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두의 화물 하역은 모두 기계화되었지만 부근에는 여전히 일부 운반 회사가 화물 주인을 도와 귀중품을 운반하거나 화물을 지키는 것을 돕고 있었다.송진일이 고용한 사람이 바로 하역회사의 사람들이었다. 이 사람들은 일 년 내내 부두에서 빈둥거리며 대부분 본업에 종사하지 않는 깡패들이었고 돈을 주면 무엇이든 했다.부두에 들어가기도 전에 멀리서 두 무리의 사람들이 대치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맞은편 사람들은 아마도 운반회사의 사람들인 것 같았다. 그들은 웃통을 벗어 문신을 드러내고 손에 막대기를 들고 있었고 망명자의 흉악함과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는 기질을 드러냈다.이쪽의 사람들은 구택의 사람들인데 저마다 몸짓이 날렵하고 기질이 싸늘하고 포악했다.바닥에 서너 명이 누워 있는데 모두 운반회사의 사람들로 보였다.차가 멈추자 구택은 소희더러 차에서 기다리게 하고는 스스로 차에서 내렸다.명우와 명빈 두 사람은 구택을 보고 즉시 앞으로 다가가 일제히 입을 열었다."대표님!"구택이 앞으로 나아가자 잘생긴 얼굴은 그렇게 싸늘하진 못했지만 순간 대치하는 장면을 차갑고 긴장한 분위기로 만들었다. 그는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누가 서인이지?"맞은편 사람들 중 한 사람이 앞으로 걸어왔다. 몸집이 크고 옷차림에 그렇게 신경 쓰지 않은 남자는 보기엔 호방하지만 눈빛은 날카로웠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납니다!"구택은 침착하게 그를 바라보았다."당신의 회사가 사라지게 하고 싶지 않으면 함부로 나서지 마!"서인은 청색 수염에 눈꼬리에는 흉터가 하나 있어 사람이 독하고 포악해 보였다."임 씨 그룹 대표님, 임구택, 얘기 많이 들었어요! 나는 당신의 강성에서의 능력과 지위를 잘 알고 있어요. 나도 그저 한 무리의 형제들을 데리고 밥 좀 얻어먹고 싶었을 뿐 당신을 건드리고 싶지 않았어요. 그러나 전에 송진일 그 사람이 나를 도와준 적이 있어서 나도 그 은혜를 갚아야 하거든요. 의리가 가장 중요하죠!"그는 바닥에 누워 있는 사람들을 힐끗 쳐다보았다."내가 먼저 임
서인은 얼굴이 무서울 정도로 차가웠고 눈빛도 무척 싸늘했다. 그는 잠시 소희를 쳐다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임 대표, 오늘의 일은 정말 미안하네요, 양해 구할게요!"그리고 그는 자신의 사람들한테 말했다."이문 그들을 데리고 떠나!"옆에 있던 사람을 멈칫하더니 믿기지 않은 표정으로 서인에게 물었다."형님, 그게 무슨 말이에요?""돌아가라고, 14호 부두에 있는 사람들도 철수하라고 해!"서인은 이 한마디만 하고는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고 소희를 차갑게 보더니 고개를 돌려 떠났다.다른 사람들은 영문을 몰랐다. 어떻게 바로 철수하란 말인가?그러나 그들은 서인의 말을 감히 거역하지 못했기에 얼른 바닥에 누운 다친 몇 사람을 들어 올려 서인을 따라갔다.구택의 사람들도 서로 쳐다보며 영문을 몰랐다. 방금까지만 해도 상대방은 목숨을 걸고 그들과 싸우려는 기세였는데, 어떻게 바로 떠나는 것일까?명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어떻게 된 일이지?"명빈은 코웃음 쳤다. "허세를 부릴 뿐이야!"구택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마디만 분부했다."다친 사람들 병원으로 보내. 부두에는 사람들 붙여서 지키게 하고. 송진일의 화물은 절대 뭍으로 올라오지 못하게 해.""네!" 명빈은 즉시 대답했다.구택은 소희의 손을 잡았다."가요!"소희는 넋을 잃고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구택은 그녀의 손을 잡고 약간 힘을 주었다."왜 이렇게 차가워요?"소희는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 얼른 가요!"두 사람이 차에 타자 구택은 소희에게 안전벨트를 매주며 몸을 숙여 그녀의 얼굴을 만졌다."놀랐어요?"소희는 안전벨트를 꽉 잡고 입술을 오므리며 웃었다."아니에요, 가요!"구택은 말투가 다소 무거워졌다."앞으로 다시 이런 상황에 부딪히면 소희 씨 내 말 꼭 들어야 해요. 제멋대로 하면 안 돼요!"이번에 소희는 무척 얌전했다."넵!"차는 도심을 향해 달려가며 어정에 도착하자 구택은 소희와 함께 차에서 내렸다. 소희는 몸을 돌려 그에게 말했다.
허름한 사무실 안에는 이리저리 누워서 한담을 나누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고 안으로 더 가면 낡은 책상이 하나 있었는데 책상 뒤의 소파에는 한 남자가 비스듬히 기대어 있었다.소희를 보자 몇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가 방금 구택 곁에 있던 여자라는 것을 알아보고 그들은 냉소하며 입을 열었다."예쁜 아가씨가 여긴 어쩐 일이래?"다른 사람들은 그녀를 놀리기 시작했다."우리 형님이 마음에 들어서 몰래 따라온 거 아니야!""내가 보기엔 아마도 임구택이 우리 형님한테 사죄를 하려고 주동적으로 여자를 보낸 거 같아!""하하하하하!"소희는 차가운 얼굴로 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곧장 앞으로 걸어갔다.한쪽 팔에 검은색 피안화를 문신한 남자가 갑자기 손을 뻗어 소희의 얼굴을 만지려 했다."꽤 예쁘게 생긴 아가씨군, 나랑 좀 놀아볼까?"소희는 인차 남자의 손목을 잡았다.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손은 바로 부러지며 이상한 각도로 늘어졌다."아!" 남자는 비명을 지르며 손목을 안고 뒤로 물러났다.다른 사람들은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모두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들은 전에 농담하던 태도를 접고 순간적으로 분위기가 싸늘해지며 날카롭고 경계하는 눈빛으로 소희를 바라보며 그녀를 향해 에워쌌다."펑!"서인은 술병을 책상에 내리치며 차가운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모두 꺼져!"모두들 멍해지더니 분노해하며 서인을 바라보았다."형님! 이 여자는 우리 형제를 다치게 했습니다!""가서 상처 치료해 주고, 다른 사람들도 꺼져!"서인은 어두운 얼굴로 소리쳤다.한 무리의 사람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영문을 몰랐지만 더 이상 물어보지 못하고 줄지어 밖으로 나갔고 마지막으로 나간 사람은 문까지 닫아줬다.서인은 매서운 눈으로 소희를 쳐다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여긴 어쩐 일이야?"소희가 물었다. "지금 이런 나날을 보내고 있는 거야?"서인은 코웃음치며 담배 한 대에 불을 붙였고 눈빛은 싸늘하고 차가웠다."당신과 무슨 상관이지? 당신이 뭔데? 당신이 무
한참이 지나서야 소희는 일어섰다. 그녀는 안색이 창백했지만 얼굴에는 여전히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마치 생기발랄한 한여름에서 갑자기 황폐한 겨울로 접어든 것 같았다.서인은 의자에 앉아 바닥에 떨어진 담배를 주워 힘껏 한 모금 빨았다."가, 오늘 나랑 본 적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내가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거나! 넌 임구택의 여자가 되었으니 부귀영화를 잘 즐겨. 오늘 너도 여기에 오지 말았어야 했어. 얼른 가!"소희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임구택 씨와 맞서지 말고 위험한 일도 하지 마. 살아있는 이상 인생을 잘 살라고!"서인은 차가운 눈으로 그녀를 보며 코웃음쳤다."내가 임구택을 귀찮게 할까 봐? 너 그 사람 좋아하는 거야? 너도 신경 쓰는 사람이 있구나! 결국 우리는 네가 신경 쓸 만한 가치가 없는 거야!"소희는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감정적으로 일 처리하지 마!""안심해!" 서인은 냉소했다."나는 우리가 안다고 말하지 않고 네가 임 부인이 되는 것을 방해하지 않을 테니까 너도 이제 가봐!"소희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그는 더 이상 듣지 않을 것이란 것을 알고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몇 걸음 걷다가 그녀는 결국 참지 못하고 말했다."너희 가족은 줄곧 네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들을 속이는 건 말이 안 되니 시간이 있으면 한 번 돌아가 봐!"서인은 말을 하지 않았고 표정은 좀 더 어두워졌다.소희가 문을 나서자 후덥지근하고 어지러운 창고 안의 십여 명의 사람들은 모두 동시에 일어나 무섭게 그녀를 쳐다보았다.소희는 평소처럼 담담한 표정으로 수많은 매서운 눈빛의 주시하에 침착하게 이 어두컴컴한 창고에서 나왔다.밝은 햇살이 갑자기 떨어지자 소희는 눈앞에서 멀지 않은 번화한 항구를 바라보며 한순간에 자신이 방금 두 개의 다른 세계를 경험한 것 같다고 느꼈다.그리고 자신은 어둠 속에서 빠져나와 여전히 열심히 살고 있었다!소희가 떠난 지 얼마 안 되자 진일이 서인을 찾아왔다. 문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화가 난 채로 다짜고짜 그에
진일은 납득이 안 됐다."이 부두에서 임구택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오직 서 사장뿐인데 내가 어디 가서 또 다른 사람을 찾겠나? 당신은 이 건 하지 않아도 되지만 나한테 왜 그러는지 이유만 말해 줘.""이유 없어, 그냥 하기 싫어졌어." 서인은 담배를 피우며 푸른 수염이 자란 얼굴은 무척 오만했다.진일은 자신의 말이 도무지 먹히지 않자 참지 못하고 안색이 어두워졌다."모두 서 사장이 의리를 지킨다고 하는데, 내가 봤을 땐, 한다면 한다는 말은 모두 다 개뿔이구먼!"이문은 미간을 찌푸리며 호통쳤다."뭐라고요? 다시 한번 말해봐요!""입 닥쳐!" 서인은 이문을 꾸짖은 뒤 고개를 돌려 진일에게 말했다."난 틀림없이 이 건을 하지 않을 거야. 전에 당신한테 빚진 것도 우리는 떼먹지 않을 테니까 내 손을 베거나 아님 돈을 가지고 간다거나!"진일은 싸늘하게 웃었다."그래, 당신들 참 독하군! 호랑이도 평지에서는 개들에게 물린다지만, 내가 다시 내가 재기하면 당신들 절대로 가만 안 둬!"말이 끝나자 진일은 책상 위의 돈을 몽땅 챙긴 뒤 두 사람을 힐끗 보고는 분개해하며 떠났다.진일이 떠나자 이문은 의자를 잡아당겨 서인 맞은편에 앉고는 눈살을 찌푸렸다."형님, 우리 도대체 왜 송진일의 그 건을 하지 않는 겁니까? 설마 형님 정말 임구택을 무서워하는 건 아니겠죠?"서인은 포커 몇 장을 손에 들고 담배를 물고 고개를 들었다."내가 임구택을 무서워할 것 같아?"이문은 즉시 고개를 저으며 머리를 굴렸다."설마, 방금 온 그 소녀 때문입니까?"서인은 검지와 중지로 포커 한 장을 쥐고 밖으로 던졌다. 포커는 회전하며 날아가 바로 벽면에 꽂혔다. 그는 안색이 담담한 채로 계속 두 번째 포커를 던졌다.이문은 그가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자신이 알아맞혔다고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그 소녀는 누구입니까?"서인은 그를 힐끗 쳐다보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함부로 알아보지 마! 형제들한테 내 말을 전해, 나중에 그녀를 보면 모두 피해 다니
소희는 고개를 들어 희미한 눈빛으로 그를 보았다."사실이에요. 만약 내가 나가서 싸웠다면 이마만 다칠 수도 없잖아요."구택은 그녀의 몸을 다시 한번 훑어보며 다른 상처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물었다."멀쩡한 사람이 왜 미끄러졌죠?""별일로 크게 놀라지 마요. 조심하지 않아서 미끄러지는 건 정상 아니에요?"소희는 졸려서 그의 어깨를 껴안았다."빨리 자러 가요!""정말 사람 걱정하게 만든 다니깐요!" 구택은 낮게 웃으며 목욕 수건으로 그녀를 감싼 뒤 품에 안고 침실로 갔다.소희는 그의 품에 안겨 속눈썹을 떨며 서서히 안정을 되찾았다.침대에 눕자 그녀는 곧 잠이 들었다. 밖에는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먹구름은 달을 가려서 방안은 엄청 어두웠다.꿈속에서 그녀는 다시 그 버려진 공장으로 돌아갔다. 새벽 2시, 하늘에는 별이 하나도 없었고 사방은 어두컴컴했다.이번 임무는 납치된 아이를 구출하는 것이었다. 그들 7명은 무기를 휴대하고 소리 없이 이 버려진 기름 공장에 잠입했다.공장은 20명의 사람들이 지키고 있었고 그들의 무기도 그렇게 강력하지 않은 편이라 이런 임무는 그들에게 있어서 무척 홀가분했다.그들 7명은 방심하지 않았고 지형과 상대방의 화력을 미리 계산하여 계획을 세웠다. 홍복은 감시 카메라를 파괴하고 백양과 주옥은 후방에서 잠입하며 서희와 다른 세 사람은 정면에서 기습하여 사람을 구하는 것이었다.그들은 줄곧 호흡이 잘 맞아서 요 몇 년 동안 맡은 임무는 수십 개에 달했지만 한 번도 실수한 적이 없었다!서희는 나이가 가장 어리고 몸매가 야위었지만 가장 날렵했다. 그녀는 지붕에서 뛰어내려 손에 있는 날카로운 칼로 빠르고 정확하게 밖에 있는 두 간수를 신속히 해결하고 소리 없이 넘어뜨렸다. 전반 과정은 날카로운 칼이 몸을 찌르는 경미한 소리 외에 아무런 소리도 없었다.다른 세 사람은 그녀의 뒤에 바짝 붙으며 네 사람이 앞으로 나아가려고 할 때, 감시 카메라를 파괴하러 간 홍복이 재빨리 달려와 급하게 소리쳤다."빨리 철수해, 매복이
소희는 헐떡거리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녀는 구택의 옷을 꽉 잡았고 손가락이 새하얗게 변하며 떨릴 정도로 힘을 주었다."괜찮아요, 자기야, 무서워하지 마요!" 구택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며 낮은 소리로 위로했다.소희는 눈을 감고 잠잠해졌다. 눈앞의 붉은색이 사라지고 노란색의 따뜻한 빛으로 변했다.그녀는 온몸에 땀이 나고 허탈해진 채 구택의 품에 안겼다.한참 동안 두 사람은 말을 하지 않았다. 구택은 그녀를 꼭 껴안으며 팔은 부드럽게 그녀의 머리를 감쌌다.소희는 완전히 현실로 돌아오자 구택의 품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안색은 비록 창백했지만 목소리는 이미 담담해졌다."나 괜찮아요, 그냥, 꿈 좀 꾼 거뿐이에요!"구택과 함께 있은 후부터 그녀는 오랫동안 그들을 꿈꾸지 못했다. 설사 전에 꿈꿨다 하더라도 그들 7명이 함께 어깨 겯고 싸워 최후의 승리를 거두는 꿈이었다.그녀는 표용이 죽는 장면을 자동으로 차단했고 한 번도 그곳에 관한 꿈을 꾸지 않았다.아마도 오늘 서인을 만났기 때문일 가, 그녀와 한 팀이었던 주옥을, 그래서 다시 한번 그녀를 평생 잊을 수없는 장면으로 돌아가게 한 것일지도 모른다."무슨 꿈 꿨어요?" 구택은 그녀의 얼굴을 받들며 대체 어떤 꿈이길래 그녀가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그렇게 무서워했는지 궁금했다.소희는 눈빛이 좀 막연했다. 사실 그날 그들이 사람들에게 포위되었을 때, 그녀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다만 분노와 다른 사람한테 배신당한 원망만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적들을 죽일 때, 또 조금의 미친 쾌감을 느꼈다. 표용 그들과 함께 죽는 것도 그들의 가장 좋은 결말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꿈속에서 그 창고로 돌아갔을 때, 백양과 표용 그들이 죽는 것을 보면서 그녀는 무척 당황하고 두려웠다.마치도 그녀는 그녀가 살아남을 것이고 그들은 정말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소희는 구택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말하고 싶지 않아요!"구택은 그녀가 어렸을 때 학대를 당한
택시 기사는 그가 보여준 주소에 따라 그를 데려다주었는데 말투는 유난히 상냥했다."임가네 사람을 아시는 거예요?""네?" 주민은 멈칫했다."아무것도 아니에요. 조심히 내리세요." 기사의 태도는 매우 공손했다.주민은 차비를 지불하고 양측에 꽃이 가득 심어진 아스팔트 길을 따라 맞은편으로 갔다. 그는 그 별장과 가까워질수록 점점 놀랐다. 맞은편 별장의 정원은 아주 컸다. 그 안에는 여러 가지 높이의 식물이 교차되어 있었다. 검은색 울타리를 통해 정원의 수림 같은 경치를 볼 수 있었다. 별장 문 앞까지 걸어가면 낮은 단풍나무 뒤의 아름다운 별장을 볼 수 있었다.임유림 미친 거 아냐?이렇게 큰 별장을 빌리려면 하루에 적어도 몇 백만 원은 들겠지?주민은 한편으로 놀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약간 기뻐했다. 유림이 이렇게 신경을 써가며 그를 약 올리게 하는 것은 틀림없이 여전히 그를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이다!"주민아!"유림의 몇몇 학우들이 도착했는데 그중에 정남이라는 사람이 그를 부르며 달려왔다.몇 사람은 서로 인사를 한 뒤, 정남은 웃으며 말했다."주민아, 여기서 우리 기다리고 있었어?"주민은 어색하게 웃었다.다른 한 장선희라는 여학생이 별장 문을 들여다보았다."이 별장 정말 너무 기품 있어 보인다. 이런 별장 하나 세내는데 돈 꽤 들겠지!""이야 주민아, 너 돈 좀 많이 벌었구나!"다른 학우들은 주민을 놀렸다.주민은 그저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너희들 저것 좀 봐!" 정남은 별장 위의 팻말을 가리켰다."임가네."선희는 감탄했다."간판까지 걸어준 걸 보면 여기 정말 프로네!"몇 사람이 재잘거리는 가운데 갑자기 정원에서 누군가가 걸어왔다.문을 열자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몸에 맞는 양복을 입고 검은색 넥타이를 맨 노인이 사람들 앞에 나타나며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아가씨의 동창들이죠? 얼른 들어오세요!"정남 몇 사람은 서로 쳐다보며 안으로 들어가면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서비스가 너무 좋은 데다 너무 프로네. 내 생일도 여
구은서의 말은 애절했고, 눈물 가득한 얼굴은 누가 보아도 가련했다. 구은태는 자신이 이십 년 넘게 아끼고 사랑해온 딸을 바라보며 격했던 감정이 점차 가라앉기 시작했다.임유진과 구은정은 눈빛을 마주쳤다. 오늘 이 자리에서 반드시 서선영 모녀를 끝장내야 한다는 예감이 동시에 스쳤다. 다시는 숨 쉴 틈을 줘선 안 된다.유진이 입을 열려던 찰나, 휴게실 문이 갑자기 열리고 몇 명의 경찰이 들어왔다. 방 안 상황을 본 경찰들은 잠시 놀란 듯했지만, 곧 차분히 물었다.“서선영 씨는 누구시죠?”서선영은 여전히 바닥에 무릎 꿇고 있던 참이라 얼굴에 눈물이 범벅된 채로 당황스럽게 대답했다.“저예요. 무슨 일이죠?”경찰은 단호하게 말했다.“현재 한 유괴 사건에 연루되셔서, 저희와 함께 경찰서로 가주셔야겠네요.”“유, 유괴 사건이요?”서선영은 얼이 빠진 듯 말을 더듬었고, 은서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경찰이 왜 여길 찾아온 거지?’‘분명히 손기수를 시켜 장말숙 가족에게 절대 신고하지 말라고 위협했고, 따로 사람도 붙여 감시하게 했는데, 분명 신고는 없었어. 그런데 대체 어떻게 경찰이?’유진은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때가 왔고, 이번에는 절대 놓치지 않을 것이다. 이번만큼은 서선영 모녀에게서 도망칠 구멍조차 허락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이에 구은태도 놀라 물었다.“유괴라니, 무슨 소리죠?”경찰은 구은태를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지금 서선영 씨께서 유괴 사건에 관련된 정황이 있어 조사 차 동행을 요청드려요. 협조 부탁드릴게요.”은태는 다시 서선영을 바라보았다.“또 뭘 꾸민 거야, 이 악마 같은 여자가.”은태의 목소리는 얼어붙은 듯 차가웠다. 서선영은 얼굴이 창백해진 채 입을 벌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때, 은정이 나섰다.“같이 가죠. 조금 전까진 은서가 우리 가족이라며 감쌌잖아요? 가족이면 함께 있어야죠.”그 말에 구은서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무언가 아주 불길한 일이 다가오고 있었다.원래 오늘 구씨 파티가 끝
서선영은 곧장 구은태에게 달려가 그를 붙잡았다.“여보!”구은태는 휘청였지만 몸을 간신히 지탱했고, 그녀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며 쉰 목소리로 고함쳤다.“꺼져, 이 악독한 년!”서선영은 힘없이 문 쪽으로 내동댕이쳐졌고, 그 순간 문이 열리며 구은서가 들어왔다. 방 안의 참혹한 광경을 본 은서는 당황한 듯 물었다.“무슨 일이에요?”구은태는 핏발 선 눈으로 서선영을 가리키며 외쳤다.“네 엄마한테 물어봐. 대체 뭘 한 건지!”은서는 아버지의 분노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혹시 은정을 모함한 일이 들킨 건 아닌가 싶어 애써 표정을 감추고 서선영을 바라보며 물었다.“엄마, 무슨 일이야?”서선영은 그저 얼굴을 감싸 쥐고 울고 있을 뿐이었다.그때, 구은태는 갑자기 은서를 향해 시선을 돌리더니 서선영을 바라보고 물었다.“사실대로 말해. 은서, 이 애가 정말 내 딸이 맞아?”“맞아요!”서선영은 지체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은서는 당신 딸이에요. 그건 정말 확실해요!”“좋아. 지금 제대로 말 안 했다가 내가 친자 검사로 진실을 알게 되면, 그땐 죽여버릴 거야!”구은태는 분노로 이를 갈며 말하자, 서선영은 흐느끼며 소리쳤다.“정말이에요! 제 목숨 걸고 맹세해요. 제가 거짓말이면 천벌을 받아도 좋아요!”그제야 은서는 상황이 점점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걸 느꼈다. 이건 은정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문제였다.은서는 구은정에게 맞아 쓰러져 있는 최이석을 돌아보았다. 그 순간, 어떤 장면이 뇌리를 스쳐갔고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지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서선영은 엉금엉금 기어가며 구은태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애원했다.“여보, 제가 배신하고 잘못한 건 맞아요. 하지만 은서는 정말 당신 딸이에요. 그렇게 똑똑하고 예쁜 아이잖아요.”“당신도 얼마나 예뻐했어요. 은서 봐서, 제발 이번만 용서해 주세요!”그제야 은서는 모든 걸 직감했다. 온몸에서 힘이 빠지며,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그러나 임유진은 이를 꽉 물고 단호하게
최이석도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멍하니 있다가, 순간 정신을 차리고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곧장 도망치려는 듯 문을 열었는데, 그 문 너머에는, 구은정의 날렵하고도 위압적인 실루엣이 서 있었다.은정은 말없이 다가오더니 그대로 발을 들어 최이석의 가슴팍을 걷어찼다.“컥!”이석은 뒤로 넘어지며 카펫 위에 엎어졌다. 가슴을 움켜쥐며 고통스러운 신음을 냈지만, 그 울음은 진짜인지 연기인지 분간되지 않았다.그때, 숨을 거칠게 내쉬며 구은태가 천천히 걸어왔다. 그의 얼굴은 철저히 일그러져 있었고, 그 눈빛은 분노로 이글거렸다.그리고, 구은태는 서선영 앞에 멈춰서더니 아무 말 없이 손을 들어 서선영의 뺨을 세차게 내리쳤다.뺨을 후려치는 소리와 함께 서선영은 그 충격에 그대로 몸이 비틀어졌고, 얼굴을 감싸 안으며 온몸을 떨기 시작했다.“이 더러운 년!”구은태는 서선영의 옷깃을 거칠게 움켜쥐고 또다시 손을 들어 그녀의 반대쪽 뺨을 갈겼다.“제가 잘못했어요. 한순간, 제가 정신이 나갔었어요.”서선영은 털썩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구은태의 손을 붙잡고 오열했다. 그녀의 두 볼은 이미 시퍼렇게 부어오르고 있었다.“대체 너희 둘, 언제부터 이런 짓을 벌인 거야!”구은태는 주먹을 부들부들 떨며 물었다.그 순간, 최이석이 조롱 섞인 웃음을 흘리며 비틀비틀 일어섰다.“솔직히 말해줄까요? 서선영이 당신 만나기 전부터 벌써 나랑 자고 있었어요. 회사 들어간 이후로는 매주 만나서 몸 섞었고요.”“입 닥쳐!”서선영은 미쳐 날뛰듯 소리쳤지만, 최이석은 그녀를 보지도 않고 구은태만을 노려봤다.“저 여자는 당신을 사랑한 적 없어요. 사랑한 건 당신 지갑뿐이고요. 30년 전, 당신이 술 마시고 덮쳤다고 생각했죠?”“웃기지 마요. 전부 미리 짜놓은 대본이었으니까. 그때 은서가 생겼고, 도망친 척하면서도 사실 계속 강성에 있었어요.”“당신 바로 곁에서, 우릴 속이고 있었던 거죠. 참, 당신 원래 부인 왜 갑자기 병세가 악화됐는 줄 알아요?”“서선영이 일부러 임신한 배를
구은서는 서선영보다 훨씬 더 잔인했기에, 임유진은 점점 불안해졌다.“혹시 그 애까지 다치게 되는 건 아닐까요?”이번 일은 유진이 먼저 제안한 계획이었다. 그런데 은서가 장말숙을 압박하기 위해 그 손자를 납치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그럴 일 없어.”그러나 구은정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그 아이는 절대 다치지 않을 거야.”유진은 그제야 조금 안심했고, 은정은 이어서 설명했다.“장말숙은 처음부터 독을 품은 호랑이와 손잡은 셈이지. 이건 스스로 자초한 일이야.”“은서가 장말숙의 손자를 납치했다는 건 이미 그 집안을 완전히 조사해 놓았다는 뜻이야.”“내가 강성을 떠나지 않는 한, 언젠가는 아이를 이용해서 조종하려 했을 거야.”“그런데 네가 먼저 움직여준 덕분에 우린 미리 조치할 수 있었고, 결국 아이도 지켜냈지.”유진은 고개를 갸웃하며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은정을 바라봤다.“예전과 완전 딴사람이 된 것 같아요. 위로까지 이렇게 부드럽게 하다니?”은정은 애옹이를 옆으로 밀어내고 유진을 품에 끌어당겼다.“질문 하나 해도 돼? 너는 서인을 좋아해, 아니면 구은정을 좋아해?”유진은 입술을 깨물며 웃었다.“둘 다 같은 사람 아닌가요?”은정은 묵직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넌 분명히 다르다고 생각했잖아.”유진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중얼거렸다.“사실 처음부터 한 사람이었어. 다른 건 사랑하느냐, 사랑하지 않느냐의 차이였을 뿐이죠.”그리고 고개를 들며 은정의 눈을 마주 봤다.“내 말 맞죠?”이에 은정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그럼, 예전의 내가 널 사랑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유진은 고개를 저으며 촉촉히 빛나는 눈으로 미소 지었다.“아니요. 오히려 시언 사장님이 날 사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나는 그게 정말 고맙거든요.”은정의 눈빛이 깊고 짙어졌다. 가슴이 저릿할 만큼 미안함과 애틋함이 가득 차올랐다. 은정은 고개를 숙여, 유진에게 입을 맞췄다.“유진아. 난 늘 널 사랑했어.”은정은 언제나 유진만을 마음에
“역시 이런 식으로 문제가 될 줄 알았어요.”은서는 싸늘한 눈빛으로 말하자, 손기수가 물었다.[이제 어떻게 하죠?]구은서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장말숙한테 손자가 있잖아요. 그 애를 데려가요. 안전한 곳에 숨겨두고 지켜여.”이에 손기수는 비죽 웃으며 말했다.[그건 납치 아닌가요?]“이건 우리 엄마 뜻이에요.”은서는 그 말을 강조하듯 단호하게 말했다.“일만 제대로 끝내면, 보수는 두 배로 줄 거예요.”그제야 손기수는 만족스레 웃으며 대답했다.[좋아요. 저한테 맡기세요.]은서는 다시 신신당부했다. “숨겨두기만 해야 해요. 절대 다치게 하면 안 돼요.”이에 손기수는 급히 말했다.[우리가 어떻게 감히 그런 짓을 하겠어요!]은서는 차가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우리 엄마 말씀만 잘 따르면,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거예요.”모든 게 은정을 내쫓는 날까지만 버티면 그만이었다. 장말숙의 아들이 위협되지 않게 만들어야 했고, 지금 중요한 건 은정을 최대한 빨리 강제로 떠나게 만드는 일이었다.두 시간 후.오현빈이 급히 은정에게 전화를 걸었다.[형님, 큰일이에요. 장말숙 아주머니 손자가 납치당했어요!”은정의 눈빛이 차갑게 되었다. 그와 유진의 계획은 장말숙의 아들이 철없는 무뢰한이라는 걸 이용해, 서선영 쪽 사람들과 충돌이 일어나게 만들고 그 사이에서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었다.그런데 서선영은 한 수 더 앞질렀다. 직접 손자를 납치해 버린 것이다. 은정은 느긋한 듯 말했지만, 말투엔 서늘한 살기가 묻어났다.“왜 못 막았어?”현빈이 대답했다.[도착했을 땐 이미 데려가고 난 뒤였어요. 아이는 집에 혼자 있었고요.]장말숙은 요즘 일을 그만두고 손자를 돌보고 있었다. 자기 아들은 놀기 좋아하고 도박을 일삼으며 최근 큰 빚까지 졌고, 며느리는 친정으로 들어가 버렸다.장말숙이 서선영의 돈을 받은 것도 빚을 갚고 며느리를 다시 불러들이기 위한 것이었다.그날 점심을 먹고 잠시 슈퍼에 다녀온 사이, 손자가 납치된 것이다.은정은 알고 있
“아주머니는 분명 그날 일에 대해 알고 있어요. 그 사람한테 직접 확인하러 갈 거예요!”임유진은 말을 끝내자마자 그대로 뛰쳐나갔다.“유진아!”구은서는 몇 걸음 뒤쫓았지만, 유진은 이미 계단 아래로 사라지고 있었다. 은서는 굳게 이를 악물며 눈살을 찌푸렸다.서선영이 집에 없다는 걸 알자, 그녀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장말숙 아주머니 잘 지켜봐요. 유진이 그날 일 알아보려고, 지금 그 사람 찾으러 갔으니까.”그러나 서선영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걔가 뭘 안다고 찾아?]은서는 차분히 말했다.“유진은 임씨 집안 사람이야. 찾으려면 못 찾을 사람이 없죠.”이에 서선영의 말투도 조금 무거워졌다.[알았어. 내가 금방 사람 붙여서 장말숙 감시하라고 할게.]은서는 이어서 냉랭하게 따져 물었다.“절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는다면서요? 근데 걔는 어떻게 안 거예요?”유진이 알았다는 건, 임씨 가족들까지도 이미 감지했다는 뜻이었다. 이에 은서는 불안감에 입술을 꾹 눌렀다.서선영은 얼버무리며 말했다.[아마 도우미 중 누가 말실수했을 거야. 다시 철저히 단속해 둘게. 걱정하지 마. 소문 좀 난다 해도 너한테까지 영향은 안 가. 넌 그냥 조용히 대본 연습이나 해.][이번 영화, 내가 네 외삼촌 꼬드겨서 겨우 투자받은 거 알지? 이번 기회 잘 잡아야 해. 딴 건 신경 쓰지 마. 연기만 잘하면 돼.]은서는 그 말에 더욱 날카로워졌다. 이번 영화는 유명 감독의 대작이었고, 은서에게는 이미지 회복의 유일한 기회였다. 그렇기에 서선영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나 곧 촬영 들어가요. 그러니까 이번 일 절대 망치지 마요.”[알았어!]서선영은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유진은 급히 차로 돌아와 깊게 숨을 들이쉰 후, 곧장 은정에게 전화를 걸었다.“서선영 쪽에서 곧 움직일 거예요.”[알고 있어. 이미 준비해 뒀어.]은정의 목소리는 침착했고, 유진은 안심하며 숨을 내쉬었다.이윽고, 은정이 조용히 말했다.[고생 많았어.]이에 유진은 입꼬리를 살짝 올
“아파요!”유진은 짧은 비명을 내뱉으며 순식간에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녀는 팔을 뻗어 구은정의 목에 매달리듯 안으며, 자기 얼굴을 숨기려 했다.이에 은정은 그녀의 어깨를 쓸어내리며 허스키한 목소리로 낮게 웃었다.“왜 예전 같지 않아? 예전엔 몰래라도 키스하려고 했으면서, 이젠 실컷 하라고 해도 도망치기 바쁘네.”유진은 은정을 꼭 안으며 눈가가 붉게 물들었지만 속은 터질 듯 행복했다. 이제는 몰래 키스할 필요가 없다. 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할 수 있었다.은정은 유진의 발그레한 귀에 입을 맞추며 낮게 속삭였다.“전에 난 늘 걱정했어. 네가 그냥 어린 마음에 나한테 끌리는 거라고. 그저 신기하고 새로워서, 가질 수 없으니까 더 마음이 가는 거라고.”“우리가 진짜로 사귀게 되면 금세 질릴 거라고. 나는 사실 정말 재미없는 사람이야. 총 쏘고 싸우는 것 빼곤 할 줄 아는 게 없어.”“요즘 애들이 좋아하는 것도 몰라. 마음도 더 이상 젊지 않아.”“그래서 넌 언젠가 내가 생각보다 별거 아니라는 걸 깨닫고, 그 마음이 식을까 봐 두려웠어.”유진은 목이 메어, 콧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그럼 내가 기억 잃었을 때, 왜 다시 나한테 다가왔어요?”은정은 예전엔 그렇게 차갑게 거절했던 사람인데, 교통사고 한 번 났다고 갑자기 사랑하게 된 걸까? 혹시 죄책감 때문은 아니었을까?그런 생각이 유진을 계속 불안하게 했다. 잠시 침묵하던 은정이 조용히 말했다.“아마 너 없는 세상이, 정말로 견딜 수 없을 만큼 어둡고 차가웠기 때문일 거야.”그 말에 유진의 가슴은 요동쳤다. 그녀는 조용히 몸을 일으켜 은정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마음 깊은 곳까지 꿰뚫어 보려는 듯, 어둠을 걷어내고 자신의 빛으로 은정의 세상을 덮어주려는 듯한 눈빛이었다.유진은 다시 한번, 은정에게 입을 맞췄는데, 이번엔 더욱 깊고 부드러운 입맞춤이었다.은정은 곧 유진을 세게 안았고, 불같이 뜨거운 열기가 유진을 감쌌다. 죽음 같은 어둠 속에서 되살아난 사람처럼, 은정의 키스는
“그 사람들이 설마...”유진은 커다란 눈을 뜨고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이에 구은정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네가 생각한 그대로야.”유진은 믿기지 않는 듯 놀람과 동시에 깊은 자책의 기색을 띄웠다.“결국 내가 이렇게 만든 거잖아요.”“자꾸 그런 식으로 네 탓 하지 마.”은정은 그녀의 뺨을 다정하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너는 둘 사이의 더러운 사정도 몰랐잖아.”유진은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서선영은 그래도 이해가 가. 근데 구은서는 왜 그렇게까지 자기 엄마한테 협조한 거예요?”“자기 명예가 달린 문제인데, 게다가 지금은 연예인이잖아요. 설령 피해자라 해도, 그런 얘기 퍼지는 게 좋을 리 없잖아요.”은정은 깊은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대답했다.“십몇 년 전 그 일 땐, 은서는 진짜로 몰랐던 것 같아. 내가 샤워 끝내고 나왔을 땐 자고 있었고, 서선영이 소리 지르고 난리 쳐도 안 일어났거든.”“그땐 그냥 서선영한테 이용당한 거지. 근데 이번엔 서선영이 어떻게 설득했는지는 나도 몰라.”유진은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서선영은 정말 너무 악랄했다. 자기 딸까지도 그런 식으로 이용한다면, 못 할 짓이 뭐가 있을까?더구나 서선영은 알고 있었다. 이런 식의 루머가 은정에게 가장 치명적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게 바로 구은태에게도 가장 아픈 약점이라는 것을. 그래서 서선영은 또다시 그 수를 썼다.유진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중얼거렸다.“그때 전화받은 아주머니, 그 사람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찾을 수는 있어. 하지만 서선영한테서 돈을 받았고, 아마 협박도 받았을 거야.솔직히 말해줄 가능성은 작아.”은정은 냉정하게 말하자, 유진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그래도 찾아봐야죠. 당장 데리고 가서 집에 가서 진실을 말하게 해야 해요!”은정은 유진의 손목을 붙잡았는데, 목소리는 단호하면서도 부드러웠다.“서두르지 마.”“어떻게 안 서둘러요! 지금 이미 밖에선 온갖 소문이 돌고 있다고요!”유진이 답답해하며 소리치자,
“그날 밤 전화했을 때 말이야.”유진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그게 바로 그날이었어요?”“그래.”은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그는 서선영이 무슨 짓을 꾸미는지 몰랐다. 혹시 다시는 유진을 볼 수 없게 될까 두려워, 마지막으로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서 전화를 걸었다.사실은 유진에게 자기 집으로 와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끝내 그 말이 목구멍에서 나오지 않았다.유진은 자책하듯 말했다.“나도 그때 뭔가 이상하단 걸 느꼈어. 근데 안 찾아갔어요.”은정은 유진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말했다.“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그때는 이미 깊은 밤이었고, 유진은 단지 모호한 한 통의 전화로 구씨 저택까지 달려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유진의 마음속은 여전히 무겁고 미안했다.“내가 갔더라면, 그 여자의 계략이 통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는데요.”“유진아, 우리 이제 과거에 대해 그만 후회하자. 응?”은정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유진을 바라보며 말하자,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중요한 건, 서선영 모녀의 거짓말을 어떻게 밝혀낼지였다.“그 여자가 떠나라고 하니까, 진짜 떠나려던 거예요? 도대체 언제부터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됐어?”유진이 화가 난 듯 말하자, 은정은 그녀를 바라보며, 차가운 듯 부드러운 눈빛으로 대답했다.“내 명예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어. 네가 그 일 알고 나서 날 더 미워할까 봐, 그게 무서웠지.”호텔에서 유진이 여씨 집안 가족 모임에 참석한 걸 봤을 때, 그는 마음이 무너졌다.자신은 온몸이 상처투성이고, 앞으로도 더러운 과거 때문에 손가락질받을 인생인데, 그런 자신의 곁에 유진을 두는 게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했다.유진은 따뜻하면서도 가슴 아픈 눈빛으로 은정을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유진은 두 손으로 은정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안개 낀 듯한 눈동자가 그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은정의 어두운 그림자를 밀어내고 그 마음속까지 빛으로 채우려는 듯한 눈빛이었다.이번에는 유진이 먼저 입을 맞췄는데, 그 키스는 애틋하고 따스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