.”하순희는 시연이 소희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시연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생각에 잠기며 말했다.“조백림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해야겠어.”소정수가 일어났다.“내가 직접 갈게!”이씨 집안 사람들은 소씨 집안을 떠나자마자 이진혁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보고했다. 이에 이진혁은 냉소하며 말했다.“눈치 없는 것들!”“그들은 아마 임구택의 보복을 두려워하는 것 같아요!”이진혁은 말했다.“임구택? 나는 개입하길 바라네. 소희를 지킬 수 있을지 보자고!”소희가 삼각주에서 돌아올 수 있을지조차 불확실했다. 소희가 의지하던 그 진언도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그랬기에 구택이 어떻게 국면을 뒤집을지 보고 싶었다. 구택이 소희가 자기 아내라고 말하기만 하면, 임씨 집안 전체가 상부의 의심을 받을 것이다. ‘어디 그럴 배짱이 있는지 한번 보자고!’이진혁은 지시했다.“네티즌들을 선동해서 소희가 외국물에 오래 있더니 자기 나라를 버리려고 했다는 죄명을 확실히 하도록 해. 여론을 그 방향으로 몰아가!”“알겠습니다.” 남자가 대답했다....백림은 소정수의 전화를 받자 담담하게 말했다.“알겠습니다. 알고 있어요.”이에 소정수는 미안한 목소리로 말했다.“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에요. 소희가 외부에서 몸을 피하고 이 일이 지나갈 때
“조백림!” 임구택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일이야?”“큰일났어요.”백림은 국내에서 소희를 음해하는 찌라시들에 대해서 말했다.“지금 난리가 났어요. 소씨 집안 사람들이 직접 나서서 소희를 비방하고 있고, 소희는 인터넷에서 전부 까이고 있어요.”“북극 디자인 작업실과 지엠도 영향을 받고 있고요.”구택의 목소리는 굉장히 차가웠는데 마치 차가운 안개를 뚫고 나오는 것 같았다. “죽고 싶어 안달이 났군!”“형 언제 돌아와요? 지금 제가 소희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백림이 물었다. “장시원 형도 없고, 성연희 씨와 노명성도 신혼여행 중이라 돌아오지 않았어요. 아마 이씨 집안은 이 타이밍을 노렸던 것 같아요.”이씨 집안은 소희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어서 이렇게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었다. 지금 소희는 이미 벼랑 끝에 매달려 있고, 모든 찌라시들이 기정사실이 되었다.소희가 시간이 지나 돌아와 해명한다고 해도, 아마도 네티즌들은 더 이상 믿지 않을 것이다. 이씨 집안은 바로 이 점을 생각해서 일을 벌인 것이 틀림없었다. 이어 구택은 잠시 침묵하다가 차갑게 말했다. “신경 쓰지 마. 내가 돌아가면 그때 얘기해.”“알겠어요. 먼저 이씨 집안의 동향을 관찰하고, 다시 연락드릴게요.”“그래!”...소희가 양녀인지 친딸인지에 대한 소씨 집안사람들의 논쟁은 소희를 향한 온라인 폭력을 더욱 불타오르게 했다. 이후 소정수 쪽에서는 더 이상 반응하지 않았기에, 모든 사람은 소정인 부부가 이겼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소정인 부부를 지지하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심지어 소동의 인스타그램도 파헤쳐졌다. 이전에 표절 사건이 이미 확정된 상태였지만,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마도 King이 뒤에서 자본을 이용해 조작하여 진실을 왜곡한 것이 아니냐고.그 사건은 King의 등장을 위한 준비였을 것이었고 소동은 단지 이용당했을 뿐이라는 추측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아마도 동정심 때문인지, 소동은 다시 약간의 인기를 얻었다. 표절이라
곧 새벽이 다가왔고 구택은 휴대폰 화면의 시간이 초 단위로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러자 구택은 갑자기 무엇인가 떠올라 소희의 목걸이와 연결된 시스템을 켰다. 체온과 심장 박동이 비정상적인 상태였다.구택은 약간의 찡그리며 생각했다. ‘소희가 또 목걸이를 벗었나?’구택은 이전에 소희가 잠잘 때 목걸이를 벗는다는 것을 알아챘고, 물어봤더니 잠잘 때 무엇인가를 착용하는 것이 불편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잠을 자는 중에도 구택은 소희의 심장 박동을 느끼고 싶었다. 왜냐하면 소희가 지금 구택의 품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구택은 가볍게 한숨을 쉬며, 시간이 12시가 되기를 기다렸다가 소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자기야, 생일 축하해!]...다음 날, 평소와 같이 오전 9시 가까이 되어 남궁민이 소희를 깨웠다. 소희는 이번에 평소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려 깨어났고, 깨어난 후에도 눈빛은 계속해서 멍한 상태였다.“라일락?” 남궁민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소희를 바라보았고 소희는 남자를 바라보며 눈동자가 약간 움직였다. “남궁민?”이에 남궁민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저예요.”소희는 약간 의아해하며 물었다. “여기 왜 계세요? 무슨 일이죠?”남궁민은 마음속으로 놀라며, 표정을 더욱 부드럽게 하고, 목소리도 더 낮게 말했다. “악몽을 꾸는 것 같아서 방금 당신을 깨웠어요!”“그래요?” 소희는 피곤한 표정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예전에는 악몽을 꾸고 나면 기억이 생생했는데, 오늘은 꿈에서 무엇을 봤는지 잊어버렸다. 그냥 피곤할 뿐, 계속 자고 싶고 깨어나기 싫었다. 이에 남궁민은 소희에게 따뜻한 수건을 건넸다. “얼굴을 닦으면 기분이 나아질 거예요. 해독약은 먹었나요?”소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먹었어요.”“근데 왜 효과가 없지?” 남궁민은 깊게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왜인지 모르게 소희의 상태가 더 심해진 것 같았다. 곧 남궁민은 임예현을 찾아갔고, 예현은 이 약제가 빌이라는 박사가 연구한 것이라고 했다. 본인은 완전히 참여하지 않아 해
소희는 원래 약의 부작용이 시간이 지나면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보니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됐어요, 애초에 내가 당신을 이렇게 만든 거니까!” 남궁민의 눈에는 아픔과 죄책감이 스쳤다. 남궁민은 깊이 한 번 소희를 바라보고 문을 열고 나갔다. 남궁민이 나간 후, 소희는 어젯밤의 꿈을 자세히 떠올려 보았지만, 정말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어젯밤, 소희는 분명 꿈을 꾸었다. 그 방황과 슬픔의 느낌이 아직도 소희의 머릿속에 맴돌고 있었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부정적인 감정이 뇌를 지배하고 있었다.‘왜 레이든은 나를 쉽게 놓아주었을까? 정말 남궁민과 이디야 때문일까? 레이든은 아직도 나를 통제하고 있는 걸까?’소희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해결할 수 없는 이유 모를 슬픔 때문에 소희는 몸을 웅크렸고 어떻게 이 상황에서 벗어나야 할지 몰라 정말로 슬펐다. 이 슬픔은 소희가 깨어나려는 의지조차 파괴하고 있어 꿈속에서 계속 머무르고 싶었다. 마치 꿈의 세계가 소희가 있어야 할 곳인 것처럼 느껴졌다.소희는 옆에 있던 휴대폰을 집어 들자 읽지 않은 메시지가 쏟아져 나왔다. 첫 번째로 고정된 메시지는 임구택이 새벽에 보낸 생일 축하 메시지였다.[자기야, 생일 축하해!]짧은 몇 글자였지만, 한 줄기 빛처럼 소희의 마음 속 어둠을 몰아내고 불안과 슬픔의 감정을 물리쳤다. 순간, 소희의 눈에 눈물이 가득 차올랐고 오랜만에 눈물이 쏟아져 나와 처음으로 울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소희는 반드시 잘 지내야 했다. 구택이 있는 한, 소희는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었다. 이윽고 소희는 구택이 준 목걸이를 꺼내어 목에 걸었다.그러자 구택은 곧 소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방금 일어났어? 어젯밤 너 피곤하게 하지 않았는데, 왜 이제 일어났어?]소희는 웃으며 답장했다.[오늘 생일이라서, 맘대로 하고 싶어. 안 돼?][돼.][생일이 아니어도, 나는 언제든지 맘대로 해도 돼.]소희의 화사한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소희는 구택이 보낸 메시지를 오랫동안
소희는 영상 통화를 받으며 얼굴에 미소가 피어났다. “할아버지!”운성의 하늘도 맑았고 강재석은 웃으며 말했다. “소희야, 생일 축하해!”소희는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할아버지!”“생일 선물은 너랑 너희 오빠 둘 다 준비했고 네 생일선물은 네 방에 놓아두었어.”“오석이 오늘 점심에 생일상 준비해 생일을 축하해 줄 거라고 하더구나. 그리고 황선국 셰프와 올해의 생일상은 어떻게 차릴지 고민하고 있어.”“너도 보고 나면 바로 먹고 싶을 거다. 혹시 아냐? 먹고 싶어서 곧바로 돌아올지?”강재석은 웃으며 말했다.“분명 셰프가 널 불러오기 위한 아이디어일 거야.”소희는 가슴이 따뜻해지며 울컥했다. “셰프님과 오석 할아버지에게 감사드린다고 전해주세요.”“너 아직 밀라노에 있구나, 언제 돌아오니?” “며칠 후면 돌아갈 거예요. 돌아가면 바로 할아버지와 함께 있을게요!” 소희는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오늘 생일을 같이 보낼 사람이 있어? 케이크는 먹었나?” 강재석은 소희가 단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생일에 케이크가 없으면 어떻게 되겠는가?“있어요, 많은 팬들이 함께 했어요. 주최 측에서도 많은 케이크를 보내주었어요!” 소희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방에 케이크가 가득해요!”“우리 소희 정말 대단하구나!” 강재석도 자랑스러워했고 소희를 자애롭게 바라보며 말했다. “빨리 돌아와야지, 그렇지 않으면 임구택도 걱정할 거야.”“네!” 소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곧 돌아갈게요!”“좋아, 그럼 바쁠 테니 그만 끊자. 케이크 많이 먹어야 해.” 강재석이 당부했다.“할아버지도 많이 드세요, 저도 먹었다고 생각할게요.”“좋아!”두 사람은 전화를 끊었다. 운성에서 강재석이 휴대폰을 내려놓자 얼굴의 미소가 점차 사라지고 깊은 걱정이 가득했다. 강재석은 소희가 위험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소희가 걱정하지 않도록 모른 척해야 했다.곧 오석은 강재석에게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네며 말했다. “아가씨의 상태가 좋아 보이
화영과 마민영, 그리고 많은 사람이 소희에게 언제 돌아올 거냐고 물었다.“곧 돌아갈 거야!”핸드폰을 내려놓고, 소희는 옷을 갈아입고 나섰다. 지하 12층에 도착했을 때, 라펠트는 자신의 여자와 소파에서 키스하며 애정 행각을 벌이고 있었다.소희가 들어갔지만, 두 사람은 멈추지 않았다. 이에 소희는 주인의 눈에 띄지 않도록 고개를 숙이고 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지하층은 완전한 무진 환경이라 딱히 청소할 것이 없었다. 소희는 침실로 가서 여자가 벗어놓은 옷을 정리했다.그때, 거실의 두 사람은 술을 들고 강변으로 낚시하러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소희는 서재로 가서 청소를 시작했다. 컴퓨터가 켜져 있었고, 배경 화면은 북두칠성 그림이었다. 광활한 밤하늘에 북두칠성만이 가장 밝게 빛나고 있었다. 소희는 그 그림을 바라보며 라펠트 같은 사람이 아무 그림이나 화면 보호기로 선택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혹시 라펠트는 지하에 있어서 실제 별을 볼 수 없어서 밤하늘 그림을 좋아하는 걸까?’직감적으로 소희는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소희는 북두칠성 그림을 머릿속에 새기고, 청소하는 척하며 서재를 다시 한번 뒤졌다. 이때 간미연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자료가 마우스에 있지 않을까?”소희가 처음 서재에 들어갔을 때, 렌즈로 스캔하여 마우스 안에 경보기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라펠트가 외부인이 자신의 컴퓨터를 건드리지 못하도록 경보기를 설치했다고 생각했다.이것은 정상적인 사고방식이었지만 레이든은 반대로 생각하고, 자료를 마우스에 숨겼을 수도 있다. “어떻게 경보기를 끌 수 있을까?”미연은 컴퓨터 프로그램에 침입하여 침착하게 말했다. “끌 수 없어. 라펠트의 지문이 아니면, 마우스를 만지는 순간 자동으로 경보가 울릴 거야.”이에 미연은 거의 확신하듯 말했다. “자료는 경보기 안에 있어.”그러자 소희는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라펠트를 먼저 죽이면 어떨까?”미연은 말했다. “한 번 시도해 볼 수 있지!
똑똑똑!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리자 소희는 고개를 돌리며 목소리를 낮췄다. “누구세요?”“예비 남자친구!” 남궁민의 목소리가 들리자 소희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방금 자신이 너무 긴장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소희는 그려놓은 그림을 찢어 쓰레기통에 버리고 일어나서 문을 열러 갔다.‘잠깐만? 남궁민이 방금 뭐라고 했지? 나의 예비 남자친구? 헉!’소희는 화를 참으려 했지만, 자신이 곧 온두리를 떠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남궁민과 싸우지 않기로 했다.문이 열리자, 남궁민은 흰색 셔츠에 검은색 양복을 입고 있었다. 셔츠 목 부분이 열려 있어 매력적인 쇄골이 드러났고, 남궁민의 귀족적인 기품에 약간의 매혹적인 분위기가 더해졌다. 남궁민은 고개를 기울여 갈색 눈을 가늘게 뜨고 소희에게 말했다. “방금 또 어디 갔다 왔어요?”그러자 소희는 차분하게 말했다. “말했잖아요. 당신의 안전을 보장하는 한 내 일에 간섭하지 말라고.”이에 궁민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약간의 무력감을 보였다. 그리고 손을 들어 소희의 손을 잡으려 했다. “가요, 재미있게 놀아줄게요!”소희는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손대지 마세요. 나는 당신이 그날 바에서 본 남자와 같은 병실에서 살고 싶지 않아 할 것 같으니까.”남궁민은 손을 거둬들이며 웃었다. “정말 재미없네. 내가 당신을 왜 좋아하겠어요?”“아마도 당신 여자친구들 중에는 아무도 당신을 때리지 않았으니까!” 소희는 발걸음을 아래로 옮기자 남궁민은 소희를 따라오며 말했다.“당신은 내가 당신이 나랑 밀당을 해서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그렇다면 저를 너무 우습게 보셨네요. 전 어떤 유형의 여자든지 다 만나봤어요.”소희는 남궁민을 흘겨보았다. “그게 그렇게 자랑스럽나요?”갑작스러운 질문에 남궁민은 할 말을 잃었다. 원래 남궁민은 자랑스러웠지만, 지금 소희 앞에서 그런 말을 했다가는 스스로 자신의 무덤을 파는 것과 마찬가지였기에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흠, 우리 바에 갈까요?”“안 가요, 점심 먹으러 가야
“그날 밤 전화했을 때 말이야.”유진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그게 바로 그날이었어요?”“그래.”은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그는 서선영이 무슨 짓을 꾸미는지 몰랐다. 혹시 다시는 유진을 볼 수 없게 될까 두려워, 마지막으로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서 전화를 걸었다.사실은 유진에게 자기 집으로 와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끝내 그 말이 목구멍에서 나오지 않았다.유진은 자책하듯 말했다.“나도 그때 뭔가 이상하단 걸 느꼈어. 근데 안 찾아갔어요.”은정은 유진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말했다.“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그때는 이미 깊은 밤이었고, 유진은 단지 모호한 한 통의 전화로 구씨 저택까지 달려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유진의 마음속은 여전히 무겁고 미안했다.“내가 갔더라면, 그 여자의 계략이 통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는데요.”“유진아, 우리 이제 과거에 대해 그만 후회하자. 응?”은정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유진을 바라보며 말하자,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중요한 건, 서선영 모녀의 거짓말을 어떻게 밝혀낼지였다.“그 여자가 떠나라고 하니까, 진짜 떠나려던 거예요? 도대체 언제부터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됐어?”유진이 화가 난 듯 말하자, 은정은 그녀를 바라보며, 차가운 듯 부드러운 눈빛으로 대답했다.“내 명예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어. 네가 그 일 알고 나서 날 더 미워할까 봐, 그게 무서웠지.”호텔에서 유진이 여씨 집안 가족 모임에 참석한 걸 봤을 때, 그는 마음이 무너졌다.자신은 온몸이 상처투성이고, 앞으로도 더러운 과거 때문에 손가락질받을 인생인데, 그런 자신의 곁에 유진을 두는 게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했다.유진은 따뜻하면서도 가슴 아픈 눈빛으로 은정을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유진은 두 손으로 은정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안개 낀 듯한 눈동자가 그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은정의 어두운 그림자를 밀어내고 그 마음속까지 빛으로 채우려는 듯한 눈빛이었다.이번에는 유진이 먼저 입을 맞췄는데, 그 키스는 애틋하고 따스했
“정말 못됐어요. 그런데도 난, 이렇게 좋아하니까.”유진은 코끝을 훌쩍이며 속삭이듯 말하자, 은정의 눈빛이 짙게 가라앉았고, 유진을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유진은 흐느낌 속에 물었다.“그래도 또 떠날 거예요?”“안 떠나.”은정은 마치 유진의 몸이 자기의 일부라도 된 것처럼 꼭 끌어안았다.유진은 입술을 꾹 다물었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도 입가엔 참을 수 없이 번지는 미소가 피어올랐다.멀찍이서 둘을 바라보던 소희는 마침내 안도한 듯 미소를 지었고, 잠시 바라보다 조용히 돌아섰다.은정은 티켓 환불을 마치고, 유진의 손을 꼭 잡고 공항 로비를 빠져나왔다.그때 소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유진이는 맡길게. 잘 달래줘. 난 먼저 갈게.]은정은 묵직한 음성으로 대답했다.“소희, 정말 고마워.”[혹시 집안 문제, 도와줄 일 있으면 말해.]은정은 원래의 냉정한 눈빛을 되찾으며, 대답했다.“아니, 내 일은 내가 해결할게.”[그래.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해. 임씨 집안 쪽 설득도 내가 도와줄 수 있어.]은정은 낮게 웃었다.“혼자 힘으로 안 되면 그때 부탁할게.”전화를 끊은 뒤, 유진이 옆에서 물었다.“소희, 갔어요?”“응. 우리 집에 가자.”은정은 다시 유진의 손을 꼭 잡았다.유진은 그날 회사에 가지 않고, 전화를 걸어 휴가를 냈다. 이경 아파트로 돌아오자마자, 문을 열고 들어선 은정은 유진을 번쩍 안아 들고 그대로 입을 맞췄다.유진은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고, 두 다리로 그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세게 은정을 끌어안고 입맞춤에 응했다.유진의 반응은 은정을 더욱 자극했고, 입술은 불꽃처럼 뜨거웠다. 은정은 강렬함과 부드러움을 오가며 끊임없이 유진의 반응을 확인했고, 만족할 만한 대답을 얻었을 때에야 숨을 고르며 입술을 떼었다.유진은 숨을 헐떡이며 눈을 반쯤 감고 있었다.“언제 기억난 거야?”은정은 유진의 입술 위에서 낮게 물었다.유진의 커다란 눈동자엔 얇은 안개 같은 물기가 맺혀 있었고, 눈가엔 눈물 자국이 남아 붉
“나쁜 놈!”유진은 이를 악물고 욕설을 내뱉으며, 손등으로 눈물을 거칠게 닦고는 그대로 뛰쳐나갔다.허둥지둥 엘리베이터를 내려가던 중, 예상치 못하게 1층 현관 앞에서 막 차에서 내리는 소희와 마주쳤다.유진은 달려가 소희를 끌어안으며, 눈물로 목소리가 떨렸다.“소희야. 그 사람, 갔어.”소희는 차가운 눈빛으로 유진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손을 들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침착하게 말했다.“지금쯤 공항 도착했을 거야. 얼른 차 타. 우리가 가서 막자.”유진은 울먹이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응.”차에 올라탄 후, 소희는 아침 출근길 교통체증을 피해 가능한 한 빠른 길로 달렸다. 조수석에 앉은 유진은 여전히 망연자실한 얼굴이었다.소희는 유진을 스치듯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두려워하지 마. 이번엔, 걔가 지구 반대편까지 도망친다 해도 내가 꼭 데려올게.”유진은 이를 악물며 눈물 맺힌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응.”공항에 도착하자, 소희는 시계를 확인했다.“지금쯤이면 막 보안 검색대 들어갔을 거야. 넌 안으로 들어가. 난 밖에서 기다릴게.”유진은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사람들이 북적이는 공항 안을 정신없이 뛰어다녔다.탑승 게이트 앞, 마침내 수많은 인파 속에서 그토록 익숙하고, 아프도록 그리운 구은정의 뒷모습을 발견했다.너무 긴장한 탓일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은정이 거의 들어가려던 순간, 유진은 겨우 목을 눌러 뜨거운 한마디를 토해냈다.“서인!”이에 은정의 발걸음이 멈췄고, 순간 고개를 홱 돌렸다. 사람들 사이 너머로, 유진이 서 있었다.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친 그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지나가는 사람들, 소음, 움직임. 모든 게 멀어지고, 과거와 현재가 한꺼번에 겹쳤다.처음 만났던 순간. 잃어버린 가방을 찾아 건네주던 은정의 등.“정말 대단해.”감탄하던 유진의 눈빛. 차가웠던 은정의 반응. 하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은정이 궁금했고, 따랐고, 그렇게 샤브샤브집에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다.유진은
방연하는 어이없다는 듯 여진구를 바라보며 말했다.“선배, 지금 진심이에요? 머리 괜찮아?”여진구는 연하를 째려보았다. 연하는 주변의 예쁘게 꾸며진 꽃길과 풍선을 둘러보며 부러움 섞인 말투로 말했다.“이거 진짜 예쁘네요. 나도 나중에 이런 대접 한번 받아볼 수 있을까요?”“너한테 고백할 남자가 이런 것도 못 하면, 내가 대신 해줄게.”진구는 시원하게 말하자, 연하는 헛웃음을 지으며 받아쳤다.“미리 감사 인사드릴게요, 여진구 사장님.”그 시각, 유진은 집에 돌아왔지만 마음은 여전히 뒤숭숭했고, 계속 뭔가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그날 밤은 뒤척이기만 하다가, 새벽이 되자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아침 7시가 되자, 임유민이 방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 문에 기대선 그는 느슨하게 말했다.“누나, 이번 주 금요일 우리 학교 축구 경기 있어. 내가 수비수로 나가는데, 학교에서 가족 참관 받는대. 올래?”유진은 고개를 들어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좋지. 꼭 응원하러 갈게.”유민은 그녀가 짐을 싸는 걸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근데 누나, 짐은 왜 싸?”유진은 노트북을 가방에 넣으며 말했다.“이젠 다시 이경 아파트로 돌아가려고.”유민은 조금 놀랐다.“안 돌아가겠다고 하지 않았어?”유진은 눈을 내리깔며 담담하게 대답했다.“가고 싶어졌어.”유민은 문에 기댄 채 웃으며 중얼거렸다.“역시 내 예상이 맞았네. 근데 이번에는 그렇게 바보처럼 굴지 마.”유진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뭐라고?”이에 유민은 씩 웃었다.“엄마는 아침 일찍 나갔고, 할머니한테는 꼭 인사하고 가. 안 그러면 또 가출했다고 난리 나실걸.”유진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집에 없을 땐, 네가 좀 더 착하게 굴어. 할머니 기분 잘 맞춰 드리고.”유민은 양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말했다.“그건 숙모한테나 하라고.”유진은 참지 못하고 푸흐 웃음을 터뜨렸다. 짐을 정리한 후, 운전기사에게 짐을 차에 실어달라 부탁하고 자신은 할머니에게 인사드리
유진은 은정이 차를 타고 떠나는 모습을 직접 보고 나서야 다시 호텔 위층으로 돌아갔다. 혹시나 여씨 집안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할까 봐 대비해야 했다.라운지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흩어졌고, 유진이 그 안으로 들어섰을 때, 여씨 집안의 두 명의 며느리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셋째네는 평소에 그렇게 거칠게 굴더니, 오늘 자기 아들이 그렇게 당했는데도 조용하네?”다른 여성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들었는데 인후가 아가씨를 모욕해서 그렇게 된 거라더라고요. 이 일, 임씨 쪽이 알게 되면 여인후 가만두지 않을걸요?”“그래서였구나! 근데 때린 사람이 누군데?”“그건 잘 모르겠어요.”유진은 고개를 돌려 벽에 기대었다. 그 순간, 조금 전 은정의 어두운 눈빛과 먹먹한 표정이 머릿속을 스쳤고, 가슴이 다시 시리게 아파왔다.그때 여진구가 메시지를 보내오자, 유진은 핸드백을 챙겨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유진아!”호텔 정원에서 진구가 유진을 발견하고는 반갑게 다가왔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꽃다발을 꺼내려 했지만 유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선배!”이에 진구는 웃으며 말했다.“먼저 말해봐.”유진은 진지한 표정으로 진구를 바라보며 말했다.“선배, 전 늘 당신을 선배로, 좋은 친구로 생각했어요. 그 이상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어요.”“오늘 가족 모임에 참석하면서 다들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부디 오해가 더 커지지 않도록, 할아버지랑 어른들께는 확실히 말씀드려 주세요.”진구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직 아무 말도 꺼내지도 않았는데, 유진은 이미 자신의 마음을 간파하고,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선을 그어버린 것이다.유진은 미소를 지었지만 그 표정엔 피곤함이 묻어났다.“조금 피곤해서 먼저 갈게요. 할아버지께는 대신 인사 부탁드려요.”유진은 말을 마치고 돌아섰다.몇 걸음만 걸었을까? 그 순간, 뒤쪽 정원에 불이 환하게 밝혀졌다. 형형색색의 하트 모양 꽃장식이 환하게 빛났고, 수많은 풍선과 조명이 하늘로 떠올랐다. 몽환적이고 낭만적인 풍
“여진구 제대로야. 임씨 집안 딸이랑 결혼하면 우리 집안의 공신 되는 거지. 할아버지도 계속 웃고만 계시잖아. 아이, 우린 왜 그런 복이 없을까.”“네가 저 아가씨랑 결혼했으면, 진구 대신 네가 후계자 됐겠지.”누군가 농담을 건네자. 여인후는 코웃음을 치며 비꼬듯 말했다.“너희는 저 여자가 뭐 대단한 줄 아는 모양인데, 내 눈엔 그냥 싸구려야. 한쪽으론 우리 집안 며느리 노릇하려 들고, 한쪽으론 구씨그룹 사장한테 붙어먹고 있다니까?”순간 주변이 조용해졌고, 다른 한 명이 조심스레 물었다.“그거 어떻게 알아?”“내가 봤다니까, 거짓말일 것 같아? 할아버지 생신 잔치 때, 임유진이 구은정이랑 서로 잡고 끌고 하는 장면 내가 직접 목격했어.”인후는 비웃듯 말했다.“진구는 그걸 모르고 좋아 죽고 있겠지. 이미 유진한테 다른 남자가 생긴 줄도 모르고.”이에 사람들 사이에선 탄식이 터져 나왔다.“저 아가씨는 겉으론 참 청순해 보였는데, 의외네.”인후는 유진이 자신을 무시했던 걸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고, 진구에 대한 질투도 더해져 그의 말은 점점 도를 넘었다.“겉으로 고상하고 순해 보이는 애들이, 뒤로는 더 음란한 거 몰라? 저런 여자가 제일 문란하게 노는 법이지.”“쾅!”갑작스레 문이 거칠게 열렸고, 인후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지만, 상대의 얼굴을 확인하기도 전에 강한 주먹이 얼굴을 가격했다.그 한 방에 코뼈가 부러지고, 머릿속은 울려댔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정신이 아찔했다.문 안으로 들어온 남자는 등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살기 서린 기운을 뿜어내며, 냉혹한 기세로 여인후를 주먹질하고 발길질했다.순식간에 그 자리에 있던 몇몇 여씨 집안 사촌 형제들도 함께 맞았다. 차례차례 쓰러져 바닥을 뒹굴었다.유진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중, 옆방에서 들려온 날카로운 비명과 고통스러운 신음을 듣고 깜짝 놀라 즉시 방향을 틀어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고는 멍하니 굳어버렸다.바닥엔 네댓 명이 쓰러져 있었고, 은정은 여인후의 머리채를 붙잡고
그날 밤, 여씨 집안의 한 어르신이 귀국해, 강성의 모 유명 5성급 호텔에서 가족 만찬이 열렸다.임유진은 여진구와 함께 도착했다. 메인 테이블은 여씨 직계 가족들로만 채워져 있었고, 무려 30명 가까이 앉을 수 있는 커다란 원탁이었다.진구의 할아버지 옆자리에 앉아 있던 백발의 노인은 그의 큰할아버지였다. 회장님의 친형으로, Y국에서 거주하다 이번에 가족을 데리고 일시 귀국한 것이다. 그만큼 이번 가족 모임은 여씨 집안에서 굉장히 중요한 자리였다.유진은 처음에는 단순히 가족들끼리 조용히 저녁식사를 하는 줄 알고 있었다. 자신을 초대한 것도 분위기만 맞춰주면 될 줄 알았다.하지만 파티장에 들어서자, 진구는 유진을 이끌고 바로 메인 테이블로 향해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드렸다.한혜란 여사와 여순호도 유진을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고 따뜻하게 인사를 건넸다.여순호는 직접 자신의 큰형에게 유진을 소개하며 자애로운 웃음을 지었다.“우리 진구가 신뢰하는 아가씨야.”그러고는 자기 옆자리에 의자를 추가해 유진이 외부인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옆에 앉게 했다.물론 유진은 임씨 집안의 딸이라는 명확한 신분이 있긴 하지만, 이토록 특별하게 대우하는 것을 보며, 진구와 유진의 관계는 이미 대부분의 사람 머릿속에서 확정된 분위기가 되었다.순식간에 파티장 안은 칭찬과 축하, 아첨의 말들로 가득 찼고, 진구와 동년배의 친척 중 몇몇은 눈에 띄게 부러움과 질투를 숨기지 못하며 억지로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유진은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자리는 단순한 가족 식사가 아니었다. 이에 유진은 재빨리 핸드백을 챙겨 나갈 구실을 찾고 파티장을 빠져나왔다.호텔 복도 쪽으로 나와서야 숨을 돌린 유진은 진구에게 따졌다.“선배 왜 말 안 했어요? 오늘 선배 큰할아버지 귀국한 날이고, 집안 전체가 다 모이는 행사였다는 걸요. 처음부터 알았으면 나 안 왔을 거예요.”“할아버지가 꼭 널 데려오라고 했어. 부탁이라기보단 명령이었지.”진구는 웃으며 말했으나, 유진은 고개
정현준은 업무 능력은 있었지만, 결국 남녀 문제로 스스로 무너졌다. 임유진과 관련된 일이 정리되자 여진구는 한결 가벼운 표정으로 말했다.“오늘 저녁, 우리 집에서 가족 모임 있어. 같이 가자.”그러자 유진은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가족 모임에 내가 왜 가요?”이에 진구는 반짝이는 눈으로 말했다.“우리 할아버지가 널 보고 싶대. 지난번 생신 때는 제대로 인사도 못 했다면서, 꼭 데리고 오라고 하셨어. 그리고 나도 할 말이 있어.”사실 진구는 오늘 저녁, 유진에게 고백할 계획이었다. 유진은 진구의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 한다는 말에 더는 거절하지 않았다.“몇 시에 가면 돼요?”“저녁 7시쯤. 내가 호텔로 데려다줄게.”“그래요.”진구는 미리 소혜와 시양의 해고를 결정해 두었기에, 두 사람의 자리를 대신할 인력을 미리 배치해 두었고, 업무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유진이 사무실로 돌아오자, 마케팅 부서 직원들이 하나둘 들어와 그녀에게 사과를 전했다.“팀장님, 저희가 소혜 씨한테 휘둘려서 그랬어요. 정말 죄송해요.”“앞으론 함부로 휩쓸리지 않을게요. 이번 일로 크게 깨달았어요.”“눈으로 본 게 다가 아니더라고요. 그깟 사진 몇 장으로 괜한 오해 했네요.”...유진은 담담하게 모두의 사과를 받아주며 말했다.“괜찮아요. 이미 지난 일이고, 전 이 일로 누구 미워하지 않아요. 앞으로 일에만 집중하죠.”유진의 대인배적인 반응에 부서 내에서의 평판은 확 올라갔다. 유진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신뢰와 존재감을 동시에 확보했다.더 이상 누구도 진구 라인이라는 말로 그녀의 실력을 깎아내리려 하지 않았다. 어쩌면 현준이 사직과 업무 인수인계를 하러 다시 회사에 오게 된다면, 자신이 예전에 소혜에게 했던 말을 떠올릴지도 모른다.타협이 안 되면, 뿌리째 잘라낸다는 그 말, 소혜는 그 말을 흘려들었다. 그리고 현준도 이와 얽히고설켜 끝내 유진이 베어내야 할 대상이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업무를 마치기 전, 진구는 방연하에게 메
곽시양은 임유진의 사무실에서 30분 넘게 있다가 나왔다. 복도로 나서자 동료들의 시선이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졌다.시양은 다들 자신이 승진한 걸로 수군대는 줄 알고 웃으며 지나치려 했지만,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료 한 명이 다급하게 말했다.“시양 씨, 얼른 회사 이메일 확인해 봐요.”시양은 곧장 사내 메일함을 열어봤고, 그 내용을 확인한 뒤 3분 넘게 멍하니 서 있었다.그러고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눈에 잡히는 물건을 움켜쥐고 그대로 진소혜를 향해 달려들며 집어던졌다.소혜도 가만히 있지 않았고, 두 사람은 한순간에 몸싸움으로 번졌다. 동료들이 달려와 가까스로 둘을 떼어놓자, 시양은 눈에 광기를 담고 소리쳤다.“진소혜, 이 악랄한 년! 팀장님도 모함하고, 나도 똑같은 수법으로 뒤통수 쳐? 너 같은 건 세상에서 그냥 사라져버려야 해!”소혜도 물러서지 않았다.“미쳤어? 그게 왜 내 탓인데? 그딴 더러운 짓을 해놓고 몰래 찍혔다고 나한테 화를 내?”“너야! 너밖에 없잖아!”시양은 미친 사람처럼 소혜에게 다시 달려들려 했다. 이때, 현준이 달려 나와 그녀를 막으며 말했다.“진정 좀 해!”“꺼져!”시양은 손을 뻗어 정현준의 뺨을 그대로 후려쳤고, 그녀의 눈에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당신이 날 찍었지! 그리고 진소혜한테 넘겼지! 둘 다 정말 비열해!”현준도 결국 폭발했다.“유혹한 건 당신이 먼저였잖아!”시양은 그대로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아악!”유진은 사무실 문 앞에 서서 이 난장판을 조용히 지켜봤다. 몇 마디 오가는 대화를 듣는 것만으로도 상황이 어찌 돌아간 건지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시양은 입사 이후 내내 소혜에게 눌려 지냈다. 겉으론 아첨하며 따라다녔지만, 소혜가 자신을 무시하고 조롱하듯 대하던 걸 속으로는 원망하고 있었다.시양은 현준이 소혜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회사에서도 소혜에게 특혜를 줬던 그를 시양은 일부러 유혹했다. 현준을 차지해 소혜를 공격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현준은 시양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