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야, 다인이도 잘못했지만 그래도 네 친구잖아. 너희는 한때 자매처럼 지냈는데 이제 와서 그 아이를 죽이려고까지 해야 해?”“슬기야, 이렇게 잔인하게 굴지 마!”“다인이는 지금 아무것도 먹지 않아서 10kg 넘게 빠졌어. 네가 용서해 주지 않으면 밥을 먹지 않겠다고 해.”“그 아이가 자살 못하도록 나와 다인이 아빠가 24시간 지켜보고 있어. 슬기야...”이 울음소리에 주변 사람들이 모여들며 임슬기를 둘러쌌다.“다인이 어머니, 일어나 주세요! 다인이가 내 부모님을 죽이고 내 남편을 빼앗고 내 아이까지 해쳤을 때 그와 나는
임슬기가 말을 하기도 전에 김현정이 화가 난 얼굴로 방 안으로 들어왔다.“슬기 언니, 대체 무슨 일이에요? 임종현 그 녀석이 또 문제를 일으켰어요? 아니면 정우 그 개자식인가요?”“그들과는 상관없어.”“그럼 누군데요? 말해봐요. 내가 가서 혼내줄게요.”김현정이 소매를 걷어붙이는 모습을 보며 임슬기는 살짝 웃었다.“현정아, 그런 성격으로 언제 결혼하겠니?”“난 결혼 안 할 거예요! 평생 언니 곁에 있을 거라고요!”말을 마치자 김현정은 다시 화를 내며 물었다.“얼렁뚱땅 넘기지 말고 대체 누군데요?”“다인이네 가족이지?”
임슬기는 침실로 들어가서야 전화를 받았다.“슬기야, 실검 보았어? 기분이 어때? 말해두는데 이건 시작일 뿐이야. 앞으로 이런 일이 더 많을 거야.”“종현이는 말이지, 훗... 슬기야, 네가 그렇게 아끼는 아이라면 반드시 망가뜨려 주겠어!”연다인이 사악하게 웃으며 덧붙였다.“게다가 너의 눈앞에서 그가 망가지는 걸 지켜보게 할 거야!”“감히!”임슬기는 이를 악물었다.“연다인, 네 계획은 이뤄지지 않을 거야. 종현이가 널 그렇게 믿었는데 그런 식으로 대해? 양심도 없어?”“그 아이는 내게 있어 그저 도구일 뿐이야. 너를 괴
“배정우 씨, 임슬기 씨가 배정우 씨 지인과의 불륜 의혹에 휘말린 데 대해 어떤 입장입니까?”“두 분은 지금 어떤 관계로 봐야 합니까?”“...”기자들이 다시 두 사람을 에워싸고 듣기만 해도 피곤한 질문들을 쏟아냈다.배정우는 덜덜 떨고 있는 임슬기를 품에 끌어안고 주위를 차갑게 훑었다.“누가 당신들한테 그런 질문을 하라고 시킨 겁니까?”그 말에 기자들 모두 입을 다물었다. 그들은 그저 돈 받고 움직이는 사람들이었고 누구 하나 진심으로 배정우를 건드릴 생각은 없었다.임슬기를 조수석에 태운 뒤, 배정우는 조용히 운전석에 올
“전화 끊었어요. 내가 내려가 볼게요.”임슬기는 분명 임종현이 자신한테 화가 난 거라 생각했다. 그게 아니면 전화를 받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연다인이 벌인 일이라고 말해도 과연 믿어줄까.“그냥 있어. 내가 전화해 볼게.”배정우가 그녀를 붙잡고는 직접 임종현에게 전화를 걸었다.“임종현, 지금 당장 내려와. 3초 준다.”얼마 지나지 않아 임종현이 건물에서 나와 뒷좌석 문을 열고 조용히 탔다.그 순간 임슬기의 마음은 싸늘하게 식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였다.그녀는 조심스레 돌아보며 말했다.
임씨 가문 저택.임슬기는 주방으로 들어가 냉장고 문을 열고 어떤 재료가 있는지 살펴보았다. 하지만 머릿속은 자꾸만 배정우로 가득 찼다.가슴 한구석이 찌르듯 아팠다. 배정우는 그녀에게 자유를 허락하지 않았다.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예전에는 그저 배정우 곁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아침부터 해 질 때까지 하루 종일 그의 곁에 있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도망치고 싶다.이제는 그가 정말 두렵다. 금세 폭발할 듯한 분노도, 차가운 손길도, 언제 어떻게 자신을 상처 입힐지 모른다는 그 공포가 온몸을 짓눌렀다.무엇보다도
“다인 누나가 다시 돌아오겠다고 했어요.”임슬기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종현아...”“지연 이모 일은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그 말을 듣는 순간 임슬기는 마치 얼음물에 빠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임슬기는 핏기가 싹 가신 얼굴로 임종현을 바라보며 말했다.“설마 이제 누나 말 안 믿는 거야?”어제까지만 해도 그는 언론에 나온 건 다 거짓말이라고 하지 않았던가?근데 연다인의 전화 한 통에 바로 믿는 건가?왜 임종현도 배정우처럼 연다인의 말만 들으면 아무 의심 없이 믿어버리는 걸까?자신에 대한 신뢰는 그렇게 바닥인 걸
“임슬기 씨, 제발... 우리 좀 그만 놔주세요. 네?”임슬기는 차창을 내려 찌푸린 얼굴로 말했다.“길 막지 마세요, 최 여사님.”어제 뼈 골절 증거 조작이 밝혀진 이후로 여론은 완전히 뒤집혔다. 우씨 집안을 향해 쏟아지는 비난은 거세졌고 진짜 뻔뻔하다며 몰아세우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심지어 우현식의 신상을 털겠다는 움직임까지 보였다.거기에다 법적 대응까지 시작되자 무서워진 거였다.하지만 임슬기는 임종현을 해치려 했던 사람에게 관대해질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었다.“임슬기 씨!”최민경이 창문에 매달리듯 달라붙어 울먹이며 애
“현정아.”임슬기는 김현정이 아무렇지 않은 척 말하고 있어도 속으론 여전히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하지만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사랑 문제는 본래 타인이 쉽게 끼어들 수 있는 일이 아니지만, 이번 일은 그녀로 인해 시작된 일이기에 그냥 모른 척할 순 없었다.김현정은 조용히 다가와 침대 옆에 앉더니, 임슬기의 팔에 감긴 붕대를 보며 마음 아픈 눈빛을 보냈다.“언니, 내가 전화 안 했으면 나한텐 아무 말 없이 계속 숨길 생각이었죠?”“...나는 그냥 네가 걱정할까 봐.”“나도
차로 돌아온 배정우는 주머니에서 단추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는 손에 쥔 그것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나지막이 말했다.“권민, 연다인 행적 좀 추적해 봐.”권민은 고개를 끄덕였다가 그가 들고 있는 단추를 보고 물었다.“단추도 조사해 볼까요?”배정우는 단추를 권민 손에 툭 던지며 말했다.“조사해. 그리고 지난달 파티 밤의 CCTV 영상도, 빠짐없이 확인해.”그 말을 들은 권민은 잠깐 눈썹을 찌푸렸다.“대표님, 그날 CCTV는 이미 없어진 상태입니다. 호텔 쪽 말로는 장비 고장이 있었다고 합니다.”‘고장? 참 타이밍 좋게도.
하지만 임슬기는 결국 찌르지 못했다. 칼끝은 배정우에게 닿지 않았다.배정우는 놀라 반사적으로 그녀의 손을 움켜잡았다.“슬기야...”“배정우, 여긴 왜 온 거야?”그 순간 진승윤이 문을 열고 뛰어 들어왔다. 그는 배정우를 거칠게 끌어내고는 병실 문을 쾅 닫아버렸다.그리고 곧장 임슬기 곁으로 달려가 그녀 손에 들린 칼을 빼앗아 침대 옆에 내려놓은 후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진정시켰다.“괜찮아, 슬기야. 이제 괜찮아. 무서워하지 마, 아무 일도 안 생겨.”임슬기는 마치 이제야 정신이 든 듯 멍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눈물
“내 입이 독하긴 해도, 배정우 씨는 손에 칼을 숨기고 있잖아요.”임슬기는 고개를 들어 배정우를 바라보며 입가에 비웃음 섞인 미소를 띠었다.“그런데 내가 어떻게 당신을 이기겠어요.”그 말은 마치 날이 서 있는 칼처럼 배정우의 가슴을 깊숙이 찔렀다.배정우는 잠시 멍해있더니,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다가가 손을 들어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려고 했다.하지만 손이 닿기도 전에 임슬기가 눈을 감고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잔뜩 겁먹은 표정까지 떠오르자 배정우는 어쩔 수 없이 손을 거두었다.“넌 내가 그렇게 무서워? 응?”임슬기는 눈을
‘진성한?’임슬기는 얼떨떨했다.“그게 어떻게 너희 아버지랑 관련 있어?”진승윤은 미간을 찌푸렸다.“전에 파티장에서 우리 아버지 널 따로 불러냈었지?”“응.”“그 사람, 절대 신사 같은 인물 아니야. 자기 계획에 방해가 되는 사람은 전부 제거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야. 넌 그 사람 눈에 발목 잡는 존재였을 뿐이야.”진승윤의 눈빛 속에 이전과는 다른 차가움이 스쳤다.“방해가 된다 싶으면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고 없애버려.”이미 직접 전화로 확인하긴 했지만 그 위선적인 인간을 진승윤은 끝내 믿을 수 없었다.임슬기도 진
육문주의 발걸음이 멈췄다. 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그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그날 밤, 연다인이 김현정이 마시던 술에 약을 탔어요.”말을 끝낸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배정우를 바라봤다. 그리고 또박또박 말했다.“그건 그 여자가 직접 인정한 말이에요.”그렇게 말한 육문주는 곧바로 문을 열고 나갔다.여러 해를 함께한 사이였기에, 그는 이 일에 배정우가 직접 관련되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하지만 임슬기가 그렇게까지 의심하고 원망한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터.그래서 그 역시 배정우를 위해 변명해 줄 생각은 없었다.배정우의
배정우는 권민에게 임종현을 병원에 데려다주라고 지시한 뒤 자리에 남았다.바닥에 쓰러져 기절해 있는 남자를 바라보던 그는 곁에 놓인 양동이를 들었다.차가운 물 한 통을 그대로 퍼부었다.남자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고개를 들자마자 배정우의 핏기 어린 눈빛과 마주쳤다. 그 순간 겁에 질려 온몸을 떨며 허둥지둥 손을 내저었다. 뭔가 말하려 입을 벌렸지만, 끝내 단 한 마디도 내뱉지 못했다.배정우는 이 남자와 쓸데없는 신경전을 벌일 기분이 아니었다. 그는 조용히 칼을 꺼내 남자의 목에 갖다 댔다.“말해. 누가 시킨 거야? 목적이
임종현은 그 남자가 당장이라도 끔찍한 짓을 저지를 것만 같아 목이 터질 듯한 절규가 가슴 깊은 데서부터 쏟아져 나왔다.“누나! 임슬기, 정신 차려. 제발 눈 좀 뜨라고!”도저히 버틸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임슬기는 마지막 남은 기운을 다해 오른손을 겨우 들어 임종현에게 신호를 보냈다.무언의 손짓이었다. 마치 무서워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그리고 임슬기는 힘겹게 웃음을 지어 보이더니 입 모양으로 말했다.‘기회 봐서 너라도 도망쳐’임종현은 그 자리에서 완전히 굳어버렸다.연다인이 했던 말. 임슬기는 임씨 가문의 죄인이라는
연다인은 임슬기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걸 보곤 그녀가 완전히 속아 넘어갔다는 걸 단숨에 눈치챘다.“임슬기, 너 이렇게 무너지는 모습 배정우도 꼭 봤어야 하는데.”임슬기는 고개를 돌려 연다인을 외면했지만 눈물은 마치 연다인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듯 흘러내렸다.다리가 부러졌을 때도 임슬기는 울지 않았다.하지만 배정우가 자신의 죽음을 원했다는 걸 들은 순간 그녀는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애써 괜찮은 척해봤지만 17년을 사랑한 그 남자가 자신의 원수에게 자길 죽여달라고 했다는 걸 들었을 땐 결국 무너져버리고 말았다.임슬기는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