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산에 꽃이 피기까지 삼백년

설산에 꽃이 피기까지 삼백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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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eh:  moominkillerBaru saja diperbaru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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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계 제일검, 태허문의 대사존 단목현. 승선을 코앞에 둔 그가 어느 날 돌연 자취를 감췄다. 삼백 년 뒤, 그는 저승에서 발견됐다. 윤회의 강가에 앉아, 강을 건너는 수억의 혼불을 단 하나도 빠짐없이 세면서. 하늘이 세 번 사자를 보내 승선을 권했으나 답하지 않았다. 아무도 몰랐다. 그가 무엇을 기다리는지. 사억 칠천만 번째 혼불이 떠오른 날 — 그가 삼백 년 만에 처음으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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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윤회의 강가」
망자의 강은 소리 없이 흐른다.수억의 혼불이 물길을 따라 바다처럼 밀려가고, 그 끝에서 다시 태어날 문을 향해 하나씩 흩어진다. 저승의 시간은 고여 있어, 강가의 모래밭에는 천 년이 지나도 발자국 하나 남지 않는다.그 모래 위에, 발자국 대신 눈이 쌓인 남자가 앉아 있었다.흰 옷이었다. 본래 흰 것인지 세월에 바랜 것인지 알 수 없는 그 옷의 왼쪽 가슴에는, 오래된 핏자국 하나가 지워지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무릎 위에는 반 토막 난 검 한 자루. 날은 부러진 지 오래인데도 시퍼렇게 살아 있어, 지나가던 혼불들이 그 앞에서만 물길을 크게 틀어 피해 갔다."삼백 년입니다."새로 부임한 저승의 관리가 등 뒤에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선배들은 하나같이 말렸다. 저분께는 말을 붙이는 게 아니라고. 하지만 그는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승선을 코앞에 두고 스스로 격을 꺾은 채, 삼백 년째 강물만 바라보는 선계 제일검이라니."대체 무얼 기다리고 계십니까."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강을 보고 있었다.선계에서 세 번이나 사자가 내려왔었다고 했다. 승선의 자격은 만 년에 한 번 나기도 어려운 것이니 부디 돌아오시라고. 남자는 세 번 다 대답하지 않았고, 네 번째에는 제 앞에 놓인 승선첩(昇仙帖)을 강물에 흘려보냈다. 하늘이 내린 문서가 종이배처럼 떠내려가는 것을 보고 사자는 울면서 돌아갔다고 했다.관리는 알지 못했다. 이 남자가 삼백 년 동안 강을 흘러간 혼불을 단 하나도 빠짐없이 세어 왔다는 것을. 비슷한 빛깔의 혼불이 지날 때마다 저승의 노관리들이 숨을 죽이고 그를 살폈으나, 남자는 단 한 번도 몸을 일으킨 적이 없다는 것을. 오늘로 사억 칠천만 개째라는 것을.그리고 사억 칠천만 하고도 하나째의 혼불이 물 위로 떠올랐을 때.남자가, 일어섰다.굳은 무릎에서 삼백 년 치의 눈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저승 전체가 숨을 죽였다. 강물이 멈칫 흐름을 늦췄고, 관리는 영문도 모른 채 무릎부터 꿇었다. 일어선 남자의 얼굴은 — 아름다웠고,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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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영근 없음」
"영근(靈根), 없음."측령석 앞에 선 집사가 붓을 내리며 심드렁하게 외쳤다. 시험장 곳곳에서 킥킥대는 웃음이 번졌다. 연소하는 제 손바닥과 돌을 번갈아 내려다보았다. 돌은 빛나기는커녕 미지근해지지도 않았다."저기, 한 번만 다시 해 보면—""측령석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다음."떠밀리듯 단상에서 내려왔다. 열두 해를 기다린 시험이 반 각도 걸리지 않았다."영근이 없대. 없는 게 가능해?""돌이 고장 난 줄 알았잖아."등 뒤에서 비단옷을 입은 응시생들이 부채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그중 하나는 방금 오품(五品) 영근 판정을 받고 어깨가 하늘까지 올라가 있었다. 연소하는 돌아보지 않았다. 열두 해 동안 마을에서도 똑같이 웃음거리였다. 고아 주제에, 계집애 주제에, 밤마다 헛것에 시달리는 주제에 신선이 되겠다고.태허문의 산문 앞은 낙방자들로 북적였다. 하지만 연소하처럼 '영근 없음' 판정을 받은 사람은 없었다. 영근이 흐리다, 탁하다는 흔해도 아예 없다는 것은 — 집사의 말을 빌리면 "숨을 쉬는 게 신기한 몸"이었다."아가씨!"인파를 헤치고 앵두가 달려왔다. 품에는 주먹밥 두 개. 오지 말라는데도 마을에서부터 사흘 길을 몰래 따라온 것이다."떨어졌어요?""어.""잘됐네요. 집에 가요. 감이 익었어요."앵두는 정말로 안도한 얼굴이었다. 이 아이에게 선계란 밥이 맛있는지 없는지로만 판단되는 세계였고, 주인아가씨가 신선이 되어 늙지 않는 것보다 감이 익기 전에 돌아가는 쪽이 백배 중요했다.연소하는 웃으려고 했다. 웃어졌는지는 모르겠다. 이상한 일이었다. 서러운 건 낙방이 아니었다. 산문 너머로 보이는 설산 — 태어나서 처음 보는 저 흰 봉우리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밤마다 꾸는 꿈속의 설산과 닮아서일까. 눈밭, 피 묻은 검, 그리고 등을 돌린 남자의—그때, 종이 울렸다.치는 사람 없이 스스로 운다는 태허문의 대종이었다. 개파 이래 단 세 번밖에 울린 적 없다는 그 종이 아홉 번을 연달아 울었고, 구름이 하늘 한복판에서 양쪽으로 갈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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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그 목소리」
고개를 들었다.그리고 연소하는 잠깐, 숨 쉬는 법을 잊었다.아름답다는 말로는 모자랐고 무섭다는 말은 지나쳤다. 눈처럼 흰 옷, 왼쪽 가슴에 남은 오래된 얼룩, 허리에 찬 반 토막 난 검. 사람이라기보다는 설산이 사람의 형상을 하고 내려온 것 같았다. 그런데 — 눈이 마주친 순간, 그 서리 같은 눈동자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삼백 년을 굶은 사람이 물을 발견한 것처럼.착각이겠지. 연소하는 그렇게 생각했다."이름이 무엇이냐.""연… 연소하입니다."침묵이 길었다. 사내는 그 이름을 소리 없이 한 번 삼키는 듯했다. 이윽고 그가 몸을 돌려, 엎드린 수백 명의 머리 위로 선고하듯 말했다."오늘부로 이 아이를 내 직전제자로 들인다."장내가 뒤집혔다. 낙방자들도, 합격자들도, 집사들도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백발의 장로 하나가 튀어나올 듯 외쳤다."대사존! 그 아이는 영근이 없는 아이입니다! 측령석이 직접—""삼백 년 만에 폐관을 깬 이유를."사내가 장로를 돌아보았다. 목소리는 낮았는데 시험장의 공기가 통째로 얼어붙었다."장로가 물을 자격이 있는가."아무도 더 입을 열지 못했다. 연소하는 얼떨떨한 와중에도 제 뒤에서 벌벌 떠는 숨소리를 놓치지 않았다."저… 제 몸종도 함께 가야 합니다. 안 되면 저도 안 갑니다."무엄하다고 불호령이 떨어질 줄 알았다. 그러나 사내는 반 박자도 쉬지 않고 답했다."허한다."너무 쉬웠다. 그게 더 이상했다. 태허문 대사존의 직전제자 자리라면 선계의 명문가들이 백 년을 줄 서서 기다린다는 자리였다. 그 자리에 영근도 없는 시골 소녀를 앉히면서, 몸종까지 군말 없이 허락한다니. 마치 — 그녀가 무엇을 청하든 전부 들어주기로, 아주 오래전에 이미 정해 둔 사람 같았다."사흘 뒤 설봉(雪峰)으로 올라온다. 그때까지 객당에서 쉬어라."사내는 그 말만 남기고 몸을 돌렸다. 그런데 몇 걸음 가다가, 아주 잠깐 멈췄다. 돌아보지는 않은 채로."…밥은 챙겨 먹어라."수백 명이 들은 말이었다. 선계 제일검이 삼백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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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설봉」
설봉은 태허문에서도 가장 높은 봉우리였다.구름을 세 겹이나 뚫고 올라서야 산문이 보였다. 마중 나온 시동도, 하인도 없었다. 삼백 년간 대사존 혼자 살았다는 봉우리에는 전각이 딱 한 채, 그리고 마당 한가운데에 시커멓게 말라 죽은 매화나무 고목 한 그루가 전부였다."아가씨, 저 나무 좀 봐요. 저렇게 죽은 나무를 왜 안 베고 놔뒀을까."앵두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연소하는 대답하지 못했다. 이상했다. 처음 오는 곳인데 — 발이 길을 먼저 알았다. 어디서 계단이 꺾이는지, 어느 돌이 미끄러운지, 몸이 먼저 알고 피했다. 죽은 매화나무 아래에 서자 이유 모를 슬픔이 명치까지 차올라서, 그녀는 도망치듯 전각으로 들어갔다.배정받은 방은 더 이상했다.먼지 한 톨 없이 정갈한 방에는 전부 새 물건이 놓여 있었다. 그런데 하나같이 손에 익었다. 베개는 그녀가 좋아하는 높이로 낮았고, 서안은 왼손잡이인 그녀가 쓰기 좋은 방향으로 창을 등졌고, 창은 하필 동쪽 — 아침잠 많은 그녀가 해에 떠밀려 겨우 일어나는 방향으로 나 있었다. 앵두가 짐을 풀다 말고 중얼거렸다."이상하다. 여기, 꼭 아가씨 방 같아요. 우리 집보다 더."누가, 언제, 무엇을 보고 이렇게 맞춰 두었을까. 연소하는 그 생각을 하다가 그만두었다. 답이 나올 리 없는데 심장만 이상하게 뛰었다.수련은 이튿날 새벽부터 시작됐다."호흡부터 한다. 앉아라."단목현은 필요한 말만 했다. 연소하는 배운 대로 숨을 고르고 기운을 몸 안으로 끌어들이려 애썼다. 한 시진이 지나도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당연했다. 영근이 없는 몸은 그릇 없는 물이라고, 시험장의 집사가 비웃듯 말했었다."저기, 사부님. 영근이 없는 몸은 그릇이 없는 거랑 같다던데요. 부어도 부어도 다 새어 나간다고.""누가 그러더냐.""다들요.""다들은 모른다."단목현이 그녀 앞에 앉았다. 새벽빛에 그의 얼굴은 설산의 능선처럼 희고 단정했다."손목을 내라."그는 맨살에 닿지 않도록 그녀의 소매 위로 손목을 잡았다. 손끝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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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이름」
"이게 뭐예요."연소하는 손목을 내밀었다. 검은 매화 문양은 살갗 아래에서 은은하게 숨 쉬듯 명멸하고 있었다."사부님은 아셨죠. 제 몸이 잠겨 있다는 거. 이 문양도. 그러니까 절 제자로 삼으신 거잖아요.""…봉인이다.""누가요? 누가 절 잠갔는데요?"침묵이 길었다. 단목현은 그녀의 손목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묻는 말에는 하나도 답하지 않고 전혀 다른 말을 했다."아프냐.""…아니요. 근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중요하다."그가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 소매가 아니라, 맨 손목을 감쌌다.얼음장이었다. 사람의 체온이라고 믿기 힘들 만큼 차가운 손이 문양 위를 덮었고, 서늘한 기운이 살갗 아래로 스며들자 명멸하던 검은 꽃이 천천히 잦아들었다. 연소하는 숨을 죽인 채 그 손을 내려다보았다. 완벽하다는 선계 제일검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사부님 손, 떨려요.""…착각이다.""손이 왜 이렇게 차요?""원래 그렇다."문양이 완전히 가라앉자 그는 데인 것처럼 손을 거뒀다. 그리고 등을 돌린 채 말했다."봉인은 내가 잠근 것이 아니다. 허나 풀려서는 안 된다. 문양이 다시 나타나면 즉시 내게 온다. 밤이든, 새벽이든, 내가 폐관 중이든. 알겠느냐.""…물어봐도 대답 안 해주실 거잖아요.""그래도 온다. 약조해라."목소리는 명령인데, 어미가 이상하게 간절했다. 연소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그가 자리를 뜬 뒤에도 그녀는 한참 동안 제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문양은 사라졌는데 감촉이 남아 있었다. 얼음처럼 차가운데 이상하게 데인 것 같은, 그런 자국이. 생각해 보면 이상한 것투성이였다. 봉인이 뭔지는 안 알려주면서 아프냐는 먼저 묻고, 질문에는 하나도 답하지 않으면서 밤이든 새벽이든 오라는 약조부터 받아내고. 마치 답을 말하는 순간 무언가가 무너지기라도 하는 사람처럼.이상한 일은 그날부터 하나 더 늘었다. 봉인이 눌린 뒤로, 기운이 통하기 시작한 것이다. 실오라기만큼이었지만 분명했다. 호흡을 하면 배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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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몸이 기억하는 것」
목검이 날아왔다.생각할 틈도 없이 손이 올라가 낚아챘다. 연소하는 제 손에 들린 목검과 사부를 번갈아 보았다. 방금 그건 반사라기엔 너무 정확했다."검을 잡아 본 적이 있느냐.""없어요. 마을에서 부지깽이는 잡아봤는데.""…그 손은 부지깽이 잡는 손이 아니다."내려다보니 정말 그랬다. 언제 고쳐 잡았는지 오른손은 검자루를 감싸고 왼손은 그 아래를 받치고, 엄지는 코등이에. 누가 가르쳐 준 적 없는 손이었다. 손이 저 혼자 아는 손이었다."오늘은 보기만 해라."단목현이 마당 가운데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검을 뽑았다 — 허리의 부러진 검이 아니라, 벽에 걸려 있던 온전한 검이었다. 그러고 보면 이상했다. 선계 제일검이라는 사람이 어째서 반 토막 난 검을 차고 다니는지. 어째서 그 부러진 검을 한 번도 뽑지 않으면서, 잘 때도 손이 닿는 자리에 두는지. 언젠가 앵두가 물었다가 "다음에 그런 걸 물으면 주방 출입을 금한다"는, 그 사람 평생 가장 긴 협박을 들은 적도 있었다.검무가 시작되자 그런 생각은 전부 지워졌다.첫 초식은 눈이 내리는 것 같았다. 둘째 초식은 그 눈이 바람에 감기는 것 같았다. 셋째 초식에서 검끝이 하늘을 그으며 반원을 그렸고, 연소하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다음은 낙매(落梅).""…뭐라 하였느냐."사부의 검이 허공에서 멈췄다. 연소하는 제 입을 손으로 막았다. 방금 그 말이 어디서 나왔는지 알 수 없었다. 낙매. 지는 매화. 처음 듣는 말인데 혀가 먼저 알고 있었다."저, 저도 몰라요. 그냥 나왔어요.""…해 보아라."미쳤다고 생각하면서도 몸이 먼저 움직였다. 목검을 쥔 채 한 발을 내디뎠고 — 그다음부터는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눈을 감았는데 검로가 보였다. 손목이 꺾이고 허리가 돌고 발끝이 눈밭을 스치듯 미끄러졌다. 바람이 소매를 부풀렸다. 몸속 실오라기만 한 기운이 검끝까지 흘러나가 울었다. 하나의 초식이 끝나기 전에 다음 초식이 손을 끌었다. 넷째. 다섯째. 꽃잎이 지고, 지면서 베고, 베면서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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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손님」
설봉에 손님이 왔다.삼백 년 동안 단 한 사람도 오르지 못했다는 봉우리에, 구름을 밟고 여인이 올라왔다. 달빛을 짜서 지은 듯한 담청색 옷자락, 물처럼 고요한 얼굴. 태허문의 소사존, 백리유음이었다."소사존께서 직접 오시다니."앵두가 국수를 내가며 속닥였다. 주방 사람들 말로는 선계에서 제일 온화한 어른이라고 했다. 장로들이 대사존을 무서워서 못 건드리면, 소사존한테는 미안해서 못 대든다고.백리유음은 연소하를 오래 보았다.인사를 올리는 짧은 순간이었는데, 시선이 이상하게 길었다. 찻잔을 든 그녀의 손끝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고, 차가 잔 가장자리에 얇은 파문을 그렸다."…네가 연소하로구나.""네, 소사존.""얼굴이," 그녀는 잠깐 말을 멈췄다가, 물기를 걷어낸 목소리로 이었다. "복이 있는 얼굴이다. 잘 부탁한다는 말은 내가 해야겠지. 너의 사부는 말이 없는 분이시니."다정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연소하는 그 다정함이 어쩐지 — 오래 앓은 자리를 조심조심 짚는 손길 같다고 생각했다.이상한 것은 사부 쪽이었다. 삼백 년 지기라 들었는데, 단목현은 백리유음에게 눈길 한 번을 길게 주지 않았다. 차를 내온 것도 앵두였고, 안부를 물은 것도 백리유음 혼자였다. 그녀는 그 무심함이 익숙한 듯 조금도 서운해하지 않았는데, 그 익숙함이 오히려 서글퍼 보였다. 삼백 년 치의 서운함은 저렇게 고요해지는 걸까. 연소하는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가, 제가 왜 이런 생각까지 하나 싶어 그만두었다.용건은 차 한 잔이 식기 전에 나왔다."장로원이 배사례(拜師禮)를 요구합니다.""필요 없다.""대사존." 백리유음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삼백 년 만에 거두신 직전제자입니다. 본문 앞에서 예를 올리지 않으면 저 아이의 자리는 영영 인정받지 못합니다. 장로원은 지금 명분을 쌓고 있어요. 영근 없는 아이가 어떤 술수로 대사존을 홀렸는지 조사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옵니다.""조사."찻잔이 얼었다. 탁자 위의 김이 그대로 서리가 되어 내려앉았다. 연소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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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배사례」
삼백 년 만에 대사존이 산을 내려온다는 소문은 하산길보다 빨랐다.본문으로 내려가는 구름다리마다 제자들이 까치발을 들고 늘어서 있었다. 대사존을 보려는 줄인지 그 옆의 '영근 없는 직전제자'를 보려는 줄인지는 알 수 없었다. 수군거림이 눈발처럼 따라붙었다. 저 애래. 영근이 없대. 대체 무슨 수로. 앵두가 뒤에서 콧김을 뿜었다."우리 아가씨 얼굴 뚫어지겠네, 아주."대전은 산 하나를 통째로 깎아 만든 것 같았다. 수천 명의 제자가 도열했고, 단 위에는 흰 수염의 장로들이 반원으로 앉아 있었다. 그 한가운데 수석장로 — 매처럼 마른 노인의 눈이 연소하에게 꽂혔다. 1화의 시험장에서 "영근 없는 아이"를 외치던 바로 그 목소리의 주인이었다.배사례 자체는 단순했다. 무릎을 꿇고, 차를 올리고, 세 번 절하면 끝. 연소하가 차가운 돌바닥에 무릎을 꿇으려는 순간, 어디선가 흰 방석이 날아와 무릎 밑에 깔렸다. 수천 명이 보았다. 대사존이 소맷자락 하나 움직이지 않은 채 한 일이었다. 어디선가 숨넘어가는 소리가 났다.찻잔을 받은 단목현은 아주 잠깐, 잔을 올린 그녀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삼백 년을 기다린 차라는 것을 이 자리에서 아는 사람은 그 혼자였다."예가 끝나기 전에."수석장로가 일어선 것은 셋째 절이 끝나기도 전이었다."본문의 법도를 하나 짚고 가야겠소. 태허문의 입문자는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측령석을 대야 하오. 한데 이 아이의 측령 기록에는 기이한 점이 있어.""기이한 점이라." 백리유음이 조용히 끼어들었다. "수석장로, 이 자리는 배사례입니다.""그러니 더욱 밝혀야지요. 대사존의 직전제자가 되는 자리인데, 영근이 없다는 아이가 보름 만에 검로를 탔다는 소문이 본문까지 내려왔소이다. 영근 없는 몸이 그럴 수는 없는 법. 몸속에 무언가 다른 것이 들어 있지 않고서야."대전이 술렁였다. 연소하는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다른 것. 그녀는 저도 모르게 소매 속 손목을 감쌌다."측령석을 다시 대 보면 될 일이오. 떳떳하다면 거리낄 게 무엇이오?"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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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마기라는 말」
"마기다!"누군가의 비명이 대전의 침묵을 산산조각 냈다. 그 한마디가 기름이었다. 수천 명의 도열이 파도처럼 뒤로 물러났고, 계율당 무사들의 검이 일제히 뽑혔다. 앵두가 어디선가 "우리 아가씨한테 뭐 하는 짓이야!" 하고 악을 쓰다 제압당하는 소리가 들렸다."진(陣)을 펼쳐라!"수석장로의 호령에 여덟 방위에서 빛의 사슬이 솟구쳤다. 연소하는 측령석 앞에 선 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도망치면 인정하는 꼴이었다. 그런데 몸이 떨렸다. 마기. 마녀. 열두 해 동안 마을에서 듣던 "헛것 들린 애"라는 말이 백 배로 불어나 돌아온 것 같았다.빛의 사슬이 그녀를 향해 떨어지는 순간이었다.겨울이 왔다.비유가 아니었다. 대전의 공기가 통째로 얼어붙었다. 여덟 줄기 빛의 사슬이 허공에서 서리를 뒤집어쓰고 쨍강쨍강 부서져 내렸다. 발밑의 돌바닥에 성에가 파도처럼 번졌고, 수천 명의 숨이 하얗게 피어올랐다.단목현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걸음마다 대전이 한 겹씩 얼었다. 표정은 평소와 같았다. 그게 제일 무서웠다."대, 대사존! 이것은 본문의 법도에 따른—""법도."그가 연소하와 장로들 사이에 섰다. 등이 넓지도 않은데, 그 등 뒤의 공기만 봄이었다."내 제자에게 검을 겨눈 것이 태허문의 법도라면."허리의 부러진 검이 낮게 울었다."오늘 그 법도를 다시 쓰지.""멈추세요, 두 분 다."백리유음이 단상에서 내려왔다. 그녀는 곧장 측령석으로 걸어가 검은 매화가 만개한 돌 표면에 손을 얹더니, 장내가 들리도록 또렷하게 말했다."이것은 마기가 아닙니다. 봉인 인장입니다. 마기는 측령석을 검게 태우지만, 인장은 이렇게 문양으로 피어나지요. 계율당은 검을 거두세요. 봉인된 아이를 벤다면 그것이야말로 율법 위반입니다."검들이 주춤주춤 내려갔다. 풀려난 앵두가 사람들 틈을 뚫고 달려와 연소하의 소매에 매달렸다. 손이 얼음장이었다. 무서웠을 것이다. 그런데 앵두는 제 걱정은 하나도 없는 얼굴로 "아가씨 다친 데 없어요? 진짜 없어요?"만 반복했고, 연소하는 그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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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소문」
배사례는 그렇게 끝났다. 아니, 끝나지 못했다.단목현이 "예는 끝났다" 한마디를 남기고 그녀를 데리고 나왔고, 장로원은 "봉인의 내력을 밝히는 조사"를 공식으로 청했고, 백리유음이 그 조사를 자신이 맡겠다고 나서며 시간을 벌었다. 설봉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사부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물어볼 수가 없었다. 삼백 년 전 그 계집. 그 말이 나온 순간의 사부의 등을 봤기 때문이다. 사람의 등이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날 처음 알았다. 베인 자리를 정확히 다시 베인 사람의 등. 그 등에 대고 "그 여자가 누구예요"라고 묻는 것은, 벌어진 상처에 손가락을 넣는 일 같았다.그래서 연소하는 다른 데서 답을 찾기로 했다.기회는 금방 왔다. 백리유음이 '봉인의 내력 조사'를 명목으로 설봉과 본문을 오가기 시작한 것이다. 조사라고 해봐야 차를 마시고, 문양을 그려 가고, 올 때마다 앵두에게 강남의 귀한 찻잎을 쥐여 주는 게 전부였지만 — 덕분에 설봉과 본문 사이에 길이 났다. 사람이 오가면 말도 오간다."주방은 다 알아요."앵두는 자신만만했다. 실제로 그랬다. 열흘 뒤 본문 주방에 국수 비법을 전수하러 내려간 앵두는(소사존이 앵두의 출입패를 만들어 주었다), 사흘 만에 삼백 년 묵은 소문을 한 소쿠리 짊어지고 돌아왔다."삼백 년 전에요, 대사존한테 제자가 딱 하나 있었대요."밤, 등잔 밑에서 앵두가 목소리를 낮췄다."하늘이 내린 검재였대요. 스물도 되기 전에 장로들을 다 이겼다나. 대사존이 직접 거둔 유일한 제자였고, 사부랑 제자가 아니라 무슨… 한 자루 검의 양날 같았다고. 근데.""근데?""마녀였대요."앵두가 제 팔뚝을 문질렀다."선마대전 때 마기에 잠식돼서, 문파를 팔아넘기려다 들켰대요. 그래서 대사존이 직접 파문했고, 그 여자는 마겁 균열에서 죽었고… 근데 아가씨, 이상해요. 주방 할멈들 말이 다 달라요. 누구는 마녀였다 그러고, 누구는 그 아이가 균열을 막다 죽었는데 마녀 소리를 듣는 거라 그러고, 누구는 쉿, 그 얘기 하면 계율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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