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다연은 첫날부터 유강후와 함께 지내고 있었다. 비록 온다연에게도 자신의 방이 있었지만 유강후는 온다연이 혼자 자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온다연이 가끔 혼자 잠 들어도 유강후가 밤늦게 돌아오면 안아서 데려가곤 했다. 이 때문에 온다연은 다른 사람이 있을 때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게다가 이제 진짜 주인이 왔으니 이 안방은 분명히 나은별의 것이어야 했다. 온다연은 얼굴이 창백해지며 남의 것을 훔친 듯한 강한 죄책감이 들었다. 비록 처음에는 강제로 시작된 것이었지만 나중에는 온다연도 이곳에서 사는 것에 익숙해지지 않았던가? 게다가 온다연은 이를 유강후와의 거래에 사용하기까지 했으니 더욱 부끄러웠다. 마음이 너무 괴로워진 온다연은 몸을 돌려 구월이를 안고 작은 방으로 향했다. 나은별은 얼굴빛이 불안정해지며 목소리를 높였다. “장 집사님, 유강후의 방을 왜 이렇게 보지 않는 거예요?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방이 아니잖아요? 그리고 유강후는 결벽증이 있으니 고양이가 절대 들어가면 안 돼요.”온다연은 방으로 들어가려다 이 말을 듣고 멈춰서 조용히 말했다. “나은별씨, 여기 사는 건 아저씨가 허락한 거예요. 게다가 아저씨는 제가 아저씨의 방에 들어가는 걸 금지하지도 않았어요. 그리고 구월이는 아저씨가 저에게 선물로 준 거예요.”이 말을 하고 난 후 온다연 자신도 놀랐다. 비록 나은별이 자신을 괴롭혔지만 온다연은 자신이 나은별과 남자를 공유하고 있으니 이렇게 말하는 것은 공정하다고 생각했다. 온다연은 나은별을 그렇게 날카롭게 대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사과할 생각은 없었다. 나은별이 먼저 구월이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나은별은 얼굴빛이 변했고 막 말을 하려던 순간 유강후가 들어왔다. 유강후는 검은색 코트를 입고 있었다. 몸에는 아직 녹지 않은 눈송이들이 남아 있었고 차가운 기운을 뿜으며 문앞에 나타났다. 나은별을 보자마자 유강후는 눈에 띄지 않게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유강후가 말
온다연은 깜짝 놀라 서둘러 손을 뻗어 막으려 했다. 나은별이 아직 밖에 있는데! 이미 결혼까지 했으면서 어떻게 문 안에서 자신에게 키스할 수 있단 말인가? 밖에 있는 나은별이 알게 될까 봐 걱정되지도 않나? 유강후는 온다연의 반항을 허락하지 않았다. 한 손으로 온다연이 안고 있던 고양이를 들어서 바닥에 내려놓고 다른 한손으로는 온다연의 뒤통수를 잡아 더 깊이 키스했다. 유강후의 강한 입술과 혀는 온다연의 부드러운 혀를 휘감았고 그 힘이 너무 강해 온다연은 유강후가 자신을 삼키려는 것만 같았다. 온다연은 유강후를 밀어내려 몸부림치며 말했다. “나...윽...밖에...”유강후는 온다연이 거부하지 못하게 강제로 온다연을 키스했고 한참을 그렇게 한 후에야 온다연을 놓아주었다. 둘 다 숨이 가빠졌다. 유강후는 온다연이 자신에게 키스 당해 얼굴이 붉어지고 입술도 붉고 촉촉하게 반짝이는 것을 보고 더욱 매력적으로 느꼈다. 유강후는 몸이 점점 더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며칠 동안이나 참았다! 온다연이 계속 몸이 좋지 않아 유강후는 온다연을 아껴주기만 했고 손가락 하나도 대지 않았다. 밤에 온다연을 안고 자도 그저 안고 있을 뿐이었으니 유강후에게는 참기 힘든 일이었다. 유강후의 품에 이렇게 작고 부드럽고 매력적인 존재가 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때는 괜찮았지만 이제는 그 맛에 중독되어 참으려고 해도 참을 수 없게 되었다. 유강후는 온다연의 하얀 귓불을 살짝 물며 쉰 목소리로 물었다. “다연아, 하고 싶어?”온다연은 깜짝 놀라 얼굴이 순간 빨개졌다. “아저씨... 나은별이 밖에 있는데 두렵지 않아요?”온다연은 그렇게 말하며 움직이려 했고 유강후의 무릎에서 내려가려고 했다. 하지만 온다연이 조금이라도 움직이자 유강후는 몸이 더욱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온다연의 허리를 감싸안아 침대에 눕혔다. 그러고는 몸 전체로 온다연의 위를 덮쳤다. 온다연은 유강후의 눈
나은별은 정말로 질투심에 미칠 지경이었다! 그 작은 고아를 위해 언제나 냉정하고 자제력이 강한 유강후가 이번에는 유씨 가문과도 맞서 싸웠으며 영원시를 거의 피바다로 만들 뻔했다. 나은별은 저 작은 고아가 무엇이 그렇게 대단한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가문이 좋은 것도 아니고 배경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쁘게 생겨서 불쌍한 척하는 것 외에는 특별한 점이 없었다. 나은별은 유강후가 이렇게까지 누군가를 중요하게 여기고 보호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저 작은 고아가 심미진의 조카이며 유씨 가문에서 쫓겨난 쓰레기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면 유강후가 이런 사람에게 관심을 가질 리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은별은 이 작은 고아가 유강후의 여자 친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거 너무 오래 걸리잖아,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거야? 누군가에게 당했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나은별은 약간 초조하게 말했다. 그 말을 듣자 장 집사는 문을 열려던 동작을 멈췄다. 장 집사의 목소리는 얼굴에 나타난 표정은 똑같이 차가웠다. “나은별씨, 말조심하세요. 다연 아가씨는 단지 몸이 좋지 않아 요양 중일 뿐 그런 일이 있었던 게 아닙니다.”장화연은 잠시 멈추고는 무표정하게 말을 이었다. “저희 셋째 도련님께서 나은별씨가 함부로 말하는 것을 아시면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군요!”나은별은 순간 말문이 막혔고 결국 장 집사가 그 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분한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장 집사가 들어갈 때 유강후는 온다연을 안고 창가의 소파에 앉아 조용히 달래고 있었다. 온다연은 유강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매우 피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방 한가운데의 큰 침대는 엉망이 되어 있었다. 장 집사는 아무런 표정도 없이 문을 잠그고 우유를 건넸다. “다연 아가씨, 따뜻할 때 드세요. 생선 죽도 끓였는데 오늘 점심에 갓 가져온 생선이라 매우 신선해요.”온다연은 장 집사 앞에서는 비교적 편안하게 행
온다연은 유강후의 손목을 꽉 잡고 놓지 않으며 여전히 숨이 가쁜 상태로 말했다. “그만해요, 아파요!”유강후는 고개를 숙여 약간 땀에 젖은 온다연의 관자놀이에 입맞춤하며 더 이상 낮아질 수 없을 정도로 낮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아까도 아팠어? 거짓말하지 말고 말해.”온다연은 유강후의 손을 꽉 잡고 유강후를 밀어내려고 했지만 목소리는 너무나 부드러웠다. “아파요, 정말 아파요.”하지만 온다연은 유강후를 밀어낼 수 없었다. 그 작고 부드러운 목소리는 약간의 떨림과 갈라진 음을 동반하며 유강후의 숨소리를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유강후는 온다연의 머리를 돌리고는 온다연의 입술을 다시 한번 덮었다. “거짓말이야!”아까 온다연은 분명히 적극적으로 자신을 맞이하였다. 너무나 감정이 고조되어 자신의 이름을 한 번씩 부를 때마다 거의 목숨을 빼앗길 뻔했다. 온다연은 고개를 돌리고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 “그만해요, 나은별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요.”온다연은 여전히 숨이 가쁜 상태였고 그 말을 할 때 마치 애교를 부리듯이 말했다. 전혀 거부할 힘이 없었다. 유강후는 온다연의 손가락을 입에 물고 살짝 깨물며 말했다. “상관없어...”온다연은 유강후의 행동에 몸이 부드러워지고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며 말했다. “그만해요, 아직도 아파요. 나가주세요...”그 순간 구월이가 갑자기 뛰어올라 "야옹" 하고 울며 유강후의 손을 때렸다. 유강후는 이 작은 녀석이 자기 일을 방해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기에 화가 나서 즉시 그것을 들어 올렸다. 온다연은 구월이가 유강후의 손을 또다시 할퀸 것을 보고 유강후가 다시 구월이를 가둬서 벌을 주려고 하는 줄 알고 서둘러 구월이를 빼앗으려고 했다. 그러나 유강후는 한 손으로 온다연을 들어 올려 품에 안고 다른 손으로 구월이를 고양이 상자에 넣어 잠가버렸다. 구월이는 상자에 들어가는 것을 가장 싫어했기에 안에서 계속 빙글빙글 돌며 멈추지 않고 울었다. 온다연은 마음이 아파서 구월이
온다연은 너무 놀라서 움직이지 못하고 유강후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생각했다. 손을 놓치면서 거의 유강후의 몸에서 떨어질 뻔했다. 유강후는 한 손으로 온다연의 몸을 단단히 잡고 다른 손으로 고양이 상자를 문 앞에 내려놓았다.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후야, 아직이야?”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다시 닫히고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온다연은 놀라고 두려워했지만 반응하기도 전에 다시 침대에 눕혀졌다. 그리고 유강후의 강건한 몸이 또다시 온다연의 위로 덮쳐왔다. 낮고 간절한 울음소리와 야릇한 숨소리는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얼마나 긴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마침내 모든 것이 다시 조용해졌다. 문밖의 장 집사는 다시 우유를 들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침대 시트를 들고 방을 나왔다. 나은별은 기다리다 미칠 지경이었고 마음속으로 온다연을 몇백 번이나 죽이고 싶었다.나은별은 장 집사의 손에 있는 시트를 보고 더욱 불편해졌다. “왜 또 시트를 바꾸는 거지? 고양이가 또 우유를 쏟았어?”장 집사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네”라고 대답했다. 이번에는 나은별이 어떻게든 방에 들어가 보려고 했지만 장화연이 문 앞에 서서 막아섰다. 나은별은 화가 나서 눈시울이 붉어지며 소리쳤다. “비켜!”장 집사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셋째 도련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아무도 방해하지 말라고요. 만약 들어가고 싶다면 그 결과는 나은별씨가 책임져야 합니다.”나은별은 무표정한 얼굴의 장화연을 찢어버리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장화연은 유강후가 어릴 때부터 계속 유강후를 돌봐왔고 유강후 곁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사람이며 유강후가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었다. 나은별은 장화연을 아주 싫어했지만 결혼 전까지는 장화연을 건드릴 수 없었다! “도대체 뭐 하는 거예요?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는 거 아니에요? 곧 날이 어두워지겠어요!”장 집사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건 나은별씨가 직접 셋째
유강후는 온다연을 더 꽉 안고 물었다“또 누가 있어?”온다연은 입술을 깨물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나은별씨에요. 나은별씨가 구월이를 작은 잡종 고양이라면서 털이 빠지고 엉망이라고 했어요.”온다연은 정말 화가 났다.나은별이 뭔데 우리 구월이를 깔보는 거야?나은별이 무슨 자격으로 우리 구월이를 무시해?자신을 괴롭히는 건 참을 수 있지만 구월이를 괴롭히는 건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유강후는 온다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나은별은 고양이 털에 알레르기가 있어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아. 앞으로 구월이를 나은별에게 보이지 않게 하면 말하지 못 할거야.”온다연은 여전히 기분이 좋지 않았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래도 구월이를 엉망이라고 말할 수 없어요. 구월이는 제 고양이고 주인이 있는 고양이예요. 아무도 필요 없는 고양이가 아니에요.”온다연은 갑자기 만약 나은별이 구월이를 다시 괴롭히려고 한다면 자신은 유강후를 붙잡고 놓지 않을 거라는 이상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면 나은별이 화가 나 죽을 거로 생각했다.유강후는 온다연의 생각을 전혀 알지 못하고 단지 온다연이 작은 고양이를 지키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참지 못하고 다시 온다연에게 키스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장화연이 중동에서 온 손님들이 도착했다고 메시지를 보냈다.유강후가 나갈 때 나은별은 여전히 유강후를 기다리고 있었다.유강후가 방에서 나오는 걸 보자마자 나은별은 유강후에게 다가가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다연이를 울렸다고 들었어. 아까 다연이의 고양이도 밖으로 던졌다고 들었어. 어린애라 투정이 많을테니 당신은 보호자로서 인내심을 가져야 해.”나은별은 방문을 한 번 힐끔 보았다.“당신은 남자니까 어린 여자아이를 데리고 있는 건 불편할 거야. 며칠 동안 내가 온다연을 볼까? 꼭 잘 훈련해 줄게. 어떻게 생각해?”유강후는 나은별을 피하며 무표정으로 말했다.“필요 없어. 온다연은 나와 함께 있으면 돼.”나은별의 눈은 갑자기 붉어졌고 매우 억울해하며 말했다.“강후야,
유강후의 사진?온다연은 태블릿을 잡고 몇 초간 망설이다가 결국 들어갔다.그 안에는 정말 전부 유강후의 사진이었다.온다연은 사진을 넘기다가 유강후의 어린 시절 사진을 발견했다.그 사진은 온다연이 유강후를 처음 봤을 때와 똑같았다.매우 수려하고 고고하며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흰옷과 검은 바지를 입은 모습은 온다연의 메마른 어린 시절을 빛나게 해주었다.하지만 모든 사진에는 항상 나은별이 함께 있었다.두 사람은 정말로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소꿉친구였던 게 분명했다.몇 장을 더 넘기다가 갑자기 유강후와 나은별이 함께 교회에 있는 사진이 나왔다.사진 속에서 유강후는 검은 정장을 입고 비범한 기운을 뿜어내며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나은별의 손을 잡고 있었다. 왕자와 공주가 함께 있는 것처럼 너무나 잘 어울렸다.온다연의 가슴은 강하게 부딪혀 머릿속이 윙윙거리기 시작했다.진짜네!정말로 결혼했다!온다연은 무의식적으로 사진이 촬영된 시간을 확인했다. 2년 전에 찍은 것이었다.그리고 몇 장 더 넘겨보니 여전히 유강후와 나은별의 사진이 있었다. 두 사람의 옷차림을 보아하니 약혼식이나 결혼식에서 찍은 것 같았다.교회에서 찍힌 사진이었고 매우 정당하게 찍힌 것이었다!자기야말로 진짜 도둑이었다!온다연은 마치 전기 충격을 받은 듯 떨며 앨범에서 빠져나왔다. 하지만 태블릿은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온다연은 그 태블릿을 바라보며 얼굴이 창백해졌다. 곧 손바닥과 이마에 미세한 땀방울이 맺혔다.이때 장화연이 구월이를 안고 들어왔다.온다연이 소파 옆에 멍하니 서 있는 것을 본 장화연은 바닥에 떨어진 태블릿을 보고 아무렇지 않게 태블릿을 집어 들어 확인했다. 특별한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장화연은 태블릿을 나은별의 가방에 다시 넣어두었다.장화연은 구월이를 온다연 앞에 내밀며 말했다.“아까 구월이를 벌레 제거하러 잠시 보내서 집안에 없었습니다. 셋째 도련님께서는 지금 중동의 손님들과 계약을 맺고 있습니다. 곧 끝날 테니 다연씨는 저녁 식사 준비를 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구월이가 갑자기 옆의 캐비닛에서 뛰어올라 유강후의 몸에 착 붙었다.유강후는 재빨리 구월이를 자기 몸에서 떼어내었다.이 작은 녀석은 유강후가 몇 번 작은 검은 상자에 넣어버린 이후로 자주 이렇게 기습적으로 공격해 왔다.유강후는 이 작은 녀석이 온다연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예쁘고 귀여우며 부드럽고 말랑해서 보통은 그렇게 봐주는 편이었다.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었다.유강후는 구월이를 붙잡고 차가운 얼굴로 나무라며 말했다.“또 작은 상자에 들어가고 싶어?”구월이는 붙잡혀서 네 발을 헝클어뜨리고 ‘야옹’ 하며 몇 번 울었다. 애교를 부리는 듯한 모습이었다.유강후는 연민이 느껴져서 애정이 어린 손길로 구월이의 작은 머리를 톡톡 쳐주며 캐비닛 위에 던졌다.“혼자 놀아.”구월이는 유강후에게 몇 번 소리를 질렀다가 유강후가 무시하자 나은별을 향했다.나은별을 보자마자 구월이는 즉시 등을 굽히고 털을 세우며 적대감을 드러냈다.나은별의 눈에는 혐오감이 잠깐 비쳤지만 얼굴에는 여전히 온화한 미소가 담겨 있었다.“작은 녀석이 정말 귀엽네. 내가 고양이 털 알레르기가 없었으면 하나 기르고 싶을 정도야.”나은별은 유강후의 뒷모습을 보더니 장화연의 모습도 훑어보았다.두 사람은 장화연에게 등을 돌리고 있었다.나은별은 구월이를 경멸하는 눈으로 쳐다보더니 갑자기 두 손가락으로 구월이를 들어 자기 어깨 위에 올려놓았다.그리고 갑자기 소리쳤다.“잡지 마!”나은별은 갑자기 얼굴이 창백해지고 큰 소리로 비명을 질렀다.“유강후, 이 녀석이 나를 잡아! 빨리 내려줘!”유강후가 돌아서서 보니 구월이가 나은별의 어깨에 매달려 나은별을 긁어대고 있었다.유강후는 얼굴을 찡그리며 앞으로 나가려 했으나 나은별이 갑자기 구월이를 자기 몸에서 떼어내어 바닥에 세게 던졌다.구월이는 너무 작아서 이런 충격을 견딜 수 없었고 곧 비명을 질렀다.유강후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으며 신속히 구월이를 주워 올리려 했다.나은별은 마치 놀란 것처럼 비틀거리며 유강후에게 달려갔
지예솔이 다른 것을 물어보기도 전에 그는 계속 말했다.“걱정하지 마. 봉현수는 아직 내가 귀국 한 걸 몰라. 내가 새로운 이름과 신분을 바꿨고 또 경원시에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있어.”지예솔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여기는 어떻게 찾은 거예요?”정연석은 그녀의 부드러운 얼굴을 보고 마음속에 깊은 미련이 남아있었다.“솔아, 넌 나한테 그렇게 신뢰가 가지 않았어? 그렇게 큰일이 생겼는데 왜 나한테 연락하지 않았어?”지예솔이 말했다.“저는 원래 모든 일이 잠잠해지면 예전의 친구들에게 연락하려고 했어요. 연석 오빠가 찾아올 줄을 몰랐어요. 예전에 이미 많은 폐를 끼쳤기 때문에...”정연석은 마음이 아팠지만 얼굴에는 가벼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폐를 끼치고 말고가 어디 있어? 너도 전에 나를 도와줬던 것이 기억이 안 나?”지예솔이 말했다.“제가 도와준 것은 모두 작은 일이에요. 게다가 매번 제가 도와준 후 현수 씨가 찾아와서 괴롭혔잖아요.”정연석이 웃으면서 말했다.“맞다. 아직 너랑 말하지 못한 게 있어. 이번에 귀국하고 다시 외국에 가지 않으려고 해. 최근 나는 운산시에 머물면서 이쪽 시장 상황을 둘러보고 적절하다면 본사를 이쪽으로 옮길 생각이야.”지현우는 갑자기 몸을 돌리며 말했다.“연석이 형, 운산시에서 회사를 차릴 생각인가요?”정연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나는 수출입 무역을 하는 사람이라 2년 사이에 과일도 수출해 볼 생각이야. 내가 전에 2년 동안 조사해 봤는데 이곳은 과일 시장이 좋고 발전 전망도 커. 그런데 시장 조사를 위해 이곳에 왔을 때 우연히 너희들의 사진을 보게 될 줄을 몰랐어.”그는 핸드폰을 꺼내 사진 한 장을 찾아냈다.“이건 내 친구가 저번 주 이곳에 과일나무 보러 왔다가 우연히 찍은 거야.”사진 속에는 지예솔과 지현우가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물건을 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하늘이 어두웠지만 지예솔의 그 얼굴은 유난히 눈에 띄어 사람들의 주의를 끌 수밖에 없었다.지예솔은 안도의 숨
지예솔은 고개를 흔들었다.“아닐 거야, 단지 개발부만 왔을 거야·현수 씨는 이런 산업을 많이 하고 있으니 직접 오지는 않았을 거야.”지현우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그러면 됐어.”저녁이 될 무렵 마당 입구에 갑자기 검은색 벤츠 두 대가 와서 멈추어 섰다.이 마을에는 이런 고급 차가 거의 오지 않았다. 차가 갑자기 문 앞에 멈추는 것을 본 지현우는 깜짝 놀라서 문을 닫으려고 하자 차에서 한 사람이 내렸다.검은색 외투를 입은 그 사람은 키가 크고 잘 생겼으며 은색 테두리 안경을 쓰고 있어 매우 점잖게 보였다.지현우는 잠시 어리둥절해 있다가 곧 놀라 소리를 질렀다.“연석이 형?”알고 보니 몇 년 동안 소식이 없었던 정연석이었다.정연석은 웃으면서 말했다.“현우 키 컸네.”지현우는 달려가 정연석을 끌어안고 기뻐서 울었다.“연석이 형, 몇 년 동안 어디에 계셨어요?”정연석은 대답 대신 그의 어깨를 툭 치면서 웃었다.“곧 스무 살이 다 되어가는 애가 왜 아직도 이리 어린아이 같은 거야? 너의 누나가 또 뭐라고 하겠어.”이때 인기척 소리를 듣고 나온 지 예술은 정연석을 멍하니 바라보았다.달빛이 흐릿한 어둠 속에서 그녀는 그저 평범한 검은색 패딩을 입었지만 그 얼굴은 여전히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웠다.정연석은 그녀를 보고 눈빛이 어두워졌으나 곧 정신을 차리고 웃으면서 말했다.“여러 곳을 찾아다니다가 겨우 찾았어.”지예솔은 문 앞에 서서 조용히 그를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지현우는 기뻐하며 말했다.“밖이 추워요. 곧 비도 올 거 같으니 얼른 들어와요, 연석이 형.”정연석은 트렁크를 열고 말했다.“현우야, 와서 도와줘.”또 다른 차의 문도 열리자 두 명의 비서가 내려오더니 물건을 함께 집안으로 옮겼다.잠시 후 두 차의 물건을 모두 옮겨 거실에 가지런히 쌓았다.정연석은 다른 차를 돌려보내고 혼자 남았다.지현우는 흐뭇해서 그 물건들을 지켜보았고 그들이 필요한 좋은 물건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가볍고 부드러운
“넌 이쁘고 이런 그림도 그릴 줄도 아는데, 이렇게 좋은 여자아이가 왜 아직도 남친이 없는 거야? 아니면 이모가 남자 친구 한 명 소개 해줄게...”정신을 차린 지예솔은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이모, 그러실 필요 없어요, 전 아이를 낳을 수 없어서 결혼을 못 해요.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되죠.”그녀가 집에 돌아온 반년 동안 중매를 하러 온 사람이 많았다. 심지어 외숙모들도 그녀를 설득하면서 자신의 조카를 한번 만나보라고 했다. 그녀는 그 사람들이 더 이상 찾아오지 않게 하려고 애를 낳을 수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장미연은 아쉽다는 듯 말했다.“아이고! 넌 이쁘게 생기고 성격도 좋은데, 만약 이런 문제가 없다면 며느리로 들이고 싶었는데...”장미연은 채소 바구니에 담긴 채소를 꺼냈다.“여기엔 방금 뜯은 채소야, 무와 배추 뭐 이런 것들이 있어. 그리고 달걀도 금방 주운 거야. 밖에서 사 먹는 것보다 나으니 가져다 먹어. 너의 남매는 절약하느라 채소도 별로 사지 않는 것 같더구나.”“가련한 것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이 집안의 모든 가구도 중고 시장에서 사 온 거고…”“밖에 고기를 파는 노점상이 너희가 매번 고기를 반 근만 산다고 했어. 게다가 매일 사서 먹는 것도 아니라며, 이렇게 큰 성인들이 그것으로 먹자면 부족하지 않아?”...한동안 수다를 떨던 장미연은 끝내 떠났다.지예솔은 한참 넋이 나가 있다가 지현우에게 말했다.“현우야, 그 차가 정말 봉씨 그룹의 것인지 가서 한번 보고와.”지예솔은 스쿠터를 타고 떠나려는 지현우를 붙잡고 말했다.“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가.”지현우가 말했다.“누나, 그렇게 조심할 필요 없어. 반년도 지났어, 아마 우리를 찾는 걸 포기했을 수도 있어. 며칠 전 연예 뉴스를 봤는데 그 주연아란 연예인이 또 새로운 영화를 찍었어.”“그런 연기력으로 이렇게 큰 투자가 들어간 영화의 주인공 역을 맡은 걸 보면 현수 형이 투자한 것일 거야. 주연아는 자신이 현수 형과 죽마고우이며 약혼할 것이라
봉현수가 말했다.“그러지 않을 거야, 이번엔 반드시 철저히 조사할 거야.”비슷한 시각 남쪽의 읍내 마을에서 지예솔과 지현우가 정원에서 바삐 일하고 있었다.작은 정원이 딸린 농가는 반년의 시간을 거쳐 제대로 리모델링되었다.원래 낡았던 벽돌담은 다시 흰 페인트를 칠했고 진흙투성이였던 앞마당은 절반을 낡은 벽돌로 메웠으며 나머지 절반에는 채소를 조금 심어서 깔끔하고 생기가 넘쳐흘러 보였다.벽 쪽에 있는 몇 그루의 과일나무에는 겨울 대추와 감귤 그리고 감이 가득 달려서 열매들이 나뭇가지를 무겁게 누르고 있었다. 무거운 짐을 짊어질 필요가 없는 기분 좋은 느낌을 주었다.집안도 다시 페인트를 칠했고 집에 쓸 수 있는 나무 가구도 다시 다듬어서 칠했다. 중고 시장에서 구매해 온 오래된 가구는 지현우가 사포로 갈아서 페인트를 새로 칠했더니 꽤 괜찮아 보였다.당연히 지씨 가문의 환상적인 럭셔리와는 비교할 수 없었지만 남매 둘 다 마음이 편안하고 안심이 되었다.작은 마을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일하러 나갔고 외부인들도 적었다. 하지만 인터넷과 택배는 도시와 별 차이가 없어서 남매는 큰 불편을 느끼지 못했다.지현우는 마을의 중고 시장에서 몇백만 원을 주고 중고 승합차를 샀다. 가끔 지예솔과 함께 승합차를 타고 읍내에 생활용품을 사러 나갔다.천천히 남매는 느린 템포의 마을 생활에 적응했다.지현우는 원래 읍내에서 일자리를 찾고 싶었지만 대학 졸업장을 아직 받지 못했고 심장병도 있는 데다 봉현수에게 실마리라도 들 키울까 봐 연말까지 집에 머물면서 다시 생각해 보려고 했다.요즘 남매는 온라인 액세서리 가게에서 서서히 주문을 받고 있다. 비록 많이 벌지는 못하고 제일 큰돈도 몇만 원 밖에 안되지만 이는 남매에게 좋은 시그널이었다.지예솔은 오늘 또 다른 주문을 받았는데 재료비를 제외하고도 몇만 원 정도를 더 벌 수 있어서 매우 기뻤다. 이른 아침부터 마당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도면을 수정했다.점심쯤 정원의 문이 열리더니 이웃인 장미연이 채소 한
잠시 후 봉현수가 나왔다.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온 그는 비록 야위어 보였지만 적어도 사람같이 보였다.유강후는 테이블 위에 음식을 가리키며 말했다.“먼저 밥부터 먹어.”봉현수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먹고 싶지 않아. 지금 바로 예솔이 엄마의 산소에 가봐야 해.”유강후가 말했다.“내가 이미 사람을 보냈어. 조금 있으면 소식이 올 거야, 먼저 밥 먹고 있어. 네 모습 좀 봐봐. 찾았다고 해도 정연석이 그 자리에 있으면 주먹 하나로 너를 이길 수 있어.”봉현수는 대충 몇 입만 먹고 가려고 했다. 그러나 너무 오래 제대로 식사하지 않은 탓에 몇 걸음을 가지 못하고 체력이 달려서 곧 쓰러질 것만 같았다.유강후는 어쩔 수 없이 그를 데리고 병원으로 가서 전면 검사를 받았다.검사를 받고 보니 장기 음주한 탓에 위에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게다가 몸에 있는 상처들을 제때 치료하지 않아 일부는 염증이 생기고 헐어서 입원 치료가 필요했다.이런 말을 들을 기분이 아니었던 봉현수는 주삿바늘을 뽑자마자 가려고 했다.유강후는 그에게 경고했다.“치료를 받지 않는다면 예솔 씨를 찾는다고 해도 소용없어.”그는 사람을 시켜 거울을 가져오라 하고 봉현수를 거울 앞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지금, 이 거짓꼴을 봐봐, 어딜 봐서 사람 같아 보여?”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본 봉현수는 멍해졌다.거울 속의 남자는 말라서 모양이 빠졌고 이전에 건장했던 몸매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몇 달 전 산 셔츠는 마치 빌려서 입은 옷처럼 헐렁하게 몸에 걸쳐있었다.얼굴은 여전히 그대로였으나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고 눈언저리가 푹푹 꺼져 들어가 있었다.머리는 너무 오래 정리하지 않은 탓에 스타일이 하나도 없었다.“내가 왜 이렇게 된 거야?”봉현수의 비서인 안시현이 말했다.“대표님, 최소 30근은 빠지셨어요. 사람이 달라 보여요.”“제가 지금 바로 가서 몸에 꼭 맞는 옷을 사 올게요.”봉현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오직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보고 넋이 나가 있다가 한참 후에야
봉현수의 얼굴은 점점 더 창백해졌다.‘그 당시 나는 솔이를 다치지 않았지만, 온몸이 항상 상처투성이였어. 그 사람들이 한 짓인가? 그러나 솔이는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을까?’“하지만 나와 헤어졌다고 하여도 바로 정연석이랑 함께 있으면 안 되는 거야.”유강후는 실망스러운 듯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아직도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니, 넌 정말 구제 불능이야. 예솔 씨는 너에게 괴롭힘을 당해 죽을 지경에 이르렀고 또 아픈 동생까지 데리고 있었어. 오직 정연석만이 그녀에게 잘해줬고 도움을 줄 수 있었어. 예솔 씨가 정연석의 호감을 받아들이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 아니면 동생이 죽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어야 해?” “나는 아직도 기억에 남는 일이 있어.”“그해는 너의 생일이었어. 우리가 호텔에서 너의 생일을 축하해줬는데 중간에 주연아가 왔어. 넌 일부러 사람들 앞에서 예솔 씨를 난처하게 하면서 화나게 하려고 했어. 너는 그때 예솔 씨에게 기어 와서 술을 마시라면서 너무 지나치게 괴롭혔었지, 누가 너처럼 그렇게 사람을 괴롭혀?”봉현수는 중얼중얼 말했다.“솔이는 돈을 위해서 그랬어. 나에게 거액의 돈을 빌려달라고 했어...”유강후가 말했다.“그래서 빌려줬어?”봉현수는 머리를 잡고 고개를 저었다.유강후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그러면 네가 지금 이렇게 돼도 싼 거야. 그때 그렇게 싸운 상황에서 예솔 씨가 너에게 돈을 빌려 달라고 했던 건 너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돈이 간절히 필요했다는 거야. 네가 예솔 씨에게 돈을 주지 않았다면 분명 정연석이 돈을 빌려줬을 거야.”“네 손으로 직접 예솔 씨를 밀어낸 거지.”“현수야, 네가 지금 여기서 죽든지 말든지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아, 예솔 씨는 볼 수 없으니까.”“그 정력이면 예솔 씨를 찾으면서 그때 일을 다시 한번 조사해 봐. 오직 그때 일을 낱낱이 파헤쳐서 밝혀야 모든 오해가 풀릴 수 있고 화해할 기회도 있어. 그렇지 않으면 전혀 기회가 없어.”“아니면 찾아서 뭘 할 건데? 계속 죽을 때
봉현수는 무기력해서 말했다.“차라리 거지였으면 좋겠어. 제정신이 아니라면 마음이 지금처럼 힘들지는 않을 거니까. 나는 솔이가 지금 내가 모르는 어딘가에서 다른 남자와 함께 있다고 생각하면 세상이 끝난 것만 같아.”“함께 지옥에나 가라!”자포자기하는 봉현수의 모습을 본 유강후는 퉁명스럽게 웃으면서 샤워기를 들고 그를 향해 마구 물을 뿌렸다.“얼른 죽어버려. 예솔 씨가 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곧 돌아올 거야. 네가 남겨준 재산으로 너의 별장에서 기생오라비들과 함께 매일 같이 술을 먹고 애도 낳아서 행복한 삶을 살 거야.”봉현수는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중얼중얼 말했다.“네 말이 맞아. 이미 반년이란 시간이 흘렀어. 아마 솔이 옆에는 다른 사람이 있을 수도 있어.”유강후는 투지가 전혀 없는 봉현수의 모습을 보고 화가 나서 그를 또다시 한번 발로 찼다.“일어나!”“예솔 씨가 진짜 결혼했다면 넌 포기 할 수 있어? 만약 포기할 수 있다면 이 죽을상은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그러는 거야?”“예솔 씨 옆에 다른 사람이 생겼다면 너도 가서 다른 사람을 만나. 서로 각자 자신의 갈 길을 가면서 서로에게 미련 버려.”“안, 안돼!”봉현수는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솔이가 결혼하고 애를 낳았다고 하여도, 나는 솔이를 내 곁으로 돌아오게 할 거야.”유강후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이미 반년도 지났어. 만약 예솔 씨가 결혼했다면 너는 가정 파괴범이라도 될 생각인 거야?”봉현수의 몸은 굳어져 버렸고 눈빛은 마치 넋 나간 듯 어두웠다.“아닐 거야. 솔이는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어.”유강후는 일부러 그를 자극했다.“너한테 그렇게 학대받았는데 아직도 너를 사랑한다고? 사랑한다면 애초에 도망을 왜 갔겠어?”유강후의 말에 어리둥절해진 봉현수는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다.“아니야, 솔이는 나를 속이지 않을 거야. 절대 속이지 않겠다고 나랑 약속했어.”유강후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현관 앞에 서 있던 몇몇 사람들이 유강후를 보자마자 마치 구세주라도 만난 듯 반색하며 달려들었다.“유 대표님, 드디어 오셨네요. 봉 대표님이랑 봉씨 가문이 지금 엉망진창이에요. 대표님은 안에서 안 나오고 우리한텐 들어오지도 말라고 하니 정말 죽을 지경입니다.”유강후는 굳게 닫힌 대문을 바라보며 얼굴을 찌푸렸다.“문 열어.”그러자 집사가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열쇠가 저한테 없어요. 대표님이 직접 챙겨가셨어요. 누구든 들어오려고 하면 때려죽이겠다고 하셨어요.”유강후는 차가운 눈빛으로 쏘아붙였다.“이딴 식으로 손 놓고 있다가 진짜로 저 안에서 죽기라도 하면 책임질 거야? 당장 열쇠 따는 사람 불러와.”“네. 지금 바로 부르겠습니다!”곧이어 자물쇠를 따는 기술자가 도착했고 특수 잠금장치가 되어 있던 그 문을 여는 데 엄청난 시간이 걸렸다.잠금장치가 풀리는 순간 유강후는 힘껏 문을 발로 차서 열어젖혔다.문을 여는 동시에 코를 찌르는 역한 냄새가 밀려왔다.술 냄새, 곰팡냄새, 그리고 피비린내까지... 도저히 숨쉬기 힘들 지경이었다.유강후는 얼굴이 굳은 채 거실을 훑어보았다.거실 안은 술병과 깨진 도자기 조각으로 아수라장이었고 소파 옆 바닥엔 사람이 하나 쓰러져 있었다.죽은 건지 산 건지도 알 수 없었다.유강후는 바닥의 술병을 발로 밀어내며 다가갔다. 그리고 그 사람을 발끝으로 툭 찼다.“죽었어?”바닥에 누운 사람이 조금 움찔하더니 갑작스러운 빛에 눈이 부신 듯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거칠게 욕설을 내뱉었다.“씨X... 누가 들어오래? 다 꺼져!”그가 얼마나 엉망이 되었는지 확인한 유강후는 헛웃음을 터뜨리며 다시 발로 툭 찼다.“죽긴 뭐가 죽어. 안 죽었으면 일어나. 이 자식아.”비로소 얼굴을 들어 유강후를 확인한 봉현수는 욕을 내뱉으며 다시 바닥에 쓰러졌다.“차라리 죽는 게 나아요. 일어날 기운도 없어요.”유강후는 싸늘하게 받아쳤다.“정말 죽고 싶으면 한강 다리 밑으로 데려다줄까? 여기서 죽으면 집만 더럽혀.”몇 달 만에
유강후는 온다연의 창백한 얼굴을 보며 안타깝게 말했다.“이런 여자랑 그렇게 길게 말할 필요 없어. 온준휘 엄마에 대한 걸 알고 싶으면 그냥 바로 로운한테 넘기면 돼.”온다연은 고개를 저었다.“솔직히 사람 마음이 이렇게까지 썩을 줄은 몰랐어요. 우리 엄마 돌아가시기 전까진 겉으로는 저한테 잘해주는 척했거든요. 근데... 설마 내 출생의 비밀을 알고 있었고 내가 온준용이 동남아에서 데려온 아이란 것도 알고 있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요...” 그녀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은 듯 고개를 떨궜고 유강후에게 안기며 얼굴을 그의 코트에 묻으면서 깊은 한숨이 내쉬었다.유강후는 그녀를 부드럽게 감싸안고 외투를 열어 온다연을 안쪽으로 감쌌다. 그러고는 옆에 서 있던 비서에게 말했다.“다희랑 단오 데리고 들어가서 아버지 뵙게 해. 나는 좀 이따 들어갈게.” “네, 대표님.”아이들이 병실로 들어간 뒤 유강후는 온다연을 품에 안은 채 차 안으로 데려갔다.온다연이 겪었던 모든 고통은 이제 유강후의 가슴속 깊이 새겨진 상처이자 죄책감이 되었다.그는 수도 없이 바랐다.‘시간이 되돌려질 수 있다면 어린 시절의 다연 곁으로 돌아가 직접 품어주고 상처 입은 다연을 안아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지만 시간은 누구도 기다려주지 않았고 그는 앞으로의 시간으로 그녀를 보살펴주고 보상해 줄 수밖에 없었다.병원을 나서자마자 유강후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봉현수의 비서였다. “유 대표님, 이쪽으로 와주실 수 있을까요? 저희 대표님 상태가 심각합니다. 저희로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돼서요.”그제야 유강후는 자신이 몇 달째 봉현수를 보지 못했다는 걸 떠올렸다.“무슨 일인데요?”상대방 목소리는 다급하기 짝이 없었다.“대표님께서 자택에 자신을 가둔 지 벌써 2주째예요. 몸에 상처도 심각한데 치료도 거부하고 약도 안 드세요. 지금은 아예 일주일째 방문도 안 열어줘요. 계속 두드려도 아무 반응이 없고요...”“주소 보내.” “그... 영운산에 있는 별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