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예솔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담담하게 말했다.“아직은 그럴 계획 없어요.”사실 지예솔은 여태 봉현수를 몸 가까이에 오지도 못하게 했고 또 각방을 쓰고 있기에 아이가 생길 수 없었다.그녀는 여전히 마음이 편하지 않았고 지현우에게 한 약속도 잊을 수 없어 봉현수와 가까이하면 왠지 동생과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 같았다.지예솔이 넋을 놓고 있자 온다연은 그녀의 손을 잡으며 위로의 말을 했다.“다 잘될 거예요. 정 안되면 다시 시험관아기를 가지면 되죠.”지예솔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마음속으로 아이를 엄청나게 좋아했고 비록 자신이 10개월 품어 낳은 아이는 아니지만 자신의 혈육은 틀림없었다.혈육이라는 끈이 있어서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정은 더 깊어졌고 지예솔은 점점 더 아이를 좋아하고 사랑하게 되었다.앞으로 그녀와 봉현수 사이에 아이가 더 생길 수도 있지만 지금은 상황도 그렇고 그를 받아들일 용기가 없었다.이때 다희가 지예솔의 무릎에 올라가 앉더니 목을 꼭 껴안고 뽀뽀를 해주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이쁜 이모, 이모는 제 이름이 왜 다희인지 알아요?”지예솔은 애교가 많은 이 여자아이를 너무 좋아했고 아이를 번쩍 들어 안고 웃으며 말했다.“왜 이름이 다희야?”다희는 뽐내는 표정으로 입술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기쁜 일이 많이 생기라고 지은 이름이에요. 할아버지께서 그러셨는데 저랑 잘 지내는 사람들은 기쁨도 많고 즐거움도 많을 거라 하셨어요. 다희는 복덩어리예요.”“이모가 저한테 뽀뽀해 주면 이모도 복덩어리가 될 거예요.”아이는 예쁜 얼굴에 똑똑했고 어린 나이에 표현력도 뛰어났다.다희의 애교에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린 지예솔은 아이의 얼굴에 뽀뽀하고는 말했다.“그래, 이제 다희한테 뽀뽀했으니 이모도 복덩어리인 거지?”다희는 반대쪽 얼굴을 가리키며 말했다.“이쪽도 해줘야죠.”지예솔은 아이의 반대쪽 얼굴에도 뽀뽀를 해주고는 말했다.“우리 다희 너무 귀여워.”다희는 그제야 만족하며 작은 두 손으로 손뼉을 치며 말했다.“
한창 아들에게 우유를 먹이고 있던 봉현수는 그 말에 고개를 들어 유감스러움과 간절함이 가득한 눈빛으로 지예솔을 바라보았다.유강후는 아이들을 데리고 놀며 봉현수한테 말했다.“들어보니 너 요즘 매일 맞고 산다며?”봉현수는 전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그런 소리 못 들었어? 훌륭한 남자는 다 아내한테 맞으며 산다고 하잖아.”유강후는 고의로 신경을 건드리며 말했다.“그럴 필요까지 없지. 우리 아내는 날 엄청나게 아껴주는데.”유강후는 눈썹을 치켜세우더니 입고 있는 셔츠의 소매 단추에 적힌 브랜드명을 보이며 말했다.“이건 아내가 나한테 선물한 거야, 넌 이런 선물 받아봤어?”이 말에 봉현수는 수그러들지 않고 다시 말했다.“사 온 물건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 우리 솔이는 직접 디자인해서 만들어 준 것이 엄청 많아. 이 박스도 직접 디자인해서 만든 거야. 전 세계에서 나만 가지고 있거든, 넌 이런 거 있어?”하지만 그가 말한 물건들은 이미 몇 년 전의 물건이었고 그 뒤로 몇 년 동안 지예솔로부터 어떤 선물도 받지 못했다.유강후는 콧방귀를 뀌며 쌍둥이를 안아 그의 앞에 앉혀놓으며 말했다.“그럼 이런 건? 있냐?”봉현수는 이미 아들이 있으니 딸이 탐나자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다희를 안으려고 했지만 유강후가 뿌리치며 말했다.“저리 안 비켜? 누구 마음대로 우리 보배 딸을 건드리래.”이젠 두 살이 다 된 다희는 눈매가 엄청 예뻤고 오늘 양 갈래머리까지 묶고 핑크 원피스 세트를 입으니 더욱 사랑스럽고 귀여워 보였다.게다가 다희는 어릴 때부터 예쁜 것만 추구했기에 오자마자 계속 얼굴이 예쁜 지예솔에게만 다가갔다.유강후의 품에 꼭 안겨있는 다희는 움직이지 못하자 기분이 안 좋다는 표정으로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오늘 아빠한테서 향기로운 냄새가 안 나요. 다희는 아빠랑 있기 싫어요. 저는 향기로운 이모랑 놀래요.”말을 하고는 작은 몸을 뒤틀면서 유강후에게서 빠져나오더니 신나게 온다연과 지예솔의 곁으로 달려갔다.딸에게 무시를 당한 유강후는 섭
옆에 서 있던 안시현이 바로 친자확인서를 정연석 앞에 내놓으면서 말했다.“정 대표님, 똑똑히 보세요. 이건 저희 사모님과 작은 도련님의 친자확인서예요. 둘은 모자 관계가 성립되었고 절대 가짜일 수 없어요. 부탁이지만 더는 사모님을 찾아오는 일이 없도록 하셨으면 좋겠어요.”정연석은 떨리는 두 손으로 친자확인서를 받아 들고는 빠르게 맨 마지막 페이지로 넘겼다.마지막 줄에 있는 몇 자의 빨간 글씨가 눈에 들어오자 정연석은 갑자기 피를 토하며 말했다.“아니야, 난 절대 안 믿어.”이 순간 그는 봉현수한테 완전히 패배당했다.정연석은 천번 만번 여러 방면으로 생각했어도 봉현수가 이 정도로 미친 짓을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지예솔을 위해서라면 봉현수는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는 사람이었고 설령 위험이 있는 일이라도 목숨을 바쳐서까지 해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이제부터 지예솔이 가장 신경 쓰는 가족애는 지현우를 잃은 후 이 아이로 채워질 것이고 그녀의 미래는 자신과 무관할 것으로 생각되었다.그때 지예솔은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고 바로 일어서더니 비틀거리며 침실로 들어갔다.그녀가 아이를 안고 있을 때 봉현수도 두 모자를 꼭 껴안더니 정연석의 시선에서 멀어지며 호텔을 떠났다.봉현수는 지예솔을 데리고 예전에 학교 부근에 샀던 별장으로 들어갔다.그곳에는 두 사람이 사랑에 빠졌을 때의 추억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이 별장은 지금 보면 육아센터와 흡사했다.집사와 도우미가 모두 잘 안배되어 있었고 아기방도 크고 편안했으며 안방 옆에 배치되어 있었다.온 방 안에 놓여 있는 유아용품은 은은한 우유 향을 풍기며 지예솔의 공허했던 마음을 조금씩 채워주는 듯했다.비록 아이가 옆에 있지만 지예솔은 자주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며 넋을 잃곤 했다.다만 눈빛이 매우 부드러워졌고 아이가 칭얼대는 소리만 들으면 다시 정신을 차리고 아이를 돌보았다.지예솔은 정신적 치료에 적극 협조하여 음식도 조금씩 먹기 시작하더니 창백했던 얼굴에 혈색이 돌기 시작했다.
지예솔은 몸을 흠칫하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이 아이가 진짜...”봉현수는 눈물을 흘리며 대답했다.“맞아. 작년 겨울 청평 읍에서 건강 검진받았던 거 기억나? 마취를 맞았던 그때...”지예솔은 문득 건강검진을 하던 날이 떠올랐다.분명 평범한 부과 검사라고 했었지만 그녀에게 국소마취를 놓았고 그 후 며칠 동안 아랫배가 묵직하게 아프고 매우 불편했다.나중에 알고 보니 그때 그녀의 난자를 채취했던 거였다.지예솔은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한번 되물었다.“그러니까 이 아이가...”봉현수는 오열하며 말했다.“그래. 그때는 네가 동의하지 않을까 봐 너한테 숨겼던 거야. 당시 모두 두 개의 난자가 가능했지만 다른 한 난자는 배 안에 두 달 동안 있다가 태동이 멈췄어. 우리가 운이 좋았던 거야. 이 아이는 매우 건강하게 태어났고 보통 아이들보다 더 잘 크고 있어.”지예솔은 부들부들 떨면서 아이를 받아 안고 눈물을 흘렸다.잠시 후, 지예솔이 아이를 안고 일어서 비틀거리며 침실로 향하자 봉현수는 얼른 다가가 그녀를 부축했다.하지만 지예솔은 봉현수를 뿌리치고 방으로 들어가 아이를 침대에 눕히고 앞에 서서 조용히 지켜보았다.안정감을 잃은 아이는 다시 입을 삐죽거리며 울기 시작했다.아이가 울자 그녀도 따라 울더니 웃다 울기를 반복하며 완전히 정신이 나간 듯한 모습을 보였다.봉현수가 방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지예솔은 갑자기 몸을 돌려 그를 있는 힘껏 걷어찼다.힘없어 보이던 그녀가 어디서 나온 힘인지 그를 연속으로 걷어차 뒤로 물러서게 했다.봉현수는 아무 반격도 못 한 채 억지로 버티고만 있었다.지예솔은 마치 미친 사람처럼 방 안에 있는 물건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봉현수를 향해 집어 던졌다.베개며 과일이며 쟁반이며 컵이며 주전자까지 모두 그를 향해 내던지고는 울면서 욕을 퍼부었다.“봉현수, 이 나쁜 놈, 개자식! 어떻게 이런 모험을 해? 이건 사람 목숨이야! 만약 성공하지 못했으면 당신은 살인자야 살인자! 이런 법을 위반하는
봉현수는 아이를 안고 지예솔의 앞으로 다가갔다.하지만 지예솔은 움직이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멍하니 창밖만 내다보고 있었다.봉현수는 무릎을 꿇고 아이를 살며시 그녀의 옆에 눕혔다.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러 아이는 갓 태어났을 때보다 훨씬 예뻐졌고 하얗고 투명해 보였다.비록 아직 어리지만 나중에 크면 틀림없이 멋진 남자가 되리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봉현수가 아이를 내려놓자 아이는 안전감을 잃은 탓인지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아이의 울음소리에 지예솔은 시선을 돌렸지만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 듯 멍해 보였다.그녀의 이런 모습에 가슴이 미어질 듯 아파져 온 봉현수는 심장을 도려내서라도 이 세상에는 아직도 그녀의 가족이 있고 그녀를 깊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봉현수는 지예솔의 손을 잡으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솔아, 이 아이를 좀 봐. 우리 아들이야. 너한텐 가족이 없는 게 아니야. 나도 있고 아들도 있잖아.”지예솔이 여전히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자 봉현수는 아이를 다시 안아 그녀의 앞에 내밀며 말했다.“솔아, 우리 아들 한번 봐봐. 너한테 보여주지 못해서 지금까지 이름을 못 지어줬고 애칭으로 초열이라는 이름을 지어줬어. 초열흘에 태어났으니까 초열이라고 지은 거야.”봉현수가 다시 안자 아이는 안정감을 느꼈는지 크게 울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칭얼거리고 있었다.아이는 작은 두 손을 허공에 휘적거리더니 무심코 지예솔의 옷깃을 움켜쥐었다.지예솔은 그제야 잠시 움찔하며 시선을 아이에게 돌렸지만 곧바로 다시 창가를 바라보며 무뚝뚝하게 말했다.“저한텐 아이가 없어요. 제 아이는 당신이 직접 죽였잖아요. 그리고 유일한 가족인 남동생도 죽었으니 이젠 가족도 없어요. 그만 돌아가세요. 더는 보고 싶지도 않으니 다신 오지 말아요.”말을 마친 지예솔을 아예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려 더는 봉현수와 아이를 쳐다보지도 않았다.지예솔의 태도에 봉현수는 겨우 참고 있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지난날의 지예솔은 아무리 봉현수와 싸
봉현수의 바람이 이루어지기라도 한 것인지 지현우는 한 달 뒤에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그가 떠나기 전, 며칠 동안 지예솔은 마치 예감이라도 한 듯 병원에서 한 발짝도 떠나지 않았다.지난 한 달 동안 그녀는 한 번도 봉현수를 본 적이 없었다.마지막 며칠 동안 지현우는 상태가 아주 좋았다. 잘 먹고 잘 웃는 모습들은 마치 모든 것이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 같았지만 지예솔은 이것이 그의 마지막 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날 아침, 지예솔이 지현우를 보러 갔을 때 그는 이미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불안한 마음으로 몇 번을 불렀지만 지현우는 끝내 대답이 없었고 지예솔은 눈물을 뚝뚝 떨구며 지현우한테 다가가 그의 손을 잡았다. 손에서 느껴지는 건 따듯한 온기 하나 없이 스며드는 냉기뿐이었다.이틀 전 지현우는 이미 의사에게 온몸에 약 냄새를 풍기며 가고 싶지 않다고 약을 줄 필요가 없다고 말했고, 그날만은 늘 입고 있던 환자복이 아니라 가장 즐겨 입던 운동복으로 갈아입었었다.그리고 가슴 위에 포개 여진 손에는 종이 한 장이 쥐어져 있었다.지예솔이 그 종잇장을 펼쳐보니 위에는 글씨가 빼곡히 씌어 있었다.[누나, 평생을 함께하자고 약속했었는데 그 약속을 어기게 돼서 미안해. 나 없이도 잘 지내고, 슬퍼하지 말고 울지도 마. 내가 있을 때처럼 그렇게 편하게 지내. 어제 연석 형이 평생 누나를 돌봐줄 거라고 나한테 약속했어. 그 약속이 있으니까 마음이 조금은 놓이는 것 같아. 연석 형의 말로는 누나랑 함께 외국에 가서 살겠다고 하던데, 그러면 물론 누구의 방해도 받지는 않겠지만 너무 멀고 환경도 익숙하지 않으니 불편할 거야. 그러니까 그냥 국내에서 지내. 그래야 내가 꿈에라도 보러 오지. 요 며칠 항상 어머니가 데리러 오는 꿈을 꿨어. 보아하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누나, 난 아무런 아쉬움도 없지만 유일하게 아쉬운 일이 있다면 누나랑 연석 형의 아이가 태어나는 것을 보지 못하고 가는 거야. 누나, 살아있을 때 난 항상 아픈 탓에 자유롭게 뛰어다
“근데 수술실에 있는 저 여자분은...”봉현수는 무덤덤한 태도로 말했다.“그건 이미 다 해결했어요. 아이를 일단 저 여자의 호적에 올린 뒤 양육할 수 없다는 이유로 다시 제 호적에 올릴 거예요. 그 조건으로 저 여자는 평생 일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먹고살 만한 재산을 얻게 될 거고요. 그리고 영원히 한국 땅을 밟지 못하게 해야죠.”“이미 잘 해결했다고 하니 제가 참견할 필요는 없겠네요.”병원에 도착한 유강후와 송지원은 품에 아이를 안고 있는 봉현수를 보더니 서로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저 자식 제대로 미쳤구나.”봉현수는 아기를 안고 두 사람 앞으로 다가가며 말했다.“내 아들이야. 나랑 지예솔의 아들.”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이를 받아 안으며 담담하게 말했다.“나쁘지 않네. 아주 튼튼하게 생겼어.”송지원은 상상 이상으로 미친 짓을 하는 봉현수를 보며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너 정말 미친 거야? 이건 상황에 따라 일이 커질 수도 있는 문제야. 특히 법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큰일 난다고. 너 진짜 제대로 해결한 거 맞아?”봉현수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담담하게 말했다.“응 확실하게 해결했어. 안되면 내 호적을 해외로 넘겼다가 다시 옮겨오면 돼.”송지원도 아이를 쳐다보며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그런데 시간 참 빠르네. 이제 너희들 전부 아이가 있는데 나만 없구나.”“한이준도 없잖아.”“없긴 왜 없어. 이제 네 살이나 됐는데.”봉현수는 놀라는 표정으로 말했다.“네 살이라고? 네 살까지 잘도 숨겨 놨네.”하지만 지금 다른 사람의 아이를 생각할 상황이 아니었던 봉현수는 이내 이성을 되찾으며 말했다.“지예솔과 정연석이 혼인신고를 안 한 게 맞는지 한번 알아봐 줘.”송지원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했다.“아까부터 너한테 이 일 때문에 연락했던 건데 전화도 안 받고 와보니 너는 미쳐 날뛰고. 말할 겨를이 없었잖아.”봉현수는 살짝 긴장해 하는 표정으로 물었다.“어떻게 됐어?”“두 사람이 혼인신고를 했던 기
지예솔은 친동생이 곧 죽을 것 같다는 불안한 예감과 함께 앞으로 그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마음이 너무 아파 무감각해진 것 같았던 지예솔은 그 어떤 일에도 정력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그녀가 이런 말을 할 줄 생각도 못 했던 봉현수는 마음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너도 지현우를 포기할 거야? 친동생이잖아.”지예솔은 눈을 감고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시더니 말했다.“연석 오빠, 우리 이제 가요.”정연석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그래, 가자.”두 사람의 다정다감한 모습에 화가 치밀어 오른 봉현수는 즉시 정연석에게 달려들어 주먹을 한 대 날리고 말했다.“그 손 당장 안 놓아? 당신이 그럴 자격이 있어?”정연석은 냉정하게 웃으며 말했다.“제가 제 아내 손을 잡는 데 무슨 문제가 있나요?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저한테 이러는 건데요?”“아내?”아내라는 두 글자에 이성을 잃은 봉현수는 바로 정연석한테 달려들어 그를 제압하더니 주먹을 휘둘렀다.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스러워진 주변 사람들은 급하게 달려와 봉현수를 끌어내려 했지만, 그는 이미 통제할 수 없는 짐승처럼 정연석을 죽일 듯이 패고 있었다.심지어 지예솔조차도 그를 막을 수 없었다.이때 송지원과 유강후가 사람을 거느리고 들어왔고 이어서 몇 명의 건장한 경호원들이 온 힘을 다해 봉현수를 제압했다.유강후는 사람을 시켜 냉수를 가져오게 하더니 바로 봉현수에게 끼얹었다.하지만 봉현수의 눈빛에는 여전히 정연석을 향한 살기가 담겨 있었고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목을 물어뜯을 듯한 위협적인 기세로 가득 차 있었다. 유강후는 물을 끼얹은 뒤 지예솔을 보며 소리쳤다.“빨리 당신 옆에 있는 사람을 데리고 나가세요. 현수가 정말 그 사람을 죽이기를 바라는 거예요?”지예솔은 정연석을 일으켜 세운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다.봉현수는 그녀를 쫓고 싶었지만, 몇 명의 건장한 경호원들이 길을 막아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봉현수는 싸울 때 목숨을 내던지듯 거칠고 무자비하다는 걸 지예솔은 잘 알고 있었다. 지금 그의 눈은 붉게 물들어 있었고 악귀 같은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눈빛만 봐도 그가 정말로 정연석을 죽이려고 달려들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두 사람 모두 키는 엇비슷했지만 싸움 실력으로 따지면 정연석은 봉현수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봉현수는 어릴 때부터 싸움을 밥 먹듯 해 온 사람이었다. 실전 경험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지예솔은 서둘러 정연석 쪽으로 달려갔다.“연석 오빠!”정연석은 상처를 입고 피범벅이 된 몸으로 그녀를 밀어냈다.“오지 마. 이건 우리 둘만의 문제야. 언젠가는 올 날이었어.”그리고 그는 문가에 서 있던 비서와 직원들을 흘깃 보며 소리쳤다.“모두 다 가까이 오지 마!”지예솔은 그의 얼굴과 이마에서 흐르는 피를 보고 마음이 덜컥 내려앉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목소리가 다급해졌다.“그만 좀 해요. 둘이 이렇게 싸워서 뭐가 남겠어요. 이게 도대체 무슨 꼴이에요?”그 순간, 봉현수가 달려들어 그녀를 거칠게 끌어당겼다. 그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낮게 으르렁거렸다.“나도 다쳤어. 그런데 왜 네 눈엔 저 사람만 보이는 건데?”지예솔은 돌아보지도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현수 씨, 당신이 싸움 잘하는 거 나도 잘 알아요. 근데 이렇게까지 사람을 괴롭히는 건 솔직히 너무 비열해 보여요.”봉현수는 순간 멈칫하더니 곧 쓴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엔 깊은 절망이 담겨 있었다.“내가 사람을 괴롭힌다고?”그는 갑자기 그녀의 어깨를 움켜쥐고 억지로 몸을 돌리게 했다.“나랑 저 사람, 둘 다 너한텐 가까이 가지 않기로 약속했잖아. 그런데 저 인간이 약속을 어기고 무슨 짓을 했는데? 너희, 혼인신고까지 했다며!”지예솔은 아플 정도로 세게 눌린 어깨를 간신히 빼냈다.“그건 현수 씨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에요!”“그럼 뭔데? 너희 영상까지 다 퍼졌어. 이젠 세상 사람 전부가 다 안다고. 너랑 네 동생 병원에 있는 동안 난 밖에서 밤낮없이 심장 이식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