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인은 안 피웠어.” 태상황이 호언장담했다. “냄새 맡아봐. 담배 냄새 안 나지.”“어? 입에 향수 뿌리셨어요?” 소요공이 싫은 내색을 했다.“이건 향수가 아니고 껌이라는 거야. 과인이 경주한테 사 오라고 했지!”잠시 후 주 재상이 벌떡 일어났다. 자기에게는 이제 희야가 있으니까 이들과 말싸움할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서일도 깜박 잠들었다가 소란스럽게 옆집에서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 일어났다. 태상황 일행도 보이지 않는 게 아마 그쪽에 있는 것 같다.방이 없어서 원경주가 서일을 ‘거실 장군’으로 배치해 태상황 일행을 보호할 수 있겠냐고 해서 서일이 동의했다. 소파가 정말 편했으니까.서일은 목이 말라 물을 마시려고 문 앞에 갔는데 문이 열리지 않아 몹시 당황했다. “누구 있어요? 거기 누구 없나요?”황태손은 왜 문 여는 법을 안 가르쳐 줬을까?서일은 차에 대해서는 알지만 문 여는 방법은 아직 몰랐다.만두가 와서 문을 열어주자 서일이 만두 얼굴을 보고 순간 울 뻔했다.만두가 서일의 손을 끌며 다정하게 말했다. “서일 삼촌, 무서워하지 마요, 여기는 안전하니까. 무슨 일이 있으면 절 불러요. 전 들을 수 있어요.”서일은 망망대해에서 한 줄기 희망을 발견한 것처럼 감동이 벅차올라 만두를 끌어안았다. “널 예뻐한 보람이 있었어.”만두가 서일의 목을 감싸고 방긋 웃었다. “앞으로도 서일 삼촌은 계속 절 예뻐해야 해요. 자, 가요. 외삼촌이 밀크티를 주문해 주셨어요!”서일이 만두를 내려놓고 손을 잡고 같이 저쪽 집으로 들어갔다.그쪽은 이미 혼사를 상의 중으로 태상황이 성대하게 하자고 하는 바람에 휘종제 손님이 오는 것에 대해 우문호는 걱정스레 말했다. “이번 혼례의 중점 사안은 사람이 얼마나 오냐가 아니라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전부 계시면 충분합니다. 모르는 사람이 그렇게 많이 왔다가 당황스러운 실수라도 하는 날엔…. 원 선생이 낯설어할 겁니다. 어쨌든 다들 서로 모르는 사이니까요.”태상황이 말했다. “과인은 좀 성대하게 하자고
원경릉은 우문호가 조금 무서워하는 것과 고집을 부린다는 걸 단숨에 알았다.우문호가 여기 와 있지만 현대 일에 대해서는 아는 데 한계가 있고 기본 상식도 몰랐다. 그래서휘종제의 손님이 와 국제적인 빅이슈를 살짝이라도 언급할 때 우문호는 거의 벙어리처럼 있을게 분명했다. 하지만 이번 결혼식은 우문호가 줄곧 바라오던 것으로 이런 불쾌한 일이 생기는 게 싫었다.전에 혼례를 성대하게 하자고 목에 핏대를 세우던 태상황도 지금은 말을 바꿨다. 솔직히 태상황도 우문호와 마찬가지로 사람들과 대화가 안 통해서 체면이 구겨지는 게 걱정됐다.다음날 원경주는 차를 몰아 사람들을 데리고 휘종제의 저택으로 향했다.큰 버스는 지금 아주 제대로 쓰이고 있었다. 적어도 모두 서일과 일정 거리를 유지할 수 있어 서일이 토를 해도 냄새를 안 맡을 수 있을 정도였다.잠시 후 쇼핑몰 거리를 지나고 있었는데, 이곳은 광원시에서 제일 있어 보이면서 번화한 거리로 매장 앞마다 무성한 나무가 심어져 있는 등, 돈을 많이 쓴 흔적들이 차고 넘쳤다.신호등에 서서 대략 1분 정도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서일이 창문에 엎어져 밖에 사람들이 오가는 것을 봤다.서일이 잠시 밖을 보더니 슬퍼하며 말했다. “토하니까 환각이 보이는 건지, 안풍 친왕 전하와 안풍 친왕비 마마를 아주 닮은 두 사람이 있는 것 같네요.”다들 이 말을 듣고 서일이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봤다.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 속에서 그 두 사람은 군계일학처럼 보였다. 손에 쇼핑백이 엄청나게 들려 있었는데, 전부 명품 쇼핑백으로 손에 들고 있는 거 빼고도, 팔에 두세 개씩 걸려 있었다. 명품을 휘감으며 거만하게 걷는 폼이 안하무인 그 자체였다.정면은 볼 수 없었고 옆 얼굴만 보이는데 큰 선글라스를 끼고 걷고 있었다. 반대쪽 구찌 매장으로 건너가려는 것 같았다. 7~8명의 사람들이 머리를 창문 밖으로 내밀고 두 사람이 안풍 친왕 부부인지 확인하려고 노력했다.두 사람은 가슴을 펴고 고개를 빳빳하게 들며 당당하게 천천히 길을 건너다가 고개를
“저도 못 봤어요. 사람이 너무 많았고 두 분을 잘 모르기도 하고요.” 만두는 사실대로 말하고,몰래 원경릉을 보았는데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았다. 만두는 자신의 엄마가 거짓말을 할 때 웃는걸 잘 알고 있었다. 차가 계속 앞으로 가자 서일은 기분이 좀 나아졌다. 비록 오늘 도대체 어디를 가는지 모르지만 다들 나간다니까 혼자 떨궈지는 게 싫고, 그 집에 혼자 우두커니 있으면 뭘 해야 할지 몰라 심심하기 때문이다. 안풍 친왕 부부랑 닮은 사람들이 지나쳐갔으나 다들 마음속에 확신이 없었다. 소요공이 고개를 내밀었을 때 주 재상에 가려져서 얼핏 스치기만 했을 뿐, 사람이 너무 많아 바닥만 보고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그래서인지 소요공은 사부님이 여기 계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자신이 이곳에 있는 것을 사부님은 다 알고 있으므로 오셨으면 분명 자신을 찾았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소요공은 아직 사부님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잠시 후 휘종제의 저택에 도착했고, 모두 함께 들어가 조상님을 알현했다. 정말 명실상부 ‘조상님’이었다.건종 태자와 휘종제는 아름다운 옥으로 정교하게 다듬어 놓은 듯한 고조손들을 드디어 만났다는사실에 기뻐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일제히 ‘고조부님을 뵙습니다!’ 라고 외치며 절하는데 촉촉하게 빛나는 커다란 눈망울이 고조부들의 심장이 녹아내렸다.휘종제가 입을 벌리고 기쁨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바람에 하마터면 틀니가 빠질 뻔했다.“이런이런, 어서 일어나거라, 어서 일어나래도. 다들 고조부에게 오너라. 아이고, 이 얼마나 귀하디귀한고.” 휘종제가 두 손을 활짝 벌리고 기쁘게 환영했다. 얼마나 기뻤으면 태사의에서 재빨리 일어나다가 하마터면 앞으로 고꾸라질 뻔했다. 그리고 우문호가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고 절하며 증조부라고 말하는 순간 서일이 놀라서 정신을 잃었다. ‘어디가 무슨 나라라는 거야? 여기는 지옥이구만!’서일이 슬프게 사식이를 부르며 꽈당하고 기절하자 태상황이 소리쳤다. “끌고 나가, 끌어내라!”원경주가 헤라클레스의 괴력을 발휘해
태자비 일행과 같이 가는 건 아니지만 크루즈 타는게 듣기에 몹시 재밌을 것 같아 소요공은 동의했다.우문호는 여행 결혼이 좋긴 좋았다. 하지만 집에서 그저 밥 한 끼 먹고 끝내는 게 지나치게 간단하다는 생각이 있었다. “증조부님, 저는 이번 혼례가 적당히 간단한게 좋다고 생각합니다.”“그래! 내가 다 알맞게 준비해 뒀어!” 휘종제가 말했다.“알맞게 준비해 두셨다고요?” 우문호가 당황했다. 우문호는 이 일을 직접 결정하고 싶었다. 원 선생이 그러는데 여기서는 신랑 신부 본인이 주관하고 부모의 명은 들을 필요 없다고 했는데 말이다. “네 혼례를 내가 주관도 못해?” 휘종제가 반문했다.태상황이 눈을 가늘게 떴다. 문제가 발생했다! 아바마마의 태도를 이렇게 돌변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거의 없다. 딱 한 사람만 빼고. 바로 휘형이다!태상황이 다가가서 크루즈에 관해 물었다. 크루즈엔 어떤 재밌는 게 있는지 말이다.휘종제는 전에 세계 일주를 한 적이 있어 크루즈에 대해선 손금 보듯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많지, 하고 싶은 건 다 있어. 먹고 마시고 놀고, 전 세계 좋은 술은 다 맛볼 수 있고 영화, 안마, 취미면 취미, 네가 지루할 틈을 절대 안 줘.”“어? 영화도 볼 수 있어요?”휘종제가 신이 난듯 끊임없이 말을 이어나갔다. “맞아, 하지만 난 발코니에서 바다를 보는 걸 제일 좋았어. 남자는 자고로 바다를 보러 가야 해. 바다를 좋아해야 하고. 바다의 웅장한 기세와 밀려들어 부서지는 파도는 때로 거대한 짐승 같아서 모험을 경험하게 하지. 인생은 모험 그 자체거든. 그리고 드물게 바람이 고요할 때 풍랑이 잔잔한 바다는 그야말로….”태상황이 불쑥 튀어나와 물었다. “아바마마, 휘형이 온 거 아닙니까?”“왔….” 휘종제가 열심히 설명하다가 재빨리 물었다. “누구? 누가 와? 큰 애? 어디 있는데?”태상황은 작은 눈을 더 가늘게 떴다. 휘형이 온 게 틀림없었다. 아바마마께서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반응을 보면 알 수 있다.태상황이 일
헌제는 휘종제의 아버지인데, 자기 아들이 자신의 아버지까지 들먹여 화를 내자 기분이 몹시나빴다. 하지만 역시 두렵기는 두려워 태상황에게 숨길 수 없겠다고 판단하고 다 털어놨다. “큰 애가 왔는데 어디로 갔는지는 진짜 나도 모른다. 하지만 큰 애가 네 아들이 퇴위하려는 마음을 먹고 있다더라고. 아마 태자가 돌아간 뒤 정식으로 선위를 할 거 같다는구나. 태자가 보위에 오르면 혼례를 할 수 있으니 여기서 다시 할 필요가 없지 않겠냐며 그리고….”“그리고 뭐요?” 태상황은 너무 화가나 머리 뚜껑이 열릴 정도였다.휘종제가 무서운듯 우물쭈물거렸다. “그리고 나한테 잔소리했지... 옛날 사람들을 한 무더기 데리고 있으면서 그딴 거 알아보는데 도사인 골동품 감상 전문가들을 초청해 연회를 베푸는 게 잘하는 짓이냐고, 큰 혼란이 생기지 않겠냐고 말이야…”태상황은 굉장히 화가 났지만 휘형의 말이 맞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아바마마는 머리를 참 못 쓰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명원제가 선위를 하겠다는 부분은 상당히 열 받아서 콕 집고 넘어갔다. “휘형 어딨는지 아시죠, 전화하세요. 제가 얘기 좀 하고 싶다고.”휘종제는 아들에게 혼쭐이 나서 조용히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안풍 친왕이 직접 차를 몰고 와서 얘기를 나누고자 태상황을 데리고 갔다.감각적인 오픈카 엔진음이 울려 다들 놀라 나가서 보니, 운전석에 타고 있는 사람은 의심할 나위 없이 안풍 친왕이었다.태상황이 다가가 차에 타자, 안풍 친왕이 손을 흔들며 놀란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더니 잠시 후 차를 몰고 사라졌다.해변으로 가서 태상황이 물어보기 전에 안풍 친왕이 먼저 얘기를 시작했다. “명원제는 예전부터 퇴위할 마음이 있었고 황제 노릇이 힘들다고 했잖아. 이제 그냥 물러나게 해주자.”하지만 태상황은 그건 아니라며 화를 냈다. “그건 책임감 없는 행동이죠. 전에 저한테 뭐라고 얘기했는지 기억 나십니까? 제가 능력이 부족해서 이런 큰 임무는 맡을 수 없을 것 같다니까, 형은 전부 변명이라고 했
태상황은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았다. 명원제가 선위를 하겠다는 생각에 화가 났을 뿐만 아니라 더욱 열 받는 건 휘형이 자기를 바보 취급했다는 사실이다. 안풍 친왕의 휴대폰 액정은 켜지지도 않았고 갤럭시 벨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태상황은 안풍 친왕의 어깨를 잡았다. “도망치게요? 또 도망치려고요? 오늘은 꼭 제대로 들어야겠어요. 이 문제로 수십 년을 고민했어서 제대로 안 듣고는 죽어도 편한히 눈을 못 감을 것 같애요.”“여섯째야!” 안풍 친왕이 눈썹을 찡그렸다. “왜 그런 재수 없는 소리를 해? 우리 형제가 어렵게 여기서 만났는데 그런 안 좋은 얘기는 하지 말자. 가자, 너 데리고 한잔하게.”“저 말해주실때까지 아무 데도 안 가요. 오늘은 여기서 제대로 얘기해 주세요!” 태상황은 안풍 친왕을 잡고 놔주지 않았다. 오늘 답을 못 들으면 평생 기회는 없다. 아마도 북당에서 앞으로 안풍 친왕을 다시 볼 일은 없을 것이다. 안풍 친왕이 태상황에게 물었다. “그렇게 중요해?”“중요해요. 아주 중요하죠!” 태상황이 단단히 못을 박았다.그러자 결국 안풍 친왕이 차에 기대 파도치는 수면을 보며 입을 열었다. “정말 알고 싶으면 알려줄게. 내가 잔인해서 너한테 무거운 책임을 맡긴 게 아니라 처음부터 내가 제일 잘 봤던 게 너였어. 너, 십팔매, 주꼬맹이. 전부 내가 키워낸 조직으로 이게 바로 내가 너희들에게 늘 엄격했던 이유야. 너희들은 날 실망하게 한 적이 없었고 수십 년 동안 너희들이 조금씩 성장해 가는 걸 지켜봤지. 정말 뿌듯했어….”태상황이 말을 자르며 물었다. “휘형, 화제를 옮기는 건 저한테 전혀 의미 없어요. 이 얘기 뒤로 가면 얼마나 고뇌를 거듭하며 애썼는지 얘기가 나오겠죠. 전 답을 원해요. 형은 왜 황제를 안 하고 도망갔어요?”“왜냐하면 난 황제가 될 수 없으니까!” 안풍 친왕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결연한 눈빛으로 말을 이어 나갓다. “네가 기왕 알고 싶다니까 얘기해 주마. 그때 이 일을 계획할 때 난 이미 몸에 중병이 들어 있었어. 네가
태상황의 말에 안풍 친왕은 흥이 싹 가시면서 절망스러운 마음에 가슴이 시큰거렸다. “여섯째야, 그런 말 하지 마. 네가 알고 싶다니까 더 말해줄게. 그래, 일이 이 지경까지 왔는데 말 못 할 것도 없지. 그때 빨리 북당을 평정하기 위해 난 가차 없었어. 거의 모든 문무백관에게 미움을 샀을 때였지. 그리고 전쟁에 나갔을 때 무기 때문에 적군의 사상자가 너무 커서 민간 학자들과 유생들이 나에 대한 성토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어. 내가 등극할 때 잔당들이 반드시 이걸 이용해 나에게 공격을 감행할 태세였어. 민심을 선동해 다시 한번 북당 정권을 동요시키는 거지. 이게 황위에 오르지 않은 이유 중 하나야. 또 하나의 원인은 내 신분의 문제 때문이였어. 난 우문씨 집안 사람이 아니라 원래 이 시대 사람이거든. 설명할 수 없는 원인으로 북당에 간 것으로 만약 내가 보위에 오르는 건 사리에 맞지 않아. 그리고 난 네가 이걸 아는 걸 원하지 않았어. 너한테 난 계속 휘형이니까 그걸 흔들고 싶지 않았어. 이해해?”안풍 친왕은 살짝 한숨을 내쉬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네가 능력이 없다고 말한 건 틀렸어. 손가락으로 대충 가리킨 게 아니야. 헤어지기 전에 너랑 나눈 대화는 정말 내 가슴에서 우러난 말이야. 넌 큰 재능이 있었어. 수십 년이 지나 드디어 내 말이 증명됐지. 사실 그동안 내가 멀리 간 것처럼 보였지만 나와 네 형수는 늘 입궁해서 네 곁에 있었어. 네가 몰랐을 뿐이지. 궁을 청소하는 늙은 태감, 세답방의 막일하는 상궁, 정원사, 네가 보위에 오른 뒤 한 번 친정(황제가 직접 전장에 가서 지휘하는 것)을 간 적이 있는데 전쟁에 널 구해 준 취사병이 나야. 십팔매와 주꼬맹이 쪽도 늘 갔지. 그리고 네가 자객을 만났던 때 방우가 널 구하기 위해 희생했던 그때, 마침, 주 꼬맹이도 자객을 만났어. 우리가 입수한 정보엔 주 꼬맹이가 암살위협을 받게 되어 있어서 우리는 그쪽으로 갔지. 그래서 널 구하지 못했어. 여섯째야, 난 네가 생각한 것처럼 그렇게 한량으로 지내지 않았어. 너
형제가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누고 다시 저택으로 돌아와 휘종제를 청해 우문호와 회의실에 가서 얘기했다.네 사람 중 세 사람은 한 때 북당 최고 권력을 대표했던 사람들이고 우문호는 북당 미래에 최고 권력자가 될 사람이다.그들은 한동안 얘기를 나누었는데 마치 예전에 안풍 친왕이 태상황에게 했던 것처럼 ‘너는 큰 인재다. 넌 능력이 있다. 넌 북당 강산을 짊어질 수 있다’라는 내용이었다.단지 당시엔 안풍 친왕 한 사람이 태상황에게 얘기했다면, 지금은 세 사람의 어른이 같이 우문호에게 얘기한다는 점이 달랐다.우문씨 집안의 황위는 줄곧 한 대 한 대 아슬아슬하게 이렇게 전해지고 있었다.우문호는 거리낄 것이 없었다. 왜냐하면 본인이 조만간 황제가 될 것을 알고 있었고, 최근 하고 싶은 일은 많았고 그걸 마음껏 할 수 없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그 큰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아바마마의 견제였다. 아바마마는 우문호가 모반할까 싶어 감독하고 관리하는 동시에 자신의 감정에 묶여 피곤하게 살았다.우문호는 공을 세워 인정받는 사익에 관심이 없었다. 그저 북막을 크게 꺾고 선비도 당분간 발호하지 못하는 좋은 기회를 맞았다는 생각뿐이었다. 대주, 대월, 대흥과의 관계는 공전에 유례없이 좋았다. 대외적으로 힘써 발전을 촉진하는 동시에 대내적으로 기반을 튼튼하게 다지고 싶었다. 하지만 아바마마의 제지를 받고 고뇌했다. 기회는 한 번 놓치면 다시 얻기 힘들기 때문이었다.시국이 바뀌어 지금의 안정적인 외교관계가 수십 년 변함없이 지속될 거라는 보장이 없었다.물론 보위에 오른 뒤 우문호가 어떤 결정을 하든 원 선생은 우문호 편에 서 있을 것을 확신했다 . 이런 확신이 있는데 우문호가 망설일 게 대체 뭐가 있겠어?그래서 네 남자의 회의 후 원경릉에게 아바마마께서 선위를 하실 의사가 있다고 말했다.그런데 원경릉은 전혀 놀라지 않고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부드럽게 말했다. “자기가 결정하면 돼. 어찌됐든 자기가 결정하는 대로 난 반드시 자기 곁에 있을 거야.”우문호가 경악했다. “어
남강에 며칠 머무는 동안, 아홉째와 함께 남강의 풍경을 둘러보고, 북강에도 다녀왔다.지금 북강 백성들은 조정에 대한 소속감이 아주 강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남강을 다스린 정책이 정말 훌륭했기에, 백성들 모두 좋은 날을 보낼 수 있었기에, 자연스레 황제에 대한 존경심도 깊어진 것이었다.황제와 황후가 지나가는 곳마다 백성들은 길가에 모여서 열렬히 환영했다.그들은 이번 순행 내내 오계부에서 신분을 밝힌 것 외에는 항상 미복으로 다녔다. 하지만 남강에서 우문호는 황제의 신분을 드러냈다.우문호는 백성들의 신뢰와 경외심에서 큰 성취감을 느꼈고, 매우 기뻤다. 그는 줄곧 원경릉의 손을 잡고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과거 북강은 방어를 위해 무술 함정이 많았지만, 이제는 모두 제거되었다. 그리고 많은 백성이 산 아래 평원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마을을 이루었다. 정화를 구하러 왔을 때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기쁜 마음과 함께 우문호는 감사함도 느꼈다. 이것은 결코 그 혼자만의 공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남강을 떠나야 하는 날이 다가오자, 원경릉은 만아와 여덟째를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곧 변성으로 가야 했기에, 아쉬움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잠시였다. 남강을 벗어나자마자, 그녀는 아이들과 만날 생각에 들뜨기 시작했다."원 선생, 그들에게 말했소?"길에서 우문호가 물었다."아니, 몰래 가는 것이오."원경릉은 웃으며 말했다."교활하구먼. 그래도 만두가 이미 알려줬을 수도 있을 텐데."지금은 경단과 찰떡, 그리고 계란이 셋만 그곳에 있었다."셋이 다섯 개 성을 다스린다니, 분명히 힘들 것이오."원경릉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그렇소.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졌네. 이제는 태평해 보이니."우문호도 아이들이 안쓰러웠다."이번에 가서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충분히 쉬게 해줘야 하오."사실 성하나를 다스리는 것과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점 없이, 매우 힘든 일이었다.한편, 강북부에서는 최근 강북부 무구산 주변에 신비한 상단
그러자 홍엽이 그를 바라보며 멈칫했다."자네가 중매를 서겠다고?""안 되오?""말도 안 되는 소리 말게. 자기 혼사도 해결 못 하는데 중매는 무슨. 난 못 믿네!"냉정언이 어깨를 으쓱였다."못 믿으면 말고. 이래 봬도 내가 명문가 아가씨나 협녀를 많이 알고 있소."홍엽은 손으로 그의 목을 움켜잡으며 소리쳤다."알고 있는 아가씨가 있으면 진작 말했어야지! 경성으로 돌아가자마자, 당장 소개해 주시게!"냉정언은 웃으며 그의 손목을 옆으로 밀어냈다."중매 값이 워낙 비싸서. 십만 냥 아니면 쉽게 안 나서오.""돈이 대수요?"홍엽이 교활하게 웃으며 말했다."우린 지금 한집에 살고 있소. 그러니 자네가 돈을 어디에 숨겼는지, 다 알고 있네. 그동안 꽤 많이 챙겼으니, 돌아가서 돈은 두둑이 주겠네."그 말에 냉정언이 깜짝 놀랐다."내 돈을 노리고 있었소? 진짜 도둑을 집에 들였군! 늙어서 쓸 돈이네, 그 돈을 혼사에 쓸 생각은 하지 마시오!""명여가 우리를 챙길 테니, 그렇게 쩨쩨하게 굴지 마시오."홍엽이 새침하게 말했다."나도 돈이 많소. 다만 남의 돈을 쓰는 게 훨씬 재밌을 뿐이네."냉정언이 숨을 들이쉬었다."안 되겠네. 경성에 돌아가자마자 자네를 쫓아내야겠소."홍엽이 말했다."쫓아낼 수 있으면 쫓아내 보시게. 게다가 자네가 나를 청할 때, 뭐라고 했는가? 얼마든지 살아도 된다고 했잖소. 이제 와서 후회하는 것이오?""이야, 홍엽, 어찌 이리 뻔뻔스러워진 것이오?""뻔뻔하지 않으면, 어찌 당신 집에서 이렇게 공으로 먹고살 수 있겠나?"홍엽은 크게 웃으며 그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수보, 신을 모시는 건 쉬워도 보내는 건 어렵다고 하잖소. 이미 집안에 들어갔으니, 쫓아내기는 힘드네. 후회해도 소용없소. 수보의 등골 빼먹다 죽을 것이오. 관에 수의까지 얻어 쓸 생각이라, 죽으면 자네가 장례식까지 마련해줘야 하네."수보는 그를 한참 바라보다가, 애써 이를 악물며 말했다."진짜 뻔뻔하오!"홍엽은 박장대소했다.멀리 복도 끝에
“예, 그립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놀고 싶기도 합니다.”그는 말하다가, 갑자기 신이 난듯 몸을 들썩이며 말을 이어갔다.“여긴 정말 재미있습니다. 아홉째와 나가면 큰 산도 있고, 꽃도, 나무도 많습니다. 물고기도 많고, 사람도 많고, 뭐든지 엄청 많았습니다.”우문호는 웃으며, 못내 안쓰러움을 느꼈다. 예전에 그를 궁 안에 가두고, 거의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사람이 그를 데리고 나가는 것도 신경 쓰였다.“이곳이 마음에 들면, 좀 더 오래 있어도 된다.”우문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예, 정말 좋습니다. 다만, 형님과 형수님이 그리웠습니다. 이렇게 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여덟째는 흥이 오른 상태로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어서 들어가시지요! 아홉째가 형님이 내일 오신다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준비했습니다.” 그는 뒤돌아 원경릉에게 외쳤다.“형수님, 빨리 따라오십시오. 맛있는 거 많습니다.”미색은 웃으며 꾸짖었다.“이 무심한 녀석, 다섯째 형수님만 챙기고, 여섯 형수가 배고픈지는 묻지도 않는 것이냐?” 여덟째는 그제야 미색을 본 듯,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여섯째 형수님도 오셨습니까? 여섯째 형님도 오신 것입니까? 와, 너무 좋습니다!”“질투하다니?”원경릉은 미색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미소를 지었다.“여덟째는 너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것이다.”“아유, 참!”미색은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여덟째는 바로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항상 그림과 책자를 선물하는 여섯째 형수님도 좋아했기 때문이다.그는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그... 그럼 같이 드시지요. 음식 많습니다.”“장난이다. 난 질투 안 해.”미색은 기쁘게 말했다.여덟째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고, 다들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원경릉이 만아에게 말했다.“정말 이곳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구나. 예전보다 훨씬 활발해졌고, 말도 많이 하네. 이 모든 게 아홉째 덕분이다.”만아는 웃으며 말했다.“예, 둘이 시간이 날 때마다 밖으로 나가, 더
원경릉은 발끝을 들어 그의 뺨에 입을 맞추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우문호는 그런 그녀를 와락 끌어안으며 말했다.“원 선생, 행복하오?”“행복하오.”“하하하. 지금이 아닌, 나와 함께했던 모든 날이 행복했냐고 물어보는 것이오.”“모든 순간이 당연히 행복하고, 기쁘오!”원경릉은 스스로를 자조하듯 웃었다.“나 같은 집순이가 이렇게 결혼생활이 행복할 줄 누가 알았겠소?”한때 그녀는 자신이 평생 결혼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고, 사랑 없는 삶도 부족함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그녀는 사랑을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었지만, 사랑은 사실 정말로 중요했다.산꼭대기에 앉아, 차가운 바람을 맞고 있었지만,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의 풍경을 눈에, 그리고 마음에 깊이 새기고 싶었다.그리고 함께 늙어간 후, 다시 천천히 되새기고 싶었다.영산에서 내려온 후, 그들은 다시 여정을 이어나갔다. 이번 목적지는 바로 남강이었다.명절이 지난 뒤, 아홉째는 여덟째를 데리고 먼저 남강으로 돌아갔다. 다들 그가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남강 땅은 오랜만이었다. 마지막으로 발을 디딘 건, 정화를 구하러 갔을 때였다.남강으로 가는 내내 홍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냉정언이 물었다.“남강에 가면, 못난이를 만날 것이오?”“만나야지.”홍엽이 답했다.“물론 만나야지!”못난이는 오랜 시간 그와 함께했던 사람이니, 만나야 했다. 못난이가 종종 편지를 보내오긴 했지만, 자기 상황은 거의 말하지 않았다.반면 아홉째는 편지에서 북강의 소식을 자주 전해주었다.지금의 남강은 어느 정도 통일되어 있었고, 북강과 남강도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그동안 이익 문제로 양측의 왕래가 더욱 빈번해졌다.아홉째는 편지에서 못난이가 북강의 민심을 얻었고, 성격도 예전보다 훨씬 밝아져,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하다고 전했다.홍엽의 마음엔 기대와 기쁨이 섞여 있었다. 그도 지금 잘 지내고 있으니, 못난이도 잘 지내길 바랐다.우문호는 남강에서 돌아온 후, 변방으로 갈
그 일을 떠올리자, 꿈에서 본 일이라 그런지 마치 얼마 전에 있었던 일처럼 느껴졌다.그때 그들은 죽을 만큼 힘든 소년들이었는데, 지금은 한없이 한가한 노인이 되었다.세월은 덧없이 흘러갔고, 그동안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잃었다.무상황은 자신의 황후였던 소봉을 떠올렸다.그들은 줄곧 전형적인 황제와 황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나라를 다스렸고, 그녀는 후궁을 다스렸다. 비록 그가 그녀를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많은 애정을 주지도 않았다.그렇게 평범하게 평생을 함께했지만, 그녀가 떠나는 날, 그는 마음속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간 듯한 슬픔을 느꼈다.평생 함께했던 사람이 자신보다 먼저 떠날 거라 생각하지 못했기에 더욱 아팠다.세 사람은 한참 동안 넋을 잃고 있다, 다시 길을 나섰다.유아독존과 관련된 일이 생각보다 커졌지만, 모든 소란은 결국 가라앉게 될 것이다. 모든 소문도 점점 사그라들기 마련이니, 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세 사람이 여행하는 영상이 점점 유명해지면서, 유아독존은 더 심하게 비난을 받았다.현실에서 함부로 욕설을 내뱉으면 얻어맞을 수도 있지만, 인터넷에서는 당당한 명분이 있었기에 악성 댓글을 다는 자들은 마음껏 욕을 퍼부었다.그리고 어느 날, 추 어르신이 오래도록 인터넷의 댓글을 훑어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는 이내 해가 지는 장면을 찍어 짧은 영상을 올렸다. 그리고 영상에 한마디만 덧붙였다.“분쟁 없이, 오직 평화만 있기를.”그는 모든 다툼이 끝나길 바랐고, 누군가를 벼랑 끝으로 몰지 않기를 바랐다. 단지 말로만 승부를 겨루는 사람은 그들의 적이 아니기 때문이다.음... 무엇보다 적이 될 자격도 없었다!영상이 올라간 지 이틀 뒤, 유아독존은 마침내 사과 영상을 올렸다. 그는 질투와 시기로 무술을 모독한 것을 사죄했고,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직접 그들의 계정을 태그해 진심으로 사과했다.진심 어린 사과는 항상 용서를 가져오는 법이다. 그리고 악성 댓글을 달던 사람들도 마침내 욕설을 멈췄다.
삼대 거두는 늦은 시각이 되어서야 일어났고, 숙취에서 깨어나니, 이미 날이 밝아져 있었다. 그들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아, 눈앞의 모든 것이 몽롱해 오늘이 무슨 날인지조차 모를 정도였다.태양이 서서히 떠오르며 하늘에 떠 있는 주황빛 구름은 점점 짙은 금빛으로 변했고, 금빛 가장자리에는 붉은색이 덧씌워져, 눈부시게 아름다웠다.소요공이 눈을 비비며 말했다."꿈을 꿨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동시에 그를 바라보며 이구동성으로 물었다."무슨 꿈을 꿨는가?""꿈에서 숭이가 사내에게 속았는데, 우리가 직접 나서서 복수를 해줬다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놀라서 동시에 숨을 들이켜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귀신이 곡할 노릇이네."말이 끝나자,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깜짝 놀라 외쳤다."자네도 꾼 것인가?""그렇네!""그렇네!""설마 우리 셋이 똑같은 꿈을 꾼 것이오?"소요공도 깜짝 놀랐다.그 일은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었고, 어떻게 된 일인지 가물가물할 정도로, 그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할 정도였는데, 꿈에서는 그 장면 장면이 또렷하게 떠올랐다.그리고, 이 꿈은 당시 엄청난 부담을 받고 있던 그들에게 정말 훌륭한 감정 해소가 되었다. 그들은 모든 고통과 억울함, 스트레스를 주먹질로 시원하게 풀어냈다.한편, 무상황은 자신이 황후를 소홀히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때 무슨 상황이었는지 기억하는가?"추 어르신이 흥분한 듯 말했다."물론 기억은 나네. 당시엔 소봉이가 궁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적성루 사람들을 많이 그리워했네. 게다가 나도 자네들과 어울리느라 바빠서 황후를 소홀히 했네. 그래서 적성루 상궁과 숭이를 궁으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게 했지."사실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꿈속에서 다시 겪은 덕분에 자세히 생각났다.그때 어서방의 회의가 끝나고, 소복이 무심히 물었다."폐하, 황후 마마를 오랫동안 못 뵙지 않으셨습니까?"그는 소복의 말이 소봉을 보러 가자는 암시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개혁은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나라가 이미 망가진 뒤라, 보수파들은 북당이 더는 흔들림을 견딜 수 없다고 여겨, 더 이상 변화를 원하지 않았다. 그러자 소국공은 소복을 부상으로 임명했고, 소복은 부상이 된 후, 온갖 수단으로 보수파를 하나 하나씩 무너뜨렸다.그는 협박, 욕설, 생떼, 무례, 끈질긴 설득 등 다양한 방식으로 보수파를 공략했고, 심지어 마지막에는 돗자리를 말아, 상대의 대문 앞에 깔고는, 저녁엔 문 앞에서 잠을 청하고, 낮에는 문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북당의 발전을 가로막는 자라고 비난까지 했다.그렇게 보수파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2년이 지나, 휘 형과 형수가 대주에서 돌아왔다. 그는 드디어 애써 노력한 끝에, 그들에게 기대에 부응할 만한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성공의 길은 여전히 멀었다. 가난 때문에 발생한 난장판은 아직도 평정되지 않았다.휘 형과 형수는 사실 그의 혼례를 치르기 위해 돌아온 것이었다.그는 이제 황후를 책봉해야 할 시기였고, 황후 후보는 일찌감치 정해져 있었다. 바로 숙왕부에서 지낸 적 있는 소복의 딸이었다.소복의 딸이 원래 무슨 이름이었는지, 그는 이미 기억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소복이 부상 자리에 오른 뒤, 딸의 이름을 소봉으로 새로 지었기 때문이다.소복의 꿈은 언제나 직설적이었다. 소봉의 이름은 '소가에서 나온 봉황'이라는 단도직입적인 뜻을 담고 있었다.소봉은 아버지 소복과는 달리 성격이 반듯하고 강직했다. 당시 그는 온갖 일로 정신이 없어 남녀 간의 감정 따위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사모의 감정보다 그에게 나라가 더욱 중요했었다.하지만 황제로서, 그도 후사를 마련하는 것이 북당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그에게 사모의 정에 대해 조금 느낀 적 있는지 묻는다면, 아마도 소가의 셋째 딸, 소낙연의 이름을 들었을 때이다.다만 그도 그녀의 이름만 알고 있었을 뿐, 나중에야 소낙연이라고 자칭했던 여인이, 사실 그의 형수인 라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 시절
그렇게 그들은 만취해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침대 삼으며, 마치 처음 전장에 나섰던 그 시절로 돌아간 기뿐을 느꼈다.그 시절에는 전쟁이 치열해, 종종 땅바닥에 몸을 웅크린 채 잠을 청하곤 했다. 여섯째는 당시에 항상 설사를 했었다. 셋이 몰래 전장에 나가려 했기에, 선생과 형수를 속이기 위해, 스스로 배탈을 자초한 후, 돈을 조금 챙기고는 전장으로 향했었다. 전쟁터에서 정말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다들 마음속으로 두려움이 가득했었다. 가난을 제외하고, 죽음보다 무서운 것은 없었다.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시간이 지나, 그러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적군이 승전가를 부르며 전우를 죽이고, 나라를 침탈할 때, 그들은 한 번도 죽음을 생각해 본 적 없었다.죽음에 관해 생각한다고 해도, 죽더라도 이 땅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뿐이었다.그들은 그렇게 잠에 들었고, 꿈속에서 막 즉위하던 시절로 시간여행을 떠났다.숙왕부도 여전히 그대로였고, 적성루는 인파로 붐볐으며, 전쟁으로 인해 찢어지게 가난했다. 휘 형과 형수는 대주로 빚을 갚으러 갔다. 북막과의 전쟁을 위해 대주의 30만 대군을 빌려왔지만, 갚을 돈이 없어 휘 형을 인질로 넘겼다.휘 형이 떠난 후, 조정은 서출의 어린 새 황제를 신경 쓰지 않았다.그들은 조정에서 대신들과 첨예하게 대립해야 했고, 매번 언쟁 후에는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채, 어서방에 돌아가 주저앉곤 했다.즉위할 때 휘 형은 최선을 다하면 좋은 황제가 될 수 있다고 격려해 주었다.그래서 그도 그렇게 믿었지만, 막상 황위에 올라보니 전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때로는 있는 힘껏 버텨도 소용없었다.하지만 퇴로 또한 없었다. 휘 형이 말했듯이, 퇴로가 없는 것이 오히려 가장 좋은 길이었다. 두 눈 질끈 감고 힘껏 돌진하다 보면, 결국 승리하게 된다.다행히 조정에 그들을 도와주는 이들도 있었다. 장 대인과 소복이 큰 도움을
그들은 사생활을 모조리 보여주는 것 같아, 팬들이 따라오는 것을 막았다.하지만 팬들은 놀랄 만큼 열렬한 애정을 보이며 기어코 그들 뒤를 따랐다.그 모습에 다들 처음엔 못마땅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이해하기로 했다. 모두 예전에 많은 사람이 따르고, 시중을 받으며 전성기를 가졌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익숙하기도 했다.어쨌든, 그들은 지금 행복하게 차를 몰며 독고 도로를 달리며 아름다운 풍경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었다. 팬들도 그들의 모습을 기록했다. 다투기도 하고, 술을 마시며 농담을 주고받고, 무술을 연습하는 모습 등, 그들의 사소한 순간들 모두 영상으로 편집되어 올라갔다 .그리고 곧 사람들은 퇴직 여행 계정에 한 명이 아닌, 세 명이 함께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상에 등장한 사람은 '십팔매'라 불렸는데, 많은 네티즌이 그 이름을 듣자마자 웃음을 터뜨렸다.얼굴에 약간의 여드름 자국이 있고, 항상 무표정으로 자기를 과인이라고 부르는 노인은 '여섯째'라 불렸다. 비록 엄숙해 보이지만, 실은 장난기가 많아 두 사람을 몰래 놀리고는 입을 막고 웃기도 했다.항상 핸드폰으로 독서하는 노인은 '주대'라고 불렸다. 박학다식하며, 말할 때마다 고사성어를 인용해, 십팔매와 여섯째가 싸울 때 몇 마디로 갈등을 풀어낼 정도로 인품이 뛰어났다.팬들은 이들의 이름만 들어도 웃음이 터질 지경이었다.그리고 그들의 대화를 듣고, 어릴 때부터 함께해왔고,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함께 여행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많은 사람들이 깊이 감동하였다.그렇게 어느 날 밤, 그들은 야외에서 술을 마시고 반쯤 취한 채, 바닥에 누운 채로 별이 가득한 하늘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이 장면 역시 팬들에게 촬영되었다.늘 털털한 십팔매는 두 손을 머리 뒤에 괴고 은하수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감탄하며 말했다."우리 정말 많이 늙었네.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살 수 있을까?"여섯째가 그의 머리를 한 대 가볍게 쳤다."길 위에서는 불길한 말 금지네."십팔매가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