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건호는 강아심 곁으로 다가가 웃으며 말했다. “강아심 씨, 정말 궁금한데, 강시언과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아심은 대답 대신 부드럽게 웃으며 물었다. “그러는 서건호 씨는 시언 오빠와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우리는 전우였어요!”아심은 일부러 천진난만하게 물었다. “전우가 뭐죠?”“아심 씨, 저랑 장난치시는 건가요?” 건호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전우는 당연히 함께 싸우는 친구를 뜻해요.”“아!” 아심은 그제야 깨달은 듯이 말했다. “저는 전우가 함께 싸우면서 등에 칼을 꽂는 친구인 줄 알았어요!”건호의 얼굴에 웃음이 굳어지고 안절부절하며 말했다. “아심 씨는 정말 농담을 잘하시네요.”“저는 농담하지 않아요, 특히 잘 모르는 사람과는요!”건호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약간 화가 났지만, 아심이 성현이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어떻게 할 수 없어 그저 자리를 피했다.성현은 한쪽에 앉아, 아심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갑자기 아심이 이렇게 재치 있는 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뼛속 깊이 간질거리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아심을 당장이라도 끌어안고 싶었다.설윤은 건호가 망신당하는 모습을 보고, 비웃으며 성현과 눈을 마주쳤다. 그러고는 설윤도 조용히 일어나 방을 나갔다. 방에서 나가자, 방시혁 부사장이 보낸 메시지를 보고, 설윤은 복도를 따라 왼쪽으로 걸어가 시언을 찾았다. 시언이 화장실에서 나오자마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설윤을 보았다.“나 할 말 있어!” 설윤은 눈을 살짝 치켜뜨며, 유혹적인 눈빛으로 시언을 바라보았다. 벽에 설치된 벽등이 따뜻한 노란빛을 발했지만, 시언의 얼굴은 조금도 부드러워지지 않았다. 그저 차가운 눈빛으로 무심하게 말했다. “말해, 한 번에 다 말해. 나한테는 시간 낭비할 여유가 없어.”이에 설윤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말했다. “나는 줄곧 너를 좋아했어. 나중에 성현과 사귄 것도 화가 나서 그런 거야.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사랑한 사람은 너야!”“난 너를 사랑하지 않아.”
“농담이라면, 당연히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 없죠.” 강아심도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하지만 이런 농담은 앞으로 하지 말아주세요.”“알겠어요!” 임성현은 아심이 술을 마신 것을 보고, 속으로 기뻐하며 말했다. “우리 회사는 아심 씨 회사와 계속 협력할 거니까, 관계를 악화시키면 안 되죠.”성현은 다시 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아심 씨,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강아심은 다시 한 모금 마시고, 따뜻하면서도 거리를 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장님은 노래 안 부르세요?”“건호더러 부르게 하고, 우리 둘이서 얘기해요.” 성현은 더 가까이 다가가며, 시간을 체크하면서 아심의 반응을 지켜보았다. 일반적으로는 3분이 지나면 몸에 힘이 빠지지만, 의식을 잃지는 않는다. 하지만 서건호가 두 곡을 부르고 나서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성현은 초조해졌다.“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아심은 갑자기 일어나며 말하자 성현도 바로 일어나며 말했다. “블루드 같은 곳은 좀 위험하니까, 내가 화장실 문 앞에서 기다릴게요.”아심은 거부하지 않고, 발걸음을 옮겼는데 문을 열자마자, 문밖에서 들어오려는 강시언을 보았다. 성현은 즉시 눈살을 찌푸리며, 시언의 뒤에 있는 방설윤을 차갑게 쏘아보았다. ‘이 멍청한 여자가 이거 하나 막지 못하네.’아심도 약간 실망했지만, 손목을 돌리며 손바닥에 감춰둔 냉기를 소매 속에 숨겼다. 그리고는 시언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몸이 좀 안 좋으니까 우리 먼저 가요.”아심의 말에 성현은 심장이 뛰며, 아심을 붙잡으려 손을 뻗었으나 아심은 몸을 기울이며, 시언의 팔에 기대었다. 그리고는 뒤돌아 설윤에게 말했다. “방시혁 부사장님이 이미 가셨으니, 우리도 먼저 가볼게요.”시언은 아심의 허리를 감싸 안고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성현은 속이 타들어 갔지만, 두 사람을 눈앞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곧이어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설윤에게 화를 내며 말했다. “거의 성공했는데, 왜 다시 들여보낸 거야?”설윤도 성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강아심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느긋한 눈동자에 밤의 차가운 어둠이 비쳤다.‘나에게 약을 먹이려 했다니?’열 명이 감시하고 있었는데도, 아심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잔을 바꿔치웠다.‘임성현은 그런 얕은 수작이 나에게 통할 거라고 생각했나?’누군가는 아심의 기술이 부족하다고 항상 말했는데, 아심은 절대로 그 말을 인정할 수 없었다. 강시언은 아심의 끊임없이 변하는 표정을 보며, 손을 들어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또 취했어?”아심은 시언의 팔에 기대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래요, 나중에 내가 무슨 과한 행동을 하거나 과한 말을 해도, 취했다고 생각해 줘요. 따지지 말고!”약간 불만을 토로하듯 말하는 아심에 시언은 힐끔 쳐다보았다. “평소에 내가 너한테 굉장히 엄격한 것처럼 말하네!”“당신이 얼마나 무서운지 몰라서 그래요!”아심이 콧방귀를 뀌며 말하자 시언은 미소를 지었다. “지금은?”아심은 의자에 기대고는 눈빛을 반짝이며 바라보았다. “지금은 존경하죠!”시언은 앞을 바라보며 되물었다.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해, 그게 존경이야?”아심은 시언의 진지한 표정을 보고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는데 도무지 웃음을 멈출 수 없었고, 시언의 몸에 기대어 웃었다. 그렇게 한참 웃자 추운 밤이 따뜻해지는 듯했다. 시언은 그런 아심을 내려다보며, 입꼬리도 따라서 약간 올라갔다. 집에 돌아와서 두 사람은 거실에서 오랫동안 키스하고는 아심이 시언의 입술에서 떨어져 낮게 속삭였다.“술 마실래요?”“저녁에 충분히 마시지 않았어?”“취하고 싶어요. 그러면 무리한 요구를 할 수 있으니까.”부드럽게 말하는 시언은 어두운 눈빛으로 말했다. “가져와.”잠시 후, 두 사람은 발코니의 소파에 앉아, 앞에 위스키 한 병을 놓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거실의 스탠드 램프가 자동으로 꺼졌다. 방 안은 어둠에 휩싸였고, 밖의 희미한 불빛만이 들어와, 마치 얇은 베일처럼 두 사람의 몸에 내려앉았다.“노래도 부를 줄 알았어요? 그럼 나를
아심은 고개를 들어 시언을 바라보았는데 술기운으로 얼굴이 빨갛게 물들어 더욱 매혹적이었다. “방설윤이 당신을 좋아하는 이유를 알겠어요. 내가 예전에 당신 노래를 들었더라면 나도 빠졌을지도 모르죠.”시언은 설윤의 이름이 나오자 무심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잠이나 자자.”하지만 아심은 반 취한 눈빛으로 말했다. “하나만 더 부탁해도 돼요?”“말해 봐.”“나 정말 취해서 일어날 수가 없어요.”그 말에 시언은 아심의 손에서 잔을 가져가고는 아심을 번쩍 안아 들고 침실로 걸어갔다....밤에 아심은 시언에게 노래를 불러줘서 고맙다며, 시언에 대한 존경어린 마음을 한껏 표현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이미 늦었지만, 아심은 일어나 세수를 하고 직접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머리 아파?”식사 중에 시언이 묻자 아심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조금요!”“다음번에는 그렇게 많이 마시지 마.” “내 몸을 걱정하는 거예요? 아니면 내가 또 달라붙는 게 싫은 거예요?”시언은 숟가락을 멈추고 아심을 바라보자 아심은 순순히 꼬리를 내렸다. “알았어요, 알았어, 당신 말대로 반항하지 않을게요!”시언은 미소를 지으며, 계속해서 국을 마셨다. 그날 아심은 시언이 계속 보디가드를 할지 묻지 않았고 집을 나설 때, 차 키를 자연스럽게 시언에게 건넸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지라 아심은 더 많은 것을 원했다.사무실에 도착하니 정아현이 커피 두 잔을 가져왔고 시언을 힐끔 보고는 아심의 앞에 다가와 몰래 웃었다. “사장님, 요즘 더 예뻐지셨어요!”갑작스러운 말에 아심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전에는 안 예뻤나요?”“지금이 더 예뻐요!”아현은 급히 고개를 저으며 말하자 아심은 펜으로 자기 이마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일하러 가요. 그리고 소문 퍼뜨리면 보너스 깎을 거예요!”이에 아현은 웃으며 돌아서서 문을 닫고 나갔다. 아심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있었는데 낯선 사람에게서 온 메시지를 받았다.[강아심, 네 회사 밑에 있어. 당장 내려와. 여자끼
방설윤의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 “걔가 너를 좋아한다고? 강시언은 단지 네 돈을 좋아하는 거야. 너는 돈으로 걔를 부양하고 있어. 내가 모를 줄 알아?”“너는 네가 시언 오빠를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만, 오빠에 대해 조금도 이해하지 못해.”설윤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너는 이해해? 너는 시언이를 얼마나 오래 알았다고? 나는 걔를 거의 10년 동안 알아 왔어!”아심은 설윤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물었다. “당신 언제 오빠를 만났는데?”갑작스러운 질문에 설윤은 순간 당황하며 눈을 좁혔다. “그걸 왜 물어?”“20살 때, 시언 오빠를 만났겠지.” 아심은 두 걸음 다가가며 말했다. 아심의 매혹적이고 침착한 얼굴은 설윤의 흉하고 초라한 모습과 대조를 이루었다. “오빠가 왜 당신을 좋아하지 않는지 알아?”“안목이 없는 거지!”“아니, 그건 내가 이미 오빠의 삶에 있었기 때문이야.” 아심은 강렬한 눈빛으로 말했다. “누가 먼저 나타났는지는 말하지 않겠어. 너 자신을 봐. 어디가 나보다 나은지. 시언은 당연히 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고 너는 아니야.”설윤은 눈을 크게 뜨고 완전히 화가 나서 아심의 얼굴을 떄리려고 달려들었으나 아심은 설윤이 다가오기도 전에 먼저 손을 썼다. 짝! 설윤이 반응하기도 전에, 아심은 설윤의 옷깃을 잡아 다시 한번 세게 때렸다. “네가 오늘 나를 찾지 않았다면, 내가 너를 찾았을 거야.”아심의 눈은 차갑고 아름다웠다.“임성현 같은 쓰레기와 함께 시언 오빠를 해치려 하다니, 네가 좋아한다고 할 자격이 있어?”“너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니 머리카락조차도 어울리지 않아!”“그딴 남자랑 손잡고 이런 일을 꾸미다니, 너는 지금 이런 일을 당해도 마땅해!”아심은 화가 꽤나 났는지 말재주가 굉장히 빨랐고, 날카로운 말로 설윤을 후퇴하게 했다. 설윤은 군 복무를 했고, 집안도 부유하며, 평소에는 거만한 여자였지만, 지금은 아심의 기세에 완전히 눌려 반격할 기회조차 없었다.설윤은 계속 후퇴하며, 차에 부딪힐 때까지 물러나며
어젯밤 서건호는 술기운에 용기를 내어, 새벽에는 임성현과 함께 방설윤을 블루드에 버려두고 도망쳤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 술이 깨자, 건호는 두려움에 떨었다. 그랬기에 건호는 직장에도 가지 않고, 급히 성현의 회사로 가서 이 문제에 대해 상의했다. “방설윤이 나한테 보복하지 않겠죠?”설윤의 집안은 강성의 부자 중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건호를 상대로는 충분히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불안해하는 건호에 성현은 무심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 내가 너를 보호할 테니까, 걔는 감히 너에게 아무 짓도 하지 못해.”건호는 조금 안심하며 말했다. “이번 주는 휴가를 내고, 네 회사에 머물러 있을게.”“겁쟁이 같으니라고!”성현이 웃으며 말하자 건호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걔는 원래도 욱하는 성질이었잖아요. 정말 제 회사에 찾아올까 봐 겁나요.”“걔는 감히 그러지 못해. 본인 자신도 이번 일과 관련되어 있으니, 그냥 입 닫고 있을 거야. 걱정하지 마!” 성현이 자신만만하게 말하자 건호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며, 눈빛에 다시 빛이 나며, 담배를 꺼내 성현에게 불을 붙여 주었다. “강아심은 어떻게 할 거예요? 그냥 넘어갈 거예요?”“넘어가다니? 난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은 반드시 가졌었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성현이 냉소하자 건호가 심각하게 말했다. “어제 술을 바꿔치기한 게 분명해요. 경계심이 너무 강해서 처리하기 어려워요.”“간접적으로 안 되면, 직접적으로 하면 돼!” 성현은 담배를 한 모금 피우며, 얼굴에 어두운 기운을 드리웠다. “내가 너무 봐줬어!”성현의 말에 건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형님이 강아심과 시언에게 한 번 제대로 보여줘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자신이 엄청 대단하다고 착각할 거예요!”건호의 말은 성현에게 있어서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이었다.“두고 보자!”...점심을 먹고 돌아온 후, 시언은 소파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아심은 두 개의 파일을 처리하는 중이었는데, 소파에서 햇빛을 받는 시
강아심은 잠에서 깨어나, 눈을 뜨고, 흐릿한 눈으로 강시언을 바라보았다. 시언은 자신을 쳐다보는 아심의 얼굴을 살짝 만지며 말했다. “더 자지 마, 누가 너를 찾고 있어!”“아!” 아심은 희미하게 대답하며, 다시 시언의 품에 얼굴을 묻고 비비다가 일어났다. 문밖의 사람 그림자를 보며, 옷을 정돈하고 일어나서 책상으로 걸어갔다.“들어오세요!”정아현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와, 먼저 시언을 한 번 쳐다보고, 아심에게 다가와 머뭇거리며 말했다. “사장님, 방금 성유그룹에서 전화가 왔는데, 협력 문제로 얘기하고 싶다고 해요.”아심은 성현의 전화를 차단해 두었기 때문에 직접 전화를 걸 수 없어서 아현을 찾게 한 것이었다. 아현은 자기 사장과 성현 사이의 갈등을 알지 못했지만, 성현의 평판을 들은 적이 있어, 좋은 의도로 접근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아현의 말에 아심은 이미 정신을 차리고, 냉랭한 얼굴로 말했다. “그들에게 협력은 취소됐다고 전해요. 다른 곳을 찾으라고 하세요.”“네!” 아현은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갔고 아심은 시언을 바라보며 가볍게 웃었다.“어떤 사람들은 자기 무덤을 보기 전까지 눈물을 흘리지 않죠!”“그러면 무덤에 묻어줘야지!”시언은 고개를 들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현이 전한 말이 성현을 화나게 했고, 아심의 회사는 성유그룹의 보복을 받기 시작했다. 한 시간 내에, 장기 협력 관계에 있는 세 개 회사가 전화를 걸어와 협력을 취소한다고 말했다.영업팀 부장이 직감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아는 사람에게 알아보니 성유그룹이 압력을 가해 아심의 회사와 협력하지 못하게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성현의 회사는 그리 대단하지 않지만, 집안 배경이 대단했다. 게다가 성현은 오만하고 잔인한 성격으로 많은 사람들이 피하고 싶어 했다. 아현은 계속해서 아심에게 보고했지만, 아심은 표정이 변하지 않았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 취소 절차를 밟으면 돼!”아현은 성유그룹의 행동에 분노하며 떠났다. 반 시간도 지
“제가 성유그룹과 협상할게요.” 애서린이 설명했다. “제 어머니는 임성현 사장 어머니의 사촌이에요. 그러니 저와는 사촌 관계이죠. 제가 가서 얘기를 잘해서, 협력하고 싶으시다면 제가 따올게요.”“만약 원하지 않으면, 제가 우리 회사에 대한 공격을 멈추게 할 수 있어요.”강아심은 차분하게 말했다. “회사를 위해서라면 갈 필요 없어요.”“사장님, 제가 가게 해주세요. 저는 이 일을 해결할 자신이 있어요.”소파에 앉아있던 강시언이 고개를 들며 차분하게 말했다. “임성현은 비상식적인 사람이라 친척 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거예요. 나도 가지 말라고 권하고 싶네요.”“우리 두 집안은 예전부터 자주 왕래했고 어렸을 때도 함께 놀았어요. 사장님, 저를 보내주세요. 제가 협상을 잘 끝내면, 모든 커미션을 저에게 주실 수 있나요?”아심은 시언을 바라보았으나 시언은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도 가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애서린은 필사적으로 말했다. “정말 괜찮아요. 협상이 안 되더라도, 우리 두 집안의 관계를 생각해서라도 저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거예요.”“사장님, 저에게 기회를 주세요. 요즘 돈이 정말 필요해요. 이 커미션이 정말 필요해요.”이때 아현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장님, 애서린에게 한 번 맡겨보시죠.”아심은 애서린의 간절한 눈빛을 보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가세요. 문제가 생기면 바로 전화하시고요. 협력은 중요하지 않고 돈도 다시 벌 수 있으니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것을 명심하세요.”애서린은 기쁜 표정을 지으며, 자신감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 “알겠어요. 바로 다녀올게요. 꼭 좋은 소식을 가지고 돌아올게요.”애서린은 아심에게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빠르게 나갔다. 그리고 아현은 애서린을 따라가며 안전을 주의하라고 당부했다. 아심은 일어나서 문을 닫고, 시언의 맞은편에 앉아 물었다. “내가 보내면 안 된다고 생각하죠?”시언은 검은 눈으로 아심을 바라보며 말했다. “상관없어. 걔가
“역시 이런 식으로 문제가 될 줄 알았어요.”은서는 싸늘한 눈빛으로 말하자, 손기수가 물었다.[이제 어떻게 하죠?]구은서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장말숙한테 손자가 있잖아요. 그 애를 데려가요. 안전한 곳에 숨겨두고 지켜여.”이에 손기수는 비죽 웃으며 말했다.[그건 납치 아닌가요?]“이건 우리 엄마 뜻이에요.”은서는 그 말을 강조하듯 단호하게 말했다.“일만 제대로 끝내면, 보수는 두 배로 줄 거예요.”그제야 손기수는 만족스레 웃으며 대답했다.[좋아요. 저한테 맡기세요.]은서는 다시 신신당부했다. “숨겨두기만 해야 해요. 절대 다치게 하면 안 돼요.”이에 손기수는 급히 말했다.[우리가 어떻게 감히 그런 짓을 하겠어요!]은서는 차가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우리 엄마 말씀만 잘 따르면,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거예요.”모든 게 은정을 내쫓는 날까지만 버티면 그만이었다. 장말숙의 아들이 위협되지 않게 만들어야 했고, 지금 중요한 건 은정을 최대한 빨리 강제로 떠나게 만드는 일이었다.두 시간 후.오현빈이 급히 은정에게 전화를 걸었다.[형님, 큰일이에요. 장말숙 아주머니 손자가 납치당했어요!”은정의 눈빛이 차갑게 되었다. 그와 유진의 계획은 장말숙의 아들이 철없는 무뢰한이라는 걸 이용해, 서선영 쪽 사람들과 충돌이 일어나게 만들고 그 사이에서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었다.그런데 서선영은 한 수 더 앞질렀다. 직접 손자를 납치해 버린 것이다. 은정은 느긋한 듯 말했지만, 말투엔 서늘한 살기가 묻어났다.“왜 못 막았어?”현빈이 대답했다.[도착했을 땐 이미 데려가고 난 뒤였어요. 아이는 집에 혼자 있었고요.]장말숙은 요즘 일을 그만두고 손자를 돌보고 있었다. 자기 아들은 놀기 좋아하고 도박을 일삼으며 최근 큰 빚까지 졌고, 며느리는 친정으로 들어가 버렸다.장말숙이 서선영의 돈을 받은 것도 빚을 갚고 며느리를 다시 불러들이기 위한 것이었다.그날 점심을 먹고 잠시 슈퍼에 다녀온 사이, 손자가 납치된 것이다.은정은 알고 있
“아주머니는 분명 그날 일에 대해 알고 있어요. 그 사람한테 직접 확인하러 갈 거예요!”임유진은 말을 끝내자마자 그대로 뛰쳐나갔다.“유진아!”구은서는 몇 걸음 뒤쫓았지만, 유진은 이미 계단 아래로 사라지고 있었다. 은서는 굳게 이를 악물며 눈살을 찌푸렸다.서선영이 집에 없다는 걸 알자, 그녀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장말숙 아주머니 잘 지켜봐요. 유진이 그날 일 알아보려고, 지금 그 사람 찾으러 갔으니까.”그러나 서선영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걔가 뭘 안다고 찾아?]은서는 차분히 말했다.“유진은 임씨 집안 사람이야. 찾으려면 못 찾을 사람이 없죠.”이에 서선영의 말투도 조금 무거워졌다.[알았어. 내가 금방 사람 붙여서 장말숙 감시하라고 할게.]은서는 이어서 냉랭하게 따져 물었다.“절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는다면서요? 근데 걔는 어떻게 안 거예요?”유진이 알았다는 건, 임씨 가족들까지도 이미 감지했다는 뜻이었다. 이에 은서는 불안감에 입술을 꾹 눌렀다.서선영은 얼버무리며 말했다.[아마 도우미 중 누가 말실수했을 거야. 다시 철저히 단속해 둘게. 걱정하지 마. 소문 좀 난다 해도 너한테까지 영향은 안 가. 넌 그냥 조용히 대본 연습이나 해.][이번 영화, 내가 네 외삼촌 꼬드겨서 겨우 투자받은 거 알지? 이번 기회 잘 잡아야 해. 딴 건 신경 쓰지 마. 연기만 잘하면 돼.]은서는 그 말에 더욱 날카로워졌다. 이번 영화는 유명 감독의 대작이었고, 은서에게는 이미지 회복의 유일한 기회였다. 그렇기에 서선영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나 곧 촬영 들어가요. 그러니까 이번 일 절대 망치지 마요.”[알았어!]서선영은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유진은 급히 차로 돌아와 깊게 숨을 들이쉰 후, 곧장 은정에게 전화를 걸었다.“서선영 쪽에서 곧 움직일 거예요.”[알고 있어. 이미 준비해 뒀어.]은정의 목소리는 침착했고, 유진은 안심하며 숨을 내쉬었다.이윽고, 은정이 조용히 말했다.[고생 많았어.]이에 유진은 입꼬리를 살짝 올
“아파요!”유진은 짧은 비명을 내뱉으며 순식간에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녀는 팔을 뻗어 구은정의 목에 매달리듯 안으며, 자기 얼굴을 숨기려 했다.이에 은정은 그녀의 어깨를 쓸어내리며 허스키한 목소리로 낮게 웃었다.“왜 예전 같지 않아? 예전엔 몰래라도 키스하려고 했으면서, 이젠 실컷 하라고 해도 도망치기 바쁘네.”유진은 은정을 꼭 안으며 눈가가 붉게 물들었지만 속은 터질 듯 행복했다. 이제는 몰래 키스할 필요가 없다. 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할 수 있었다.은정은 유진의 발그레한 귀에 입을 맞추며 낮게 속삭였다.“전에 난 늘 걱정했어. 네가 그냥 어린 마음에 나한테 끌리는 거라고. 그저 신기하고 새로워서, 가질 수 없으니까 더 마음이 가는 거라고.”“우리가 진짜로 사귀게 되면 금세 질릴 거라고. 나는 사실 정말 재미없는 사람이야. 총 쏘고 싸우는 것 빼곤 할 줄 아는 게 없어.”“요즘 애들이 좋아하는 것도 몰라. 마음도 더 이상 젊지 않아.”“그래서 넌 언젠가 내가 생각보다 별거 아니라는 걸 깨닫고, 그 마음이 식을까 봐 두려웠어.”유진은 목이 메어, 콧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그럼 내가 기억 잃었을 때, 왜 다시 나한테 다가왔어요?”은정은 예전엔 그렇게 차갑게 거절했던 사람인데, 교통사고 한 번 났다고 갑자기 사랑하게 된 걸까? 혹시 죄책감 때문은 아니었을까?그런 생각이 유진을 계속 불안하게 했다. 잠시 침묵하던 은정이 조용히 말했다.“아마 너 없는 세상이, 정말로 견딜 수 없을 만큼 어둡고 차가웠기 때문일 거야.”그 말에 유진의 가슴은 요동쳤다. 그녀는 조용히 몸을 일으켜 은정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마음 깊은 곳까지 꿰뚫어 보려는 듯, 어둠을 걷어내고 자신의 빛으로 은정의 세상을 덮어주려는 듯한 눈빛이었다.유진은 다시 한번, 은정에게 입을 맞췄는데, 이번엔 더욱 깊고 부드러운 입맞춤이었다.은정은 곧 유진을 세게 안았고, 불같이 뜨거운 열기가 유진을 감쌌다. 죽음 같은 어둠 속에서 되살아난 사람처럼, 은정의 키스는
“그 사람들이 설마...”유진은 커다란 눈을 뜨고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이에 구은정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네가 생각한 그대로야.”유진은 믿기지 않는 듯 놀람과 동시에 깊은 자책의 기색을 띄웠다.“결국 내가 이렇게 만든 거잖아요.”“자꾸 그런 식으로 네 탓 하지 마.”은정은 그녀의 뺨을 다정하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너는 둘 사이의 더러운 사정도 몰랐잖아.”유진은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서선영은 그래도 이해가 가. 근데 구은서는 왜 그렇게까지 자기 엄마한테 협조한 거예요?”“자기 명예가 달린 문제인데, 게다가 지금은 연예인이잖아요. 설령 피해자라 해도, 그런 얘기 퍼지는 게 좋을 리 없잖아요.”은정은 깊은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대답했다.“십몇 년 전 그 일 땐, 은서는 진짜로 몰랐던 것 같아. 내가 샤워 끝내고 나왔을 땐 자고 있었고, 서선영이 소리 지르고 난리 쳐도 안 일어났거든.”“그땐 그냥 서선영한테 이용당한 거지. 근데 이번엔 서선영이 어떻게 설득했는지는 나도 몰라.”유진은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서선영은 정말 너무 악랄했다. 자기 딸까지도 그런 식으로 이용한다면, 못 할 짓이 뭐가 있을까?더구나 서선영은 알고 있었다. 이런 식의 루머가 은정에게 가장 치명적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게 바로 구은태에게도 가장 아픈 약점이라는 것을. 그래서 서선영은 또다시 그 수를 썼다.유진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중얼거렸다.“그때 전화받은 아주머니, 그 사람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찾을 수는 있어. 하지만 서선영한테서 돈을 받았고, 아마 협박도 받았을 거야.솔직히 말해줄 가능성은 작아.”은정은 냉정하게 말하자, 유진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그래도 찾아봐야죠. 당장 데리고 가서 집에 가서 진실을 말하게 해야 해요!”은정은 유진의 손목을 붙잡았는데, 목소리는 단호하면서도 부드러웠다.“서두르지 마.”“어떻게 안 서둘러요! 지금 이미 밖에선 온갖 소문이 돌고 있다고요!”유진이 답답해하며 소리치자,
“그날 밤 전화했을 때 말이야.”유진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그게 바로 그날이었어요?”“그래.”은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그는 서선영이 무슨 짓을 꾸미는지 몰랐다. 혹시 다시는 유진을 볼 수 없게 될까 두려워, 마지막으로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서 전화를 걸었다.사실은 유진에게 자기 집으로 와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끝내 그 말이 목구멍에서 나오지 않았다.유진은 자책하듯 말했다.“나도 그때 뭔가 이상하단 걸 느꼈어. 근데 안 찾아갔어요.”은정은 유진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말했다.“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그때는 이미 깊은 밤이었고, 유진은 단지 모호한 한 통의 전화로 구씨 저택까지 달려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유진의 마음속은 여전히 무겁고 미안했다.“내가 갔더라면, 그 여자의 계략이 통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는데요.”“유진아, 우리 이제 과거에 대해 그만 후회하자. 응?”은정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유진을 바라보며 말하자,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중요한 건, 서선영 모녀의 거짓말을 어떻게 밝혀낼지였다.“그 여자가 떠나라고 하니까, 진짜 떠나려던 거예요? 도대체 언제부터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됐어?”유진이 화가 난 듯 말하자, 은정은 그녀를 바라보며, 차가운 듯 부드러운 눈빛으로 대답했다.“내 명예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어. 네가 그 일 알고 나서 날 더 미워할까 봐, 그게 무서웠지.”호텔에서 유진이 여씨 집안 가족 모임에 참석한 걸 봤을 때, 그는 마음이 무너졌다.자신은 온몸이 상처투성이고, 앞으로도 더러운 과거 때문에 손가락질받을 인생인데, 그런 자신의 곁에 유진을 두는 게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했다.유진은 따뜻하면서도 가슴 아픈 눈빛으로 은정을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유진은 두 손으로 은정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안개 낀 듯한 눈동자가 그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은정의 어두운 그림자를 밀어내고 그 마음속까지 빛으로 채우려는 듯한 눈빛이었다.이번에는 유진이 먼저 입을 맞췄는데, 그 키스는 애틋하고 따스했
“정말 못됐어요. 그런데도 난, 이렇게 좋아하니까.”유진은 코끝을 훌쩍이며 속삭이듯 말하자, 은정의 눈빛이 짙게 가라앉았고, 유진을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유진은 흐느낌 속에 물었다.“그래도 또 떠날 거예요?”“안 떠나.”은정은 마치 유진의 몸이 자기의 일부라도 된 것처럼 꼭 끌어안았다.유진은 입술을 꾹 다물었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도 입가엔 참을 수 없이 번지는 미소가 피어올랐다.멀찍이서 둘을 바라보던 소희는 마침내 안도한 듯 미소를 지었고, 잠시 바라보다 조용히 돌아섰다.은정은 티켓 환불을 마치고, 유진의 손을 꼭 잡고 공항 로비를 빠져나왔다.그때 소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유진이는 맡길게. 잘 달래줘. 난 먼저 갈게.]은정은 묵직한 음성으로 대답했다.“소희, 정말 고마워.”[혹시 집안 문제, 도와줄 일 있으면 말해.]은정은 원래의 냉정한 눈빛을 되찾으며, 대답했다.“아니, 내 일은 내가 해결할게.”[그래.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해. 임씨 집안 쪽 설득도 내가 도와줄 수 있어.]은정은 낮게 웃었다.“혼자 힘으로 안 되면 그때 부탁할게.”전화를 끊은 뒤, 유진이 옆에서 물었다.“소희, 갔어요?”“응. 우리 집에 가자.”은정은 다시 유진의 손을 꼭 잡았다.유진은 그날 회사에 가지 않고, 전화를 걸어 휴가를 냈다. 이경 아파트로 돌아오자마자, 문을 열고 들어선 은정은 유진을 번쩍 안아 들고 그대로 입을 맞췄다.유진은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고, 두 다리로 그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세게 은정을 끌어안고 입맞춤에 응했다.유진의 반응은 은정을 더욱 자극했고, 입술은 불꽃처럼 뜨거웠다. 은정은 강렬함과 부드러움을 오가며 끊임없이 유진의 반응을 확인했고, 만족할 만한 대답을 얻었을 때에야 숨을 고르며 입술을 떼었다.유진은 숨을 헐떡이며 눈을 반쯤 감고 있었다.“언제 기억난 거야?”은정은 유진의 입술 위에서 낮게 물었다.유진의 커다란 눈동자엔 얇은 안개 같은 물기가 맺혀 있었고, 눈가엔 눈물 자국이 남아 붉
“나쁜 놈!”유진은 이를 악물고 욕설을 내뱉으며, 손등으로 눈물을 거칠게 닦고는 그대로 뛰쳐나갔다.허둥지둥 엘리베이터를 내려가던 중, 예상치 못하게 1층 현관 앞에서 막 차에서 내리는 소희와 마주쳤다.유진은 달려가 소희를 끌어안으며, 눈물로 목소리가 떨렸다.“소희야. 그 사람, 갔어.”소희는 차가운 눈빛으로 유진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손을 들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침착하게 말했다.“지금쯤 공항 도착했을 거야. 얼른 차 타. 우리가 가서 막자.”유진은 울먹이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응.”차에 올라탄 후, 소희는 아침 출근길 교통체증을 피해 가능한 한 빠른 길로 달렸다. 조수석에 앉은 유진은 여전히 망연자실한 얼굴이었다.소희는 유진을 스치듯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두려워하지 마. 이번엔, 걔가 지구 반대편까지 도망친다 해도 내가 꼭 데려올게.”유진은 이를 악물며 눈물 맺힌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응.”공항에 도착하자, 소희는 시계를 확인했다.“지금쯤이면 막 보안 검색대 들어갔을 거야. 넌 안으로 들어가. 난 밖에서 기다릴게.”유진은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사람들이 북적이는 공항 안을 정신없이 뛰어다녔다.탑승 게이트 앞, 마침내 수많은 인파 속에서 그토록 익숙하고, 아프도록 그리운 구은정의 뒷모습을 발견했다.너무 긴장한 탓일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은정이 거의 들어가려던 순간, 유진은 겨우 목을 눌러 뜨거운 한마디를 토해냈다.“서인!”이에 은정의 발걸음이 멈췄고, 순간 고개를 홱 돌렸다. 사람들 사이 너머로, 유진이 서 있었다.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친 그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지나가는 사람들, 소음, 움직임. 모든 게 멀어지고, 과거와 현재가 한꺼번에 겹쳤다.처음 만났던 순간. 잃어버린 가방을 찾아 건네주던 은정의 등.“정말 대단해.”감탄하던 유진의 눈빛. 차가웠던 은정의 반응. 하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은정이 궁금했고, 따랐고, 그렇게 샤브샤브집에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다.유진은
방연하는 어이없다는 듯 여진구를 바라보며 말했다.“선배, 지금 진심이에요? 머리 괜찮아?”여진구는 연하를 째려보았다. 연하는 주변의 예쁘게 꾸며진 꽃길과 풍선을 둘러보며 부러움 섞인 말투로 말했다.“이거 진짜 예쁘네요. 나도 나중에 이런 대접 한번 받아볼 수 있을까요?”“너한테 고백할 남자가 이런 것도 못 하면, 내가 대신 해줄게.”진구는 시원하게 말하자, 연하는 헛웃음을 지으며 받아쳤다.“미리 감사 인사드릴게요, 여진구 사장님.”그 시각, 유진은 집에 돌아왔지만 마음은 여전히 뒤숭숭했고, 계속 뭔가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그날 밤은 뒤척이기만 하다가, 새벽이 되자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아침 7시가 되자, 임유민이 방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 문에 기대선 그는 느슨하게 말했다.“누나, 이번 주 금요일 우리 학교 축구 경기 있어. 내가 수비수로 나가는데, 학교에서 가족 참관 받는대. 올래?”유진은 고개를 들어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좋지. 꼭 응원하러 갈게.”유민은 그녀가 짐을 싸는 걸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근데 누나, 짐은 왜 싸?”유진은 노트북을 가방에 넣으며 말했다.“이젠 다시 이경 아파트로 돌아가려고.”유민은 조금 놀랐다.“안 돌아가겠다고 하지 않았어?”유진은 눈을 내리깔며 담담하게 대답했다.“가고 싶어졌어.”유민은 문에 기댄 채 웃으며 중얼거렸다.“역시 내 예상이 맞았네. 근데 이번에는 그렇게 바보처럼 굴지 마.”유진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뭐라고?”이에 유민은 씩 웃었다.“엄마는 아침 일찍 나갔고, 할머니한테는 꼭 인사하고 가. 안 그러면 또 가출했다고 난리 나실걸.”유진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집에 없을 땐, 네가 좀 더 착하게 굴어. 할머니 기분 잘 맞춰 드리고.”유민은 양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말했다.“그건 숙모한테나 하라고.”유진은 참지 못하고 푸흐 웃음을 터뜨렸다. 짐을 정리한 후, 운전기사에게 짐을 차에 실어달라 부탁하고 자신은 할머니에게 인사드리
유진은 은정이 차를 타고 떠나는 모습을 직접 보고 나서야 다시 호텔 위층으로 돌아갔다. 혹시나 여씨 집안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할까 봐 대비해야 했다.라운지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흩어졌고, 유진이 그 안으로 들어섰을 때, 여씨 집안의 두 명의 며느리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셋째네는 평소에 그렇게 거칠게 굴더니, 오늘 자기 아들이 그렇게 당했는데도 조용하네?”다른 여성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들었는데 인후가 아가씨를 모욕해서 그렇게 된 거라더라고요. 이 일, 임씨 쪽이 알게 되면 여인후 가만두지 않을걸요?”“그래서였구나! 근데 때린 사람이 누군데?”“그건 잘 모르겠어요.”유진은 고개를 돌려 벽에 기대었다. 그 순간, 조금 전 은정의 어두운 눈빛과 먹먹한 표정이 머릿속을 스쳤고, 가슴이 다시 시리게 아파왔다.그때 여진구가 메시지를 보내오자, 유진은 핸드백을 챙겨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유진아!”호텔 정원에서 진구가 유진을 발견하고는 반갑게 다가왔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꽃다발을 꺼내려 했지만 유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선배!”이에 진구는 웃으며 말했다.“먼저 말해봐.”유진은 진지한 표정으로 진구를 바라보며 말했다.“선배, 전 늘 당신을 선배로, 좋은 친구로 생각했어요. 그 이상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어요.”“오늘 가족 모임에 참석하면서 다들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부디 오해가 더 커지지 않도록, 할아버지랑 어른들께는 확실히 말씀드려 주세요.”진구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직 아무 말도 꺼내지도 않았는데, 유진은 이미 자신의 마음을 간파하고,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선을 그어버린 것이다.유진은 미소를 지었지만 그 표정엔 피곤함이 묻어났다.“조금 피곤해서 먼저 갈게요. 할아버지께는 대신 인사 부탁드려요.”유진은 말을 마치고 돌아섰다.몇 걸음만 걸었을까? 그 순간, 뒤쪽 정원에 불이 환하게 밝혀졌다. 형형색색의 하트 모양 꽃장식이 환하게 빛났고, 수많은 풍선과 조명이 하늘로 떠올랐다. 몽환적이고 낭만적인 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