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수술이 끝난 지 사흘째 되던 날 아침, 창밖으로 눈부신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겨울 햇살이 수술실을 개조한 임시 침실 안으로 은은하게 쏟아져 들어왔다.밀라는 온몸을 짓누르는 거대한 무게감 속에서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 올렸다. 숨을 쉴 때마다 가슴팍을 사정없이 찌르는 둔탁한 통증이 밀려왔지만, 그 통증조차 자신이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희미한 시야 사이로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자신의 하얀 손을 두 손으로 꼭 쥔 채 침대 곁에 머리를 묻고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알렉세이의 모습이었다.핏발 선 눈과 거칠게 자라난 턱수염, 그리고 며칠 동안 한 차례도 옷을 갈아입지 못한 듯 피비린내와 약품 냄새가 섞인 그의 옷자락. 세상을 호령하던 마피아 보스의 오만한 자태는 온데간데없이,그곳에는 오직 사랑하는 여인의 생사를 기다리며 피를 말린한 남자의 참혹한 껍데기만이 남아있었다."……알렉세이."밀라의 갈라지고 가녀린 목소리가 고요한 방 안을 나지막하게 울렸다.그 짧은 속삭임에 알렉세이가 번개에 맞은 듯 번쩍 눈을 떴다.충혈된 그의 푸른 눈동자가 떨리며 밀라의 얼굴을 담아냈다.텅 비어있던 그의 눈에 순식간에 거대한 안도감과 뜨거운 물기가 차올랐다."밀라……! 정신이 드는 건가? 의사! 당장 의사를 불러라!"알렉세이가 이성을 잃고 소리치려 하자,밀라는 힘겹게 미소를 지으며 알렉세이의 억센 손을 살포시 쥐었다."조용히 좀... 조용히 하세요…… 환자 앞에서 너무 시끄럽잖아요.""아…… 미안. 내가 또 서툴렀군."거대하고 잔인한 마피아 군주가 밀라의 말 한마디에 순한 양처럼 고개를 숙였다.알렉세이는 밀라의 손을 자신의 뺨에 가져다 대며 조심스럽게 쓸어내렸다.그의 뺨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이 밀라의 손등을 적셨다.피에 젖은 야수가 마침내 자신의 구원자를 되찾은 순간이었다.그로부터 며칠의 시간이 더 흘렀다.유럽 최고 의료진의 집도와 알렉세이의 지극정성 어린 간호 덕분에밀라는 고비를 넘기고 안정을 되찾아 일반 요양 병실로 자리를
알렉세이가 수술실 앞 대기실에 홀로 무릎을 꿇은 채밀라의 생사를 기원하며 참회의 기도를 올리는 동안,그의 친부이자 전 세계 지하 세계를 호령하는 거물,돈 바실리 코르네의 진짜 무자비함이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러시아 전역을 사정없이 덮쳤다.자신의 혈육을 기만하고, 그 혈육을 구하려던 성녀에게 총을 쏜 보로닌 가문을 향한전대미문의 피의 숙청이 시작된 것이다."이반과 소냐, 그리고 보로닌의 모든 숨통을 끊어 놓아라. 단 한 명도 이 땅 위에 살아 숨 쉬게 두지 마라."바실리의 얼음처럼 차가운 명령 한 마디에유럽 각지에서 긴급 소집된 정예 암살조와 코르네 가문의 직계 사냥개들이 풀려났다.그들은 이반의 잔당들이 쥐새끼처럼 숨어든 은신처와 밀매 경로를샅샅이 뒤지며 핏빛 단죄를 이어나갔다.이 혼란 속에서 가문의 권력 구조 역시 정교하고 거대하게 재편되기 시작했다.바실리 코르네는 이반의 공작으로 흔들렸던 이바노프 가문의 남은 조직과 군사력을오랜 세월 알렉세이의 곁을 지켜온 충직한 오른팔, 안드레이에게 위임했다.현장을 지휘하고 조직의 통제력을 회복하는 데 안드레이만 한 인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그리고 바실리는 자신의 모든 직계 자산과 세계적인 금융망,그리고 코르네 가문이 가진 전설적인 유산의 정식 승계자로 자신의 유일한 친자,알렉세이를 선언했다.알렉세이는 그동안 가짜 혈통이라는 굴레와 마피아 보스라는 더러운 이름 뒤에스스로를 가두어 왔었다.그러나 성녀 밀라의 대속적 피와 희생을 거치며,그 오만한 야수는 마침내 코르네 가문의 정통 유지를 잇는 진짜 군주로 거듭나게 된 것이었다.알렉세이가 정식으로 코르네 가문의 거대한 자금줄을 쥐고안드레이가 이바노프의 잔당들을 총통솔하자,보로닌 가문이 탐내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무역 항구와 지하 금융망은단 하룻밤 만에 완벽하게 동결되었다.이반이 자랑하던 다정한 가면과 졸렬한 지략은전 세계 지하 세계의 거장이 친자에게 직접 쥐여준 압도적인 화력과 자금력 앞에서는한낱 먼지 조각에 불과했다.어깨와 손목
바실리 코르네가 전용기로 공수해 온 유럽 최고의 의료진이이반의 저택 최상층을 임시 수술실로 개조했다.차가운 수술대 위로 옮겨진 밀라의 순백색 드레스는거칠게 찢겨 나가며 이미 붉은 피로 온통 물들어 있었다.밀라의 희고 가녀린 가슴팍 깊숙이 박힌 권총 탄환을 제거하고터진 혈관을 봉합하는 사투가 긴박하게 이어졌다.수술실 문 밖,알렉세이는 자신의 검은 가죽 장갑과 옷자락에 묻은 밀라의 핏자국을씻어내지도 못한 채 차가운 벽에 기대어 굳은 동상처럼 얼어붙어 멀뚱히 서 있었다."……."그의 푸른 눈동자는 초점을 잃은 채 텅 비어 있었다.손끝에서 뚝뚝 떨어지던 밀라의 피는 이미 검붉게 착색되어가죽 장갑 위에서 딱딱하게 마르고 있었다.평생 신을 원망하고 저주하며,피와 폭력, 힘만이 지배하는 지하 세계의 군주로 살겠노라 다짐했던 사내였다.타인의 통곡에 눈 하나 끔벅이지 않던 그였으나,자신을 대신해 총을 맞고 가냘픈 나비처럼 자신의 품으로 쓰러지던 밀라를 본 순간,알렉세이의 오만한 영혼은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친부 돈 바실리가 다가와 묵직하게 그의 어깨를 짚었지만,알렉세이는 다른 세계에 있는 양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세상의 그 어떤 권력도, 수천 명의 대원도, 거대한 자금력도지금 저 수술실 안에서 식어가고 있는 성녀의 생명을 단 1초도 연장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그를 사정없이 짓눌렀다.알렉세이는 천천히 복도를 걸어 나와 수술실 옆에 위치한작은 대기실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그리고 차가운 대리석 바닥 위로 털썩 무릎을 꿇었다.어릴 적 어머니의 고결한 손을 잡고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성당에 가빅토르에게 마지막으로 고해성사를 한 이후,마피아의 세상에, 이바노프의 집으로 던져지며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행위였다.알렉세이는 피로 더러워진 두 손을 모아 쥐고,십자가조차 달려있지 않은 빈 벽면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신이여……."낮게 갈라진 그의 목소리가 피비린내 나는 방 안의 적막을 비참하게 찢었다."당신의 종이라 자
"의사를 불러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모든 명의를 동원해라!"알렉세이의 핏빛 고함이 보로닌 저택의 참혹한 복도를 사정없이 흔들었다.피투성이가 된 검은 가죽 재킷에 싸여 알렉세이의 두 팔에 안긴 밀라의 몸은가냘픈 나뭇잎처럼 서서히 식어가고 있었다.순백색 드레스위로 퍼져나간 피는 멈추지 않고 흘러내려,알렉세이가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대리석 바닥 위로 붉은 구원의 궤적을 그려냈다.자신이 목숨보다 아끼고 지켜주고 싶었던 구원자.피 묻은 손으로 그 고결한 피부를 감히 더럽히는 것조차 두려워스스로를 밤마다 죄책감의 감옥에 가두었던 그녀가...지금 자신 같은 피비린내 나는 악마를 대신해 총탄을 맞고 피를 흘리고 있었다.자신이 살아온 수십 년의 피비린내 나는 삶 전체가이 순간 거대한 죄악의 무게가 되어 알렉세이의 목을 옥죄어 왔다."밀라…… 제발, 눈을 떠라. 밀라……!"알렉세이는 저택 외곽에 대기 중이던 장갑차 후송 침대 위로 밀라를 조심스럽게 누였다.지옥의 광기마저 집어삼켰던 마피아 군주의 손이 미친 듯이 떨리고 있었다.핏발 선 그의 푸른 눈동자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려 밀라의 차가운 뺨에 붉은 피와 함께 떨어졌다.그는 유년 시절,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차가운 성당 밑바닥에서피비린내 나는 마피아의 세상으로 내던져졌을 때 신을 원망하며 외면했었다.피를 묻히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었던 이 더러운 세상에서신이란 위선자들의 허구일 뿐이라 믿었다.하지만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여자가 자신을 위해 대속의 피를 흘린 이 순간,그가 평생 외면했던 신의 거대한 천벌과 죄의식이 그의 영혼을 사정없이 짓밟았다.알렉세이는 피로 물든 밀라의 가슴 위,피범벅이 된 십자가를 억센 가죽 장갑 낀 손으로 그러쥐었다.그리고 차가운 철제 바닥 위로 털썩 무릎을 꿇었다."신이시여……!"알렉세이의 입에서 평생 단 한 번도 내뱉은 적 없었던, 피에 젖은 절규가 터져 나왔다."내 모든 죄를 부수고 나를 지옥의 가장 깊은 불구덩이에 던져도 좋습니다! 내 사지를 찢어 개
“그렇다면 같이 지옥으로 가자, 마이 레이디.”이반의 눈이 광기와 몰락의 공포로 완전히 뒤집혔다.자신의 완벽했던 다정한 가면도, 보로닌 가문의 성채도 모두 무너져 내린 상황에서이반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밀라를 제물 삼아 모두를 파멸로 밀어 넣는 것뿐이었다.그의 손가락이 밀라의 관자놀이를 향해 억세게 힘을 가하며 방아쇠를 집어당겼다.찰나의 순간, 알렉세이가 몸을 날렸다.피로 물든 그의 검은 군화가 차가운 대리석 바닥을 사정없이 차올렸고,그의 오른손에 쥐어져 있던 단검이 공기를 가르며 이반의 어깨를 깊숙이 파고들었다.콰직-!"아아아악-!"이반이 고통으로 비명을 지르며 궤도가 틀어진 권총의 총구가 허공을 향했다.탕-! 거친 총성이 지하 고문실의 사방 벽을 사정없이 때리며 메아리쳤다.탄환은 밀라의 관자놀이를 비껴가 벽면에 기괴한 불꽃을 튀기며 박혔다.하지만 파멸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이반이 비틀거리며 단검을 뽑아내려던 순간,발악하듯 다시 한번 권총의 방아쇠를 막무가내로 당겼다.이번 총구는 알렉세이의 가슴을 직격하고 있었다.이반의 손가락이 조여드는 그 1초도 되지 않는 짧은 순간,알렉세이는 자신이 총에 맞는 것보다 밀라를 보호하기 위해 그녀를 감싸 안으려 손을 뻗었다.그러나 알렉세이가 총에 맞아 쓰러지는 모습을 원치 않았던 밀라의 행동이 한발 더 빨랐다."안 돼요-!"밀라는 찢겨진 드레스 자락을 그러쥐고 있던 손을 놓으며,온몸을 던져 알렉세이의 가슴 앞을 막아서 버렸다.탕-!두 번째 총성이 고문실의 적막을 기괴하게 찢었다.둔탁하고 핏빛 가득한 파열음과 함께,밀라의 순백색 드레스 위로 순식간에 붉은 피가 거대한 꽃처럼 만개하며 피어났다.차가운 고문실 조명 아래, 그녀의 희고 가녀린 어깨와 뽀얀 피부 위로 번지는 핏방울은오싹할 정도로 참혹하고 고결했다."밀라……!"알렉세이의 시야가 하얗게 마비된 뒤 핏빛으로 물들었다.밀라의 가녀린 몸이 마른 잎사귀처럼 바르르 떨리며알렉세이의 단단한 품 안으로 무너져 내렸다.알
지하 고문실의 축축한 대리석 바닥에 떨어진 총기류의 노리쇠 소리가오싹하게 메아리쳤다.소총을 바닥에 내던진 알렉세이가맨손으로 이반과 밀라를 향해 한 걸음씩 내딛기 시작했다.피로 붉게 물든 그의 검은 군화 끝에서핏방울이 뚝뚝 떨어지며 바닥에 진득하게 번져갔다.이성의 끈이 끊어진 마피아 군주의 전신에서는사방의 산소마저 집어삼킬 듯 무시무시한 정적과 살기가 흘러넘치고 있었다."이반, 그 손 놓아라. 네 놈의 사지를 찢어 바다에 던지기 전에."알렉세이의 낮고 거친 목소리가 고문실 안을 무겁게 내리눌렀다.그의 푸른 눈동자는 광기로 핏발이 서 있었지만,그 시선 밑바닥에는 찢겨진 드레스 사이로 반나의 몸이 노출된 채바닥에 앉아 있는 밀라를 향한 참담함과 안타까움이 한없이 도사리고 있었다.이반은 관자놀이에 대고 있던 총구를 더욱 깊게 짓누르며,밀라의 찢겨진 드레스 어깨 자락을 가학적으로 움켜잡았다.그는 사방을 에워싼 알렉세이 대원들의 압도적인 전력 앞에서도미친 듯한 실소를 터뜨렸다.이미 가문의 저택이 짓밟히고 자신의 다정한 가면마저 벗겨진 이상,이반에게 남은 것은 퇴폐적인 악의와 굴욕감뿐이었다."알렉세이, 네 놈이 돈 바실리의 세력을 등에 업고 이 성을 함락한 건 인정하지. 하지만 착각하지 마라."이반의 비열한 입술이 비틀리며 가학적인 오만을 드러냈다."이 여자의 몸을 지배하고 그 옷을 찢어발긴 건 나다. 이 레이디는 이곳에서 나의 보살핌을 받으며 잠시나마 내 다정함에 마음을 열었어. 너 같은 폭력적인 괴물에게 이 고결한 여자가 정말로 돌아갈 거라 생각하나?"이반의 간사한 도발이 고문실의 피비린내를 타고 번지자,알렉세이의 억센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자신이 폭력으로 밀라를 감금하고 괴물처럼 굴었던 과거의 죄의식이,이반의 거짓된 말과 교차하며 알렉세이의 가슴에 가시처럼 박힌 것이었다.자신이 구원하려 했던 성스런 밀라가 정말로 저 위선자의 다정함에 흔들렸다면,자신이 펼치는 이 피비린내 나는 전쟁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죄악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