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두 달 동안 정성껏 돌본 결과 온다연의 상태는 드디어 호전되었다. 홀쭉했던 얼굴에도 살이 붙었고, 입술 색은 예전처럼 돌아가서 부드럽고 사랑스러워 보였다. 그 모습이 유강후에게 얼마나 유혹적이었는지 모른다.온다연은 그의 손길에 부쩍 익숙해졌다.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차라리 따르기로 한 모양이다. 그녀는 부드럽고 하얀 손을 한데 모으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삼촌, 저 이제 먹고 싶은 거 막 먹어도 돼요?”유강후는 그녀의 턱을 들어 올리며 한참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녀의 상태에 만족한 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가끔은 먹어도 돼. 근데 기본적으로는 영양사의 식단을 따라.”“네...”온다연은 약간 실망한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습관적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반짝이는 입술은 약간의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유강후는 그녀의 입술에 시선을 멈췄다. 그리고 점점 어두워지는 눈빛으로 그녀를 안아 들고 방 안에 들어갔다.침대에 닿기도 전에 그는 고개를 숙여 온다연의 입술을 물고 반복적으로 문질렀다. 곧 그의 손이 옷속으로 들어갔고, 온다연은 반사적으로 거부감을 느끼며 몸을 움츠렸다.그녀는 도망치거나 강하게 반항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자발적으로 맞춰주는 것도 불가능했다. 유강후의 기세는 무서울 정도로 강압적이었다. 온다연은 그를 따르는 것 외의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의 손은 부드러운 피부를 타고 천천히 올라갔다.흉터가 남은 부위를 지나면서 그의 손이 잠시 멈췄다. 그는 흉터의 윤곽을 천천히 매만졌다. 온다연은 몸을 굳히며 그의 손을 잡았다.“그만해요. 보기 흉하잖아요.”유강후는 한 손으로 그녀의 손을 잡고, 다른 손으로 그녀의 흉터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러고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전혀 흉하지 않아. 나중에 하나도 안 보이게 지워줄게.”말을 마친 그는 다시 입술을 맞췄다. 온다연은 머리를 젖힌 채 그저 견뎌내야 했다. 그의 손은 점점 더 위로 올라가더니 그녀의 가슴을 감싸려고 했다
온다연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몸을 일으킨 유강후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조금 전의 기세는 사라졌고 평소의 차가운 눈빛이 다시 돌아왔다.“서쪽 교외에 온천 호텔이 생겼대. 이따가 출발해서 갈 거야.”침대에 엎드린 자세로 있던 온다연은 그를 쳐다보지 못했다. 그녀의 시야에는 그저 그의 정장 바지만 보였다. 한 번 스쳐본 것만으로도 조금 전의 열기가 떠올라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유강후는 그녀를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귀 끝이 붉어진 것을 보고는 부드러운 표정이 잠시 스쳤다.“지금 갈까?”온다연의 몸은 약간 뜨거워졌다. 그의 품에 얼굴을 파묻은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부끄러운 생각을 들킬까 봐서 말이다.그녀는 그의 셔츠를 꼭 잡고 차까지 안겨 갔다. 두 대의 벤틀리가 앞뒤로 천천히 병원을 빠져나와 차로 가득한 도로에 합류해서 평온하게 달렸다.온다연은 창밖의 번화한 도시를 묵묵히 바라봤다. 너무 오랜만에 나와서 그런지 빌딩만 봐도 새롭게 느껴졌다.가장 번화한 거리에 들어섰을 때, 앞자리에 있던 이권이 말했다.“앞에 있는 건물이 바로 미래 그룹 본사예요. 대단하죠?”창문을 통해 온다연은 커다란 빌딩들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적어도 20개 이상의 건물이 있었고, 가장 앞에 있는 건물이 제일 웅장했다. 그 건물의 위에는 금빛으로 빛나는 ‘미래 그룹’ 네 글자가 반짝이고 있었다.미래 그룹의 건물은 파란색을 기본으로 사용했다. 원래는 무겁고 답답한 느낌을 주는 색깔이 대규모로 연결된 모습은 너무나도 웅장해서 존경심이 생겨날 정도였다.온다연은 한동안 넋을 잃었다. 왠지 모르게 이 건물들이 유강후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숨을 쉴 수 없게 만드는 강력한 힘이었다.이때 이권이 약간 자랑스러운 말투로 말을 이었다.“엄청 크죠? 미래 그룹은 대륙 최고 수준의 대기업이에요. 하지만 도련님에게는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에요. 여러 나라에 대기업을 소유하고 있으니까요.”이권 말이 많다고 생각한 듯, 유강후는 미간
유강후는 이를 악문 채 그 네 글자를 묵묵히 바라봤다. 예리한 눈빛은 당장이라도 공기를 얼릴 것 같았다.온다연의 공포를 느낀 듯 그는 힘껏 그녀의 손을 잡았다. 약간 아플 정도였지만 그는 신경 쓸 겨를 없이 말했다.“가까이 와서 앉아.”온다연은 머리를 숙였다. 목소리는 겁에 질린 듯 덜덜 떨렸다.“더 빨리 가면 안 돼요? 저 약간 힘들어요.”이권이 엑셀을 밟고 무한테크의 건물은 금방 뒤로 사라졌다. 짧은 몇십 초 사이에 온다연의 손은 식은땀으로 흥건해졌다.유강후는 그녀를 끌어당겨 자기 몸에 기대도록 했다. 시원한 나무향이 안겨 오자 그녀는 진정이 되는 듯 눈을 감았다.잠시 후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유강후가 입을 열었다.“며칠만 참아. 내가 다 해결해 줄게.”목소리는 한결같이 차가웠다. 그의 말뜻도 온다연이 알기에는 어려웠다.하지만 이권은 알았다. 최근 며칠 사이에 일어난 일을 떠올리며 그는 묵묵히 감탄했다.차는 금방 온천 호텔 앞에 멈춰 섰다. 커다란 호텔은 고풍스러운 스타일로 인테리어 했다. 주변에는 자그마한 대나무숲과 호수도 있었는데, 고즈넉하니 힐링 하기 딱 좋아 보였다.차가 멈춰 서기 바쁘게 호텔 직원이 환한 얼굴로 다가왔다.“오셨습니까, 도련님. 룸은 이미 준비되어 있습니다. 사용하시기 편하게 따듯한 온천과 간식 세트도 준비해 놓았습니다. 따로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유강후가 대답하기도 전에 직원이 또 말을 이었다.“이 마당은 도련님을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다른 사람은 사용한 적 없으니 편하게 지내세요. 그리고 주방에 셰프도 대기하고 있어서 만족스럽지 않은 점이 있으면 저한테 말씀하시면 됩니다.”유강후는 머리를 끄덕이며 담담하게 말했다.“수고했어요.”“아닙니다! 도련님이 와주신 것만으로도 영광입니다!”말을 마친 직원은 그들의 짐을 옮기기 시작했다. 유강후는 주변을 잠깐 둘러보다가 온다연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거실의 TV는 켜져 있었다. 화면에는 오늘의 뉴스가 방송되고 있었다.“무한테크가 사
얼마 지나지 않아 조금 전 대문 앞에서 마중해 줬던 직원이 직접 음식을 가져왔다. 그의 뒤에는 겁먹은 표정의 셰프가 있었다.직원은 음식을 하나하나 식탁에 배치했다. 그리고 공손한 태도로 말했다.“도련님, 이건 주방에서 직접 한 음식입니다. 입에 맞는지 확인해 보세요. 만족스럽지 못한 곳이 있으면 셰프한테 말하면 됩니다.”말을 마친 그는 뒤로 물러나서 셰프의 귀에 대고 무언가 전달했다.식탁 위의 음식은 아주 평범한 가정식이었다. 놀랍게도 유강후가 지내던 곳에서 먹은 것과 똑같았다. 유일한 다른 점이라고는 보기만 해도 화려한 생선찜이었다.다른 음식도 정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음식을 담은 흰색 도자기 그릇은 옆에 조각 장식도 되어 있었다.닭고기와 감자는 집사가 요리한 것보다 더 부드럽게 조리되었다. 맛은 약간 싱거웠지만 오랜 시간 죽만 먹었던 온다연에게는 천상의 맛이었다.급하게 먹은 온다연의 이마에는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유강후는 그녀가 감자만 먹는 것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감자를 옆으로 밀어내고 가시를 바른 생선찜을 그릇에 담아주며 말했다.“이걸 먹어.”온다연은 눈썹을 찌푸리더니 앞쪽 바 테이블에 놓인 음료를 바라봤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음료는 마셔도 돼요?”유강후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온다연이 눈을 반짝였다.“그럼 시원한 오렌지 주스 마실래요.”“안 돼! 너 아직 차가운 거 금지야.”유강후가 단호하게 말했다.온다연의 눈빛이 금세 어두워졌다. 그녀는 더 이상 말없이 앞에 있는 팥죽이나 홀짝거렸다. 곧 미지근한 오렌지 주스가 나왔지만, 그녀는 식사가 끝날 때까지 손도 대지 않았다.유강후가 미간을 찌푸리며 무언가 말하려던 찰나 한 남자가 웃으며 다가왔다.“도련님.”그 남자는 잘생긴 얼굴에 수트를 입고 금테 안경을 썼다. 굉장히 점잖고 신사적인 모습이었다.그는 자연스럽게 온다연의 맞은편에 앉았다.“여기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요. 돌아온 지 꽤 되었다고 들었는데 왜 연락 한 통 없었
온다연은 그것을 힐끗 보기만 했는데도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안 그래도 좁은 공간에 유강후와 함께 있는 것이 떨렸는데, 온천의 열기 때문에 더욱 화끈거렸다.그녀는 몰래 유강후를 바라봤다. 유강후는 커튼을 단단히 쳐놓고 환풍기를 켰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는 한 발짝 한 발짝 그녀를 향해 걸어왔다.유강후가 한 발짝 옮길 때마다 그녀는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두 손은 등 뒤로 돌려서 긴장되는 듯 꼼지락댔다.온천 안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녀도 당연히 알았다. 하지만 경험이 없었던 그녀는 옷을 벗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기절할 것만 같았다.유강후는 금방 그녀의 앞에 도착했다. 시선은 그녀의 발그레한 얼굴, 촉촉한 눈동자, 그리고 탐스러운 입술에 스쳤다. 유난히 어두운 눈빛으로 그녀의 턱을 들어 올린 그는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더워?”온다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시선을 내리깐 채 무의식적으로 입술을 깨물기만 했다.유강후는 손에 힘을 주면서 그녀가 억지로 입을 벌리게 했다. 입속의 핑크색이 시선에 들어오자 목소리는 더욱 잠겼다.“다연아, 너 나랑 키스하고 싶어?”깜짝 놀란 온다연은 황급히 머리를 흔들었다. 유강후는 그녀의 입술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그러면 자꾸 입술 깨물지 마. 유혹하는 것처럼 보이니까.”이 말에 화들짝 놀란 온다연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피가 떨어질 것처럼 빨갰다. 그녀는 말을 얼버무리며 겨우 소리를 냈다.“아, 아니에요...”유강후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계속 다그쳐 봤자 소용이 없을 것 같았던 것이다.“단추 풀어줘.”거역할 수 없는 명령의 어조였다. 두 개월 전에 했던 말이 다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온다연은 또다시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번에는 어설프게 반항하지 않았다. 반항을 해봤자 소용없기 때문이다.그녀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셔츠 단추를 풀어 내렸다. 다행히 지난번보다는 훨씬 능숙하게 단추를 풀 수 있었다.하나... 둘... 셋...온다연의 얼굴은 단추를 풀
벨트 위에 있던 금속이 온다연의 피부에 닿았을 때 몸이 저도 모르게 흠칫 떨려왔다. 금속은 분명 아주 차가웠지만 이상하게도 몸이 뜨거워지며 두려움이 느껴졌다.손은 남자에게 잡혀 억지로 벨트에 가져다 댄 상태였다.달칵! 벨트가 풀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너무도 가까이 있었던지라 온다연은 놀라게 되었고 손은 끊임없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고개를 들어 애원하는 눈으로 그를 보았다.“전, 전 못해요...”여기서 그만하고 싶었다.그녀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건지 유강후는 그녀의 손을 놓아주었다. 하지만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잔혹했다.“이번엔 지퍼를 내려봐.”순간 그녀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숨 쉬는 법도 잊어버린 것 같았다.까만 눈동자는 점점 더 커지고 목소리마저 떨려왔다.“싫...”유강후는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쌀쌀한 목소리로 말했다.“네 남자인데 잘 모셔야하지 않겠어? 이건 네가 언젠가 해야하는 일이야. 미리 배워서 나쁠 것 없지.”온다연은 눈물이 날것 같았다.“싫, 싫어요...”유강후는 그녀의 턱을 잡아 올렸다.“나한테 울면서 빌어도 소용없어. 절대 봐줄 생각 없으니까.”“지금, 당장 내려.”온다연은 세차게 머리를 저었다.“싫어요!”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접었다. 입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한없이 차가워졌다.“그래, 그럼 이 과정은 뛰어넘고 더 중요한 걸 하지.”말을 마친 뒤 그녀의 손을 잡아 자신의 품으로 끌어 당겼다.옷 안에 있던 물건은 이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고 엄청난 크기에 온다연의 안색이 창백해져 울먹거렸다.“안 돼요, 싫어요. 지퍼, 지퍼 내릴 게요...”유강후는 그녀의 손을 놓아주었다. 숨을 크게 몇번 들이쉬더니 이내 다시 평정심을 되찾았다.온다연은 하얗게 질린 채 눈을 감고 덜덜 떨려오는 손으로 지퍼를 잡았다.아주 간단한 일이었지만 그녀에게는 지옥처럼 느껴졌다.다행히 지퍼를 내린 뒤 유강후는 더는 그녀를 힘들게 하지 않았다. 손을 들어 그녀의 뒤에 있던 침대를 가리켰다.“쇼핑백
탈의실에서 한참 우물쭈물하던 그녀는 결국 별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두 눈을 감고 비키니로 갈아입었다. 지금 입고 있는 옷으로 온천탕에 들어갈 수 없지 않은가. 비키니로 갈아입은 뒤 벗어놓은 옷을 들어 앞을 가리면서 느릿느릿 나왔다.나가자마자 유강후가 보였다. 그는 이미 옷을 갈아입은 상태였다.상반신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고 튼튼하고 뚜렷한 상체 근육이 전부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목부터 복부까지 근육이 선명하게 드러났고 시선을 조금만 아래로 내리면 허리춤에 걸려있는 수건 한 장이 보였다.옷을 벗은 뒤의 모습과 옷을 입은 그의 모습은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옷을 입었을 때는 갸름하고 어딘가 도도하면서 지적으로 보였고 꼭 아무런 욕망도 없는 사람 같았다. 하지만 옷을 벗은 뒤의 그의 모습은 완전히 정반대였다.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분위기와 눈빛마저 차가워 꼭 살아있는 염라대왕 같았다.온다연은 그를 똑바로 바라볼 자신이 없었다. 옷으로 앞을 꽉 가리며 느릿느릿 온천탕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그녀의 피부는 아주 하얬고 우유처럼 윤기가 돌았다.설령 옷으로 가리고 있다고 해도 여전히 가리지 못한 부분이 있었고 하얗고 가느다란 팔과 윤기 도는 그녀의 다리가 그대로 드러나 보는 사람마저 깨물고 싶다는 충동이 들게 했다.유강후의 눈빛은 점점 더 어둡게 가라앉았다. 그녀가 온천탕으로 조심스럽게 걸어와 발을 내밀어 온도를 확인하고 다시 거두어들이는 모습까지 전부 지켜보았다.그리고 이내 고개를 들어 그를 힐끗 보았다. 자신을 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지 바로 두 볼이 붉어졌고 옷으로 가슴을 가린 채 우왕좌왕 움직였다.유강후가 자신을 향해 올 거로 생각하고 있을 때 그녀의 예상과 달리 그는 혼자 온천탕으로 들어갔다.그는 편한 자리를 찾아 기대어 앉은 뒤 눈을 감았다.순간 마음이 놓인 그녀는 천천히 온천탕으로 들어갔다.물은 조금 뜨거웠다. 하지만 이런 천연 온천에 들어가면 정말로 편안하고 나른했다. 공기 중에는 은은한 유황 냄새가 났다
유강후의 눈이 다소 차가워졌고 손가락은 상처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확실히 눈에 거슬리네.”그 순간 자존감이 확 떨어진 온다연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저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면서 작게 중얼거렸다.“세상에 예쁜 상처가 어디에 있겠어요.”유강후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를 다시 안아올려 온천탕 안으로 내려놓았다.다만 이번엔 그녀의 허리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그녀의 몸은 그와 밀착되어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 틈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피부가 스쳤고 이상한 기분이 들어 저도 모르게 긴장하게 되었다.온다연은 머리가 하얘졌다. 심장은 거의 튀어나올 듯이 쿵쾅쿵쾅 뛰고 있었다.움직일 엄두도,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녀의 두 손은 어색하게 허공에 멈춰 있었고 숨도 작게 내쉬었다.빠져나갈 궁리를 하기도 전에 그는 그녀의 턱을 잡아 올렸다. 그녀의 입 속으로 그의 혀가 거칠게 들어왔다.이번 키스는 전과 달랐다. 그는 전처럼 그녀의 혀만 노리지 않았다. 그녀를 품에 가둔 채 거칠게 키스를 하다가 점차 목으로 내려오더니 그녀의 쇄골에서 멈춘 후 세게 깨물었다.느껴지는 통증에 온다연은 흠칫 떨었다.“이러지 말아요. 무, 무서워요...”유강후의 뜨거운 입술은 붉게 달아오른 그녀의 귓가에 닿았다. 허리를 끌어안고 있던 두 팔에는 힘이 들어가고 뜨거운 숨을 내쉬며 귓가에 대고 말했다.“다연아, 무서워해도 소용 없어.”온다연은 그가 이 행위를 계속 이어갈까 봐 두려웠다. 어떻게든 그의 이성을 되찾아주려고 시도 했다.“이러면 안 돼요...”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유강후는 그녀와 친척이 되고 싶은 마음은 하나도 없었다. 그녀를 벽으로 밀면서 더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온다연, 내가 네 삼촌이 아니라는 거 항상 기억하고 있는 게 좋을 거야. 우린 피를 나눈 사이가 아니야. 난 네 남자라고.”그는 가느다란 그녀의 허리를 잡더니 확 품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는 고집스럽고도 욕망에 휩싸인 그윽한 눈길로 그녀를 보
지예솔이 다른 것을 물어보기도 전에 그는 계속 말했다.“걱정하지 마. 봉현수는 아직 내가 귀국 한 걸 몰라. 내가 새로운 이름과 신분을 바꿨고 또 경원시에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있어.”지예솔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여기는 어떻게 찾은 거예요?”정연석은 그녀의 부드러운 얼굴을 보고 마음속에 깊은 미련이 남아있었다.“솔아, 넌 나한테 그렇게 신뢰가 가지 않았어? 그렇게 큰일이 생겼는데 왜 나한테 연락하지 않았어?”지예솔이 말했다.“저는 원래 모든 일이 잠잠해지면 예전의 친구들에게 연락하려고 했어요. 연석 오빠가 찾아올 줄을 몰랐어요. 예전에 이미 많은 폐를 끼쳤기 때문에...”정연석은 마음이 아팠지만 얼굴에는 가벼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폐를 끼치고 말고가 어디 있어? 너도 전에 나를 도와줬던 것이 기억이 안 나?”지예솔이 말했다.“제가 도와준 것은 모두 작은 일이에요. 게다가 매번 제가 도와준 후 현수 씨가 찾아와서 괴롭혔잖아요.”정연석이 웃으면서 말했다.“맞다. 아직 너랑 말하지 못한 게 있어. 이번에 귀국하고 다시 외국에 가지 않으려고 해. 최근 나는 운산시에 머물면서 이쪽 시장 상황을 둘러보고 적절하다면 본사를 이쪽으로 옮길 생각이야.”지현우는 갑자기 몸을 돌리며 말했다.“연석이 형, 운산시에서 회사를 차릴 생각인가요?”정연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나는 수출입 무역을 하는 사람이라 2년 사이에 과일도 수출해 볼 생각이야. 내가 전에 2년 동안 조사해 봤는데 이곳은 과일 시장이 좋고 발전 전망도 커. 그런데 시장 조사를 위해 이곳에 왔을 때 우연히 너희들의 사진을 보게 될 줄을 몰랐어.”그는 핸드폰을 꺼내 사진 한 장을 찾아냈다.“이건 내 친구가 저번 주 이곳에 과일나무 보러 왔다가 우연히 찍은 거야.”사진 속에는 지예솔과 지현우가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물건을 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하늘이 어두웠지만 지예솔의 그 얼굴은 유난히 눈에 띄어 사람들의 주의를 끌 수밖에 없었다.지예솔은 안도의 숨
지예솔은 고개를 흔들었다.“아닐 거야, 단지 개발부만 왔을 거야·현수 씨는 이런 산업을 많이 하고 있으니 직접 오지는 않았을 거야.”지현우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그러면 됐어.”저녁이 될 무렵 마당 입구에 갑자기 검은색 벤츠 두 대가 와서 멈추어 섰다.이 마을에는 이런 고급 차가 거의 오지 않았다. 차가 갑자기 문 앞에 멈추는 것을 본 지현우는 깜짝 놀라서 문을 닫으려고 하자 차에서 한 사람이 내렸다.검은색 외투를 입은 그 사람은 키가 크고 잘 생겼으며 은색 테두리 안경을 쓰고 있어 매우 점잖게 보였다.지현우는 잠시 어리둥절해 있다가 곧 놀라 소리를 질렀다.“연석이 형?”알고 보니 몇 년 동안 소식이 없었던 정연석이었다.정연석은 웃으면서 말했다.“현우 키 컸네.”지현우는 달려가 정연석을 끌어안고 기뻐서 울었다.“연석이 형, 몇 년 동안 어디에 계셨어요?”정연석은 대답 대신 그의 어깨를 툭 치면서 웃었다.“곧 스무 살이 다 되어가는 애가 왜 아직도 이리 어린아이 같은 거야? 너의 누나가 또 뭐라고 하겠어.”이때 인기척 소리를 듣고 나온 지 예술은 정연석을 멍하니 바라보았다.달빛이 흐릿한 어둠 속에서 그녀는 그저 평범한 검은색 패딩을 입었지만 그 얼굴은 여전히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웠다.정연석은 그녀를 보고 눈빛이 어두워졌으나 곧 정신을 차리고 웃으면서 말했다.“여러 곳을 찾아다니다가 겨우 찾았어.”지예솔은 문 앞에 서서 조용히 그를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지현우는 기뻐하며 말했다.“밖이 추워요. 곧 비도 올 거 같으니 얼른 들어와요, 연석이 형.”정연석은 트렁크를 열고 말했다.“현우야, 와서 도와줘.”또 다른 차의 문도 열리자 두 명의 비서가 내려오더니 물건을 함께 집안으로 옮겼다.잠시 후 두 차의 물건을 모두 옮겨 거실에 가지런히 쌓았다.정연석은 다른 차를 돌려보내고 혼자 남았다.지현우는 흐뭇해서 그 물건들을 지켜보았고 그들이 필요한 좋은 물건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가볍고 부드러운
“넌 이쁘고 이런 그림도 그릴 줄도 아는데, 이렇게 좋은 여자아이가 왜 아직도 남친이 없는 거야? 아니면 이모가 남자 친구 한 명 소개 해줄게...”정신을 차린 지예솔은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이모, 그러실 필요 없어요, 전 아이를 낳을 수 없어서 결혼을 못 해요.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되죠.”그녀가 집에 돌아온 반년 동안 중매를 하러 온 사람이 많았다. 심지어 외숙모들도 그녀를 설득하면서 자신의 조카를 한번 만나보라고 했다. 그녀는 그 사람들이 더 이상 찾아오지 않게 하려고 애를 낳을 수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장미연은 아쉽다는 듯 말했다.“아이고! 넌 이쁘게 생기고 성격도 좋은데, 만약 이런 문제가 없다면 며느리로 들이고 싶었는데...”장미연은 채소 바구니에 담긴 채소를 꺼냈다.“여기엔 방금 뜯은 채소야, 무와 배추 뭐 이런 것들이 있어. 그리고 달걀도 금방 주운 거야. 밖에서 사 먹는 것보다 나으니 가져다 먹어. 너의 남매는 절약하느라 채소도 별로 사지 않는 것 같더구나.”“가련한 것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이 집안의 모든 가구도 중고 시장에서 사 온 거고…”“밖에 고기를 파는 노점상이 너희가 매번 고기를 반 근만 산다고 했어. 게다가 매일 사서 먹는 것도 아니라며, 이렇게 큰 성인들이 그것으로 먹자면 부족하지 않아?”...한동안 수다를 떨던 장미연은 끝내 떠났다.지예솔은 한참 넋이 나가 있다가 지현우에게 말했다.“현우야, 그 차가 정말 봉씨 그룹의 것인지 가서 한번 보고와.”지예솔은 스쿠터를 타고 떠나려는 지현우를 붙잡고 말했다.“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가.”지현우가 말했다.“누나, 그렇게 조심할 필요 없어. 반년도 지났어, 아마 우리를 찾는 걸 포기했을 수도 있어. 며칠 전 연예 뉴스를 봤는데 그 주연아란 연예인이 또 새로운 영화를 찍었어.”“그런 연기력으로 이렇게 큰 투자가 들어간 영화의 주인공 역을 맡은 걸 보면 현수 형이 투자한 것일 거야. 주연아는 자신이 현수 형과 죽마고우이며 약혼할 것이라
봉현수가 말했다.“그러지 않을 거야, 이번엔 반드시 철저히 조사할 거야.”비슷한 시각 남쪽의 읍내 마을에서 지예솔과 지현우가 정원에서 바삐 일하고 있었다.작은 정원이 딸린 농가는 반년의 시간을 거쳐 제대로 리모델링되었다.원래 낡았던 벽돌담은 다시 흰 페인트를 칠했고 진흙투성이였던 앞마당은 절반을 낡은 벽돌로 메웠으며 나머지 절반에는 채소를 조금 심어서 깔끔하고 생기가 넘쳐흘러 보였다.벽 쪽에 있는 몇 그루의 과일나무에는 겨울 대추와 감귤 그리고 감이 가득 달려서 열매들이 나뭇가지를 무겁게 누르고 있었다. 무거운 짐을 짊어질 필요가 없는 기분 좋은 느낌을 주었다.집안도 다시 페인트를 칠했고 집에 쓸 수 있는 나무 가구도 다시 다듬어서 칠했다. 중고 시장에서 구매해 온 오래된 가구는 지현우가 사포로 갈아서 페인트를 새로 칠했더니 꽤 괜찮아 보였다.당연히 지씨 가문의 환상적인 럭셔리와는 비교할 수 없었지만 남매 둘 다 마음이 편안하고 안심이 되었다.작은 마을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일하러 나갔고 외부인들도 적었다. 하지만 인터넷과 택배는 도시와 별 차이가 없어서 남매는 큰 불편을 느끼지 못했다.지현우는 마을의 중고 시장에서 몇백만 원을 주고 중고 승합차를 샀다. 가끔 지예솔과 함께 승합차를 타고 읍내에 생활용품을 사러 나갔다.천천히 남매는 느린 템포의 마을 생활에 적응했다.지현우는 원래 읍내에서 일자리를 찾고 싶었지만 대학 졸업장을 아직 받지 못했고 심장병도 있는 데다 봉현수에게 실마리라도 들 키울까 봐 연말까지 집에 머물면서 다시 생각해 보려고 했다.요즘 남매는 온라인 액세서리 가게에서 서서히 주문을 받고 있다. 비록 많이 벌지는 못하고 제일 큰돈도 몇만 원 밖에 안되지만 이는 남매에게 좋은 시그널이었다.지예솔은 오늘 또 다른 주문을 받았는데 재료비를 제외하고도 몇만 원 정도를 더 벌 수 있어서 매우 기뻤다. 이른 아침부터 마당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도면을 수정했다.점심쯤 정원의 문이 열리더니 이웃인 장미연이 채소 한
잠시 후 봉현수가 나왔다.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온 그는 비록 야위어 보였지만 적어도 사람같이 보였다.유강후는 테이블 위에 음식을 가리키며 말했다.“먼저 밥부터 먹어.”봉현수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먹고 싶지 않아. 지금 바로 예솔이 엄마의 산소에 가봐야 해.”유강후가 말했다.“내가 이미 사람을 보냈어. 조금 있으면 소식이 올 거야, 먼저 밥 먹고 있어. 네 모습 좀 봐봐. 찾았다고 해도 정연석이 그 자리에 있으면 주먹 하나로 너를 이길 수 있어.”봉현수는 대충 몇 입만 먹고 가려고 했다. 그러나 너무 오래 제대로 식사하지 않은 탓에 몇 걸음을 가지 못하고 체력이 달려서 곧 쓰러질 것만 같았다.유강후는 어쩔 수 없이 그를 데리고 병원으로 가서 전면 검사를 받았다.검사를 받고 보니 장기 음주한 탓에 위에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게다가 몸에 있는 상처들을 제때 치료하지 않아 일부는 염증이 생기고 헐어서 입원 치료가 필요했다.이런 말을 들을 기분이 아니었던 봉현수는 주삿바늘을 뽑자마자 가려고 했다.유강후는 그에게 경고했다.“치료를 받지 않는다면 예솔 씨를 찾는다고 해도 소용없어.”그는 사람을 시켜 거울을 가져오라 하고 봉현수를 거울 앞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지금, 이 거짓꼴을 봐봐, 어딜 봐서 사람 같아 보여?”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본 봉현수는 멍해졌다.거울 속의 남자는 말라서 모양이 빠졌고 이전에 건장했던 몸매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몇 달 전 산 셔츠는 마치 빌려서 입은 옷처럼 헐렁하게 몸에 걸쳐있었다.얼굴은 여전히 그대로였으나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고 눈언저리가 푹푹 꺼져 들어가 있었다.머리는 너무 오래 정리하지 않은 탓에 스타일이 하나도 없었다.“내가 왜 이렇게 된 거야?”봉현수의 비서인 안시현이 말했다.“대표님, 최소 30근은 빠지셨어요. 사람이 달라 보여요.”“제가 지금 바로 가서 몸에 꼭 맞는 옷을 사 올게요.”봉현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오직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보고 넋이 나가 있다가 한참 후에야
봉현수의 얼굴은 점점 더 창백해졌다.‘그 당시 나는 솔이를 다치지 않았지만, 온몸이 항상 상처투성이였어. 그 사람들이 한 짓인가? 그러나 솔이는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을까?’“하지만 나와 헤어졌다고 하여도 바로 정연석이랑 함께 있으면 안 되는 거야.”유강후는 실망스러운 듯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아직도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니, 넌 정말 구제 불능이야. 예솔 씨는 너에게 괴롭힘을 당해 죽을 지경에 이르렀고 또 아픈 동생까지 데리고 있었어. 오직 정연석만이 그녀에게 잘해줬고 도움을 줄 수 있었어. 예솔 씨가 정연석의 호감을 받아들이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 아니면 동생이 죽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어야 해?” “나는 아직도 기억에 남는 일이 있어.”“그해는 너의 생일이었어. 우리가 호텔에서 너의 생일을 축하해줬는데 중간에 주연아가 왔어. 넌 일부러 사람들 앞에서 예솔 씨를 난처하게 하면서 화나게 하려고 했어. 너는 그때 예솔 씨에게 기어 와서 술을 마시라면서 너무 지나치게 괴롭혔었지, 누가 너처럼 그렇게 사람을 괴롭혀?”봉현수는 중얼중얼 말했다.“솔이는 돈을 위해서 그랬어. 나에게 거액의 돈을 빌려달라고 했어...”유강후가 말했다.“그래서 빌려줬어?”봉현수는 머리를 잡고 고개를 저었다.유강후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그러면 네가 지금 이렇게 돼도 싼 거야. 그때 그렇게 싸운 상황에서 예솔 씨가 너에게 돈을 빌려 달라고 했던 건 너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돈이 간절히 필요했다는 거야. 네가 예솔 씨에게 돈을 주지 않았다면 분명 정연석이 돈을 빌려줬을 거야.”“네 손으로 직접 예솔 씨를 밀어낸 거지.”“현수야, 네가 지금 여기서 죽든지 말든지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아, 예솔 씨는 볼 수 없으니까.”“그 정력이면 예솔 씨를 찾으면서 그때 일을 다시 한번 조사해 봐. 오직 그때 일을 낱낱이 파헤쳐서 밝혀야 모든 오해가 풀릴 수 있고 화해할 기회도 있어. 그렇지 않으면 전혀 기회가 없어.”“아니면 찾아서 뭘 할 건데? 계속 죽을 때
봉현수는 무기력해서 말했다.“차라리 거지였으면 좋겠어. 제정신이 아니라면 마음이 지금처럼 힘들지는 않을 거니까. 나는 솔이가 지금 내가 모르는 어딘가에서 다른 남자와 함께 있다고 생각하면 세상이 끝난 것만 같아.”“함께 지옥에나 가라!”자포자기하는 봉현수의 모습을 본 유강후는 퉁명스럽게 웃으면서 샤워기를 들고 그를 향해 마구 물을 뿌렸다.“얼른 죽어버려. 예솔 씨가 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곧 돌아올 거야. 네가 남겨준 재산으로 너의 별장에서 기생오라비들과 함께 매일 같이 술을 먹고 애도 낳아서 행복한 삶을 살 거야.”봉현수는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중얼중얼 말했다.“네 말이 맞아. 이미 반년이란 시간이 흘렀어. 아마 솔이 옆에는 다른 사람이 있을 수도 있어.”유강후는 투지가 전혀 없는 봉현수의 모습을 보고 화가 나서 그를 또다시 한번 발로 찼다.“일어나!”“예솔 씨가 진짜 결혼했다면 넌 포기 할 수 있어? 만약 포기할 수 있다면 이 죽을상은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그러는 거야?”“예솔 씨 옆에 다른 사람이 생겼다면 너도 가서 다른 사람을 만나. 서로 각자 자신의 갈 길을 가면서 서로에게 미련 버려.”“안, 안돼!”봉현수는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솔이가 결혼하고 애를 낳았다고 하여도, 나는 솔이를 내 곁으로 돌아오게 할 거야.”유강후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이미 반년도 지났어. 만약 예솔 씨가 결혼했다면 너는 가정 파괴범이라도 될 생각인 거야?”봉현수의 몸은 굳어져 버렸고 눈빛은 마치 넋 나간 듯 어두웠다.“아닐 거야. 솔이는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어.”유강후는 일부러 그를 자극했다.“너한테 그렇게 학대받았는데 아직도 너를 사랑한다고? 사랑한다면 애초에 도망을 왜 갔겠어?”유강후의 말에 어리둥절해진 봉현수는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다.“아니야, 솔이는 나를 속이지 않을 거야. 절대 속이지 않겠다고 나랑 약속했어.”유강후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현관 앞에 서 있던 몇몇 사람들이 유강후를 보자마자 마치 구세주라도 만난 듯 반색하며 달려들었다.“유 대표님, 드디어 오셨네요. 봉 대표님이랑 봉씨 가문이 지금 엉망진창이에요. 대표님은 안에서 안 나오고 우리한텐 들어오지도 말라고 하니 정말 죽을 지경입니다.”유강후는 굳게 닫힌 대문을 바라보며 얼굴을 찌푸렸다.“문 열어.”그러자 집사가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열쇠가 저한테 없어요. 대표님이 직접 챙겨가셨어요. 누구든 들어오려고 하면 때려죽이겠다고 하셨어요.”유강후는 차가운 눈빛으로 쏘아붙였다.“이딴 식으로 손 놓고 있다가 진짜로 저 안에서 죽기라도 하면 책임질 거야? 당장 열쇠 따는 사람 불러와.”“네. 지금 바로 부르겠습니다!”곧이어 자물쇠를 따는 기술자가 도착했고 특수 잠금장치가 되어 있던 그 문을 여는 데 엄청난 시간이 걸렸다.잠금장치가 풀리는 순간 유강후는 힘껏 문을 발로 차서 열어젖혔다.문을 여는 동시에 코를 찌르는 역한 냄새가 밀려왔다.술 냄새, 곰팡냄새, 그리고 피비린내까지... 도저히 숨쉬기 힘들 지경이었다.유강후는 얼굴이 굳은 채 거실을 훑어보았다.거실 안은 술병과 깨진 도자기 조각으로 아수라장이었고 소파 옆 바닥엔 사람이 하나 쓰러져 있었다.죽은 건지 산 건지도 알 수 없었다.유강후는 바닥의 술병을 발로 밀어내며 다가갔다. 그리고 그 사람을 발끝으로 툭 찼다.“죽었어?”바닥에 누운 사람이 조금 움찔하더니 갑작스러운 빛에 눈이 부신 듯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거칠게 욕설을 내뱉었다.“씨X... 누가 들어오래? 다 꺼져!”그가 얼마나 엉망이 되었는지 확인한 유강후는 헛웃음을 터뜨리며 다시 발로 툭 찼다.“죽긴 뭐가 죽어. 안 죽었으면 일어나. 이 자식아.”비로소 얼굴을 들어 유강후를 확인한 봉현수는 욕을 내뱉으며 다시 바닥에 쓰러졌다.“차라리 죽는 게 나아요. 일어날 기운도 없어요.”유강후는 싸늘하게 받아쳤다.“정말 죽고 싶으면 한강 다리 밑으로 데려다줄까? 여기서 죽으면 집만 더럽혀.”몇 달 만에
유강후는 온다연의 창백한 얼굴을 보며 안타깝게 말했다.“이런 여자랑 그렇게 길게 말할 필요 없어. 온준휘 엄마에 대한 걸 알고 싶으면 그냥 바로 로운한테 넘기면 돼.”온다연은 고개를 저었다.“솔직히 사람 마음이 이렇게까지 썩을 줄은 몰랐어요. 우리 엄마 돌아가시기 전까진 겉으로는 저한테 잘해주는 척했거든요. 근데... 설마 내 출생의 비밀을 알고 있었고 내가 온준용이 동남아에서 데려온 아이란 것도 알고 있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요...” 그녀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은 듯 고개를 떨궜고 유강후에게 안기며 얼굴을 그의 코트에 묻으면서 깊은 한숨이 내쉬었다.유강후는 그녀를 부드럽게 감싸안고 외투를 열어 온다연을 안쪽으로 감쌌다. 그러고는 옆에 서 있던 비서에게 말했다.“다희랑 단오 데리고 들어가서 아버지 뵙게 해. 나는 좀 이따 들어갈게.” “네, 대표님.”아이들이 병실로 들어간 뒤 유강후는 온다연을 품에 안은 채 차 안으로 데려갔다.온다연이 겪었던 모든 고통은 이제 유강후의 가슴속 깊이 새겨진 상처이자 죄책감이 되었다.그는 수도 없이 바랐다.‘시간이 되돌려질 수 있다면 어린 시절의 다연 곁으로 돌아가 직접 품어주고 상처 입은 다연을 안아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지만 시간은 누구도 기다려주지 않았고 그는 앞으로의 시간으로 그녀를 보살펴주고 보상해 줄 수밖에 없었다.병원을 나서자마자 유강후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봉현수의 비서였다. “유 대표님, 이쪽으로 와주실 수 있을까요? 저희 대표님 상태가 심각합니다. 저희로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돼서요.”그제야 유강후는 자신이 몇 달째 봉현수를 보지 못했다는 걸 떠올렸다.“무슨 일인데요?”상대방 목소리는 다급하기 짝이 없었다.“대표님께서 자택에 자신을 가둔 지 벌써 2주째예요. 몸에 상처도 심각한데 치료도 거부하고 약도 안 드세요. 지금은 아예 일주일째 방문도 안 열어줘요. 계속 두드려도 아무 반응이 없고요...”“주소 보내.” “그... 영운산에 있는 별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