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먼저 갈게요. 저녁엔 혼자 병원에 갈 거예요.”도아린이 발걸음을 떼려 하자 배건후가 그녀의 손목을 잡아 멈춰 세웠다.“얼마를 원해?”“뭐라고요?”“점포, 원하는 보증금이 얼마냐고.”도아린은 눈썹을 치켜세웠다.“당신 점포값이 얼마인지 내가 어떻게 알아요? 굳이 알고 싶으면 마음대로 부를게요. 우선 20억만 줘 봐요.”배건후는 그녀의 손목을 꽉 쥐었다.“돈은 네 계좌로 보낼 테니까 아현 씨에게 드레스를 넘기라고 해.”이 말에 도아린은 미소를 지었다.“전 단지 일개 직원일 뿐이에요. 내가 어떻게 대표님한테 지시를 내려요?”“드레스 수선이 끝났다고 했잖아.”“그건 내가 건후 씨 속인 거예요. 문제를 만들어놓고 책임 회피하는 걸 누가 참아주겠어요?”배건후는 분노에 찬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도아린, 정말 역겹군!”그러자 도아린은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역겨우면서 왜 이렇게 꽉 잡아요?”배건후는 그녀를 거칠게 밀어내고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더니 깊게 한 모금 들이마셨다.하도 세게 잡은 탓에 빨갛게 자국이 남은 손목을 풀며 도아린은 병원으로 향하는 걸음을 재촉했다.당당하게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배건후는 마음 한구석이 답답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얼마 뒤 택시에 타자마자 도아린은 20억이 입금되었다는 알림을 받았다.그녀는 냉소를 지었다.이 돈은 배건후가 보낸 것일 게 뻔했다.하지만 돈이 어디서 오든 이제는 그녀의 것이었다.배건후와 이혼할 때 재산을 분할받기는커녕 오히려 1000억 원을 갚아야 하는 상황에서 지금 챙길 수 있을 때 챙기는 게 나았다.한편 손보미는 자신이 돈을 내야 한다는 사실에 속이 쓰렸다.배건후가 도아린에게 압박을 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자신에게 보증금을 내라고 했기 때문이다.손보미는 배건후가 이를 보증금이라 했기 때문에 거절할 수 없었다.그는 점포가 도아린 명의로 넘어가면 손보미에게 돈을 도로 돌려주겠다고 했지만 사실 손보미는 점포를 도아린에게 넘길 생각이 전혀 없었다.이리저리
창문에 몸을 기대고 있던 사람도 깜짝 놀라더니 입안에 있던 껌을 뱉고는 문 쪽으로 걸어 들어왔다.“여기서 가게 여시게요?”방우진은 모자를 깊게 눌러쓰며 말했다.배지유는 이 점포를 자신을 위해 준비했다고 했다.그가 경찰에 잡힌 상태라 절차는 미뤄두고 대신 임대를 내주어 정기적으로 임대료를 주겠다고 했다.하지만 배지유가 자신을 속일까 봐 걱정되어 방우진은 위험을 감수하고 직접 확인하러 나왔다.도유준은 도정국을 부축하며 경계의 눈빛으로 상대를 쳐다보며 물었다.“그쪽은 누구시죠?”방우진은 가게 안을 한 바퀴 돌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엠파이어 빌딩의 점포는 매우 비싼 임대료를 자랑하며 기본적으로 몇백만부터 시작한다.이런 황금 위치에 점포가 생긴다면 이제 더 이상 위험을 무릅쓰고 범죄를 저지르거나 남에게 이용당할 필요가 없었다.“여기서 뭘 팔 건데요?”방우진이 물었다.도유준은 그가 근처 상인이라 생각하고 도정국과 눈을 마주치더니 대답했다.“디저트 가게요.”“디저트 가게? 그걸로 임대료를 벌 수 있겠어요?”도유준은 당당하게 말했다.“디저트 가게를 우습게 보지 마세요. 우리 가게는 연성에서 손꼽히는 곳이고 해남에도 몇 개 분점이 있어요!”도유준은 도정국의 가게를 마치 자기 것인 양 자랑했다.방우진은 장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무엇을 팔든 상관없고 정기적으로 임대료만 낸다면 문제 될 게 없었다. 내지 못하면 다른 임차인을 찾으면 될 일이었고 말이다.“그럼 사업이 번창하길 바랄게요.”도유준은 그가 적대적이지 않음을 깨닫고 안도하며 물었다.“무슨 일을 하시나요?”“저요?”그러자 방우진은 자랑스럽게 말했다.“저는 임대료를 받는 사람입니다.”이 말에 도유준은 그를 엠파이어 빌딩 관리인으로 착각하여 미소를 지었다.배건후가 마련해준 점포는 어떤 비용도 내지 않고 이용할 수 있었으니 마치 빈손으로 이득을 챙기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그래서 그는 새로운 가게를 직접 관리하고 싶었고 돈이 자신의 손안
안혜진은 자신의 아들이 어릴 때 자주 잠투정을 부렸는데 그녀가 흥얼거리기만 하면 바로 잠이 들었다고 말했다.농담 삼아 조이서는 그 아들이 틀림없이 음악 천재일 거라고 했다. 그러자 안혜진은 빙긋 미소를 지으며 수줍게 답했다.“아니에요. 그냥 평범한 일 하는 아이예요.”더 말하기를 꺼리는 것 같아 도아린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그녀는 안혜진과 조이서에게 정성껏 도지현을 돌봐달라며 각각 작은 봉투를 건넸다.안혜진은 봉투를 손에 쥐자 눈물을 흘렸다.그녀는 원래 아들과 딸이 있었는데 자신의 잘못으로 남편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아들은 그녀를 원수로 여긴다고 말했다.그렇게 도아린은 해가 질 때까지 병원에 머물렀고 이후 진범준 부부를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섰다....보성 병원 입원동 아래, 배건후는 차 옆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발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어보니 도아린이 다가오고 있었다.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물었다.“왜 전화 안 받았어?”도아린은 핸드폰을 꺼내며 답했다.“진동으로 바꿔 놓고는 돌려놓는 걸 깜빡했어요.”사실 그녀가 도지현과 대화할 때 손보미가 또 방해를 했다.손보미는 자신이 배건후에게 기댄 듯한 사진을 보내며 도아린을 도발했다.사진 속 남자는 목 아래만 찍혀 있었지만 입고 있는 옷이 배건후가 자주 입는 맞춤형 정장이었다.평소 같으면 도아린도 흔들렸겠지만 오늘 배건후의 넥타이는 그녀가 직접 손봐 주었기에 거짓임을 금방 알아차렸다.하지만 손보미의 무리수에 오히려 혐오감이 들었다.예전에 손보미는 SNS에 슬쩍 자랑하는 식으로 사진을 올리고는 대중의 눈길을 끌곤 했지만 이제는 직접 사진을 보내며 도아린을 도발했다.그래서 도아린은 아예 핸드폰을 무음이나 진동으로 바꿔버렸다.배건후는 팔을 살짝 굽히며 팔짱을 끼라는 암시를 주었다.그러자 도아린은 핸드폰을 조정하고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어머님도 안 계신 데 굳이 연기할 필요 없어요.”“엄마 병실은 바로 위층에 있어. 마주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이 말에 도아린은 어쩔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분명 자신은 배지유를 위해서 한 말인데 배건후가 냉랭한 표정으로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을 줄은 말이다.‘새언니와의 관계가 어려운 이유는 바로 이런 점 때문이겠군. 새언니가 계속 오빠의 귀에 뭘 속삭이니까...’성대호는 병실을 나와 위층 VIP 병실로 빠르게 향했다.하지만 배지유는 병실에 없었고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다.혹시라도 배지유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되어 주현정이 충격을 받을 것을 염려하지 않고 성대호는 그녀의 병실로 직행했다.1층 병실에서는 윤명희가 도아린을 다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도아린은 윤명희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사모님, 이제 제가 왔으니 하고 싶은 말을 바로 하셔도 괜찮습니다.”“아린 씨... 아린 씨도 알다시피 나한테는 한 살 때 잃어버린 딸이 있어요.”눈가가 붉어진 채로 윤명희는 도아린의 손을 잡았다.“지난 세월 동안 자주 꿈에서 그 아이를 봤어요.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모습으로 말입니다...”윤명희의 목소리는 차츰 떨리기 시작했다.그러자 진범준은 혹여 또 그녀의 마음의 병이 도질까 걱정되어 부드럽게 등을 두드려주었다.“천천히 말씀하세요. 괜찮아요.”도아린도 함께 달래자 윤명희는 점차 마음을 진정시켰다.“미안해요. 내가 아린 씨에 대해 조사했어서는 안 됐는데...”이 말에 순간적으로 거부감이 생긴 도아린이 손을 뿌리치려 하자 윤명희는 다급히 손을 더 꽉 잡았다.“미안해요. 아린 씨의 허락을 먼저 받았어야 했는데 내가...”이런 도아린의 반응을 보며 육하경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자신도 그녀의 배경에 대해 조사하려다 그만둔 전적이 있으니 말이다.도아린은 누군가 자신의 사생활을 들추는 것을 분명히 불편해했다. 아무리 높은 지위를 가진 이가 찾아와도 도아린은 굽히지 않았다.“배지유 씨가 아린 씨의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고 남동생이 심한 병에 걸렸고 아버지의 사업도 아린 씨의 지원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말하더군요. 근데 배지유 씨의 인품을 신뢰할 수 없어서 내
그동안 그녀가 느낀 유일한 모성애는 오직 주현정에게서였다.하지만 어쨌든 그녀는 배건후의 어머니였다.두 사람이 이혼한 후, 도아린은 주현정에게 효도하고 싶었지만 배건후의 새 아내가 집안에 외부인이 드나드는 것을 허락할 리 없었다.만약 윤명희와 인연을 맺는다면 해남으로 가서 도아린은 배건후의 삶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도 있었다.윤명희는 그녀의 마음이 약간 흔들리는 것을 보고 다급히 말했다.“우리는 해남에 정착해 있어요. 우리를 잘 모르니 서두르지 말고 시간을 갖고 지켜보세요. 우리에게 기회를 줘요.”그때 복도에서 갑자기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성대호의 목소리도 섞여 있었다.“너무 걱정 마세요. 제가 금방 지유에게 전화해서 나오라고 할게요...”“지유 어느 병실에 있어?”주현정은 딸이 연락이 안 된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경찰에 신고하려 했다.하지만 성대호는 혹시 배건후가 알 수도 있으니 먼저 물어보고 오해로 체면을 깎는 일을 피하라고 했다.시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도아린은 바로 일어나 문을 열었다.“어머님, 어떻게 오셨어요?”“아린아...”주현정은 급히 그녀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지유는? 지유가 보이지 않는구나.”“지유는 집에 있어요.”배건후가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그는 문 밖에 있는 성대호를 보며 냉랭한 시선을 보냈다. 그러자 성대호는 자신의 잘못을 자각하며 고개를 숙이고 감히 배건후를 쳐다보지 못했다.“지유 정말 집에 있는 거 맞아? 내가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더구나...”원래도 건강이 좋지 않던 주현정은 걱정이 커지면서 안색이 더욱 나빠졌다.배건후는 고개를 끄덕였다.“어제 연회에서 사고를 쳐서 지유에게 집에서 반성하라고 했습니다.”“사고라니? 지유가 전화로 자신이 어떤 대단한 분을 구했다고 하던데... 무슨 사고를 쳤다는 거야?”“어머님, 아가씨가 구한 분이 바로 이 사모님이세요.”도아린이 웃으며 설명했다.그녀는 배지유의 편을 들려는 것이 아니었다.배건후가 말하는 사고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 건지는 알 수
“우리 아린 씨는 뭐든 다 좋은데 집안 배경이 조금 안 좋죠...”윤명희는 잠시 멈추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아린 씨가 배씨 가문에 어떠한 가치도 창출하지 못했으니 외부에서는 배건후 대표님께서 결혼한 사실조차 모르는 것이죠.”주현정과 배건후는 할 말을 잃었다.곧 웃음이 터질 것 같았지만 도아린은 애써 참고 있었다.윤명희는 자신의 정신 문제를 핑계 삼아 거침없이 말을 이어갔다.“제가 인터넷에서 보니까 배건후 대표님의 첫사랑이 손보미 씨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분이 귀국했다고 들었어요. 저는 진심으로 배건후 대표님의 행복을 바랍니다. 만약 아린 씨와의 이혼을 고려 중이라면 진씨 가문이 최고의 변호사를 고용해 아린 씨에게 최대의 이익을 보장해 줄 겁니다.”윤명희는 도아린을 향해 자애로운 눈빛을 보였다.“아린 씨가 필요로 한다면 지금이라도 손보미 씨를 상대로 상간녀 소송을 진행해서 부부 공동 재산을 지키도록 도와줄 수 있어요.”도아린은 문득 윤명희가 정말 사랑스럽다고 느껴졌다.그녀는 단순히 수박 겉핥기 식으로 조사를 한 것이 아니라 도아린의 가정 배경뿐만 아니라 배건후와의 혼인 관계까지 철저히 조사했다.이건 단순한 쇼가 아니었다.그녀는 정말로 도아린을 양딸로 삼고 싶어 했다.주현정이 배건후를 비난하며 자신을 돕긴 했지만 윤명희의 직설적인 발언은 도아린에게 훨씬 통쾌한 느낌을 주었다.“사모님, 사실 저와 건후 씨는...”“저희는 절대 이혼하지 않을 겁니다.”그때 배건후가 냉정하게 말했다.그의 눈빛은 한층 더 깊어져 있었다.그러자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배건후를 보며 도아린은 생각했다.‘그 말을 건후 씨 당신은 정말 믿는 거야? 본인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냐고.’주현정도 맞장구쳤다.“그래요. 그래. 절대 이혼할 일 없을 겁니다. 전 아린이만 제 며느리로 인정할 거예요. 다른 여자는 우리 배씨 가문에 발 들일 생각하지도 말라고 해요! 건후가 감히 아린이를 배신하면 전 아들로도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이 말에 윤명희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그러면 사돈 말씀대로 하죠.”윤명희는 도아린을 볼수록 만족스러웠다.그녀는 이제 친자 확인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도아린이 바로 자신의 딸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윤명희는 도아린의 귀가 빨갛게 된 것을 눈치채고는 반 농담 반 불만 섞인 말투로 주현정에게 말했다.“모건 그룹이 대단한 명성을 자랑하지만 산하에 보석 가게는 없는가 봐요. 우리 아린 씨 귀가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켰네요.”주현정은 체면을 중요시하는 성격이라 바로 기분이 상했다.반박하고 싶었으나 도아린의 귀를 보고는 할 말이 없었다.도아린의 귀가 실제로 붉어져 있었고 귓불도 부어 있었다.“너 이 녀석... 마음은 온통 일에만 쏟고 여자에 대해서는 전혀 몰라?”배건후는 꾸짖음을 듣고 입을 꾹 다물었다.그때 진범준은 슬며시 아내의 손을 잡았고 윤명희는 그 뜻을 알아챘다.“아린 씨, 간호사에게 가서 치료 좀 받아요. 곪아진 후에는 귓불이 쉽게 아물지 않거든요.”“괜찮아요. 저 귀걸이 잘 안 하고 다녀요.”“우리는 안 껴도 되지만 언제든 낄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해요.”윤명희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도아린을 이끌고 간호사실로 갔고 도아린도 할 수 없이 따라갔다.윤명희의 지시에 따라 완전히 소독하고자 주사를 맞고 피를 뽑았다.주현정과 윤명희, 두 사람 모두 병원 신세를 지는 환자였고 큰 기쁨과 슬픔을 겪은 후라 피로해 보였다.그렇게 그들이 잘 쉬도록 하기 위해 모두 자리를 떠났다.마이바흐는 밤하늘을 가르며 화살처럼 질주했다.도아린은 차창에 기대어 졸고 있다가 갑자기 누군가가 건드리자 깜짝 놀라며 깼다.“뭐 하는 거야?”“피가 났어.”배건후는 티슈 한 장을 건네주었다.도아린의 귓불에는 핏방울이 맺혀 있었으나 이미 굳어 있었다.두 번 문질러도 닦이지 않자 배건후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잡아 가까이 당긴 후 조심스럽게 닦아주었다.“진씨 가문이 너를 보호해준다고 해서 내가 쉽게 이혼할 거라 생각하나 본데 그 사람들은 그저 말뿐이지 실제로 800~1000억을 너에게 줄 일은
도유준은 부모님과 식사를 마친 후 그들을 온천으로 데려갔다.그는 도정국에게 풀 서비스를 준비해주었고 밤이 되어서야 나왔다.남자는 남자를 잘 안다고 하지 않는가. 도정국은 준비된 서비스에 매우 만족해했다.이때를 틈타 도유준은 말했다.“아빠, 엄마는 한결같이 아빠를 위해 헌신하며 어떤 요구도 한 적이 없어요. 요즘 날씨가 추워지면서 지병이 다시 도진 것 같습니다. 제가 지점을 맡고 나면 이제 자립할 수 있을테니 엄마를 모셔와서 제가 돌보고 싶습니다. 괜찮으시겠어요?”도유준은 그동안 몇 번이고 돌려서 말하며 강홍련을 데려오고 싶다는 뜻을 밝혔지만 도정국이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가게의 중요한 일은 여전히 배건후와의 관계에 의존하고 있었고 도아린을 자극하면 오히려 불이익을 받을까 봐 걱정되었던 것이다.며칠 전 도정국과 강홍련을 마주치면서 도아린은 반대 의사를 표했지만 결국 그의 요청대로 엠파이어 빌딩의 최고 점포를 얻어냈다.이 말은 도아린의 반대가 겉치레에 불과하다는 의미였다.도정국이 고개를 끄덕이려는 찰나, 차가운 여자의 목소리가 앞에서 들려왔다.“안 돼요.”도정국은 걸음을 멈추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불쾌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네가 왜 여기 있어? 내 일은 네가 간섭할 게 아니야.”도아린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저는 아빠의 유일한 가족이에요. 아빠가 병원에 누워 계셨을 때 응급 수술 동의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저뿐이었죠. 그런데 제 일이 아니라고요?”도정국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강홍련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도정국의 팔에서 손을 떼어냈다.“됐어요, 정국 씨. 저 혼자 잘 지낼 수 있어요. 허리가 아프면 도우미를 불러서 밥을 해 먹으면 되죠. 한 끼 굶어도 문제없으니...”도아린은 그녀를 한 번 훑어보고는 조언하듯 말했다.“조금 덜 먹는 게 좋겠네요. 몸매가 망가질 정도로 살이 찌셨는데... 혹시라도 아빠가 떠나지 않을까 걱정되지 않으세요?”강홍련은 아들이 도정국의 방에 여자를 들여보낸 것을 떠올리며 얼굴이 파랗
누군가는 사진 한 장을 들고 나타나 말했다.“도아린 곁에 있는 꽃미남이 사실 강재민이래.”과거, 두 사람이 함께 음악 페스티벌에 참석했던 적도 있다는 이야기였다.그 말에 또 다른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였고 소문은 꼬리를 물고 번져갔다.그러던 어느 날.도아린의 바로 뒷자리에 앉아 있던 한 신인 배우가 몰래 찍은 사진 한 장이 인터넷에 올라왔다.사진 속엔, 두 사람의 머리가 맞닿은 채 귓속말을 나누고 있었다.그 한 장의 사진은 결국 배건후의 정체를 증명하는 결정적 단서가 되었고 그는 다시 한번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이번에도 역시 온갖 의심과 루머 그리고 비난이 따라붙었다.하지만 며칠 후, 연성 경찰청에서 공식 공지문이 게시되었다.바로 얼마 전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장기 밀매 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 공지였다.공지문에는 고성만, 손보미, 자상훈 등이 인신매매로 부당한 이익을 챙기다 결국 장기 밀매까지 손을 뻗친 사실이 요약되어 있었고 그 수사에 협조한 익명의 자원자들에게 감사의 뜻도 함께 담겨 있었다.그 단 하나의 공지로, 여론은 완전히 반전됐다.정월 대보름, 해남엔 보기 드문 큰 눈이 내리고 있었다.도로는 차들로 가득 막혀 10분이 지나도 백 미터를 채 움직이지 못할 정도였다.“천천히 가. 우린 여기서 내려서 좀 걸을게.”도아린은 조수석 창문을 내리며 일북에게 말했다.그리고 배건후와 함께 차에서 내려 레스토랑까지 걷기로 했다.배건후는 우산을 펼쳐 도아린의 머리 위에 씌웠다.도아린은 그의 팔에 팔짱을 끼고 두 사람이 맞잡은 손은 외투 주머니 속에 꼭 쥐어져 있었다.“춥지 않아?”그가 우산을 더 그녀 쪽으로 기울였다.“안 추워요.”도아린은 입김을 내뿜으며 활짝 웃었다.발밑에서는 바삭거리는 눈이 소리를 냈고 그녀의 머릿속에는 오래전 기억이 스쳐 갔다.돈을 마련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던 시절.어느 회사 대표라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눈밭에서 몇 시간을 버텼던 그날, 발이 얼어 서 있지도 못하고 결국 쪼그려 앉았던 그 순간
그 여자는 바로 그날 수상 레스토랑에서 진경수에게 벨트를 빌렸던 그 여자였다.하지만 오늘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짧은 티셔츠와 청 반바지 대신 격식을 갖춘 정장 느낌의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얘, 내 여동생. 그리고 이 사람은... 우리 제부.”진경수는 ‘제부’라는 단어에서 말끝을 흐렸다.여동생이 혼인신고까지 해놓고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못마땅한 듯 표정이 굳어 있었다.그건 진수혁도 마찬가지였다.“큰형님, 작은 형님.”배건후가 정중히 일어나 인사를 건넸고 도아린은 해맑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오빠들, 호칭 바꿨으니까 용돈 좀 주셔야죠?”“혼인신고도 우리 몰래 해놓고, 무슨 용돈이야?”진경수는 여전히 불만 가득한 얼굴로 배건후를 노려보다가 결국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도아린에게 내밀었다.“다시 내 동생 울리기만 해봐. 그땐 진짜 널 갈기갈기 찢어서 물고기 밥으로 줄 거야. 명심해.”“고마워요, 둘째 오빠!”도아린은 싱긋 웃으며 봉투를 받아들었고 이번엔 진수혁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진수혁 역시 말없이 봉투를 하나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도아린은 봉투를 슬쩍 비춰보며 속으로 웃었다.‘안 봐도 이건 수표네.’그녀는 배건후를 보며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내더니 말했다.“이건 제가 따로 보관할게요.”“감사합니다, 우리 아내님.”“...”진씨 형제들은 동시에 말문이 막혔다.‘쯧쯧, 벌써 아내한테 잡혀 사네...’하지만 상대가 도아린이라면, 뭐… 그럴 만했다.“근데, 여기 두 분은?”도아린은 일부러 모르는 척 눈을 반짝이며 물었고 진수혁은 변슬기를 소파에 앉히며 담담히 말했다.“예전 동료야.”변슬기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 순간, 진경수가 옆에 있던 여자를 품 안으로 확 끌어당기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부모님 말씀대로 아린이 일도 정리됐겠다... 이젠 내 차례지. 그래서 나도 결혼했어.”도아린과 배건후는 동시에 진수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둘째 오빠를 좀 본받으세요. 뭐 하세요, 진짜.’“작은 올
“...”집사는 조용히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배건후는 당연하다는 듯 도아린의 방으로 들어가 짐을 풀었고 도아린은 그런 그를 집사에게 소개했다.“이 사람은 제 남편이에요. 서재랑 아버지, 어머니, 큰오빠, 둘째 오빠 방만 빼고 어디든 자유롭게 다니게 해주세요.”두 사람은 짐을 정리하자마자 곧장 외출에 나섰다.“앞에 있는 만둣가게, 진짜 맛있어요!”가게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도아린의 시선은 창가에 앉아 노트북으로 일하던 진수혁에게 향했다.그 맞은편에는 변슬기가 앉아 있었고 다소 곤란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설득 중이었다.“여긴 패스트푸드점이에요, 카페가 아니라고요. 여기서 일하시는 건 좀...”“카페라고 생각하면 되잖아. 난 괜찮은데?”“그렇긴 해도 이렇게 계속 앉아 계시면 저희 가게 영업에 방해된다니까요!”그때 도아린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 변슬기는 반가움에 벌떡 일어났다.“도 선생님! 대표님 좀 말려주세요!”그 말에 진수혁은 고개를 돌리며 태연하게 말했다.“밥은 먹었어? 여기 만두 꽤 괜찮더라.”도아린은 황당함에 헛웃음이 났다.‘사람을 회사에서 내쫓아 놓고선 정작 본인은 여기에 눌러앉다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진짜.’막 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배건후가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내가 말할게.”도아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변슬기와 함께 옆 테이블에 앉아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그사이 배건후는 주머니에서 혼인관계증명서를 꺼내 진수혁 앞에 내려놓았다.“제가 이겼어요.”“...”진수혁은 조용히 종이를 펼쳐보고는 이를 악물었다.“너 이거 반칙 아냐?”“우린 내기했잖아요. 졌으면 인정해야죠.”“유럽 연수 그 자리, 잊지 말고 제 이름으로 신청해 주세요.”진수혁은 고개를 돌려 도아린을 바라보았고 마침 도아린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둘의 눈이 마주쳤고 자연스레 미소가 번졌다.‘이 분위기 뭐야... 완전 닭살 돋게 하네.’그 순간, 배건후는 시선을 거두고 진지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형님도 제가 예전에
‘정말로 배고픈 거야? 아니면 날 원하는 거지?’도아린은 배건후를 흘끗 쳐다보며 가위를 테이블 위에 놓고는 끌려가 밥을 먹었다.배건후의 요리 실력은 한층 더 늘어 있었고 맛뿐만 아니라 음식의 모양새도 훨씬 좋아졌다.“이제 영양식은 안 드세요?” 도아린은 일부러 그를 자극했다. “전에 어떤 사람이 고기도 안 먹고 기름진 것도 안 먹고 오래된 것도 안 먹고 부드러운 것도 안 드셨잖아요!”배건후는 매운 닭 요리를 그녀 앞으로 밀어놓으며 진심으로 사과했다.“그때는 네 관심을 끌려고 그런 거야. 그리고 몸매가 망가져서 네가 싫어할까 봐 걱정도 됐고.”“그럼 이제는 몸매 망가지는 거 걱정 안 해요?”도아린은 고기 한 조각을 집어 입에 넣었다.배건후는 가볍게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두 사람은 원래 한 사람이 요리하면 다른 한 사람이 설거지하기로 했다. 하지만 배건후는 도아린에게 설거지할 기회를 주지 않고 바로 그녀를 안아 위층으로 올라갔다.도아린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큰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배건후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그녀를 삼켜버릴 듯한 눈빛을 보였지만 쉽게 다음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다.도아린은 그가 마음속 어둠의 그림자와 싸우고 있음을 알았다.그녀는 그의 목을 감싸안고 몸을 들어 올려 그의 입술에 가볍게 입 맞추며 달랬다.“천천히 해도 돼요. 긴장하지 말고 편하게 하세요.”도아린의 위로는 곧 배건후에게 그대로 되돌아왔다.그의 이마에서 흐른 땀방울이 그녀의 흰 목 위로 떨어졌다. 그는 목소리를 낮추며 그녀의 귀를 깨물었다. “도아린, 힘 빼... 너무 긴장했어...”도아린은 그의 입을 막고 싶었지만 손가락은 그의 입에 물려 있었다. 그 후, 그녀는 머릿속이 멍해졌고 마치 거친 파도 위에서 흔들리는 작은 배가 된 것처럼 느껴졌다. 재미를 본 배건후는 그녀를 끈질기게 괴롭혔다. 도아린이 깨어났을 때는 이미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마치 어젯밤 온몸이 부서졌다가 다시 조립된 것처럼 사지가 말을 듣지 않았고 특히 허리
“배 대표님! 모든 자산을 도 대표님께 넘기신 것은 이전에 하신 일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셔서인가요? 손보미 씨가 형을 선고받았다고 들었는데 손보미 씨를 꺼내줄 계획이 있으신가요?”배건후는 차가운 눈빛으로 기자들을 한 바퀴 둘러보더니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오늘 인터뷰의 주제는 챔피언십 선수들의 숙식 안전입니다. 개인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겠습니다.”기자들이 더 질문하려 하자 도아린이 배건후의 손을 제치고 앞으로 나섰다.“숙식 문제에 대한 더 나은 제안이 있다면 제안서를 작성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수한 의견을 채택하고 그에 따라 보상을 제공할 예정입니다.”도아린은 카메라를 향해 당당하고 품위 있게 말했고 입가의 미소를 살짝 거두며 한층 위엄 있는 분위기를 자아냈다.“제 개인적인 문제로 여러분의 시간을 뺏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배건후 씨에 대해서는 몇 가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배건후는 눈빛이 살짝 흔들리며 걱정스러운 기색을 내비쳤지만 이내 담담한 표정으로 돌아왔다.도아린이 배건후에 대해 말하려 하자 기자들은 앞다투어 마이크를 내밀었다.도아린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배건후 씨는 여태까지 운영부의 팀장이었지만 오늘부터는 한경 그룹의 특별 자문입니다. 이후의 직책은 배건후씨의 능력에 따라 결정될 것입니다.”도아린의 시선은 배건후가 도아린의 말을 절대적으로 따를 거냐고 묻던 기자를 향했다.“과학 연구자, 의학 전문가, 스포츠 선수,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여성의 몸에서 태어났습니다. 여성을 존경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모욕해서는 안 됩니다.”그러자 그 기자는 얼굴이 새빨개진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조용히 사람들 사이에서 빠져나갔다.다른 기자들도 더 이상 질문을 할 기세를 잃었고 도아린은 고개를 돌려 고유리를 보며 말했다.“기자분들 고생 많으셨으니 저녁 식사 후 차량을 준비해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고유리는 기자들을 데리고 나가며 각자에게 돈 봉투를 나눠 주었다.그들은 어떤 내용을 발표할 수 있고
“뭐라도 먹고 가자.”배건후는 구운 닭 날개는 도아린에게 건네주고 주현정에게는 구운 식빵을 건네주었다.주현정은 빵을 받아 들고는 돌아서며 말했다. “천천히 이야기 나누렴. 나는 물 좀 마시러 들어갈게.”도아린은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배건후가 그녀의 손을 붙잡아서 멈췄다.두 사람은 강가의 평평한 돌 위에 앉았다.“엄마는 진짜 다 내려놓으신 걸까요?”“적어도 시작은 하신 거지. 앞으로 진 큰아버지와 큰어머니와 함께 여행 다니면 점차 나아질 거야.”배건후는 핸드폰을 꺼내고는 방금 구 경관이 보내온 사진을 열었다.“남궁유민, 즉 고성만이야. 경찰이 고성만의 집을 수색할 때 이걸 발견했어.”도아린은 마지막 닭 날개를 입에 넣고 꼬챙이를 배건후에게 건네며 핸드폰을 받아서들었다.화면 속 사진에는 루비 목걸이가 찍혀 있었다.배건후가 큰돈을 들여 샀던 화려한 디자인의 목걸이지만 전에 잃어버렸던 목걸이였다.도아린은 배건후를 바라보며 말하려 했지만 입안은 닭 날개로 가득 차있어 눈만 깜빡였다.“내가 전에 너한테 줬던 그 목걸이야. 배지유가 몰래 차다가 잃어버렸던 거.”도아린의 입은 마치 발골 기계 같았다. 닭 날개가 입에 들어갔다 나올 때면 뼈만 남았다.도아린은 손바닥에 뼈를 뱉고는 차분하게 말했다.“배지유가 어떤 남자와 잤고 그 사람이 계속해서 그녀를 영상으로 협박했어요. 그 장본인이 바로 고성만이라구요!”“...”이번에는 배건후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성만이 배지유를 협박한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목걸이를 철저히 숨겨놓고 분해해서 이미 팔아버렸을 거로 생각했거든. 그런데 그걸 집에 보관해 놓았을 줄은 몰랐어.”그것은 고성만이 자신을 위해 남겨둔 마지막 보험이었다.궁지에 몰리게 되면 목걸이를 분해해 팔고 다른 도시로 가서 새 삶을 살 계획이었을 것이다.하지만 그는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체포당하고 말았다.다음 날, 도아린은 연성으로 돌아갔다. 배건후가 신청한 챔피언십 대회 접대 임무가 승인되었기 때문이다.진수혁 역시 변
그는 입가에 얕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괜찮아. 자고충이 하나가 될 때 이런 현상이 생기는 거야. 앞으로 잘못된 일을 하지 않으면 아프지도 않을 거야.”만약 사랑하는 사람을 배신한다면 그 고통으로 인해 결국 죽게 될 것이다.도아린은 배건후의 머리를 끌어안고 고개를 들고 흘러나오는 눈물을 억지로 참으려고 애썼다.배건후는 그녀의 품속에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육원의 중첩된 지분을 손에 넣어서 너에게 혼수로 바칠게. 네가 나를 원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그래도 나는 너를 평생 지켜줄 거야.”그녀가 결국 참지 못하고 흘린 한 방울의 눈물은 그녀의 볼을 타고 떨어져 남자의 머리 위에 떨어졌다.그렇게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 빛이 어두워질 때까지 두 사람은 한동안 서로를 안고 있었다. “돌아가자.”배건후는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감싸안고 다리를 움직이며 불편했던 자세를 바꿨다.“이 근처에 야생 동물은 없지만 해가 지면 안전하지 않아.”도아린은 처음에는 감정에 휩싸여 배건후의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가 몸을 움직이자 그녀는 즉시 이상함을 느꼈다.그녀는 급히 일어나며 말했다.“돌아갈 때 건후 씨 몸이 불편하니까 제가 태워드릴게요. 그리고 내리막길이라 힘도 덜 들 거예요.”“알았어. 네 말 들을게.”자전거 핸들이 비뚤어져 있었지만 배건후는 두 다리로 바퀴를 단단히 고정한 후 힘껏 돌려 단숨에 바로 고쳤다.도아린이 자전거 앞좌석에 타고 배건후는 그녀 뒤에 앉았다.그는 얼굴을 그녀의 등에 기댄 채 내리막에서 속도가 너무 빨라지면 긴 다리를 쭉 뻗어 마찰력을 늘리며 조절했다.그들이 별장에 도착했을 때 진수혁과 변슬기도 막 돌아오고 있었다.변슬기는 도아린을 의미심장하게 쳐다보았다.도아린은 그들이 뭔가 진전이 있을 줄 알고 가서 물어보려 했지만 배건후가 붙잡았다.그는 손을 뻗어 그녀 머리 위에서 붉은 잎 하나를 떼어냈다.“...”변슬기와 진수혁이 설마 자신과 배건후가 야외에서 뭔가를 했다고 생각하진 않겠지.배건후는 오직 도아린에게만 부
두 사람은 눈이 마주쳤다.도아린은 그의 눈동자 속에 가득한 붉게 물든 단풍잎과 맑고 푸른 하늘 그리고 마음속 깊이 즐거워하며 웃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그의 깊고 그윽한 눈이 가늘게 감기며 그 속에는 격렬한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듯했다.‘그래, 이거지!’그녀는 올해 겨우 25살이었다.어린 시절 양부모 곁에서 사랑받지 못했고 장애를 겪은 후 식물인간이 된 동생을 돌보며 결혼 생활에서는 남편의 감정적 학대 속에서 버텨야 했다.그녀는 너무도 많은 행복을 잃어버린 채 살아왔다.이게 맞는 일이다.그녀는 웃어야 한다. 크게 소리 내어 마음껏 웃어야 한다.고작 25살에 불과한 그녀가 이토록 많고 무거운 책임과 압박을 짊어질 필요는 없었다.눈앞 여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점점 사라지고 배건후의 심장도 저릿해 왔다.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졌다.거친 손끝이 그녀의 부드러운 피부를 스쳤고 천천히 그녀의 눈꼬리를 눌렀다.“웃어. 앞으로 나쁜 감정들은 전부 나한테 넘겨. 내 앞에서는 일부러 강한 척 버틸 필요도 없어. 속상하면 때리고 욕해도 돼. 대신에 절대 자신을 괴롭히지 마.”도아린은 코끝이 찡해지고 눈가가 뜨거워지더니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다.그녀는 급히 일어나 뒤돌아 눈물을 닦으려 했다.그 순간 힘센 팔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았고 특유의 나무 향기가 그녀를 감쌌고낮고 깊은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여태까지 내가 나쁜 놈이었어. 미안해. 앞으로는 모든 일을 너와 상의할게. 네가 싫어하는 건 하지 않을 거고 네가 속상해할 일도 만들지 않을 거야.”도아린은 팔꿈치로 그를 툭 쳤다.“입만 살아서!”배건후는 그녀의 어깨를 잡고 돌려세운 뒤 품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도아린은 미간을 찌푸렸다.“아직 육원의 중첩된 지분을 손에 넣지도 못했잖아요. 그리고 저도 아직...”이후의 말은 더 이상할 수 없었다.배건후가 상자를 열었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은 청혼의 반지가 아니었다.작고 빨간 벌레가 들어 있었는데 다리가 없고 온몸이 부드러웠으며
변슬기는 바쁜 듯 뒤돌아보며 기대와 불안이 섞인 표정을 지었다."좋아요." 진수혁은 흔쾌히 대답했다. 이미 옷을 갈아입었기 때문이다. 배건후는 세 사람을 보고 눈빛이 흔들렸다. 빌라에는 자전거가 두 대 있었는데, 도아린과 함께 드라이브를 나가기 위해 일부러 다른 자전거의 페달을 떼어 놓았던 것이다. 도아린은 자전거를 보고 그에게 너 정말 얄밉다'는 눈빛을 보내며 빨리 고치라고 신호를 보냈다. 자전거를 고치고 네 사람은 문밖으로 나갔다. "꽉 잡아."배건후는 도아린이 자신의 허리를 감싸 안자 힘껏 페달을 밟았고, 자전거는 비탈길을 미끄러져 작은 길로 향했다.변슬기는 진수혁에게 감히 손을 대지 못하고 자전거 뒤쪽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진수혁은 자전거 타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듯 비틀거렸다. 변슬기는 "저, 제가 밀어드릴까요...거의 정상에 도착하면, 그때 저를 밀어주세요."라고 제안했다. 진 대표님의 속도로는 누가 먼저 정상에 도착할지 내기는커녕,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도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진수혁은 아무 말 없이 계속 비틀거렸다. 변슬기는 거의 넘어질 뻔했고, 황급히 남자의 허리를 붙잡았다. 자전거는 갑자기 비틀거리지 않았고, 속도도 빨라졌다. 변슬기: "..."배건후는 도아린을 태우고 산길을 누볐고, 도아린은 뒤쪽 페달을 밟으며 일어섰다. 두 손으로 그의 어깨를 누르고, 짧은 머리카락은 바람에 휘날렸다. "산속 공기가 도시보다 훨씬 좋네요. 매연 냄새도 없고, 에어컨 냄새도 안 나고." 배건후는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살짝 몸을 일으켰다. "어제 비가 왔으면 더 좋았을 텐데." "당신도 비 온 뒤 흙냄새 좋아해요?" 도아린은 배건후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의 귓가에 웃으며 말했다. "나도 좋아해요! 비 온 뒤 흙과 풀이 섞인 냄새는 기분을 좋게 만들어요!" 배건후는 입꼬리를 올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아린은 잠시 침묵하다가 깨달았다. 배건후가 말한 것은 바로 그녀가 좋아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더욱 환한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