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왕 대응책할머니는 이 말을 듣고 지혜로운 미소로, “응, 가볍게 포기한다는 말 하는 게 아니지. 하지만 우리도 굳이 딱딱하게 마주할 필요는 없어, 내일 임 선생을 만나러 널 데리고 나가마. 임 선생은 매화장(梅花莊)에서 손님을 만나고 있을 거야, 우리가 먼저 가서 한달 보름간 묵고 있으라고 초대했단다.”원경릉이 바로 알아 듣고 기쁘게, “할머니는 역시 스마트하시다니까.”할머니가 호호 웃으며, “할미가 스마트한 게 아니라 할미가 겪은 세월이 긴 거지, 이런 일을 대처한 경험이 풍부하니까, 천하에 많은 일은 한 번에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없지만 우린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 해야지.”주재상의 집.세 사람이 초보적인 소통만 한 후 모두 침묵에 빠졌다.냉정언이 먼저 입을 열어, “안왕의 야심을 황제 폐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만약 폐하께서 일시적으로 욱하는 마음에 안왕을 경성으로 불러들여 경조부 부윤을 맡기신다면 큰 화를 자초하시게 될 겁니다.”냉정언은 주재상을 보고,. “재상 생각엔 폐하께서 정말 그렇게 하실 것 같으십니까?”주재상이 고개를 끄덕이며, “하실 수 있으시지요!”우문호도 무겁게 입을 떼며, “저도 아바마마께서 그렇게 하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바마마께서 넷째가 권력을 장악하는 것을 정말 원치 않으신다고 할 수만은 없지요. 아바마마께서 자신이 넷째를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이런 방법으로 절 압박하거나 징벌하려고 하시는 겁니다.”주재상이, “태자 전하 절반만 맞습니다. 폐하께서는 확실히 자신이 안왕 전하를 제어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지만 태자 전하를 징벌하기 위함이 아니라 전하께서 고집스럽고 완고하시다고 생각하셔서 입니다. 고집스런 태자가 북당의 복이라고는 할 수 없으니까요.”냉정언이 놀라서, “재상의 뜻은 폐하께서 정말 폐태자를 생각하신 적이 있다는 말입니까?”재상이 의미심장하게, “적어도, 폐하께서는 태자를 상호 제어할 수 있는 한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 맞습니다.”냉정언이 약하게, “그렇군요, 지금 많은 사람
전화위복우문호가 초왕부로 돌아온 뒤 원경릉이 할머니의 제안을 애기하자, 우문호가 찬성했으나 그러면 임 선생님께 거짓말을 도와 달라고 부탁드려야 했다.원경릉이, “그건 가능해, 미색한테 자세한 걸 도와 달라고 하면 돼.”우문호가 원경릉을 앞으로 와락 앉으며 피곤한 그녀의 얼굴을 보니 마음이 아파와, “단지 산에서 한달을 지내야 해, 위에선 잠도 잘 못 자고 먹는 것도 부실하고 당신이 고생할 거야.”원경릉이 방실방실 웃으며, “고생은 무슨? 마침 산 위에서 꾸준히 경공을 수련할 수 있는 걸, 어쩌면 산을 내려올 때 즈음엔 내가 무림 고수가 되어 있을지도 몰라.”우문호도 따라 웃었으나 이 웃음으로도 석연치 않은 마음을 감출 수 없어 원경릉을 품에 꼭 안고, “그래, 기다릴 게.”다음날 숙친왕이 아침 조례 때 입궁해 귀국 인사를 하자 만조백관들이 당연히 아쉬워했다.명원제도 애석해 하며 숙친왕에게 며칠 더 묵으라고 했다.숙친왕은 군대 일이 바쁨을 핑계로 거절하고 대신 작은 청을 하나 올렸다.숙친왕이 작은 청을 올리겠다고 하자 명원제와 조정 관리들의 경계와 이목을 끌었는데 명원제는 안색도 변하지 않고, “왕야는 말씀하시게.”숙친왕이 예를 취하더니, “폐하, 이번에 소신이 회왕 전하와 미색의 혼례에 참석하는데 선배 한 분이 같이 왔습니다. 지금 선배는 매화장에서 안풍 친왕비 마마와 같이 계시는데 만약 한 두 달 머무실 수도 있다고 하셨는데 어제 제가 작별 인사를 드리니 선배가 태자비 마마께서 매화장으로 오셔서 당분간 같이 계실 수 있냐고 물으셨습니다.”숙친왕의 이 제안은 비록 다소 예의를 벗어난 것으로 숙친왕의 선배가 황실 사람이란 법은 없으며 숙친왕의 외가 쪽 어른일 수도 있다. 어떤 신분이든지 간에 북당의 태자비에게 매화장으로 와서 같이 있어 달라는 건 예의를 한참 벗어난 것이 도가 지나쳤다.하지만 만조 백관들은 의외로 아무도 반대하지 않은 것이 태자비가 매화장으로 가면 문둥산에 가지 않을 것이니 그 문제는 해결되기 때문이다.명원제도 동의했으나
매화장 가는 길대흥국 성안 태황태후 마마의 초청에 따라 원경릉은 일시에 당장 죽여 마땅한 공공의 적에서 인기가 드높은 귀하신 존재로 탈바꿈했다.성지가 초왕부에 내려지자 원경릉은 바로 짐을 꾸려 만아와 사식이를 데리고 출발했고, 할머니는 자연스럽게 따라가시니 마차 두대로 나눠서 서일과 탕양이 각각 모시고 갔다.매화장은 경성의 서북쪽 산 위에 있는데 지금 초겨울에 막 접어들어서 산 위엔 이미 하얀 서리가 내렸고 날씨도 추웠다.마차가 산허리쯤 도착했을 때 산으로 올라가는 큰 길이 없어지고 마차에서 내려 걸어가야 했다.이번 외출은 적어도 보름은 보낼 요량으로 가져온 물건이 많고 할머니는 산길을 걸을 수 없어 서일이 업고 산을 올랐다. 짐 부담은 만아와 탕양, 사식이에게 떨어졌고 원경릉이 옮기는 걸 돕겠다고 했으나 죽어도 안된다며 본인 스스로나 숨 안 차고 가면 다행이라고 했다.그들도 원경릉을 무시했는데 그녀는 예전의 그녀가 아닌지 꽤 되었다.비록 무공은 아직 여물지 못했지만 경공은 수련을 좀 한 편이다. 경공이 좋은 게 다리에 부담이 덜 가고 적어도 걸음이 경쾌해 져서 힘쓸 때를 알게 된다. 이렇게 반시진(1시간)을 걸었는데도 원경릉은 전혀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탕양까지 원경릉에게 크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산을 오르는 동안 경치가 좋았는데 이곳이 매화장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이 길이 온통 매화나무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나무가 온통 꽃망울로 뒤덮여 어떤 건 연분홍색으로 피어나 매화향이 확 끼쳐오니 마음이 탁 트이면서 기쁨이 밀려왔다.원경릉은 마음 속으로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임 선생님은 만나봤지만 안풍 친왕비는 만나 뵌 적이 없고, 말씀만 여러 번 들었는데 줄곧 보고싶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꿈이 이뤄질 줄 몰랐다.기대감에 발걸음이 더욱 빨라져 사식이조차 원경릉을 따라잡을 수 없어 뒤에서, “원 언니, 너무 급하게 가지 마세요, 길이 미끄러워요.”원경릉이 멈춰서 사식이와 만아를 기다리며 아래를 내려다보니 이어진 산봉우리가 경성의 번잡함을 병풍처럼
매화장“여자분이요?” 서일이 머리를 긁적이며 난처한듯 웃으며, “저랑 사식이는 좋은 친구죠.”“그럼 둘은 언제 혼인하나요?” 할머니가 물었다.서일이 순간 어쩔 줄 몰라 하며 즉시 이를 드러내고 헤헤 웃으며, “우리가 혼인을? 저랑 사식이가 혼인할 리 없죠, 저는 반하지 않았거든요.”할머니가 서일의 어깨를 치며, “여자분 괜찮아요, 진주 같은 아가씨예요.”“진주요? 돼지 목에 진주겠죠.” 서일이 ‘크크’ 웃으며 흘끔 사식이를 보니 순간 정이 뚝 떨어지는 게 여성스러움 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우악스러운 것이 ‘마음에 안 들어. 완전 안 들어.’원경릉이 할머니를 부축해 몇 번 왔다 갔다 하며 몸을 풀어드리더니, “서일과 사식이는 한 쌍이 아니예요, 할머니는 중매하지 마세요.”“아니야? 둘을 보고 있으면 꽤 잘 어울리는데.” 할머니가 손을 휘휘 젓더니 천천히 머리를 돌리며 목 운동을 했다.서일 집안이 그렇게 떨어지는 집안은 아니지만 사식이와 비하면 역시 상당히 기우는 게 사실이다. 사식이는 그런 거에 신경 쓰지 않을 거고, 원씨 집안도 신경 쓸 리 없지만 서일은 건성건성 한 척 하지만 사실 그 일에 상당히 민감하다.서일이 사식이를 싫다고 하지만 사실대로 말하면 사식이와 이루어질 수 없는 걸 알아 서다. 서일이 보기에 자신과 사식이는 집안의 차이가 너무 나니, 아예 미리부터 싫다고 해서 사모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도록 하려는 심산이다.잠시 쉬고 다시 출발했다.반 시진(1시간) 남짓 걸어 매화장 입구에 도착했다.매화장은 넓은 부지를 점유하고 있었는데 장원(莊園) 문 앞에는 수많은 복숭아나무, 매화나무가 심어져 있고 문지기는 눈 늑대로 원경릉은 눈 늑대가 익숙해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두 마리 눈 늑대는 전신이 연 그레이로 약간 나이가 든 것을 알 수 있었고 눈은 갈색이고 눈빛이 상당히 예리하지만 인간의 본성을 꿰뚫고 있는 듯 원경릉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눈 늑대들이 먼저 문을 밀었다.양쪽으로 된 문은 육중해서 열 때 ‘끼익’하는 소리가
늑대와 안풍 친왕비사식이가 갑자기 매화나무가 빽빽한 곳을 가리키며, “어? 저쪽에 녹매(綠梅)아녜요? 꽃이 피었나?”원경릉이 사식이의 손가락을 따라가보니 멀리 숲 속에 ‘퍼틋퍼틋’ 녹색이 보이긴 하는데 거리가 멀어서 꽃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 인지 알아볼 수가 없고, 다만 원경릉이 보기엔 매화 같지는 않았다.녹매는 이렇게 녹색이지 않기 때문이다.“매화가 아니라 저건 눈입니다.” 그 여자가 미소를 머금고, “저것들은 매화 숲을 지키고 있는 늑대 호위들로 겁내실 필요 없습니다. 저쪽으로 안가시면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거든요.”“파수 늑대요?” 사식이라 놀라서 넋이 나갔고, 부러워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세상에, 너무 근사해요, 늑대들을 부려서 파수를 보도록 가르치다니, 이걸 전부 안풍 친왕비 마마께서 하신 거예요?”“예, 왕비 마마께서 늑대를 좋아하세요!” 여자는 원경릉 등을 데리고 계속 앞으로 갔다.서일도 심하게 놀라서 걸으면서 여기저기 돌아보느라 실수로 사식이 몸에 부딪혔는데 사식이도 그쪽을 보고 있어서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고 갑자기 딱 부딪히니 몸이 앞으로 고꾸라지고 무의식적으로 소리치길, “서일, 눈이 안 보여요?”“저도 일부러 그런 거 아닙니다.” 서일이 억울하다는 듯 입을 삐죽거리며 손을 뻗어 사식이를 끌어당겼다.이때 갑자기 땅이 흔들리기 시작하고 자세히 보니 매화 나무 숲에서 10여 마리의 늑대가 튀어나와 맹렬하고 포악하게 사식이와 서일에게 달려들었다.우두머리 늑대는 귀에 노란 끈을 묶어서 달려들 때 귀가 쫑긋하며 노란 끈이 펄럭이는 게 만약 어금니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리지 않았으면 귀여워서 ‘심쿵’하겠다.십여 마리 늑대가 사식이 앞으로 달려왔다. 늑대의 몸통에선 피비린내가 바람을 타고 코를 찌르는데다 희번덕거리는 늑대의 이빨이 마치 당장이라도 사식이를 덮쳐 갈가리 찢어발길 것 같았다. 사식이가 어디서 이런 절체절명의 위기를 만나봤을까, 놀라서 모골이 송연해지고 전신이 덜덜 떨렸다.서일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사식이의 앞을 막아 서
안풍 친왕비의 등장서일은 늑대 무리가 물러나는 것을 보고 놀라서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오려던 심장이 겨우 제자리를 찾아갔고, 손을 뻗어 사식이를 일으켜 둘이 서로 기대서 안으로 들어갔다.본채 안으로 들어가자 가구는 전부 평범한 것들로 탁자, 의자, 다구, 옷장, 병풍 등 있을 건 다 있고 전부 참신한 것들이나 원경릉은 이 가구들은 전부 갈라진 틈이나 칼 자국이 나 있는 것에 주의했다. 게다가 바로 맞은편의 태사의는 심지어 다리가 한쪽 없었다.그리고 안풍 친왕비는 그 절름발이 태사의에 앉았는데 다리가 3개다 보니 자연스럽게 삐그덕거렸지만 안풍 친왕비는 천연덕스럽게 앉아있었다.사람들의 당황스런 눈빛을 보고 노 왕비는 아무렇지도 않게, “왕야께서 성정이 불 같으신 지라 이런 사물에 화풀이 하곤 하세요, 그래서 늘 바꾸니 안심하세요. 전부 앉을 수 있습니다.”원경릉이 보기에 비교적 안정적인 의자를 골랐는데 그 의자는 다리는 4개 다 있고 한쪽 팔걸이가 없는데 잘린 부분이 깨끗해서 누군가에게 단칼에 베인 것 같았다.원경릉이 손을 뻗어 만져보니 나뭇결이 거친 부분이 없어서 안심하고 할머니를 모시고 가서 앉혀 드렸다.노 왕비는 사람을 시켜 사식이, 서일 등을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는데 탕양도 같이 따라갔다. 여인들끼리 얘기를 나누는데 혼자 청일점인 게 불편했을 것이다.임 선생님은 여전히 부드러운 눈빛으로 할머니에게, “사는 데는 좀 익숙하십니까?”임 선생이 원경릉을 보고 감개무량한 듯, “할머니가 여기 오시겠다고 고집을 부리시는 데 할머니 연세나 몸상태를 생각해서 찬성하지 않았는데 하도 고집을 피우셔서 나도 방법이 없었어, 앞으로 할머니께 효도해야 해.”원경릉이 감격해서, “할머니께 효도할 게요, 임선생님 도와 주셔서 감사해요.”임선생이 고개를 끄덕이며, “고마워할 필요 없어, 인연이 그런 거지.”왕비가 원경릉에게 약간 흐뭇한 눈빛으로, “듣자 하니 문둥산에서 병을 치료하고 있다 던데, 태자비의 패기와 어진 마음에 탄복했네.”원경릉이 좀 머쓱해서, “
안풍 친왕비에게 안풍 친왕은?왕비는 두 사람의 토론을 듣더니, “지금 나병 사건이 이렇게 크게 번졌으니 정치 판도에 영향을 줄 게 틀림 없어요, 두 가지를 병행하는 게 가장 좋으니 만약 필요한 게 있으면 저한테 말씀하세요, 약탕 목욕용 큰 항아리는 넷째한테 보내라고 분부하겠습니다.”안풍 친왕비가 말한 넷째는 이리 나리다.원경릉이 알아듣고, “하지만 만약 큰 항아리를 산으로 보내면 사람들의 이목을 끌까 걱정이네요.”노 왕비는, “누구의 주의를 끌던 상관없어요, 누가 어쩌겠어요? 나를 찾아오던지 아니면 안풍 친왕 전하를 찾아가라 지요!”왕비의 늑대가 이렇게 대단한데 누가 감히 왕비를 찾아 올 수 있을까? 원경릉은 왕비가 여기 있는 한 아무도 오지 못하겠다는 건 알겠다.원경릉은 또 이 파손된 가구들을 보며, ‘안풍 친왕은 도대체 성정이 얼마나 불 같다는 걸까? 태상황 폐하의 형이시란 건 태상황 폐하보다 연로하시다는 건데 연세가 그렇게 많으면서 여전히 열이 뻗쳐서 물건을 부순 다니, 왕비는 어떻게 참아오신 거지?’하지만 생각해보니 안풍 친왕비가 부당한 상황을 참았을 것 같지 만도 않은 게, 왕비의 늑대는 분명 오직 왕비의 호령만 들을 것이니 말이다.원경릉은 피식 웃으며 왕비의 의자를 보고, “그럼요 그들은 감히 못 오죠, 안풍 친왕 전하 성정이그렇게…… 강직하신 데 일반인은 감히 올 엄두도 못 내죠. 오직 왕비 마마만 제어가 가능하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왕비는 오히려 불쾌한듯, “난 그 늙다리 통제 못해, 와서 날 괴롭히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고, 그간 성질머리 더러운 걸 얼마나 받아주고, 부당한 일을 당했는데? 내가 시집 온 뒤로 하루도 평안한 날이 없었어, 그때 내가 눈이 삐었지.”임 선생님이 웃으며, “안풍 친왕이 감히 널 괴롭힌다고? 네 늑대가 안 무서운 가봐?”왕비가 분해 하며, “늑대를 무서워 하긴? 늑대가 ‘늙다리’를 무서워 하지.”이 말에 다들 놀란 것이 안풍 친왕비는 늑대족 젊은 지도자란 호칭으로 불릴 만큼 모든 늑대를 그녀가
안풍 친왕호랑이 위에 앉은 나이든 사람은 청색 옷을 입고 있고, 거리가 좀 멀어서 이목구비는 잘 보이지 않지만 윤곽은 약간 태상황과 닮았고 머리카락은 흰색이 아니라 온통 삼단처럼 검었다. 가까이 올 수록 그의 붉고 반들거리는 얼굴을 볼 수 있었는데 태상황보다 열살은 어려 보였다.‘제왕은 정말 인간이 할 짓이 못되는 구나’ 절감하는 순간이다. 황제로 몇 십년 있더니 태상황은 도대체 얼마나 망가진 거야?안풍 친왕이 호랑이를 타고 점점 다가오니 이목구비가 또렷하게 보이는데, 눈매는 우문호와 상당히 닮았으나 안풍 친왕의 눈빛은 이상하리 만치 예리했고, 치켜 올라간 눈썹에 몇 가닥이 길게 자란데다 굵고 엉클어진 눈썹이라 인상이 사나웠다. 심지어 그가 타고 있는 호랑이보다 훨씬 사나워 보였다.안풍 친왕은 몸집이 커서 사람을 제압하는 기세가 있고, 아무렇지도 않게 호랑이 등에 타고 일행을 눈으로만 훑어봤지만, 사람들은 무릎에 힘이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하지만 만약 무릎이 후들거리는 게 백수의 왕 호랑이 때문일 수도 있는게 다들 이렇게 큰 호랑이는 본 적이 없었다. 사이즈는 말 한 필에 필적하는데 말보다 건장한 것이 눈앞에 높다랗게 버티고 서 있는 것이다!시녀는 예를 취하고 원경릉 일행의 신분을 밝히니 안풍 친왕이 약간 몸을 앞으로 숙이고 원경릉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노골적으로 흉악하게, “다섯째 며느리라고?”목소리에서 위엄이 뻗쳐 났다. 아마도 이 광활한 산 때문에 마치 메아리에 여진이 생긴 것처럼 들은 사람의 심장을 울려, 원경릉은 얼른 앞으로 나가 예를 취하는데 좀 무서웠다. “원경릉 안풍 친왕 전하를 뵙습니다.”“됐다, 갈 길 가!” 안풍 친왕이 말하고 호랑이를 톡 건드리니 앞으로 휙 도약하며 몇 장(십여m)을 훌쩍 뛰더니 내려서서도 멈추지 않고 그대로 앞으로 뛰어올라 금새 매화 숲속으로 사라졌다.사식이가 죽을 만큼 놀라서, “아이고머니나, 호랑이 때문에 놀라 죽을 뻔 했네, 매화장은 이렇게 아름다운데 어떻게 호랑이 아니면 흉포한 늑
“예, 그립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놀고 싶기도 합니다.”그는 말하다가, 갑자기 신이 난듯 몸을 들썩이며 말을 이어갔다.“여긴 정말 재미있습니다. 아홉째와 나가면 큰 산도 있고, 꽃도, 나무도 많습니다. 물고기도 많고, 사람도 많고, 뭐든지 엄청 많았습니다.”우문호는 웃으며, 못내 안쓰러움을 느꼈다. 예전에 그를 궁 안에 가두고, 거의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사람이 그를 데리고 나가는 것도 신경 쓰였다.“이곳이 마음에 들면, 좀 더 오래 있어도 된다.”우문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예, 정말 좋습니다. 다만, 형님과 형수님이 그리웠습니다. 이렇게 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여덟째는 흥이 오른 상태로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어서 들어가시지요! 아홉째가 형님이 내일 오신다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준비했습니다.” 그는 뒤돌아 원경릉에게 외쳤다.“형수님, 빨리 따라오십시오. 맛있는 거 많습니다.”미색은 웃으며 꾸짖었다.“이 무심한 녀석, 다섯째 형수님만 챙기고, 여섯 형수가 배고픈지는 묻지도 않는 것이냐?” 여덟째는 그제야 미색을 본 듯,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여섯째 형수님도 오셨습니까? 여섯째 형님도 오신 것입니까? 와, 너무 좋습니다!”“질투하다니?”원경릉은 미색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미소를 지었다.“여덟째는 너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것이다.”“아유, 참!”미색은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여덟째는 바로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항상 그림과 책자를 선물하는 여섯째 형수님도 좋아했기 때문이다.그는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그... 그럼 같이 드시지요. 음식 많습니다.”“장난이다. 난 질투 안 해.”미색은 기쁘게 말했다.여덟째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고, 다들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원경릉이 만아에게 말했다.“정말 이곳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구나. 예전보다 훨씬 활발해졌고, 말도 많이 하네. 이 모든 게 아홉째 덕분이다.”만아는 웃으며 말했다.“예, 둘이 시간이 날 때마다 밖으로 나가, 더
원경릉은 발끝을 들어 그의 뺨에 입을 맞추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우문호는 그런 그녀를 와락 끌어안으며 말했다.“원 선생, 행복하오?”“행복하오.”“하하하. 지금이 아닌, 나와 함께했던 모든 날이 행복했냐고 물어보는 것이오.”“모든 순간이 당연히 행복하고, 기쁘오!”원경릉은 스스로를 자조하듯 웃었다.“나 같은 집순이가 이렇게 결혼생활이 행복할 줄 누가 알았겠소?”한때 그녀는 자신이 평생 결혼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고, 사랑 없는 삶도 부족함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그녀는 사랑을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었지만, 사랑은 사실 정말로 중요했다.산꼭대기에 앉아, 차가운 바람을 맞고 있었지만,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의 풍경을 눈에, 그리고 마음에 깊이 새기고 싶었다.그리고 함께 늙어간 후, 다시 천천히 되새기고 싶었다.영산에서 내려온 후, 그들은 다시 여정을 이어나갔다. 이번 목적지는 바로 남강이었다.명절이 지난 뒤, 아홉째는 여덟째를 데리고 먼저 남강으로 돌아갔다. 다들 그가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남강 땅은 오랜만이었다. 마지막으로 발을 디딘 건, 정화를 구하러 갔을 때였다.남강으로 가는 내내 홍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냉정언이 물었다.“남강에 가면, 못난이를 만날 것이오?”“만나야지.”홍엽이 답했다.“물론 만나야지!”못난이는 오랜 시간 그와 함께했던 사람이니, 만나야 했다. 못난이가 종종 편지를 보내오긴 했지만, 자기 상황은 거의 말하지 않았다.반면 아홉째는 편지에서 북강의 소식을 자주 전해주었다.지금의 남강은 어느 정도 통일되어 있었고, 북강과 남강도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그동안 이익 문제로 양측의 왕래가 더욱 빈번해졌다.아홉째는 편지에서 못난이가 북강의 민심을 얻었고, 성격도 예전보다 훨씬 밝아져,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하다고 전했다.홍엽의 마음엔 기대와 기쁨이 섞여 있었다. 그도 지금 잘 지내고 있으니, 못난이도 잘 지내길 바랐다.우문호는 남강에서 돌아온 후, 변방으로 갈
그 일을 떠올리자, 꿈에서 본 일이라 그런지 마치 얼마 전에 있었던 일처럼 느껴졌다.그때 그들은 죽을 만큼 힘든 소년들이었는데, 지금은 한없이 한가한 노인이 되었다.세월은 덧없이 흘러갔고, 그동안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잃었다.무상황은 자신의 황후였던 소봉을 떠올렸다.그들은 줄곧 전형적인 황제와 황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나라를 다스렸고, 그녀는 후궁을 다스렸다. 비록 그가 그녀를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많은 애정을 주지도 않았다.그렇게 평범하게 평생을 함께했지만, 그녀가 떠나는 날, 그는 마음속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간 듯한 슬픔을 느꼈다.평생 함께했던 사람이 자신보다 먼저 떠날 거라 생각하지 못했기에 더욱 아팠다.세 사람은 한참 동안 넋을 잃고 있다, 다시 길을 나섰다.유아독존과 관련된 일이 생각보다 커졌지만, 모든 소란은 결국 가라앉게 될 것이다. 모든 소문도 점점 사그라들기 마련이니, 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세 사람이 여행하는 영상이 점점 유명해지면서, 유아독존은 더 심하게 비난을 받았다.현실에서 함부로 욕설을 내뱉으면 얻어맞을 수도 있지만, 인터넷에서는 당당한 명분이 있었기에 악성 댓글을 다는 자들은 마음껏 욕을 퍼부었다.그리고 어느 날, 추 어르신이 오래도록 인터넷의 댓글을 훑어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는 이내 해가 지는 장면을 찍어 짧은 영상을 올렸다. 그리고 영상에 한마디만 덧붙였다.“분쟁 없이, 오직 평화만 있기를.”그는 모든 다툼이 끝나길 바랐고, 누군가를 벼랑 끝으로 몰지 않기를 바랐다. 단지 말로만 승부를 겨루는 사람은 그들의 적이 아니기 때문이다.음... 무엇보다 적이 될 자격도 없었다!영상이 올라간 지 이틀 뒤, 유아독존은 마침내 사과 영상을 올렸다. 그는 질투와 시기로 무술을 모독한 것을 사죄했고,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직접 그들의 계정을 태그해 진심으로 사과했다.진심 어린 사과는 항상 용서를 가져오는 법이다. 그리고 악성 댓글을 달던 사람들도 마침내 욕설을 멈췄다.
삼대 거두는 늦은 시각이 되어서야 일어났고, 숙취에서 깨어나니, 이미 날이 밝아져 있었다. 그들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아, 눈앞의 모든 것이 몽롱해 오늘이 무슨 날인지조차 모를 정도였다.태양이 서서히 떠오르며 하늘에 떠 있는 주황빛 구름은 점점 짙은 금빛으로 변했고, 금빛 가장자리에는 붉은색이 덧씌워져, 눈부시게 아름다웠다.소요공이 눈을 비비며 말했다."꿈을 꿨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동시에 그를 바라보며 이구동성으로 물었다."무슨 꿈을 꿨는가?""꿈에서 숭이가 사내에게 속았는데, 우리가 직접 나서서 복수를 해줬다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놀라서 동시에 숨을 들이켜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귀신이 곡할 노릇이네."말이 끝나자,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깜짝 놀라 외쳤다."자네도 꾼 것인가?""그렇네!""그렇네!""설마 우리 셋이 똑같은 꿈을 꾼 것이오?"소요공도 깜짝 놀랐다.그 일은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었고, 어떻게 된 일인지 가물가물할 정도로, 그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할 정도였는데, 꿈에서는 그 장면 장면이 또렷하게 떠올랐다.그리고, 이 꿈은 당시 엄청난 부담을 받고 있던 그들에게 정말 훌륭한 감정 해소가 되었다. 그들은 모든 고통과 억울함, 스트레스를 주먹질로 시원하게 풀어냈다.한편, 무상황은 자신이 황후를 소홀히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때 무슨 상황이었는지 기억하는가?"추 어르신이 흥분한 듯 말했다."물론 기억은 나네. 당시엔 소봉이가 궁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적성루 사람들을 많이 그리워했네. 게다가 나도 자네들과 어울리느라 바빠서 황후를 소홀히 했네. 그래서 적성루 상궁과 숭이를 궁으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게 했지."사실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꿈속에서 다시 겪은 덕분에 자세히 생각났다.그때 어서방의 회의가 끝나고, 소복이 무심히 물었다."폐하, 황후 마마를 오랫동안 못 뵙지 않으셨습니까?"그는 소복의 말이 소봉을 보러 가자는 암시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개혁은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나라가 이미 망가진 뒤라, 보수파들은 북당이 더는 흔들림을 견딜 수 없다고 여겨, 더 이상 변화를 원하지 않았다. 그러자 소국공은 소복을 부상으로 임명했고, 소복은 부상이 된 후, 온갖 수단으로 보수파를 하나 하나씩 무너뜨렸다.그는 협박, 욕설, 생떼, 무례, 끈질긴 설득 등 다양한 방식으로 보수파를 공략했고, 심지어 마지막에는 돗자리를 말아, 상대의 대문 앞에 깔고는, 저녁엔 문 앞에서 잠을 청하고, 낮에는 문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북당의 발전을 가로막는 자라고 비난까지 했다.그렇게 보수파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2년이 지나, 휘 형과 형수가 대주에서 돌아왔다. 그는 드디어 애써 노력한 끝에, 그들에게 기대에 부응할 만한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성공의 길은 여전히 멀었다. 가난 때문에 발생한 난장판은 아직도 평정되지 않았다.휘 형과 형수는 사실 그의 혼례를 치르기 위해 돌아온 것이었다.그는 이제 황후를 책봉해야 할 시기였고, 황후 후보는 일찌감치 정해져 있었다. 바로 숙왕부에서 지낸 적 있는 소복의 딸이었다.소복의 딸이 원래 무슨 이름이었는지, 그는 이미 기억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소복이 부상 자리에 오른 뒤, 딸의 이름을 소봉으로 새로 지었기 때문이다.소복의 꿈은 언제나 직설적이었다. 소봉의 이름은 '소가에서 나온 봉황'이라는 단도직입적인 뜻을 담고 있었다.소봉은 아버지 소복과는 달리 성격이 반듯하고 강직했다. 당시 그는 온갖 일로 정신이 없어 남녀 간의 감정 따위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사모의 감정보다 그에게 나라가 더욱 중요했었다.하지만 황제로서, 그도 후사를 마련하는 것이 북당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그에게 사모의 정에 대해 조금 느낀 적 있는지 묻는다면, 아마도 소가의 셋째 딸, 소낙연의 이름을 들었을 때이다.다만 그도 그녀의 이름만 알고 있었을 뿐, 나중에야 소낙연이라고 자칭했던 여인이, 사실 그의 형수인 라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 시절
그렇게 그들은 만취해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침대 삼으며, 마치 처음 전장에 나섰던 그 시절로 돌아간 기뿐을 느꼈다.그 시절에는 전쟁이 치열해, 종종 땅바닥에 몸을 웅크린 채 잠을 청하곤 했다. 여섯째는 당시에 항상 설사를 했었다. 셋이 몰래 전장에 나가려 했기에, 선생과 형수를 속이기 위해, 스스로 배탈을 자초한 후, 돈을 조금 챙기고는 전장으로 향했었다. 전쟁터에서 정말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다들 마음속으로 두려움이 가득했었다. 가난을 제외하고, 죽음보다 무서운 것은 없었다.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시간이 지나, 그러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적군이 승전가를 부르며 전우를 죽이고, 나라를 침탈할 때, 그들은 한 번도 죽음을 생각해 본 적 없었다.죽음에 관해 생각한다고 해도, 죽더라도 이 땅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뿐이었다.그들은 그렇게 잠에 들었고, 꿈속에서 막 즉위하던 시절로 시간여행을 떠났다.숙왕부도 여전히 그대로였고, 적성루는 인파로 붐볐으며, 전쟁으로 인해 찢어지게 가난했다. 휘 형과 형수는 대주로 빚을 갚으러 갔다. 북막과의 전쟁을 위해 대주의 30만 대군을 빌려왔지만, 갚을 돈이 없어 휘 형을 인질로 넘겼다.휘 형이 떠난 후, 조정은 서출의 어린 새 황제를 신경 쓰지 않았다.그들은 조정에서 대신들과 첨예하게 대립해야 했고, 매번 언쟁 후에는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채, 어서방에 돌아가 주저앉곤 했다.즉위할 때 휘 형은 최선을 다하면 좋은 황제가 될 수 있다고 격려해 주었다.그래서 그도 그렇게 믿었지만, 막상 황위에 올라보니 전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때로는 있는 힘껏 버텨도 소용없었다.하지만 퇴로 또한 없었다. 휘 형이 말했듯이, 퇴로가 없는 것이 오히려 가장 좋은 길이었다. 두 눈 질끈 감고 힘껏 돌진하다 보면, 결국 승리하게 된다.다행히 조정에 그들을 도와주는 이들도 있었다. 장 대인과 소복이 큰 도움을
그들은 사생활을 모조리 보여주는 것 같아, 팬들이 따라오는 것을 막았다.하지만 팬들은 놀랄 만큼 열렬한 애정을 보이며 기어코 그들 뒤를 따랐다.그 모습에 다들 처음엔 못마땅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이해하기로 했다. 모두 예전에 많은 사람이 따르고, 시중을 받으며 전성기를 가졌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익숙하기도 했다.어쨌든, 그들은 지금 행복하게 차를 몰며 독고 도로를 달리며 아름다운 풍경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었다. 팬들도 그들의 모습을 기록했다. 다투기도 하고, 술을 마시며 농담을 주고받고, 무술을 연습하는 모습 등, 그들의 사소한 순간들 모두 영상으로 편집되어 올라갔다 .그리고 곧 사람들은 퇴직 여행 계정에 한 명이 아닌, 세 명이 함께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상에 등장한 사람은 '십팔매'라 불렸는데, 많은 네티즌이 그 이름을 듣자마자 웃음을 터뜨렸다.얼굴에 약간의 여드름 자국이 있고, 항상 무표정으로 자기를 과인이라고 부르는 노인은 '여섯째'라 불렸다. 비록 엄숙해 보이지만, 실은 장난기가 많아 두 사람을 몰래 놀리고는 입을 막고 웃기도 했다.항상 핸드폰으로 독서하는 노인은 '주대'라고 불렸다. 박학다식하며, 말할 때마다 고사성어를 인용해, 십팔매와 여섯째가 싸울 때 몇 마디로 갈등을 풀어낼 정도로 인품이 뛰어났다.팬들은 이들의 이름만 들어도 웃음이 터질 지경이었다.그리고 그들의 대화를 듣고, 어릴 때부터 함께해왔고,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함께 여행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많은 사람들이 깊이 감동하였다.그렇게 어느 날 밤, 그들은 야외에서 술을 마시고 반쯤 취한 채, 바닥에 누운 채로 별이 가득한 하늘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이 장면 역시 팬들에게 촬영되었다.늘 털털한 십팔매는 두 손을 머리 뒤에 괴고 은하수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감탄하며 말했다."우리 정말 많이 늙었네.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살 수 있을까?"여섯째가 그의 머리를 한 대 가볍게 쳤다."길 위에서는 불길한 말 금지네."십팔매가 입을 열었다."
사건은 결국 크게 번져지고 말았다. 의도가 불순한 사람들이 소요공 일행에게 해명하라고 했지만, 그들은 이미 신시의 유명한 목호에 도착한 뒤였다. 목호의 아름다움에 빠져서 댓글이나 메시지를 볼 시간조차 없었다.지금 추 어르신은 노인이 시를 읊고 글을 짓는 데만 정신이 팔려, 어디를 가든 꼭 한 편의 시를 남긴 후, 돌아가서 희 상궁에게 보여주려고 했다.그들에게 있어 인생은 이미 반 이상 지나온 것이었다. 과거에 300년을 살겠다고 다짐한 만큼, 수많은 일을 겪고 수많은 적을 마주했기에, 이번에 만난 유아독존은 그냥 한 번 겨루었을 뿐이기에 바로 잊혀졌다.목호 여행을 마친 뒤, 그들은 차로 독고 도로로 향했다.그들은 캠핑카를 타고 북쪽으로 쭉 올라가며 길가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했다. 영상도 많이 찍었지만, 편집할 시간이 없어 업로드는 하지 못 했다. 편집으로 추 어르신의 시간을 많이 빼앗었다 보니, 그가 그동안 풍경을 놓치는 일도 많았었다. 눈도, 손도 한 쌍뿐인 데다, 다른 두사람은 편집을 전혀 몰랐기에 북당의 수보인 추 어르신 혼자 애써야 했다.그래서 영상 업데이트는 잠시 미루고, 길가의 풍경을 잘 감상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들은 짧은 영상 제작에 정신을 빼앗겨 소중한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고 초심을 잃고 싶지도 않았다.하지만, 그들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팬들과 여행 중인 배낭 여행객, 캠핑카 족들이 줄줄이 따라붙으며 영상을 빨리 올리라며 재촉했다.댓글을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쫓아와서 소리치며 재촉하는 모습에 추 어르신은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리고 내심 이렇게 자신들을 좋아해 주는 팬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날 저녁, 추 어르신은 무상황과 십팔매에게 대결을 시켰다. 그리고 편집 없이 원테이크로 촬영해, ‘사나이로 태어나서’라는 배경음악과 함께 바로 영상을 올렸다.영상에 무상황이 처음 등장하기는 했지만, 대부분 등을 돌리고 있었다. 무상황의 무공은 소요공만큼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기술이 다양해서
유아독존은 깜짝 놀라 기절할 뻔했다.그는 링 위에서 인생을 마감할 것 같은 공포를 느꼈고, 평생 이렇게 큰 공포를 느낀 적 없었다. 눈앞의 이 노인은 공격할 때, 눈빛에 살기가 서려 있었던 데다가, 전장에서 수많은 사람을 죽인 장군과도 같은 위압감을 뿜어내고 있어, 그저 한 번 눈만 마주쳤을 뿐인데 온몸이 얼어붙을 정도였다.그는 다시는 이런 공포를 겪고 싶지 않아졌다.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박수 소리 속에서 그는 자신의 거만함과 어리석음, 그리고 비열함 때문에 앞으로 모두의 조롱거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때 소요공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살려달라고 빌지 않겠다면, 그냥 일어나거라. 난 어린애랑 진지하게 겨룰 생각이 없으니."처음에는 소요공도 유아독존이 꽤 대단한 인물이라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그저 밥이나 축내는 무능한 자였다. 이런 사람이 수백만 팔로워를 가지고 있다는 게 어이없을 정도였다. 자신의 팔로워 수가 그보다 적다는 사실을 떠올리자, 괜히 기분까지 상했다.유아독존은 수치와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소요공의 표정에 갑자기 불쾌한 기색이 드러나자, 다시 겁에 질리고 말았다. 그는 파랗게 질린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터벅터벅 무대를 내려갈 뿐이었다.소요공은 이번 대결로 엄청난 스타가 된 반면, 유아독존은 몰아치는 욕설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고, 더 이상 아무런 영상도 올리지 않았다. 팬들은 그의 이전 영상이나 D을 통해 사과를 요구했다. 유아독존은 과거 소요공의 영상에 댓글로 욕설을 퍼부었지만, 그는 이 점에 대해서 사과하지 않았고, 마치 죽은 사람처럼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며칠 동안 여러 매체가 어르신들에게 연락을 보내 방송 출연을 요청했지만, 그들은 DM도 보지 않고, 어떤 연락에도 응하지 않았다. 그들은 철저하게 신비주의를 유지하며 인기를 이용하지 않았다.게다가, 이 일로 일정을 늦추지도 않았다. 새로 올라온 영상을 보고 나서야, 팬들은 그들이 이미 새로운 도시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영상에는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