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동생을 택한 너에게, 나는 네 라이벌을 택했다: Chapter 1 - Chapter 10

30 Chapters

제1화

“배준모 씨, 보름 뒤에 화경시로 돌아가서 당신과 결혼하겠습니다.”바의 작은 발코니에서. 진채이는 어두운 색 소파에 몸을 묻은 채 전화기 너머의 사람에게 차분하게 말했다.이내 차갑고 거리감 있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진채이 씨, 제 기억이 맞다면 두 달 전에 당신은 그 이른바 남자친구 때문에 우리 약혼을 거절한 적이 있지 않습니까?]채이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두 달 전, 채이는 7년 동안 사랑해 온 연인 부태빈을 집으로 데려가 부모님께 소개하려 했다.하지만 집에 그 이야기를 전하자마자 들려온 건, 진씨 가문과 배씨 가문이 혼인을 준비 중이고 배준모가 채이의 명목상 약혼자라는 사실이었다.채이는 태빈 때문에 집안과 크게 다투었고, 그 과정에서 아버지 진해강은 병원에 실려 갔다. 그럼에도 채이는 내기처럼 말했었다. 자신은 태빈과 반드시 평생 행복할 테니까, 부모님께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겠다고.그러나 불과 두 달.채이가 태빈에게 품었던 마음은 태빈이 ‘여동생’ 강시은을 감싸고 또 감싸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서서히 닳아 없어졌다.특히 오늘은...오늘은 원래 두 사람의 기념일이었다.그런데 태빈은 약속에 나타나지 않았고, 대신 바에서 시은과 묘한 술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채이는 핸드폰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조용했지만 분명했다.“저는 부태빈 씨랑 헤어질 겁니다.”[제 도움이 필요합니까?]남자의 목소리는 여전히 냉정했고, 묘하게 밀어붙이는 기세가 섞여 있었다.“아닙니다.”채이는 조용히 말했다.“부태빈 씨와 얽힌 일은 제가 정리할게요. 당신이 신경 쓸 일 없게 할게요.”“그 사람 회사에 제가 쏟은 자금도 적지 않아서요. 제 몫을 되찾을 시간이 필요해요. 조금만 기다려 주셨으면 해요.”[알겠습니다. 보름 뒤에 공항에서 뵙죠.]그 말과 함께 통화는 끊어졌다.전화를 집어넣고 한동안 멍하니 한 곳만 바라보던 채이는, 소파에서 일어나 바 2층의 한 룸으로 향했다.가까이 다가가자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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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채이가 클럽을 나와서 차에 오를 때까지 태빈은 끝내 따라 나오지 않았다.대신 채이의 핸드폰에 문자가 하나 도착했다.담담했고, 어딘가 채이를 탓하는 기색이 섞여 있었다.[나랑 시은이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이가 아니야. 오늘 네가 한 행동들, 시은이한테 사과하는 게 맞아.]‘강시은한테 사과하라고?’채이는 입꼬리를 비틀었다.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핸드폰을 조수석 위로 던졌다.‘부태빈은 모를 거야.’한 달 전부터 채이의 핸드폰에는 계속 사진이 도착했다.태빈과 시은이 함께 여행을 다닌 사진, 연인처럼 붙어 찍은 웨딩 콘셉트 화보, 태빈이 시은 때문에 다른 사람과 몸싸움을 벌인 장면까지.그때마다 태빈은 늘 같은 말을 했다.출장, 일이 바쁘다, 중요한 미팅이 있다.이제 태빈은 더 이상 그럴 필요도 없었다.채이는 태빈을 필요로 하지 않으니까.채이는 시동을 걸어 둘이 함께 살던 집으로 돌아갔다.현관문을 열자마자 채이는 예전에 태빈이 연애할 때 줬던 선물들을 하나하나 찾아냈다.둘이 함께 찍은 커플 사진, 영상 파일이 담긴 USB, 함께 적어 내려간 연인 다이어리까지.채이는 그것들을 전부 정원으로 옮긴 뒤 철제 화로 안에 모아 넣었다.불을 붙이자 천천히 종이가 타 들어갔다.그때 등 뒤에서 남자의 고함이 들려왔다.“진채이, 뭐 하는 거야!”그러면서 채이의 팔을 거칠게 뒤로 잡아당겼다.다가온 태빈이 불길 속에서 반쯤 타버린 사진을 주저 없이 집어 들었다.다른 물건들까지 건지려다 불길이 세지면서 태빈은 손등을 데였다.태빈은 짧게 숨을 들이마시고 손을 뺐다.참고 있던 감정이 그대로 터져 나왔다.“지금 왜 이래? 시은이는 너 때문에 말도 안 되는 오해를 다 뒤집어쓰고 있어. 그래도 시은이는 나한테 너 달래라고, 싸우지 말라고 했어. 그런데 넌 여기서 우리 사진을 태워?”태빈은 채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언제부터 이렇게 철이 없어졌어?”고개를 들어 태빈을 바라보는 채이의 눈빛에는 온기가 전혀 없었다.“그래, 나 철없어.”채이는 짧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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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채이야, 네가 아무리 제멋대로 굴어도 정도는 있어야지.”태빈은 채이를 바라봤다. 눈에는 실망이 짙게 깔려 있었고, 목소리는 잔뜩 가라앉아 있었다.“지금 시은이 어디 있는지만 말해. 그전 일들은 전부 묻어줄게.”“내가 말했지.”채이는 태빈을 똑바로 마주보며 또박또박 말했다.“강시은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채이는 숨을 고르며 말을 이었다.“강시은이 납치된 일, 나랑은 아무 관계도 없어.”말이 끝나기도 전에 태빈의 손이 채이의 목을 움켜쥐었다.남자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자 숨이 막혔다.공기가 들어오지 않으면서 채이의 시야가 흐려졌다.그녀는 의식이 멀어지는 와중에 귀에 날카로운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태빈은 손을 놓았다.전화기 너머에서는 비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시은을 찾았다는 말이었다.태빈은 채이를 다시 보지도 않고, 몸을 돌려 급하게 현관 쪽으로 걸어갔다.채이는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얼굴에는 핏기가 전혀 없었고, 목에는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하얀 피부 위에 번진 자국은 섬뜩해 보였다.아래층에서 차가 출발하는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채이는 잠시 숨을 고른 뒤에야 겨우 몸을 일으켰다.비틀거리며 욕실로 들어가 거울 앞에 섰다.거울 속에는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흐트러진 채이가 서 있었다.그 모습을 보는 순간, 참아왔던 눈물이 쏟아졌다.‘부태빈이랑 함께한 게 7년이야.’7년이라는 시간.그 시간조차 태빈이 채이를 믿게 만들지 못했다.채이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감정을 억눌렀다.세수를 하고, 약을 꺼내 목에 바른 뒤 침대에 몸을 눕혔다.몸이 한계에 다다른 탓인지, 채이는 곧 깊이 잠들었다.다음 날 아침 일찍, 채이는 비서에게서 메시지를 받았다.[상무님, 부 대표님 쪽에서 이사회 소집 공지가 내려왔습니다. 상무님은 따로 연락 받으신 게 없으신가요?]지금 태빈이 대표로 있는 회사는 채이와 태빈이 함께 만든 회사였다.주요 프로젝트 상당수는 채이가 직접 나서서 경쟁사와 싸워 따낸 것이었다.이사회가 열리면, 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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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저는 배준모 대표님의 비서, 주민건이라고 합니다.”앞에 서 있던 민건이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건넸다.그리고는 뒤쪽을 향해 가볍게 손짓했다.“이 사람은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앞으로 나선 경호원들이 남자를 붙잡고 밖으로 끌어냈다.잠시 후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그제야 채이는 눈앞의 상황이 현실이라는 걸 실감했다.‘배준모 쪽 사람이... 나를 구한 거야.’끝까지 팽팽하게 버티고 있던 긴장이 한꺼번에 풀렸다.채이는 입을 열고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눈앞이 급격히 어두워졌다.의식이 끊어지기 직전, 민건이 사람들에게 병원으로 데려가라고 지시하는 목소리만이 희미하게 들렸다....다시 눈을 떴을 때, 채이는 병실이었다.침대 옆에는 익숙한 얼굴이 앉아 있었다.임설희였다.“상무님, 드디어 깨어나셨어요.”설희는 채이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부터 후원해 오던 학생이었다.졸업 후 능력을 인정받아 채이 곁에 남았고, 설희에게 채이는 이미 가족 같은 존재였다.채이가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설희는 정신없이 병원으로 달려오다가 사고를 낼 뻔하기도 했다.설희와 눈을 마주치자, 채이의 눈빛이 조금 누그러졌다.“나 괜찮아.”괜찮을 리가 없었다.설희의 머릿속에는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의사에게 들었던 말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갈비뼈 골절, 심폐 손상.조금만 늦었어도 생명이 위험했을 거라는 말까지.설희는 채이를 바라보며 애써 감정을 눌렀다.채이는 가볍게 기침을 한 뒤 물을 몇 모금 마시고 말을 이었다.“전에 말한 이사회 건, 지금 상황은 어때?”“상무님, 이번엔 정말 부 대표님을 말려야 해요.”설희는 채이를 대신해 억울함을 삼키듯 말했다.“부 대표님이 회사 지분의 30퍼센트를 강시은 씨한테 넘기겠다고 했어요.”“이 회사는 상무님이랑 부 대표님이 같이 세운 건데, 상무님 지분도 그만큼은 아니잖아요.”채이는 잠시 말을 잃었다. 이내 입가에 옅은 비웃음이 스쳤다.회사를 막 세웠을 때, 태빈은 위험 부담이 크다며 채이의 지분을 최소한으로 낮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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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상무님, 내일 제가 와서 이사 도와드릴게요.”설희는 채이를 집까지 데려다주는 길 내내 여러 번 확인했다.채이가 정말로 태빈과 관계를 정리했고, 회사에서 자신 몫으로 된 것까지 전부 가져가겠다는 사실을.설희는 채이의 사람이었다.채이가 떠난다면, 설희도 당연히 함께 움직일 생각이었다.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설희의 차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뒤, 채이는 혼자 빌라 쪽으로 몸을 돌렸다.몇 걸음 옮기지 않았는데,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화면에는 보육원 쪽 번호가 떠 있었다.채이는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수화기 너머로 원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채이야, 부빈그룹 쪽에서 갑자기 보육원 지원을 끊겠다고 연락이 왔어. 병원에 있던 아이들까지 전부 데려가라고 하는데, 이게 무슨 일이니?]보육원.부빈그룹.이 두 단어가 함께 나오자 채이는 바로 알아차렸다.‘부태빈이야.’표정이 가라앉은 채이가 감정을 눌러 담고 차분하게 말했다.“원장님, 제가 바로 연락해서 처리할게요. 걱정하지 마세요.”그 말에 원장은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부빈그룹의 지원을 받던 아이들 대부분은 선천적인 유전 질환을 안고 있었다.의료 장비가 잠시라도 멈추면,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이 사실을 태빈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전화를 끊자마자, 채이는 망설임 없이 다른 번호를 눌렀다.한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번호였다.[여보세요, 진도성입니다.]금방 연결되며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핸드폰을 쥔 채이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목소리도 떨렸다.“오빠.”도성은 잠시 말을 하지 않았다.잠깐의 침묵 뒤, 비꼬는 듯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어이쿠, 이게 누구야. 자유를 사랑하고, 사랑을 위해 집안도 버린 우리 채이 아가씨 아니야? 무슨 바람이 불어서 전화를 했을까? 그렇게 다정하고 완벽하다는 부태빈은 어디 두고?]채이는 마음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억눌렀다.하지만 입을 여는 순간, 목소리는 끝내 흔들렸다.“나...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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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설희는 입술을 꼭 다문 채 채이의 뒤를 따랐다. 걸음은 자연스럽게 늦어졌고, 시선에는 망설임과 갈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몇 번이나 입을 열었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다시 입을 다물었다.그 기색을 알아챈 듯, 채이는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그리고 천천히 몸을 돌려 설희를 바라봤다.채이의 깊은 눈동자는 잔잔했다.“하다윤 씨가 물에 빠진 일, 정확히 어떻게 된 건지 조사해.”“네, 상무님.”설희는 급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목소리에는 약간의 다급함이 묻어 있었다.곧바로 방향을 틀어 빠르게 자리를 떠났다.그 뒷모습에는 일의 경중을 분명히 인식한 사람 특유의 단정함이 배어 있었다.채이는 그 자리에 잠시 서 있다가 눈썹을 살짝 올렸다.이내 천천히 걸음을 옮겨 테이블 앞으로 갔다.가늘고 세련된 손으로 와인 잔을 들어 올렸다.붉은 액체가 잔 안에서 부드럽게 흔들렸다.채이는 잔을 가볍게 기울인 채 몇 걸음 옮겼다.자세는 흐트러짐이 없었고 차분했다.곧 연회장 안에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채이를 알아본 이들이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그때,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민경애가 다가왔다. 허리를 살짝 틀며 걷는 모습에는 과장된 여유가 묻어 있었고, 입가에는 비아냥에 가까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진 상무님, 오늘은 부 대표님이 안 보이시네요?”경애는 말끝을 일부러 늘였다. 그녀의 눈빛에는 흥미롭다는 기색이 드러나 있었다.예전에는 달랐다.태빈과 채이가 함께 나타나는 자리라면, 늘 사람들의 시선이 그 둘에게 쏠렸다.어디를 가든 떨어져 있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중심이 됐다.채이는 외모로도, 능력으로도 단연 눈에 띄는 사람이었다.그녀는 연애와 일 어느 쪽에서도 부족함이 없어 보였고, 그 모습은 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반면, 경애의 결혼 생활은 달랐다.결혼한 지 7년.경애는 누군가를 의심하며 뒤쫓는 쪽에 더 익숙해져 있었다.‘결국 다 비슷해.’경애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웃음을 삼켰다.‘사람 마음이라는 게...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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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부 대표님이시죠? 하 대표님께서 모시라고 하셨습니다.”말끔한 유니폼을 입은 웨이터가 다가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그리고 입가에는 과하지 않은 미소가 걸려 있었고, 곧 손을 들어 발코니 쪽 어둑한 방향을 가리켰다.그쪽에는 하씨 집안의 남자 몇 명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자세는 전혀 흐트러짐이 없었고, 말없이 앉아 있음에도 묵직한 압박감이 느껴졌다.시은은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가 그 남자들의 시선과 마주쳤다.매서운 눈빛이 한순간에 짓누르면서, 시은의 몸은 반사적으로 움츠러들었다.놀란 아이처럼 태빈의 뒤로 급히 몸을 숨기며 옷자락을 꼭 움켜쥐었다.“오빠... 무서워요.”울먹이는 목소리가 작게 떨렸다.미간을 찌푸린 태빈의 표정이 굳어졌다.눈빛에는 불편한 기색이 스쳤지만, 태빈은 말없이 손을 뻗었다.채이의 손목을 움켜쥐는 순간, 힘이 과하게 들어갔다.마치 놓치지 않겠다는 듯한 힘이었다.태빈은 아무 설명도 없이 채이를 끌고 발코니 쪽으로 향했다.“부태빈, 뭐 하는 거야. 놔!”채이는 갑작스러운 힘에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태빈의 손을 떼어내려고 애쓰면서 이를 악물었다.하지만 태빈은 채이의 말을 듣지 않고, 오히려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오늘 여기서 하씨 집안의 사람들한테 사과만 하면, 바로 혼인신고 하러 갈게.”그 말투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마치 이미 결정된 일처럼.이 상황에서도 태빈은 여전히 채이에게 허황된 약속을 내밀고 있었다.강시은을 대신해 모든 책임을 떠안게 만들기 위해서.“부태빈, 너 제정신이야?”채이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분노가 가슴 깊숙이 차올랐다.‘참 우습다.’‘한때는 나를 평생 지켜주겠다고 말하던 사람이었는데.’‘지금은 다른 여자를 위해, 나를 가장 위험한 자리로 밀어 넣고 있어.’태빈의 눈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채이를 붙잡은 손에는 연민도 없었다.태빈은 채이의 팔을 거칠게 잡아당기더니 그대로 앞으로 밀쳤다.중심을 잃고 하씨 집안 사람들 앞에 넘어지면서, 채이의 팔꿈치가 바닥에 부딪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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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그때 진후의 입꼬리가 느슨하게 올라갔다.잔혹함과 무심함이 뒤섞인 미소였다.진후가 가볍게 말하듯 입을 열었다.“형, 인정 안 하는 것도 사람 마음이지.”진후는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내 생각엔 말이야, 물에 몇 번만 담갔다 빼면 돼. 차가운 물에 겁 좀 먹고 나면, 안 할 말이 어디 있어.”마치 대수롭지 않은 일을 이야기하는 듯한 어조였다.정후는 그 말을 듣고 눈을 가늘게 떴다.시선이 서서히 가라앉으면서, 곧바로 손을 들고 짧게 신호했다.경호원들이 망설임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채이를 향해 다가오는 기세가 매서웠다.“잠깐만요!”바로 그때, 숨이 찬 설희가 급히 뛰어들어왔다.설희는 한눈에 채이의 상태를 알아봤다.헝클어진 머리에 구겨진 옷, 몸에 남은 상처들.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제가 증거를 가져왔어요.”설희는 숨을 고르지도 못한 채 말했다.“영상이 있습니다. 하다윤 씨를 물에 밀어 넣은 사람은 강시은이에요. 저희 상무님이 아닙니다.”그 말이 떨어지자, 시은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잠깐 흔들린 눈빛.하지만 시은은 곧 표정을 다잡았다.다음 순간, 시은은 설희에게 성큼 다가갔다.그리고 설희의 손목을 세게 움켜쥐었다.“임설희.”시은은 이를 악물고 나지막하게 말했다.둘만 들을 수 있을 정도의 목소리였다.“회사에 계속 있고 싶어? 이 일이 밖으로 새면, 네 자리 보장 못 해.”시은의 손에 힘이 더 들어갔다.“후회하게 만들 수 있어.”설희는 시은을 힐끗 보았다. 눈에는 흔들림이 없었다.‘지금의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전부 상무님 덕분이야.’‘이 상황에서 상무님을 버린다면, 그게 사람이겠어?’설희는 시은의 손을 단번에 뿌리쳤다. 그리고 차분한 걸음으로 앞으로 나갔다.설희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핸드폰을 열었다. 영상 파일을 재생해 정후와 진후에게 내밀었다.화면에는 분명한 장면이 담겨 있었다.시은의 얼굴이 또렷하게 보였다.정후는 화면을 확인한 뒤, 손을 들고 다시 신호했다.경호원들은 즉시 채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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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그 상황을 보자마자 태빈은 반사적으로 시은을 자신의 뒤로 감쌌다.마치 위협으로부터 새끼를 숨기려는 짐승처럼.시은은 태빈의 옷자락을 두 손으로 꼭 붙잡은 채 고개를 깊이 숙였다.몸은 눈에 띄게 떨리고 있었다.태빈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다.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기색이 숨김없이 드러났다.잠시 침을 삼킨 뒤, 태빈은 억지로 목소리를 진정하면서 말했다.“이번 일은... 저희 쪽 잘못이 맞습니다. 하지만 고의는 아니었습니다.”태빈은 한 박자 쉬고 말을 이었다.“시은이는 아직 어려서 판단력이 부족했습니다. 제가 대신 하다윤 씨에게 사과를 드리겠습니다.”말끝에는 간청하는 기색이 뚜렷했다.정후의 기분을 누그러뜨려 보려는 시도였다.정후는 그 말을 듣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비웃음에 가까운 표정이었다.“사과가 통하는 세상이었으면...”정후는 담담하게 말했다.“경찰은 왜 필요하겠습니까?”정후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덧붙였다.“물론 이런 일로 경찰을 부를 생각은 없습니다. 귀찮은 건 저도 싫거든요.”태빈의 턱이 단단히 굳어지면서 이마에는 핏줄이 도드라졌다.태빈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그럼, 어떻게 해야 시은이를 놓아주시겠습니까? 제가 할 수 있는 조건이라면, 전부 받아들이겠습니다.”확신에 찬 약속이었다.하지만 정후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그 약속은 정후에게 아무 의미도 없었다.경호원들을 등진 정후는 팔꿈치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가 손바닥을 앞으로 휘둘렀다.“데려가서 떨어뜨려.”짧고 분명한 명령이었다.두 명의 경호원이 즉시 움직였다.위협적인 기세로 태빈과 시은 쪽으로 다가왔다.태빈은 시은의 손을 더욱 세게 잡아당겼다.뒤로 물러서며 소리쳤다.“다가오지 마!”“더 이상 밀어붙이면 가만두지 않겠어!”태빈은 다급하게 정후를 향해 말했다.“하 대표님, 오늘 이 자리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아시잖습니까? 이렇게까지 일이 커지면, 하씨 집안에도 좋을 게 없지 않겠습니까?”하지만 정후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차가운 시선으로 상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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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채이는 선물을 두 손으로 받아 들었다.자세는 흐트러짐이 없었고, 그대로 정후 앞으로 선물을 내밀었다. 입가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하다윤 씨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선물입니다.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습니다.”정후는 길고 정돈된 손가락으로 천천히 상자를 열었다.뚜껑이 완전히 열리자 안에 담긴 물건이 조명을 받아 은은하게 빛났다.귀걸이였다.‘바다의 눈물’이라고 불리는 디자인으로, 깊은 바다색을 닮은 푸른 광택이 잔잔하게 번지고 있었다.마치 심해 어딘가에서 올라온 빛처럼 조용하면서도 눈길을 끌었다.정후는 잠시 시선을 떼지 못하다가 눈썹을 살짝 들어 올렸다.“진채이 씨... 혹시 진도성 씨의 여동생이십니까?”채이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표정에는 동요가 없었다.“네. 저는 진도성 씨의 친여동생 진채이입니다. 그럼 더 하실 말씀이 없으면,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말투는 공손했고, 태도도 단정했다.조금 전까지 벌어졌던 일들이 무색할 만큼 채이의 감정은 잔잔했다.마치 잔물결 하나 없는 잔잔한 호수처럼.정후는 짧게 혀를 찼다.그리고 채이를 한 번 훑어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채이 씨, 도성이랑 저는 오래된 친구입니다. 도성이 여동생이면, 제게도 동생이나 다름없죠.”정후는 말을 이었다.“부태빈과의 일도 대략은 알고 있습니다. 제가 감히 한마디 조언을 드리자면... 부태빈은 채이 씨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아닙니다.”채이는 잠시 멈칫했지만, 곧 평정을 되찾았다.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말씀 감사합니다, 하 대표님. 이미 정리된 관계입니다.”채이는 덧붙였다.“곧 가문에서 정한 혼담을 받아들일 예정입니다. 그때가 되면, 하 대표님도 꼭 참석해주시길 바랍니다.”말을 마친 채이는 가볍게 허리를 숙였다.그리고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경쾌하지만 분명한 걸음이었다.정후는 그 자리에 서서 채이의 뒷모습을 바라봤다.눈을 가늘게 뜬 채 낮게 말했다.“흥미롭네. 준모가 왜 그렇게 오랫동안 잊지 못했는지 알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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