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카라가 밀라의 병실을 찾아와 한참 동안 수다를 떨며 온기를 불어넣은 지어느덧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있었다.밀라가 카라의 밝은 에너지 덕분에 피로를 덜고 한결 편안해진 표정을 짓자,카라는 스스로 자리에서 일어났다.아무리 아쉬워도 환자인 밀라에게 무리가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카라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오늘은 이만 갈게, 밀라. 이제 좀 쉬어야지.. 내가 매일 매일 올 테니까, 꼭 약 잘 먹고 푹 쉬고 있어, 알았지?""그래. 고마워, 카라. 조심히 들어가."카라는 밀라에게 손을 흔들어 보인 뒤,병실 문손잡이를 잡고 외출용 외투를 여몄다.병실 문을 열고 나서자마자,복도에 바위처럼 부동자세로 서 있던 데릭이 시계를 확인하더니카라를 향해 무심하게 시선을 내리꽂았다."약속한 시간이 지났습니다, 카라 양.""알았어요, 알아. 나도 내 발로 나오는 중인거 안보여요? 마피아 아저씨가 눈총 안 줘도 알아서 집에 가니까 신경 끄세요. 그리고!! 밀라 보러 매일 올테니, 다음부턴 나 막지 말아요. 알았죠?"'하, 말끝마다 아저씨라고 하네..?!?'카라가 턱을 톡 쳐들며 데릭을 향해 눈을 흘겼다.데릭은 여전히 표정 없는 얼굴로 카라의 지나가는 길을 터주며 묵직하게 덧붙였다."엘리베이터 앞까지 경호원이 동행할 겁니다. 밖은 아직 위험합니다.""진짜 지나칠 정도로 철저하시네. 피도 안 나올 인조인간 ……."카라가 중얼거리며 복도를 가로질러엘리베이터 로비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복도 맞은편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보스의 오른팔이자 가문의 총통솔자인 안드레이가경호원 몇 명을 대동한 채 묵직한 걸음걸이로 모습을 드러냈다.알렉세이의 지시로 현장 상황을 보고하고,마담 밀라의 안위를 직접 재점검하기 위해 VIP 병동에 막 도착한 참이었다.데릭이 안드레이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안드레이.""별일 없나, 데릭? 마담께선 잘 쉬고 계신가?""예. 방금 검진을 마치셨고 지금 휴식 중이십니다
알렉세이가 가문의 잔당 소탕과 유럽 네트워크 정리를 위해상트페테르부르크를 비운 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밀라가 입원해 있는 VIP 전용 병동 층은 정막하리만치 조용했다.그러나 그 정적은 평화로움이 아닌,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병동 복도 양옆으로는 정갈하게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경호원들이삼엄한 경계를 서고 있었고,그 중심에는 알렉세이의 왼팔이자 전담 경호실장인 데릭이 바위처럼 버티고 서 있었다."이봐요, 마피아 아저씨. 저리 좀 비켜봐요. 나, 내 친구 보러 들어가야 하니까."복도 끝에서 구두 굽 소리를 닥닥 내며 다가온 카라가턱을 도도하게 쳐들며 데릭의 앞을 막아섰다.데릭은 카라를 내려다보며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칼로 잘라낸 듯 각진 턱선과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눈빛.데릭은 훈련받은 기계처럼 무심한 목소리로 카라의 길을 막아섰다."마담께서는 방금 의료진의 검진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시는 중입니다. 보스께서 그 누구의 출입도 엄격히 제한하셨습니다.""뭐요? 그 '누구'에 나까지 포함된다는 소리에요? 나 카라예요! 밀라의 하나뿐인 친구라고요! 당신이 직접 밀라에게 데리고 와 놓고 이제와서 모른척 하는 건가요?? "카라가 기가 차다는 듯 양손을 허리에 얹으며 빽 소리를 질렀다.하지만 데릭은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았다."보스의 명령입니다. 마담의 안정이 최우선입니다.""하! 마담? 마담 같은 소리 하고 있네."카라가 코웃음을 치며 데릭에게 한 걸음 바짝 다가섰다."이봐요. 마피아 아저씨.. 그때 기억 안 나요? 겔렌지크 섬인가 뭔가에서 나를 무지막지하게 들쳐메고 끌고 갔던거? 나를 짐짝처럼 끌고간 그 짐승 같은 놈 맞죠? 내가 그때부터 알아봤어요. 당신은 사람 말을 못알아 듣는 인간 로봇이죠?"카라의 날카로운 비꼬음에도 데릭의 표정은 수평선을 유지했다.그러나 그의 묵직한 시선은 카라의 얼굴로 천천히 내리꽂혔다."당시 상황은 보스의 지시였고, 당신의 생명을 확보하기
수술이 끝난 지 사흘째 되던 날 아침, 창밖으로 눈부신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겨울 햇살이 수술실을 개조한 임시 침실 안으로 은은하게 쏟아져 들어왔다.밀라는 온몸을 짓누르는 거대한 무게감 속에서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 올렸다. 숨을 쉴 때마다 가슴팍을 사정없이 찌르는 둔탁한 통증이 밀려왔지만, 그 통증조차 자신이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희미한 시야 사이로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자신의 하얀 손을 두 손으로 꼭 쥔 채 침대 곁에 머리를 묻고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알렉세이의 모습이었다.핏발 선 눈과 거칠게 자라난 턱수염, 그리고 며칠 동안 한 차례도 옷을 갈아입지 못한 듯 피비린내와 약품 냄새가 섞인 그의 옷자락. 세상을 호령하던 마피아 보스의 오만한 자태는 온데간데없이,그곳에는 오직 사랑하는 여인의 생사를 기다리며 피를 말린한 남자의 참혹한 껍데기만이 남아있었다."……알렉세이."밀라의 갈라지고 가녀린 목소리가 고요한 방 안을 나지막하게 울렸다.그 짧은 속삭임에 알렉세이가 번개에 맞은 듯 번쩍 눈을 떴다.충혈된 그의 푸른 눈동자가 떨리며 밀라의 얼굴을 담아냈다.텅 비어있던 그의 눈에 순식간에 거대한 안도감과 뜨거운 물기가 차올랐다."밀라……! 정신이 드는 건가? 의사! 당장 의사를 불러라!"알렉세이가 이성을 잃고 소리치려 하자,밀라는 힘겹게 미소를 지으며 알렉세이의 억센 손을 살포시 쥐었다."조용히 좀... 조용히 하세요…… 환자 앞에서 너무 시끄럽잖아요.""아…… 미안. 내가 또 서툴렀군."거대하고 잔인한 마피아 군주가 밀라의 말 한마디에 순한 양처럼 고개를 숙였다.알렉세이는 밀라의 손을 자신의 뺨에 가져다 대며 조심스럽게 쓸어내렸다.그의 뺨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이 밀라의 손등을 적셨다.피에 젖은 야수가 마침내 자신의 구원자를 되찾은 순간이었다.그로부터 며칠의 시간이 더 흘렀다.유럽 최고 의료진의 집도와 알렉세이의 지극정성 어린 간호 덕분에밀라는 고비를 넘기고 안정을 되찾아 일반 요양 병실로 자리를
알렉세이가 수술실 앞 대기실에 홀로 무릎을 꿇은 채밀라의 생사를 기원하며 참회의 기도를 올리는 동안,그의 친부이자 전 세계 지하 세계를 호령하는 거물,돈 바실리 코르네의 진짜 무자비함이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러시아 전역을 사정없이 덮쳤다.자신의 혈육을 기만하고, 그 혈육을 구하려던 성녀에게 총을 쏜 보로닌 가문을 향한전대미문의 피의 숙청이 시작된 것이다."이반과 소냐, 그리고 보로닌의 모든 숨통을 끊어 놓아라. 단 한 명도 이 땅 위에 살아 숨 쉬게 두지 마라."바실리의 얼음처럼 차가운 명령 한 마디에유럽 각지에서 긴급 소집된 정예 암살조와 코르네 가문의 직계 사냥개들이 풀려났다.그들은 이반의 잔당들이 쥐새끼처럼 숨어든 은신처와 밀매 경로를샅샅이 뒤지며 핏빛 단죄를 이어나갔다.이 혼란 속에서 가문의 권력 구조 역시 정교하고 거대하게 재편되기 시작했다.바실리 코르네는 이반의 공작으로 흔들렸던 이바노프 가문의 남은 조직과 군사력을오랜 세월 알렉세이의 곁을 지켜온 충직한 오른팔, 안드레이에게 위임했다.현장을 지휘하고 조직의 통제력을 회복하는 데 안드레이만 한 인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그리고 바실리는 자신의 모든 직계 자산과 세계적인 금융망,그리고 코르네 가문이 가진 전설적인 유산의 정식 승계자로 자신의 유일한 친자,알렉세이를 선언했다.알렉세이는 그동안 가짜 혈통이라는 굴레와 마피아 보스라는 더러운 이름 뒤에스스로를 가두어 왔었다.그러나 성녀 밀라의 대속적 피와 희생을 거치며,그 오만한 야수는 마침내 코르네 가문의 정통 유지를 잇는 진짜 군주로 거듭나게 된 것이었다.알렉세이가 정식으로 코르네 가문의 거대한 자금줄을 쥐고안드레이가 이바노프의 잔당들을 총통솔하자,보로닌 가문이 탐내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무역 항구와 지하 금융망은단 하룻밤 만에 완벽하게 동결되었다.이반이 자랑하던 다정한 가면과 졸렬한 지략은전 세계 지하 세계의 거장이 친자에게 직접 쥐여준 압도적인 화력과 자금력 앞에서는한낱 먼지 조각에 불과했다.어깨와 손목
바실리 코르네가 전용기로 공수해 온 유럽 최고의 의료진이이반의 저택 최상층을 임시 수술실로 개조했다.차가운 수술대 위로 옮겨진 밀라의 순백색 드레스는거칠게 찢겨 나가며 이미 붉은 피로 온통 물들어 있었다.밀라의 희고 가녀린 가슴팍 깊숙이 박힌 권총 탄환을 제거하고터진 혈관을 봉합하는 사투가 긴박하게 이어졌다.수술실 문 밖,알렉세이는 자신의 검은 가죽 장갑과 옷자락에 묻은 밀라의 핏자국을씻어내지도 못한 채 차가운 벽에 기대어 굳은 동상처럼 얼어붙어 멀뚱히 서 있었다."……."그의 푸른 눈동자는 초점을 잃은 채 텅 비어 있었다.손끝에서 뚝뚝 떨어지던 밀라의 피는 이미 검붉게 착색되어가죽 장갑 위에서 딱딱하게 마르고 있었다.평생 신을 원망하고 저주하며,피와 폭력, 힘만이 지배하는 지하 세계의 군주로 살겠노라 다짐했던 사내였다.타인의 통곡에 눈 하나 끔벅이지 않던 그였으나,자신을 대신해 총을 맞고 가냘픈 나비처럼 자신의 품으로 쓰러지던 밀라를 본 순간,알렉세이의 오만한 영혼은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친부 돈 바실리가 다가와 묵직하게 그의 어깨를 짚었지만,알렉세이는 다른 세계에 있는 양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세상의 그 어떤 권력도, 수천 명의 대원도, 거대한 자금력도지금 저 수술실 안에서 식어가고 있는 성녀의 생명을 단 1초도 연장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그를 사정없이 짓눌렀다.알렉세이는 천천히 복도를 걸어 나와 수술실 옆에 위치한작은 대기실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그리고 차가운 대리석 바닥 위로 털썩 무릎을 꿇었다.어릴 적 어머니의 고결한 손을 잡고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성당에 가빅토르에게 마지막으로 고해성사를 한 이후,마피아의 세상에, 이바노프의 집으로 던져지며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행위였다.알렉세이는 피로 더러워진 두 손을 모아 쥐고,십자가조차 달려있지 않은 빈 벽면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신이여……."낮게 갈라진 그의 목소리가 피비린내 나는 방 안의 적막을 비참하게 찢었다."당신의 종이라 자
"의사를 불러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모든 명의를 동원해라!"알렉세이의 핏빛 고함이 보로닌 저택의 참혹한 복도를 사정없이 흔들었다.피투성이가 된 검은 가죽 재킷에 싸여 알렉세이의 두 팔에 안긴 밀라의 몸은가냘픈 나뭇잎처럼 서서히 식어가고 있었다.순백색 드레스위로 퍼져나간 피는 멈추지 않고 흘러내려,알렉세이가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대리석 바닥 위로 붉은 구원의 궤적을 그려냈다.자신이 목숨보다 아끼고 지켜주고 싶었던 구원자.피 묻은 손으로 그 고결한 피부를 감히 더럽히는 것조차 두려워스스로를 밤마다 죄책감의 감옥에 가두었던 그녀가...지금 자신 같은 피비린내 나는 악마를 대신해 총탄을 맞고 피를 흘리고 있었다.자신이 살아온 수십 년의 피비린내 나는 삶 전체가이 순간 거대한 죄악의 무게가 되어 알렉세이의 목을 옥죄어 왔다."밀라…… 제발, 눈을 떠라. 밀라……!"알렉세이는 저택 외곽에 대기 중이던 장갑차 후송 침대 위로 밀라를 조심스럽게 누였다.지옥의 광기마저 집어삼켰던 마피아 군주의 손이 미친 듯이 떨리고 있었다.핏발 선 그의 푸른 눈동자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려 밀라의 차가운 뺨에 붉은 피와 함께 떨어졌다.그는 유년 시절,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차가운 성당 밑바닥에서피비린내 나는 마피아의 세상으로 내던져졌을 때 신을 원망하며 외면했었다.피를 묻히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었던 이 더러운 세상에서신이란 위선자들의 허구일 뿐이라 믿었다.하지만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여자가 자신을 위해 대속의 피를 흘린 이 순간,그가 평생 외면했던 신의 거대한 천벌과 죄의식이 그의 영혼을 사정없이 짓밟았다.알렉세이는 피로 물든 밀라의 가슴 위,피범벅이 된 십자가를 억센 가죽 장갑 낀 손으로 그러쥐었다.그리고 차가운 철제 바닥 위로 털썩 무릎을 꿇었다."신이시여……!"알렉세이의 입에서 평생 단 한 번도 내뱉은 적 없었던, 피에 젖은 절규가 터져 나왔다."내 모든 죄를 부수고 나를 지옥의 가장 깊은 불구덩이에 던져도 좋습니다! 내 사지를 찢어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