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다연은 이불을 꽉 움켜쥐었고 그 끝없는 질식감이 다시 치밀어오르는 것을 느꼈다.온다연은 유강후를 두려워했지만 이 순간의 자신이 더 싫었다.이 상황에서도 온다연이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유강후가 자신에게 그렇게 폭력적이었다는 것이 아니었다.유강후가 방금 나은별과 함께 있다가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다시 자신과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유강후는 심지어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나은별의 향기를 품고 자신과 함께 있었다.온다연은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자신이 유강후의 애완동물에 불과하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온다연은 유강후의 몸에 다른 여자의 향기가 묻은 채 자신과 그런 일을 하는 것을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유강후 앞으로도 계속 이럴 것이라고 말했다.유강후가 앞으로도 나은별의 향기를 품고 자신과 함께 잘 작정이었단 말인가?유강후는 더럽다고 생각하지 않을지 몰라도 온다연은 더럽다고 생각했다!이 모든 것을 생각하니 온다연은 가슴에 난 상처가 더 크게 벌어져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깊어지는 고통을 느끼고 몸도 함께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유강후는 온다연이 떨고 있는 것을 보고 찡그렸다.한쪽 손으로 온다연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온다연, 두려워해도 소용없어, 스스로 적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네가 해야 할 일이야.” 온다연은 이불을 꽉 잡고 눈을 감았다.유강후의 마음속에서 온다연은 얼마나 비천하게 여겨졌을까. 이렇게 역겨운 일을 온다연 스스로 적응하도록 요구하다니!이 며칠간의 교류에서 온다연은 자신이 조금은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 보니 모든 것은 온다연의 착각이었다!온다연은 유강후 같은 사람이 자신에게 어떤 감정을 품을 리 없다는 것을 진작 알아채야 했다.애완동물은 애완동물의 위치를 찾아야 한다. 결코 주인의 가끔 보여주는 온정을 탐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죽어도 매장될 곳이 없을 것이다!아마도 너무 피곤해서인지 또는 체력이 너무 소진되어서
유강후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냥 반지일 뿐이야,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어.” 이권은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귀한 물건인데 어떻게 긴장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노회장님이 가주의 자리를 당신에게 넘기셨으니 이 반지는 신분의 상징입니다. 안씨 가문에서 특별히 사람을 보내서 가져온 것이니, 이제 도련님께서 시간을 내서 계승식에 참여하시기만 하면 됩니다.” 유강후는 담담한 표정을 지었고 감정을 읽을 수 없었다. “대리로 맡는 것뿐이야.” 이권은 말했다. “도련님의 어머니가 노회장님의 외동딸이시고, 도련님은 그의 유일한 손자이신데 도련님이 안씨 그룹을 계승하지 않으면 누가 계승하겠습니까? 이것은 언젠가는 있을 일이죠.” “참, 도련님의 친구인 그 북유럽 재벌 상속자님은 지금도 영운산에 있는 별장에서 머무르고 있습니다. 나은별 아가씨도 그곳에서 그분을 돌보고 있는데 가서 보실 생각이 있으신지요?” 유강후는 말했다. “그럴 필요 없어. 어젯밤에 하루 종일 함께 있었으니 충분해. 그는 나와 나은별의 공동 친구니까 나은별이 함께 있는 것으로 충분해.” 잠시 생각한 후 유강후는 다시 말했다. “영운산에 있는 집의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지 않아. 침실 디자인이 별로라서 온다연이 좋아하지 않을 거야. 나중에 디자이너를 불러서 내가 직접 얘기하겠어.” “네, 셋째 도련님.” 이권은 유강후의 지시를 모두 들은 후 상자를 들고 나가려 했다.이권이 문 쪽으로 가기 전에 유강후가 이권을 불렀다.이권은 돌아서며 말했다. “셋째 도련님?” 유강후는 창가에 서서 차가운 눈빛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유강후의 얼굴은 마치 차가운 금속 껍질로 덮인 듯한 냉혹함이 느껴졌고 목소리에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 “금방 따낸 영원시 부동산 프로젝트를 유민준에게 넘겨줘.” 영원시의 부동산?이권은 얼어붙었다.그건 방금 큰돈을 들여 힘들게 따낸 대규모 프로젝트 아니었나?이권은 갑자기 다급해졌다. “그 프로젝트는 큰 노력을 들여 겨우 따낸 거예요. 제
깊게 물어서인지 몇몇 곳은 피부가 찢어졌다. 이번에 유강후는 놀랍게도 인내심이 매우 강했고 끊임없이 온다연을 달래고 참으며 딸을 대하듯 온다연을 소중히 여겼다. 온다연은 더 이상 유강후를 물지 않았지만 말하지 않으며 소통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가끔은 하루 종일 방에 틀어박혀 있기도 했다. 유강후는 점점 더 참기 어려워졌다. 온다연이 또다시 하루 종일 방에서 나오지 않자, 유강후는 사람들에게 직접 방의 문을 떼어내라고 지시했다. 온다연은 유강후가 방문을 떼어낸 것을 보고 놀람과 분노로 감정이 폭발해 달려가 유강후의 팔을 세게 물어뜯었다. 유강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그저 온다연이 자신을 물어뜯는 것을 지켜보았다. 온다연은 온 힘을 다해 마치 그동안 받은 억울함과 괴로움을 모두 쏟아내려는 듯 유강후를 물었다. 한참 후 온다연은 피 맛을 느끼고 놀란 듯이 유강후의 팔을 재빨리 놓았다. 유강후의 하얀 셔츠에는 선명한 핏자국이 묻어있었고 온다연은 그 붉은 자국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갑자기 돌아서서 밖으로 달려 나갔다. 유강후는 눈빛이 어두워지며 손을 뻗어 온다연을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놓치고 말았다. 이권은 아주 빠르게 달렸고 잠시 후에는 마당 문까지 달려갔다. 유강후는 온다연이 마당 문을 나가려는 것을 보고 얼굴이 어두워지며 소리쳤다. “온다연, 돌아와!” 온다연은 잠시 몸을 멈춰섰지만 뒤돌아보지 않고 빠르게 밖으로 달려갔다. 이때 장화연이 옆에서 낮게 말했다. “아가씨께서 신발을 신지 않았습니다.” 유강후는 온다연이 빠르게 사라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가슴이 크게 들썩였고 눈빛은 더욱 어두워졌다. 유강후는 온다연을 가둬 놓고 싶은 생각이 점점 더 강해졌다. 온다연을 가둬야만 말을 듣고 도망가지 않을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온다연은 이미 사라졌다. 유강후가 밖으로 나갔을 때 온다연이 길모퉁이에서 사라지는 모습만 보였다. 온다연은 근처의
주인은 한숨을 쉬며 반쯤 나가던 온다연을 불러 세웠다. “아가씨, 오늘 밤에 큰 눈이 내린다고 해요. 정말 갈 곳이 없다면 나중에 쇼핑몰 뒤쪽에 작은 문이 열릴 거에요. 그 문은 상인들이 드나드는 곳인데 출입 카드를 찍으면 들어올 수 있어요.” 말을 하며 주인은 출입 카드를 온다연에게 건네주었다. “아가씨가 나쁜 사람 같지는 않네요. 오늘 밤 정말 갈 곳이 없으면 여기 와서 하룻밤 지내요. 여기 난방이 되니까 얼어 죽지는 않을 거예요.” 온다연은 아직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는 출입 카드를 꼭 쥐고는 낮게 말했다. “고마워요, 아주머니.” 주인은 온다연이 점점 더 가엾게 느껴져서 말했다. “만약 일이 없다면 여기서 일하면서 가게를 봐줄래요? 먹고 자는 건 제가 책임질게요. 다만 월급은 많지 않아요.” 온다연은 흠칫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할게요, 감사합니다!” 쇼핑몰을 나선 온다연은 근처 가게에서 흰 장미 한 송이를 샀고 묘지로 가는 마지막 버스를 탔다.눈이 꽤 많이 내리고 있었다. 온다연이 묘지에 도착했을 때 모든 곳이 눈으로 덮여 있었다.오늘은 어머니의 생신이었다. 갈 곳도 없는 온다연은 어머니를 찾아왔다. 하지만 이 시간에는 묘지의 문이 이미 닫혀 있었다.온다연은 잠시 문 앞에 서 있다가 다른 작은 길로 들어갔다.이 시간의 묘지는 아주 적막하고 조금 무서운 분위기였지만 온다연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온다연은 곧장 어머니의 묘비 앞으로 걸어가 흰 장미를 돌 위에 놓고 낮게 말했다. “엄마, 나왔어.” 바람과 눈이 거세게 몰아쳤다. 온다연은 옷을 단단히 여미고 모자를 써서 어머니의 묘비에 기대어 앉았다.예전에는 어머니 생일에 항상 주한과 함께 오곤 했었다. 주한이 죽은 후 온다연은 보통 사람이 없는 곳에서 대충 예를 올리곤 했다. 오늘 밤에 이렇게 어머니를 찾을 줄은 몰랐다.온다연은 묘비에 기대어 앉아 커다란 눈송이가 얼굴과 몸에 내려앉았지만 전혀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온다연은 낮은 목소리로
눈이 점점 더 많이 내렸다. 곧 온다연의 몸은 흰 눈으로 덮였다. 온다연은 눈을 감고 눈송이가 몸에 닿는 것을 그대로 느끼며 자신의 체온이 점점 멀어져 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은 모두 눈은 가장 깨끗한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눈 속에서 죽으면 자신도 깨끗해질 수 있을까? 온다연은 눈밭에 누워 마치 이미 생기를 잃은 사람처럼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얼마나 긴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일정한 리듬의 무거운 발소리가 멀리서부터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몇 줄기 밝은 빛도 함께 나타났다. 눈보라 속에서 유강후가 몇몇 사람들과 함께 대문 쪽에서 이쪽으로 빠르게 걸어왔다. 눈이 많이 내려서 문에서 여기까지 그리 먼 거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유강후의 머리와 어깨에는 이미 많은 눈송이가 내려앉아 있었다. 유강후는 묘비 앞에 누워 있는 사람을 보았을 때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유강후의 얼굴은 지금껏 본 적 없을 정도로 창백했고, 유강후는 지금까지 한 번도 신이나 부처를 믿었던 적이 없었지만, 지금은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자신의 소녀가 아직 따뜻하기를 기도하며. 유강후는 천천히 다가가 무릎을 꿇고 앉아 온다연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만졌다. 부드러운 얼굴에는 얇은 눈이 덮여 있었고 거의 온기가 없었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통증이 유강후를 거의 말할 수 없게 만들었다. “온다연!” 온다연이라는 이름은 유강후가 어린 시절부터 마음속에 심어졌던 씨앗이었다. 온다연이 자라면서 이 씨앗은 유강후의 마음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결국 거대한 덩굴로 자라 유강후의 마음에 깊이 박혔다. 그것을 뽑아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유강후는 온다연의 몸에 쌓인 눈을 털어내고 온다연을 품에 안아 코트 안으로 감쌌다. 따뜻한 체온이 온다연에게 약간의 생기를 되찾게 했고 온다연은 누가 왔는지 알았다. 그리고 유강후가 올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온다연은 유강후가 오든 말든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온다
조명 아래 온다연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고 체온은 무서울 정도로 낮았다. 유강후는 담요로 온다연을 꽁꽁 싸매고 차 안의 히터를 최고로 올렸다. 그리고 자신의 옷을 벗어 온다연을 자신의 몸에 밀착시켜 자신의 체온을 전해주려고 했다. 이권은 앞에서 운전하면서 가끔 백미러로 뒷좌석을 힐끗 보았다. 이권은 생각했다. 자신이 마음속에서 존경하던 셋째 도련님은 이제 신전에서 추락했다고. 언젠가 이 소녀가 도련님의 목숨을 가져갈 것이다.병원에 도착했을 때 의사는 얼굴을 찡그리며 "저체온증은 매우 무섭습니다"라는 한마디만 남기고 온다연을 응급실로 데려갔다. 유강후는 그렇게 응급실 밖에서 오랫동안 서 있었다. 온다연이 응급실에서 나온 후에야 유강후는 정신을 차렸다. 이번에 온다연은 매우 심각한 병을 앓았다. 저체온증에 심리적으로 큰 충격, 그리고 교통사고 후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몸 상태, 이 세 가지 요인이 온다연의 생명을 거의 앗아갈 뻔했다. 한 달 동안, 그리 크지 않은 개인 병원에 수천만 원대의 정밀 장비들이 새로 들어왔다. 국내외 최고의 전문가들이 가끔 전용기를 타고 와서 며칠씩 머물렀다. 점점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병원에 매우 중요한 외국 VIP가 머물고 있고 심각한 병을 앓고 있어서 한의학 치료를 받으러 왔다고 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어떤 정치인이 이곳에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안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이 가끔 이곳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심지어 셋째 도련님의 연인 나은별이 몸이 좋지 않아 셋째 도련님이 나은별을 위해 병원 전체를 매입해 요양시키고 있다는 소문까지 있었다. 그러나 소문은 결국 소문일 뿐, 경원시 사람들은 한 달 동안 이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점차 평온을 되찾았다. 소문이 서서히 가라앉을 즈음 온다연은 드디어 외출할 수 있게 되었다. 이 한 달 동안, 온다연의 병실은 거의 난방실로 개조될 뻔했다. 유강후는 온다연이 눈 속에서 추위에 떨었던 일에 대해
온다연은 깜짝 놀라 몸을 살짝 움직이며 유강후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유강후의 얼굴은 차갑고 침착했다. 유강후는 한 손으로 온다연의 두 손목을 꽉 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하였고 온다연은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유강후는 온다연을 들어 올려 드레스룸으로 데려갔다. 이번에 온다연이 아파서 병원에 있는 동안 유강후는 단 한 번도 온다연을 강제로 다루지 않았다. 가끔 가볍게 입을 맞추는 것 외에는 온다연을 애지중지하며 돌봐주었다. 가끔 온다연이 투정을 부리면 그것마저 받아주었고 어디 불편한 곳이 생겨 또다시 병이 도질까 두려워했다. 그러나 집에 돌아온 후 온다연은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어제 집에 돌아온 이후로, 유강후가 온다연을 붙잡고 강제로 입을 맞춘 게 몇 번이나 됐는지 모른다. 그 힘은 마치 온다연을 유강후의 배 속에 넣어버리려는 듯 강렬했다. 겁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젯밤 잠자리에 들었을 때도 온다연은 이상함을 느꼈다. 유강후의 몸은 너무 뜨거웠다. 만약 온다연이 계속 자는 척하지 않았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알 수 없었다. 비록 그날 밤 일어난 일에 대해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고 그 일이 그냥 넘어간 것도 아니었다. 온다연은 이 일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지만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었다. 그날 밤의 고통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온다연은 마음속 두려움이 다시 올라왔다. 유강후가 온다연을 작은 의자에 앉히자마자 온다연은 뛰어내려 도망가려고 했다. 하지만 몇 걸음도 채 뛰지 못해 유강후는 온다연의 옷깃을 잡아채 다시 끌어올렸다. 유강후는 온다연의 두려운 표정을 차갑게 응시하며 말했다.“왜 도망가려고 해?” 유가후의 눈빛은 어둡고 깊었으며 온다연이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무언가를 품고 있었다. 온다연 두피가 서늘해지면서 온몸에 은은한 통증이 다시 느껴지는 것 같았다.
입맞춤하던 중 온다연은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어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온다연은 손을 뻗어 유강후를 밀어내려 했지만 전혀 밀리지 않았고 오히려 더 가혹한 벌을 받았다. 온다연의 두 손은 뒤로 묶여 머리가 뒤로 젖혀졌고 유강후는 온다연을 마음껏 탐했다. 다행히도 유강후는 오늘 온다연을 완전히 가지려는 생각은 없었다. 잠시 입을 맞추다 유강후는 온다연을 풀어주었다. 유강후의 눈빛은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고 목소리는 몹시 쉰 상태였다. 유강후는 온다연의 입술 위를 손으로 어루만지며 말했다. “온다연, 도망치려는 생각은 소용없어. 차라리 어떻게 하면 나를 기쁘게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거야.” 온다연은 입맞춤 때문에 거의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온다연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 떨리는 가슴을 천천히 가라앉혔다. 그때 유강후는 한 벌의 옷을 선택해 온다연에게 건네주었다. “이걸 입고 나가자.” 외투는 초승달 흰색의 패딩 재킷으로, 모자에는 부드러운 흰색 털이 둘러져 있었다. 옷자락은 무릎 아래까지 덮일 정도로 길었다. 심플하면서도 간결한 디자인으로 무엇보다도 보온성이 뛰어났다. 내의는 온다연이 좋아하는 색과 스타일로 연한 파란색의 울 스커트 세트로 구성되어 있어 온다연의 피부를 우유처럼 하얗게 보이게 했다. 온다연은 옷에 대해 별다른 생각이 없었지만 밖에 나가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유강후도 캐주얼 복장으로 갈아입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자신과 함께 나가려는 것이었다. 유강후는 고급스러운 회색 코트를 입었고 그 안에는 밝은 색상의 터틀넥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상업적 엘리트의 느낌이 조금 사라지고 대신에 더욱 청렴하고 고급스러운 귀족 청년의 모습이 되었다. 가끔 유강후의 손목에서 드러나는 검은색 시계는 그에게 더 안정적이고 절제된 분위기를 더해주었다. 사실 이 복장은 그렇게 화려하지 않았지만, 유강후가 입으니 이 드레스룸 전체가 마치 패션쇼 런웨이처럼 느껴졌다. 온다연은 유강후의 잘생긴 외모를 부정한 적
지예솔이 다른 것을 물어보기도 전에 그는 계속 말했다.“걱정하지 마. 봉현수는 아직 내가 귀국 한 걸 몰라. 내가 새로운 이름과 신분을 바꿨고 또 경원시에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있어.”지예솔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여기는 어떻게 찾은 거예요?”정연석은 그녀의 부드러운 얼굴을 보고 마음속에 깊은 미련이 남아있었다.“솔아, 넌 나한테 그렇게 신뢰가 가지 않았어? 그렇게 큰일이 생겼는데 왜 나한테 연락하지 않았어?”지예솔이 말했다.“저는 원래 모든 일이 잠잠해지면 예전의 친구들에게 연락하려고 했어요. 연석 오빠가 찾아올 줄을 몰랐어요. 예전에 이미 많은 폐를 끼쳤기 때문에...”정연석은 마음이 아팠지만 얼굴에는 가벼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폐를 끼치고 말고가 어디 있어? 너도 전에 나를 도와줬던 것이 기억이 안 나?”지예솔이 말했다.“제가 도와준 것은 모두 작은 일이에요. 게다가 매번 제가 도와준 후 현수 씨가 찾아와서 괴롭혔잖아요.”정연석이 웃으면서 말했다.“맞다. 아직 너랑 말하지 못한 게 있어. 이번에 귀국하고 다시 외국에 가지 않으려고 해. 최근 나는 운산시에 머물면서 이쪽 시장 상황을 둘러보고 적절하다면 본사를 이쪽으로 옮길 생각이야.”지현우는 갑자기 몸을 돌리며 말했다.“연석이 형, 운산시에서 회사를 차릴 생각인가요?”정연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나는 수출입 무역을 하는 사람이라 2년 사이에 과일도 수출해 볼 생각이야. 내가 전에 2년 동안 조사해 봤는데 이곳은 과일 시장이 좋고 발전 전망도 커. 그런데 시장 조사를 위해 이곳에 왔을 때 우연히 너희들의 사진을 보게 될 줄을 몰랐어.”그는 핸드폰을 꺼내 사진 한 장을 찾아냈다.“이건 내 친구가 저번 주 이곳에 과일나무 보러 왔다가 우연히 찍은 거야.”사진 속에는 지예솔과 지현우가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물건을 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하늘이 어두웠지만 지예솔의 그 얼굴은 유난히 눈에 띄어 사람들의 주의를 끌 수밖에 없었다.지예솔은 안도의 숨
지예솔은 고개를 흔들었다.“아닐 거야, 단지 개발부만 왔을 거야·현수 씨는 이런 산업을 많이 하고 있으니 직접 오지는 않았을 거야.”지현우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그러면 됐어.”저녁이 될 무렵 마당 입구에 갑자기 검은색 벤츠 두 대가 와서 멈추어 섰다.이 마을에는 이런 고급 차가 거의 오지 않았다. 차가 갑자기 문 앞에 멈추는 것을 본 지현우는 깜짝 놀라서 문을 닫으려고 하자 차에서 한 사람이 내렸다.검은색 외투를 입은 그 사람은 키가 크고 잘 생겼으며 은색 테두리 안경을 쓰고 있어 매우 점잖게 보였다.지현우는 잠시 어리둥절해 있다가 곧 놀라 소리를 질렀다.“연석이 형?”알고 보니 몇 년 동안 소식이 없었던 정연석이었다.정연석은 웃으면서 말했다.“현우 키 컸네.”지현우는 달려가 정연석을 끌어안고 기뻐서 울었다.“연석이 형, 몇 년 동안 어디에 계셨어요?”정연석은 대답 대신 그의 어깨를 툭 치면서 웃었다.“곧 스무 살이 다 되어가는 애가 왜 아직도 이리 어린아이 같은 거야? 너의 누나가 또 뭐라고 하겠어.”이때 인기척 소리를 듣고 나온 지 예술은 정연석을 멍하니 바라보았다.달빛이 흐릿한 어둠 속에서 그녀는 그저 평범한 검은색 패딩을 입었지만 그 얼굴은 여전히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웠다.정연석은 그녀를 보고 눈빛이 어두워졌으나 곧 정신을 차리고 웃으면서 말했다.“여러 곳을 찾아다니다가 겨우 찾았어.”지예솔은 문 앞에 서서 조용히 그를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지현우는 기뻐하며 말했다.“밖이 추워요. 곧 비도 올 거 같으니 얼른 들어와요, 연석이 형.”정연석은 트렁크를 열고 말했다.“현우야, 와서 도와줘.”또 다른 차의 문도 열리자 두 명의 비서가 내려오더니 물건을 함께 집안으로 옮겼다.잠시 후 두 차의 물건을 모두 옮겨 거실에 가지런히 쌓았다.정연석은 다른 차를 돌려보내고 혼자 남았다.지현우는 흐뭇해서 그 물건들을 지켜보았고 그들이 필요한 좋은 물건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가볍고 부드러운
“넌 이쁘고 이런 그림도 그릴 줄도 아는데, 이렇게 좋은 여자아이가 왜 아직도 남친이 없는 거야? 아니면 이모가 남자 친구 한 명 소개 해줄게...”정신을 차린 지예솔은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이모, 그러실 필요 없어요, 전 아이를 낳을 수 없어서 결혼을 못 해요.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되죠.”그녀가 집에 돌아온 반년 동안 중매를 하러 온 사람이 많았다. 심지어 외숙모들도 그녀를 설득하면서 자신의 조카를 한번 만나보라고 했다. 그녀는 그 사람들이 더 이상 찾아오지 않게 하려고 애를 낳을 수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장미연은 아쉽다는 듯 말했다.“아이고! 넌 이쁘게 생기고 성격도 좋은데, 만약 이런 문제가 없다면 며느리로 들이고 싶었는데...”장미연은 채소 바구니에 담긴 채소를 꺼냈다.“여기엔 방금 뜯은 채소야, 무와 배추 뭐 이런 것들이 있어. 그리고 달걀도 금방 주운 거야. 밖에서 사 먹는 것보다 나으니 가져다 먹어. 너의 남매는 절약하느라 채소도 별로 사지 않는 것 같더구나.”“가련한 것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이 집안의 모든 가구도 중고 시장에서 사 온 거고…”“밖에 고기를 파는 노점상이 너희가 매번 고기를 반 근만 산다고 했어. 게다가 매일 사서 먹는 것도 아니라며, 이렇게 큰 성인들이 그것으로 먹자면 부족하지 않아?”...한동안 수다를 떨던 장미연은 끝내 떠났다.지예솔은 한참 넋이 나가 있다가 지현우에게 말했다.“현우야, 그 차가 정말 봉씨 그룹의 것인지 가서 한번 보고와.”지예솔은 스쿠터를 타고 떠나려는 지현우를 붙잡고 말했다.“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가.”지현우가 말했다.“누나, 그렇게 조심할 필요 없어. 반년도 지났어, 아마 우리를 찾는 걸 포기했을 수도 있어. 며칠 전 연예 뉴스를 봤는데 그 주연아란 연예인이 또 새로운 영화를 찍었어.”“그런 연기력으로 이렇게 큰 투자가 들어간 영화의 주인공 역을 맡은 걸 보면 현수 형이 투자한 것일 거야. 주연아는 자신이 현수 형과 죽마고우이며 약혼할 것이라
봉현수가 말했다.“그러지 않을 거야, 이번엔 반드시 철저히 조사할 거야.”비슷한 시각 남쪽의 읍내 마을에서 지예솔과 지현우가 정원에서 바삐 일하고 있었다.작은 정원이 딸린 농가는 반년의 시간을 거쳐 제대로 리모델링되었다.원래 낡았던 벽돌담은 다시 흰 페인트를 칠했고 진흙투성이였던 앞마당은 절반을 낡은 벽돌로 메웠으며 나머지 절반에는 채소를 조금 심어서 깔끔하고 생기가 넘쳐흘러 보였다.벽 쪽에 있는 몇 그루의 과일나무에는 겨울 대추와 감귤 그리고 감이 가득 달려서 열매들이 나뭇가지를 무겁게 누르고 있었다. 무거운 짐을 짊어질 필요가 없는 기분 좋은 느낌을 주었다.집안도 다시 페인트를 칠했고 집에 쓸 수 있는 나무 가구도 다시 다듬어서 칠했다. 중고 시장에서 구매해 온 오래된 가구는 지현우가 사포로 갈아서 페인트를 새로 칠했더니 꽤 괜찮아 보였다.당연히 지씨 가문의 환상적인 럭셔리와는 비교할 수 없었지만 남매 둘 다 마음이 편안하고 안심이 되었다.작은 마을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일하러 나갔고 외부인들도 적었다. 하지만 인터넷과 택배는 도시와 별 차이가 없어서 남매는 큰 불편을 느끼지 못했다.지현우는 마을의 중고 시장에서 몇백만 원을 주고 중고 승합차를 샀다. 가끔 지예솔과 함께 승합차를 타고 읍내에 생활용품을 사러 나갔다.천천히 남매는 느린 템포의 마을 생활에 적응했다.지현우는 원래 읍내에서 일자리를 찾고 싶었지만 대학 졸업장을 아직 받지 못했고 심장병도 있는 데다 봉현수에게 실마리라도 들 키울까 봐 연말까지 집에 머물면서 다시 생각해 보려고 했다.요즘 남매는 온라인 액세서리 가게에서 서서히 주문을 받고 있다. 비록 많이 벌지는 못하고 제일 큰돈도 몇만 원 밖에 안되지만 이는 남매에게 좋은 시그널이었다.지예솔은 오늘 또 다른 주문을 받았는데 재료비를 제외하고도 몇만 원 정도를 더 벌 수 있어서 매우 기뻤다. 이른 아침부터 마당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도면을 수정했다.점심쯤 정원의 문이 열리더니 이웃인 장미연이 채소 한
잠시 후 봉현수가 나왔다.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온 그는 비록 야위어 보였지만 적어도 사람같이 보였다.유강후는 테이블 위에 음식을 가리키며 말했다.“먼저 밥부터 먹어.”봉현수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먹고 싶지 않아. 지금 바로 예솔이 엄마의 산소에 가봐야 해.”유강후가 말했다.“내가 이미 사람을 보냈어. 조금 있으면 소식이 올 거야, 먼저 밥 먹고 있어. 네 모습 좀 봐봐. 찾았다고 해도 정연석이 그 자리에 있으면 주먹 하나로 너를 이길 수 있어.”봉현수는 대충 몇 입만 먹고 가려고 했다. 그러나 너무 오래 제대로 식사하지 않은 탓에 몇 걸음을 가지 못하고 체력이 달려서 곧 쓰러질 것만 같았다.유강후는 어쩔 수 없이 그를 데리고 병원으로 가서 전면 검사를 받았다.검사를 받고 보니 장기 음주한 탓에 위에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게다가 몸에 있는 상처들을 제때 치료하지 않아 일부는 염증이 생기고 헐어서 입원 치료가 필요했다.이런 말을 들을 기분이 아니었던 봉현수는 주삿바늘을 뽑자마자 가려고 했다.유강후는 그에게 경고했다.“치료를 받지 않는다면 예솔 씨를 찾는다고 해도 소용없어.”그는 사람을 시켜 거울을 가져오라 하고 봉현수를 거울 앞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지금, 이 거짓꼴을 봐봐, 어딜 봐서 사람 같아 보여?”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본 봉현수는 멍해졌다.거울 속의 남자는 말라서 모양이 빠졌고 이전에 건장했던 몸매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몇 달 전 산 셔츠는 마치 빌려서 입은 옷처럼 헐렁하게 몸에 걸쳐있었다.얼굴은 여전히 그대로였으나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고 눈언저리가 푹푹 꺼져 들어가 있었다.머리는 너무 오래 정리하지 않은 탓에 스타일이 하나도 없었다.“내가 왜 이렇게 된 거야?”봉현수의 비서인 안시현이 말했다.“대표님, 최소 30근은 빠지셨어요. 사람이 달라 보여요.”“제가 지금 바로 가서 몸에 꼭 맞는 옷을 사 올게요.”봉현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오직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보고 넋이 나가 있다가 한참 후에야
봉현수의 얼굴은 점점 더 창백해졌다.‘그 당시 나는 솔이를 다치지 않았지만, 온몸이 항상 상처투성이였어. 그 사람들이 한 짓인가? 그러나 솔이는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을까?’“하지만 나와 헤어졌다고 하여도 바로 정연석이랑 함께 있으면 안 되는 거야.”유강후는 실망스러운 듯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아직도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니, 넌 정말 구제 불능이야. 예솔 씨는 너에게 괴롭힘을 당해 죽을 지경에 이르렀고 또 아픈 동생까지 데리고 있었어. 오직 정연석만이 그녀에게 잘해줬고 도움을 줄 수 있었어. 예솔 씨가 정연석의 호감을 받아들이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 아니면 동생이 죽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어야 해?” “나는 아직도 기억에 남는 일이 있어.”“그해는 너의 생일이었어. 우리가 호텔에서 너의 생일을 축하해줬는데 중간에 주연아가 왔어. 넌 일부러 사람들 앞에서 예솔 씨를 난처하게 하면서 화나게 하려고 했어. 너는 그때 예솔 씨에게 기어 와서 술을 마시라면서 너무 지나치게 괴롭혔었지, 누가 너처럼 그렇게 사람을 괴롭혀?”봉현수는 중얼중얼 말했다.“솔이는 돈을 위해서 그랬어. 나에게 거액의 돈을 빌려달라고 했어...”유강후가 말했다.“그래서 빌려줬어?”봉현수는 머리를 잡고 고개를 저었다.유강후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그러면 네가 지금 이렇게 돼도 싼 거야. 그때 그렇게 싸운 상황에서 예솔 씨가 너에게 돈을 빌려 달라고 했던 건 너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돈이 간절히 필요했다는 거야. 네가 예솔 씨에게 돈을 주지 않았다면 분명 정연석이 돈을 빌려줬을 거야.”“네 손으로 직접 예솔 씨를 밀어낸 거지.”“현수야, 네가 지금 여기서 죽든지 말든지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아, 예솔 씨는 볼 수 없으니까.”“그 정력이면 예솔 씨를 찾으면서 그때 일을 다시 한번 조사해 봐. 오직 그때 일을 낱낱이 파헤쳐서 밝혀야 모든 오해가 풀릴 수 있고 화해할 기회도 있어. 그렇지 않으면 전혀 기회가 없어.”“아니면 찾아서 뭘 할 건데? 계속 죽을 때
봉현수는 무기력해서 말했다.“차라리 거지였으면 좋겠어. 제정신이 아니라면 마음이 지금처럼 힘들지는 않을 거니까. 나는 솔이가 지금 내가 모르는 어딘가에서 다른 남자와 함께 있다고 생각하면 세상이 끝난 것만 같아.”“함께 지옥에나 가라!”자포자기하는 봉현수의 모습을 본 유강후는 퉁명스럽게 웃으면서 샤워기를 들고 그를 향해 마구 물을 뿌렸다.“얼른 죽어버려. 예솔 씨가 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곧 돌아올 거야. 네가 남겨준 재산으로 너의 별장에서 기생오라비들과 함께 매일 같이 술을 먹고 애도 낳아서 행복한 삶을 살 거야.”봉현수는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중얼중얼 말했다.“네 말이 맞아. 이미 반년이란 시간이 흘렀어. 아마 솔이 옆에는 다른 사람이 있을 수도 있어.”유강후는 투지가 전혀 없는 봉현수의 모습을 보고 화가 나서 그를 또다시 한번 발로 찼다.“일어나!”“예솔 씨가 진짜 결혼했다면 넌 포기 할 수 있어? 만약 포기할 수 있다면 이 죽을상은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그러는 거야?”“예솔 씨 옆에 다른 사람이 생겼다면 너도 가서 다른 사람을 만나. 서로 각자 자신의 갈 길을 가면서 서로에게 미련 버려.”“안, 안돼!”봉현수는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솔이가 결혼하고 애를 낳았다고 하여도, 나는 솔이를 내 곁으로 돌아오게 할 거야.”유강후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이미 반년도 지났어. 만약 예솔 씨가 결혼했다면 너는 가정 파괴범이라도 될 생각인 거야?”봉현수의 몸은 굳어져 버렸고 눈빛은 마치 넋 나간 듯 어두웠다.“아닐 거야. 솔이는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어.”유강후는 일부러 그를 자극했다.“너한테 그렇게 학대받았는데 아직도 너를 사랑한다고? 사랑한다면 애초에 도망을 왜 갔겠어?”유강후의 말에 어리둥절해진 봉현수는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다.“아니야, 솔이는 나를 속이지 않을 거야. 절대 속이지 않겠다고 나랑 약속했어.”유강후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현관 앞에 서 있던 몇몇 사람들이 유강후를 보자마자 마치 구세주라도 만난 듯 반색하며 달려들었다.“유 대표님, 드디어 오셨네요. 봉 대표님이랑 봉씨 가문이 지금 엉망진창이에요. 대표님은 안에서 안 나오고 우리한텐 들어오지도 말라고 하니 정말 죽을 지경입니다.”유강후는 굳게 닫힌 대문을 바라보며 얼굴을 찌푸렸다.“문 열어.”그러자 집사가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열쇠가 저한테 없어요. 대표님이 직접 챙겨가셨어요. 누구든 들어오려고 하면 때려죽이겠다고 하셨어요.”유강후는 차가운 눈빛으로 쏘아붙였다.“이딴 식으로 손 놓고 있다가 진짜로 저 안에서 죽기라도 하면 책임질 거야? 당장 열쇠 따는 사람 불러와.”“네. 지금 바로 부르겠습니다!”곧이어 자물쇠를 따는 기술자가 도착했고 특수 잠금장치가 되어 있던 그 문을 여는 데 엄청난 시간이 걸렸다.잠금장치가 풀리는 순간 유강후는 힘껏 문을 발로 차서 열어젖혔다.문을 여는 동시에 코를 찌르는 역한 냄새가 밀려왔다.술 냄새, 곰팡냄새, 그리고 피비린내까지... 도저히 숨쉬기 힘들 지경이었다.유강후는 얼굴이 굳은 채 거실을 훑어보았다.거실 안은 술병과 깨진 도자기 조각으로 아수라장이었고 소파 옆 바닥엔 사람이 하나 쓰러져 있었다.죽은 건지 산 건지도 알 수 없었다.유강후는 바닥의 술병을 발로 밀어내며 다가갔다. 그리고 그 사람을 발끝으로 툭 찼다.“죽었어?”바닥에 누운 사람이 조금 움찔하더니 갑작스러운 빛에 눈이 부신 듯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거칠게 욕설을 내뱉었다.“씨X... 누가 들어오래? 다 꺼져!”그가 얼마나 엉망이 되었는지 확인한 유강후는 헛웃음을 터뜨리며 다시 발로 툭 찼다.“죽긴 뭐가 죽어. 안 죽었으면 일어나. 이 자식아.”비로소 얼굴을 들어 유강후를 확인한 봉현수는 욕을 내뱉으며 다시 바닥에 쓰러졌다.“차라리 죽는 게 나아요. 일어날 기운도 없어요.”유강후는 싸늘하게 받아쳤다.“정말 죽고 싶으면 한강 다리 밑으로 데려다줄까? 여기서 죽으면 집만 더럽혀.”몇 달 만에
유강후는 온다연의 창백한 얼굴을 보며 안타깝게 말했다.“이런 여자랑 그렇게 길게 말할 필요 없어. 온준휘 엄마에 대한 걸 알고 싶으면 그냥 바로 로운한테 넘기면 돼.”온다연은 고개를 저었다.“솔직히 사람 마음이 이렇게까지 썩을 줄은 몰랐어요. 우리 엄마 돌아가시기 전까진 겉으로는 저한테 잘해주는 척했거든요. 근데... 설마 내 출생의 비밀을 알고 있었고 내가 온준용이 동남아에서 데려온 아이란 것도 알고 있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요...” 그녀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은 듯 고개를 떨궜고 유강후에게 안기며 얼굴을 그의 코트에 묻으면서 깊은 한숨이 내쉬었다.유강후는 그녀를 부드럽게 감싸안고 외투를 열어 온다연을 안쪽으로 감쌌다. 그러고는 옆에 서 있던 비서에게 말했다.“다희랑 단오 데리고 들어가서 아버지 뵙게 해. 나는 좀 이따 들어갈게.” “네, 대표님.”아이들이 병실로 들어간 뒤 유강후는 온다연을 품에 안은 채 차 안으로 데려갔다.온다연이 겪었던 모든 고통은 이제 유강후의 가슴속 깊이 새겨진 상처이자 죄책감이 되었다.그는 수도 없이 바랐다.‘시간이 되돌려질 수 있다면 어린 시절의 다연 곁으로 돌아가 직접 품어주고 상처 입은 다연을 안아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지만 시간은 누구도 기다려주지 않았고 그는 앞으로의 시간으로 그녀를 보살펴주고 보상해 줄 수밖에 없었다.병원을 나서자마자 유강후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봉현수의 비서였다. “유 대표님, 이쪽으로 와주실 수 있을까요? 저희 대표님 상태가 심각합니다. 저희로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돼서요.”그제야 유강후는 자신이 몇 달째 봉현수를 보지 못했다는 걸 떠올렸다.“무슨 일인데요?”상대방 목소리는 다급하기 짝이 없었다.“대표님께서 자택에 자신을 가둔 지 벌써 2주째예요. 몸에 상처도 심각한데 치료도 거부하고 약도 안 드세요. 지금은 아예 일주일째 방문도 안 열어줘요. 계속 두드려도 아무 반응이 없고요...”“주소 보내.” “그... 영운산에 있는 별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