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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정 (2)

Autor: 리사야
last update Data de publicação: 2026-10-20 17:54:16

차시현 눈썹이 아주 살짝 움직였다. 이 여자는 상대가 순순히 인정할 때 오히려 경계한다.

"지난달 건도 있어. 낡은 결계 발생기 바꿔 끼운 거. 위에 안 알리고 했지. 명백한 규정 위반이고, 이미 지적된 건이야."

"그것도 맞아."

"열여덟 건이야."

그녀가 서류를 손끝으로 눌렀고, 짧게 잘린 손톱 끝이 종이에 눌려 하얘졌다.

"이 정도면 퇴학까진 아니어도 정학은 충분해."

"그럼 올리면 되겠네."

차시현이 나를 봤다. 오래.

"왜 그렇게 나와."

"틀린 말 안 했잖아. 열여덟 건 다 내가 했고, 규정 어긴 거 맞고, 여긴 학생회장이 판정하는 자리고. 내가 뭘 더 해."

"보통은 변명을 해."

"변명하면 열아홉 번째 위반이 될 것 같아서."

그녀가 아주 짧게 숨을 뱉었다. 웃음이 나오려다 만 것 같기도 했다.

두 번째 서류철을 편 건 그다음이었다.

"근데 여기서부터가 문제야."

이번 건 종이 색이 달랐다. 학교 행정실에서 뽑아 온 자료였고, 모서리마다 접었다 편 자국이 여러 번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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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망나니가 플래그를 세운다   먼저 말하는 쪽 (2)

    차시현이 종이를 내려놓았다."이 회사, 올봄에 우리 학교 감지기 전부 갈아 준 데야.""알아.""그러니까 이 사유는 말이 돼. 낡은 거 치워 가는 김에 같이 실어 낸 걸로 보이거든.""그래서 아무도 안 세어 본 거고."차시현이 나를 봤다."출처가 어디야."아무 이름이나 대면 이 여자는 그 이름부터 확인하러 가는 사람이다."말 못 해.""말 못 한다고?""응.""……왜.""그것도 말 못 해."차시현이 볼펜 뚜껑을 딸깍 닫았다가 다시 열었다. 두 번 더 그러고 나서야 종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기분 나쁜 건 알지.""알아.""알면서 그러는 거네.""응.""……오늘은 넘어갈게. 오늘만."━━━━━━━━━━━━━━[차시현 — 판정 유보 → 공조( )]━━━━━━━━━━━━━━공조 뒤에 괄호가 하나 붙어 있었는데 안이 비어 있었다. 여태 이 창이 괄호를 열어 놓고 안을 비워 둔 적은 없었다.조건이 붙었다는 소리겠지. 뭐가 붙었는지는 저 여자도 아직 안 정한 모양이고.문제가 나온 건 이십 분 뒤였다."이상해."차시현이 종이를 형광등 쪽으로 들었다. 불빛에 승인란 도장 자국이 뒷면까지 비쳐 보였다."이거 시설과장 도장인데.""그게 왜.""이 사람 그 주에 학교에 없었어.""확실해?""내가 그 주에 이 사람 도장 받으려고 나흘을 쫓아다녔거든."차시현이 종이를 도로 내렸다."동아리방 배정 건이었어. 신입생 들어온 첫 주라 급했는데 결재가 안 나서, 시설과 가면 없고 전화하면 안 받고. 나흘째에 옆자리 사람이 그러더라. 수술받으러 가셨다고.""미리 좀 말해 주지.""내 말이."그러고는 종이를 다시 들어 형광등에 비춰 봤다."결국 그 건은 다음 주로 밀렸어. 동아리방 배정을 통째로 다시 짰어."날짜를 봤다. 그 봄, 개교 기념 무상 점검이 들어왔던 주였다."본인이 안 찍었네.""찍을 수가 없지. 그 주에 병원에 누워 있었으니까."그럼 남는 건 하나다."학교 도장은 어디 둬.""행정실 안쪽 캐비닛. 잠

  • 망나니가 플래그를 세운다   먼저 말하는 쪽 (1)

    정하람은 화요일 아침 내내 아무것도 안 물었다.문자 한 통 없었고, 복도에서 마주쳐도 목례만 하고 지나갔다. 어제 식당에서 회사 이름을 짚어 놓고 이렇게 조용한 건 답을 포기한 게 아니라 혼자 다 적어 놨다는 뜻이다. 이 애는 확인이 필요할 때만 입을 연다. 입이 열렸을 땐 이미 결론이 나 있다.어깨가 셔츠 안에서 아직 따끔했다. 어젯밤에는 묻기도 전에 먼저 말해 본 사람이 하나 생겼다. 세라 씨는 학교 건까지 듣고도 더 안 물었고, 결재에 그 이름이 붙은 건 따로 빼 두겠다고만 했다. 해 보니 죽지는 않았다.마지막 수업이 끝나자 교실마다 의자 끄는 소리가 한꺼번에 났다. 그 소란 속에서 복도로 나가는 정하람을 따라가 불러 세웠다."어제 네가 짚은 회사 있잖아. 가온다인."정하람이 걸음을 멈췄다. 놀란 얼굴은 아니었다. 예상한 답이 예상한 순서로 나왔을 때 짓는 표정에 가까웠다."그 회사, 내가 아는 데야.""어디까지 아는데.""거기까지.""어제 나도 거기까지는 알았어. 그게 무슨 대답이야.""지금 내가 줄 수 있는 만큼이야."그 애가 나를 빤히 봤다. 복도 창으로 든 볕이 얼굴 절반에 걸려 있었고, 밤을 또 새운 티가 눈 밑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왜 갑자기 말해 줘. 어제는 밥이나 먹으라며.""어제 한 번 묻고 말았잖아.""안 물어보니까 말해 준다고?""네가 안 물으면 혼자 결론 내니까."정하람이 픽 웃었다."솔직해서 좋네.""솔직한 건 아니고 계산이야.""알아. 그래서 좋다고."그 애는 가방끈을 고쳐 메고 계단 쪽으로 걸어갔다. 걸음이 아침보다 가벼웠다.학생회실 문 앞에서 삼 초쯤 서 있었다.3년 만이었다. 각서에 도장을 찍은 뒤로 저 여자한테 내 발로 걸어간 적이 없다. 늘 저쪽이 서류철을 들고 찾아왔고, 나는 앉은 자리에서 받았다.문 안쪽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가 났다. 노크했다."들어오세요."문을 열자 차시현이 고개를 들더니, 손에 든 볼펜을 종이 위에 멈춘 채 그대로 굳었다. 책상에는 서류철이 두 무더기

  • 망나니가 플래그를 세운다   내 이름으로 나갔다 (4)

    소파는 책상 맞은편 벽에 붙어 있었고, 문에서는 등받이만 보였다. 책상 등을 껐다. 불이 사라지자 통유리 야경만 남았고, 그 빛이 홍세라 얼굴 한쪽에만 걸렸다.책상에는 결재판 하나뿐이었다. 취한 척할 게 없는 날이다.홍세라가 블라우스를 어깨에서 흘려 내렸다. 속옷은 레이스가 없는 흰색이었다."오늘은 준비 안 했어요. 그 밤엔 입고 온 거였잖아요. 오늘은 퇴근 못 한 옷이에요.""나는 이게 더 좋은데.""……그런 말 하면 제가 뭘 하게 되는지 아세요? 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하는 거예요."'모른다는 말을 이 여자 입에서 처음 듣네.'소파에 앉히고 이마를 맞댔다. 입술은 닿기 전에 한 번 멈췄고, 먼저 움직인 건 이 여자였다. 짧게 닿았다 떨어졌다가 길게 이어졌다. 위스키 맛이 안 났다. 이 여자 입술 맛을 오늘 처음 알았다.소파 가죽이 등 뒤에서 차갑게 울었고, 야경이 이 여자 어깨 위로 미끄러졌다. 숨이 섞이는 소리가 문 쪽으로 새지 않게 서로 입 안으로 삼켰다. 쪽, 하고 떨어졌다가 다시 붙는 소리만 낮게 남았다.속옷 위로 손을 올렸다. 천 너머로 심장이 빠르게 뛰었고, 손바닥 아래에서 숨이 가슴을 밀어 올렸다."지금 어때.""따뜻해요. 손 닿는 데서 먼저 알고, 생각이 뒤에 와요.""그럼 생각은 오지 마."속옷을 위로 밀어 올렸다. 하얀 가슴이 야경 빛에 드러났고, 젖꼭지는 닿기도 전에 단단하게 서 있었다. 홍세라가 팔로 가리려다 말고 내렸다."……그렇게 보지 마요."가리는 대신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귀 끝이 빨갰다.엄지로 한 번 스치자 어깨가 먼저 떨렸다. 고개를 숙여 그 끝을 입술로 물고 혀끝으로 한 바퀴 돌렸다.츕. 쪽."흣……"소리가 나자마자 홍세라가 손등으로 제 입을 막았다. 막은 손 사이로 숨이 샜다. 반대쪽을 손가락으로 굴리자 허리가 소파에서 살짝 떴다."소리 내도 돼요?""당직실 라디오가 덮어.""안 덮여요. 문이 열려 있잖아요."홍세라가 내 어깨에 이를 댔다. 셔츠 위로 깨무는 힘이 느껴졌다.

  • 망나니가 플래그를 세운다   내 이름으로 나갔다 (3)

    월요일 밤 열한 시 사십 분에 주작 지부 최상층 엘리베이터가 열렸다.카펫이 발소리를 먹었다. 복도 끝 당직실에서 라디오가 작게 나왔고, 두 사람이 졸린 목소리로 뭔가 얘기하고 있었다. 층 전체에서 불이 켜진 곳은 거기랑 집무실 문틈이 전부였다.기숙사에서 종이 석 장을 한참 보다가 폰을 집었다 놨다. 전화로 할 얘기가 아니었다. 안에 있는 놈이 이 길드 회선을 어디까지 듣는지 모른다. 게다가 이 여자는 내일 아침에도 결재판을 열고, 거기서 가온다인 이름을 나보다 먼저 만날 수 있다. 혼자 찾아낸 이름과 내가 먼저 건넨 이름은 다르다. 평소처럼 굴라고 해 놓고 밤에 직접 올라온 값은 오늘 내가 낸다.집무실 문은 열려 있었다. 책상 등 하나가 켜져 있었고 뒤쪽 통유리에 야경이 그대로 붙어 있었다. 홍세라가 결재판을 펴 놓고 서명을 하다가 모자를 벗은 머리를 한쪽으로 쓸어 넘겼다."지시대로 사무실에 있어요. 창고 근처엔 안 갔고요.""알아.""그럼 왜 오셨어요.""말할 게 있어서."홍세라가 펜을 내려놨다."물어보는 쪽이 아니고요?""오늘은 내가 말하는 쪽이야."책상 모서리 뒤, 문에서 안 보이는 사각으로 가서 섰다."세 군데야. 주작이랑 그룹, 이미 아는 둘에 학교가 하나 더 붙었어. 학교 쪽 서류 제공자 칸에 가온다인이 찍혀 있고, 빠진 건 거기도 세 개일 거야."홍세라가 펜 뚜껑을 돌려 닫았다."주작이랑 본가랑 가온다인이네요. 전부 대표님이 지나간 자리고요. 그걸 저한테 말하는 거예요? 제가 묻기도 전에?""응. 이번엔 내가 져.""그럼 제 일은 하나네요. 내일 결재에 그 이름 붙은 게 올라오면 제가 먼저 받아서 따로 빼 둘게요.""티 안 나게.""네. 그럼 얘기는 끝났고요.""끝났어.""그럼 이제 확인이에요, 아니면."어제 이 여자가 나한테 한 질문이었다. 지시예요, 아니면. 같은 문형을 돌려줄 때는 입꼬리가 먼저 올라간다."아니면."홍세라가 결재판을 덮고 서류를 서랍에 넣었다. 열쇠는 안 잠갔다."장부는 두고 왔어요

  • 망나니가 플래그를 세운다   내 이름으로 나갔다 (2)

    ━━━━━━━━━━━━━━[윤이서 — 혐오(불안정) → 확인 중]━━━━━━━━━━━━━━혐오 두 글자가 괄호까지 통째로 밀려나 있었다. 3년을 바위처럼 안 움직이던 자리였다.새로 들어온 게 호감 같은 것도 아니고 확인 중 세 글자라는 게 이 애다웠다."그럼 물을게.""어.""그날 능선에서, 왜 위로 올라갔어."수업 종이 울렸다."늦었다.""야.""다음에.""……너 진짜."등 뒤에서 뭔가 더 들린 것 같은데 안 돌아봤다. 돌아보면 대답할 것 같아서.점심때 정하람이 식판을 들고 먼저 와 앉아 있었다.요즘은 자리 잡는 순서가 바뀌었다. 예전엔 내가 먼저 가서 그 애 자리를 뺏었는데, 이제 저쪽이 먼저 와서 내 몫까지 자리를 잡아 놓는다. 오늘은 아예 국그릇 두 개가 놓여 있었다."이거 뭐야.""네 거.""내가 국만 먹는 건 어떻게 알았어.""두 달 봤으면 알지.""국 말고 다른 것도 봤겠네.""봤어. 안 말해 줄 건데.""왜.""내 거니까."종이를 한 장 밀어 왔다. 손으로 그린 표였고, 세로줄이 넷이었다. 마지막 줄만 비어 있었다."신고하고 들어온 건 세 건이라고 했잖아.""어.""하나 더 있었어. 번호는 있는데 이름이 안 나와.""명단에 없어?""없어. 수입 명단엔 그 세 건뿐이야. 이건 신고번호만 있고 이름 칸이 다른 서식으로 넘어가.""다른 서식.""응. 사흘 봤는데 못 찾았어."숟가락으로 국을 두어 번 저었다.회사 이름이 안 붙는 건 수입자가 회사가 아닐 때다. 회사가 아니면서 이런 걸 들여올 수 있는 데가 몇 없다. 관공서, 병원, 그리고.입학하고 얼마 안 돼서 이 학교 감지기를 통째로 갈면서 서식을 하나 본 적이 있다. 교육 기자재. 수입 명단에 안 잡히고 따로 관리된다."학교 아니야?"정하람 숟가락이 멈췄다."……어?""교육 기자재로 들어오면 수입자 칸이 안 붙어. 서식이 달라.""그걸 너는 어떻게 알았어?""먹으면서 들어.""그거 대답 아닌데."정하람이 종이를 도로 당겨

  • 망나니가 플래그를 세운다   내 이름으로 나갔다 (1)

    일요일 아침, 책상에 종이를 나란히 폈다.왼쪽은 어젯밤에 받아 온 그룹 창고 목록이고, 가운데는 주작이 뽑아 준 반출 대장이었다. 오른쪽은 비어 있었다. 아직 없는 세 번째 자리였다.두 장을 겹쳐 놓고 보니 그림이 더 선명했다. 들어온 날짜는 둘 다 꼼꼼했고, 항구도 창고 번호도 담당자 도장까지 다 찍혀 있었다. 그러다 나간 자리에서만 종이가 뚝 끊겼다. 실수로 빠뜨린 거면 앞뒤가 같이 어수선해야 하는데 앞은 지나칠 만큼 단정했다.커피 물을 올려놓고 기다리는 동안 창가에 섰다가 오랜만에 그걸 열어 봤다.━━━━━━━━━━━━━━[ 한도윤 — 퇴장 예정 ]남은 시간 : D-936━━━━━━━━━━━━━━열여드레 만이었다.방어전 그날 밤에 구백서른이었다. 그 뒤로 스물여덟 밤이 지나갔으니 스물여덟이 깎였을 거고, 그런데 지금 여섯이 더 붙어 있다. 한 달 동안 서른네 날을 벌었다는 얘기다.숫자만 보면 잘한 달이었다. 학생회장이 서류철을 덮었고, 천재가 옆자리에 앉았고, 회귀자가 나를 일으켰고, 어떤 집 식탁에서 반찬 세 통이 나왔다. 사람으로 치면 다섯 명쯤 움직였다.그래서 엿새.'이거 벌이가 영 시원찮은데.'두 달 전에는 하루가 붙는 것도 종이에 적어 뒀다. 지금은 서른네 날을 벌어 놓고 며칠인지 안 세고 있다. 자릿수가 커지면 원래 그렇게 된다. 통장도 그랬고.물이 끓는 소리가 나서 돌아섰다.근데 열여드레를 안 열어 봤다는 게 좀 걸렸다. 시시하다고 안 보다가 새는 자리를 놓친 적이 전에 한 번 있었다.폰이 먼저 울렸다."안 잤어?""자다 깼어요. 세 시간쯤.""그럼 잔 거네.""세 시간이 자는 거예요?""안 자는 것보단 잔 거지.""기준이 참 후하시네."목소리가 잠긴 걸 보니 진짜로 세 시간만 잔 모양이었다. 뒤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가 났다."어제 그거, 밤새 다시 봤어요.""뭘 봤는데.""작년 것부터 전부요. 반출 신청서만 따로 뽑아서 태웠다는 확인서랑 하나씩 맞춰 봤어요.""몇 장 비어.""세 장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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