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 군주가 당황해서 말을 더듬거렸다. “난……난 스스로를 괴롭히는 게 아니야, 왜 그런 생각을 해? 그게 나한테 무슨 괴로움이라고?”“너 지금 아이를 잃어서 이러는 거잖아?” 손 왕비가 똥 오줌을 못 가리고 흥분한 나머지 뒷일 생각없이 대놓고 질러버렸다.“형님!” 원경릉이 놀라 돌아보며 손 왕비를 꾸짖었다.손 왕비는 말을 뱉은 후 실언했다는 걸 알았지만 아예 무시하고 더 못된 말을 퍼부었다. “사실이 그런데, 말 못할 게 뭐 있어? 이미 지난 일인데 또 그 일때문에 평생 자신을 못 살게 굴어야 직성이 풀려? 네가 전신에게 시집간다고 하는 것도 네 선택을 존중하라고 태자비가 말려서 그래, 따지지 말자, 존중하자 하고 넘어갔어. 그런데 애들을 거둬서 키운다고? 그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행동이야? 그게 얼마나 책임이 큰 일인 줄 알기나 해? 애들로 너의 결핍을 채우려 하는 거면 애들을 망치고 네 자신도 망치는 길이야.”“됐어요, 형님 그만하세요. 정화 군주 얘기부터 좀 듣자고요!” 원경릉이 못 참고 손 왕비를 끌어당겨 의자에 앉히고 차를 한 잔 건넸다. “진정해요, 진정!”손 왕비는 차를 받고 고개를 돌리더니 몰래 눈물을 훔쳤다.그렇게 잠시 정적이 흘렀다.모두 정화 군주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손 왕비의 말이 너무 직설적이어서 다들 무슨 말로 위로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정화 군주가 한숨을 쉬고 조금 화난 얼굴로 말했다. “어떻게 제가 뭘 하려고만 하면 전부 이전 일을 끌고 들어오는 거죠? 도대체 제가 새 삶을 살기 싫어하는 건가요, 아니면 그럴 기회를 안 주는 건가요? 아이를 잃은 경험이 있다고 해서 제 아쉬움을 채우기 위해 얘들을 키운다는 건 어불성설이에요. 그저 제가 가서 봤을 때 아이들이 가여웠어요. 명월암이 철거된 뒤 대부분의 아이들은 보안당에 보내질 텐데 아직 너무나도 어린 아기들이라 반드시 따로 돌봐야 해요. 그런데 마침 전 그런 능력도 있고 돈도 있죠. 유모를 고용할 수 있고, 걔들을 돌볼 능력이 있어요. 제 자신도
한편, 정화 군주는 손 왕비가 걱정됐다. 하지만 방금 몇 마디 말다툼한 정도로 둘 사이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정화 군주는 손 왕비의 손을 잡고 진심을 다해 말했다. “앞으로 가르쳐 달라고 할 일이 엄청 많으니까 꼭 와야 돼.”“당연히 가지!” 손 왕비가 정화 군주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그만 목소리로 사과했다. “미안해, 내가 방금 무슨 말을 지껄였는지 원, 마음에 두지 마.”그러자 정화 군주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동서가 뭐라고 했는지 난 다 까먹은지 오래야.”나아진 분위기에 모두 서로 마주 보며 웃으며 기뻐했다. 그리고 여자들이 한참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계집종이 와서 위왕이 정화 군주를 보러 왔다고 고했다.손 왕비가 벌떡 일어나 깔보며 소리쳤다. “안 본다고, 꺼지라고 해!”요 부인이 매섭게 노려보았다. “지금 찢어진 입이라고 함부로 놀린다? 볼지 말지 네가 정해?”손 왕비가 뚜껑이 열려서 대꾸했다. “아니 이 상황에 오긴 왜 와? 분란만 일으키는 거 아닌가요?”“난 괜찮아, 오면 오는 거지. 나도 할 말이 있고.”그리고 정화 군주가 고개를 돌려 계집종에게 말했다. “위왕 전하께 편청에서 기다리시라고 해, 내가 금방 가겠다고!”“예!” 그러자 옆에 있던 원경릉이 정화 군주에게 물었다. “정말 만나려고요?”정화 군주가 찻잔을 받쳐 들고 천천히 한 모금 마시더니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그 사람은 내려놓을 필요가 있어요. 앞으로 살아가야 하니까요. 전 지금 괜찮으니까 염려할 필요 없어요.”정화 군주는 잔을 내려놓고 일어났다. 사람들의 걱정 어린 시선을 받고 헛웃음을 지었다. “제 걱정 마세요. 전 지금 희망을 전부 내려놨잖아요. 그런데도 여전히 다들 저 때문에 걱정하시면 너무 모순 아닌가요? 차 드세요. 이 차 진짜 좋은 거예요. 사촌 오빠가 대흥에서 절 위해 가지고 오신 거니까 남기지 말고 다 드셔야 해요!”그녀는 말을 마치고 치마에 떨어진 차 가루를 떨고 일어서 나갔다.위왕은 계집종이 이끄는 대로 우선 편청으로 갔
위왕은 편청에 앉았지만 여전히 머리가 답답해 무거웠다. 오겠다고 굳이 고집을 부린 건 불안해서였다.문 입구에 옷자락이 슬쩍 보이는가 싶어 얼른 고개를 들자, 정화 군주의 순결한 얼굴이 눈동자에 맺히고 위왕은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정화 군주가 걸어와 위왕 앞에 서서 그를 바라보며 작게 속삭였다. “앉으세요!”위왕은 앉아 두 손을 무릎위에 올려 정중한 자세를 취했다. 위왕은 정화 군주에게 늘 진중한 모습을 보였다. 정화 군주가 위왕 맞은 편에 앉아서 물었다. “저에게 하실 말씀 있으세요?”“당신……” 위왕이 입을 뗐으나 목이 메였다. “왜 이렇게까지 자신을 괴롭히는 거야? 정말 누군가에게 시집을 가는 거면 나도 말릴 생각 없고, 난처하게 하지도 않아.”정화 군주가 고개를 저었다. “전 이게 정말 좋아요.”위왕이 정화를 보니 눈동자에서 평안이 느껴져 마치 예전 같이 느껴졌지만 이건 거짓일거라고 생각했다. “난 안 믿어!”“믿던 안 믿던 다 좋아요. 전 이미 이렇게 했으니까,” 정화 군주가 위왕을 바라보며 시원하고 투명한 목소리로 위로했다. “전 새로운 삶을 살 거고 당신도 그럴 수 있기를 바래요. 당신이 아내를 맞으셔야 한다면 제가 어떻게 느낄까 고민하실 필요 없어요. 과거는 다 지난 일인 걸요. 우린 다 내려놔야 해요. 살아가려면,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언제 까지고 과거 일에 연연해서는 안돼요. 안 그러면 앞으로 길고 긴 여생을 어떻게 버틸 수가 있겠어요?”위왕의 눈가가 조금 붉어졌고 살짝 내려간 눈꼬리가 한없이 고집스러웠다. “난 이미 왕비가 있고, 이 생에 다른 사람과 혼인 안 해!”정화 군주가 위왕에게 말했다. “그럼 가서 당신이 하셔야 할 일을 하세요. 왕야는 황제 폐하의 아들이시라 당신 인생에 남녀 문제가 다가 아닙니다. 어깨에 무거운 책임을 지고 계세요. 그래서 감히 제가 한 말씀 드리자면 내려놓아야 할 것은 내려놓으시고 해야 할 일은 하시길 바래요.”“그게 당신이 원하는 건가?” 위왕의 목소리가 떨려왔다.정화 군주가 말
정화 군주는 이 말을 마치자마자 집사를 불러 위왕을 환송해 드리라고 명했다. 위왕은 두어 걸음 걷다가 자꾸 뒤를 돌아서 정화 군주가 사라진 복도 쪽을 보고 또 보더니 미련을 잔뜩 남긴 채 떠났다.본관으로 돌아오니 모두 정화 군주에게 눈길이 쏠렸다. 그녀가 서서히 웃으며 다가왔다. “우리 안 싸웠어요!”정화 군주가 아직 웃고 있는 것을 보고 모두 안심이 됐다. 요 부인이 얼른 화제를 옮겼다. “제가 가져온 배냇저고리 좀 볼래요? 이웃 사람들과 같이 사흘에 걸쳐 만들었는데 정말 예뻐요!”“네, 보고 싶어요!” 미색은 배냇저고리를 본 적이 거의 없어서 얼른 대꾸했다.상자가 열리고 배냇저고리가 한 벌 씩 펼쳐지자 각양각색에 앙증맞고 귀엽다. 정화 군주는 그중 하나를 들어 옷감을 만져보고 요 부인을 칭찬했다. “옷감이 정말 부드러워요. 애들 피부에 딱 이네요.”“순면이라 입기 딱 좋지!” 요 부인이 말했다.“아직 부족하죠?”“서두르고 있으니 안심해요. 나중에 애들 오면 바꿔 입힐 거니까요.” 요 부인은 역시 일을 빈틈없이 처리했다.정화 군주의 눈빛에 자애로운 느낌이 돌았다. “그럼 됐네요.” 원경릉이 말했다. “저기 우리집에도 입던 배냇저고리가 있는데 드릴 수 있어요.”“뱃속에 아기를 위해서 남겨두지 않고요?”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그렇게나 많이 못 입어요. 형이 다섯 명인데 어디 다 입어 보기나 하겠어요?” 원경릉이 웃으며 답했다.“그리고 아가가 물려받지 못할 수도 있을 걸요? 공주님일 수도 있잖아요.” 원용의가 웃으며 말했다. 원용의는 태자의 마음을 잘 알아서 원 언니가 이번에 가진 아이가 딸이기를 바랬다. 그래야 태자가 자기 집에 와서 딸을 납치해가자는 생각을 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태자는 남의 집 딸을 볼 때마다 자기 집에 못 데리고 가는 게 한이란 표정이었다. 정화 군주가 기뻐하며 답했다. “그거 정말 잘 됐네요. 제가 같이 가서 가져올게요.”“왔다 갔다 하실 필요 없어요. 사람을 시켜서 보내면 되니깐요.” 원경릉이 말했다.“
이틀 뒤 명월암이 철거 되자 원경릉은 사람을 정화 군주 집으로 보내고 자신도 가서 아이들이 오기를 기다렸다.아이들은 전부 13살으로 남자 아이는 셋, 여자 아이는 총 열명이었다. 제일 나이가 많은 아이가 한 살 반, 제일 어린 아이가 막 2달을 지났다.남자아이 셋은 전부 장애가 있었는데 하나는 청각장애였고, 또 하나는 얼굴에 큰 반점이 거의 얼굴 절반을 덮었는데 신기하게 나머지 절반은 아주 잘생겼다. 세번째 남자아이는 눈이 보이지 않았는데 이 아이가 한 살 반으로 제일 나이가 많았다.같이 따라온 비구니가 모두에게 얘기했다. “여자는 버려진 애들로 가난한 집에 딸을 많이 낳다 보니 다 키울 수 없어서 몰래 암자 앞에 버리고 간 겁니다. 남자는 보통 차마 못 버리고 아무리 힘들어도 키우지만 셋은 장애가 있어서 차마 죽게 두지는 못하겠으니 암자 앞에 버리고 간 거겠지요. 나무아미타불, 군주님께서 얘들을 거둬 주셨기 망정이지 소승도 얘들을 어떻게 할지 몰랐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비구니가 이 말을 하며 정화 군주에게 감사 인사를 올렸다.정화 군주는 언청이인 아이를 안고 황급히 답례했다. “감사하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아이들이 좋아서 그런걸요!”비구니가 말했다. “군주께서 아이들을 잘 대해 주실 것을 알지만 노파심에 한 말씀만 올리겠습니다. 이렇게 선한 인연을 맺으셨으니 군주께서는 부디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아이들을 나 몰라라 내버리시는 일이 없으시기를 바랍니다.”“절대로 애들을 버릴 리는 없습니다!” 정화 군주가 살살 언청이 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속삭였다.비구니가 합장하고 다시 한번 감사인사를 했다.그리고 원경릉은 아이들의 건강상태를 점검하며 질병이 있는지 살폈다. 여자 애들은 별 문제 없고 단지 쇠약했을 뿐으로, 비구니 암자다 보니 제대로 먹을 게 없어서 몸짓이 다 작았다. 다른 건 못 먹고 멀건 미음만 먹었기 때문이다. 비구니들은 채소만 먹으니 당연히 고기가 들어간 음식은 먹지 못했던 것이다. 원경릉은 실명한 남자 아이의 실명 원인을 바로
남자아이 셋은 다 부를 돌림자로 언청이인 아이는 최부진, 점이 있는 아이는 최부용, 실명한 아이는 최부생이라고 했다.원경릉은 정화 군주 집을 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소월각으로 가자 아이들이 모두 쿨쿨 잠들어 있었다. 최근 애들이 서로 현대 할머니 쪽으로 가겠다며 앞다투어 기회를 노렸다. 원경릉은 피로해서 관자놀이를 주무르면서도 내심 기쁜 것이 주진이 얼른 결과를 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원경릉은 원숭이의 대뇌에 대해서는 홍엽에게 말해야 할지 사실 망설여졌다. 원숭이에 정이 깊은 홍엽은 원숭이가 다른 몸 또는 의식으로 다른 시공에 살아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면 기뻐할 게 틀림없지만 고집스러운 개성으로 보건대 찾으러 갈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아무런 방향성 없이 찾으면 어떤 결과도 얻지 못한다. 원숭이가 과연 어느 시공에 있는지 누구도 확신할 수 없으며 존재 여부 자체도 미지수기 때문이다.그래서 심사숙고 끝에 원경릉은 일단 홍엽에게 알리지 않고 주진 쪽에서 연구를 계속하다가 결과가 나왔을 때 다시 생각하기로 했다.다음날 희상궁이 궁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원경릉이 식구들을 이끌고 희상궁과 같이 궁으로 갔다. 희상궁은 며칠 동안 궁에서 시중을 들었다. 아이들이 궁에 없으니 애들이 보고싶어 초왕부로 돌아오고 싶어 했다. 결국 희상궁이 다시 초왕부로 돌아오자 궁중에 세 어르신들이 앞다투어 희상궁을 궁으로 돌려보내라고 난리셨다.희상궁은 자기를 둘로 쪼갤 수 없음이 안타까웠다. 하나는 궁에 하나는 초왕부에 있으면 좋을 텐데. 애들도 어르신들도 도통 신경이 쓰여서 어쩔 줄 모르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궁으로 가는 길에 희상궁은 구시렁거렸다. “앞으로 양쪽을 왔다 갔다 할까 봐요. 열흘은 궁에 있고 또 열흘은 초왕부에 있고.”“희상궁, 그렇게 애쓸 필요 없어요. 우리가 보고 싶을 때마다 우리가 궁으로 만나러 갈게요!” 만두가 귀염을 떨며 말했다.희상궁이 만두를 와락 안더니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우리 황태손은 정말 착하기도 하시지. 벌써 철이 다 들었어
태상황의 말은 즉 원경릉 배 속에 아이가 딸이란 소리로, 증손녀의 할아버지로서 여아홍을 땅에 묻었다가 우리 복덩이가 시집갈 때 파내서 마신다는 말이었다.원경릉이 돌연 호기심이 발동해서 물었다. “폐하는 여아홍을 묻을 거라고 어떻게 확신하세요?”“과인은 알아.” 태상황이 단정적으로 말했다.“어떻게 아시는데요?” “50년 전에 관상가가 그랬어. 과인이 올해 손녀를 하나 더 볼 거라고.”“그럼, 미색이 낳는 아이일 수도 있겠네요.”“그럼, 손녀 둘을 보는 거지!” 아주 여유만만이다.원경릉이 배시시 웃으며, “미색이 쌍둥이면요!”태상황은 눈동자를 굴리며 허둥지둥하더니, “그럼, 셋이 더 생기는 걸로!”“미색도 딸을 낳나 봐요?” 원경릉은 아주 장난기가 발동했다.태상황은 원경릉의 말에 아예 대꾸하지 않기로 했다. 관상가의 말을 안 믿다니 천벌받지.원경릉이 일어나 세 어르신을 안으로 불러 맥을 짚어 보았다.소요공의 건강은 여전했으며, 심폐기능은 젊은 사람보다 오히려 나을 정도로 손발이 민첩하고 허리가 튼튼했다. 소요공은 이에 자만해서 자신이 백 년은 너끈히 살 수 있다고 했다.태상황이 일부러 못되게 말했다. “보통 건강한 사람이 먼저 죽더라.”소요공이 태상황에게 눈을 흘기며, “먼저 죽으면 복 받은 거죠. 두 사람 다 죽고 나 혼자 남으면 너무 외로울 테니까요!”태상황과 주재상이 고개를 들어 소요공을 보는 눈동자에 무언가 천천히 떠오르더니 무거운 얼굴이 되었다. 그들은 모두 마음속으로 짐작하고 있는 게 있었다. 어느 날, 그리 멀지 않아 세 늙은이 중 하나가 먼저 죽고, 둘이 남았다가 마지막엔 결국 혼자 남을 것을 말이다.어릴 때부터 함께 늙어간다는 건 하늘이 내려 주신 복이자 귀한 인연이지만 그것도 결국 다하는 날이 오기 마련이다.청진기를 들고 있던 원경릉도 순간 먹먹했다.주재상이 곁에 있는 희상궁에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괜찮아, 다음 생이 또 있으니까. 희망이 언제나 있지.”희상궁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예, 다음 생이 또 있으
“선물은 너만 할 줄 아나 봐?” 태상황이 원경릉을 내려다보며 보며 말했다.원경릉은 아이들에게 또 금은보석을 주시려는 줄 알고 말을 서둘렀다.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지금 딱히 은자를 안 써요.”태상황은 아무 말 없이 궁인을 시켜 가져오라고 한 뒤 탁자에 깔아 놓았는데 이게 아무리 봐도…… 선물 같지 않았다.그저 돌멩이 4개였다.게다가 이 돌멩이들은 전부 평범하게 볼 수 있는 것으로 어화원 길가에 깔린 자갈만도 못한 게 진흙과 먼지투성이였다.단지 색은 다 달랐는데 그마저도 흔히 볼 수 있는 색이었다.애는 5인데 돌멩이가 4개면 어떻게 나누라는 거야?원경릉이 궁금해하던 참에 태상황이 만두에게 오라고 하더니 돌멩이 4개를 동생들에게 나눠주라고 하며, 어떤 동생에게 뭘 줄 건지는 만두가 스스로 정하라고 했다.만두는 돌멩이를 별로 대단하게 여기지 않아서 손에 들고 좀 까부르다가 순서대로 나눠줬다.삼대 거두는 이 모습을 상당히 진지하게 엄숙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만두가 돌멩이를 전부 나눠주자 태상황이 주재상에게 물었다. "기억했지?”주재상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기억했습니다!”“그럼 됐어!” 태상황은 한시름 놓고 말했다. “남은 한 개는 배 속에 있는 아이에게 주지 뭐.”원경릉은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고작 돌멩이 몇 개를 뭐라도 되는 것처럼 어찌나 애지중지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무슨 비취라도 되는 줄 알겠다.만두는 돌멩이에 그다지 흥미가 없었지만, 동생 넷이 다 가졌고 하나 더 있는 거는 뱃속에 여동생에게 준다니까, 자기만 없는 게 좀 기분 나빠서 태상황에게 매달려 물었다. “태조부, 이건 어떤 보물인데 왜 전 안 주세요?”태상황이 눈을 가늘게 뜨고 만두에게 말했다. “그건 말이다. 넌 이런 돌멩이를 아주 많이 가질 수 있고, 동생들 손에 있는 것도 네 것이거든. 언젠가 동생들은 이 돌멩이에 의지해서 먹고 살게 될 거다. 그때는 더 이상 밥 한 그릇가지고 서로 싸우지 않아도 되는 거야.”만두가 이번에도 잘 이해를 하지 못해서 어리둥절해
우문호 일행은 강북부로 향하는 내내 북방의 풍경과 풍속을 경험했다. 그로 인해 속도는 매우 느리긴 했지만 말이다.그날 밤, 우문호는 갑자기 악몽에서 깨어나 온몸에 땀을 흘리며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다.그러자 원경릉이 벌떡 일어나 그를 껴안으며 물었다.“무슨 일이오? 악몽을 꾼 것이오?”우문호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아직 날씨가 덥지 않은 데다가 북방에 있어 오히려 날씨까지 쌀쌀했기에, 그는 아직도 악몽이 생각나는 듯, 창백한 표정을 지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꿈에서 셋째 형님이 피투성이인 채 죽어가고 있었소…”원경릉은 그저 꿈이라 생각하고 위로해 주려 했지만, 이내 우문호의 강한 감응 능력을 떠올렸다. 갑자기 나타난 이 꿈이 형제간의 영적 감응일지도 몰랐기 때문이다.우문호도 점점 불안한 생각에 빠졌다.“강북부가 비록 평온해 보여도 사실 북당에서 가장 복잡한 곳이오. 온갖 사람들이 섞여 있고, 북막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네. 게다가 셋째 형님도 무모한 사람이니, 진짜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지 걱정되오. 원 선생, 어서 빨리 가야겠소.”원경릉이 서둘러 옷을 입으며 말했다.“아니, 내가 먼저 가겠소. 정말 상처를 입었다면, 내가 가야지 도움이 되지 않겠소? 게다가 난 빨리 갈 수 있잖소.”“좋소. 그럼 먼저 가시오. 우리도 곧 출발하겠소.”우문호는 너무 생생한 꿈 탓에, 더 이상 천천히 갈 수 없었다.“사람을 불러야겠소.”원경릉은 재빨리 옷을 입은 후, 우문호에게 포옹하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먼저 가겠소.”“조심하시오.”우문호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 원경릉은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원경릉이 사라지자마자 우문호는 방 문을 두드리며, 출발하자고 소리쳤다.우문호의 소리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이 밤중에 출발이라니, 무슨 큰 일이 생긴 걸까?이때 수보가 겉옷을 걸치고 나오며, 우문호의 팔을 잡고 물었다.“무슨 일입니까?”우문호가 답했다.“나도 모르네. 하지만 셋째 형님에게 무슨 일
스무 명이 넘는 자 중 단 한 명만 생포하고 나머지는 전부 섬멸되었다.안왕은 재빨리 위왕의 혈을 눌러 지혈한 후, 중상을 입은 위왕을 데리고 저택으로 돌아왔다. 먼저 의원을 찾으러 간 사람이 있었기에, 의원은 이미 저택에 도착해 있었다. 이때 안왕이 피투성이가 된 채, 의원의 옷깃을 움켜잡았다.“살리시게, 살려야 하네. 꼭 살아야 하네.”의원이 바로 약상자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진정하십시오.”의원이 위왕의 옷을 가위로 자르자마자, 상처가 바로 드러났다. 다행히도 먼저 지혈한 덕분에 저택까지 돌아올 수 있었다.하지만 심각한 부상 상태와, 깊은 복부의 자상 때문에 장기를 다친 것으로 판단한 의원은 간단한 처리를 마친 후, 안왕에게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소인의 의술이 부족한 탓에, 치료를 감당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경성에서 다치셨다면,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강북부는 의료가 낙후된 지역이다. 비록 혜민서를 설립한 이후 의사를 집중적으로 양성하긴 했지만, 경성에 비하면 여전히 많이 부족했다.안왕이 숨을 헐떡이며 눈에 핏줄을 세우고 소리쳤다.“중상을 입었는데 어찌 도성으로 돌아가란 말인가? 긴 여정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은가?”의원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그것도 참 문제입니다. 황실 친왕이 자금단을 가지고 계신다고 들었는데, 혹시 저택에 있습니까?”“없네!”안왕은 위왕의 호흡이 점점 미약해지는 모습을 보며 절망감에 휩싸여 털썩 주저앉았다.“내가 갖고 있던 자금단은 이미 먹은 지 오래된 것이네.”“경성… 경성으로…”의식을 잃은 위왕은 그저 경성이라는 말만 중얼거렸다.안왕은 눈물을 닦으며 무릎을 꿇었다.“형님, 조금만 더 버티십시오. 의원이 약을 썼으니, 황후가 오실 때까지 며칠만 버티십시오.”심각한 상황이니, 경성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돌아가려면 최소 일주일 이상은 걸리지만, 황후는 아마 사흘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경성으로……”위왕은 의식을 잃기 전까지 계속해서 경성을 찾았다. 그곳은 그가 너무
위왕은 마음속에 또 하나의 걱정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다섯째가 곧 강북부에 오는 것이었다. 비록 이 일은 소문내지 않았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순행했으니, 소문이 새어나가게 마련이다.설령 그가 강북부에 온다고 밝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의 최종 목적지가 강북부라는 것은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북막인들이 다섯째에게 해를 가하려는 것은 아닐지 걱정되었다.아무래도 단 한 순간도 북막인의 야심은 멈춘 적 없었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는 방심하지 않고, 허점을 찾아내겠다는 결심을 다지며 이들을 감시했다. 확실한 증거가 없는 어디까지나 본인의 추측일 뿐이기에, 그는 이 일을 아직 넷째에게 말하지 않았다. 섣불리 말을 꺼냈다가, 그들이 진짜 금나라 상인이라는 것이 밝혀지기라도 한다면, 두 나라의 사이만 영향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비록 무장이지만, 외교적인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아주 작은 불씨라도, 마음먹은 자가 부추기면 걷잡을 수 없는 큰불이 될 수 있는 법이기에, 섣불리 행동해서는 안 되었다. 그리고 감시 끝에 마침내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 처음엔 열댓 명 정도였던 이들 무리는 이틀 사이 스무 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새로 온 자들은 앞선 사람들과는 다르게, 군인이라기보다는 강호 인사의 분위기를 풍겼으며, 무공 또한 약하지 않아 보였다.위왕은 경계심을 품고, 밤새 직접 사람들을 이끌어 조사에 나섰다.앞서 만났던 금나라 사람들은 여전히 질문에 순순히 응했지만, 새로 온 강호인들은 거만한 태도를 보였다. 위왕의 질문에도 그저 시큰둥한 태도만 보이며 북당인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위왕은 건방진 그들의 태도에, 몇 마디 호통을 쳤고, 그 모습에 강호인들은 참지 못하고 바로 위왕에게 손을 쓰려고 했다.위왕은 조사하기 위해 온 터라, 데리고 온 부하도 단 몇 명 뿐이었기에, 상대가 일반적인 조사에도 이렇게 쉽게 공격하려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앞서 온 금나라인들이 말리려 했지만, 그들이 손을 쓰자, 사태가 수습되지 않을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남강에 며칠 머무는 동안, 아홉째와 함께 남강의 풍경을 둘러보고, 북강에도 다녀왔다.지금 북강 백성들은 조정에 대한 소속감이 아주 강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남강을 다스린 정책이 정말 훌륭했기에, 백성들 모두 좋은 날을 보낼 수 있었기에, 자연스레 황제에 대한 존경심도 깊어진 것이었다.황제와 황후가 지나가는 곳마다 백성들은 길가에 모여서 열렬히 환영했다.그들은 이번 순행 내내 오계부에서 신분을 밝힌 것 외에는 항상 미복으로 다녔다. 하지만 남강에서 우문호는 황제의 신분을 드러냈다.우문호는 백성들의 신뢰와 경외심에서 큰 성취감을 느꼈고, 매우 기뻤다. 그는 줄곧 원경릉의 손을 잡고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과거 북강은 방어를 위해 무술 함정이 많았지만, 이제는 모두 제거되었다. 그리고 많은 백성이 산 아래 평원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마을을 이루었다. 정화를 구하러 왔을 때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기쁜 마음과 함께 우문호는 감사함도 느꼈다. 이것은 결코 그 혼자만의 공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남강을 떠나야 하는 날이 다가오자, 원경릉은 만아와 여덟째를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곧 변성으로 가야 했기에, 아쉬움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잠시였다. 남강을 벗어나자마자, 그녀는 아이들과 만날 생각에 들뜨기 시작했다."원 선생, 그들에게 말했소?"길에서 우문호가 물었다."아니, 몰래 가는 것이오."원경릉은 웃으며 말했다."교활하구먼. 그래도 만두가 이미 알려줬을 수도 있을 텐데."지금은 경단과 찰떡, 그리고 계란이 셋만 그곳에 있었다."셋이 다섯 개 성을 다스린다니, 분명히 힘들 것이오."원경릉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그렇소.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졌네. 이제는 태평해 보이니."우문호도 아이들이 안쓰러웠다."이번에 가서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충분히 쉬게 해줘야 하오."사실 성하나를 다스리는 것과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점 없이, 매우 힘든 일이었다.한편, 강북부에서는 최근 강북부 무구산 주변에 신비한 상단
그러자 홍엽이 그를 바라보며 멈칫했다."자네가 중매를 서겠다고?""안 되오?""말도 안 되는 소리 말게. 자기 혼사도 해결 못 하는데 중매는 무슨. 난 못 믿네!"냉정언이 어깨를 으쓱였다."못 믿으면 말고. 이래 봬도 내가 명문가 아가씨나 협녀를 많이 알고 있소."홍엽은 손으로 그의 목을 움켜잡으며 소리쳤다."알고 있는 아가씨가 있으면 진작 말했어야지! 경성으로 돌아가자마자, 당장 소개해 주시게!"냉정언은 웃으며 그의 손목을 옆으로 밀어냈다."중매 값이 워낙 비싸서. 십만 냥 아니면 쉽게 안 나서오.""돈이 대수요?"홍엽이 교활하게 웃으며 말했다."우린 지금 한집에 살고 있소. 그러니 자네가 돈을 어디에 숨겼는지, 다 알고 있네. 그동안 꽤 많이 챙겼으니, 돌아가서 돈은 두둑이 주겠네."그 말에 냉정언이 깜짝 놀랐다."내 돈을 노리고 있었소? 진짜 도둑을 집에 들였군! 늙어서 쓸 돈이네, 그 돈을 혼사에 쓸 생각은 하지 마시오!""명여가 우리를 챙길 테니, 그렇게 쩨쩨하게 굴지 마시오."홍엽이 새침하게 말했다."나도 돈이 많소. 다만 남의 돈을 쓰는 게 훨씬 재밌을 뿐이네."냉정언이 숨을 들이쉬었다."안 되겠네. 경성에 돌아가자마자 자네를 쫓아내야겠소."홍엽이 말했다."쫓아낼 수 있으면 쫓아내 보시게. 게다가 자네가 나를 청할 때, 뭐라고 했는가? 얼마든지 살아도 된다고 했잖소. 이제 와서 후회하는 것이오?""이야, 홍엽, 어찌 이리 뻔뻔스러워진 것이오?""뻔뻔하지 않으면, 어찌 당신 집에서 이렇게 공으로 먹고살 수 있겠나?"홍엽은 크게 웃으며 그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수보, 신을 모시는 건 쉬워도 보내는 건 어렵다고 하잖소. 이미 집안에 들어갔으니, 쫓아내기는 힘드네. 후회해도 소용없소. 수보의 등골 빼먹다 죽을 것이오. 관에 수의까지 얻어 쓸 생각이라, 죽으면 자네가 장례식까지 마련해줘야 하네."수보는 그를 한참 바라보다가, 애써 이를 악물며 말했다."진짜 뻔뻔하오!"홍엽은 박장대소했다.멀리 복도 끝에
“예, 그립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놀고 싶기도 합니다.”그는 말하다가, 갑자기 신이 난듯 몸을 들썩이며 말을 이어갔다.“여긴 정말 재미있습니다. 아홉째와 나가면 큰 산도 있고, 꽃도, 나무도 많습니다. 물고기도 많고, 사람도 많고, 뭐든지 엄청 많았습니다.”우문호는 웃으며, 못내 안쓰러움을 느꼈다. 예전에 그를 궁 안에 가두고, 거의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사람이 그를 데리고 나가는 것도 신경 쓰였다.“이곳이 마음에 들면, 좀 더 오래 있어도 된다.”우문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예, 정말 좋습니다. 다만, 형님과 형수님이 그리웠습니다. 이렇게 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여덟째는 흥이 오른 상태로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어서 들어가시지요! 아홉째가 형님이 내일 오신다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준비했습니다.” 그는 뒤돌아 원경릉에게 외쳤다.“형수님, 빨리 따라오십시오. 맛있는 거 많습니다.”미색은 웃으며 꾸짖었다.“이 무심한 녀석, 다섯째 형수님만 챙기고, 여섯 형수가 배고픈지는 묻지도 않는 것이냐?” 여덟째는 그제야 미색을 본 듯,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여섯째 형수님도 오셨습니까? 여섯째 형님도 오신 것입니까? 와, 너무 좋습니다!”“질투하다니?”원경릉은 미색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미소를 지었다.“여덟째는 너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것이다.”“아유, 참!”미색은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여덟째는 바로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항상 그림과 책자를 선물하는 여섯째 형수님도 좋아했기 때문이다.그는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그... 그럼 같이 드시지요. 음식 많습니다.”“장난이다. 난 질투 안 해.”미색은 기쁘게 말했다.여덟째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고, 다들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원경릉이 만아에게 말했다.“정말 이곳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구나. 예전보다 훨씬 활발해졌고, 말도 많이 하네. 이 모든 게 아홉째 덕분이다.”만아는 웃으며 말했다.“예, 둘이 시간이 날 때마다 밖으로 나가, 더
원경릉은 발끝을 들어 그의 뺨에 입을 맞추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우문호는 그런 그녀를 와락 끌어안으며 말했다.“원 선생, 행복하오?”“행복하오.”“하하하. 지금이 아닌, 나와 함께했던 모든 날이 행복했냐고 물어보는 것이오.”“모든 순간이 당연히 행복하고, 기쁘오!”원경릉은 스스로를 자조하듯 웃었다.“나 같은 집순이가 이렇게 결혼생활이 행복할 줄 누가 알았겠소?”한때 그녀는 자신이 평생 결혼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고, 사랑 없는 삶도 부족함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그녀는 사랑을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었지만, 사랑은 사실 정말로 중요했다.산꼭대기에 앉아, 차가운 바람을 맞고 있었지만,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의 풍경을 눈에, 그리고 마음에 깊이 새기고 싶었다.그리고 함께 늙어간 후, 다시 천천히 되새기고 싶었다.영산에서 내려온 후, 그들은 다시 여정을 이어나갔다. 이번 목적지는 바로 남강이었다.명절이 지난 뒤, 아홉째는 여덟째를 데리고 먼저 남강으로 돌아갔다. 다들 그가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남강 땅은 오랜만이었다. 마지막으로 발을 디딘 건, 정화를 구하러 갔을 때였다.남강으로 가는 내내 홍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냉정언이 물었다.“남강에 가면, 못난이를 만날 것이오?”“만나야지.”홍엽이 답했다.“물론 만나야지!”못난이는 오랜 시간 그와 함께했던 사람이니, 만나야 했다. 못난이가 종종 편지를 보내오긴 했지만, 자기 상황은 거의 말하지 않았다.반면 아홉째는 편지에서 북강의 소식을 자주 전해주었다.지금의 남강은 어느 정도 통일되어 있었고, 북강과 남강도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그동안 이익 문제로 양측의 왕래가 더욱 빈번해졌다.아홉째는 편지에서 못난이가 북강의 민심을 얻었고, 성격도 예전보다 훨씬 밝아져,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하다고 전했다.홍엽의 마음엔 기대와 기쁨이 섞여 있었다. 그도 지금 잘 지내고 있으니, 못난이도 잘 지내길 바랐다.우문호는 남강에서 돌아온 후, 변방으로 갈
그 일을 떠올리자, 꿈에서 본 일이라 그런지 마치 얼마 전에 있었던 일처럼 느껴졌다.그때 그들은 죽을 만큼 힘든 소년들이었는데, 지금은 한없이 한가한 노인이 되었다.세월은 덧없이 흘러갔고, 그동안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잃었다.무상황은 자신의 황후였던 소봉을 떠올렸다.그들은 줄곧 전형적인 황제와 황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나라를 다스렸고, 그녀는 후궁을 다스렸다. 비록 그가 그녀를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많은 애정을 주지도 않았다.그렇게 평범하게 평생을 함께했지만, 그녀가 떠나는 날, 그는 마음속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간 듯한 슬픔을 느꼈다.평생 함께했던 사람이 자신보다 먼저 떠날 거라 생각하지 못했기에 더욱 아팠다.세 사람은 한참 동안 넋을 잃고 있다, 다시 길을 나섰다.유아독존과 관련된 일이 생각보다 커졌지만, 모든 소란은 결국 가라앉게 될 것이다. 모든 소문도 점점 사그라들기 마련이니, 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세 사람이 여행하는 영상이 점점 유명해지면서, 유아독존은 더 심하게 비난을 받았다.현실에서 함부로 욕설을 내뱉으면 얻어맞을 수도 있지만, 인터넷에서는 당당한 명분이 있었기에 악성 댓글을 다는 자들은 마음껏 욕을 퍼부었다.그리고 어느 날, 추 어르신이 오래도록 인터넷의 댓글을 훑어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는 이내 해가 지는 장면을 찍어 짧은 영상을 올렸다. 그리고 영상에 한마디만 덧붙였다.“분쟁 없이, 오직 평화만 있기를.”그는 모든 다툼이 끝나길 바랐고, 누군가를 벼랑 끝으로 몰지 않기를 바랐다. 단지 말로만 승부를 겨루는 사람은 그들의 적이 아니기 때문이다.음... 무엇보다 적이 될 자격도 없었다!영상이 올라간 지 이틀 뒤, 유아독존은 마침내 사과 영상을 올렸다. 그는 질투와 시기로 무술을 모독한 것을 사죄했고,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직접 그들의 계정을 태그해 진심으로 사과했다.진심 어린 사과는 항상 용서를 가져오는 법이다. 그리고 악성 댓글을 달던 사람들도 마침내 욕설을 멈췄다.
삼대 거두는 늦은 시각이 되어서야 일어났고, 숙취에서 깨어나니, 이미 날이 밝아져 있었다. 그들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아, 눈앞의 모든 것이 몽롱해 오늘이 무슨 날인지조차 모를 정도였다.태양이 서서히 떠오르며 하늘에 떠 있는 주황빛 구름은 점점 짙은 금빛으로 변했고, 금빛 가장자리에는 붉은색이 덧씌워져, 눈부시게 아름다웠다.소요공이 눈을 비비며 말했다."꿈을 꿨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동시에 그를 바라보며 이구동성으로 물었다."무슨 꿈을 꿨는가?""꿈에서 숭이가 사내에게 속았는데, 우리가 직접 나서서 복수를 해줬다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놀라서 동시에 숨을 들이켜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귀신이 곡할 노릇이네."말이 끝나자,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깜짝 놀라 외쳤다."자네도 꾼 것인가?""그렇네!""그렇네!""설마 우리 셋이 똑같은 꿈을 꾼 것이오?"소요공도 깜짝 놀랐다.그 일은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었고, 어떻게 된 일인지 가물가물할 정도로, 그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할 정도였는데, 꿈에서는 그 장면 장면이 또렷하게 떠올랐다.그리고, 이 꿈은 당시 엄청난 부담을 받고 있던 그들에게 정말 훌륭한 감정 해소가 되었다. 그들은 모든 고통과 억울함, 스트레스를 주먹질로 시원하게 풀어냈다.한편, 무상황은 자신이 황후를 소홀히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때 무슨 상황이었는지 기억하는가?"추 어르신이 흥분한 듯 말했다."물론 기억은 나네. 당시엔 소봉이가 궁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적성루 사람들을 많이 그리워했네. 게다가 나도 자네들과 어울리느라 바빠서 황후를 소홀히 했네. 그래서 적성루 상궁과 숭이를 궁으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게 했지."사실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꿈속에서 다시 겪은 덕분에 자세히 생각났다.그때 어서방의 회의가 끝나고, 소복이 무심히 물었다."폐하, 황후 마마를 오랫동안 못 뵙지 않으셨습니까?"그는 소복의 말이 소봉을 보러 가자는 암시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