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경릉에게 들키나?가기 전에 우문호는 주재상에게 이 일은 절대 밖에 새 나가서는 안되며, 특히 초왕부 누구도 알게 해서는 안된다고 신신당부했다. 그랬다간 엄청난 재앙을 만나게 될 거라고 말이다.따라서 우문호는 초왕부에 돌아와서도 조심조심, 마음은 초조했지만 얼굴은 누구에게 친절하고 온유하게 대했다. 순간 욱했다가 꼬투리를 잡히지 않도록 말이다.원경릉은 오늘 할머니 건강상태를 검사하고 전부 건강하셔서 안도했다. 만두 늑대도 크게 칭찬해 특별히 고기 2근을 더 주었다.원경릉은 우문호가 비정상이란 걸 눈치챘다. 엄숙하고 위엄 있는 미소 아래 뭔가 켕기는 구석을 감추고 있는 게 빤히 보이는 것이 원경릉을 속이려면 아직 멀었다. 하지만 결코 지적하지 않고 저녁에 침실로 돌아오기를 기다려 우문호에게 여기 좀 앉아 보라고 했다.우문호는 벌써 불안 초조로 어쩔 줄 몰라 하며 원경릉과 시선도 마주치지 못하고, “무슨 일이 있다는 거야? 그냥 피곤해서 그래.”“부부 사이엔 솔직한 게 최고야.” 원경릉이 말했다.우문호는 생각했다. 여인의 입은 사람을 홀리는 물귀신 같아서, 얼마나 많은 부부가 ‘솔직’이란 함정에 빠져 죽었는가?“정말 아무것도 아니야,”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만일을 대비해 한 마디 덧붙이며, “있어도 가짜야.”“그럼 확실히 있는 거네. 말 안 해? 자기 평생 날 속일 자신 있으면 말 안 해도 되는데 아니면 그나마 빨리 말하는 게 좋을 거야.” 원경릉이 딱 부러지게 말했다. 부부생활 2년여 기간 원경릉은 우문호의 작은 몸짓에 해당하는 심리상태도 아주 정확하게 알고 있다.우문호는 침묵하고 아무 말이 없다.“또 여자 문제야?” 원경릉이 떠보듯 우문호를 쳐다봤다.냉정을 가장하고 있던 얼굴이 순식간에 허물어지며 불현듯 고개를 들고 하늘을 가리키며 맹세하길, “이번은 나랑 조금도 관계 없어, 난 건드리지도 않았다고. 그 여자 배속에 아이는 내 아이가 아니야.”원경릉이 여유 만만하게 차를 따르며, “응, 그 여자란 사람, 누구야?”“주명양 그 미친 여편
홍엽과 주명양의 아이“그자가 분명해, 당신 오늘 못 들었어? 나에게 선물을 준비한다고 했잖아.” 우문호가 홍엽 얘기를 하며 이를 갈았다.“좋아, 행동의 의미를 파악했으니 동기만 찾으면 되겠네.”우문호가 투덜거리며, “동기는 무슨 동기? 나로 분장한 다음 그 미친 여자를 구슬려서 자기를 위해 일을 저지르게 만든 거잖아? 네 아버…… 장인 어르신이랑 마찬가지로, 여자가 목숨 걸고 자신을 위하도록 만드는 놈이 홍엽 밖에 더 있어?”“그렇게 이해할 수 있지. 그런데 피임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잖아? 왜 아이를 남기려고 했을까? 잘 생각해 봐!” 원경릉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우리 둘이 치고 받고 하라고?” 우문호는 여전히 아이에 대한 동기를 제대로 생각해 보지 않고 그저 큰 대세만 분석했다.“우리를 서로 싸우게 하는 건 쉬워, 자기가 주명양이랑 한번 잤다는 것만 나한테 알려줘도 우리는 같이 못살 테니까, 아이까지 내세울 필요 없지. 왜냐면 아이가 태어나면 여기의 관습대로 피를 떨어뜨려서 친자 여부를 확인하거나, 생긴 게 자기랑 딴판이라 아예 혐의를 깨끗하게 벗을 수도 있거든.”“내 명성을 헤치기 위해서?” 우문호는 실지로 최근의 일로 머리가 굳어버렸다.원경릉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것도 대략 목적 중 하나일 걸? 북당의 태자가 뜻밖에도 형수를 꼬드겨서 애를 배게 했다. 이렇게 소문 나면 자기 명성은 철저하게 망가지는 거지.”우문호의 눈빛이 싸늘해 지며, “최종 목적은 그게 아닐 걸, 나와 주씨 집안이 등을 돌리게 만드는 걸 지도.”원경릉이 감탄하며, “홍엽이란 인간의 일하는 방식이 가랑비에 옷 젖게 만드는 것 말고도 상당히 환경 친화적이네, 일석 몇 조야 이게.”우문호가 원경릉을 째려보며, “당신 그 놈을 칭찬하는 거야?”“자기가 냉정해 져야 한다고 일깨워주는 거야. 이런 사람이랑 맞서려면 초조하면 안돼. 성급하게 굴면 자기 발에 걸려 넘어지게 되 있어,” 원경릉이 작게 한숨을 쉬더니 찡그리고 있는 우문호를 바라보고, “일을 이렇게 크게 터
주명양을 찾아간 원경릉우문호는 여자의 직감을 믿고 잠시 망설이다가, “일단 요부인을 찾는 일은 서두르지 말자. 소문이 밖으로 드러날 때 해도 늦지 않아.” 원경릉이 이상하게 여기며, “왜? 일이 커져서 반박해 봤자 지금 우문군이 인정하는 것만큼 효과가 좋지 않을 텐데.”우문호가 끙끙거리며, “아니, 아니야, 명성은 중요하지 않고 좀 두고 보고 싶어서 그래, 소문이 어디부터 퍼지기 시작하는지 말이야. 이렇게 크게 한 방 먹었는데 그들 정체도 조금은 폭로해 줘야지.”원경릉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거 좋네, 나 화장 지우고 목욕할 게.”원경릉은 일어나 화장대 앞에 앉아 머리에 가득한 보석 장신구를 빼고, “자기 생각에 주명양이 지금 어떤 기분일 거 같아?”“흥, 그 여자 얘기도 꺼내지 마. 열 받아서 못 참겠어!” 우문호가 또 순식간에 욱하는 마음이 들었다.“내가 내일 주명양을 찾아가서 물어보려고, 그자가 살까지 섞었다는 건 틀림없이 주명양 입에서 뭔가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는 거잖아. 제일 중요한 건 본인과 같이 있었던 그자가 자기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는 거지만.” 그게 사실 제일 중요한 목적이다.“가지마, 들으면 귀만 더러워져.”“괜찮아, 난 버틸 수 있어. 엄밀히 말해 이 일에서 주명양은 피해자고 불쌍해. 이용당한 거잖아. 그 놈 진짜 증오스러워, 여자의 감정과 몸을 이용해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다니, 저질이고 비열해.”비열한 남자를 성토하는데 우문호도 맞장구를 치지 않을 수 없어서, “맞아, 그래, 비열한 놈!”주재상이 주명양을 집 안에 있는 하지원(夏至院)에 가두고 여자 하인에게 지키게 한 뒤 하지원 문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게 했다.집안의 여자 식구들도 주명양에게 접근할 수 없게 한 것은 어떤 소문도 새나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주명양은 한동안을 울었다. 그녀는 우문호가 이렇게 배신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고 수없이 많은 달콤한 속삭임이 귓가에 쟁쟁한데 싹 안면을 몰수하다니 말이다.어제 하지원에 갇힌 다음부터
주명양의 독설만아가 주명양의 앞을 막아 서며 경고하듯 그녀를 바라봤다.주명양이 만아를 가리키며 실성한 것처럼, “너…… 넌 내 노비니까 저 여자를 죽여. 저 여자를 죽이라고.”만아는 주명양에게 아직도 약간 겁이 났다. 오랜 시간 심리적인 압박을 받아 주명양이 진노하는 모습을 대할 때는 여전히 다리에 힘이 풀리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주명양을 막으며 태자비가 주명양에게 다치지 않도록 막았다.원경릉은 난처해 하는 주명양을 보고 그녀가 전에 얼마나 날뛰며 오만했는지 떠올랐다. 사람이 이렇게 변하다니, 여자를 가장 다치게 하는 건 역시 감정이다.주명양은 만아가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만아 얼굴에 따귀를 때리려, “이 비천한 게!”만아는 숨지도 반항하지도 못하고 따귀를 맞으려던 찰나, 원경릉이 갑자기 만아 뒤에서 손을 뻗어 주명양의 팔목을 잡고 낮은 목소리로, “멈춰!”주명양은 보기에 그럴싸한 약간의 무공을 할 줄 아는데다 지금 뚜껑이 열린 상황이라, 엄청난 힘이 손에 들어간 상태였으나 다행히도 원경릉이 한동안 무공을 수련한 게 헛되지 않았는지 나름 효과가 있었다.주명양의 손목을 잡고 뒤로 비틀어, “왜 무고한 사람에게 화풀이해요!”주명양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름다운 눈동자에서 분노의 불꽃을 내뿜으며 이를 갈더니, “원경릉, 네가 정말 이겼다고 생각하나 봐? 그이는 형세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나와 결백한 체 하는 거야.”주명양의 흉측한 얼굴에 음산한 미소가 떠오르며, “그이가 나랑 같이 있을 때 내 몸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아, 아마 넌 알 수 없겠지. 그이가 직접 내게 얘기 했어. 그이가 너와 이혼하지 않는 이유는 태상황 폐하께서 널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천한 계집, 별 방도가 없으니까 의술 좀 아는 걸 가지고 태상황 폐하 비위나 맞추는 주제에. 그거 아니었으면 넌 애진작에 이혼 당했어.”원경릉은 눈도 깜짝하지 않고, “그런 말을 믿다니 참 불쌍하네요. 한마디만 확실히 하죠. 당신과 같이 있던 사람 절대로 그 사람 아니예요.”주명양 고개를
우문호와의 사랑원경릉이 소매를 털더니 담담하게, “운다고? 전 안 울어요. 날조한 거짓말에 왜 울죠?”주명양이 냉소를 지으며 천천히 마주 앉더니 거리는 1장(약 3m)이 되지 않는데 적의가 가득 감돌았다.“맞아, 내가 전에 그이를 좋아했지. 그렇게 문무에 뛰어난 남자를 어느 여자가 좋아하지 않겠어?” 주명양의 눈에 조롱의 빛을 띠더니, “너도 똑같이 그이를 깊이 사랑하는 거 아냐? 단지 넌 더러운 수단으로 얻었고 최후의 승자라고 착각하는 게 다른가? 나도 원래 그가 널 보호한다고 생각했지. 마음속에는 네가 있을 거라고. 하지만 나와 만나고 그이가 속으로 삼킨 억울함을 듣고 그이가 받아온 압박과 고난을 알게 됐어. 원경릉, 넌 자기 얼굴이 가증스럽다는 거 알아?”“자세히 듣고 싶네요,” 원경릉이 소름이 돋는 걸 꾹 참고, “하지만 사실, 당신 뱃속의 아이가 그이의 아이라고 해도 분명히 당신이 먼저 그이를 꼬드긴 거고 그이는 좀 놀았을 뿐이니까요.”주명양이 입가에 차가운 웃음을 띠더니, “너 정말 그렇게 생각해? 그렇게 생각했다면 틀렸어. 당초에 내가 친정에 돌아왔을 때 그이가 먼저 갖은 수단을 동원해 나에게 서신을 보내 밖에서 만나자고 초대 했어. 처음에 난 그이에게 증오가 가득해서 다른 의도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나에게 보낸 서신을 전부 태워버렸지. 딱 하나 마지막에 보낸 것만 아직 간직하고 있어. 그이 글씨를 넌 알아보겠지.”주명양은 소매 속에서 서신 하나를 꺼냈는데 그 편지는 조심스럽게 접혀 있고 열었을 때 종이의 접힌 자국이 심한 것으로 보아 수없이 여러 번 읽고 또 읽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만아가 다가가 가져오려 하자 주명양이 손을 흔들며 차갑게, “증거를 없애려고? 볼 수 있으면 이렇게 봐. 짧게 몇 마디만 있으니까.”주명양이 서신을 턱 부근 위치에 펼쳐 원경릉에게 보여줬다.“명양 동생, 무례하게 굴 생각 전혀 없고, 그저 직접 동생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니, 만약 날 용서한다면 내일 오시(오전11시~오후1시)에 명
주명양에게 진실을 알리는 원경릉“맞아,” 주명양은 아직도 그 달콤함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그때 그이는 나에게 수도 없이 약속 했어, 나에게 기왕부로 가서 기왕부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라고, 이 일에 내가 가장 적합하다며. 왜냐면 아무도 날 의심하지 않을 거라고, 내 생각도 그래, 누가 날 주목 하겠어? 그래서 난 계속 그이를 위해 기왕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시작 했어. 잎새에 이는 바람까지도 다 알렸지.”주명양의 붉어진 눈에 증오와 집착이 가득 차서, “난 그이의 아이를 가졌어. 무슨 일이 있어도 나에게 합당한 지위를 줄 거라고 했어. 안심하고 기다리라고. 너와 헤어지고 나와 혼인할 거라고. 넌 왜 안 죽어? 원경릉, 뒈져버려. 뒈지라고. 그이가 더는 거리낌 없이 나를 아내로 맞을 수 있게.”주명양은 악독하게 원경릉을 저주했다. 마치 우문호의 앞뒤 태도가 다른 게 원경릉 탓인 것처럼. 하지만 주명양도 알고 있다, 황제의 지위를 차지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원경릉이 황제와 태상황의 마음에 들었고 민심을 얻었으므로 이때 원경릉과 헤어지는 것은 그가 황제가 되는데 미치는 영향이 크다.원경릉은 이 정보에 불만을 드러내며, “하지만 이 편지 한 장 말고 계속 너와 만난 사람이 태자라는 걸 믿게 할 방법이 없잖아.”주명양은 이미 산발이 된 머리를 매만지더니 예쁘지만 사납고 고집스럽게, “넌 계속 자기 기만이나 해. 필적을 알아봤어, 인정하지 않는다고 사실을 바꿀 수 있겠어? 네가 모든 걸 부정할 수 있어도, 내 뱃속에 아이가 태자의 핏줄이란 걸 부인하지는 못해. 태자 전하께서 보위에 오르시면 내 아이는 천자의 후손이요 미래의 제왕이야. 태자 전하께서 일언지하에 승낙하신 일이야.”원경릉이 이 말을 듣고 의외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주명양은 이렇게 이상을 쫓는 사람이 아니고 현실을 중시하는데 어떻게 이런 말을 믿을 수가 있는 거지?백배 양보해서 주명양과 같이 있었던 사람이 우문호라고 해도 적장자가 앞에 있는데 주명양의 아이가 미래의 제왕
요부인을 찾아간 원경릉원경릉이 하지원을 나와 본관으로 가서 주재상과 희상궁을 만났다.원경릉이 주재상에게, “그 쓰레기같은 놈 등에 흉터가 한 줄 있는데 필적은 태자와 7,8할 비슷하다는 것 외에 별다른 정보는 찾아내지 못했습니다.”주재상이 원경릉을 보고 문득 호기심이 들어, “태자비 마마는 그자가 태자 전하가 아니라고 그렇게 확신하십니까?”일반적으로 증거를 보기 전에 대부분의 여자는 남자를 믿지 않는다.“확신해요.” 원경릉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어째서 입니까?” 원경릉이 웃으며, “일단 직감인데 사실 직감에 의지하지 않고 떠봤죠.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서 밤이 늦어서야 돌아오고 쉴 때는 거의 집에서 저와 함께 있고 제일 중요한 건 주명양에게 무슨 감정이 있을 거라고 믿지 않았어요. 더욱 믿지 않은 건 주명양에게 자기를 위해 기왕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게 했다는 말을 듣고 나서예요. 기왕이 매일 뭘 먹고 화장실을 몇 번 가는지 알려고만 하면 전부 알 수 있으니까요.”당시 기왕비가 있었는데 기왕부에 무슨 첩자가 필요한가? 기왕비가 없다고 해도 소홍천 사람이 감시하는 게 뭐가 어렵지? 자신의 몸을 바칠 가치가 있을까?주재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희상궁을 보고 자랑스럽게, “봐요, 믿음이 중요하지 않습니까?”희상궁이 위엄 있게, “당신 말을 안 믿는 게 아니라 명확하게 하기 위해 물어봤을 뿐입니다. 손녀가 원래 매일 집에 있고 출입할 때도 따라가는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할아버지란 사람이 조금도 알아채지 못할 수가 있습니까?”주재상이 뒷짐을 지고 투덜거리며, “본디 나는 조정의 일을 처리하는 것 외에 따로 집안일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거였나 봅니다?”주재상의 저택을 나와 원경릉은 희상궁 먼저 돌아가라고 하고 만아를 데리고 요부인을 찾아 갔다.요부인은 왕비가 아니게 된 이후로 심성을 갈고 닦느라 종일 자수를 하는데, 원래보다 꽤 자애롭고 선해진 데다 소박한 옷을 입고 소매엔 흰 꽃을 수놓아 태후의 명복을 빌고 있다.주명양이 회임 했다는
무기력한 요부인“이런 안정된 날이 얼마나 좋은 데요, 외롭긴 뭐가요?” 요부인의 눈에 그윽한 빛이 떠오르고 손에 든 바늘이 멈춰 있다. 원경릉은 요부인이 수놓고 있는 그림을 보니 큰 폭으로 된 모란이다. 모란은 부귀와 화목함 속에서도 기품이 있고 드높은 기세를 상징한다.요부인은 원래 기세가 드높은 사람으로 지금의 지위를 참고 견디고 있지만 재능에 어울리지 않는 하찮은 자리에 있는 게 사실이다.“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일거예요.” 요부인이 잠시 추억에 빠지더니, “사실 예전 집에 있을 때도 이런 안정된 날을 보낸 적이 있었죠, 투쟁도 적었고 권모술수도 적었던 순간, 하지만 그때의 안정은 더욱 흉악하기 그지없는 폭풍우가 기다리고 있는 거였다면, 지금은 폭우가 그치고 밖에 던져져서 약간 헤매며 낯선 느낌이랄까요, 당연한 거겠죠? 내가 쓸모 없는 존재 같아요.”“자기는 진짜 일복을 타고났나 봐요, 난 너무너무 안정된 삶을 살고 싶어요. 남편과 같이 아이들 키우며 짬 나면 개랑 산책하고 꽃 심고 책 보고 이게 사람 답게 사는 거라고요.”“태평성대면 그런 나날이 좋지요. 하지만 지금 밖은 태평하지 않잖아요!” 요부인이 수틀을 밀어두고 원경릉에게, “어렵사리 찾아왔는데 말해봐요, 내가 뭘 하면 되는지. 주명양 뱃속의 아이와 관련이 있는 거죠?”“귀신 같이 아네요.” 원경릉이 웃으며 요부인을 일으켜 같이 나갔는데 가을바람이 상쾌하고 햇살도 딱 좋아서, “누군가 태자로 분장하고 주명양이랑 밀회를 가졌어요. 주명양 뱃속의 아이도 그 남자 아이고, 변장에 대해서는 묻지 마요. 어쨌든 주명양이 속아넘어갔다는 건 이자가 변장술의 고수라는 걸 증명하니까요. 지금 주명양은 뱃속의 아이가 태자의 아이라고 하고 있어요.”요부인이 듣더니 담담하게, “태자의 명성을 땅에 떨어뜨리고 당신 부부 사이를 멀어지게 하려는 거겠죠. 이 계획은 뜻대로 되지 않았으나 우리 내부도 엉망이 됐으니 상대입장에서는 털끝만큼도 손해가 아니네요. 본전 없이 이자가 생기는 최고로 좋은 계책이군요.”“한가
안왕은 깜짝 놀랐다.“그가 꿈을 꿨다고? 셋째 형님이 사고를 당하는 꿈을?”“예!”“언제 꾼 꿈이더냐?”원경릉은 많이 지친탓에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말했다.“아마 저녁 해시쯤 인 것 같습니다.”안왕이 물었다.“저녁 해시? 강북부에 있던 것이냐? 해시에 꿈을 꿨는데, 어떻게 자시가 되어 도착한 것이냐?”원경릉은 멈칫하다가, 그제야 무심코 자신이 말을 잘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이제 와서 며칠 전에 꾼 꿈이라고 수습하려 해도 방법이 없었다. 다섯째와 함께 온 것이 아니라, 홀로 왔기 때문이다.안왕은 여전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사실 그는 황후에게 무슨 능력이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다만 황후에 관한 일은 늘 완전히 드러나지 않아, 무슨 상황인지 제대로 알 수 없었다.안왕은 셋째 형님의 일로 마음이 무거운 터라, 더 캐묻지도 않았다. 사실, 더 캐묻는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아무리 황후가 대단하다 해도, 그를 해치지 않기 때문이다. 정말 그를 해칠 사람이었다면, 진작 그를 죽였을 것이다.그는 다만 셋째가 위험에 빠진 것을 다섯째가 꿈에서 알았다는 것이 놀라왔다. 게다가 그 꿈 하나로 황후를 먼저 급히 보내왔다는 것도 놀라웠다.꿈을 꾸는 건 어쩌면 이상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형제끼리는 어느 정도 교감을 하니 말이다. 하지만 꿈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황후를 심야에 먼저 보낸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그는 예전에도 다섯째를 대단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번에는 단순한 존경을 넘어, 그들의 형제애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원경릉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갔다.그리고 수술이 끝나자마자, 그에게 산소를 공급하고 주사를 놓았다.큰 상처들은 처리했지만, 얼굴과 손에 있는 작은 상처들은 아직 손도 못 댄 상태였다. 원경릉은 생리식염수를 꺼내 천천히 상처를 닦아주었다.얼굴에는 작은 상처들이 여러 군데 있었고, 손에 특히 많았다. 그녀는 예전에 그가 강북부에서 병사들과 함께 산을 오르고 밭을 일구며 텃
수술실은 즉시 가장 빠른 속도로 준비되었고, 원경릉은 직접 소독했다. 소독이 끝난 후에는 아무도 들어올 수 없었다.그 후 위왕을 이송했는데, 이송하는 사람들도 전부 소독을 마쳤다.문이 닫히는 순간, 본격적인 대수술이 시작되었다.원경릉은 마음이 몹시 아팠다.과거 사생활은 그렇다 해도, 그는 정말 훌륭한 신하였고, 뛰어난 장군이자 좋은 형제였다.수년간 그가 얼마나 고생했는지도 모두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다들 그가 속죄를 위해 스스로 고통을 택했다고 말하지만, 원경릉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양심의 가책이 없는 사람은 속죄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도 속죄의 방법은 다양하다. 1년, 2년 정도 고생하면 본인과 타인에게도 속죄한 것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었다.하지만 그는 십여 년 동안 매일 이 춥고 황량한 변경에서 모진 세월을 견디며 고통 속에서 살아왔다. 속죄하려는 마음도 있긴 하겠지만, 원경릉은 북당의 변방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가장 컸다. 비록 예전엔 그에게 화가 난 적이 있긴 했지만, 지금은 오로지 존경과 가족으로서의 따뜻한 감정만이 남아 있었다.그래서 수술 중 그의 옛 상처와 새로운 상처를 볼 때마다 그녀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팠다.조금만 늦었더라도 그는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이 모든 것은 안왕의 도움도 컸다. 변경의 바람과 모래가 그들 형제가 진정한 화해를 할 수 있게 이끌었다.그때 태상황이 그를 변경으로 보낸 것은 그에게 새로운 삶을 주는 기회였고, 북당에도 십 수년의 안정을 가져다 준 일이었다.위왕의 복부 상처는 너무 깊었고, 어깨와 등에도 칼에 찔린 자국이 있었다. 부상 당시 출혈도 심각해 생명이 위태로웠다.수술이 끝났을 땐, 이미 날이 밝아 있었다.원경릉은 혼자 수술을 집도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 이미 익숙해지긴 했지만, 이번 수술은 유난히 위험했다. 그녀는 행여나 너무 늦게 도착한 것은 아닌지, 마음이 조마조마했다.위왕은 언제나 강한 사람이었기에, 그녀는 그가 이번에도 버텨내길 바
위왕의 병사들이 저택 문 앞에 모여 무릎을 꿇고 있었다.위왕은 오랜 세월 병사를 이끈 뛰어난 장군이었기에, 병사들의 모든 선망을 받고 있었다. 그가 사고를 당한 일만으로도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의원들이 하나둘 고개를 저으며 떠나는 모습과 안왕비가 하늘에 기도를 올리려 무릎을 꿇은 것을 보고 병사들도 애타는 마음에 함께 무릎을 꿇었다.주변의 백성들 역시 사정을 듣고 자발적으로 찾아와, 저택 밖에 몰려들었다. 위왕은 평소 허세를 부리지 않았으며, 이웃들과도 농담을 주고받는 친근하며, 모두에게 사랑받는 왕이었다. 사실은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일부러 몰락한 왕인 척했고, 그런 모습 덕에 백성들과 가까워질 수 있었다.한편, 저택 안에서는 안왕이 위왕에게 내공을 주입하며 심맥을 지키고 있었는데, 곧바로 의술이 뛰어난 의원을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모두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원경릉은 도착하자마자 이 광경을 목격했고, 다섯째의 꿈이 사실인 것에 깜짝 놀랐다. 누군가가 큰일을 당한 것이 분명했다.그녀는 곧 사람들의 기도 속에서 위왕의 이름을 들었고, 사고를 당한 이가 정말 셋째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그리고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함께 기도하는 모습에 감격을 금치 못했다. 그녀는 위왕이 북당을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바쳤는지도 절실히 느꼈다.그녀는 워낙 빠르게 달려온 터라, 출발해서 도착까지 한 시진도 걸리지 않았다. 그녀는 길가에 말을 세우고, 서둘러 가려고 했지만 가득 찬 인파에 가로막힌 탓에, 어쩔 수 없이 큰 소리로 외쳤다.“의원입니다, 비켜주세요!”그 외침에 사람들은 바로 길을 내주었고, 원경릉은 재빨리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문 앞에 서 있던 집사는 안왕과 함께 경성에서 온 사람이라 원경릉을 알아보았다. 집사는 기쁨에 복받쳐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황후마마께서 오셨다니…! 위왕은 무탈할 것입니다.”병사들과 백성들은 그 말을 듣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황후가 직접 뛰어오셨다니? 그리고 다들 그제야 마음을
우문호 일행은 강북부로 향하는 내내 북방의 풍경과 풍속을 경험했다. 그로 인해 속도는 매우 느리긴 했지만 말이다.그날 밤, 우문호는 갑자기 악몽에서 깨어나 온몸에 땀을 흘리며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다.그러자 원경릉이 벌떡 일어나 그를 껴안으며 물었다.“무슨 일이오? 악몽을 꾼 것이오?”우문호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아직 날씨가 덥지 않은 데다가 북방에 있어 오히려 날씨까지 쌀쌀했기에, 그는 아직도 악몽이 생각나는 듯, 창백한 표정을 지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꿈에서 셋째 형님이 피투성이인 채 죽어가고 있었소…”원경릉은 그저 꿈이라 생각하고 위로해 주려 했지만, 이내 우문호의 강한 감응 능력을 떠올렸다. 갑자기 나타난 이 꿈이 형제간의 영적 감응일지도 몰랐기 때문이다.우문호도 점점 불안한 생각에 빠졌다.“강북부가 비록 평온해 보여도 사실 북당에서 가장 복잡한 곳이오. 온갖 사람들이 섞여 있고, 북막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네. 게다가 셋째 형님도 무모한 사람이니, 진짜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지 걱정되오. 원 선생, 어서 빨리 가야겠소.”원경릉이 서둘러 옷을 입으며 말했다.“아니, 내가 먼저 가겠소. 정말 상처를 입었다면, 내가 가야지 도움이 되지 않겠소? 게다가 난 빨리 갈 수 있잖소.”“좋소. 그럼 먼저 가시오. 우리도 곧 출발하겠소.”우문호는 너무 생생한 꿈 탓에, 더 이상 천천히 갈 수 없었다.“사람을 불러야겠소.”원경릉은 재빨리 옷을 입은 후, 우문호에게 포옹하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먼저 가겠소.”“조심하시오.”우문호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 원경릉은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원경릉이 사라지자마자 우문호는 방 문을 두드리며, 출발하자고 소리쳤다.우문호의 소리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이 밤중에 출발이라니, 무슨 큰 일이 생긴 걸까?이때 수보가 겉옷을 걸치고 나오며, 우문호의 팔을 잡고 물었다.“무슨 일입니까?”우문호가 답했다.“나도 모르네. 하지만 셋째 형님에게 무슨 일
스무 명이 넘는 자 중 단 한 명만 생포하고 나머지는 전부 섬멸되었다.안왕은 재빨리 위왕의 혈을 눌러 지혈한 후, 중상을 입은 위왕을 데리고 저택으로 돌아왔다. 먼저 의원을 찾으러 간 사람이 있었기에, 의원은 이미 저택에 도착해 있었다. 이때 안왕이 피투성이가 된 채, 의원의 옷깃을 움켜잡았다.“살리시게, 살려야 하네. 꼭 살아야 하네.”의원이 바로 약상자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진정하십시오.”의원이 위왕의 옷을 가위로 자르자마자, 상처가 바로 드러났다. 다행히도 먼저 지혈한 덕분에 저택까지 돌아올 수 있었다.하지만 심각한 부상 상태와, 깊은 복부의 자상 때문에 장기를 다친 것으로 판단한 의원은 간단한 처리를 마친 후, 안왕에게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소인의 의술이 부족한 탓에, 치료를 감당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경성에서 다치셨다면,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강북부는 의료가 낙후된 지역이다. 비록 혜민서를 설립한 이후 의사를 집중적으로 양성하긴 했지만, 경성에 비하면 여전히 많이 부족했다.안왕이 숨을 헐떡이며 눈에 핏줄을 세우고 소리쳤다.“중상을 입었는데 어찌 도성으로 돌아가란 말인가? 긴 여정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은가?”의원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그것도 참 문제입니다. 황실 친왕이 자금단을 가지고 계신다고 들었는데, 혹시 저택에 있습니까?”“없네!”안왕은 위왕의 호흡이 점점 미약해지는 모습을 보며 절망감에 휩싸여 털썩 주저앉았다.“내가 갖고 있던 자금단은 이미 먹은 지 오래된 것이네.”“경성… 경성으로…”의식을 잃은 위왕은 그저 경성이라는 말만 중얼거렸다.안왕은 눈물을 닦으며 무릎을 꿇었다.“형님, 조금만 더 버티십시오. 의원이 약을 썼으니, 황후가 오실 때까지 며칠만 버티십시오.”심각한 상황이니, 경성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돌아가려면 최소 일주일 이상은 걸리지만, 황후는 아마 사흘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경성으로……”위왕은 의식을 잃기 전까지 계속해서 경성을 찾았다. 그곳은 그가 너무
위왕은 마음속에 또 하나의 걱정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다섯째가 곧 강북부에 오는 것이었다. 비록 이 일은 소문내지 않았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순행했으니, 소문이 새어나가게 마련이다.설령 그가 강북부에 온다고 밝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의 최종 목적지가 강북부라는 것은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북막인들이 다섯째에게 해를 가하려는 것은 아닐지 걱정되었다.아무래도 단 한 순간도 북막인의 야심은 멈춘 적 없었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는 방심하지 않고, 허점을 찾아내겠다는 결심을 다지며 이들을 감시했다. 확실한 증거가 없는 어디까지나 본인의 추측일 뿐이기에, 그는 이 일을 아직 넷째에게 말하지 않았다. 섣불리 말을 꺼냈다가, 그들이 진짜 금나라 상인이라는 것이 밝혀지기라도 한다면, 두 나라의 사이만 영향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비록 무장이지만, 외교적인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아주 작은 불씨라도, 마음먹은 자가 부추기면 걷잡을 수 없는 큰불이 될 수 있는 법이기에, 섣불리 행동해서는 안 되었다. 그리고 감시 끝에 마침내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 처음엔 열댓 명 정도였던 이들 무리는 이틀 사이 스무 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새로 온 자들은 앞선 사람들과는 다르게, 군인이라기보다는 강호 인사의 분위기를 풍겼으며, 무공 또한 약하지 않아 보였다.위왕은 경계심을 품고, 밤새 직접 사람들을 이끌어 조사에 나섰다.앞서 만났던 금나라 사람들은 여전히 질문에 순순히 응했지만, 새로 온 강호인들은 거만한 태도를 보였다. 위왕의 질문에도 그저 시큰둥한 태도만 보이며 북당인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위왕은 건방진 그들의 태도에, 몇 마디 호통을 쳤고, 그 모습에 강호인들은 참지 못하고 바로 위왕에게 손을 쓰려고 했다.위왕은 조사하기 위해 온 터라, 데리고 온 부하도 단 몇 명 뿐이었기에, 상대가 일반적인 조사에도 이렇게 쉽게 공격하려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앞서 온 금나라인들이 말리려 했지만, 그들이 손을 쓰자, 사태가 수습되지 않을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남강에 며칠 머무는 동안, 아홉째와 함께 남강의 풍경을 둘러보고, 북강에도 다녀왔다.지금 북강 백성들은 조정에 대한 소속감이 아주 강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남강을 다스린 정책이 정말 훌륭했기에, 백성들 모두 좋은 날을 보낼 수 있었기에, 자연스레 황제에 대한 존경심도 깊어진 것이었다.황제와 황후가 지나가는 곳마다 백성들은 길가에 모여서 열렬히 환영했다.그들은 이번 순행 내내 오계부에서 신분을 밝힌 것 외에는 항상 미복으로 다녔다. 하지만 남강에서 우문호는 황제의 신분을 드러냈다.우문호는 백성들의 신뢰와 경외심에서 큰 성취감을 느꼈고, 매우 기뻤다. 그는 줄곧 원경릉의 손을 잡고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과거 북강은 방어를 위해 무술 함정이 많았지만, 이제는 모두 제거되었다. 그리고 많은 백성이 산 아래 평원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마을을 이루었다. 정화를 구하러 왔을 때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기쁜 마음과 함께 우문호는 감사함도 느꼈다. 이것은 결코 그 혼자만의 공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남강을 떠나야 하는 날이 다가오자, 원경릉은 만아와 여덟째를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곧 변성으로 가야 했기에, 아쉬움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잠시였다. 남강을 벗어나자마자, 그녀는 아이들과 만날 생각에 들뜨기 시작했다."원 선생, 그들에게 말했소?"길에서 우문호가 물었다."아니, 몰래 가는 것이오."원경릉은 웃으며 말했다."교활하구먼. 그래도 만두가 이미 알려줬을 수도 있을 텐데."지금은 경단과 찰떡, 그리고 계란이 셋만 그곳에 있었다."셋이 다섯 개 성을 다스린다니, 분명히 힘들 것이오."원경릉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그렇소.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졌네. 이제는 태평해 보이니."우문호도 아이들이 안쓰러웠다."이번에 가서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충분히 쉬게 해줘야 하오."사실 성하나를 다스리는 것과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점 없이, 매우 힘든 일이었다.한편, 강북부에서는 최근 강북부 무구산 주변에 신비한 상단
그러자 홍엽이 그를 바라보며 멈칫했다."자네가 중매를 서겠다고?""안 되오?""말도 안 되는 소리 말게. 자기 혼사도 해결 못 하는데 중매는 무슨. 난 못 믿네!"냉정언이 어깨를 으쓱였다."못 믿으면 말고. 이래 봬도 내가 명문가 아가씨나 협녀를 많이 알고 있소."홍엽은 손으로 그의 목을 움켜잡으며 소리쳤다."알고 있는 아가씨가 있으면 진작 말했어야지! 경성으로 돌아가자마자, 당장 소개해 주시게!"냉정언은 웃으며 그의 손목을 옆으로 밀어냈다."중매 값이 워낙 비싸서. 십만 냥 아니면 쉽게 안 나서오.""돈이 대수요?"홍엽이 교활하게 웃으며 말했다."우린 지금 한집에 살고 있소. 그러니 자네가 돈을 어디에 숨겼는지, 다 알고 있네. 그동안 꽤 많이 챙겼으니, 돌아가서 돈은 두둑이 주겠네."그 말에 냉정언이 깜짝 놀랐다."내 돈을 노리고 있었소? 진짜 도둑을 집에 들였군! 늙어서 쓸 돈이네, 그 돈을 혼사에 쓸 생각은 하지 마시오!""명여가 우리를 챙길 테니, 그렇게 쩨쩨하게 굴지 마시오."홍엽이 새침하게 말했다."나도 돈이 많소. 다만 남의 돈을 쓰는 게 훨씬 재밌을 뿐이네."냉정언이 숨을 들이쉬었다."안 되겠네. 경성에 돌아가자마자 자네를 쫓아내야겠소."홍엽이 말했다."쫓아낼 수 있으면 쫓아내 보시게. 게다가 자네가 나를 청할 때, 뭐라고 했는가? 얼마든지 살아도 된다고 했잖소. 이제 와서 후회하는 것이오?""이야, 홍엽, 어찌 이리 뻔뻔스러워진 것이오?""뻔뻔하지 않으면, 어찌 당신 집에서 이렇게 공으로 먹고살 수 있겠나?"홍엽은 크게 웃으며 그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수보, 신을 모시는 건 쉬워도 보내는 건 어렵다고 하잖소. 이미 집안에 들어갔으니, 쫓아내기는 힘드네. 후회해도 소용없소. 수보의 등골 빼먹다 죽을 것이오. 관에 수의까지 얻어 쓸 생각이라, 죽으면 자네가 장례식까지 마련해줘야 하네."수보는 그를 한참 바라보다가, 애써 이를 악물며 말했다."진짜 뻔뻔하오!"홍엽은 박장대소했다.멀리 복도 끝에
“예, 그립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놀고 싶기도 합니다.”그는 말하다가, 갑자기 신이 난듯 몸을 들썩이며 말을 이어갔다.“여긴 정말 재미있습니다. 아홉째와 나가면 큰 산도 있고, 꽃도, 나무도 많습니다. 물고기도 많고, 사람도 많고, 뭐든지 엄청 많았습니다.”우문호는 웃으며, 못내 안쓰러움을 느꼈다. 예전에 그를 궁 안에 가두고, 거의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사람이 그를 데리고 나가는 것도 신경 쓰였다.“이곳이 마음에 들면, 좀 더 오래 있어도 된다.”우문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예, 정말 좋습니다. 다만, 형님과 형수님이 그리웠습니다. 이렇게 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여덟째는 흥이 오른 상태로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어서 들어가시지요! 아홉째가 형님이 내일 오신다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준비했습니다.” 그는 뒤돌아 원경릉에게 외쳤다.“형수님, 빨리 따라오십시오. 맛있는 거 많습니다.”미색은 웃으며 꾸짖었다.“이 무심한 녀석, 다섯째 형수님만 챙기고, 여섯 형수가 배고픈지는 묻지도 않는 것이냐?” 여덟째는 그제야 미색을 본 듯,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여섯째 형수님도 오셨습니까? 여섯째 형님도 오신 것입니까? 와, 너무 좋습니다!”“질투하다니?”원경릉은 미색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미소를 지었다.“여덟째는 너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것이다.”“아유, 참!”미색은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여덟째는 바로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항상 그림과 책자를 선물하는 여섯째 형수님도 좋아했기 때문이다.그는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그... 그럼 같이 드시지요. 음식 많습니다.”“장난이다. 난 질투 안 해.”미색은 기쁘게 말했다.여덟째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고, 다들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원경릉이 만아에게 말했다.“정말 이곳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구나. 예전보다 훨씬 활발해졌고, 말도 많이 하네. 이 모든 게 아홉째 덕분이다.”만아는 웃으며 말했다.“예, 둘이 시간이 날 때마다 밖으로 나가,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