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씨 저택에 불이 밝았다.고대 건축 스타일의 별장은 중연시 교외의 춘산 별장 구역의 뒤쪽에 위치했다.서씨 저택이라는 글자가 적혔던 저택 대문의 팻말은 주씨 저택이라고 바뀌었다.팻말의 금빛 테두리가 서태훈의 눈을 찔렀다.“서태훈 씨, 여긴 왜 오셨습니까?”경비가 서태훈의 앞길을 막았다.“나... 주지현 찾으러 왔어요.”서태훈이 이를 악물고 물었다.“말 좀 해줄래요?”본인 집도 마음대로 드나들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동의를 받아야만 한다니 비통함은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기다려요.”경비가 안으로 들어가고 주먹을 쥔 서태훈의 손바닥은 땀범벅이 되었다.그는 분통하고 걱정이 되었다.주지현이 그를 보려고 하지 않는다면 어떡하지?만약 가능하다면 서태훈은 평생 그 여자를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다.서씨 가문은 그녀에게 모든 것을 빼앗겼다.모든 서씨 가문의 산업이 그녀의 명의가 되었고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미 자신의 집에서 쫓겨나고 말았다.그날 서태훈이 받은 충격은 조강지처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때와 견줄 수 있었다.그는 자신이 보는 눈이 없음을 원망하고 자신이 멍청하게 유혹에 넘어간 것을 원망했으며 서씨 가업을 망친 것을 원망하며 다리에서 뛰어내려 삶을 마감하고 싶었다.만약 그에게 딸이 없었다면 진작 자결했을 것이다.지금 서태훈의 눈앞에는 주마등처럼 옛일이 떠올랐고 그는 비통함에 잠겼다.“저기요.”서태훈은 누군가에게 밀쳐 뒤로 휘청거리다 겨우 서서 눈앞의 방금 자신을 가로막았던 경비를 바라보았다. 경비는 성가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뭘 넋 놓고 있어요? 주 대표님 안 보고 싶어요? 얼른 따라와요.”“네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서태훈은 터덜터덜 경비의 뒤를 따르며 마당을 건너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거실에는 온화한 조명이 비쳤고 부드러운 소파에는 실크 잠옷을 입은 서른이 넘은 여자가 나른하게 누워있었다.예쁜 얼굴에 관리가 잘 된 몸매, 거기에 서른이 넘은 나이의 성숙함이 더해지니 그녀의 농염한 자태는 보는
밤 열 두시.먹구름이 중연시 하늘을 가득 메웠고 결국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거리 위 행인들은 비를 피했고 각양각색의 우산이 마치 아름다움을 다투는 꽃처럼 밤하늘 아래 피어났다.으슥한 길목에서 서태훈은 얼굴에 퍼렇게 멍이 든 채 비틀거리고 있었다.그는 빗물에 푹 젖어있었다. 뺨을 따라 흘러내린 빗물이 턱에 잠깐 맺혔다가 바닥으로 떨어져 흩어졌다.그건 빗물일까, 아니면 눈물일까?그는 마치 좀비처럼 공허하면서 무감각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호되게 얻어맞은 뒤 밖으로 내쫓긴 그는 통증이 너무 심해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마음은 끝없는 심연으로 추락했다.주지현이 그를 때려죽이지 않은 이유는 그가 자신의 두 눈으로 딸과 아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길 바랐기 때문이다.부모가 자식을 떠나보내는 건 세상에서 가장 잔혹한 일이었고 주지현은 그에게 이러한 고통을 안겨줄 생각이었다.악마의 목소리처럼 귀에 거슬리는 주지현의 광포한 웃음소리가 서태훈의 귓가에서 끊임없이 반복됐다.서태훈의 입가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는 결국 빗속에서 쿵 쓰러지더니 악마라는 말을 끊임없이 중얼거리다가 정신을 잃었다.그리고 곧이어 검은색 우산을 쓴 사람이 성큼성큼 그에게로 걸어왔다.검은 우산을 든 이천용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병원으로 옮겨서 서나영이 있는 병실에 보내. 왕 신의에게 잘 봐달라고 부탁해.”“알겠습니다.”...엔뉴 호텔, 네온사인이 빗속에서 홀로 환히 빛나고 있었다.호텔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로비는 깔끔하고 깨끗했다.조금 전까지 이곳에 35구의 시체가 피바다 속에 누워있었다는 건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502호의 문이 홍성에 의해 열렸다.불빛이 들어오는 순간, 상처투성이인 서현우의 마음이 격렬히 요동쳤다.방안 곳곳에 튄 핏방울은 이미 말라붙었고 벽에는 손톱으로 긁은 듯한 핏자국이 남아있었다. 서현우는 피범벅이 된 손가락으로 미친 듯이 벽을 할퀸 여동생의 모습을 쉬이 상상할 수 있었다.고문에 사용되는 형구들은 여전히 방 안
중연시 도심의 5성급 호텔 스위트룸 안.유혜린은 전화를 내려놓은 뒤 침대에서 내려와 옷을 주워 입기 시작했다.남자의 팔이 뒤에서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가 물었다.“그 같잖은 놈이 돌아온 거야?”점잖지 못한 손길에 유혜린은 자꾸만 몸에서 힘이 빠졌다. 그녀가 몽롱한 눈빛으로 옷을 벗으려고 할 때 두 손이 멀어졌다.매혹적인 외모를 가진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6년간 숨어 있더니 죽으려고 돌아왔나 보네. 잘 됐어. 세 식구, 아니 네 식구가 전부 모이게 해야지.”유혜린은 옷을 입으며 물었다.“민식 오빠, 난 사실 잘 모르겠어요. 오빠랑 지현 이모는 왜 서씨 집안사람들을 그렇게 미워해요?”남자는 유혜린의 턱을 쥐고 입을 맞췄다.“예쁜아, 묻지 말아야 할 건 묻지 마. 아는 게 많다고 해서 마냥 좋은 건 아니니까.”남자의 이름은 주민식이었다. 그는 주지현의 친아들로 서현우와 동갑이었다.주지현이 꾸민 일 때문에 서현우와 중연시 4대 가문 중 하나인 진씨 집안의 진아람은 황당하게도 함께 하룻밤을 보냈고 그로 인해 진씨 집안은 크게 노여워했다.당시 서현우가 잡혔다면 그는 틀림없이 죽었을 것이다.그리고 그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서현우는 남강의 변방으로 도망쳤다.서현우가 도망치자 서씨 집안의 상속권은 서나영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서나영은 여자였고 성격도 서씨 집안의 가업을 이을 성격이 아니었다.당시 서태훈도 무척 화가 났고 엄청난 대가를 치러 겨우 진씨 집안의 화를 달랠 수 있었다. 그는 서현우에게 완전히 실망했고 주민식을 후계자로 점찍어 그를 서씨 집안의 가업에 참여하게 했다.주지현과 주민식은 그때부터 서씨 집안의 가업을 하나둘 삼키기 시작했다.서태훈이 눈치챘을 때 서씨 집안 조상님이 물려준 저택마저 더는 그의 것이 아니었다.그렇게 서씨 집안의 가주가 쫓겨났다.두 사람은 깔끔한 차림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들은 스포츠카를 끌고 엔뉴 호텔로 향했다.약 30분 뒤, 차는 엔뉴 호텔 앞에 멈춰 섰다.유혜린은 주민식
“아아아!”엔뉴 호텔 502호에서 유혜린의 귀청을 찢을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서나영이 당했던 고문을 유혜린이 똑같이 당하고 있었다.허리를 조르고, 손끝을 바늘로 찌르고, 채찍질한 뒤 소금물을 바르고, 오물을 먹이고, 다리를 찢고...주민식은 구석에 웅크린 채 덜덜 떨고 있었다. 그는 두려움에 가득 찬 얼굴로 감히 도망칠 엄두도 내지 못했다.그는 단단히 겁을 먹었다. 심지어 유혜린의 비참한 모습에 속이 메슥거려 토했다.유혜린의 비명에 주민식은 자신이 했던 무력한 위협이 떠올랐다. 얼마나 우습고 가련한가?유혜린은 그제야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낫다는 게 어떤 감각인지 이해했다.“살... 려줘... 살...”조금 전까지 그들을 위협하던 유혜린은 애원하고 있었다. 처절하게 비명을 지르던 그녀는 이제 울고 있었다.“살려 달라고...”서현우는 눈에 핏발이 서서 눈이 벌겠다. 주먹을 너무 세게 쥐는 바람에 손톱이 손바닥을 깊이 파고들어 갔다.윤혜린을 괴롭혀도 마음이 전혀 편해지지 않았다.대신 당시 동생이 얼마나 괴로웠을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내 동생도 빌었겠지.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했을 거야.”서현우는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래서 네가 걔를 놔줬어? 아니. 내 동생은 차라리 죽는 게 나을 만큼 너한테 괴롭힘을 당했어. 그런데 넌 걔를 놔줄 생각이 전혀 없었지.”홍성은 전혀 봐주지 않고 주먹으로 유혜린의 얼굴을 힘껏 가격했다. 유혜린은 얼굴 곳곳이 터져서 피범벅이 되었고 원래 어떤 모습이었는지 기억도 안 날 만큼 엉망이 되었다.유혜린은 결국 바닥에 쓰러졌고 내쉬는 숨이 많은 데 비해 들이마시는 숨이 적었다.이는 유혜린이 서나영만큼 강인하지 못하다는 걸 의미했다.고문이 끝났을 때는 새벽 한 시였다.서현우는 창문을 가리키며 말했다.“던져.”두 손은 피범벅이 되었지만 홍성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유혜린을 끌고 창가로 향했다.“싫어! 싫어... 살려줘... 난... 죽고 싶지 않아...”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있다.죽
날이 밝았지만 서현우의 눈동자에 비친 건 어둠뿐이었다.이 세상에는 불공평한 일, 어쩔 수 없는 일, 비통함과 괴로움이 넘쳐났다.어떤 이들은 견딜 수밖에 없고 어떤 이들은 반항할 권리가 있을 뿐이다.서현우는 창가에 선 채로 떠오르는 아침 해를 바라보았다.그의 등 뒤에서는 홍성이 유상혁을 조사한 자료를 읊고 있었다.그리고 마지막에 홍성은 분노에 찬 음성으로 죽어야 마땅한 사람이라고 말했다.죽어야 마땅하다!유상혁은 삼중문을 이용해 중연시에서 수십 년 동안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그가 한 모든 일에서 짙은 피비린내가 났다.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의 손아귀에서 발버둥 치며 애원했을까?유상혁은 똑똑하게도 전혀 의심받지 않았다. 중연시 총독 천우성은 최선을 다했음에도 그의 약점을 잡지 못했고 매번 잔챙이들만 잡아들였다. 겉으로는 중연시 시민들의 문제를 해결해준 것 같지만 사실상 유상혁은 여전히 법의 제재를 받지 않았다.그는 높은 자리에 앉아 사람들을 내려다보면서 자신을 신이라고 여겼다.서현우는 손을 들어 눈 부신 빛을 막았다. 햇빛이 손가락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그의 차가운 눈동자를 비췄다.서현우는 직접 그 하늘을 찢을 생각이었다.어차피 더는 잃을 수 있는 게 없었다.서현우는 고개를 돌렸다.“홍성.”홍성은 진지한 표정이었다.“네.”“낭연을 피우도록 해.”홍성의 동공이 확 수축했다가 커졌다.그녀는 대경실색했다.“총사령관님!”서현우는 평온한 얼굴로 다시 한번 말했다.“낭연을 피워.”홍성은 온몸이 떨렸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괴로움과 분노가 가득했다. 홍성은 서서히 손을 들어 신성한 군례를 했다.“네!”휴대폰을 꺼낸 뒤 홍성은 재빨리 화면을 클릭했고 이내 휴대폰 화면이 검게 물들었다.그 어둠 속에서 카드 한 장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 카드 위에는 한 번도 불을 붙여본 적 없는 금빛의 횃불이 있었고 횃불에는 용무늬가 그려져 있었다.홍성은 왼손으로 휴대폰을 들고 오른손을 들어 검지를 내밀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중연시에서 낭연을 알 자격이 있는 건 중연시 총독 천우성과 금용 감찰사 이천용 두 명뿐이었다.일곱 번의 종소리가 멈춘 뒤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 듯했다.중연시에서 생활하는 사천만 명 시민은 여전히 삶을 위해 바삐 돌아치고 있었다.10만 중연시 수비군은 이미 집결되기 시작했고 공항, 고속철도, 정류장, 선착장 등 중연시를 떠날 수 있는 모든 통로가 동시에 봉쇄에 들어갔다.이 사건은 거대한 영향을 미쳤다. 중연시는 1급 전투준비태세에 들어갔지만 대외적으로는 적국이 투항을 거절해 이제 곧 전투가 시작될 것이라고 했다. 중연시는 서남쪽에 위치했고 남강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았기에 반드시 전력을 다해 적국의 스파이를 잡아들여야 한다고 했다.조금 소란스러워졌지만 사람들은 모두 이해하고 지지했다.적국이 쳐들어와서 10년 동안 전쟁이 이어졌고 그간 중연시의 수많은 젊은이가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고 돌아오지 못했다.이것은 나라의 원수다.나라의 원수 앞에서 모든 걸 양보해야 했다....중연시 교외, 서씨 집안의 조상님이 물려준 저택.차가 빠른 속도로 달렸다.주민식은 창백한 얼굴로 비틀거렸다. 그는 독기에 가득 찬 눈빛으로 다급히 안으로 들어갔다.“엄마! 엄마!”그는 거실에 앉아서 소리를 지르더니 컵에 물을 따른 뒤 벌컥벌컥 마셨다. 하지만 여전히 심장이 두근거리고 손발이 떨리며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었다.곧이어 슬립을 입은 주지현이 계단 어구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아치형 계단을 따라 우아하게 내려오며 불만스럽게 말했다.“아침부터 왜 땍땍거려?”“엄마, 큰일 났어요! 큰일 났어요!”주민식은 주지현을 보는 순간 펄쩍 뛰며 말했다.“서현우! 서현우 그 잡놈이 유혜린을 괴롭혀서 죽였어요!”“뭐라고?”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주지현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빛이 멍해졌다. 그녀는 다급히 아래층으로 내려와 말했다.“얼른 말해!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어젯밤에 저랑 유혜린이 같이 있었는데...”주민식은 이를 악물고 전 과정을 묘사했다.“
엔뉴 호텔은 중연시 서쪽의 비교적 번화한 곳에 있었다.그러나 오늘만큼은 그곳에 아무나 갈 수 없었다.일렬로 무장한 병사들이 주변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들은 감제고지를 전부 점령한 뒤 수십 명의 저격수를 배치했다.502호 방안, 이천용은 서현우의 뒤에 서 있었다. 창문에 비친 그의 눈동자는 하염없이 고요했다.서현우가 퇴위하고 낭연이 피어오르는 건 바꿀 수 없는 일이다.그렇다면 중연시에 피가 강이 되어 흐르는 것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서현우가 장악한 정보는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었다. 그는 유상혁이 삼중문의 모든 인원을 집결해 엔뉴 호텔로 오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사실상 유상혁은 서현우 하나 죽이기 위해 이렇게 많은 사람을 동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그는 기세를 보여주고 싶은 거다.이 일로 다시 한번 유상혁 자신이 중연시의 하늘임을, 감히 그를 건드리는 사람은 반드시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는 걸 선포하는 것이다.하지만 이천용은 그 모습이 우스울 뿐이었다.오늘 엔뉴 호텔은 남강의 전쟁터가 될 것이고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다 죽을 것이다.먼 곳, 중연시 총독 천우성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다행인지, 슬픔인지, 경멸인지 알 수 없었다.유상혁의 뒷배경은 무시무시했고 중연시 총독인 그조차도 경거망동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그리고 앞으로 상대해야 할 적은 남강의 총사령관, 낭연을 피운 서현우였다!묵묵히 고개를 든 천우성은 갑자기 안도감을 느꼈다.중연시의 하늘이 바뀔 때가 온 것 같다. 같은 시각, 남강 변방 본거지에 분노에 찬 고함이 울려 퍼졌다.홍성을 제외하고 남강 무생군 십이장이 전부 자리에 있었다.그들은 본인의 휴대폰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늘을 찌를 듯한 분노가 그들의 마음속에서 터져 나왔다.낭연이 피어올랐다.그들의 총사령관이 낭연을 피운 것이다!낭연을 피운 결과가 어떤지 그들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누굴까?대체 누구란 말인가!적국이 투항해 담판하고 있는데, 대체 누구 때문에 총사령관이 낭연을
쨍쨍한 햇볕 아래 살기등등한 7백여 명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전부 삼중문의 핵심 구성원이었다.바깥쪽에도 사람이 아주 많았는데 이곳에 나타날 자격이 없는, 신경 쓸 가치가 없는 자들이었다.유상혁은 곧바로 그들이 엔뉴 호텔로 쳐들어가게 한 게 아니라 먼저 담배에 불을 붙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서현우에게 전해. 내 딸을 내놓으라고. 그러면 단숨에 죽여준다고 해.”“네.”복싱 글로버를 끼고 옆에 서 있던 우람한 남자가 앞으로 성큼성큼 나아갔다.쿵!그런데 바로 그때 한 사람이 호텔 5층 창문에서 떨어져 바닥에 추락했다. 피가 흥건했다.다들 떨어진 사람에게 시선을 모았고 순간 섬뜩해졌다.사람의 형태이긴 했지만 고깃덩이와 별반 차이 없는 모습이었다.“안 돼!”유상혁은 바닥에 엎드린 사람을 빤히 바라보다가 미친 듯이 울부짖었다.옷차림을 본 그는 그자가 다름 아닌 자기 딸 유혜린이란 걸 보아냈다.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에 유상혁은 눈앞이 아찔했다.엄청난 분노가 마음속에서부터 치솟으면서 두 눈동자가 빨갛게 물들었다.“지금 이순간, 당신은 내가 느낀 분노를 느꼈나?”냉담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유상혁의 눈앞에 두 사람이 나타났다.남자 한 명에 여자 한 명, 제복을 입은 그들은 마치 하늘을 받쳐 든 기둥처럼 꼿꼿한 모습이었다.“서현우!”유상혁은 서현우를 노려보며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고함을 질렀다.“어떻게 감히 이런 짓을 할 수 있지?”다음 순간, 삼중문의 사람들이 일제히 모여들어 서현우와 홍성을 겹겹이 에워쌌다.중연시 총독 천우성이 깜짝 놀라 명령을 내리려는데 이천용이 그의 어깨를 쥐었다.“우리는 손 쓸 필요 없습니다. 총사령관님의 복수는 총사령관님 스스로 할 겁니다.”천우성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당신 딸이 내 여동생을 건드린 순간부터 이 모든 건 정해진 일이었어.”흉악한 인상을 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였지만 서현우와 홍성의 얼굴에는 그 어떤 감정 변화도 없었다.남강의 전쟁터에서 그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