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아와 보배원경병이 약간 감개무량해서, “정후부 때를 생각하면 매일 정말 자유로웠는데, 아빠 엄마가 변변치 않고, 신경 쓰이지만 진짜 우리가 근심 걱정할 게 없는 곳이었어요.”“잘 못 지내는 거야? 구사는 너한테 어때?”“저한테 잘 해줘요, 집안도 지금은 괜찮고. 단지 좀 감개무량해서 그래요.” 원경병이 웃으며 행복한 눈빛을 숨기지 못하고, “구사에게 시집간 건 제 평생에 최고의 행운이었어요. 더는 서러움 당할 걱정 없는 게 뭐든 달게 받아들일 수 있어요.”잠시 후 정색하더니, “아니, 서러움을 당하는 건 역시 싫네요, 싸울래요.”원경릉이 웃기 시작했다. 이래야 원경릉이 아는 원경병이지.사식이와 서일이 오늘 근친을 마치고 오는 날로 서씨 집에서 누가 찾아왔는데 기상궁이 문에서 막고 꾸짖어 서씨 집안 사람은 아주 거나하게 욕을 먹었다.이제 그들에게 혼담을 넣어 달라고 부탁하는 입장이 아니니 기상궁이 그런 수모를 당하고 참을 리 없다. 그래서 욕을 진탕 한 뒤에 서씨 새어머니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만약 다시 서일을 찾아오면 다리 몽둥이를 부러뜨려 버리겠다고 했다.기상궁이 꾸짖고 욕 하는게 장난이 아닌 게 쓰는 단어가 완곡한 표현이 아니다. 하여간 기상궁 본인이 아는 가장 악독한 말을 다 사용해 서일의 새어머니는 완전 찌그러져 욕만 잔뜩 먹고 풀이 죽은 채로 도망갔다.그들도 새아들의 황실 인척한테 비빌 수 없다는 걸 알아서 감히 다시 오지 못했다.서일과 사식이는 초왕부로 돌아와 살고 새집은 계속 짓는 중이다.원경릉은 요즘 시간차를 계산하느라 바쁜데 이게 가장 어려운 부분으로, 급하지 않다는 건 거짓말이지만 이 일은 서두를 수가 없는 것이 정확한 시간이 없기 때문에 계산은 추측과 추산에 의지해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경성은 지금 상당히 태평해서 마치 모든 것이 원경릉이 아이를 낳는 것을 위해 길을 비켜주는 것 같은 게 당연히 경성이 태평을 유지하는 건 우문호가 오랫동안 고생했기 때문이다.주재상이 황후의 폐위를 주청한 뒤로 실무에서 퇴임한 상태에
황후에게 간 보배이번엔 찰떡이조차 마음이 움직였다. 남동생은 있던 없던 상관없지만 여동생은 꼭 필요하니 엄마에게 여동생을 낳아야 한다고 강력하게 요구했다.원경릉은 아이를 안지도,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서서 천천히 걸어 다니거나 아니면 누워있는데 누우면 숨쉬기가 힘들다.말도 못하게 고생스럽다.학창시절 새벽같이 일어나 공부하고 초등학교부터 쭉 1등을 도맡아 왔지만 지금 그게 아무런 쓸모도 없는 걸 생각하면 가끔 서글픈 생각이 들지만, 또 어떨 땐 축복받았다는 기분이 드는 게 어떻든지 간에 아직 살아서 서로 사랑하는 사람과 아이들과 같이 있기 때문이다.원용의는 몸조리를 잘 한 덕분에 깨끗하고 맑은 피부에 살도 오르고 사람이 훨씬 명랑해 졌다.동서들과 같이 수다를 떨다가 갑자기, “내일 보배를 데리고 입궁해서 어마마마를 뵙고 오려고요.”손왕비가 놀라며, “황후 마마를 만난다고? 가지 마.”원용의가 고개를 흔들며, “가야죠. 피는 물보다 진하잖아요. 전 제 할 도리 다 하면, 황후 마마께서 어떻게 보시던지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 할머니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도리는 분명히 해야죠. 저와 황후 마마는 절대로 좋은 고부관계가 될 수 없지만, 제가 보배를 데리고 황후 마마를 만나러 가면 제왕 전하는 조금 위로가 될 테니 전 제왕 전하를 위해 가는 거예요.”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싸웠든 어쨌든 황후와 제왕의 모자 사이는 갈라놓을 수 없다. 관계가 깨져 있는데 마음이 개운하겠어?다음 날 제왕부부는 보배를 데리고 황후를 만나러 방명전에 갔다.황후는 팔황자가 그림 그리는 옆에 있다가 제왕부부가 아이를 데리고 온다는 얘기에 약간 당황했다.그리고 이 순간 현비가 생각났다.황후는 어쩌면 현비보다 운이 좋은 걸지도 모른다.원용의가 예의를 차려 예를 올리고 비굴하지도 방자하지도 않게 자리에 앉았다. 모자가 얘기를 나누는데 어색한 분위기는 어쩔 수 없다.황후는 보배를 안지 않고 몇 번 쳐다보기만 하더니, 마지막에 부부가 돌아가려고 할 때 벌떡 일어나, “걔를 좀 안아
뜻밖의 방문객출산휴가를 내려고 우문호는 최근 눈이 뱅뱅 돌아가게 바쁘게 지내며 미친듯이 일곱째를 재촉해 중요한 몇 가지 사건을 반드시 해결하라고 했다. 또 두세차례 대 소탕작전으로 경성은 한층 경계가 삼엄해 져서 치안은 자연스럽게 호전되었다.내년 봄에 과거가 있어서 전국에서 경성으로 오는 학생들이 점점 많아 지기 시작해, 경성의 각 대형 여관은 과거시험을 보러 온 학생들도 가득 찼다.우문호가 주루에 대한 정비에도 박차를 가하는 이유는 주루가 감시하고 통제하는데 이용당하기 가장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재직 관원들은 주루에서 향응을 즐기지 못하게 하고 명을 어긴 자는 파면하도록 성지를 내려줄 것을 요청했다.주재상은 감찰 관아를 만들어 각 부처 관원의 위반 여부 감찰을 전담했다. 주루에서 놀아서는 안 되지만 이미 뼈속까지 썩은 호색한들은 어떻게 든 방법을 찾아내서 아가씨를 집으로 불러들였는데, 감찰 관아가 있으니 호색한들도 재미보기는 글렀다.주재상이 우문호와 함께 하는 것은, 침투세력을 뿌리째 뽑으려면 우리 쪽도 다치기 마련이라 온 경성에 파란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다. 지금 사실 때가 무르익지 않아 다른 사람은 통제할 수 없으나 자기 사람은 그나마 가능하지 않겠어?최근 초왕부에 들락거리는 사람이 많아졌는데 대부분은 황실 친족들로 곧 출산을 앞두고 있으니 문병을 핑계로 원경릉에게 얼굴도장을 찍으러 오는 것이다.요부인과 미색이 요즘 거의 매일 오다시피 해서 초왕부에 같이 있는데 둘은 원경릉이 갑자기 산통이 올까 봐 그런다.동서 셋이 방에 앉아 얘기하는데 누군가 와서 기왕부부가 왔다는 것이다.이 보고를 듣고 미색이 무의식적으로 요부인을 보더니, “기왕 부부?”요부인이 태연하게, “기왕 전하와 주명양이야.”미색이 놀라서, “그 사람들이 왜 왔어요? 그리고 기왕 전하는 무슨? 첫째 황자가 되신 거 아닌 가요? 언제 왕야의 봉호를 받았죠?”“자칭이겠지. 뭘 하러 왔는지는 가서 물어보면 알지 않겠어?” 요부인이 담담하게 말했다.미색이 허허 웃더니
십만냥 내놔“기왕 전하와……기왕비 마마께서 무슨 일로 오셨는지?” 자칭 기왕이라고 했으니 그렇게 불러주는 게 인지상정.요부인이 있기 때문인지 우문군은 잠시 우물쭈물 하며 제대로 말을 못한다.오히려 주명양이 눈썹을 치켜 뜨고, “말 못할 게 뭐가 있어요? 우린 은자를 가지러 왔어요.”원경릉이 놀라서, “은자? 무슨 은자를 가지러?”“배상금이요.” 주명양이 원경릉을 보고 콧방귀를 뀌더니, “다들 마음 속에 짚이는 일이 있을 거예요. 우문호가 나에게 잘못했으니 그냥 지나갈 생각 하지도 말아요. 당신이 배상하는 게 당연하지.”“그 사람이 당신에게 뭘 잘못했죠?” 원경릉은 정말 어리둥절했다. 그 일은 진작에 해결된 거 아닌가? 주명양이 자기도 기만하고 남도 속일 그런 바보는 아닌데, 자신과 좋아했던 사람이 우문호가 아닌 걸 누구보다 확실히 알 게 분명하다.우문군이 심호흡을 하더니 요부인이 자리에 있는 것에 신경 쓰지 않고 직접, “아내의 아이가 없어졌으니 다섯째는 아내에게 배상하는 게 도리입니다. 다섯째가 뿌린 재앙의 씨앗을 부인할 생각하지 마시죠. 원인이 있었으니 결과도 생긴 게 아닙니까. 나도 똑똑히 알고 있어요. 다섯째가 음흉한 짓을 했다는 걸.”원경릉과 요부인이 서로 마주보며 역시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저들이 구석에 처박혀 지들끼리 썩어 문드러지든 말든 내버려 둬야했다.원경릉이 대놓고, “얼마를 원하세요?”“십만 냥!” 두 사람이 이구동성을 말했다.“십만 냥? 차라리 도둑질을 하지 그래요?” 원경릉이 냉소를 지었다.주명양이 증오에 찬 눈빛으로, “태자의 명성을 지키고 싶거든 어서 십만 냥을 가져와요. 안 그러면 골목골목에서 태자가 큰 형수를 욕보였다고 소문이 돌 테니까, 그땐 이미 우문호의 명성이 땅에 떨어져 백만 냥을 줘도 다시 살 수 없겠죠.”“큰 형수를 욕보여?” 원경릉이 실소를 터트렸다. “당신이 말한 큰 형수가 당신인가요? 좋아요, 나가서 맘대로 떠들어요. 누가 믿나 보죠.”“당신…… “ 주명양이 벌떡 일어나서 살벌한 눈빛으
힘없는 으름장만아가 ‘휘릭’ 초왕부 대문 간에서 내가보니 과연 골목 끄트머리에 머리 둘이 초왕부 문간을 살피고 있다. 거리가 꽤 있어서 똑똑히 보이지는 않지만 만아가 쳐다보는 걸 알고 두 사람이 얼른 머리를 쏙 집어 넣었다.만아가 탕양에게 보고하고 탕양이 사람을 시켜 몰래 두 사람을 감시시킨 후, 만아는 귓속말로 원경릉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원경릉이 속으로 생각하는 게 있어 태도를 완전 바꿔 우문군에게, “은자 십만 냥을 갑자기 내 놓을 수는 없어요. 이렇게 하죠. 저에게 사흘의 시간을 주시고 사흘 후에 다시 오세요. 어떠세요?”“안돼, 반드시 지금 줘야 해!” 주명양의 태도가 상당히 강경했다.원경릉이 천천히 일어나, “지금은 은자 열 냥 밖에 없어요. 원하면 열 냥이라도 가져가는데 대신 밖에 나가서 태자 전하께서 당신을 모욕했다고 떠들고 다녔다가 가만 안 둘 줄 알아요.”우문군의 얼굴이 다급해 지더니 원경릉을 막아 서며, “사흘 후엔 반드시 있는 거요? 날 속이려 들면 안됩니다.”“있는지 없는지 사흘후에 와 보시면 알지 않습니까?” 원경릉은 앉아 있기도 불편하고 저들과 말을 섞고 싶지도 않아서 요부인과 천천히 걸어 나왔다.뒤에서 주명양이, “사흘 후에 만약 십만 냥이 없으면 가만 두지 않을 줄 알아. 원경릉.”요부인 같은 고단수가 신발 벗어도 못 쫓아올 주명양이, 협박이라고 해봤자 무서운 얼굴로 악다구니나 할 뿐이다.우문군 부부가 초왕부를 떠나자 누군가 슬금슬금 꼬리를 물고 따라갔다.요부인이 오는 내내 침묵하더니 편청에 도착하자 한마디, “뭐 하는 연놈이야?”“실망했어요?” 원경릉이 물었다.“저 인간한테 실망하고 말고 가 어디 있어요? 진작에 남남인데.” “요부인 올해 몇 살이죠?”“말띠요!” 요부인이 여유를 부리며 손으로 비녀를 누르더니, “늙어 보여요?”원경릉이 헤아려 보니 말띠면 30대 초반이다. 요 일년간 권모술수 없이 쭉 보양을 해서인지 피부가 희고 맑은데다 얼굴은 평화롭고 눈동자가 깨끗한 것이 원래보다 훨씬 예뻐졌다.
우문군의 사정“세상에 황실 남자만 있는 건 아니죠.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좀 보면 좋은 사람 많아요.”“좋은 사람이 나처럼 버림받은 사람을 맘에 들어 할 리가 없죠.” 요부인은 이런 얘기 해봤 자 시간 낭비라고 느끼고 일어서 나갔다.원경릉이 뒤에 다 대고, “강아지 더 키울 래요? 한 마리 더 보내줘요?”‘”좋아요, 보내요!” 요부인의 목소리가 멀어지더니 곧 마당을 나갔다.탕양 쪽에서 살살 알아보니 우문군과 주명양이 와서 돈을 요구한 전모가 드러났다.우문군은 여전히 첫째 황자의 신분에 머물러 있지만, 처음엔 그래도 분수에 만족하고 매달 조정에서 내려오는 은자만 가지고 달리 생활비를 보내주는 사람 없어도 그럭저럭 생활할 만 했다.안타깝게도 사람이 등 따시고 배 부르면 욕구가 일기 마련이라, 기왕은 분수에 만족을 못하고 정치 쪽은 손을 댈 수 없으니 사람들을 따라 불법 투기로 생활을 영위해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좋아서 한 밑천 벌자 주명양도 부유한 나날을 보내는 습관에 젖어 벼락부자가 되고 싶은 나머지 자신이 밑천을 전부 우문군에게 주고 다시 한탕 했다. 그러나 이번 물건은 수로를 통해 경성으로 운송하는 과정에서 물에 가라앉아 물건은 없어졌는데 우문군은 이미 중간 상인에게 선금을 받은 데다 물건을 실어오는 배 삯까지 전부 합쳐 손실이 십만 냥을 넘었다. 손해본 물건은 다른 사람과 동업한 것으로 그쪽에서 먼저 업자들에게 배상한 뒤 우문군에게 은자를 내놓으라고 한 것이다. 만약 내지 않으면 이 일을 공개하겠다고 하니 놀란 우문군도 체면을 따질 겨를 없이 초왕부에 와서 돈을 요구한 것이다.우문호가 듣고, “무슨 물건이야?”“소금 밀매요!” 탕양이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우문호가 노기를 띠고, “아주 간이 배밖으로 나왔구나. 감히 소금 밀매에 가담 해? 조정에서 지금 소금 밀매 단속을 강력하게 확대하고 있는 마당에 오래 살고 싶지 않은가 봐?”“전하, 이 일을 폐하께 보고 드려야 할 지요?”“아바마마께 보고 드리면 큰형에겐 죽음밖에 없어.
아기 호랑이우문군과 주명양 일을 우문호에게 맡기고 원경릉은 신경 쓰지 않았다.산달이 된 원경릉은 침대에 누워 쉬지 않고 바득바득 나가서 걸었다.매일 아침 밥을 먹고 마당에서 걷고, 점심에도 걷고, 저녁에는 우문호가 돌아오길 기다리며 아이들과 마당에서 한동안 논다.희상궁은 이미 산파와 유모 일을 정리해 놓았으나 할머니께서 계시니 산파도 크게 신경 쓸 일이 없고 조수 정도의 일만 담당할 정도다.희상궁은 사실 첫 임신때처럼 배를 열어야 할 까봐 걱정이 태산 같았다. 그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게다가 이번엔 집도할 의사도 없는데 어떻게 하지?다행히도 태자비에게 물어보니 순산할 수 있을 거라고 해서 상당히 안심하고 있지만, 태만할 수 없어서 틈만 나면 태자비 곁에 붙어 있다.원경릉이 무거운 몸을 끌고 입궁해서 태상황과 얘기를 나눴다.상선은 이제 몇 걸음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대부분의 시간은 휠체어야 앉아서 보내지만 가끔 태상황이 휠체어를 밀고 마당에서 산책을 한다. 주재상이 물러난 뒤엔 태상황과 함께 하는 날이 많아진 데다 소요공까지 더해져 건곤전의 나날은 신선 놀음이다.원경릉이 입궁해 늙은이들이 모여 내기 하는 걸 봤는데 신선했다.하지만 내용을 듣고 나니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그들은 원경릉의 배를 보고 내기를 걸었는데 소요공은 한 명, 태상황은 두 명, 주재상은 3명이라고 하고, 은자 천냥을 건 것이다. 부자들!소요공이 몰래 원경릉에게, “도대체 몇 명이야?”원경릉이 웃으며, “전 소요공께서 삼분의 일의 기회로 이기실 거란 말씀밖에 못 드려요.”“아무 말 안 하는 거랑 똑같네.” 소요공이 시무룩하다.원경릉이 건곤전에서 점심을 먹는데 태상황이 갑자기, “안풍친왕이 이틀전에 편지를 보내왔는데 네가 아이를 낳으면 새끼 호랑이를 보내준다고 하더라.”원경릉이 하하 웃으며, “초왕부에 동물원 열어야 겠네요.”태상황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것도 괜찮군, 대주에 용태후도 네가 셋째를 가지면 자기집 새끼 봉황을 떼 주겠다고 했으니까.”원경릉
첫눈 오던 날“맞다, 우문군 일은 어떻게 됐어?” “일단 뭉개면서 감시하고 있어, 의심스런 곳은 없는지 살피면서, 나랑 아주 닮은 남자를 보고 싶은 게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지도 알고 싶고 만약 이 일을 배후에서 누군가 움직이고 있다면 나타날 가능성이 있어.”저녁을 먹고 원경릉은 몸이 피곤해서 산책을 가지 않고 일찍 잠이 들었다.날씨가 점점 추워지면서 이날 드디어 첫눈이 내려 엷은 소금 꽃이 마당을 한층 덮었다. 순백의 눈이 대지를 온통 뒤덮은 것은 아니지만 각별히 운치가 있다.하지만 오시(낮11시~1시) 종이 울리자 궁에서 소식이 와서 태상황이 마당에서 상선과 함께 넘어져서 다리를 다쳤다고 했다. 원경릉은 바로 마차를 준비시켰다.배가 만삭이라 희상궁, 만아, 사식이 세사람이 같이 나갔다. 초왕부 문 앞에서 미색과 요부인을 마주쳤는데 태상황 폐하께 일이 생겼다는 말에 두 사람도 같이 입궁했다.다행히 태상황과 상선의 상처는 심하지 않고 상선은 머리를 다쳐 피부가 살짝 벗겨지고 피가 났으나 어의가 처리를 잘했다.태상황은 발을 삐었는데 복사뼈가 부어올라 원경릉이 검사해보니 뼈는 부서지지 않았으나 근육과 뼈를 다쳤다. 특히 노인은 넘어지는 걸 특히 주의해야 하므로 태상황은 며칠간 침대에서 내려와 걷지 못하게 엄금했다. 태상황이 요부인을 보고 자상한 표정으로, “잘 지내나?”요부인이 눈물을 머금고 바닥에 꿇어앉아, “태상황 폐하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잘 지내면 됐어, 일어나게.” 태상황이 몇 마디 묻지도 않고 한숨을 쉬었다.요부인이 일어나며, “예, 태상황 폐하 옥체 보중 하세요!”태상황이 중얼거리듯, “이번 첫눈은 아주 상서로운 징조야.”“네, 폐하께서 조금 더 주의하셔야 첫눈의 상서로움이 계속 남아있을 거예요.” 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원경릉이 일어나 살살 허리를 폈다.“왜요? 불편해요?” 미색이 부축하며, “피곤한 거 아니예요?”“허리가 좀 쑤셔요!” 원경릉이 허리를 이리저리 뒤틀더니, “방금 허리를 너무 오래 구부리고
우문호 일행은 강북부로 향하는 내내 북방의 풍경과 풍속을 경험했다. 그로 인해 속도는 매우 느리긴 했지만 말이다.그날 밤, 우문호는 갑자기 악몽에서 깨어나 온몸에 땀을 흘리며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다.그러자 원경릉이 벌떡 일어나 그를 껴안으며 물었다.“무슨 일이오? 악몽을 꾼 것이오?”우문호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아직 날씨가 덥지 않은 데다가 북방에 있어 오히려 날씨까지 쌀쌀했기에, 그는 아직도 악몽이 생각나는 듯, 창백한 표정을 지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꿈에서 셋째 형님이 피투성이인 채 죽어가고 있었소…”원경릉은 그저 꿈이라 생각하고 위로해 주려 했지만, 이내 우문호의 강한 감응 능력을 떠올렸다. 갑자기 나타난 이 꿈이 형제간의 영적 감응일지도 몰랐기 때문이다.우문호도 점점 불안한 생각에 빠졌다.“강북부가 비록 평온해 보여도 사실 북당에서 가장 복잡한 곳이오. 온갖 사람들이 섞여 있고, 북막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네. 게다가 셋째 형님도 무모한 사람이니, 진짜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지 걱정되오. 원 선생, 어서 빨리 가야겠소.”원경릉이 서둘러 옷을 입으며 말했다.“아니, 내가 먼저 가겠소. 정말 상처를 입었다면, 내가 가야지 도움이 되지 않겠소? 게다가 난 빨리 갈 수 있잖소.”“좋소. 그럼 먼저 가시오. 우리도 곧 출발하겠소.”우문호는 너무 생생한 꿈 탓에, 더 이상 천천히 갈 수 없었다.“사람을 불러야겠소.”원경릉은 재빨리 옷을 입은 후, 우문호에게 포옹하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먼저 가겠소.”“조심하시오.”우문호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 원경릉은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원경릉이 사라지자마자 우문호는 방 문을 두드리며, 출발하자고 소리쳤다.우문호의 소리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이 밤중에 출발이라니, 무슨 큰 일이 생긴 걸까?이때 수보가 겉옷을 걸치고 나오며, 우문호의 팔을 잡고 물었다.“무슨 일입니까?”우문호가 답했다.“나도 모르네. 하지만 셋째 형님에게 무슨 일
스무 명이 넘는 자 중 단 한 명만 생포하고 나머지는 전부 섬멸되었다.안왕은 재빨리 위왕의 혈을 눌러 지혈한 후, 중상을 입은 위왕을 데리고 저택으로 돌아왔다. 먼저 의원을 찾으러 간 사람이 있었기에, 의원은 이미 저택에 도착해 있었다. 이때 안왕이 피투성이가 된 채, 의원의 옷깃을 움켜잡았다.“살리시게, 살려야 하네. 꼭 살아야 하네.”의원이 바로 약상자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진정하십시오.”의원이 위왕의 옷을 가위로 자르자마자, 상처가 바로 드러났다. 다행히도 먼저 지혈한 덕분에 저택까지 돌아올 수 있었다.하지만 심각한 부상 상태와, 깊은 복부의 자상 때문에 장기를 다친 것으로 판단한 의원은 간단한 처리를 마친 후, 안왕에게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소인의 의술이 부족한 탓에, 치료를 감당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경성에서 다치셨다면,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강북부는 의료가 낙후된 지역이다. 비록 혜민서를 설립한 이후 의사를 집중적으로 양성하긴 했지만, 경성에 비하면 여전히 많이 부족했다.안왕이 숨을 헐떡이며 눈에 핏줄을 세우고 소리쳤다.“중상을 입었는데 어찌 도성으로 돌아가란 말인가? 긴 여정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은가?”의원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그것도 참 문제입니다. 황실 친왕이 자금단을 가지고 계신다고 들었는데, 혹시 저택에 있습니까?”“없네!”안왕은 위왕의 호흡이 점점 미약해지는 모습을 보며 절망감에 휩싸여 털썩 주저앉았다.“내가 갖고 있던 자금단은 이미 먹은 지 오래된 것이네.”“경성… 경성으로…”의식을 잃은 위왕은 그저 경성이라는 말만 중얼거렸다.안왕은 눈물을 닦으며 무릎을 꿇었다.“형님, 조금만 더 버티십시오. 의원이 약을 썼으니, 황후가 오실 때까지 며칠만 버티십시오.”심각한 상황이니, 경성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돌아가려면 최소 일주일 이상은 걸리지만, 황후는 아마 사흘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경성으로……”위왕은 의식을 잃기 전까지 계속해서 경성을 찾았다. 그곳은 그가 너무
위왕은 마음속에 또 하나의 걱정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다섯째가 곧 강북부에 오는 것이었다. 비록 이 일은 소문내지 않았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순행했으니, 소문이 새어나가게 마련이다.설령 그가 강북부에 온다고 밝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의 최종 목적지가 강북부라는 것은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북막인들이 다섯째에게 해를 가하려는 것은 아닐지 걱정되었다.아무래도 단 한 순간도 북막인의 야심은 멈춘 적 없었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는 방심하지 않고, 허점을 찾아내겠다는 결심을 다지며 이들을 감시했다. 확실한 증거가 없는 어디까지나 본인의 추측일 뿐이기에, 그는 이 일을 아직 넷째에게 말하지 않았다. 섣불리 말을 꺼냈다가, 그들이 진짜 금나라 상인이라는 것이 밝혀지기라도 한다면, 두 나라의 사이만 영향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비록 무장이지만, 외교적인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아주 작은 불씨라도, 마음먹은 자가 부추기면 걷잡을 수 없는 큰불이 될 수 있는 법이기에, 섣불리 행동해서는 안 되었다. 그리고 감시 끝에 마침내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 처음엔 열댓 명 정도였던 이들 무리는 이틀 사이 스무 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새로 온 자들은 앞선 사람들과는 다르게, 군인이라기보다는 강호 인사의 분위기를 풍겼으며, 무공 또한 약하지 않아 보였다.위왕은 경계심을 품고, 밤새 직접 사람들을 이끌어 조사에 나섰다.앞서 만났던 금나라 사람들은 여전히 질문에 순순히 응했지만, 새로 온 강호인들은 거만한 태도를 보였다. 위왕의 질문에도 그저 시큰둥한 태도만 보이며 북당인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위왕은 건방진 그들의 태도에, 몇 마디 호통을 쳤고, 그 모습에 강호인들은 참지 못하고 바로 위왕에게 손을 쓰려고 했다.위왕은 조사하기 위해 온 터라, 데리고 온 부하도 단 몇 명 뿐이었기에, 상대가 일반적인 조사에도 이렇게 쉽게 공격하려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앞서 온 금나라인들이 말리려 했지만, 그들이 손을 쓰자, 사태가 수습되지 않을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남강에 며칠 머무는 동안, 아홉째와 함께 남강의 풍경을 둘러보고, 북강에도 다녀왔다.지금 북강 백성들은 조정에 대한 소속감이 아주 강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남강을 다스린 정책이 정말 훌륭했기에, 백성들 모두 좋은 날을 보낼 수 있었기에, 자연스레 황제에 대한 존경심도 깊어진 것이었다.황제와 황후가 지나가는 곳마다 백성들은 길가에 모여서 열렬히 환영했다.그들은 이번 순행 내내 오계부에서 신분을 밝힌 것 외에는 항상 미복으로 다녔다. 하지만 남강에서 우문호는 황제의 신분을 드러냈다.우문호는 백성들의 신뢰와 경외심에서 큰 성취감을 느꼈고, 매우 기뻤다. 그는 줄곧 원경릉의 손을 잡고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과거 북강은 방어를 위해 무술 함정이 많았지만, 이제는 모두 제거되었다. 그리고 많은 백성이 산 아래 평원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마을을 이루었다. 정화를 구하러 왔을 때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기쁜 마음과 함께 우문호는 감사함도 느꼈다. 이것은 결코 그 혼자만의 공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남강을 떠나야 하는 날이 다가오자, 원경릉은 만아와 여덟째를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곧 변성으로 가야 했기에, 아쉬움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잠시였다. 남강을 벗어나자마자, 그녀는 아이들과 만날 생각에 들뜨기 시작했다."원 선생, 그들에게 말했소?"길에서 우문호가 물었다."아니, 몰래 가는 것이오."원경릉은 웃으며 말했다."교활하구먼. 그래도 만두가 이미 알려줬을 수도 있을 텐데."지금은 경단과 찰떡, 그리고 계란이 셋만 그곳에 있었다."셋이 다섯 개 성을 다스린다니, 분명히 힘들 것이오."원경릉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그렇소.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졌네. 이제는 태평해 보이니."우문호도 아이들이 안쓰러웠다."이번에 가서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충분히 쉬게 해줘야 하오."사실 성하나를 다스리는 것과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점 없이, 매우 힘든 일이었다.한편, 강북부에서는 최근 강북부 무구산 주변에 신비한 상단
그러자 홍엽이 그를 바라보며 멈칫했다."자네가 중매를 서겠다고?""안 되오?""말도 안 되는 소리 말게. 자기 혼사도 해결 못 하는데 중매는 무슨. 난 못 믿네!"냉정언이 어깨를 으쓱였다."못 믿으면 말고. 이래 봬도 내가 명문가 아가씨나 협녀를 많이 알고 있소."홍엽은 손으로 그의 목을 움켜잡으며 소리쳤다."알고 있는 아가씨가 있으면 진작 말했어야지! 경성으로 돌아가자마자, 당장 소개해 주시게!"냉정언은 웃으며 그의 손목을 옆으로 밀어냈다."중매 값이 워낙 비싸서. 십만 냥 아니면 쉽게 안 나서오.""돈이 대수요?"홍엽이 교활하게 웃으며 말했다."우린 지금 한집에 살고 있소. 그러니 자네가 돈을 어디에 숨겼는지, 다 알고 있네. 그동안 꽤 많이 챙겼으니, 돌아가서 돈은 두둑이 주겠네."그 말에 냉정언이 깜짝 놀랐다."내 돈을 노리고 있었소? 진짜 도둑을 집에 들였군! 늙어서 쓸 돈이네, 그 돈을 혼사에 쓸 생각은 하지 마시오!""명여가 우리를 챙길 테니, 그렇게 쩨쩨하게 굴지 마시오."홍엽이 새침하게 말했다."나도 돈이 많소. 다만 남의 돈을 쓰는 게 훨씬 재밌을 뿐이네."냉정언이 숨을 들이쉬었다."안 되겠네. 경성에 돌아가자마자 자네를 쫓아내야겠소."홍엽이 말했다."쫓아낼 수 있으면 쫓아내 보시게. 게다가 자네가 나를 청할 때, 뭐라고 했는가? 얼마든지 살아도 된다고 했잖소. 이제 와서 후회하는 것이오?""이야, 홍엽, 어찌 이리 뻔뻔스러워진 것이오?""뻔뻔하지 않으면, 어찌 당신 집에서 이렇게 공으로 먹고살 수 있겠나?"홍엽은 크게 웃으며 그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수보, 신을 모시는 건 쉬워도 보내는 건 어렵다고 하잖소. 이미 집안에 들어갔으니, 쫓아내기는 힘드네. 후회해도 소용없소. 수보의 등골 빼먹다 죽을 것이오. 관에 수의까지 얻어 쓸 생각이라, 죽으면 자네가 장례식까지 마련해줘야 하네."수보는 그를 한참 바라보다가, 애써 이를 악물며 말했다."진짜 뻔뻔하오!"홍엽은 박장대소했다.멀리 복도 끝에
“예, 그립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놀고 싶기도 합니다.”그는 말하다가, 갑자기 신이 난듯 몸을 들썩이며 말을 이어갔다.“여긴 정말 재미있습니다. 아홉째와 나가면 큰 산도 있고, 꽃도, 나무도 많습니다. 물고기도 많고, 사람도 많고, 뭐든지 엄청 많았습니다.”우문호는 웃으며, 못내 안쓰러움을 느꼈다. 예전에 그를 궁 안에 가두고, 거의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사람이 그를 데리고 나가는 것도 신경 쓰였다.“이곳이 마음에 들면, 좀 더 오래 있어도 된다.”우문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예, 정말 좋습니다. 다만, 형님과 형수님이 그리웠습니다. 이렇게 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여덟째는 흥이 오른 상태로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어서 들어가시지요! 아홉째가 형님이 내일 오신다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준비했습니다.” 그는 뒤돌아 원경릉에게 외쳤다.“형수님, 빨리 따라오십시오. 맛있는 거 많습니다.”미색은 웃으며 꾸짖었다.“이 무심한 녀석, 다섯째 형수님만 챙기고, 여섯 형수가 배고픈지는 묻지도 않는 것이냐?” 여덟째는 그제야 미색을 본 듯,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여섯째 형수님도 오셨습니까? 여섯째 형님도 오신 것입니까? 와, 너무 좋습니다!”“질투하다니?”원경릉은 미색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미소를 지었다.“여덟째는 너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것이다.”“아유, 참!”미색은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여덟째는 바로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항상 그림과 책자를 선물하는 여섯째 형수님도 좋아했기 때문이다.그는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그... 그럼 같이 드시지요. 음식 많습니다.”“장난이다. 난 질투 안 해.”미색은 기쁘게 말했다.여덟째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고, 다들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원경릉이 만아에게 말했다.“정말 이곳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구나. 예전보다 훨씬 활발해졌고, 말도 많이 하네. 이 모든 게 아홉째 덕분이다.”만아는 웃으며 말했다.“예, 둘이 시간이 날 때마다 밖으로 나가, 더
원경릉은 발끝을 들어 그의 뺨에 입을 맞추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우문호는 그런 그녀를 와락 끌어안으며 말했다.“원 선생, 행복하오?”“행복하오.”“하하하. 지금이 아닌, 나와 함께했던 모든 날이 행복했냐고 물어보는 것이오.”“모든 순간이 당연히 행복하고, 기쁘오!”원경릉은 스스로를 자조하듯 웃었다.“나 같은 집순이가 이렇게 결혼생활이 행복할 줄 누가 알았겠소?”한때 그녀는 자신이 평생 결혼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고, 사랑 없는 삶도 부족함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그녀는 사랑을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었지만, 사랑은 사실 정말로 중요했다.산꼭대기에 앉아, 차가운 바람을 맞고 있었지만,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의 풍경을 눈에, 그리고 마음에 깊이 새기고 싶었다.그리고 함께 늙어간 후, 다시 천천히 되새기고 싶었다.영산에서 내려온 후, 그들은 다시 여정을 이어나갔다. 이번 목적지는 바로 남강이었다.명절이 지난 뒤, 아홉째는 여덟째를 데리고 먼저 남강으로 돌아갔다. 다들 그가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남강 땅은 오랜만이었다. 마지막으로 발을 디딘 건, 정화를 구하러 갔을 때였다.남강으로 가는 내내 홍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냉정언이 물었다.“남강에 가면, 못난이를 만날 것이오?”“만나야지.”홍엽이 답했다.“물론 만나야지!”못난이는 오랜 시간 그와 함께했던 사람이니, 만나야 했다. 못난이가 종종 편지를 보내오긴 했지만, 자기 상황은 거의 말하지 않았다.반면 아홉째는 편지에서 북강의 소식을 자주 전해주었다.지금의 남강은 어느 정도 통일되어 있었고, 북강과 남강도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그동안 이익 문제로 양측의 왕래가 더욱 빈번해졌다.아홉째는 편지에서 못난이가 북강의 민심을 얻었고, 성격도 예전보다 훨씬 밝아져,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하다고 전했다.홍엽의 마음엔 기대와 기쁨이 섞여 있었다. 그도 지금 잘 지내고 있으니, 못난이도 잘 지내길 바랐다.우문호는 남강에서 돌아온 후, 변방으로 갈
그 일을 떠올리자, 꿈에서 본 일이라 그런지 마치 얼마 전에 있었던 일처럼 느껴졌다.그때 그들은 죽을 만큼 힘든 소년들이었는데, 지금은 한없이 한가한 노인이 되었다.세월은 덧없이 흘러갔고, 그동안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잃었다.무상황은 자신의 황후였던 소봉을 떠올렸다.그들은 줄곧 전형적인 황제와 황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나라를 다스렸고, 그녀는 후궁을 다스렸다. 비록 그가 그녀를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많은 애정을 주지도 않았다.그렇게 평범하게 평생을 함께했지만, 그녀가 떠나는 날, 그는 마음속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간 듯한 슬픔을 느꼈다.평생 함께했던 사람이 자신보다 먼저 떠날 거라 생각하지 못했기에 더욱 아팠다.세 사람은 한참 동안 넋을 잃고 있다, 다시 길을 나섰다.유아독존과 관련된 일이 생각보다 커졌지만, 모든 소란은 결국 가라앉게 될 것이다. 모든 소문도 점점 사그라들기 마련이니, 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세 사람이 여행하는 영상이 점점 유명해지면서, 유아독존은 더 심하게 비난을 받았다.현실에서 함부로 욕설을 내뱉으면 얻어맞을 수도 있지만, 인터넷에서는 당당한 명분이 있었기에 악성 댓글을 다는 자들은 마음껏 욕을 퍼부었다.그리고 어느 날, 추 어르신이 오래도록 인터넷의 댓글을 훑어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는 이내 해가 지는 장면을 찍어 짧은 영상을 올렸다. 그리고 영상에 한마디만 덧붙였다.“분쟁 없이, 오직 평화만 있기를.”그는 모든 다툼이 끝나길 바랐고, 누군가를 벼랑 끝으로 몰지 않기를 바랐다. 단지 말로만 승부를 겨루는 사람은 그들의 적이 아니기 때문이다.음... 무엇보다 적이 될 자격도 없었다!영상이 올라간 지 이틀 뒤, 유아독존은 마침내 사과 영상을 올렸다. 그는 질투와 시기로 무술을 모독한 것을 사죄했고,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직접 그들의 계정을 태그해 진심으로 사과했다.진심 어린 사과는 항상 용서를 가져오는 법이다. 그리고 악성 댓글을 달던 사람들도 마침내 욕설을 멈췄다.
삼대 거두는 늦은 시각이 되어서야 일어났고, 숙취에서 깨어나니, 이미 날이 밝아져 있었다. 그들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아, 눈앞의 모든 것이 몽롱해 오늘이 무슨 날인지조차 모를 정도였다.태양이 서서히 떠오르며 하늘에 떠 있는 주황빛 구름은 점점 짙은 금빛으로 변했고, 금빛 가장자리에는 붉은색이 덧씌워져, 눈부시게 아름다웠다.소요공이 눈을 비비며 말했다."꿈을 꿨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동시에 그를 바라보며 이구동성으로 물었다."무슨 꿈을 꿨는가?""꿈에서 숭이가 사내에게 속았는데, 우리가 직접 나서서 복수를 해줬다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놀라서 동시에 숨을 들이켜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귀신이 곡할 노릇이네."말이 끝나자,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깜짝 놀라 외쳤다."자네도 꾼 것인가?""그렇네!""그렇네!""설마 우리 셋이 똑같은 꿈을 꾼 것이오?"소요공도 깜짝 놀랐다.그 일은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었고, 어떻게 된 일인지 가물가물할 정도로, 그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할 정도였는데, 꿈에서는 그 장면 장면이 또렷하게 떠올랐다.그리고, 이 꿈은 당시 엄청난 부담을 받고 있던 그들에게 정말 훌륭한 감정 해소가 되었다. 그들은 모든 고통과 억울함, 스트레스를 주먹질로 시원하게 풀어냈다.한편, 무상황은 자신이 황후를 소홀히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때 무슨 상황이었는지 기억하는가?"추 어르신이 흥분한 듯 말했다."물론 기억은 나네. 당시엔 소봉이가 궁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적성루 사람들을 많이 그리워했네. 게다가 나도 자네들과 어울리느라 바빠서 황후를 소홀히 했네. 그래서 적성루 상궁과 숭이를 궁으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게 했지."사실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꿈속에서 다시 겪은 덕분에 자세히 생각났다.그때 어서방의 회의가 끝나고, 소복이 무심히 물었다."폐하, 황후 마마를 오랫동안 못 뵙지 않으셨습니까?"그는 소복의 말이 소봉을 보러 가자는 암시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