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배호철이 계속해서 앞뒤도 맞지 않는 말을 쏟아 내고 있을 때였다.담당 의사가 반대편 복도에서 걸어와 가족들에게 현재 상황을 간단히 설명했다.“지금 상태를 계속 유지하시려면 중환자실로 옮겨야 합니다. 반대로 더 이상의 연명 처치를 원하지 않으신다면, 지금 어르신을 병실로 모셔야 하고요.”의사는 더 이상 돌려서 말하지 않았다. 정부자의 상태는 이미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운 단계에 이르렀고, 지금처럼 계속 치료를 이어 가는 것도 큰 의미가 없다고 분명하게 설명했다.정부자의 몸에 연결된 차가운 의료 장비들을 바라보면서, 준모는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정부자가 누구보다 아끼던 손자가 준모였다.그런 준모가 지금 할머니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조차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자기 손으로 정부자의 산소 공급을 중단하라는 말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그런 결정을 내릴 용기도 나지 않았다.‘그렇게 좋은 분이 왜 갑자기 이렇게 되신 거야.’준모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왜 일이 여기까지 온 거지.’‘할머니가 왜 이렇게 많은 고통을 견뎌야 하는데...’‘할머니처럼 좋은 분이 정말 이렇게 떠나야 하는 거야?’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받아들이기 어려웠다.하지만 준모 역시 알고 있었다.정부자는 지난 몇 년 동안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 있었다.병이 반복될 때마다 고통을 견뎌야 했고, 치료를 받을 때마다 힘든 시간을 버텨야 했다.정부자도 여러 번 모든 걸 내려놓고 싶어 했다.그럴 때마다 준모와 채이가 붙잡았다.조금만 더 살아 달라고.조금만 더 자신들 곁에 있어 달라고.그래서 정부자는 준모와 채이를 위해서 다시 치료를 받아들였고, 견디기 힘든 고통까지 감수해 왔다.그 사실을 생각하자, 준모는 더더욱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 알 수 없었다.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왜 이런 일이 자신들에게 닥친 건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담당 의사의 말을 들은 뒤 준모의 마음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정부자와 함께했던 일들이 하나씩 떠올랐다.그럴수록
하지만 배호철은 여전히 물러설 생각이 전혀 없었다.어떻게 해서든 회사를 자기 손에 넣겠다는 태도였다.그런 모습을 보면 회사를 차지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 같았다.채이는 배호철과 배호창을 보고 있으면 가끔 두 사람이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아직 그렇게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었다.정말 원하는 게 돈이나 이익이라면 자신의 힘으로 노력해서 얼마든지 얻을 수 있었다.하지만 배호철은 지난 세월 동안 자신의 힘으로 제대로 뭔가 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편한 것만 찾고 힘든 일은 피하면서 살아왔고, 결국 스스로를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만들어 버렸다.채이가 더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이제 그만 좀 하시면 안 돼요? 할머니는 아직 병실에 누워 계시잖아요.” “두 분이 할머니 아들이라면, 지금은 회사 얘기보다 할머니를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먼저 생각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채이는 감정을 억누르며 말을 이어 갔다.“할머니를 언제까지 이렇게 치료받게 할 건지, 마지막까지 다른 치료 방법을 더 찾아볼 건지, 그런 걸 먼저 결정해야 하잖아요.” “정말 방법이 없다면 그때는 치료를 내려놓는 선택도 해야 할 테고요.”“그런데 큰아버님은 이런 상황에서 회사 얘기부터 꺼내시네요. 지금 그 얘기가 그렇게 중요해요? 아직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도 아니잖아요.”채이는 배호철을 똑바로 바라봤다.“큰아버님께서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것만큼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어요.”“저와 준모 씨는 할머니를 진심으로 아껴요. 그동안 할머니와도 정말 잘 지냈고요. 그러니까 저는 할머니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채이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렸다.“저와 준모 씨는 할머니 일은 마지막까지 함께할 거예요. 두 분이 할머니 친아들이라고 해도 저희가 할머니 곁에 있는 걸 막을 수는 없어요.”“저희는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볼 거고, 마지막 길도 끝까지 함께할 거예요. 그건 누구도 막을 수 없어요.”배호철과 배호창의 차갑고 무심한
사실 준모는 처음부터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하지만 배호철과 배호창이 보이는 태도를 보고 있자니, 더는 좋게 넘어가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무엇보다 준모 역시 이 회사를 위해 오랜 시간 적지 않은 노력과 정성을 쏟아 왔다.그런데 배호철과 배호창의 눈에는 그런 과정은 전혀 보이지 않는 듯했다.두 사람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결국 자신들이 얻을 몫과 이익뿐이었다.정부자가 아직 곁에 있을 때 준모가 이들과 일일이 부딪히지 않았던 것도 전부 정부자 때문이었다.괜한 다툼으로 정부자를 불안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집안 문제 때문에 정부자가 걱정하거나 마음 졸이는 모습도 보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배호철이 아무리 불쾌한 말을 해도 준모는 대부분 참아 넘겼다.하지만 이제 정부자의 상태가 이렇게까지 악화된 상황에서도 두 사람이 똑같은 태도를 보이자, 준모도 더는 참기 어려웠다.배호철이 준모를 향해 날카롭게 말했다.“처음에는 네가 우리한테 분명히 말했잖아. 전부 할머니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그렇게 잘난 척하면서 떠들더니 이제 와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네가 생각해도 웃기지 않냐?”배호철은 비웃듯 말을 이어 갔다.“회사도 네가 직접 포기하겠다고 했잖아. 넌 애초에 이 집안 사람이 아니야. 어머니가 지금 어떤 상태든 이제 네가 나설 일이 아니라고.” “그러니까 당장 나가. 여기서 눈에 거슬리게 서 있지 말고.”정부자가 더 이상 예전처럼 나서서 막아 줄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배호철의 태도는 훨씬 거칠어졌다.굳이 준모에게 예의를 차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듯했다.배호철은 단호하게 준모를 내보내려고 했다.애초에 가장 눈엣가시처럼 여겼던 사람도 준모였다.준모는 차갑게 배호철을 바라봤다.“제가 여기 있어도 되는지 아닌지는 큰아버님께서 결정하실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저도 여기서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자리에서 같이 추한 모습 보이고 싶지도 않고요.”준모는 그동안 배호철이나 배호창과 굳이 따지고 들지 않았다.그것 역시
“지금 할머니 상태로는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워요. 교수님도 말씀하셨잖아요.”“지금 유지하고 있는 의료 장비와 약물을 모두 중단하면, 할머니께서 그대로 돌아가실 수도 있다고요.”“그러니까 이제는 우리도 앞으로 해야 할 일을 빨리 정리해야 할 것 같아요.”채이가 준모에게 말했다.어떤 식으로든 배씨 집안은 명성이 대단한 집안이었다.그래서 준모는 정부자의 마지막 길과 그 이후의 일까지 최대한 빨리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평생 자신의 체면과 품위를 중요하게 여겼던 정부자였다.마지막만큼은 누구에게도 흠을 잡히는 일 없이 제대로 모셔야 했다.정부자 역시 자신이 떠난 뒤까지 집안사람들이 서로 다투고, 그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는 것은 원하지 않을 터였다.적어도 겉으로라도 가족이 화목하게 자신의 마지막을 보낼 수 있기를 바랐을 것이다.그런 상황에서 지금까지 벌어진 일을 하나하나 따지고 있는 건 더 이상 아무 의미가 없었다.채이는 정부자를 생각할수록 마음이 아팠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배호철과 배호창 일가를 보고 있으면 사람마다 속에 품은 생각이 따로 있고, 저마다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그 모습이 채이에게는 너무 씁쓸했다.이곳에 더 있고 싶지 않다는 생각마저 들었다.어쩌면 이번에는 정말 모든 걸 정리하고 떠나게 될지도 몰랐다.정부자가 세상을 떠나고 나면 채이가 이 사람들과 계속 연락할 이유도 없었다.더 이상 얽힐 일도 없을 터였다.만약 준모가 회사를 포기하겠다고 한다면 채이는 그 선택도 지지할 생각이었다.준모가 굳이 이 회사에 남아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애초에 준모가 지금까지 이곳에서 버틴 것도 정부자 때문이었다.설사 지금 가진 모든 걸 내려놓는다 해도 괜찮았다.준모와 채이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었다.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용기도 있고, 기회도 있다.자신들의 힘으로 다시 일어설 능력 역시 충분했다.굳이 이런 것 하나하나에 매달릴 필요는 없었다.오히려 배씨 집
준모는 누구보다도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정부자의 몸 상태가 이미 더 버티기 어려운 지경까지 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의료진이 계속해서 무리한 치료를 이어 가는 게 더는 의미가 없다고 말한 이유도 이해했다.머리로는 전부 알고 있었다.그런데도 포기할 수가 없었다.정부자를 포기한다는 건 결국 정부자가 자신들의 곁을 영원히 떠나는 걸 받아들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준모는 예전부터 할머니와 헤어지는 날을 수도 없이 상상해 보곤 했었다.정부자가 언제까지나 자신의 곁에 있을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아무리 원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이별해야 할 날이 온다는 사실 역시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하지만 막상 그때가 눈앞에 닥치자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정부자가 떠난다는 사실을 인정하느니 차라리 자신이 지금까지 쌓아 온 모든 걸 포기하는 게 더 쉬울 것 같았다.준모가 그동안 회사에 남아 있었던 이유도 결국 정부자 때문이었다.정부자가 걱정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자신이 회사에서 자리를 잡고 제대로 일하는 모습을 보여 주면, 정부자도 안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무엇보다도 정부자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준모는 이곳에 남았다.그런데 이제 정부자가 없는 세상이 된다면, 자신이 굳이 이 회사에 남아 있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도 알 수 없었다.사람들은 모두 준모가 회사를 차지하기 위해 정부자의 마음에 들려고 애쓴다고 생각했다.정부자의 신임을 얻고, 결국 회사를 손에 넣으려 한다고 여기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하지만 실제 준모는 회사 자체에 큰 의미를 둔 적이 없었다.회사 때문에 정부자 곁에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그런 건 처음부터 준모에게 중요하지 않았다.사람들은 모든 일을 너무 단순하게만 생각하고 있었다.준모는 이제 정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무슨 방법을 써야 정부자가 다시 눈을 뜰 수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그저 어떻게든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준모와 채이가 이 문제를 두고 이야기를
“사실 어르신의 상태는 진작부터 안정적이지 않았습니다. 계속 위중한 상태였고요. 지난번에 제가 배 대표님께 말씀드렸던 수술도 결국 선택하지 않으셨죠.”“어르신께 더 큰 고통을 감당하게 하지 않으신 것도 틀린 선택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연세가 워낙 많으셨으니까요.”담당 의사는 무거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너무 자책하거나 힘들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도 지난 몇 년 동안 할 수 있는 건 전부 다 했습니다.”“그 과정이 어땠는지는 제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요. 의료진이라고 해서 언제나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아무리 애써도 손쓸 수 없는 때가 있습니다.”“어르신은 원래 굉장히 강한 분이셨습니다. 본인의 삶을 끝까지 당당하게 지켜 오신 분이기도 하고요.”“그러니 마지막까지 어르신답게 갈 수 있도록 해 드리는 것도 가족이 할 수 있는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의사는 준모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덧붙였다.“이제는 의미 없는 처치를 계속하면서 어르신을 더 힘들게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만약 어르신께서 다시 의식을 되찾으신다면, 아마 같은 선택을 하실 겁니다. 배 대표님도 어르신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잖아요.”담당 의사가 이렇게까지 많은 말을 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의사는 오랫동안 정부자의 주치의를 맡아 왔고, 준모와도 평소 자주 마주쳐서 서로를 잘 알고 있었다.정부자의 병이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 준모가 그동안 얼마나 애써 왔는지 모두 가까이에서 지켜봤다.그래서 평소라면 굳이 하지 않았을 말까지 꺼낸 것이었다.해야 할 이야기를 모두 마친 의사는 더 머물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났다.준모는 한동안 그대로 굳어 있었다.의사가 한 말이 머릿속에서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칠 전까지만 해도 정부자는 분명히 잘 지냈고, 이야기도 나눴다.그런데 갑자기 이제는 마지막을 준비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게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모든 일이 너무 갑작스럽게 밀려왔다.준모는 이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