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 부인의 결심만약 북당의 정책 결정자의 눈이 온통 시국의 변화에 집중돼서 심지어 누구누구를 의심하고 있을 때 독고와 북막은 번개처럼 병력을 집합시켜 군대를 남하시키면 이 철기 대군이 신 무기와 전차로 무장했다면 북당이 어찌 막을 수 있을까?“안왕이 그들과 내통하고 있지 않아?” 탕양이 물었다.“분명 전에는 연락을 했는데 뒤에는 어떤지 모르죠. 안왕은 전에는 절대로 떨궈지지 않고 들러붙었는데 지금은 가려고 해도 아마 발 빼기 힘들 걸요.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안왕은 태자 전하의 장애물이 될 수도 있어요, 아주 큰 장애물.”탕양은 더 묻고 싶었지만 탕 부인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게 전부예요. 더 물으면 다른 첩자의 행적이 누설되니 안 돼요. 그들은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전투에 참여했던 사람들로 배신할 수 없어요.”탕양은 순간 탕 부인의 이 말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으나 과장되고 위협적인 부분이 있다고 치더라도 그들이 자신을 먼저 혼란에 빠뜨리게 하거나 진짜일 가능성도 있는 것이 어쨌든 처음엔 전부 그쪽으로 생각했었다.탕 부인은 조용히 탕양을 보더니 말했다. “제가 경성을 떠나면 죽음을 면치 못할 걸 당신도 대충 알 테니 당신이 날 죽이지 않는 건 자기 손을 더럽히지 않으려는 거죠? 전 당신과 어릴 때 알았어요. 반평생의 정인데 다른 건 바라지 않을 테니 절 직접 죽여주면 고맙겠어요. 당신이 직접 손을 쓰지 못하겠으면 독주를 주세요.”주르륵 눈물을 흘리며 슬픔과 절망으로 가슴이 멨다. “제가 죽은 뒤에 번거롭겠지만 제 시체는 간단하게 장례를 치러주세요. 비석은 세울 필요 없어요. 당신의 성을 따르지 못하는 비석은 제게 아무 의미도 없으니까요.”탕양의 얼굴이 순간 굳어져서 슬픔으로 우는 탕 부인을 보지 못하고 결국 돌아서서 나왔다.나와서 정신을 차리고 우문호의 서재로 가서 탕 부인이 진술한 얘기를 전부 우문호에게 알렸다.우문호가 다 듣고 깊이 생각하더니 말했다. “난 오히려 탕 부인 말이 사실
탕 부인의 죽음탕양은 전신이 차가워져서 얼른 문을 박찼다. 그녀는 이미 벽에 기댄 채 바닥에 쓰러져 이마에서 선혈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반드시 죽겠다는 각오로 자신에게 퇴로를 남기지 않으려 부딪힌 것이다.탕양이 그녀를 안아 일으켜 초조하게 몇 번을 불렀다. “이천, 이천.”탕 부인은 피가 얼굴을 적시고 힘없이 손을 들었으나 그의 얼굴을 만질 수 없는데 입가에 피가 흘러내리기 전 미소를 띠고 말했다. “미안해요…… 저 그때, 정말 아무 방법이 없었어요. 당신의 혼인을 망가뜨리는 거 말고.”탕양은 말할 수 없이 마음이 괴로웠다. “말하지 마, 태자비한테 데리고 갈 거니까.”탕양이 탕 부인을 안고 여기저기 막 부딪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태자비를 목놓아 부르며 소월각으로 달려갔다.원경릉은 탕양이 온 얼굴이 피투성이인 사람을 안고 오는 것을 보고 놀라서 자세히 보니 탕 부인이라, 바로 약 상자를 꺼내 탕 부인을 침대 의자에 내려놓게 침착하게 지시했다.탕양이 그녀를 내려놓고 뻣뻣하게 굳어 버린 채 눈앞의 핏빛으로 인해 그의 망막에 한 장면이 떠올랐다.머리의 선혈은 멎게 할 수 있지만 내력으로 세게 부딪혀서 이마의 피 외에 심각한 뇌출혈이 있고 뇌출혈은 뇌압을 계속 올려 처음엔 귀에서 피가 나오더니 호흡과 심장박동이 상당히 미약해졌다.원경릉이 응급조치를 취하고 고개를 들어 탕양에게 어쩔 수 없다며 고개를 흔들었다.탕양이 의자를 찾아서 않는데 호흡이 정리가 안 되고 빨라졌다가 숨이 멎었다가 얼굴이 심하게 창백했다.원경릉이 탕양의 어깨를 두드리며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둘만 남기고 사람들을 데리고 나가 둘이 잠시라도 같이 보내게 했다.탕 부인이 입술을 달싹거렸으나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그저 탕양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일생의 나쁜 일도 슬픔도 이미 마치고 오히려 무거운 짐을 벗은 듯 홀가분해 졌다.탕양이 탕 부인 곁에 앉아 그녀의 손을 잡고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마지막 순간을 함께했다.우문호가 탕 부인이 죽었다는 사실을
요부인의 독감원경릉은 사식이에게 항바이러스 약을 주고 자신도 마스크를 쓴 뒤 말했다. “최근 어디 어디 다녔어?”사식이가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 “최근 일하러 집을 벗어나지 않아서 며칠 전에 요부인 집에 다녀온 걸 제외하면 친정에 한 번 다녀왔어요.”“요 부인? 맞아, 그날 네가 요 부인이 아프다는 얘기를 했지. 요 부인 상태가 어떤지 알아? 사람을 보내 물어봐야겠네.” 원경릉은 요 부인이 먼저 독감에 걸려 사식이에게 전염시킨 것으로 봤다.그러나 원경릉이 보낸 사람의 답을 기다리기도 전에 훼천이 먼저 왔다.요 부인이 며칠 동안 열이 나고 계속 떨어지지 않는다며 원경릉에게 와서 봐 달라는 것이다.원경릉이 바로 약 상자를 들고 나가는데 훼천이 말을 달리는 것을 보니 얼굴색이 불그스름했고 목소리도 좀 쉬었고 증상이 있는 것 같다.“훼천은 괜찮아요? 기침이나 열은?”“전 괜찮습니다!” 훼천이 말고삐를 잡고 괜찮다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몇 번 기침을 하더니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목이 좀 아픕니다.”그게 시작이다.원경릉이 만아를 데리고 훼천을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가자 요 부인 곁에 막 고용된 계집종이 있는데 애송이라 좀 멍하게 보여도 부지런히 요 부인의 곁에서 시중을 들고 있다.원경릉은 요 부인이 병으로 얼굴이 창백하고 입술에도 색이 없는 것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아픈데도 나한테 말도 없이.”요 부인이 원경릉에게 웃음을 지으며 원경릉이 침대에 올린 손에 팔을 뻗더니 말했다. “요즘 일이 많다면서 귀찮게 안 하려고 그랬지.”원경릉이 기가 차서 말했다. “그런 서먹서먹한 말을 하다니, 내가 남이에요?”요 부인이 ‘아니’하면서 미간을 찡그리고 고민했다. “난 작은 병으로 괜찮은 거잖아? 이렇게 형편없을 줄 몰랐지. 태자비에게 병을 고친 뒤로 병이 난 적이 없는데 이번에 며칠을 내내 안 좋을 줄 몰랐어.”요 부인은 원경릉이 또 그 마스크를 낀 걸 보고 약간 두려워하며 말했다. “나 혹시 또
안지요 부인의 증상은 비교적 심해서 원경릉이 구강으로 투여하는 약 외에 수액을 걸고 훼천에게도 항바이러스 약을 처방하고 훼천이 별로 먹으려 들지 않고 밖으로 나가 약을 버리려 하는 걸 보고 요 부인이 훼천에 말했다. “먹고 나가게.”훼천히 얌전히 돌아와서 요 부인 앞에서 약을 입에 넣고 씹어서 삼켰는데 이런 종류의 약이 쓰다는 걸 몰라서 얼굴이 우거지상이 됐다.요 부인이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물로 약 먹는 거 몰라?”훼천은 요 부인이 웃는 걸 눈도 깜박이지 않고 한동안 보는데, 원경릉은 자기가 방해꾼이라는 걸 알고 만약 수액만 아니면 그냥 돌아가고 싶었다.훼천이 계집종에게 주방에서 죽을 데워오라고 하고 자기는 돌아갔다.훼천이 가자 요 부인이 원경릉에게 말했다. “너무 오해하지는 마.”원경릉이 뾰로통하게 말했다. “요 부인 치료하는 거 말고 아무것도 오해한 적 없어요.”요 부인이 겸연쩍어하면서 감추려다 오히려 다 들킨 기분이 들었다. 늘 자신은 날카롭고 칼같이 행동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뭐가 잘못 됐는지 지금은 사람이 장황해졌다.원경릉은 요 부인의 이런 모습을 보고 집안일을 얘기하며 안왕비의 딸 얘기를 꺼냈다.“봉호는 내려왔어? 이름은 지었고?” 요부인이 물었다.“아직 이요, 예부에서 고민하는 중일 걸요. 아마, 아바마마께 먼저 보여 드리겠죠.” “아명은?”“안지라고 한데요!”“안지? 아버지 이름을 쓴다고?” 요 부인이 놀라며 천천히 일어나서 말했다. “넷째가 정말 이 딸을 엄청 중시하고 소중히 여기나 보네.”“확실히 중시하죠. 며칠 전에 갔었는데 애가 젖을 토한다고 안왕 전하께서 어찌나 긴장을 했는지 꼭 저한테 와서 봐 달라고.”요 부인이 원경릉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지금 경성의 일은 안왕과는 무관한가 봐?”이 얘기를 꺼내자 요 부인의 정신이 돌아와서 마치 전장에 있는 사람처럼 지금 여기 격리되어 있는 게 여간 불편해 보이는 게 아니다.“몰라요.” 원경릉은 아니길 바랐다. 안왕에게 안지라는 딸이
만아를 남강으로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 “왜요? 지금 외로워요? 전에 물었을 때 누리고 있다면서요.”“누리고 있긴 하지. 하지만 마음이 편하지가 않은 게 눈앞에 건 진정한 평안 같지가 않아.”“그럼 어떻게 하고 싶은데요? 지금 얼마나 좋은데.” 원경릉이 약 상자를 들며 물었다.요 부인이 손짓을 하더니 말했다. “가봐, 그냥 아무 말이나 해본 거야. 어쩌자는 생각 없고 이렇게 지내는 것도 사실 썩 괜찮네.”원경릉이 수긍하며 말했다. “잘 쉬어요.”문을 나선 뒤 만아와 마차에 오르자 만아가 말했다. “태자비 마마, 요 부인 뜻은 아마도 오셔서 마마를 도우시려는 것 같던데, 왜 승낙을 안 하셨어요?”“만아야, 세상에 스스로 비바람을 맞으러 나가고 싶은 사람은 없는 거야, 사람들이 평온한 날을 살라고 가만 놔두질 않을 뿐이지.” 원경릉이 뼈 있는 말을 했다.“하지만 요 부인의 뜻을 따르면……”원경릉이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요 부인은 나랑 태자를 돕고 싶은 거야.”만아가 알아듣고 말했다. “그런 거였군요.”“다시는 요 부인이 위험한 다리를 건너게 하고 싶지 않아. 지난번 사식이와 미색이 요 부인이 모험하게 만들었는데 일단 요 부인에게 문제가 터지면 희열이와 희성이는 어떡할 거야? 아버지를 잃은 지 얼마 안된 애들을 엄마까지 잃게 하면 걔들한테 얼마나 잔인한 짓이야?”요 부인은 인맥을 손에 쥐고 있다. 만약 요 부인이 돕겠다고 하면 이 사람들을 움직일 것이고 이들 중에 첩자가 없다고 할 수 없으므로 본인도 말했지만 기르는 개에 물리는 수도 있다. 안왕도, 자신도 그럴 수 있다. 그 인맥은 쓸모 있기도 하지만 끝까지 쓰면 반드시 요 부인 자신의 손을 물 게 틀림없다.“만아야, 때를 봐서 아홉째랑 남강으로 갈 준비를 하자.” “네?” 만아가 순간 아쉬워서 고개를 푹 숙이고 말했다. “경성에서 마마랑 좀 더 지내고 싶은데요.”“만아야, 넌 지금 남강왕이잖아. 매사를 엄마에게 의지하면 안 돼. 너랑 아홉째가 얼른 돌아가서
안왕 만세순왕이 경성을 떠나고 우문호는 탕양에게 벌을 내려 곤장 30대를 치고 초왕부에서 쫓아냈다. 탕양은 초왕부 문 앞에서 우문호에게 오랜 시간 곁에서 도왔던 정을 잊으신 거냐며 어떻게 이렇게 매정할 수 있는지 통렬하게 비난했다. 우문호가 그 말을 듣고 사람을 시켜 아주 쫓아내자 결국 탕양은 한을 품고 떠나갔다.독감이 경성에 대 유행하면서 약재가 품귀 현상이라 백성들은 조정에 대한 원망이 높아져 갔다. 게다가 권위 있는 사람이 나서서 태자가 현명함을 잊고 무지해지는 바람에 병자들이 치료할 약이 없는 거라고 했다. 우문호는 줄곧 백성들 마음속에 명망이 높은 존재였는데 갑자기 이렇게 짓밟히게 되니 원성이 들불처럼 번져 삽시간에 온 경성 및 주변 주와 현이 불길에 휩싸였다.통제하기 힘든 상황으로 백성들의 원성이 거리에 차고 넘칠 때, 대량의 약초가 무료로 병을 앓고 있는 백성에게 보내질 줄 누가 알았을까.그리고 약초를 보낸 사람은 안왕부의 깃발을 달고 있었다.태자와 안왕 사이에 승패가 갈리는 순간이었다.그리고 안왕이 전에 경성에서 내쫓긴 일도 언급하며 그때 누군가에게 모함을 당한 것이고 심지어 안왕을 모함한 사람은 태자라고까지 했다. 그리고 태자가 차기 황위를 계승할 자로 책봉된 것은 아들을 몇 명 낳았기 때문인데 자식을 가지고 이야기한다는 건 다른 재주도 없고 평범한 사람이란 말이 된다.백성들은 보통 학식이 짧고 지혜가 부족해서 이런 소문을 의심도 하지 않고 덜컥 믿어버린다.태자의 명성은 책봉된 이래 가장 바닥을 치고 있었다.하지만 소문은 소문으로 우문호는 추호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조정에서의 지위도 이미 확고했다. 누군가 물의를 진압하기 위해 유언비어를 퍼트리는 자들을 잡아들여야 한다고 건의하면 우문호는 오히려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말했다. “약이 있으면 됐으니 하고 싶은 대로 떠들라 하세요.”그래서 관리 부인들이 원경릉을 부추겨 태자를 좀 설득해 보라고 하면 백성은 물이라 배를 띄울 수도 엎을 수도 있는 거라고 했다. 원경
안 왕비의 애원안 왕비는 자신이 출산 후 아직 몸이 약한 걸 살필 겨를도 없이 산후조리를 마친 뒤 마차를 타고 원경릉을 보러 초왕부로 달려왔다.원경릉은 안 왕비가 직접 온 것을 보고 놀란데다 옷이 너무 얇아 보여 얼른 안 왕비를 접객실로 들게 하고 망토를 가져다 드리게 했다.“무슨 일이에요, 저더러 오라고 사람을 시켜 알리면 될 것을 직접 오실 필요가 어딨어요?” 원경릉이 다시 기상궁에게 생강차를 끓여와서 한기를 몰아내도록 했다. 여름에 들어섰다고는 하지만 비가 올 때가 많아서 아직 비교적 쌀쌀하다.안 왕비는 이런 걸 돌볼 여유도 없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태자비와 단독으로 할 말이 있는데 괜찮아요?”원경릉이 고개를 끄덕이고 안에서 시중을 드는 사람을 나가라고 한 뒤, 문을 닫았다. 안 왕비의 창백하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얼굴을 보니 짐작 가는 게 있는데 짐짓 일부러 말했다. “어떻게 된 거예요? 직접 오시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였어요?”안 왕비가 간절하게 말했다. “요즘 밖에 태자 전하에 대해 나도는 험한 말 저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정말 왕야와 무관해요. 왕야는 약을 보낸 사람도 모르고 약을 살 만큼 그렇게 많은 은자도 없어요. 태자비가 태자 전하께 한 마디 해줘요. 형제 사이에 의심이 싹트면 안 된다고, 제 생각에 이 일은 분명 누군가가 일부러 형제의 감정을 도발하는 게 틀림없어요.”원경릉도 안 왕비가 이 일 때문에 왔다는 걸 알고 다독거리며 말했다. “남자들 사이의 일이니 신경 쓰지 마세요, 틀림없이 다섯째에게 생각이 있을 거예요.”“신경을 안 쓸 수가 없어요.” 안 왕비는 원경릉이 믿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마음이 급해져서 말했다. “왕야가 요즘 집에 있을 때 계속 한숨을 쉬어요. 우리가 이용당했다고.”“왕야가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원경릉이 안 왕비에게 물었다.안 왕비가 눈길을 피했다. 물론 왕야는 이 말을 한 적이 없고 안 왕비 본인의 추측이지만 정말 누군가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말했다. “그게…
호국사로 간 안왕안왕비가 집으로 돌아간 뒤 한참을 끙끙대다가 원경릉의 말을 안왕에게 전했다.안왕이 듣고 오랫동안 가만히 있더니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정말 딱 자업자득이네.”안 왕비가 말했다. “호국사는 어떻게 된 거예요? 호국사에 복을 빌러 간 게 아니었어요?”안왕이 안 왕비의 손을 잡고 살짝 안 왕비의 허리를 끌어안아 안 왕비의 머리를 자기 어깨에 기대게 하더니 말했다. “확실히 오직 평안하게 순산하기를 빌었지만 불문은 청정한 곳이라 나처럼 죄업이 가득한 자는 들어갈 수가 없지.”안 왕비는 이렇게 차분한 어투로 말 하는 게 오히려 가슴이 술렁거렸다.부부가 한참을 안고 있다가 안왕이 일어서며 말했다. “나갔다 와야겠어, 금방 돌아올게.”안 왕비가 안왕의 옷자락을 잡고 말했다. “어디 가요?”안왕이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전에는 한번도 행선지를 묻지 않더니 얼마나 심하게 놀랐는지 알겠다.“갔다가 금방 돌아와.” 작게 말을 마치고 나갔다.방문을 나가자마자 말을 준비시켜 호국사로 달려갔다.호국사는 주지가 간 뒤 지난날의 풍경을 회복하지 못했다. 지금은 예전보다 더욱 향불이 타오르고 북적거리는 것은 호국사가 대외적으로 개방되었기 때문으로 경성의 수많은 신자들이 와서 부처님께 절을 한다.단지 지금의 호국사는 심하게 상업화되어 백성들이 자기 초를 가져오는 게 허락되지 않고 반드시 호국사에서 초를 사야 하는데 가격이 상당히 높아서 같은 초가 밖에서는 10푼이면 여기서는 100푼이 넘는다. 그리고 절이기 때문에 부적 등도 파는데 가격이 심하게 비싸다.자기가 입고 먹는데 돈 쓰는 건 아깝지만 신자들이 불공을 드리는 데는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백 푼이면 어떻고 천 푼이면 어때? 그게 바로 경건이고 정성이 아닌가.’이렇게 호국사는 순식간에 큰돈을 벌어들였다. 돈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는 말이 허투루 하는 소리가 아니다.지금 호국사 주지는 전임 주지의 직계 제자로 혜통 사부(慧通師父)라고 하는데 1대 주지가 떠난
남강에 며칠 머무는 동안, 아홉째와 함께 남강의 풍경을 둘러보고, 북강에도 다녀왔다.지금 북강 백성들은 조정에 대한 소속감이 아주 강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남강을 다스린 정책이 정말 훌륭했기에, 백성들 모두 좋은 날을 보낼 수 있었기에, 자연스레 황제에 대한 존경심도 깊어진 것이었다.황제와 황후가 지나가는 곳마다 백성들은 길가에 모여서 열렬히 환영했다.그들은 이번 순행 내내 오계부에서 신분을 밝힌 것 외에는 항상 미복으로 다녔다. 하지만 남강에서 우문호는 황제의 신분을 드러냈다.우문호는 백성들의 신뢰와 경외심에서 큰 성취감을 느꼈고, 매우 기뻤다. 그는 줄곧 원경릉의 손을 잡고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과거 북강은 방어를 위해 무술 함정이 많았지만, 이제는 모두 제거되었다. 그리고 많은 백성이 산 아래 평원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마을을 이루었다. 정화를 구하러 왔을 때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기쁜 마음과 함께 우문호는 감사함도 느꼈다. 이것은 결코 그 혼자만의 공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남강을 떠나야 하는 날이 다가오자, 원경릉은 만아와 여덟째를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곧 변성으로 가야 했기에, 아쉬움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잠시였다. 남강을 벗어나자마자, 그녀는 아이들과 만날 생각에 들뜨기 시작했다."원 선생, 그들에게 말했소?"길에서 우문호가 물었다."아니, 몰래 가는 것이오."원경릉은 웃으며 말했다."교활하구먼. 그래도 만두가 이미 알려줬을 수도 있을 텐데."지금은 경단과 찰떡, 그리고 계란이 셋만 그곳에 있었다."셋이 다섯 개 성을 다스린다니, 분명히 힘들 것이오."원경릉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그렇소.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졌네. 이제는 태평해 보이니."우문호도 아이들이 안쓰러웠다."이번에 가서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충분히 쉬게 해줘야 하오."사실 성하나를 다스리는 것과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점 없이, 매우 힘든 일이었다.한편, 강북부에서는 최근 강북부 무구산 주변에 신비한 상단
그러자 홍엽이 그를 바라보며 멈칫했다."자네가 중매를 서겠다고?""안 되오?""말도 안 되는 소리 말게. 자기 혼사도 해결 못 하는데 중매는 무슨. 난 못 믿네!"냉정언이 어깨를 으쓱였다."못 믿으면 말고. 이래 봬도 내가 명문가 아가씨나 협녀를 많이 알고 있소."홍엽은 손으로 그의 목을 움켜잡으며 소리쳤다."알고 있는 아가씨가 있으면 진작 말했어야지! 경성으로 돌아가자마자, 당장 소개해 주시게!"냉정언은 웃으며 그의 손목을 옆으로 밀어냈다."중매 값이 워낙 비싸서. 십만 냥 아니면 쉽게 안 나서오.""돈이 대수요?"홍엽이 교활하게 웃으며 말했다."우린 지금 한집에 살고 있소. 그러니 자네가 돈을 어디에 숨겼는지, 다 알고 있네. 그동안 꽤 많이 챙겼으니, 돌아가서 돈은 두둑이 주겠네."그 말에 냉정언이 깜짝 놀랐다."내 돈을 노리고 있었소? 진짜 도둑을 집에 들였군! 늙어서 쓸 돈이네, 그 돈을 혼사에 쓸 생각은 하지 마시오!""명여가 우리를 챙길 테니, 그렇게 쩨쩨하게 굴지 마시오."홍엽이 새침하게 말했다."나도 돈이 많소. 다만 남의 돈을 쓰는 게 훨씬 재밌을 뿐이네."냉정언이 숨을 들이쉬었다."안 되겠네. 경성에 돌아가자마자 자네를 쫓아내야겠소."홍엽이 말했다."쫓아낼 수 있으면 쫓아내 보시게. 게다가 자네가 나를 청할 때, 뭐라고 했는가? 얼마든지 살아도 된다고 했잖소. 이제 와서 후회하는 것이오?""이야, 홍엽, 어찌 이리 뻔뻔스러워진 것이오?""뻔뻔하지 않으면, 어찌 당신 집에서 이렇게 공으로 먹고살 수 있겠나?"홍엽은 크게 웃으며 그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수보, 신을 모시는 건 쉬워도 보내는 건 어렵다고 하잖소. 이미 집안에 들어갔으니, 쫓아내기는 힘드네. 후회해도 소용없소. 수보의 등골 빼먹다 죽을 것이오. 관에 수의까지 얻어 쓸 생각이라, 죽으면 자네가 장례식까지 마련해줘야 하네."수보는 그를 한참 바라보다가, 애써 이를 악물며 말했다."진짜 뻔뻔하오!"홍엽은 박장대소했다.멀리 복도 끝에
“예, 그립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놀고 싶기도 합니다.”그는 말하다가, 갑자기 신이 난듯 몸을 들썩이며 말을 이어갔다.“여긴 정말 재미있습니다. 아홉째와 나가면 큰 산도 있고, 꽃도, 나무도 많습니다. 물고기도 많고, 사람도 많고, 뭐든지 엄청 많았습니다.”우문호는 웃으며, 못내 안쓰러움을 느꼈다. 예전에 그를 궁 안에 가두고, 거의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사람이 그를 데리고 나가는 것도 신경 쓰였다.“이곳이 마음에 들면, 좀 더 오래 있어도 된다.”우문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예, 정말 좋습니다. 다만, 형님과 형수님이 그리웠습니다. 이렇게 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여덟째는 흥이 오른 상태로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어서 들어가시지요! 아홉째가 형님이 내일 오신다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준비했습니다.” 그는 뒤돌아 원경릉에게 외쳤다.“형수님, 빨리 따라오십시오. 맛있는 거 많습니다.”미색은 웃으며 꾸짖었다.“이 무심한 녀석, 다섯째 형수님만 챙기고, 여섯 형수가 배고픈지는 묻지도 않는 것이냐?” 여덟째는 그제야 미색을 본 듯,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여섯째 형수님도 오셨습니까? 여섯째 형님도 오신 것입니까? 와, 너무 좋습니다!”“질투하다니?”원경릉은 미색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미소를 지었다.“여덟째는 너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것이다.”“아유, 참!”미색은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여덟째는 바로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항상 그림과 책자를 선물하는 여섯째 형수님도 좋아했기 때문이다.그는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그... 그럼 같이 드시지요. 음식 많습니다.”“장난이다. 난 질투 안 해.”미색은 기쁘게 말했다.여덟째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고, 다들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원경릉이 만아에게 말했다.“정말 이곳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구나. 예전보다 훨씬 활발해졌고, 말도 많이 하네. 이 모든 게 아홉째 덕분이다.”만아는 웃으며 말했다.“예, 둘이 시간이 날 때마다 밖으로 나가, 더
원경릉은 발끝을 들어 그의 뺨에 입을 맞추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우문호는 그런 그녀를 와락 끌어안으며 말했다.“원 선생, 행복하오?”“행복하오.”“하하하. 지금이 아닌, 나와 함께했던 모든 날이 행복했냐고 물어보는 것이오.”“모든 순간이 당연히 행복하고, 기쁘오!”원경릉은 스스로를 자조하듯 웃었다.“나 같은 집순이가 이렇게 결혼생활이 행복할 줄 누가 알았겠소?”한때 그녀는 자신이 평생 결혼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고, 사랑 없는 삶도 부족함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그녀는 사랑을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었지만, 사랑은 사실 정말로 중요했다.산꼭대기에 앉아, 차가운 바람을 맞고 있었지만,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의 풍경을 눈에, 그리고 마음에 깊이 새기고 싶었다.그리고 함께 늙어간 후, 다시 천천히 되새기고 싶었다.영산에서 내려온 후, 그들은 다시 여정을 이어나갔다. 이번 목적지는 바로 남강이었다.명절이 지난 뒤, 아홉째는 여덟째를 데리고 먼저 남강으로 돌아갔다. 다들 그가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남강 땅은 오랜만이었다. 마지막으로 발을 디딘 건, 정화를 구하러 갔을 때였다.남강으로 가는 내내 홍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냉정언이 물었다.“남강에 가면, 못난이를 만날 것이오?”“만나야지.”홍엽이 답했다.“물론 만나야지!”못난이는 오랜 시간 그와 함께했던 사람이니, 만나야 했다. 못난이가 종종 편지를 보내오긴 했지만, 자기 상황은 거의 말하지 않았다.반면 아홉째는 편지에서 북강의 소식을 자주 전해주었다.지금의 남강은 어느 정도 통일되어 있었고, 북강과 남강도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그동안 이익 문제로 양측의 왕래가 더욱 빈번해졌다.아홉째는 편지에서 못난이가 북강의 민심을 얻었고, 성격도 예전보다 훨씬 밝아져,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하다고 전했다.홍엽의 마음엔 기대와 기쁨이 섞여 있었다. 그도 지금 잘 지내고 있으니, 못난이도 잘 지내길 바랐다.우문호는 남강에서 돌아온 후, 변방으로 갈
그 일을 떠올리자, 꿈에서 본 일이라 그런지 마치 얼마 전에 있었던 일처럼 느껴졌다.그때 그들은 죽을 만큼 힘든 소년들이었는데, 지금은 한없이 한가한 노인이 되었다.세월은 덧없이 흘러갔고, 그동안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잃었다.무상황은 자신의 황후였던 소봉을 떠올렸다.그들은 줄곧 전형적인 황제와 황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나라를 다스렸고, 그녀는 후궁을 다스렸다. 비록 그가 그녀를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많은 애정을 주지도 않았다.그렇게 평범하게 평생을 함께했지만, 그녀가 떠나는 날, 그는 마음속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간 듯한 슬픔을 느꼈다.평생 함께했던 사람이 자신보다 먼저 떠날 거라 생각하지 못했기에 더욱 아팠다.세 사람은 한참 동안 넋을 잃고 있다, 다시 길을 나섰다.유아독존과 관련된 일이 생각보다 커졌지만, 모든 소란은 결국 가라앉게 될 것이다. 모든 소문도 점점 사그라들기 마련이니, 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세 사람이 여행하는 영상이 점점 유명해지면서, 유아독존은 더 심하게 비난을 받았다.현실에서 함부로 욕설을 내뱉으면 얻어맞을 수도 있지만, 인터넷에서는 당당한 명분이 있었기에 악성 댓글을 다는 자들은 마음껏 욕을 퍼부었다.그리고 어느 날, 추 어르신이 오래도록 인터넷의 댓글을 훑어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는 이내 해가 지는 장면을 찍어 짧은 영상을 올렸다. 그리고 영상에 한마디만 덧붙였다.“분쟁 없이, 오직 평화만 있기를.”그는 모든 다툼이 끝나길 바랐고, 누군가를 벼랑 끝으로 몰지 않기를 바랐다. 단지 말로만 승부를 겨루는 사람은 그들의 적이 아니기 때문이다.음... 무엇보다 적이 될 자격도 없었다!영상이 올라간 지 이틀 뒤, 유아독존은 마침내 사과 영상을 올렸다. 그는 질투와 시기로 무술을 모독한 것을 사죄했고,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직접 그들의 계정을 태그해 진심으로 사과했다.진심 어린 사과는 항상 용서를 가져오는 법이다. 그리고 악성 댓글을 달던 사람들도 마침내 욕설을 멈췄다.
삼대 거두는 늦은 시각이 되어서야 일어났고, 숙취에서 깨어나니, 이미 날이 밝아져 있었다. 그들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아, 눈앞의 모든 것이 몽롱해 오늘이 무슨 날인지조차 모를 정도였다.태양이 서서히 떠오르며 하늘에 떠 있는 주황빛 구름은 점점 짙은 금빛으로 변했고, 금빛 가장자리에는 붉은색이 덧씌워져, 눈부시게 아름다웠다.소요공이 눈을 비비며 말했다."꿈을 꿨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동시에 그를 바라보며 이구동성으로 물었다."무슨 꿈을 꿨는가?""꿈에서 숭이가 사내에게 속았는데, 우리가 직접 나서서 복수를 해줬다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놀라서 동시에 숨을 들이켜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귀신이 곡할 노릇이네."말이 끝나자,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깜짝 놀라 외쳤다."자네도 꾼 것인가?""그렇네!""그렇네!""설마 우리 셋이 똑같은 꿈을 꾼 것이오?"소요공도 깜짝 놀랐다.그 일은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었고, 어떻게 된 일인지 가물가물할 정도로, 그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할 정도였는데, 꿈에서는 그 장면 장면이 또렷하게 떠올랐다.그리고, 이 꿈은 당시 엄청난 부담을 받고 있던 그들에게 정말 훌륭한 감정 해소가 되었다. 그들은 모든 고통과 억울함, 스트레스를 주먹질로 시원하게 풀어냈다.한편, 무상황은 자신이 황후를 소홀히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때 무슨 상황이었는지 기억하는가?"추 어르신이 흥분한 듯 말했다."물론 기억은 나네. 당시엔 소봉이가 궁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적성루 사람들을 많이 그리워했네. 게다가 나도 자네들과 어울리느라 바빠서 황후를 소홀히 했네. 그래서 적성루 상궁과 숭이를 궁으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게 했지."사실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꿈속에서 다시 겪은 덕분에 자세히 생각났다.그때 어서방의 회의가 끝나고, 소복이 무심히 물었다."폐하, 황후 마마를 오랫동안 못 뵙지 않으셨습니까?"그는 소복의 말이 소봉을 보러 가자는 암시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개혁은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나라가 이미 망가진 뒤라, 보수파들은 북당이 더는 흔들림을 견딜 수 없다고 여겨, 더 이상 변화를 원하지 않았다. 그러자 소국공은 소복을 부상으로 임명했고, 소복은 부상이 된 후, 온갖 수단으로 보수파를 하나 하나씩 무너뜨렸다.그는 협박, 욕설, 생떼, 무례, 끈질긴 설득 등 다양한 방식으로 보수파를 공략했고, 심지어 마지막에는 돗자리를 말아, 상대의 대문 앞에 깔고는, 저녁엔 문 앞에서 잠을 청하고, 낮에는 문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북당의 발전을 가로막는 자라고 비난까지 했다.그렇게 보수파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2년이 지나, 휘 형과 형수가 대주에서 돌아왔다. 그는 드디어 애써 노력한 끝에, 그들에게 기대에 부응할 만한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성공의 길은 여전히 멀었다. 가난 때문에 발생한 난장판은 아직도 평정되지 않았다.휘 형과 형수는 사실 그의 혼례를 치르기 위해 돌아온 것이었다.그는 이제 황후를 책봉해야 할 시기였고, 황후 후보는 일찌감치 정해져 있었다. 바로 숙왕부에서 지낸 적 있는 소복의 딸이었다.소복의 딸이 원래 무슨 이름이었는지, 그는 이미 기억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소복이 부상 자리에 오른 뒤, 딸의 이름을 소봉으로 새로 지었기 때문이다.소복의 꿈은 언제나 직설적이었다. 소봉의 이름은 '소가에서 나온 봉황'이라는 단도직입적인 뜻을 담고 있었다.소봉은 아버지 소복과는 달리 성격이 반듯하고 강직했다. 당시 그는 온갖 일로 정신이 없어 남녀 간의 감정 따위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사모의 감정보다 그에게 나라가 더욱 중요했었다.하지만 황제로서, 그도 후사를 마련하는 것이 북당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그에게 사모의 정에 대해 조금 느낀 적 있는지 묻는다면, 아마도 소가의 셋째 딸, 소낙연의 이름을 들었을 때이다.다만 그도 그녀의 이름만 알고 있었을 뿐, 나중에야 소낙연이라고 자칭했던 여인이, 사실 그의 형수인 라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 시절
그렇게 그들은 만취해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침대 삼으며, 마치 처음 전장에 나섰던 그 시절로 돌아간 기뿐을 느꼈다.그 시절에는 전쟁이 치열해, 종종 땅바닥에 몸을 웅크린 채 잠을 청하곤 했다. 여섯째는 당시에 항상 설사를 했었다. 셋이 몰래 전장에 나가려 했기에, 선생과 형수를 속이기 위해, 스스로 배탈을 자초한 후, 돈을 조금 챙기고는 전장으로 향했었다. 전쟁터에서 정말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다들 마음속으로 두려움이 가득했었다. 가난을 제외하고, 죽음보다 무서운 것은 없었다.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시간이 지나, 그러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적군이 승전가를 부르며 전우를 죽이고, 나라를 침탈할 때, 그들은 한 번도 죽음을 생각해 본 적 없었다.죽음에 관해 생각한다고 해도, 죽더라도 이 땅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뿐이었다.그들은 그렇게 잠에 들었고, 꿈속에서 막 즉위하던 시절로 시간여행을 떠났다.숙왕부도 여전히 그대로였고, 적성루는 인파로 붐볐으며, 전쟁으로 인해 찢어지게 가난했다. 휘 형과 형수는 대주로 빚을 갚으러 갔다. 북막과의 전쟁을 위해 대주의 30만 대군을 빌려왔지만, 갚을 돈이 없어 휘 형을 인질로 넘겼다.휘 형이 떠난 후, 조정은 서출의 어린 새 황제를 신경 쓰지 않았다.그들은 조정에서 대신들과 첨예하게 대립해야 했고, 매번 언쟁 후에는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채, 어서방에 돌아가 주저앉곤 했다.즉위할 때 휘 형은 최선을 다하면 좋은 황제가 될 수 있다고 격려해 주었다.그래서 그도 그렇게 믿었지만, 막상 황위에 올라보니 전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때로는 있는 힘껏 버텨도 소용없었다.하지만 퇴로 또한 없었다. 휘 형이 말했듯이, 퇴로가 없는 것이 오히려 가장 좋은 길이었다. 두 눈 질끈 감고 힘껏 돌진하다 보면, 결국 승리하게 된다.다행히 조정에 그들을 도와주는 이들도 있었다. 장 대인과 소복이 큰 도움을
그들은 사생활을 모조리 보여주는 것 같아, 팬들이 따라오는 것을 막았다.하지만 팬들은 놀랄 만큼 열렬한 애정을 보이며 기어코 그들 뒤를 따랐다.그 모습에 다들 처음엔 못마땅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이해하기로 했다. 모두 예전에 많은 사람이 따르고, 시중을 받으며 전성기를 가졌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익숙하기도 했다.어쨌든, 그들은 지금 행복하게 차를 몰며 독고 도로를 달리며 아름다운 풍경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었다. 팬들도 그들의 모습을 기록했다. 다투기도 하고, 술을 마시며 농담을 주고받고, 무술을 연습하는 모습 등, 그들의 사소한 순간들 모두 영상으로 편집되어 올라갔다 .그리고 곧 사람들은 퇴직 여행 계정에 한 명이 아닌, 세 명이 함께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상에 등장한 사람은 '십팔매'라 불렸는데, 많은 네티즌이 그 이름을 듣자마자 웃음을 터뜨렸다.얼굴에 약간의 여드름 자국이 있고, 항상 무표정으로 자기를 과인이라고 부르는 노인은 '여섯째'라 불렸다. 비록 엄숙해 보이지만, 실은 장난기가 많아 두 사람을 몰래 놀리고는 입을 막고 웃기도 했다.항상 핸드폰으로 독서하는 노인은 '주대'라고 불렸다. 박학다식하며, 말할 때마다 고사성어를 인용해, 십팔매와 여섯째가 싸울 때 몇 마디로 갈등을 풀어낼 정도로 인품이 뛰어났다.팬들은 이들의 이름만 들어도 웃음이 터질 지경이었다.그리고 그들의 대화를 듣고, 어릴 때부터 함께해왔고,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함께 여행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많은 사람들이 깊이 감동하였다.그렇게 어느 날 밤, 그들은 야외에서 술을 마시고 반쯤 취한 채, 바닥에 누운 채로 별이 가득한 하늘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이 장면 역시 팬들에게 촬영되었다.늘 털털한 십팔매는 두 손을 머리 뒤에 괴고 은하수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감탄하며 말했다."우리 정말 많이 늙었네.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살 수 있을까?"여섯째가 그의 머리를 한 대 가볍게 쳤다."길 위에서는 불길한 말 금지네."십팔매가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