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네 번의 인공수정 실패. 지수에게 남은 것은 서늘해진 침실과 남편 도진의 서늘한 연민뿐이다, 유난히 몸과 마음을 갉아먹었던 이번 시술마저 실패로 끝난 날, 지수는 절망 속에서 남편의 품을 파고 든다, 사랑은 식었을지언정 이 상실감을 함께 나눠줄 유일한 사람이라 믿었기에. "나 당신 아이 가졌어" 지수가 아이를 잃고 울부짖던 그 시각, 도진은 결코 원하지 않았던 곳에서 피러난 새생명의 소식을 듣는다. 가장 비극적인 날 찾아온 가장 잔인한 축복이었다.
View More평번한 여대생이었던 '이지수'의 세상은 '강도진'은 만나고 완전히 변했다.
언제나 부모님과 오빠의 과잉보호 속에 기사님이 태워 주시는 차와 가정부의 가사 관리 속에만있던 지수에서 생애 처음으로 모든일은 스스로 하는 생활은 힘들고 신기하기만 했다. 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큰차가 아닌 작은차에 적응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새로운 친구도 만날겸 지수가 타고다니는 경차 동호회에 가입하였다. 그곳에서 지수는 스물둘의 강도진을 만났다.
도진은 185의 훤칠한 키에 다부진 어깨, 오똑한 콧날에 강아지처럼 처진 무쌍꺼플 눈매의 다정하고 빛나는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동호회의 부위가 메이커 이자 자타공인 자동차 전문가 였다.
지수는 도진의 부드러운 눈이 좋았고 가늘고 길지만 자동차를 만져서 생긴 굳은살이 조금 있는 손이 좋았다, 도진의 작은 배려심이 좋았다. 그렇게 두사람은 연인이 되었고 만난지 3년이 되었을때 평생을 함께할 부부가 되었다.
그로부터 5년이 흘렀다. 그를 안 지 어느덧 8년째.
다섯 번의 난임 치료, 계속되는 실패는 지수의 몸과 마음과 정신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지수의 배에는 주삿자국이 그 실패를 잊지 말라는 낙인처럼 가득했다. 호르몬의 부작용은 늘 화려한 장미같았던 지수의 모습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퉁퉁 부어 오른 몸과 우울한 표정은비바람에 꺾여 시든 장미와 같았다.
반면 남편 도진은 가업이던 A국의 기성복을 만들던 세강기업을 이어받아 VVIP만을 대상으로 하는 철저한 고급화 전략으로 럭셔리 종합 패션 기업 CB그룹으로 성장시킨 장본이이었다. 기업이 성장하면서 지수만을 배려하던 따뜻하고 배려심 넘치던 도진은 차갑고 예민한 사람으로 변해있었다.
"쉐엑, 쉐엑, 하아.. 윽.."
다섯 번째 시술은 지수를 벼랑 끝으로 몰아 넣었다. 과배란 요도로 무로 서른세개의 난자를 채취한 대가는 혹독했다.
부작용으로 복수가 차 오른 배는 만삭 임산부처럼 산만해졌다. 매일 아침 병원에서 복수를 빼고 있었지만 지옥은 낮동안 다시 차오른 복수로 누울수도 앉을수도 없는 밤에 찾아 왔다. 누우면 차오른 복수가 횡격막을 눌러 숨통을 조여왔고, 앉으면 골반뼈를 짖누를는 압박감에 허리가 끊어질 듯한 통장이 밀려왔다. 지난 7일간 지수는 단 한 순간도 깊은 잠에 들지 못했다.
식은땀이 비 오듯 흘렀다. 안생은 창백하게 질려갔고 수면부족과 영양 실조로 말 한마디 내뱉을 기운조차 없었다, 쪽잠에서 깨어 시계를 보느 새벽 3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이대로는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엄습했다. 당장 응급실에 가서 복수를 빼야 했다. 지수는 떨리는 손으로 옆자리를 더듬었다.
"도진씨.. 여보.."
갈라진 목소리가 허공을 맴돌았다. 침대의 옆자리는 얼음장처럼 차갑기만 했다. 늦는다는 연락조차 없었다.
6개월 전부터 조금씩 늦어지던 도진의 귀가는 이젠 당연한 외박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지수는 바르르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들어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번, 두번.. 수신음이 이어질수록 지숙의 심장은 바닥으로 가라앉았다.받지 않는 전화를 붙들고 지수는 이제 실망이 아닌, 익숙한 체념을 받아들였다. 도진이 받지 않을 거라는 지수의 낮은 기대를 그는 결코 배신하는 법이 없었다.
품평회장의 조명이 차분하게 가라앉으며 긴장감이 팽팽하게 고조되었다. 중앙 무대 위, 장막으로 가려진 두 개의 마네킹을 향해 클로이 벤넷과 글로벌 패션 커미션 심사위원단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그럼, 글로벌 브랜드 선정을 위한 2차 실물 샘플 품평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CB 디자인실의 작품부터 공개합니다."사회자의 신호와 함께 CB의 마네킹을 덮고 있던 패브릭이 부드럽게 거두어졌다."아……!"심사위원단 사이에서 나지막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 CB가 선보인 드레스와 주얼리는 대중이 '클로이 벤넷'이라는 클래식한 대형 스타에게 기대하는 완벽한 가치 그 자체였다.쇄골과 팔라인을 부드럽게 감싸는 섬세한 시스루 롱 슬리브 위로 은사 레이스가 정교하게 얹힌 슬림한 머메이드 드레스. 그 백미는 드레스의 쇄골 라인을 타고 흐르는 강도진의 메인 하이주얼리 세트였다.백금으로 세공된 커다란 하트 프레임 안쪽으로, 최상급 콜롬비아산 에메랄드들이 정교하게 세팅된 목걸이. 마네킹의 미세한 진동에 맞춰 펜던트 하단의 에메랄드가 물방울처럼 흔들리며 초록빛 광채를 사방으로 흩뿌렸고, 귀 밑으로는 동일한 그린 빛깔의 에메랄드 드롭 귀걸이가 길게 떨어져 완벽한 균형을 이루었다. 대중성과 정밀함, 그리고 정통 하이주얼리 세트의 극치였다.강도진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찰스와 눈빛을 교환했다. 실수 없는 배수진 속에서 0.1mm 단위의 재단과 세공으로 완성해 낸 정교함, 대중이 완벽히 환호할 만한 상업적 화려함의 정석이었다."이어서, 제이아우라의 작품을 공개합니다."두 번째 장막이 슬르르 내려앉은 순간, 품평회장은 순식간에 정적에 휩싸였다.CB의 슬림한 머메이드 라인과 완벽히 대조를 이루는, 압도적인 볼륨감의 클래식 볼가운(Ball Gown) 드레스였다. 깊은 브이넥 상체에는 입체 꽃 모티프가 피어올라 있었고, 허리 라인을
CB 디자인실의 작업대 위에는 은빛 광택이 흐르는 최상급 실크 원단이 펼쳐져 있었다. 강도진 대표가 인맥을 총동원해 해외에서 어렵게 구해온 원단이었지만, 그 양은 딱 드레스 한 벌을 간신히 제작할 수 있는 '소량'에 불과했다. 여분 원단은 단 1cm도 없었다.하지만 다행히도 원단을 제외한 나머지 부자재들은 사정이 달랐다. 도진이 최고급 실과 특수 안감, 은사 레이스, 그리고 드레스 장식에 쓰일 최고급 진주와 멜리 다이아몬드를 아낌없이 지원해 준 덕분이었다.문제는 단 하나, 겉감을 이루는 주 원단 재단칼 끝이 1mm만 어긋나거나 바느질 한 땀에서 실수하는 순간 2차 제출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배수진이라는 사실이었다."모두 들었겠지. 부자재는 원하는 만큼 쓰되 메인 원단 여분은 없다. 가위질 한 번, 바느질 한 땀에도 실수하는 순간 이번 프로젝트는 그자리에서 끝이야."강도진의 낮고 무거운 경고에 디자인실 전 팀원의 얼굴이 바짝 경직되었다.찰스가 가위와 패턴지를 들고 재단판 앞에 섰다. 평소의 오만하던 기색은 온데간데없고, 손가락 마디마디에 핏줄이 서설 정도로 긴장감이 팽팽했다. 메인 패턴사와 디자이너들 역시 마른침을 삼키며 원단 끝을 다치지 않게 가만히 눌러 잡았다. 시침핀 하나를 꽂는 위치조차 세 사람이 달라붙어 수평계를 대듯 0.1mm 단위로 확인을 거듭했다.스윽, 사악—서늘한 칼날 소리와 함께 살얼음판을 걷던 메인 원단 재단이 끝나자, 디자이너들의 정교한 손길이 드레스 세부 공정으로 일제히 뻗어 나갔다.선임 디자이너들은 재단된 실크 겉감 아래 최고급 수입 안감을 대고, 0.5mm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섬세한 시침질로 원단의 핏을 잡아 올렸다. 그 위로 은사 레이스가 미세한 간격으로 결을 따라 올려붙여졌다. 디자이너들은 루페를 눈에 대고 바늘 끝을 오가며 은사 레이스 결 사이에 은빛 광택의 진주와 영롱한 멜리 다이아몬드를 한 땀 한
원단과 원석 수급 문제로 난항을 겪던 CB였지만, 2차 실물 샘플 제작이 본격화되자 디자인실과 세공실의 공기는 급격히 달라졌다.강도진 대표는 아스테리아의 신규 원석 공급이 막히자 결국 CB 지하 보석고에 오래 묵혀두었던 비축 원석들을 풀기로 결정했다. 비록 최근 트렌드에 맞는 최상급 컬러의 원석은 아니었지만, CB의 수석 원석 가공사인 채준영의 눈빛에는 오히려 오만하고 진한 자신감이 일렁였다.과거 블랙 다이아몬드 대결에서 지수에게 완패하고 김인식 장인에게 제자 타이틀마저 박탈당했던 굴욕을 기억하는 그였지만, 그렇기에 이번 2차 실물 제작 판은 준영에게 더없는 기회였다."대표님, 걱정하실 필요 전혀 없습니다. 이번에 보석고에서 풀린 원석들은 지난 수년간 제가 성질을 완벽히 파악하고 손에 익혀온 녀석들입니다. 결이 어디로 터지는지, 어느 각도에서 깎아야 빛을 가장 크게 받아들이는지 제 손끝이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채준영은 돋보기를 눈에 매고 원석의 단면을 훑으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덧붙였다."수년간 다뤄온 이 익숙함과 세공 속도라면 지수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습니다. 특히 원석 가공, 그중에서도 에메랄드만큼은 과거 김인식 장인에게도 인정받았던 분야입니다. 찰스 실장님의 디자인에 맞게 세공 단계를 하나 더 늘려서 반짝임을 극대화해 보죠. 제이아우라가 어떤 원석을 들고 나오든, 숙련도와 완성도에서 우리가 압도할 겁니다."채준영의 당당한 장담에 강도진은 그제야 타들어 가던 속을 조금 쓸어내렸다. 비록 최고급 신규 원석 라인을 새로 구하지 못한 것은 아쉬웠으나, 수석 가공사의 단단한 오기와 숙련된 기술력만큼은 믿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세공실 안에는 휠이 돌아가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원석의 가루가 사방으로 흩날리기 시작했다.본격적인 제작에 돌입하자, 유현에게도 비로소 작은 안식처가 생겼다.사람들의 냉담한 시선과 찰스의 은근한 견제로 숨이 턱턱 막
유진의 연락을 전해 받은 동기는 곧바로 유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이아우라의 핵심 디자이너인 유진 선배가 직접 너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소식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하지만 수화기 너머 돌아온 유현의 목소리는 한없이 가라앉아 있었다.“……고맙지만, 난 안 만날래.”[뭐? 유현아, 유진 선배는 너처럼 디자인 빼앗겼던 경험이 있어서 너한테 정말 도움을 주고 싶어 하셔. 이런 기회가 어디 있다고 그래?]“나 아직 CB 소속 디자이너야. 아무리 억울해도 타사 디자이너를 만나서 회사 내부 일을 이야기하는 건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해. 그리고…… 대표님도 사정이 있으셨을 거야.”자신의 공을 빼앗기고 짓문드러지면서도, 강도진을 향한 미련과 디자이너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을 버리지 못하는 유현이었다. 동기의 안타까운 설득에도 유현은 단호하게 거절 의사를 밝히고 통화를 끊었다.하지만 전화를 끊고 돌아선 CB 디자인팀 내부의 공기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지난 회의실 사건 이후, 유현을 바라보는 팀원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낙하산처럼 들어와 단기간에 전문 분야 디자이너로 승진한 유현을 향한 짙은 시샘과 질투가 바닥에 깔려 있었다. 게다가 실세인 찰스 실장의 눈밖에 난 유현이었기에, 찰스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팀원들은 앞다투어 유현을 은근히 따돌렸다."유현 씨, 이 잡일 좀 처리해 줘. 아, 참. 유현 씨는 이제 '독자적인' 디자이너라 이런 공용 서류 정리 같은 건 안 하나?""찰스 실장님 2차 컨셉안 보조는 저희가 할 테니까, 유현 씨는 그냥 남은 잔업이나 봐요."대놓고 주고받는 뼈 있는 말들과 차가운 외면. 여기에 찰스는 겉으로는 온화한 척 유현의 의견을 묻는 듯하면서도, 막상 유현이 제출한 디자인 보완안은 훑어보지도 않은 채 테이블
진우가 근무하는 HN은행 근처의 조용한 카페. 진우는 초조한 표정으로 맞은편에 앉은 슬비를 바라보았다. 슬비는 지현의 비서답게 흐트러짐 없는 모습으로 서류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갑작스러운 연락에 놀라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박진우씨"진우는 서류를 열어보려다가 멈칫하며 슬비를 응시했다."저를 어떻게 아시는지, 그리고 이지현태표님의 비서께서 왜 저를 찾으시는지 궁금합니다. 저희 은행은 GS와 관련이 없는 것으로 아는데요?" 슬비는 차갑지만 예의바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으며 서류봉투를 눈짓했다. 거기에는 슬비가 미리 준비한
지수는 사무실 문 앞에서도 도진과 수진의 적나라한 대화를 듣고 있었다.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수진은 기다렸다는 듯 도진의 목에 팔을 감으며 지수를 반히 쳐다봤다. 도진은 그런 수진을 보며 한 번 씩 웃고는, 손으로 수진의 허리를 쓸며 차갑게 지수를 쳐다봤다" 왜 왔어? 여기가 니가 오고 싶으면 오는 놀이터야?"지수는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수진이 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자신을 불렀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었다.지수는 도진의 물음에 대답대신 들고 온 서류봉투를 책상 위에 툭 던져두고 차갑게 돌아서려했다. 그런 지수
A국에 도착한 슬비는 K국과 다른 차갑고 축축한 공기를 마시며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박진우씨 맞으신가요? 저는 GS그룹의 박슬비라고 합니다. 제안드리고 싶은 일이 있어서 그런데 만날수 있을까요?"갑작스러운 전화에 진우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그 GS? 내가 아는 그 GS 맞아? 그 큰 회사에서 나를 왜?'라는 생각을 하며 대답했다."피싱 아닌가요? 요즘도 이런 사기에 걸리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하며 거칠게 전화를 끊어 버렸다.슬비는 황당한 표정으로 끊어진 전화를 한참 보다가 진우에게 메세지와 자신의 명함을 전송
이지현은 비서 슬비가 가져온 서류를 검토하다거 결국 참지 못하고 헛웃음을 터뜨렸다. 서류 봉토 안에는 동생 지수의 처절한 결혼 생활과 강도진의 외도 증거들이 빠곡히 담겨 있었다. "하, 이지수,, 이딴 남자 때문에 그렇게 속상해하고 있었던 거야?" 지현은 화가나고 속상한듯 서류를 구기며 슬비를 봤다."박비서님은 지수의 친구이기도 하니 당분간 A국에서 가서 지수 옆에 있어 주실수 있다요? 이건 상사로서 명령이라기 보다는 지수 오빠로서의 부탁입니다. 아 그리고 지수가 부탁한 사람은 이 이사람이 좋겠군요""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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