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 "…..."그는 안색이 어두운 채 청아의 몸을 훑어보더니 콧방귀를 뀌었다."전봇대처럼 마른 몸매에 남자도 달랠 줄 모르니, 평생 솔로로 살 준비나 해요!"말을 마치고 그는 고개를 돌려 떠났다.청아는 얼굴이 빨개지며 분노의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솔로라도 당신 같은 남자 찾지 않을 거야!"시원은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지금 뭘 중얼거리고 있어요?"청아는 고개를 살짝 쳐들고 천장을 바라보며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면서 발을 들어 자신의 방으로 갔다.시원은 어쩔 수 없는 듯 웃으며 자기 방으로 돌아가 잠을 잤다.……소희와 구택은 떠난 후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으로 위층으로 올라갔다.위층과 아래층에는 그들 두 집밖에 없었고 계단은 평소에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으니 지금은 더욱 쓰는 사람이 없었다.구택은 직접 소희를 안고 침착하게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갔다.남자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 아름다운 얼굴에는 나른하고 온화한 웃음이 묻어 있었다."술 마셨어요?"소희는 두 팔로 그의 어깨를 안았다."조금 마셨어요.""또 뭐 했죠? 솔직하게 말해요." 남자는 담담하게 웃었다.소희는 가슴이 찔린 채 머리를 굴렸다. 그가 왔을 때 아이스크림은 이미 다 먹었으니 그녀는 그가 알 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웃으며 말했다."술만 조금 마셨어요. 맹세해요!"구택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내가 오기 전에 시원이 나한테 사진 한 장을 보냈는데, 사진 속에서 나는 소희 씨가 아이스크림 한 통을 들고 매우 즐겁게 먹는 것을 보았어요. 설마 내가 잘못 봤나요?"소희는 흑백이 분명한 큰 눈을 뜨고 안색 하나 바꾸지 않고 말했다."틀림없이 시원 씨가 일부러 포토샵 했을 거예요. 우리의 관계를 이간질하기 위해서 말이에요. 구택 씨 절대 속으면 안 돼요!"구택은 깨달으며 진지하게 말했다."소희 씨 말이 맞네요. 우리는 절대 그의 속임수에 넘어가면 안 돼요!"소희는 가볍게 웃으며 그의 얼굴에 뽀뽀를 했다.두 사람은 이미 위층
심명은 담배를 한 모금 피우고 눈을 가늘게 떴다. 구택은 소희와 함께 있지 않고 다른 사람으로 갈아탔을까?그의 만화처럼 잘생긴 얼굴에 하찮은 웃음을 띠고 있었다."예뻐봤자지, 너희들 하나하나 보고 싶어서 안달 나는 모양 좀 봐, 침이 머리에서 흘러나오겠다!"양진은 손석군의 왼쪽에 앉아 심명에게 술을 따라주며 히죽거리며 말했다."나 본 적 있는데. 이래 봬도 정말 예쁜걸요. 그 두 눈이 얼마나 예쁜지! 그러나 임구택이 누구도 그 여자애를 건드리지 못하게 했으니 우리도 그냥 볼 수밖에 없죠!"심명은 코웃음쳤다."임구택이 그런 말을 했다고 꼭 들어야 하니?"이 말은 심명만이 말할 수 있었기에 다른 사람은 감히 대답하지 못하고 그냥 맞장구만 치며 멋쩍게 웃었다.이때 종업원이 들어와 술을 가져다 주자 양진은 자신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즉시 들어온 사람을 가리켰다."형님 믿지 않겠으면 그녀한테 물어봐요, 이런 일이 있는지 없는지."술을 가져다준 사람은 연설화였다. 그녀는 한쪽 무릎을 꿇고 바닥에 술을 놓으며 양진의 말을 듣고 약간 애교를 부리는 듯 심명을 힐끗 쳐다보고며 웃으며 양진에게 물었다."양진 도련님 방금 무슨 말씀 하셨어요? 저 못 들었는데요."양진이 말했다."너희 8층에 새로운 소녀 하나 왔지? 아주 예쁘게 생긴 애인데 8809호를 전문적으로 책임지고 있고. 네가 심명 형님한테 말해봐."설화는 인차 알아차리며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했다."양진 도련님의 말이 맞아요. 확실히 이런 일이 있었어요."그녀는 심명을 조심스럽게 쳐다보며 탄식하며 말했다."그녀는 케이슬에 오자마자 바로 8층에 왔죠. 첫날에 또 손시월을 한바탕 엿 먹였고요. 저희는 모두 그녀가 틀림없이 배경이 간단한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어요. 아니나 다를까, 이틀도 안 되어 저희는 그녀가 임 대표님의 사람이란 것을 알았지 뭐예요."심명은 얇은 입술로 약간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그녀를 불러와, 내가 좀 봐야겠어!"설화는 난감해했다."도련님, 제가 도
양진은 웃으며 말했다."그럼 그녀가 오지 않는다면?"심명은 미소가 조금씩 사라지더니 눈빛이 차가워지진 채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럼 넌 그녀 앞에서 무릎 꿇어!"양진은 멍해지며 심명이 농담인지 아닌지 몰랐지만 방안은 점점 조용해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맞장구를 치며 웃고 떠들던 한 무리의 사람들은 모두 심명이 화가 났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서로를 쳐다보며 왜 분위기가 갑자기 이렇게 됐는지 영문을 몰랐다.심명이 생일을 쇨 때 그들 몇 사람은 현장에 있었지만 케이크를 선물한 그 여자애가 소희라는 것을 몰랐다.심명은 얇은 입술로 가볍게 입을 열었다."가, 가서 무릎 꿇고 그녀더러 오라고 빌어. 그녀가 만약 기분이 좋지 않다면, 넌 네 뺨을 내리치며 그녀를 기쁘게 하고. 아무튼, 그녀는 반드시 와야 해. 그것도 기분 좋게! 그리고 너,"심명은 사악한 눈빛으로 설화를 쏘아보았다."양진 혼자서 무릎 꿇으면 안 되니까 너도 같이 가서 무릎 꿇어. 그리고 소희 씨에게 네가 방금 무슨 험담을 했는지 그대로 말해. 이따 나는 양진한테 물어볼 거야. 만약 네가 한 글자라도 적게 말했다면, 난 사람 시켜서 널 이 8층에서 던져버리라고 할 테니까!"설화는 놀라서 얼굴이 창백해졌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심명에 대해 그녀는 들어본 적이 있었다. 규칙을 지키지 않고 완전히 제멋대로 행동했다. 그가 그녀를 8층에서 던져버리겠다고 한 것은 절대 협박이 아니었다. 이 사람은 정말 이렇게 악랄했다!양진도 안색이 하얗게 질려 석군을 쳐다보며 도움을 청했고 심지어 지금까지도 그는 자신이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몰랐다.석군도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양진에게 경고했고 양진은 멍청해서 그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얼른 가, 가서 소희 아가씨 모셔와!"소희 아가씨라는 말에 양진은 그제야 알아차렸다. 이 소희라는 사람은 심명과 아는 사이였다!그는 지금 자신의 뺨을 때리고 싶었다. 그는 다시 석군을 바라보며 석군이 자신을 도와 심명에게 좋은 말 몇 마디 하게 하고 싶었다.
설화는 매우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그, 그녀는 케이슬에 오자마자 바로 8층에 왔죠. 첫날에 또 손시월을 한바탕 엿 먹였고요. 저희는 모두 그녀가 틀림없이 배경이 간단한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어요. 아니나 다를까, 이틀도 안 되어 저희는 그녀가 임 대표님의 사람이란 것을 알았지 뭐예요.""임 대표님께서 직접 잘 돌보라고 말한 사람이거든요. 수미 언니도 감히 그녀를 건드리지 못해요. 평소에 저희는 아무리 바빠도 감히 그녀더러 돕게 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그녀가 기분 안 좋아서 임 대표님더러 우리를 자르게 할까 봐 두렵다고요!""솔직히 제가 말한것 보다 더 날뛰고 있어요. 어차피 그녀는 누구도 안중에 두지 않으니까 도련님께서 그녀를 찾는다고 말해도 그녀는 눈 한번 들지 않을걸요! 어쩔 수 없죠 뭐, 누가 그녀의 스폰서가 임 대표님이래요!"설화는 감히 심명의 뜻을 어기지 못하고 자기가 한 말을 그대로 반복했다.시월 등 사람은 눈을 부릅떴다. 설화가 말하기 시작할 때 그녀들은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그녀가 두 번째 말을 할 때 인차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았다.설화는 다른 사람 앞에서 소희의 험담을 했던 것 같았다.근데 왜 달려와서 소희한테 다시 한번 얘기하는 것일까?머리가 어떻게 잘못된 거 아니야?소희도 자연히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차렸다. 그녀는 안색이 변하지 않았지만 눈빛은 차가워졌다."나의 뒤엔 비록 임구택 씨가 있지만 내가 당신에게 떳떳하지 못한 일을 했었나요?"설화는 즉시 고개를 저었다."미안해요, 소희 씨. 날 용서해 줘요!"양진은 분개해하며 설화를 노려보았다. 그녀가 일부러 이간질하지 않았다면 그도 그녀의 말을 따라 심명의 비위를 맞추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눈을 돌려 다리를 들어 설화의 몸을 걷어찼다."사람 잘 되는 거 못 보는 천한 년! 앞으로 다시 뒤에서 소희 아가씨 험담하면 형님이 기뻐하지 않는 건 말할 것도 없고, 나도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설화는 비틀거리며 책상에 부딪혀 바닥에 넘어졌지만
그녀는 말을 마치고서야 양진을 보았고 살짝 놀랐다."양진 도련님, 도련님이 여기엔 어쩐 일로 오셨어요?"양진은 수미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애원하는 눈빛으로 소희를 바라보았다.수미가 온 이상 소희도 양진이 수미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무릎을 꿇게 할 순 없어 책과 필기를 거두고 담담하게 말했다."가요, 가서 심명 만나러 갈게요!"양진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턱을 따라 줄줄 흘러내렸다. 그는 감격스러워하며 소희를 바라보고 두 손을 모았다."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소희 아가씨!"소희는 일어나서 수미한테 말했다."수미 언니, 오늘 8801호는 내가 책임질게요."수미는 망설이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임 대표님께서 오신다면……"소희가 말했다."그는 오늘 일이 있어서 오지 않을 거예요."수미는 그녀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심명 도련님은 성격이 별로 좋지 않으셔서 주의하고!"방안의 몇 사람은 눈빛이 복잡한 채 수미를 쳐다보았다. 그들은 만약 그녀가 5분 일찍 왔으면 이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소희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았어요!""가요!"양진은 앞에서 소희더러 먼저 가라고 청하는 자세를 취했다.수미는 눈살을 찌푸렸다. 양진은 오늘 왜 이러는 것일까? 평소에도 성질이 더러운 도련님인데 오늘은 이렇게 인내심이 있다니.그녀는 뒤돌아보니 설화가 궤짝에 기대어 고개를 숙이고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가 초라하고 멍한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며 수미가 물었다."너 왜 그래?"설화는 멈칫하다 고개를 들었다."아, 아니에요!"수미가 말했다."별일 없으면 얼른 가서 일해!"수미가 떠난 후 시월은 설화의 곁으로 가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봤지? 소희가 여기 있으면 우린 고개도 들지 못한다니까!"설화는 눈빛이 반짝였다."이제 그녀를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넌 그녀를 건드릴 능력 없어!"시월은 말투가 음흉했다."너는 그녀를 무서워하지만 난 아니야. 그녀 때문에 임경훈 도련
소희는 그의 맞은편에 앉아 자신이 가져온 술을 따서 그에게 한 잔을 따라주었다."나는 당신이 나를 잡아먹는 거 두렵지 않아요. 또 나를 속일까 봐 두려운 거죠."심명은 기분 좋게 웃었다."또 뭘 속여요? 1년에 생일을 두 번 쇨 순 없잖아요!"소희는 눈을 들며 물었다."당신이라면 그런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심명은 고개를 들어 그녀가 따른 술을 마셨다. 귀에 있는 검은색 귀걸이는 요염한 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그는 눈썹을 들며 웃었다."다음엔 우리 엄마 생일이라고 할게요."소희는 말투가 차가웠다."하느님의 생일이라 해도 난 당신을 도와 케이크를 배달하지 않을 거예요!""풋!" 심명은 입안의 술을 뿜어내며 인차 휴지로 닦으며 웃었다. "하느님 생일에 내가 소희 씨더러 케이크를 어디로 배달하라고 할까요? 하늘로요? 길은 알아요?"소희, "…..."그녀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했는데, 어찌 그렇게 많은 생각을 했겠는가!심명은 기침을 두 번 했다. 그는 하도 웃어서 매력 있는 한 쌍의 두 눈이 빨개졌다."소희 씨, 이렇게 귀엽지 않으면 안 돼요? 그렇지 않으면 나는 소희 씨가 나를 유혹하고 있다고 생각할 건데 말이죠!"소희는 안색이 가라앉더니 경고의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심명은 웃으며 말했다."그만 놀리고 본론 얘기할게요. 소희 씨가 어떻게 여기에 있어요?"소희는 담담하게 말했다."일하잖아요, 보면 몰라요?""왜 여기서 일하냐고 묻는 거예요." 심명은 또 웃고 싶었다. 그도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몰랐다. 소희와 얘기할 때마다 그는 웃고 싶었다. 설령 그녀가 굳은 표정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는 왠지 모르게 웃고 싶었다.만약 그녀를 화나게 했다면 그는 더욱 기뻤다.소희는 심명이 무엇 때문에 웃는지 몰랐고 그저 그가 좀 정신이 이상하다고 느꼈다."여름방학 아르바이트요, 궁금한 게 왜 그렇게 많아요?""소희 씨 지금 임구택이랑 같이 있잖아요?" 심명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그가 준 돈이 부족해요? 아
그는 직접 소희에게 술 한 잔 따라주었다."난 원샷 할게요, 소희 씨는 마음대로 마셔요!"술은 소희가 스스로 연 것이니 그녀는 그가 손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이미 수미에게 술값은 자신의 월급에서 빼라고 말해서 더 이상 심명한테 설명하기가 귀찮았다.심명은 정말 한 잔을 다 마시며 웃으며 말했다."내가 방금 한 말에 대해서 생각해 봐요. 임구택이 뜻밖에도 소희 씨더러 이런 곳에 와서 일하게 하다니, 그러니 소희 씨도 그의 곁에 있지 말고 나한테 와요."소희는 눈살을 찌푸렸다."내가 여기에 와서 일하는 것은 그와 상관없어요!"심명은 비웃었다."장난해요? 여기의 모든 사람들은 모두 소희 씨가 임구택의 사람이라는 것을 다 아는데, 그와 상관이 없다고요?"소희는 이마를 찌푸리며 근심스러운 기색을 띠었다.심명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지금 이건 무슨 표정이에요?"소희는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했다."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와 그의 관계를 알고 있죠? 내가 여기에 오면 구택 씨 혹시 다른 사람한테 비웃음 당하는 거 아니죠?"심명, "......"그는 정말 그녀한테 할 말이 없었다!"그가 그렇게 좋아요?" 심명이 물었다.소희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너무너무 좋아요. 평생 그를 따라다닐 거예요."심명은 마음이 좀 답답했지만 얼굴에는 여전히 사악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설마 나 들으라고 일부러 이렇게 말하는 거 아니겠죠?"소희가 말했다."아니요, 당신은 나를 좋아하지 않잖아요!"심명은 웃으며 말했다."누가 내가 소희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죠? 내가 당신을 이렇게 좋아하고 있는데, 설마 모르는 거예요? 나는 지금 심장을 파내서 소희 씨에게 보여주는 것만 못하고 있어요!""그럼 난 당신이 들으라고 말한 거예요!"심명, "…..."그는 의미심장하고 총애하는 말투로 바꾸었다."바보예요? 임구택은 그냥 소희 씨 갖고 노는 거예요. 그는 당신과 결혼하지 않을 건데 소희 씨는 또 무슨 평생 그와
시원은 수미에게도 전화를 걸어 8801호에 가보라고 했다.수미는 전화를 끊고 속으로 두려워했다. 그녀는 시원의 말을 감히 거역하지 못했지만 또 감히 심명의 미움을 사지 못했다. 모두 다 재벌집 도련님이라 그녀는 어느 하나 잘못 건드려도 바로 끝장이 날 것이다.그녀는 생각하다 술 한 병을 가지고 8801로 갔다. 들어간 후, 그녀는 심명과 소희가 모두 소파에 앉아 있는 채 심명이 지나친 일을 하지 않은 것 같은 것을 보고 속으로 한숨을 돌리고 부드럽게 웃었다."도련님께서 오랫동안 오시지 않았죠. 제가 서비스로 술 한 병 드릴게요. 그동안 저희 8층을 이렇게 돌봐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심명은 그녀의 마음을 한눈에 꿰뚫어 본 듯 웃으며 말했다."그럴 필요 없어. 8층에 이렇게 예쁜 여자애가 왔는데도 나한테 말하지 않는다니, 정말 섭섭해!"수미는 일부러 모르는 척했다."소희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녀는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도련님께 미처 말씀드리지 못했어요, 노여움 푸세요!"심명은 담담하게 웃으며 그녀가 가져온 그 술을 보았다."이 술을 다 마시면 더 이상 안 따질게!"수미는 안색이 약간 변하며 겸연쩍게 웃었다."도련님 농담도 참!"심명은 미소가 옅어졌다."내가 언제 당신과 농담을 한 적이 있어!"수미는 무척 당황했다. 심명은 성격이 비록 이상하지만 그녀를 괴롭히진 않았다. 오늘 갑자기 이렇게 성질을 부리는 것을 보면 아마도 수미가 다른 사람의 부탁으로 왔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녀는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녀는 아마 이번에 심명한테 제대로 미움을 샀을 것이다!그녀는 웃으며 술을 열었다."제 잘못이니 도련님께 사죄할게요. 이 술은 제가 다 마실게요!"소희는 손을 들어 그녀의 손에 있는 술을 받아 심명을 바라보았다."당신이 화가 났으면 내가 이 술을 마시면 되잖아요. 굳이 다른 사람한테 화를 낼 필요가 있을까요?"그녀는 다른 사람이 사진을 찍어서 인스타 올리는 바람에 시원이 봤다는 것을 몰랐고, 수미가 시원의 부탁으로 왔
“역시 이런 식으로 문제가 될 줄 알았어요.”은서는 싸늘한 눈빛으로 말하자, 손기수가 물었다.[이제 어떻게 하죠?]구은서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장말숙한테 손자가 있잖아요. 그 애를 데려가요. 안전한 곳에 숨겨두고 지켜여.”이에 손기수는 비죽 웃으며 말했다.[그건 납치 아닌가요?]“이건 우리 엄마 뜻이에요.”은서는 그 말을 강조하듯 단호하게 말했다.“일만 제대로 끝내면, 보수는 두 배로 줄 거예요.”그제야 손기수는 만족스레 웃으며 대답했다.[좋아요. 저한테 맡기세요.]은서는 다시 신신당부했다. “숨겨두기만 해야 해요. 절대 다치게 하면 안 돼요.”이에 손기수는 급히 말했다.[우리가 어떻게 감히 그런 짓을 하겠어요!]은서는 차가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우리 엄마 말씀만 잘 따르면,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거예요.”모든 게 은정을 내쫓는 날까지만 버티면 그만이었다. 장말숙의 아들이 위협되지 않게 만들어야 했고, 지금 중요한 건 은정을 최대한 빨리 강제로 떠나게 만드는 일이었다.두 시간 후.오현빈이 급히 은정에게 전화를 걸었다.[형님, 큰일이에요. 장말숙 아주머니 손자가 납치당했어요!”은정의 눈빛이 차갑게 되었다. 그와 유진의 계획은 장말숙의 아들이 철없는 무뢰한이라는 걸 이용해, 서선영 쪽 사람들과 충돌이 일어나게 만들고 그 사이에서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었다.그런데 서선영은 한 수 더 앞질렀다. 직접 손자를 납치해 버린 것이다. 은정은 느긋한 듯 말했지만, 말투엔 서늘한 살기가 묻어났다.“왜 못 막았어?”현빈이 대답했다.[도착했을 땐 이미 데려가고 난 뒤였어요. 아이는 집에 혼자 있었고요.]장말숙은 요즘 일을 그만두고 손자를 돌보고 있었다. 자기 아들은 놀기 좋아하고 도박을 일삼으며 최근 큰 빚까지 졌고, 며느리는 친정으로 들어가 버렸다.장말숙이 서선영의 돈을 받은 것도 빚을 갚고 며느리를 다시 불러들이기 위한 것이었다.그날 점심을 먹고 잠시 슈퍼에 다녀온 사이, 손자가 납치된 것이다.은정은 알고 있
“아주머니는 분명 그날 일에 대해 알고 있어요. 그 사람한테 직접 확인하러 갈 거예요!”임유진은 말을 끝내자마자 그대로 뛰쳐나갔다.“유진아!”구은서는 몇 걸음 뒤쫓았지만, 유진은 이미 계단 아래로 사라지고 있었다. 은서는 굳게 이를 악물며 눈살을 찌푸렸다.서선영이 집에 없다는 걸 알자, 그녀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장말숙 아주머니 잘 지켜봐요. 유진이 그날 일 알아보려고, 지금 그 사람 찾으러 갔으니까.”그러나 서선영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걔가 뭘 안다고 찾아?]은서는 차분히 말했다.“유진은 임씨 집안 사람이야. 찾으려면 못 찾을 사람이 없죠.”이에 서선영의 말투도 조금 무거워졌다.[알았어. 내가 금방 사람 붙여서 장말숙 감시하라고 할게.]은서는 이어서 냉랭하게 따져 물었다.“절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는다면서요? 근데 걔는 어떻게 안 거예요?”유진이 알았다는 건, 임씨 가족들까지도 이미 감지했다는 뜻이었다. 이에 은서는 불안감에 입술을 꾹 눌렀다.서선영은 얼버무리며 말했다.[아마 도우미 중 누가 말실수했을 거야. 다시 철저히 단속해 둘게. 걱정하지 마. 소문 좀 난다 해도 너한테까지 영향은 안 가. 넌 그냥 조용히 대본 연습이나 해.][이번 영화, 내가 네 외삼촌 꼬드겨서 겨우 투자받은 거 알지? 이번 기회 잘 잡아야 해. 딴 건 신경 쓰지 마. 연기만 잘하면 돼.]은서는 그 말에 더욱 날카로워졌다. 이번 영화는 유명 감독의 대작이었고, 은서에게는 이미지 회복의 유일한 기회였다. 그렇기에 서선영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나 곧 촬영 들어가요. 그러니까 이번 일 절대 망치지 마요.”[알았어!]서선영은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유진은 급히 차로 돌아와 깊게 숨을 들이쉰 후, 곧장 은정에게 전화를 걸었다.“서선영 쪽에서 곧 움직일 거예요.”[알고 있어. 이미 준비해 뒀어.]은정의 목소리는 침착했고, 유진은 안심하며 숨을 내쉬었다.이윽고, 은정이 조용히 말했다.[고생 많았어.]이에 유진은 입꼬리를 살짝 올
“아파요!”유진은 짧은 비명을 내뱉으며 순식간에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녀는 팔을 뻗어 구은정의 목에 매달리듯 안으며, 자기 얼굴을 숨기려 했다.이에 은정은 그녀의 어깨를 쓸어내리며 허스키한 목소리로 낮게 웃었다.“왜 예전 같지 않아? 예전엔 몰래라도 키스하려고 했으면서, 이젠 실컷 하라고 해도 도망치기 바쁘네.”유진은 은정을 꼭 안으며 눈가가 붉게 물들었지만 속은 터질 듯 행복했다. 이제는 몰래 키스할 필요가 없다. 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할 수 있었다.은정은 유진의 발그레한 귀에 입을 맞추며 낮게 속삭였다.“전에 난 늘 걱정했어. 네가 그냥 어린 마음에 나한테 끌리는 거라고. 그저 신기하고 새로워서, 가질 수 없으니까 더 마음이 가는 거라고.”“우리가 진짜로 사귀게 되면 금세 질릴 거라고. 나는 사실 정말 재미없는 사람이야. 총 쏘고 싸우는 것 빼곤 할 줄 아는 게 없어.”“요즘 애들이 좋아하는 것도 몰라. 마음도 더 이상 젊지 않아.”“그래서 넌 언젠가 내가 생각보다 별거 아니라는 걸 깨닫고, 그 마음이 식을까 봐 두려웠어.”유진은 목이 메어, 콧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그럼 내가 기억 잃었을 때, 왜 다시 나한테 다가왔어요?”은정은 예전엔 그렇게 차갑게 거절했던 사람인데, 교통사고 한 번 났다고 갑자기 사랑하게 된 걸까? 혹시 죄책감 때문은 아니었을까?그런 생각이 유진을 계속 불안하게 했다. 잠시 침묵하던 은정이 조용히 말했다.“아마 너 없는 세상이, 정말로 견딜 수 없을 만큼 어둡고 차가웠기 때문일 거야.”그 말에 유진의 가슴은 요동쳤다. 그녀는 조용히 몸을 일으켜 은정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마음 깊은 곳까지 꿰뚫어 보려는 듯, 어둠을 걷어내고 자신의 빛으로 은정의 세상을 덮어주려는 듯한 눈빛이었다.유진은 다시 한번, 은정에게 입을 맞췄는데, 이번엔 더욱 깊고 부드러운 입맞춤이었다.은정은 곧 유진을 세게 안았고, 불같이 뜨거운 열기가 유진을 감쌌다. 죽음 같은 어둠 속에서 되살아난 사람처럼, 은정의 키스는
“그 사람들이 설마...”유진은 커다란 눈을 뜨고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이에 구은정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네가 생각한 그대로야.”유진은 믿기지 않는 듯 놀람과 동시에 깊은 자책의 기색을 띄웠다.“결국 내가 이렇게 만든 거잖아요.”“자꾸 그런 식으로 네 탓 하지 마.”은정은 그녀의 뺨을 다정하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너는 둘 사이의 더러운 사정도 몰랐잖아.”유진은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서선영은 그래도 이해가 가. 근데 구은서는 왜 그렇게까지 자기 엄마한테 협조한 거예요?”“자기 명예가 달린 문제인데, 게다가 지금은 연예인이잖아요. 설령 피해자라 해도, 그런 얘기 퍼지는 게 좋을 리 없잖아요.”은정은 깊은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대답했다.“십몇 년 전 그 일 땐, 은서는 진짜로 몰랐던 것 같아. 내가 샤워 끝내고 나왔을 땐 자고 있었고, 서선영이 소리 지르고 난리 쳐도 안 일어났거든.”“그땐 그냥 서선영한테 이용당한 거지. 근데 이번엔 서선영이 어떻게 설득했는지는 나도 몰라.”유진은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서선영은 정말 너무 악랄했다. 자기 딸까지도 그런 식으로 이용한다면, 못 할 짓이 뭐가 있을까?더구나 서선영은 알고 있었다. 이런 식의 루머가 은정에게 가장 치명적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게 바로 구은태에게도 가장 아픈 약점이라는 것을. 그래서 서선영은 또다시 그 수를 썼다.유진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중얼거렸다.“그때 전화받은 아주머니, 그 사람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찾을 수는 있어. 하지만 서선영한테서 돈을 받았고, 아마 협박도 받았을 거야.솔직히 말해줄 가능성은 작아.”은정은 냉정하게 말하자, 유진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그래도 찾아봐야죠. 당장 데리고 가서 집에 가서 진실을 말하게 해야 해요!”은정은 유진의 손목을 붙잡았는데, 목소리는 단호하면서도 부드러웠다.“서두르지 마.”“어떻게 안 서둘러요! 지금 이미 밖에선 온갖 소문이 돌고 있다고요!”유진이 답답해하며 소리치자,
“그날 밤 전화했을 때 말이야.”유진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그게 바로 그날이었어요?”“그래.”은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그는 서선영이 무슨 짓을 꾸미는지 몰랐다. 혹시 다시는 유진을 볼 수 없게 될까 두려워, 마지막으로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서 전화를 걸었다.사실은 유진에게 자기 집으로 와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끝내 그 말이 목구멍에서 나오지 않았다.유진은 자책하듯 말했다.“나도 그때 뭔가 이상하단 걸 느꼈어. 근데 안 찾아갔어요.”은정은 유진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말했다.“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그때는 이미 깊은 밤이었고, 유진은 단지 모호한 한 통의 전화로 구씨 저택까지 달려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유진의 마음속은 여전히 무겁고 미안했다.“내가 갔더라면, 그 여자의 계략이 통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는데요.”“유진아, 우리 이제 과거에 대해 그만 후회하자. 응?”은정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유진을 바라보며 말하자,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중요한 건, 서선영 모녀의 거짓말을 어떻게 밝혀낼지였다.“그 여자가 떠나라고 하니까, 진짜 떠나려던 거예요? 도대체 언제부터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됐어?”유진이 화가 난 듯 말하자, 은정은 그녀를 바라보며, 차가운 듯 부드러운 눈빛으로 대답했다.“내 명예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어. 네가 그 일 알고 나서 날 더 미워할까 봐, 그게 무서웠지.”호텔에서 유진이 여씨 집안 가족 모임에 참석한 걸 봤을 때, 그는 마음이 무너졌다.자신은 온몸이 상처투성이고, 앞으로도 더러운 과거 때문에 손가락질받을 인생인데, 그런 자신의 곁에 유진을 두는 게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했다.유진은 따뜻하면서도 가슴 아픈 눈빛으로 은정을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유진은 두 손으로 은정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안개 낀 듯한 눈동자가 그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은정의 어두운 그림자를 밀어내고 그 마음속까지 빛으로 채우려는 듯한 눈빛이었다.이번에는 유진이 먼저 입을 맞췄는데, 그 키스는 애틋하고 따스했
“정말 못됐어요. 그런데도 난, 이렇게 좋아하니까.”유진은 코끝을 훌쩍이며 속삭이듯 말하자, 은정의 눈빛이 짙게 가라앉았고, 유진을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유진은 흐느낌 속에 물었다.“그래도 또 떠날 거예요?”“안 떠나.”은정은 마치 유진의 몸이 자기의 일부라도 된 것처럼 꼭 끌어안았다.유진은 입술을 꾹 다물었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도 입가엔 참을 수 없이 번지는 미소가 피어올랐다.멀찍이서 둘을 바라보던 소희는 마침내 안도한 듯 미소를 지었고, 잠시 바라보다 조용히 돌아섰다.은정은 티켓 환불을 마치고, 유진의 손을 꼭 잡고 공항 로비를 빠져나왔다.그때 소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유진이는 맡길게. 잘 달래줘. 난 먼저 갈게.]은정은 묵직한 음성으로 대답했다.“소희, 정말 고마워.”[혹시 집안 문제, 도와줄 일 있으면 말해.]은정은 원래의 냉정한 눈빛을 되찾으며, 대답했다.“아니, 내 일은 내가 해결할게.”[그래.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해. 임씨 집안 쪽 설득도 내가 도와줄 수 있어.]은정은 낮게 웃었다.“혼자 힘으로 안 되면 그때 부탁할게.”전화를 끊은 뒤, 유진이 옆에서 물었다.“소희, 갔어요?”“응. 우리 집에 가자.”은정은 다시 유진의 손을 꼭 잡았다.유진은 그날 회사에 가지 않고, 전화를 걸어 휴가를 냈다. 이경 아파트로 돌아오자마자, 문을 열고 들어선 은정은 유진을 번쩍 안아 들고 그대로 입을 맞췄다.유진은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고, 두 다리로 그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세게 은정을 끌어안고 입맞춤에 응했다.유진의 반응은 은정을 더욱 자극했고, 입술은 불꽃처럼 뜨거웠다. 은정은 강렬함과 부드러움을 오가며 끊임없이 유진의 반응을 확인했고, 만족할 만한 대답을 얻었을 때에야 숨을 고르며 입술을 떼었다.유진은 숨을 헐떡이며 눈을 반쯤 감고 있었다.“언제 기억난 거야?”은정은 유진의 입술 위에서 낮게 물었다.유진의 커다란 눈동자엔 얇은 안개 같은 물기가 맺혀 있었고, 눈가엔 눈물 자국이 남아 붉
“나쁜 놈!”유진은 이를 악물고 욕설을 내뱉으며, 손등으로 눈물을 거칠게 닦고는 그대로 뛰쳐나갔다.허둥지둥 엘리베이터를 내려가던 중, 예상치 못하게 1층 현관 앞에서 막 차에서 내리는 소희와 마주쳤다.유진은 달려가 소희를 끌어안으며, 눈물로 목소리가 떨렸다.“소희야. 그 사람, 갔어.”소희는 차가운 눈빛으로 유진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손을 들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침착하게 말했다.“지금쯤 공항 도착했을 거야. 얼른 차 타. 우리가 가서 막자.”유진은 울먹이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응.”차에 올라탄 후, 소희는 아침 출근길 교통체증을 피해 가능한 한 빠른 길로 달렸다. 조수석에 앉은 유진은 여전히 망연자실한 얼굴이었다.소희는 유진을 스치듯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두려워하지 마. 이번엔, 걔가 지구 반대편까지 도망친다 해도 내가 꼭 데려올게.”유진은 이를 악물며 눈물 맺힌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응.”공항에 도착하자, 소희는 시계를 확인했다.“지금쯤이면 막 보안 검색대 들어갔을 거야. 넌 안으로 들어가. 난 밖에서 기다릴게.”유진은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사람들이 북적이는 공항 안을 정신없이 뛰어다녔다.탑승 게이트 앞, 마침내 수많은 인파 속에서 그토록 익숙하고, 아프도록 그리운 구은정의 뒷모습을 발견했다.너무 긴장한 탓일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은정이 거의 들어가려던 순간, 유진은 겨우 목을 눌러 뜨거운 한마디를 토해냈다.“서인!”이에 은정의 발걸음이 멈췄고, 순간 고개를 홱 돌렸다. 사람들 사이 너머로, 유진이 서 있었다.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친 그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지나가는 사람들, 소음, 움직임. 모든 게 멀어지고, 과거와 현재가 한꺼번에 겹쳤다.처음 만났던 순간. 잃어버린 가방을 찾아 건네주던 은정의 등.“정말 대단해.”감탄하던 유진의 눈빛. 차가웠던 은정의 반응. 하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은정이 궁금했고, 따랐고, 그렇게 샤브샤브집에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다.유진은
방연하는 어이없다는 듯 여진구를 바라보며 말했다.“선배, 지금 진심이에요? 머리 괜찮아?”여진구는 연하를 째려보았다. 연하는 주변의 예쁘게 꾸며진 꽃길과 풍선을 둘러보며 부러움 섞인 말투로 말했다.“이거 진짜 예쁘네요. 나도 나중에 이런 대접 한번 받아볼 수 있을까요?”“너한테 고백할 남자가 이런 것도 못 하면, 내가 대신 해줄게.”진구는 시원하게 말하자, 연하는 헛웃음을 지으며 받아쳤다.“미리 감사 인사드릴게요, 여진구 사장님.”그 시각, 유진은 집에 돌아왔지만 마음은 여전히 뒤숭숭했고, 계속 뭔가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그날 밤은 뒤척이기만 하다가, 새벽이 되자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아침 7시가 되자, 임유민이 방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 문에 기대선 그는 느슨하게 말했다.“누나, 이번 주 금요일 우리 학교 축구 경기 있어. 내가 수비수로 나가는데, 학교에서 가족 참관 받는대. 올래?”유진은 고개를 들어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좋지. 꼭 응원하러 갈게.”유민은 그녀가 짐을 싸는 걸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근데 누나, 짐은 왜 싸?”유진은 노트북을 가방에 넣으며 말했다.“이젠 다시 이경 아파트로 돌아가려고.”유민은 조금 놀랐다.“안 돌아가겠다고 하지 않았어?”유진은 눈을 내리깔며 담담하게 대답했다.“가고 싶어졌어.”유민은 문에 기댄 채 웃으며 중얼거렸다.“역시 내 예상이 맞았네. 근데 이번에는 그렇게 바보처럼 굴지 마.”유진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뭐라고?”이에 유민은 씩 웃었다.“엄마는 아침 일찍 나갔고, 할머니한테는 꼭 인사하고 가. 안 그러면 또 가출했다고 난리 나실걸.”유진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집에 없을 땐, 네가 좀 더 착하게 굴어. 할머니 기분 잘 맞춰 드리고.”유민은 양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말했다.“그건 숙모한테나 하라고.”유진은 참지 못하고 푸흐 웃음을 터뜨렸다. 짐을 정리한 후, 운전기사에게 짐을 차에 실어달라 부탁하고 자신은 할머니에게 인사드리
유진은 은정이 차를 타고 떠나는 모습을 직접 보고 나서야 다시 호텔 위층으로 돌아갔다. 혹시나 여씨 집안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할까 봐 대비해야 했다.라운지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흩어졌고, 유진이 그 안으로 들어섰을 때, 여씨 집안의 두 명의 며느리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셋째네는 평소에 그렇게 거칠게 굴더니, 오늘 자기 아들이 그렇게 당했는데도 조용하네?”다른 여성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들었는데 인후가 아가씨를 모욕해서 그렇게 된 거라더라고요. 이 일, 임씨 쪽이 알게 되면 여인후 가만두지 않을걸요?”“그래서였구나! 근데 때린 사람이 누군데?”“그건 잘 모르겠어요.”유진은 고개를 돌려 벽에 기대었다. 그 순간, 조금 전 은정의 어두운 눈빛과 먹먹한 표정이 머릿속을 스쳤고, 가슴이 다시 시리게 아파왔다.그때 여진구가 메시지를 보내오자, 유진은 핸드백을 챙겨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유진아!”호텔 정원에서 진구가 유진을 발견하고는 반갑게 다가왔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꽃다발을 꺼내려 했지만 유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선배!”이에 진구는 웃으며 말했다.“먼저 말해봐.”유진은 진지한 표정으로 진구를 바라보며 말했다.“선배, 전 늘 당신을 선배로, 좋은 친구로 생각했어요. 그 이상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어요.”“오늘 가족 모임에 참석하면서 다들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부디 오해가 더 커지지 않도록, 할아버지랑 어른들께는 확실히 말씀드려 주세요.”진구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직 아무 말도 꺼내지도 않았는데, 유진은 이미 자신의 마음을 간파하고,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선을 그어버린 것이다.유진은 미소를 지었지만 그 표정엔 피곤함이 묻어났다.“조금 피곤해서 먼저 갈게요. 할아버지께는 대신 인사 부탁드려요.”유진은 말을 마치고 돌아섰다.몇 걸음만 걸었을까? 그 순간, 뒤쪽 정원에 불이 환하게 밝혀졌다. 형형색색의 하트 모양 꽃장식이 환하게 빛났고, 수많은 풍선과 조명이 하늘로 떠올랐다. 몽환적이고 낭만적인 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