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7화

룸은 고작 대 여섯 명 정도밖에 수용을 못하는 크기였는데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들이닥쳤으니 얼마나 비좁을까.

기골이 장대한 남자들은 몸에 문신을 하고 있어 엄청난 위압감을 조성했다.

또한 그들은 바닥에 쓰러진 네 명과는 달리 유상혁의 부하들로서 격투에 능한 고수들이었다.

서태훈은 순간 얼굴이 창백해져 두 다리를 벌벌 떨며 애원했다.

“성 대표님! 제 아들 좀 살려주세요! 모두 제 잘못입니다! 제가...”

“꺼져!”

성민은 서태훈과 서현우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시선은 어둠 속에서 서현우의 앞을 막고 서있는 홍성에게 향했다. 싸늘하고 음험한 눈빛으로 자신을 죽일 뻔한 여자를 노려보았다.

“너는 서현우의 여자친구야?”

성민이 입술을 핥더니 히죽 웃으며 말했다.

“쟤가 도망자 신세인 건 알아? 너한테 기회를 줄게. 지금 꿇고 사과하면 방금 있었던 일은 없던 걸로 해주지. 앞으로 날 따라.”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주제 파악을 못하는 꼴이란.”

서현우가 담담한 눈빛으로 말했다.

“처리해.”

“하하하...”

그의 말에 성민이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올해 들었던 얘기 중에 제일 웃기는군! 서현우, 너는 예전의 서 도련님이 아냐. 아직도 허세를 부려? 군복을 입으니 세상 다 가진 것 같아?”

성민은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꼬고 주머니에서 시가 한 대를 꺼내 불을 붙이고 깊게 한 모금 빨아들이고 연기를 뱉으며 말을 이었다.

“너한테도 기회를 줄게. 무릎 꿇고 나한테 빌어. 그럼 목숨만은 살려줄게. 아니면...”

성민은 한껏 음산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내년의 오늘이 너와 네 아비의 기일이 될 거야!”

“닥쳐!”

홍성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위협했다.

“이분이 누군 줄 알고 감히 모욕해? 너...”

서현우가 홍성의 어깨를 툭툭 치며 그녀의 말을 잘랐다.

그는 굳이 신분을 숨기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서태훈이 있는 자리에서 밝히고 싶지는 않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술에 찌들어 살았던 탓에 이 지경이 되어버린 무책임한 아버지가 만약 그가 남강의 총사령관이라는 사실을 알면 서현우의 신분을 빌어 경거망동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서현우는 아버지를 없는 셈 쳐도 되었지만 피는 물보다 진한 것이 아닌가. 그는 서태훈으로 인해 남강 총사령관이라는 직위에 먹칠을 하고 싶지 않았다.

“계속하지 왜? 대본이 부족해?”

성민이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대신해줄까? 서씨 가문의 도련님이자 도망자 신세지. 진씨 가문의 원한을 산 서태훈 늙은 개의 개새끼! 어이구, 무서워라!”

잔에 든 술을 마신 성민이 기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얘기했지. 너희한테 기회를 준다고. 얼른 얌전히 꿇고 사과해. 그렇지 않으면... 헤헤.”

모든 사람들이 홍성을 보는 눈빛에는 희롱과 탐욕이 담겼다.

이렇게 예쁜 여자는 미녀가 많은 중연시에서도 드물었다. 또한 여리지만은 않은 그녀의 기세에 분명 그녀를 안으면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 생각하는 그들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그들은 피가 들끓으며 당장이라도 그녀를 안고 싶었다.

서현우가 고개를 저었다.

개미가 주제를 모르고 사람의 다리에 기어올라 이빨을 드러내고 문다면 죽일 수밖에.

“기회를 줘서 고맙긴 한데 나는 당신에게 기회를 줄 생각 없어.”

그는 홍성의 어깨에 올렸던 손을 내렸다.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서현우가 앞으로 나서서 서태훈의 팔을 잡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중 팔에 문신을 한 남자가 그들을 막으려고 했지만 성민이 말했다.

“가게 둬. 이 여자만 남으면 됐어. 밖에 있는 애들한테 서씨 가문의 가주와 도련님 잘 모시라고 해.”

팔에 문신을 한 남자는 그의 말에 히죽 웃으며 길을 터주었다.

서현우와 서태훈은 아무런 저항 없이 룸을 나섰지만 복도에서 의미심장하게 그들을 향해 웃고 있는 노래방 직원들을 발견했다.

“넌 빨리 가!”

서태훈은 서현우의 손을 뿌리치고 그를 한쪽으로 밀치고는 혼자 직원들을 향해 덤비려고 했다.

위협적인 표정을 지었지만 그의 나약함과 공포를 감추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스스로 모든 사람을 상대하여 아들을 무사히 호랑이 굴에서 구출하겠다는 다짐뿐이었다.

서현우는 재빨리 서태훈의 어깨를 잡았다. 조금은 마음이 따뜻해졌다.

무책임한 아버지였지만 마지막에는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진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서현우는 그를 용서할 수는 없었다.

서태훈이 아니었다면 그의 어머니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열 명이 넘는 부하들이 그들을 포위했다.

그들이 손을 쓰기도 전에 룸에서 비명 소리와 물건이 부딪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부하들은 당황한 기색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때 룸의 문이 열리며 홍성이 멀쩡하게 걸어 나왔다.

“여기 정리해.”

말을 마친 서현우는 룸에 들어갔다.

서태훈은 멍하니 있다가 황당한 생각이 들며 얼른 서현우를 따라갔다.

룸에 들어간 그는 가슴이 철렁했다.

좁은 룸 바닥에 널브러진 사람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서태훈은 믿을 수가 없었다.

여리여리한 여자 한 명이 열 명이 넘는 사내들을 해치우다니.

이어 더욱 큰 공포가 그를 엄습했다.

‘망했어! 이곳은 유상혁의 바운더리야. 이들은 유상혁의 부하들이라고!’

유상혁과 척을 지는 건 중연시에서 그들을 보호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과도 같았다.

“어서 가... 어서.... 서현우, 너 빨리 가...”

서태훈은 창백해진 안색으로 서현우를 향해 말했다.

“얼른 가라고! 시간 얼마 없어!”

서현우는 그를 신경 쓰지 않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성민은 구석에서 뚱뚱한 몸을 구기고 피로 범벅이 된 얼굴로 공포에 떨고 있었다.

젖은 바지에서 풍기는 술과 지린내가 좁은 룸에 퍼져 구역질이 났다.

서태훈은 바닥에 널브러진 사람들이 정신을 잃은 줄로만 알았지만 성민은 그들이 모두 죽었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천사처럼 예쁜 외모를 했지만 잔인한 악마 같은 그 여자가 모두를 죽였다!

서현우가 걸어가 성민의 옆에서 몸을 숙이고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성 대표님?”

“아니야! 살려줘! 제발 살려줘! 싫어! 싫어!”

성민은 미친 사람처럼 애걸하며 뚱뚱한 몸으로 날렵하게 서현우의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날 죽이지 마요. 제발요! 제발 살려주세요! 제발...”

힘껏 바닥에 머리를 쾅쾅 찧는 그의 모습에 서현우는 그를 용서하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죽음 앞에서 그는 철저히 무너졌다.

“널 죽이지 않을게. 날 유혜린에게 데려가.”

“서현우!”

서태훈이 경악한 표정으로 다급하게 말했다.

“내가 이렇게 부탁하마. 제발 중연시를 떠나! 멀리 떠나라고!”

서현우가 고개를 돌려 서태훈을 지긋이 바라보며 말했다.

“이번에 돌아와서 다시는 떠날 생각 없어요. 아버지가 못한 일을 내가 하겠다고요! 나영이는 이제 내가 보호해요.”

“너는 유상혁이 어떤 사람인지 몰라서 그래!”

서태훈이 발악하듯 소리를 질렀다.

“싸움을 잘하면 뭐? 계란은 바위를 부술 수 없어. 그들 눈에 넌 그저 쓰레기야! 그는 중연시의 하늘이라고!”

서현우는 성민의 옷깃을 잡고 개처럼 질질 끌며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답했다.

“나영이한테 그런 일이 발생한 순간부터 하늘은 이미 무너졌어요.”

관련 챕터

최신 챕터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