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씨그룹 안은 새 프로젝트가 몰려와 매일 야근이 이어졌다.진구는 연하를 돕기 위해 인사팀 출신 두 명을 비서로 올렸다.한 명은 유희윤, 다른 한 명은 손로운이었다.둘은 사장실 층에 올라오자마자 조심스레 일에 임했는데, 특히 희윤은 눈치가 빠르고 머리가 잘 돌아가며 업무 능력도 손로운보다 한 수 위였다.그래서 연하는 중요한 고객을 만나거나 회의에 나설 때 늘 희윤을 데리고 다니며 경험을 쌓게 했다.희윤도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자신을 키워주려 한다는 걸 감지한 후, 더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아침에는 일부러 도시락을 챙겨와 연하에게 건넸고, 연하가 야근하면 곁에서 끝까지 남아 함께 일을 도왔다.그날 점심, 희윤은 일부러 연하가 일을 끝낼 때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구내식당으로 향했다.자리에 앉자마자 물티슈를 꺼내 탁자를 닦아주고는 웃으며 물었다.“방 비서님, 사장님이랑 지내기 편하세요? 제가 여기로 올라온 지 며칠 됐는데 아직 직접 뵐 기회가 없어서요.”연하는 웃으며 대답했다.“꽤 편하게 지내는 편이죠. 겉으론 무뚝뚝할 때도 있지만 속은 의외로 따뜻하고, 배려심도 많은 좋은 상사죠.”희윤은 안도한 듯 숨을 내쉬었다.“그럼 다행이네요.”그런데 오후, 희윤이 사장실에 결재 서류를 들고 들어가려다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진구가 연하를 꾸짖는 듯한 목소리였고, 두 사람이 언성을 높이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돌아온 희윤은 로운에게 귀띔했다.“사장님이 화를 내고 계시는데 완전 무서워요.”로운은 연하를 두둔했다.“방 비서님이 얼마나 잘하시는데, 사장님이 뭐가 불만일까요?”희윤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방 비서님이 워낙 기가 세잖아요. 사장님이 화내면 그냥 듣고 넘어가야 하는데, 버릇처럼 맞받아치니까 더 불편해지는 거죠.”로운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딱히 대꾸하지 않았다.“우리야 그냥 자기 일 잘하면 되죠. 괜히 휘말렸다가 같이 혼나면 곤란해지잖아요.”희윤은 입술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뭐, 그렇긴 하죠.
연하는 눈썹을 치켜세웠다.“괜찮아요.”휘연이 나가자 연하는 문을 열고 들어가 진구 맞은편에 앉았다.“휘연 씨 말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걸 보니, 여안석이 무슨 일을 벌였는지 이미 알고 있었던 거네요.”진구는 담담하게 대답했다.“저지른 불법 거래 뒤에는 얽힌 이해관계가 많이 얽혀있어. 건드리지 않는 게 최선일 때도 있지.”그래서 개인적인 문제를 이유로 안석을 밀어내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었다.시간이 좀 흐르면 다른 구실을 붙여 완전히 회사에서 쫓아내면 됐었다.연하는 그런 진구를 바라보며 속으로 내심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진구는 이미 훌륭한 경영자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문득 안석이 자신을 때리려 했던 순간이 떠올랐다.‘그때 선배가 내뱉은 말, 내 몸에 만약 상처라도 났더라면, 모든 이해관계를 무시하고 여안석을 감옥으로 보냈을까?’진구는 손을 뻗어 담배를 집으면서 옅게 웃었다.“서휘연은 늘 너에게 적대적이었어. 그래서 내가 직접 내보냈는데, 어떻게 보답할래?”연하는 생각에서 깨어나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진구의 손에서 담배를 뺏어 다시 케이스에 넣었다.“나도 여안석을 처리하는 데 힘을 보탰으니 퉁친 거죠. 서로 고마워할 필요 없고요.”그렇게 말하고 연하는 몸을 돌려 사무실을 나갔다.진구는 케이스를 흘깃 보고 낮게 웃었다.“조만간 새로운 비서를 뽑아서 붙여줄게. 네가 직접 회사 안에서 고르든가. 골랐으면 내게 말해.”“괜찮아요. 선배가 적임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면 되니까요.”연하는 담담하게 말하며 문을 닫고 나갔다.이틀 뒤, 연하는 아버지 방건홍에게서 전화를 받았다.[연하야, 네가 보낸 찻잔을 받았어. 이건 진품이랑 똑같던데 꽤 돈 들였겠구나.]연하는 순간 멈칫했다. ‘내가 산 찻잔 세트는 아직 집에 가져오지도 못했는데.’[정말 대단하구나. 보면 볼수록 진짜 같아.] 방건홍은 흥분된 목소리로 덧붙였다.그 찻잔은 사실 진품이었지만 본인이 믿지 못했을 뿐이다.이런 찻잔 두 개라면 값이 수십억 원을 넘어 수백억대
그러자 연하는 비웃으며 말했다.“이사님과 서 비서는 한통속이네요. 그런데 서 비서가 이사님 속셈을 안다면, 과연 계속 협력할까요?”안석은 확신에 차 대답했다.“그건 신경 쓸 필요 없어요.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요.”연하는 곤란한 듯 말했다.“하지만 내가 걱정되는 건, 사장님이 그렇게 허술한 계략을 믿지 않을 거라는 거예요.”안석은 비웃듯 코웃음을 쳤다.“방 비서는 어차피 박슬윤이 꽂아 넣은 사람 아닌가요? 그런데 사장님이 당신을 신경이나 쓸 것 같아요?”“게다가 날 제치고 방 비서 편에 설 거라 생각해요? 순진하네요!”연하는 차분히 맞받았다.“사장님이야 비서 하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겠죠. 하지만 이사님 같은 회사의 좀벌레는 결코 용납하지 않을 거예요.”말을 마치며 연하는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화면에는 영상 통화가 켜져 있었고 반대편은 회의실이었다.카메라가 안석의 쪽을 향해 있어 연하를 위협하며 추잡한 태도로 협박하는 모습이 전부 생중계되고 있었다.이에 안석은 벌떡 일어나 화면을 보았다. 반대편에는 진구와 인사부 행정부 고위 임원들이 모두 앉아 있었다.순간 안석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고 남자는 다급히 손을 뻗어 휴대폰을 잡으려 했다.하지만 연하는 재빠르게 휴대폰을 낚아채며 웃었다.“깨뜨리지 마세요. 새로 산 건 데다 이미 다 나갔으니 지금 부숴도 소용없어요.”“방 비서!” 안석은 분노에 치를 떨며 주먹을 들어 올렸다.[손대지 마세요!]진구의 표정이 급변하며 목소리가 폭발했다.[이사님, 지금 방 비서 손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남은 평생 감옥에서 썩게 만들 거예요!]회의실 안 사람들은 모두 놀란 눈빛으로 진구가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달려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그 순간 안석은 멈칫했고, 연하는 재빨리 문으로 달려가 열고 뛰쳐나갔다. 안석도 뒤늦게 뒤쫓으려 했으나 문 앞에 있던 휘연이 가로막았다.휘연은 영문을 몰라 놀란 표정으로 안석의 팔을 붙잡았다.“무슨 일이에요? 왜 방 비
안석이 연하를 바라보며 말했다.“방 비서는 뭐라고 할 건가요?”연하는 담담한 목소리로 설명했다.“이건 제가 아버지께 드리려고 산 다도 세트예요. 방금 택배로 받은 거예요.”휘연이 곧장 따져 물었다.“방 비서님, 아버지께 드릴 다도가 얼마짜리예요?”연하는 잠시 멈췄다가 차분히 대답했다.“112만 원이요. 친구에게 부탁해 구입했고 송금 내역도 있어요.”휘연은 상자를 열어 조심스레 안석 쪽으로 밀었다.“이사님, 댁에 귀한 도자기들을 많이 소장하고 계시잖아요. 한번 보시겠어요? 이 다도 세트가 얼마쯤 되는지?”안석은 찻잔 하나를 집어 들고 놀란 듯 말했다.“이건 조선시대 있었던 진품이네요. 잔 하나가 수십억은 하고, 이 한 쌍은 최소 20억 이상이겠는데요?”연하는 오늘 일이 너무 많아, 택배가 도착했을 때 바로 옆에 두고 열어보지도 못했다.하지만 확실히 이건 자신이 산 다도세트가 아니었다.이윽고 연하는 비웃듯 말했다.“이런 허술한 조작으로 날 몰아가려는 건가요?”이에 휘연은 곧장 맞받았다.“방 비서님, 제가 직접 확인했습니다. 이 택배는 ‘기문’이라는 회사에서 발송된 거고, 배송 추적도 전부 확인했는데 중간에 바꿔치기 된 흔적은 전혀 없었습니다. 게다가 방 비서님이 직접 받으셨잖아요!”연하는 여전히 침착했다.“누군가 고의로 날 모함했다면요?”“그럼 그걸 어떻게 증명하실 거죠?” 휘연은 자신만만한 기세로 몰아붙이자 연하는 더 말싸움할 생각이 없었다. 대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서 비서, 당신 목적이 뭐죠?”이에 휘연은 숨김없이 내뱉었다.“방 비서님이 스스로 사표내고 나가면, 나랑 이사님은 이 일 없던 걸로 해줄 거예요.”연하는 조소를 띠며 말했다.“사장의 비서가 자기 상사를 멋대로 해고하겠다고 결정하나요? 이사님도 그 말에 따르시고요?”휘연은 순간 굳어졌다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난 그저 방 비서님을 위해 그러는 거예요. 조용히 떠나면 흠 없이 끝날 일이에요. 하지만 이게 크게 번지면, 뇌물 의혹이 경력에 박혀서
회의실 앞자리에 앉아 있던 진구가 갑자기 서류 뭉치를 탁 던지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마케팅 안에 참신함이 전혀 없고, 제품의 특징도 제대로 드러나지 않네요. 이 기획 누가 한 거죠?”안석이 서둘러 대답했다.“저희 부서에서 했어요.”“다시 하세요.” 진구는 단호하게 말을 던지고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를 끝맺었다.“회의는 여기까지.”순간, 회의실 안의 모든 시선이 안석에게 쏠렸다. 안석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는 진구의 등을 뚫어지게 노려보며 눈에 서늘한 기운을 번뜩였다.휘연은 다른 부서에 볼일이 있는 척하면서 살짝 안석을 따라갔다. 외진 곳에 이르자 두 사람은 곧장 서로를 끌어안았다.휘연은 안석의 가슴에 기대어 억울함을 토로했다.“아까 그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사장님이 너무 심하셨어요. 체면도 안 세워주시고.”안석은 험악한 눈빛으로 입꼬리를 비틀며 웃었다.“별 수 있나? 지금 권력 쥔 사람이 누군데.”“못 느끼셨어요? 요즘 사장님이 점점 더 노골적으로 겨냥하는 거. 특히 연하 씨가 온 뒤부터요.” 휘연은 목소리를 낮추자 안석은 눈살을 찌푸렸다.“그게 연하 씨랑 무슨 상관이지?”“분명히 연하가 사장님한테 임원님 흉을 본 거예요.” 이에 휘연의 눈빛이 스쳤다.“지금 사장님 곁에는 연하 씨뿐이에요. 중요한 일도 다 맡기고, 전 이제 아무 일도 못 건드려요.”휘연은 매섭게 안석을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반드시 연하 씨를 여씨그룹에서 몰아내야 해요.”안석의 눈빛이 흔들리며 빛을 바꿨다.“좋아. 방법은 있어?”휘연은 주위를 살핀 뒤 안석에게 바짝 다가가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안석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좋아. 네가 주도해. 내가 맞춰 줄게.”휘연의 진짜 목적은 연하를 제거해 안석의 곁을 지키는 것이었다. 휘연은 안석의 동의를 얻자 금세 얼굴에 기쁨이 번졌다.“하루도 더 보고 싶지 않아요. 이틀 안에 소식 드릴게요.”“다 네 말대로 하자.” 안석은 시원하게 받아들였
사실 일의 발단은 반달 전이었다. 아름의 아버지가 맡았던 공사에서 문제가 생겼고, 그 일을 처리하느라 소용이 이리저리 발을 뛰며 도움을 줬다. 덕분에 아름의 집은 큰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아름은 남에게 빚지고 싶지 않아 사례금을 주려 했지만, 소용은 돈을 받지 않았다.대신 자기 친구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이 곧 개업하는데, 원래 초대했던 피아니스트가 교통사고로 입원하게 되어 급히 대타가 필요하다며 아름에게 부탁을 한 것이었다.아름은 본업은 그림 선생이지만, 어릴 적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학창 시절에는 아르바이트로 피아노 연주를 맡아 용돈을 번 적도 있었다. 그래서 큰 고민 없이 흔쾌히 승낙했다.레스토랑 개업 날, 아름은 정성껏 차려입고 가서 하루 종일 피아니스트로 연주를 맡았다.개업식이 끝난 후, 레스토랑 사장은 고맙다며 선물을 내밀었는데 바로 지금 그녀가 하고 있는 목걸이였다.처음엔 받지 않으려 했지만, 사장은 꼭 받아 달라며 거듭 권했다. 결국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어 아름은 그 선물을 받아야 했다.그날 오후, 윤성과 설연의 수업을 끝낸 후, 아름은 차를 몰고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달리던 중 갑자기 타이어가 터졌다.차에서 내려 확인하고 있는데, 옆에 차 한 대가 멈춰 서더니 소용이 내렸다.“한아야, 무슨 일이야?”“타이어가 터졌어.” 아름은 짧게 답했지만, 경계심이 생겼는지 남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의심스러웠다. ‘이렇게 우연일 수 있을까?’소용은 웃으며 말했다.“왜 그렇게 쳐다봐? 설마 내가 일부러 그랬다고 생각하는 거야? 내가 무슨 힘이 있어서 네 차 바퀴까지 조작하겠냐고.”아름은 눈을 굴렸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에 소용은 직접 내려 삼각대 경고판을 세워주고, 정비소에 전화를 걸어 수리 기사를 불렀다. 그리고 아름의 곁에 서서 함께 기다려 주었다.한 시간쯤 지나서야 정비사가 도착해 타이어를 갈았다.이에 소용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해도 저무는데 같이 밥이나 먹자.”아름은 고마운 마음이 들어 고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