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그동안 저 대신 저희 부모님 묘지를 관리해주셔서 감사해요.”그녀는 주머니에서 작은 봉투를 꺼내 책상에 올려놓았다.“이건 제 자그마한 성의예요.”묘지기는 그녀를 힐끗 보더니 웃음을 지었다.“사실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요. 슬기 씨가 얼마나 효녀인지 저도 알고 있거든요.”임슬기는 입술을 틀어 물더니 망설이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참, 혹시 오늘 CCTV를 돌려볼 수 있을까요?”“왜요? 물건이라도 잃어버렸어요?”“그건 아닌데 엄마 묘비 앞에 꽃이 놓여 있더라고요. 그래서 누가 놓은 건지 보려고요...”그러자 묘
“이거 놔!”임슬기는 필사적으로 저항하며 남자의 품에서 빠져나오려고 했지만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자 남자는 그녀의 귓가에 바람을 불었다.“하, 도망치려고? 임씨 가문의 딸이 어떤 맛인지 우리도 알게 해줘야죠. 어차피 도망칠 수도 없을 텐데요.”말을 마친 남자는 그녀를 소파로 던졌고 바로 덮쳐왔다. 발버둥을 치자 옆에 있던 사람들이 그녀의 팔다리를 꽉 잡고 있었다.“잠깐. 우리 좀 더 즐겁게 놀아보지 않을래요?”“즐겁게 어떻게요?”“지금 우리 눈앞에 있는 사람은 명인시에서 한때 장미라고 불리던 여자잖아요. 배정
“그러게나 말입니다. 꾸물거리지 말고 얼른 벗어요!”“하, 돈 준다는데도 싫은가 봐요?!”임슬기는 이를 악물며 결국 셔츠를 벗었고 나시만 남게 되었다. 두 팔은 이미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무리 방 안의 불빛이 어둡다고 해도 하얀 그녀의 속살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사람들의 노골적인 시선에 손톱이 손바닥에 박힐 정도로 주먹을 꽉 쥐고 있었고 그들은 그녀의 몸을 보며 웃고 있었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장 대표는 그녀의 옆으로 다가가더니 허리에 손을 슬쩍 올렸다.“왜 더 벗지 않는 거예요? 혹시 도움이 필
그저 머릿속에서 생각했을 뿐인데 임슬기는 바로 누군지 알아챘다. 연다인을 제외하고 이런 짓을 꾸밀 사람은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다소 기대하는 눈빛으로 배정우를 보았다.‘만약에 배정우가 이 모든 게 연다인이 한 짓이라는 걸 알게 되면 어떻게 할까?'배정우는 장 대표를 쓰러뜨린 후 권민에게서 손수건을 받아 손을 닦더니 그대로 장 대표의 얼굴로 던졌다. 그리곤 임슬기에게 다가갔다. 그는 허리를 굽혀 그녀를 안아 올리고 문밖을 나가려던 때 다시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고개를 돌려 남아 있는 사람들을 보자 그들은 겁에 질린 표정
“그러게. 정우야, 내가 이런 후과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면 절대 연다인을 구해주지 않았을 거야.”임슬기는 온몸에서 퍼지는 열기를 국 참으며 말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의식이 흐릿해져 가고 있었다. 얼굴도 빨개져 버린 그녀는 미간을 찌푸린 패 손을 뻗어 배정우의 옷을 벗겨버렸고 민소매 안으로 손도 넣었다.“임슬기, 지금 네 모습을 보니 더 천박해 보이는군!”결국 그에게 손목을 잡혀버리고 말았지만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고 의식이 남아 있어도 손발이 그녀의 뜻대로 멈춰주지 않았다...배정우는 차가운 시선으로 그녀
“맞은 거야.”“누구한테?”임슬기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묻는 그의 모습을 보니 가슴이 저려 픽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너잖아.”배정우는 차가운 눈길로 그녀를 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눈빛이 말해주고 있었다.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말이다.그렇게 그녀는 가슴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참으며 말했다.“네가 날 때린 게 하루 이틀도 아니잖아. 이 상처들 중에서 네가 때려서 남은 상처도 있고 네가 다른 사람들한테 나 때리라고 시켜서 남은 상처도 있어.”임슬기는 지금 자신의 기분이 어떤지 몰랐다. 아픈 것일까,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그러자 전화기 너머로 한숨이 들려왔다.“슬기 씨, 임씨 가문 저택이 필요한 거라면 제가 도와줄 수 있어요. 저희 성진 그룹에 140억 정도는 있거든요.”“아니에요. 변호사님...”임슬기는 마른 입술을 핥았다.“제 불행으로 다른 사람마저 불행해지는 건 원치 않아요. 돌아가신 제 부모님과 집사님만으로도 충분해요. 게다가 변호사님 교통사고도 그렇고 심지어 저를 도와준 간호사도 병원에서 해고되고 말았는걸요.”“알고 있어요.”“알고 있다고요? 설마 그 간호사... 변호사님이 붙여주신 거예요?”“네, 슬기
“임슬기!”배정우는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임슬기를 불렀다. 이미 적응된 임슬기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그저 담담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보았다.“내가 연다인을 챙겨주는 걸 꿈도 꾸지 마.”“임씨 가문 저택이 필요 없나 봐?”그러자 임슬기는 피식 웃었다.“배은망덕한 연다인이 있는 한 내가 바닥을 기어 다니면서 연다인 발가락을 핥아도 절대 내가 얻지 못하게 막을 거야.”말을 마친 그녀는 이내 연다인을 향해 웃었다.“그렇지, 연다인?”연다인은 배정우의 품에 꼬옥 기대어 아주 연약한 목소리로 말했다.“정우야, 화내지
반달이 지난 뒤 임슬기는 여전히 제대로 걷지는 못했지만, 의사에게서 이틀 뒤면 퇴원이 가능하다는 허락을 받았다.“너무 잘 됐어요! 드디어 퇴원할 수 있다니! 뭐 드시고 싶어요? 내가 다 준비할게요! 이건 꼭 축하해야죠.”임슬기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현정아, 너 먹방 유튜버나 해볼래? 그럼 돈 좀 벌 수도 있겠다.”“진짜요? 근데 난 언니한테 해주는 게 제일 좋아요.”김현정은 그렇게 말하며 임슬기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더니 그녀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말았다.“언니, 우리 그냥 앞으로 같이 살래요? 내가 언니 먹여
“꺅!”연다인은 화끈거리는 뺨을 감싸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김현정을 노려봤다.당장이라도 달려들어 갈가리 찢어버리고 싶었지만 임종현이 있는 앞이라 억지로 연기해야 했다.잠시 눈을 깜빡이더니, 이내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김현정 씨, 왜 이러는 거예요?”그녀는 곧바로 임종현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억울한 척 말을 이었다.“종현아, 누나는 그런 뜻 아니야. 나는 그냥... 다들 알고 있는 줄 알고...”울먹이는 얼굴에 눈가가 금세 빨갛게 물들었다.그 모습에 임종현은 약간 망설이다가 나지막이 말했다.“됐어요. 형이랑
임종현이 부탁하면 임슬기는 늘 거절을 잘 못했다.하지만 배정우와 다시 잘 지내라는 이 부탁만큼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그녀가 원한다 한들 배정우가 원하지 않으니까.배정우는 그녀를 죽이려 했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과 어떻게 다시 처음처럼 돌아갈 수 있을까.그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저릿하게 아팠다.“종현아.”임슬기는 고개를 숙이며 쓴웃음을 지었다.“그 부탁은... 누나가 들어줄 수 없을 것 같아.”그녀는 억지로 울음을 삼킨 채 고개를 들었다.“이미 그 사람은 연다인이랑 함께잖아.”임종현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
이제 이 동생도 부끄럼을 탈 줄 안다니.임슬기는 피식 웃으며 종현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렸다.“종현아, 누나 좀 도와줘. 침대 좀 올려줄래?”임종현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 침대 발치로 가 손잡이를 돌리기 시작했다.“이 정도 높이면 돼요? 더 올려요?”“응, 지금 딱 좋아. 고마워.”임슬기는 그의 손에 감겨 있는 붕대를 보고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종현아, 그 손... 필기하는 데는 지장 없겠어?”그 말을 들은 종현은 고개를 숙여 손을 내려다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괜찮아요. 그렇게 심하진 않아요. 그리고 이번에
“현정아.”임슬기는 김현정이 아무렇지 않은 척 말하고 있어도 속으론 여전히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하지만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사랑 문제는 본래 타인이 쉽게 끼어들 수 있는 일이 아니지만, 이번 일은 그녀로 인해 시작된 일이기에 그냥 모른 척할 순 없었다.김현정은 조용히 다가와 침대 옆에 앉더니, 임슬기의 팔에 감긴 붕대를 보며 마음 아픈 눈빛을 보냈다.“언니, 내가 전화 안 했으면 나한텐 아무 말 없이 계속 숨길 생각이었죠?”“...나는 그냥 네가 걱정할까 봐.”“나도
차로 돌아온 배정우는 주머니에서 단추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는 손에 쥔 그것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나지막이 말했다.“권민, 연다인 행적 좀 추적해 봐.”권민은 고개를 끄덕였다가 그가 들고 있는 단추를 보고 물었다.“단추도 조사해 볼까요?”배정우는 단추를 권민 손에 툭 던지며 말했다.“조사해. 그리고 지난달 파티 밤의 CCTV 영상도, 빠짐없이 확인해.”그 말을 들은 권민은 잠깐 눈썹을 찌푸렸다.“대표님, 그날 CCTV는 이미 없어진 상태입니다. 호텔 쪽 말로는 장비 고장이 있었다고 합니다.”‘고장? 참 타이밍 좋게도.
하지만 임슬기는 결국 찌르지 못했다. 칼끝은 배정우에게 닿지 않았다.배정우는 놀라 반사적으로 그녀의 손을 움켜잡았다.“슬기야...”“배정우, 여긴 왜 온 거야?”그 순간 진승윤이 문을 열고 뛰어 들어왔다. 그는 배정우를 거칠게 끌어내고는 병실 문을 쾅 닫아버렸다.그리고 곧장 임슬기 곁으로 달려가 그녀 손에 들린 칼을 빼앗아 침대 옆에 내려놓은 후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진정시켰다.“괜찮아, 슬기야. 이제 괜찮아. 무서워하지 마, 아무 일도 안 생겨.”임슬기는 마치 이제야 정신이 든 듯 멍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눈물
“내 입이 독하긴 해도, 배정우 씨는 손에 칼을 숨기고 있잖아요.”임슬기는 고개를 들어 배정우를 바라보며 입가에 비웃음 섞인 미소를 띠었다.“그런데 내가 어떻게 당신을 이기겠어요.”그 말은 마치 날이 서 있는 칼처럼 배정우의 가슴을 깊숙이 찔렀다.배정우는 잠시 멍해있더니,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다가가 손을 들어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려고 했다.하지만 손이 닿기도 전에 임슬기가 눈을 감고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잔뜩 겁먹은 표정까지 떠오르자 배정우는 어쩔 수 없이 손을 거두었다.“넌 내가 그렇게 무서워? 응?”임슬기는 눈을
‘진성한?’임슬기는 얼떨떨했다.“그게 어떻게 너희 아버지랑 관련 있어?”진승윤은 미간을 찌푸렸다.“전에 파티장에서 우리 아버지 널 따로 불러냈었지?”“응.”“그 사람, 절대 신사 같은 인물 아니야. 자기 계획에 방해가 되는 사람은 전부 제거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야. 넌 그 사람 눈에 발목 잡는 존재였을 뿐이야.”진승윤의 눈빛 속에 이전과는 다른 차가움이 스쳤다.“방해가 된다 싶으면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고 없애버려.”이미 직접 전화로 확인하긴 했지만 그 위선적인 인간을 진승윤은 끝내 믿을 수 없었다.임슬기도 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