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월각에 도착하니 시중을 드는 청색 옷을 입은 서너 명의 시녀들이 있었다. 그들의 나이는 열다섯 살 내지 열여덟 살 정도로 보였으며 청순한 얼굴에 행동거지가 얌전한 것이 대갓집의 계집종의 소양을 띄고 있었다. 그들 몇은 원경릉에게 깍듯하게 대했으며 그녀가 식사를 하는 내내 옆에서 세심하게 시중을 들었다.원경릉은 우문호가 그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살폈는데 그들 사이에 묘한 기류라거나, 계집종을 귀여워하거나 눈길도 주지 않았다. 시녀들의 눈빛에도 우문호를 향한 경외심뿐 다른 느낌은 없었다. 원경릉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잠자리 시중을 드는 여인이건 첩이건 다른 여자들과 한 명의 사내를 나누어 가질 바엔 차라리 갖지 않는 편이 낫다. 우문호는 소월각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원경릉이 시녀들을 뚫어져라 보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 그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어 ‘풉’하고 소리를 냈다. 원경릉은 어리둥절해서 그를 돌아보았다. “뭐가 웃깁니까?”우문호는 그녀의 하얗고 깨끗한 얼굴을 보았다. 이마에 작은 분홍색 흉터, 맑은 눈가, 들쑥날쑥하지만 빽빽한 속눈썹, 핏기를 머금은 붉은 입술, 그녀는 마치 활짝 피어있는 장미꽃 같았다.그는 지금 당장 원경릉을 번쩍 들어 올려 침대 위로 내동댕이치고 싶었다.원경릉은 불타오르는 우문호의 눈빛을 애써 외면하며 고개를 숙이고 수저를 들었다. 그녀는 속으로 계속 그 문제를 생각했다. 도대체 무엇이 우문호를 저렇게 만든 것일까?잠시 후, 그녀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어 경계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사실대로 말해, 내가 어장(御杖)을 가지고 있어서 나한테 이렇게 잘해주는 거지? 내가 어장으로 너를 내리칠까 봐?”우문호는 쓴웃음을 지으며 수저를 들어 탕을 한술 떴다. 목구멍에서 넘어갈랑 말랑한 탕을 겨우 삼키며 그는 방 안의 시녀들을 모두 내보낸 후 원경릉의 눈을 직시했다. 원경릉은 바짝 긴장하며 그를 쳐다보았다. 우문호는 그런 그녀를 보며 천천히 손을 뻗었다.“내
원경릉은 온몸이 굳은 채 눈동자만 이리저리 움직였다. 우문호의 뜨거운 눈동자를 피하기 위해 재빨리 몸을 피했다. 그의 입술이 온기를 머금고는 점점 가까워졌다. 그녀는 온몸이 나른해지며 눈을 감았다.“오늘 밤은 소월각에서 어때?”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닿았다.원경릉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밀어냈다. “나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좀 혼란스러워서.”말은 마친 후 원경릉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어찌나 마음이 급했는지 단숨에 아주 멀리까지 뛰어갔다. 오래간만에 달리기에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허리를 굽히고 두 손으로 무릎을 짚으며 숨을 크게 내쉬었다.이게 무슨 일일까? 이 둘은 원래 만나기만 하면 싸우던 사이였는데, 갑자기 핑크빛 기류가 흐르는 사이로 발전하다니? 우문호가 원경릉을 좋아한다고? 그럴 리가 있나? 그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녀를 죽이고 싶어 이를 부득부득 갈지 않았는가?그가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게 분명하다!하지만, 그가 그녀에게 원하는 게 무엇일까? 돈? 돈은 우문호가 원경릉보다 많을 텐데. 지위? 우문호의 신분이 원경릉보다 높은데……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 걸까?“왕비, 괜찮으십니까?” 뒤에서 탕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원경릉은 깜짝 놀라 휙 뒤를 돌아보니, 흰옷을 입은 훤칠한 모습의 탕양이 보였다.그녀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탕양님. 저를 심장마비로 죽이려고 하십니까?” 라고 말했다.“왕비, 제가 무례했습니다!” 탕양이 미소를 지으며 “그런데 왕비님은 원래 이렇게 잘 놀라지 않으셨잖아요.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십니까?”라고 물었다.원경릉이 어찌 탕양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터놓겠는가? 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며 “별일 아닙니다. 밥을 많이 먹어서 소화시킬 겸 산책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탕양님의 목소리가 들려서 깜짝 놀랐지 뭡니까.”라고 말했다.“그렇군요. 근데 왕비 고민이 있으면 저에게 털어놓으십시오. 제가 비록 이래 보여도 알고 있는 게 많습니다.”탕양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원경릉을 쳐다보았다.당당한
기라가 우문호의 말을 듣고 한걸음 다가와 몸을 숙이고 “왕야. 소인 여기 있습니다.”라고 말했다.우문호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천천히 손을 뻗어 볼을 꼬집었다.“왕야!”기라(綺羅)가 놀라서 멍해졌다.“가보거라.”우문호가 손을 휘휘 저었다.보기엔 다 똑같은 얼굴인데 왜 원경릉의 볼은 꼬집었을 때 느낌이 다른 걸까?기라는 당황스러움을 감추고 “왕야 잠이 오지 않으신다면, 소인이 잠향을 피워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그래라.”우문호는 자꾸 떠오르는 원경릉의 모습에 미쳐버릴 것 같았다.기라가 피운 잠향에 그는 점점 의식이 흐려지고 잠이 몰려왔다.몽롱한 기운이 감도는데 원경릉이 살금살금 들어와 침상 옆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나 잠이 안 와. 나랑 같이 좀 걷자!”원경릉이 조용히 말했다.우문호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는 원경릉의 손을 잡고는 밖으로 나갔다. 그는 그녀의 혼란스러운 눈동자를 보고 마음이 쓰였다.고요한 밤, 귓가엔 벌레들의 울음소리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이외에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정원엔 길모퉁이마다 걸려 있는 양각 풍등(羊角風燈)의 불빛이 사방에 흩뿌려져있었다.두 사람은 호숫가 버드나무 아래에 앉아 밤바람에 겹겹이 일렁이는 호수 표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문호는 그녀의 손을 꼭 잡고는 그녀를 감싸 안았다.“왜 아까 도망갔느냐?” 우문호는 작게 읊조리며 “너는 본왕을 보고 한 번도 마음이 동요된 적 없느냐?”라고 물었다.그녀는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당연히 있지. 널 좋아해.”“그런데 왜 도망갔어?” 그의 입술이 그녀의 뺨을 스치더니 이윽고 그녀의 입술에 닿았다.원경릉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그의 앞에 서더니 무릎을 꿇고 앉아 비녀를 뽑고 긴 머리를 늘어뜨렸다. 밤바람에 머리카락이 그녀의 어깨 위로 흩날렸다.그녀가 손으로 자신의 어깨에 걸쳐진 저고리의 깃을 내리자 희고 수려한 어깨가 보였다. 그녀가 고개를 들자 움푹 파진 쇄골이 드러났다.우문호의 숨이 빠르게 가
우문호는 몸을 일으켰다. 그는 사나운 얼굴로 “너…… 본왕의 이부자리를 빨아 오거라.”서일은 한쪽 눈을 손으로 감싸고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우문호를 쳐다보았다.그러자 남은 한쪽 눈에도 주먹이 날아왔다. 우문호가 화가 풀리지 않은 듯 잔에 담긴 물을 한 번에 들이켰다. 날이 밝지도 않은 어두컴컴한 시간, 서일은 억울하다는 듯 울먹이며 이부자리를 끌어안고 밖으로 나갔다.기라(綺羅)가 침상으로 들어와 조심스럽게 우문호를 바라보니, 그는 화난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와 눈을 마주치자 기라는 무서워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왕야께서 오늘 왜 이러시지?’기라는 벌벌 떨며 침상 위에 새 이부자리를 펴놓고 서둘러 나갔다.우문호는 다시 잠자리에 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잠이 오지 않아 계속 뒤척였다.서일은 우물가에 쭈그리고 앉아 방망이로 연신 이불을 내리치며 울었다. 그 모습을 본 탕양이 멀리서 초롱(燈籠)을 들고 왔다. “서일.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왕야가 쓰라는 건 다 쓰고 이불을 빨고 있는가?”서일은 억울한 눈빛으로 탕양을 보았다. “탕어른께서는 어찌 주무시지 않고, 이 시간에 돌아다니십니까?”“잤다. 밖이 시끄러워서 나와 본 것이야.” 탕양은 서일의 옆에 앉아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왜 매번 왕야의 미움을 사는 거야?”라고 서일에게 물었다.서일은 한숨을 내쉬며 “저도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했다.“네가 열심히 하지 않으면 왕야가 널 내보내고 다른 사람을 들일 수도 있어.”탕양이 말했다.그 말을 들은 서일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잡고 있던 이불을 놓아버렸다.“탕어른! 그게 정말입니까? 왕야께서 설마 저를 내보내 버리려고?”“네가 이렇게 왕야의 심기를 거스르게 한다면, 그럴 수도 있지. 너도 알다시피 왕야를 모시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아? 너 하나쯤 대체하는 건 식은 죽 먹기다.”탕양은 어깨를 으쓱였다.서일이 자리에 털썩 주저앉더니 생각에 잠겼다.‘내가 비록 얻어 맞고, 욕을 먹어도 절대 이 자리를 남에게 내어줄 수는 없다.’
“은화(银子)가 없는데 어떻게 여인을 부릅니까? 그곳은 은화로 계산을 합니다.”서일이 씩씩하게 말했다.“내일 회계방으로 와서 은화를 찾아가거라.” 탕양은 천천히 뒤를 돌며 “참, 왕야의 이불을 잘 빨아라.”라고 말했다.서일은 이런 생각을 해낸 자신이 대견해서 이불을 빠는 내내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원경릉은 잠이 오지 않았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고 이리저리 뒤척거렸다. ‘미치겠네! 도대체 우문호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그녀는 이불을 머리까지 끌어올렸다. ‘우문호를 정말 믿어도 될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거의 매일 폭력을 휘두르던 그가 한순간에 이렇게 바뀌다니? 하지만…… 그와 입을 맞추는 게 왜 이리도 좋을까?’마차를 타고 왕부로 돌아올 때, 그녀는 우문호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 그의 심장소리를 들었다. 그 순간 그녀는 마음이 평온해졌다. 그가 갑자기 입을 맞추는 바람에 그 평온함도 잠시였지만 말이다.만약 마차가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렸다면 마차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원경릉은 자신이 미친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우문호의 숨결, 심장박동, 입술. 이 모든 것들이 그녀를 잠 못 들게 했다.‘제발 진정해!’그녀는 침상에서 내려와 찬물을 한 잔 마시며, 만약 계속 잠에 들지 못한다면 약 상자에서 수면제를 꺼내 한 알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잠시 후, 도저히 안되겠다고 생각이 들어 그녀는 약 상자를 열었다. 하지만 그 안엔 수면제가 없었다.하는 수 없이 그녀는 다시 침상에 누웠다.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양 네 마리, 우문호 다섯 마리, 우문호 여섯 마리…….’다음 날, 두 사람 모두 일찍 눈이 떠졌다. 그 둘은 다크서클이 턱 끝까지 내려온 채로 본관에서 마주쳤다.서로를 마주 보고는 넋이 나간 듯 어색하게 인사를 나눴다.서일도 눈 밑이 퀭한 채로 하품을 하며 본관으로 들어왔다. 때 마침 구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구사는 그들을 보고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마치 판다 세 마리를 보는 것 같았다.
회왕이 일어나지 않자, 원경릉은 밖에 나가 지난밤 시중을 든 사람에게 물었다. 시동은 간밤에도 피를 토한 적은 있었지만 기침은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희상궁은 회왕이 약을 먹은 현황을 말했다. 저녁 식사 후에 한 번, 한밤중에 깨어나서 각혈 후에 또 한 번 복용했고, 오늘 아침은 아직 약을 먹지 않았다고 했다. 원경릉은 고개를 끄덕이며 “희상궁님 수고하셨네요. 가서 주무세요. 낮에는 제가 지켜보겠습니다.”라고 말했다.희상궁은 고개를 저으며 “필요 없습니다. 회왕님이 약을 복용하는 시간 외에는 저도 잠을 잤습니다. 제가 잠을 자는 동안에는 노비(魯妃) 마마께서 보낸 사람이 시중을 들었습니다.” 라고 말했다.“그렇군요. 그럼 노비 마마는요?” 원경릉이 물었다.“주무십니다. 어젯밤 마마님께서 밤새 돌아다니셨습니다.”원경릉은 의아했다. 오늘 노비는 원경릉을 감시하지 않는 거지?그녀는 어제 노비가 그녀를 신뢰하기 시작했다는 느낌을 받긴 했지만, 노비가 완전히 그녀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노비가 끝끝내 나타나지 않자, 원경릉은 아마도 어제 회왕의 상태가 호전되면서 노비가 생각을 바꾼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회왕은 희상궁과 원경릉의 대화 소리에 뒤척이며 기침을 두 번 했다. 그 소리를 듣고 시동이 수건을 들고 급히 달려갔다. 회왕은 시동의 도움을 받아 세수와 양치를 마친 후, 간단하게 머리를 정돈하고는 좁쌀죽을 먹었다.우문령은 마스크를 쓰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여섯째 오라버니. 초왕비가 왔습니다.”회왕은 원경릉을 보고 활짝 웃었다.“알겠다. 근데 넌 왜 이렇게 일찍 온 것이냐?”“며칠 내내 제가 회왕부에서 살다시피 한 것을 이제야 안 겁니까?” 우문령이 입을 삐죽거렸다.“어? 그래?” 회왕은 눈에 웃음을 머금은 채 우문령을 바라보며 “현모비(賢母妃)께서 여기 와 있다고 뭐라고 하지 않으시냐?” 라고 물었다.“모비는 항상 저를 꾸짖잖아요. 그래서 부황에게 이미 허락을 맡았죠.” 말을 마치고 우문령이 방석 위에 앉으며 시동을
회왕이 약을 복용한 이후 별다른 부작용은 보이지 않았다. 원경릉은 약 복용량을 좀 더 늘려 결핵균을 가능한 한 빨리 없애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바늘은 무엇이죠? 어의가 쓰던 것이랑 다른데?” 우문령이 다가와 물었다.“이건 결핵에 효과가 좋은 약입니다. 치료 기간은 보름 정도고, 일반적으로 이걸 사용하면 전염성이 급격히 낮아집니다. 그 이후에 약을 바꿔 반년 정도 치료하면 완치가 가능합니다.”원경릉이 설명했다.우문령이 눈을 부릅뜨고 원경릉을 보았다.“진짜로 완치가 가능하다고요? 여섯째 오라버니의 병이 낫는다니, 정말 다행입니다!”원경릉은 미소를 지으며 회왕을 바라보았다. 회왕은 그녀의 말을 믿지 않는다는 시종일관 무표정을 유지했다.“병세를 보아하니 완치의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모든 병에 맞서 싸우려면 환자의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특히 환자의 낙관적인 태도가 중요합니다. 저는 많은 환자를 만나봤는데 그중에는 이미 손을 쓰기 늦은 환자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살려는 의지가 강해 오래 사는 환자들도 있었습니다. 회왕님 주변에서 이렇게 응원을 하는데 꼭 건강을 되찾으셔야죠.”원경릉의 말을 들은 회왕은 고개를 살짝 들어 무슨 말을 하려다가 멈추고 미소를 지었다.“예. 초왕비 말이 맞습니다.”원경릉은 그가 아직도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회왕은 오랜 병치레 때문인지 시종일관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원경릉은 회왕에게 약물치료와 함께 심리치료도 해야겠다는 판단이 섰다.회왕은 겉으로 보면 치료에 협조적인 듯했지만 사실은 매우 비관적이었다. 자신의 병세가 호전되는 것을 자신의 두 눈으로 확인했으면서도 이것은 잠깐이고, 자신은 결국 죽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는 주변 사람들이 병이 호전된 것을 보고 기뻐할 때, 그들을 따라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공허했다.“모두 나가주시지오. 제가 왕야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원경릉이 말했다.원경릉이 정색을 하며 말하자 우문령과 시동, 그리고 희상궁이 바쁘게 밖으로 나갔다.밖에는 사람들로 시끌벅적
원경릉은 옅은 미소를 띠었다.회왕은 그들의 대화를 듣고는 씁쓸하게 웃었다.“들었죠? 이제 아시겠습니까? 본왕이 비관적인 게 아니라 세상 사람들도 제가 나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요.”“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떠들던 상관없습니다. 제 판단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 판단을 하는 제가 당신을 고치는 사람이고요.” 원경릉은 의자를 끌어다가 회왕의 침상 옆에 앉았다.회왕은 그녀를 보고 큰 소리로 웃었다. “초왕비도 면보로 입과 코를 가리고 있지 않습니까? 초왕비도 비관적인 것 아닙니까?”원경릉은 자신이 마스크를 쓰고 있다는 생각을 못했다. “이게 회왕님 눈에는 거슬리십니까?”“거슬리는 건 아니고, 그냥 본왕이 병을 퍼뜨리는 죄인이 된 것 같아요.”“이 병에 걸린 게 죄가 아닙니다. 죄인이라뇨. 회왕님은 피해자입니다. 제가 이렇게 면보로 입과 코를 가리고 있는 것은 저를 보호하려는 겁니다. 제가 병에 걸린다면 회왕님은 누가 치료합니까? 저는 회왕께서 병에 걸린 후 3년 동안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압니다. 폐가 아파 거동도 힘드셨을 거고, 기침도 심하게 하셨을 겁니다. 긴 기간 동안 많은 어의들이 왕야의 병을 고치려고 시도했겠습니까? 그때마다 효과가 있는 듯하다가 다시 돌아오고, 약을 바꾸면 또 효과가 있다가 다시 병이 나빠지고 했을 겁니다. 과거의 반복됐던 실패로 왕야께서 저를 신임하지 않으시는 거죠?”회왕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원경릉은 그를 보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왕야께서 병을 이겨내겠다는 의지가 없으시면 제가 아무리 좋은 약을 쓴다고 해도 소용없습니다. 결핵은 굉장히 위험한 병입니다. 왕야께서 의지를 가지고 협조해 주셔야만 나을 수 있습니다.”“본왕이 협조를 안 한다고?” 화가 나 빨개진 얼굴의 회왕이 고개를 돌려 수건으로 입을 막고 기침을 했다.“겉으로만 협조하는 척하는 거 압니다.” 원경릉이 일어나 그의 침상으로 가서 그가 방금 기침을 한 수건을 열어보았다. 그 안에는 축축한 알약이 있었다.회왕은 자신이 나을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
우문호 일행은 강북부로 향하는 내내 북방의 풍경과 풍속을 경험했다. 그로 인해 속도는 매우 느리긴 했지만 말이다.그날 밤, 우문호는 갑자기 악몽에서 깨어나 온몸에 땀을 흘리며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다.그러자 원경릉이 벌떡 일어나 그를 껴안으며 물었다.“무슨 일이오? 악몽을 꾼 것이오?”우문호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아직 날씨가 덥지 않은 데다가 북방에 있어 오히려 날씨까지 쌀쌀했기에, 그는 아직도 악몽이 생각나는 듯, 창백한 표정을 지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꿈에서 셋째 형님이 피투성이인 채 죽어가고 있었소…”원경릉은 그저 꿈이라 생각하고 위로해 주려 했지만, 이내 우문호의 강한 감응 능력을 떠올렸다. 갑자기 나타난 이 꿈이 형제간의 영적 감응일지도 몰랐기 때문이다.우문호도 점점 불안한 생각에 빠졌다.“강북부가 비록 평온해 보여도 사실 북당에서 가장 복잡한 곳이오. 온갖 사람들이 섞여 있고, 북막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네. 게다가 셋째 형님도 무모한 사람이니, 진짜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지 걱정되오. 원 선생, 어서 빨리 가야겠소.”원경릉이 서둘러 옷을 입으며 말했다.“아니, 내가 먼저 가겠소. 정말 상처를 입었다면, 내가 가야지 도움이 되지 않겠소? 게다가 난 빨리 갈 수 있잖소.”“좋소. 그럼 먼저 가시오. 우리도 곧 출발하겠소.”우문호는 너무 생생한 꿈 탓에, 더 이상 천천히 갈 수 없었다.“사람을 불러야겠소.”원경릉은 재빨리 옷을 입은 후, 우문호에게 포옹하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먼저 가겠소.”“조심하시오.”우문호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 원경릉은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원경릉이 사라지자마자 우문호는 방 문을 두드리며, 출발하자고 소리쳤다.우문호의 소리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이 밤중에 출발이라니, 무슨 큰 일이 생긴 걸까?이때 수보가 겉옷을 걸치고 나오며, 우문호의 팔을 잡고 물었다.“무슨 일입니까?”우문호가 답했다.“나도 모르네. 하지만 셋째 형님에게 무슨 일
스무 명이 넘는 자 중 단 한 명만 생포하고 나머지는 전부 섬멸되었다.안왕은 재빨리 위왕의 혈을 눌러 지혈한 후, 중상을 입은 위왕을 데리고 저택으로 돌아왔다. 먼저 의원을 찾으러 간 사람이 있었기에, 의원은 이미 저택에 도착해 있었다. 이때 안왕이 피투성이가 된 채, 의원의 옷깃을 움켜잡았다.“살리시게, 살려야 하네. 꼭 살아야 하네.”의원이 바로 약상자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진정하십시오.”의원이 위왕의 옷을 가위로 자르자마자, 상처가 바로 드러났다. 다행히도 먼저 지혈한 덕분에 저택까지 돌아올 수 있었다.하지만 심각한 부상 상태와, 깊은 복부의 자상 때문에 장기를 다친 것으로 판단한 의원은 간단한 처리를 마친 후, 안왕에게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소인의 의술이 부족한 탓에, 치료를 감당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경성에서 다치셨다면,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강북부는 의료가 낙후된 지역이다. 비록 혜민서를 설립한 이후 의사를 집중적으로 양성하긴 했지만, 경성에 비하면 여전히 많이 부족했다.안왕이 숨을 헐떡이며 눈에 핏줄을 세우고 소리쳤다.“중상을 입었는데 어찌 도성으로 돌아가란 말인가? 긴 여정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은가?”의원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그것도 참 문제입니다. 황실 친왕이 자금단을 가지고 계신다고 들었는데, 혹시 저택에 있습니까?”“없네!”안왕은 위왕의 호흡이 점점 미약해지는 모습을 보며 절망감에 휩싸여 털썩 주저앉았다.“내가 갖고 있던 자금단은 이미 먹은 지 오래된 것이네.”“경성… 경성으로…”의식을 잃은 위왕은 그저 경성이라는 말만 중얼거렸다.안왕은 눈물을 닦으며 무릎을 꿇었다.“형님, 조금만 더 버티십시오. 의원이 약을 썼으니, 황후가 오실 때까지 며칠만 버티십시오.”심각한 상황이니, 경성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돌아가려면 최소 일주일 이상은 걸리지만, 황후는 아마 사흘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경성으로……”위왕은 의식을 잃기 전까지 계속해서 경성을 찾았다. 그곳은 그가 너무
위왕은 마음속에 또 하나의 걱정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다섯째가 곧 강북부에 오는 것이었다. 비록 이 일은 소문내지 않았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순행했으니, 소문이 새어나가게 마련이다.설령 그가 강북부에 온다고 밝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의 최종 목적지가 강북부라는 것은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북막인들이 다섯째에게 해를 가하려는 것은 아닐지 걱정되었다.아무래도 단 한 순간도 북막인의 야심은 멈춘 적 없었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는 방심하지 않고, 허점을 찾아내겠다는 결심을 다지며 이들을 감시했다. 확실한 증거가 없는 어디까지나 본인의 추측일 뿐이기에, 그는 이 일을 아직 넷째에게 말하지 않았다. 섣불리 말을 꺼냈다가, 그들이 진짜 금나라 상인이라는 것이 밝혀지기라도 한다면, 두 나라의 사이만 영향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비록 무장이지만, 외교적인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아주 작은 불씨라도, 마음먹은 자가 부추기면 걷잡을 수 없는 큰불이 될 수 있는 법이기에, 섣불리 행동해서는 안 되었다. 그리고 감시 끝에 마침내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 처음엔 열댓 명 정도였던 이들 무리는 이틀 사이 스무 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새로 온 자들은 앞선 사람들과는 다르게, 군인이라기보다는 강호 인사의 분위기를 풍겼으며, 무공 또한 약하지 않아 보였다.위왕은 경계심을 품고, 밤새 직접 사람들을 이끌어 조사에 나섰다.앞서 만났던 금나라 사람들은 여전히 질문에 순순히 응했지만, 새로 온 강호인들은 거만한 태도를 보였다. 위왕의 질문에도 그저 시큰둥한 태도만 보이며 북당인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위왕은 건방진 그들의 태도에, 몇 마디 호통을 쳤고, 그 모습에 강호인들은 참지 못하고 바로 위왕에게 손을 쓰려고 했다.위왕은 조사하기 위해 온 터라, 데리고 온 부하도 단 몇 명 뿐이었기에, 상대가 일반적인 조사에도 이렇게 쉽게 공격하려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앞서 온 금나라인들이 말리려 했지만, 그들이 손을 쓰자, 사태가 수습되지 않을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남강에 며칠 머무는 동안, 아홉째와 함께 남강의 풍경을 둘러보고, 북강에도 다녀왔다.지금 북강 백성들은 조정에 대한 소속감이 아주 강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남강을 다스린 정책이 정말 훌륭했기에, 백성들 모두 좋은 날을 보낼 수 있었기에, 자연스레 황제에 대한 존경심도 깊어진 것이었다.황제와 황후가 지나가는 곳마다 백성들은 길가에 모여서 열렬히 환영했다.그들은 이번 순행 내내 오계부에서 신분을 밝힌 것 외에는 항상 미복으로 다녔다. 하지만 남강에서 우문호는 황제의 신분을 드러냈다.우문호는 백성들의 신뢰와 경외심에서 큰 성취감을 느꼈고, 매우 기뻤다. 그는 줄곧 원경릉의 손을 잡고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과거 북강은 방어를 위해 무술 함정이 많았지만, 이제는 모두 제거되었다. 그리고 많은 백성이 산 아래 평원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마을을 이루었다. 정화를 구하러 왔을 때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기쁜 마음과 함께 우문호는 감사함도 느꼈다. 이것은 결코 그 혼자만의 공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남강을 떠나야 하는 날이 다가오자, 원경릉은 만아와 여덟째를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곧 변성으로 가야 했기에, 아쉬움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잠시였다. 남강을 벗어나자마자, 그녀는 아이들과 만날 생각에 들뜨기 시작했다."원 선생, 그들에게 말했소?"길에서 우문호가 물었다."아니, 몰래 가는 것이오."원경릉은 웃으며 말했다."교활하구먼. 그래도 만두가 이미 알려줬을 수도 있을 텐데."지금은 경단과 찰떡, 그리고 계란이 셋만 그곳에 있었다."셋이 다섯 개 성을 다스린다니, 분명히 힘들 것이오."원경릉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그렇소.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졌네. 이제는 태평해 보이니."우문호도 아이들이 안쓰러웠다."이번에 가서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충분히 쉬게 해줘야 하오."사실 성하나를 다스리는 것과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점 없이, 매우 힘든 일이었다.한편, 강북부에서는 최근 강북부 무구산 주변에 신비한 상단
그러자 홍엽이 그를 바라보며 멈칫했다."자네가 중매를 서겠다고?""안 되오?""말도 안 되는 소리 말게. 자기 혼사도 해결 못 하는데 중매는 무슨. 난 못 믿네!"냉정언이 어깨를 으쓱였다."못 믿으면 말고. 이래 봬도 내가 명문가 아가씨나 협녀를 많이 알고 있소."홍엽은 손으로 그의 목을 움켜잡으며 소리쳤다."알고 있는 아가씨가 있으면 진작 말했어야지! 경성으로 돌아가자마자, 당장 소개해 주시게!"냉정언은 웃으며 그의 손목을 옆으로 밀어냈다."중매 값이 워낙 비싸서. 십만 냥 아니면 쉽게 안 나서오.""돈이 대수요?"홍엽이 교활하게 웃으며 말했다."우린 지금 한집에 살고 있소. 그러니 자네가 돈을 어디에 숨겼는지, 다 알고 있네. 그동안 꽤 많이 챙겼으니, 돌아가서 돈은 두둑이 주겠네."그 말에 냉정언이 깜짝 놀랐다."내 돈을 노리고 있었소? 진짜 도둑을 집에 들였군! 늙어서 쓸 돈이네, 그 돈을 혼사에 쓸 생각은 하지 마시오!""명여가 우리를 챙길 테니, 그렇게 쩨쩨하게 굴지 마시오."홍엽이 새침하게 말했다."나도 돈이 많소. 다만 남의 돈을 쓰는 게 훨씬 재밌을 뿐이네."냉정언이 숨을 들이쉬었다."안 되겠네. 경성에 돌아가자마자 자네를 쫓아내야겠소."홍엽이 말했다."쫓아낼 수 있으면 쫓아내 보시게. 게다가 자네가 나를 청할 때, 뭐라고 했는가? 얼마든지 살아도 된다고 했잖소. 이제 와서 후회하는 것이오?""이야, 홍엽, 어찌 이리 뻔뻔스러워진 것이오?""뻔뻔하지 않으면, 어찌 당신 집에서 이렇게 공으로 먹고살 수 있겠나?"홍엽은 크게 웃으며 그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수보, 신을 모시는 건 쉬워도 보내는 건 어렵다고 하잖소. 이미 집안에 들어갔으니, 쫓아내기는 힘드네. 후회해도 소용없소. 수보의 등골 빼먹다 죽을 것이오. 관에 수의까지 얻어 쓸 생각이라, 죽으면 자네가 장례식까지 마련해줘야 하네."수보는 그를 한참 바라보다가, 애써 이를 악물며 말했다."진짜 뻔뻔하오!"홍엽은 박장대소했다.멀리 복도 끝에
“예, 그립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놀고 싶기도 합니다.”그는 말하다가, 갑자기 신이 난듯 몸을 들썩이며 말을 이어갔다.“여긴 정말 재미있습니다. 아홉째와 나가면 큰 산도 있고, 꽃도, 나무도 많습니다. 물고기도 많고, 사람도 많고, 뭐든지 엄청 많았습니다.”우문호는 웃으며, 못내 안쓰러움을 느꼈다. 예전에 그를 궁 안에 가두고, 거의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사람이 그를 데리고 나가는 것도 신경 쓰였다.“이곳이 마음에 들면, 좀 더 오래 있어도 된다.”우문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예, 정말 좋습니다. 다만, 형님과 형수님이 그리웠습니다. 이렇게 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여덟째는 흥이 오른 상태로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어서 들어가시지요! 아홉째가 형님이 내일 오신다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준비했습니다.” 그는 뒤돌아 원경릉에게 외쳤다.“형수님, 빨리 따라오십시오. 맛있는 거 많습니다.”미색은 웃으며 꾸짖었다.“이 무심한 녀석, 다섯째 형수님만 챙기고, 여섯 형수가 배고픈지는 묻지도 않는 것이냐?” 여덟째는 그제야 미색을 본 듯,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여섯째 형수님도 오셨습니까? 여섯째 형님도 오신 것입니까? 와, 너무 좋습니다!”“질투하다니?”원경릉은 미색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미소를 지었다.“여덟째는 너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것이다.”“아유, 참!”미색은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여덟째는 바로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항상 그림과 책자를 선물하는 여섯째 형수님도 좋아했기 때문이다.그는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그... 그럼 같이 드시지요. 음식 많습니다.”“장난이다. 난 질투 안 해.”미색은 기쁘게 말했다.여덟째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고, 다들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원경릉이 만아에게 말했다.“정말 이곳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구나. 예전보다 훨씬 활발해졌고, 말도 많이 하네. 이 모든 게 아홉째 덕분이다.”만아는 웃으며 말했다.“예, 둘이 시간이 날 때마다 밖으로 나가, 더
원경릉은 발끝을 들어 그의 뺨에 입을 맞추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우문호는 그런 그녀를 와락 끌어안으며 말했다.“원 선생, 행복하오?”“행복하오.”“하하하. 지금이 아닌, 나와 함께했던 모든 날이 행복했냐고 물어보는 것이오.”“모든 순간이 당연히 행복하고, 기쁘오!”원경릉은 스스로를 자조하듯 웃었다.“나 같은 집순이가 이렇게 결혼생활이 행복할 줄 누가 알았겠소?”한때 그녀는 자신이 평생 결혼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고, 사랑 없는 삶도 부족함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그녀는 사랑을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었지만, 사랑은 사실 정말로 중요했다.산꼭대기에 앉아, 차가운 바람을 맞고 있었지만,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의 풍경을 눈에, 그리고 마음에 깊이 새기고 싶었다.그리고 함께 늙어간 후, 다시 천천히 되새기고 싶었다.영산에서 내려온 후, 그들은 다시 여정을 이어나갔다. 이번 목적지는 바로 남강이었다.명절이 지난 뒤, 아홉째는 여덟째를 데리고 먼저 남강으로 돌아갔다. 다들 그가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남강 땅은 오랜만이었다. 마지막으로 발을 디딘 건, 정화를 구하러 갔을 때였다.남강으로 가는 내내 홍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냉정언이 물었다.“남강에 가면, 못난이를 만날 것이오?”“만나야지.”홍엽이 답했다.“물론 만나야지!”못난이는 오랜 시간 그와 함께했던 사람이니, 만나야 했다. 못난이가 종종 편지를 보내오긴 했지만, 자기 상황은 거의 말하지 않았다.반면 아홉째는 편지에서 북강의 소식을 자주 전해주었다.지금의 남강은 어느 정도 통일되어 있었고, 북강과 남강도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그동안 이익 문제로 양측의 왕래가 더욱 빈번해졌다.아홉째는 편지에서 못난이가 북강의 민심을 얻었고, 성격도 예전보다 훨씬 밝아져,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하다고 전했다.홍엽의 마음엔 기대와 기쁨이 섞여 있었다. 그도 지금 잘 지내고 있으니, 못난이도 잘 지내길 바랐다.우문호는 남강에서 돌아온 후, 변방으로 갈
그 일을 떠올리자, 꿈에서 본 일이라 그런지 마치 얼마 전에 있었던 일처럼 느껴졌다.그때 그들은 죽을 만큼 힘든 소년들이었는데, 지금은 한없이 한가한 노인이 되었다.세월은 덧없이 흘러갔고, 그동안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잃었다.무상황은 자신의 황후였던 소봉을 떠올렸다.그들은 줄곧 전형적인 황제와 황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나라를 다스렸고, 그녀는 후궁을 다스렸다. 비록 그가 그녀를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많은 애정을 주지도 않았다.그렇게 평범하게 평생을 함께했지만, 그녀가 떠나는 날, 그는 마음속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간 듯한 슬픔을 느꼈다.평생 함께했던 사람이 자신보다 먼저 떠날 거라 생각하지 못했기에 더욱 아팠다.세 사람은 한참 동안 넋을 잃고 있다, 다시 길을 나섰다.유아독존과 관련된 일이 생각보다 커졌지만, 모든 소란은 결국 가라앉게 될 것이다. 모든 소문도 점점 사그라들기 마련이니, 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세 사람이 여행하는 영상이 점점 유명해지면서, 유아독존은 더 심하게 비난을 받았다.현실에서 함부로 욕설을 내뱉으면 얻어맞을 수도 있지만, 인터넷에서는 당당한 명분이 있었기에 악성 댓글을 다는 자들은 마음껏 욕을 퍼부었다.그리고 어느 날, 추 어르신이 오래도록 인터넷의 댓글을 훑어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는 이내 해가 지는 장면을 찍어 짧은 영상을 올렸다. 그리고 영상에 한마디만 덧붙였다.“분쟁 없이, 오직 평화만 있기를.”그는 모든 다툼이 끝나길 바랐고, 누군가를 벼랑 끝으로 몰지 않기를 바랐다. 단지 말로만 승부를 겨루는 사람은 그들의 적이 아니기 때문이다.음... 무엇보다 적이 될 자격도 없었다!영상이 올라간 지 이틀 뒤, 유아독존은 마침내 사과 영상을 올렸다. 그는 질투와 시기로 무술을 모독한 것을 사죄했고,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직접 그들의 계정을 태그해 진심으로 사과했다.진심 어린 사과는 항상 용서를 가져오는 법이다. 그리고 악성 댓글을 달던 사람들도 마침내 욕설을 멈췄다.
삼대 거두는 늦은 시각이 되어서야 일어났고, 숙취에서 깨어나니, 이미 날이 밝아져 있었다. 그들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아, 눈앞의 모든 것이 몽롱해 오늘이 무슨 날인지조차 모를 정도였다.태양이 서서히 떠오르며 하늘에 떠 있는 주황빛 구름은 점점 짙은 금빛으로 변했고, 금빛 가장자리에는 붉은색이 덧씌워져, 눈부시게 아름다웠다.소요공이 눈을 비비며 말했다."꿈을 꿨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동시에 그를 바라보며 이구동성으로 물었다."무슨 꿈을 꿨는가?""꿈에서 숭이가 사내에게 속았는데, 우리가 직접 나서서 복수를 해줬다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놀라서 동시에 숨을 들이켜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귀신이 곡할 노릇이네."말이 끝나자,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깜짝 놀라 외쳤다."자네도 꾼 것인가?""그렇네!""그렇네!""설마 우리 셋이 똑같은 꿈을 꾼 것이오?"소요공도 깜짝 놀랐다.그 일은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었고, 어떻게 된 일인지 가물가물할 정도로, 그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할 정도였는데, 꿈에서는 그 장면 장면이 또렷하게 떠올랐다.그리고, 이 꿈은 당시 엄청난 부담을 받고 있던 그들에게 정말 훌륭한 감정 해소가 되었다. 그들은 모든 고통과 억울함, 스트레스를 주먹질로 시원하게 풀어냈다.한편, 무상황은 자신이 황후를 소홀히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때 무슨 상황이었는지 기억하는가?"추 어르신이 흥분한 듯 말했다."물론 기억은 나네. 당시엔 소봉이가 궁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적성루 사람들을 많이 그리워했네. 게다가 나도 자네들과 어울리느라 바빠서 황후를 소홀히 했네. 그래서 적성루 상궁과 숭이를 궁으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게 했지."사실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꿈속에서 다시 겪은 덕분에 자세히 생각났다.그때 어서방의 회의가 끝나고, 소복이 무심히 물었다."폐하, 황후 마마를 오랫동안 못 뵙지 않으셨습니까?"그는 소복의 말이 소봉을 보러 가자는 암시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