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이런 식으로 전개돼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경단이는 아직 나이가 어려서 이리 나리와 장사하는 곳을 드나들 수 없다고 우문호가 사정하게 된다면 이리 나리가 한발 양보해 경단이 대신 경단이 늑대를 담보로 맡기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그럼 우문호가 경단이 늑대를 이리 나리에게 넘기고 이리 나리는 마지못하겠다는 식으로 수락하는 전개가 된다.생각했던 전개에 따르면 이리 나리한테는 일거삼득이다. 첫째, 바라던 대로 북당 발전 자문단 수뇌가 되어 국가 경제의 맥을 장악할 수 있다.둘째, 경단이의 눈 늑대를 데려가면 자신에게 눈 늑대가 없는 아쉬움을 달랠 수 있고, 기껏해야 경단이가 자랐을 때 다시 돌려주면 된다.마지막으로 이리 나리는 언제든 손을 털고 나올 수 있는 사람으로 우문호 앞에서 고자세를 취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우문호는 이리 나리에게 지나친 요구를 할 수 없게 된다. 게다가 경단이를 원했는데 대신 늑대를 맡겼으니 우문호는 늘 꿀리는 처지가 될 수 밖에 없다. ‘전심을 다 해 늘 국가 경제 발전을 생각하는 우문호가 왜 이렇게 쉽게 포기하지? 내가 너무 세게 나갔나?’우문호는 곧바로 이리 나리의 당황한 기색을 읽어내고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지만, 겉으로는 조금도 티를 내지 않았다. “짐은 일이 더 있어 바쁘니 이리 나리는 돌아가 봐!”“예, 저는 그러면 가보겠습니다.”이리 나리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 일어나지 않고 이리저리 눈을 굴리다가 물었다. “다음엔 무슨 일로 바쁘신 겁니까?”“호부 자문단 수뇌에 누가 적합할지 냉정언과 상의해 봐야지.” 우문호가 말했다.“그거 확실히 큰 일이군요. 시간을 지체할 수 없겠습니다?”“당연하지!” 곧이어 우문호는 이리 나리에게 왜 아직 안 가냐는 표정을 보이며 심지어는 이만 가라는 듯한 손짓을 했다.하지만 이리 나리는 열 손가락 깍지를 끼고 양쪽 엄지손가락은 계속 뱅뱅 돌리며 온화하고 우아한 표정으로 다시 돌아왔다. “바둑에 취미가 있으신가요?”우문호가 아니라는 손짓을 했다. “바둑은 무슨? 짐은 바둑
이렇게 이리 나리는 호부 자문단 수뇌로 조정에 출사해 북당의 향후 10년 경제 계획이 수립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수뇌라고 해도 출근 시간은 상당히 탄력적이기에 절대로 공주를 보필하는 데 영향을 주지 않았다. 이리 나리가 거액을 들여 이리 저택 부근의 집을 한 채 사들이고, 약간 개조해서 자문단 사무실로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회의는 이곳에서 진행되었다. 이리 나리의 이런 업무방식이 알려지며 조정의 일부 노신들은 ‘이리 나리에게 너무 큰 것을 맡기는 게 아니냐, 원래 호부 관아에서 진행해야 할 회의를 왜 이리 나리에게 넘겨야 하는 거냐?’라며 불만을 터트렸다.이리 나리가 막 부임했을 때는 조정에 누군가 이리 나리가 공금을 낭비하고 사치가 극에 달해 미꾸라지 한 마리가 조정의 물을 다 흐려놓고 있다고 우문호에게 상소문을 올렸다.소위 새로운 황제가 기풍을 쇄신하는 건 아직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는 식으로 조정 대신도 알력을 드러낸 것이였다. 특히 경제 계획의 주체를 이리 나리가 맡을지 무상황의 노신이 맡을지 중요한 갈림길이라고 언급했다.그 당시엔 아직 태자이였기에 우문호는 ‘자기 돈으로 사치하든 말든 조정이 상관할 바가 아닐뿐더러 그게 공금 낭비랑 무슨 상관이냐?’ 라고 한마디 받아치면 그만이었다.하지만 조회의 엄숙한 자리에서 조정의 기풍까지 거론하고 있었기에 막 보위에 올라 아직 변변찮은 업적을 쌓지 못한 우문호가 상소문의 내용을 딱 잘라버릴 수도 없었다. 게다가 이 노신은 말끝마다 자신이 무상황의 사람임을 표방하는 게 경력을 막강한 권위로 내세우고 있었다.이때 다행히 예친왕이 대전 조회에서 이리 나리가 그동안 조정에 얼마나 많은 자금을 댔는지 따져볼 것이라며 상소문에 따끔하게 반론했다. 더불어, 자기 돈으로 자기에게 하는 것을 사치가 극에 달했다고 할 일이 아니고, 자기 개인 돈을 써서 나랏일을 위해 장소를 제공해 조정의 일을 편하게 보는 것인데 그걸 트집 잡으면 그동안 손해 입힌 돈은 무슨 낯으로 설명할 수 있냐며 말이다. 예친왕의 말에 누구
“그러시죠. 소신 더는 얘기하지 않겠습니다.”하지만 예친왕 마음속에는 의심이 슬금슬금 피어올랐다. ‘지금 큰아버지께서 온 경성을 이리저리 도망 다니시는 중인데 여기서 보물을 주웠다고 이렇게 떠벌리고 다녔는데 모를 리가 있나?’역시 예친왕의 걱정은 들어맞았다. 확실하게 산을 조사한 다음 날 전 황제가 아직 사람도 보내기 전에 흑영위가 전부 그쪽으로 괭이를 들고 가서 우공이산이라도 할 기세를 보였다.전 황제가 이를 알고 기가 차서 죽을 뻔했다. ‘하필이면 보물이 땅속에 있는데, 파내는 게 임자 아냐?’잠시 후 안풍 친왕이 특별히 좋은 호랑이를 데리고 매화장으로 왔다. 부근 산에서 공무를 볼 일이 있는데 앞으로 한 달 동안 어쩌면 약간의 소음이 매화장에 들릴 수 있으니 양해해 달라는 것이었다.전 황제는 뚜껑이 열릴 지경이었으나 안풍 친왕의 ‘공무’를 강제로 말릴 수도 없고 따지고 들면 안풍 친왕은 숙왕부 출신으로 휘종제의 적장자니, 명실상부하게 저 보물을 가져갈 자격이 있었다.안풍 친왕이 호랑이를 데리고 매화장을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전 황제가 관리하니 매화장이 더 좋아졌다고 했다.전 황제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단호하게 되받아쳤다. “큰아버지 아쉬우시면 다시 사가시죠.”안풍 친왕이 자애로운 눈빛으로 말했다. “이 바보 같은 녀석 좀 보게, 그게 무슨 소리야? 큰아버지가 어떻게 네가 사랑하는 걸 뺏을 수가 있어?”전 황제는 하마터면 ‘낯짝이 두꺼워도 유분수지’ 라는 말을 뱉을 뻔하다가 겨우 마음을 가다듬었고 심호흡을 하고는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큰아버지 별일 아니시면 가서 공무 보시지요.”안풍 친왕이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웃었다. “별일은 있지. 너랑 상의할 일이 많다.”전 황제는 터질 거 같은 속을 겨우 다스렸다. “말씀하세지요!”안풍 친왕이 말을 이었다. “그게 말이야, 내가 지금 숙왕부에 있는데 일하러 보낸 사람도 숙왕부에 살거든. 내일도 여기서 일하는데 매번 왔다 갔다 하는 것도 번거롭고, 건조식량만
무상황이 순간 호기심이 생겨 넌지시 물었다. “정말 하겠다고 하던가요?”“하겠다고 했지, 절반을 나눠준다니 엄청 좋아하더구나!” 안풍 친왕이 말했다.“말도 안 돼요!” 무상황이 안풍 친왕을 바라봤다.“뭐가 말도 안 되는데? 증서까지 남겼다고, 봐!” 안풍 친왕이 바로 증서를 꺼내더니 무상황에게 보여주었다.무상황이 말했다. “형이 절반을 줄 리 없다는 말이예요.”무상황이 증서를 가져가 한 자 한 자 정확하게 보더니 고개를 흔들며 한마디 했다. “사기를 당해놓고 어떻게 상대가 어디가 약아빠졌는지 모를 수가 있나?”소요공이 장단을 맞춰 주었다. “함정이 있습니까?”무상황이 증서를 소요공에게 보여줬다. 소요공은 아무리 봐도 찾아내지 못해 주 재상에게 넘겨주자, 주 재상은 한번 쓱 보더니 웃었다. “허, 밥값정도 손해 보겠어!”“뭐라고?” 소요공은 아직도 이해가 안 됐다. ‘그 무덤에 보물은 수백만 냥은 호가할 텐데, 특히 지금 팔면 돈이 더 될 거야. 그것에 절반인데 어떻게 밥값정도만 손해라는 거지?’주 재상이 웃으며 설명해주었다. “휘형의 것을 절반 준다고 한 거잖아. 그 보석을 판 뒤에 휘형이 한 냥만 가진다면? 그러면 손해 아닌가?”소요공이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한 냥이라니.. 이거 너무 하잖아?”안풍 친왕이 손을 내저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본전을 손해 보게 할 수야 없지. 100냥만 가질 생각이야. 남은 건 라만과 저 사람들에게 나눠줄 거고. 그럼, 조카도 50냥을 나눠 받으니, 밥값은 손해 보지 않아. 고깃값도 못 되겠지만.”소요공이 화들짝 놀라서 물었다. “인과응보가 두렵지도 않으십니까?”그러자 안풍 친왕이 한심하다는듯 소요공 볼을 세게 꼬집었다. “처음부터 널 거둔 게 제일 큰 인과응보야, 다른 인과응보가 너만 하겠냐?”소요공이 계면쩍게 웃었다. “그때 절 거두실 때 은자 삼백 냥을 받아서 생계를 보전하셨잖아요. 안 그랬으면 버티기 힘드셨을 겁니다.”이전에 안풍 친왕비가 소요공을 거뒀을 때 소요공의 아버지가 은자
열째가 매황장에 처음 살기 시작했을 때는 상당히 흥분해 했다. 궁에서는 자유가 없었는데 온 산을 뛰어다닐 수 있으니 한동안 미친 듯이 놀았다. 하지만 점점 똑 같은 생활이 단조로워지자, 친구들이 생각나 아바마마께 궁에서 만두와 아이들과 놀게 해 달라고 했다.그러자 전 황제는 열째를 궁으로 보내는 것보다 만두와 아이들을 한동안 매화장으로 오라고 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마침, 떡들과 쌍둥이도 궁에서 심심하던 차였기에 황조부가 사람을 보내 맞으러 오자 짐을 꾸려 호랑이와 늑대를 데리고 서일의 호송을 받으며 매화장으로 향했다.출궁할 때 원경릉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그들에게 너무 난장판 부리지 말라며 황조부와 호태비 말씀 잘 들으라고 했다. 매화장에 도착해서 이틀간은 그래도 얌전하게 지냈으나 눈 늑대와 호랑이를 데리고 간 다섯 꼬맹이가 얌전하게 있을 리가 있겠나? 천지 사방에 거칠 것이 없고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놀 수 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렇게 매화장에 간지 사흘째 되는 날, 전 황제가 새로 만든 사냥터 담장이 와르르 무너져 안에서 키우던 동물이 전부 산으로 달아나 버렸다.전 황제가 잘못을 추궁하자 열째와 만두는 죄를 홀라당 쌍둥이에게 덮어씌웠는데 쌍둥이가 황조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빨개진 얼굴로 울먹이며 말했다. “걔들이 불쌍해요. 계속 우리한테 구해달라고 하는데…. 황조부, 걔들을 자유롭게 해주세요. 혹시 사냥하고 싶으시면 저희가 사냥터를 뛰어다닐게요, 저희한테 활을 쏘셔도 돼요.. 네?”전 황제는 가슴이 메어왔다. 손자의 불쌍한 모습을 보니 화가 나기는커녕 마음이 너무 아파졌기 때문이다. 결국 얼른 둘을 안아 들어 무르팍에 앉히고 하나씩 뽀뽀했다. “됐다, 됐어. 황조부는 사냥도 별로 안 좋아하니 놔준 셈 치자. 그리고 어떻게 너희를 쏠 수가 있어? 활은커녕 한 대 때리는 것도 가슴이 아픈데.”전 황제는 속으로 탄식했다. ‘쌍둥이가 나이는 어리지만 생명을 사랑할 줄 아는 것이 황후의 가르침 덕분이구나.’다시 이틀이 지나고, 이들은 시위
하지만 전 황제는 탁자를 '탁' 치며 크게 성을 냈다. “뭐라?!”전 황제는 한 손으로 열째를 잡아 뒤로 돌리더니 엉덩이를 팡팡 때리자, 열째가 느닷없이 맞고 놀라 대성통곡했다.전 황제가 때리며 호통을 쳤다. “나이도 어린 것이 공부는 안 하고 아버지에게 구덩이를 파줘? 과인을 묻겠다는 거 아냐? 너 오늘 매 좀 맞아야겠다.”열째가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자 호태비까지 달려와 전 황제가 손찌검하는 것을 보고 열째가 큰 사고를 쳤구나 싶어서 얼른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전 황제가 열째를 놔주며 분기탱천한 얼굴로 말했다. “이 녀석이 과인에게 구덩이를 파줬어. 과인을 묻으려는 게야!”호태비가 놀라서 얼굴이 다 하얗게 질렸다. “너 미쳤어?”줄곧 자신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주던 아바마마에게 맞았는데, 이번에는 어마마마에게까지 혼나자 열째는 억울하고 슬퍼서 엉엉 울기 시작했다.바로 그때, 찰떡이가 연약한 표정으로 앞으로 나와 입을 열었다. “작은 아버지께서는 황조부를 묻으려는 게 아니에요. 쌍둥이가 동물들을 쫓아 보내서 황조부 사냥터가 없어지고 말았잖아요. 열째 작은 아버지는 황조부에게 연못을 파 드리려는 거였어요. 앞으로 산에서 낚시할 수 있게요. 하지만 만두 형이 산에는 물이 없다고 해도 환타가 구덩이를 파봤거든요. 그런데 정말 물이 나오지 않아서….”이 설명에 따르면 구덩이는 역시 효심의 발로여서 전 황제는 순간 당황스러웠다.호태비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듯 했다. “그럼 넌 왜 아바마마께 제대로 말을 못 한 것이냐?”열째는 억울하다며 하도 울어대서 얼굴이 눈물 콧물 범벅이었다. “소자가 구덩이를 팠다는 말에 아바마마께서 바로 때리셨어요.. 헌데 소자가 어떻게 구덩이에 아바마마를 묻을 수가 있습니까? 다섯째 형수가 소자는 아바마마께 효도해야 한다고 그랬어요. 그러니 소자는 절대로 그런 불효한 짓을 할 리가 없습니다..!”그러자 호태비는 손수건을 꺼내 열째의 얼굴을 닦아주며 전 황제에게 눈을 흘겼다. “왜 제대로 묻지도 않나요? 애들이 하
안풍 친왕 사람들은 한 달간 공무하는 동안 매화장에서 먹고 마셨다. 비록 산에서 파낸 보물은 그다지 많지 않아 처음 부장한 것의 1/10도 되지 않았지만, 돈으로 환산하면 값이 상당했다.안풍 친왕은 전 황제의 기분을 살피기 위해 특별히 사람을 매화장으로 오라고 해서 매입가를 추산하도록 했다. 일부는 헌제 황실 보물이었기 때문에 수장 가치가 있으므로 가격을 높게 쳐줬다. 모든 보물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싹 팔아서 은자로 환산해보니 110만 냥이었다.전 황제가 금액을 듣고 분노가 눈 녹듯이 사라졌다. 110만 냥이라, 일전 계약에 따르면 자신은 55만 냥을 받을 수 있었다.주인장은 표사를 불러 보물을 운반하게 했다. 주인장이 가자 전 황제는 증서를 꺼내 싱글벙글 웃으며 안풍 친왕에게 내밀었다. “큰아버지, 조카에게 주셔야 할 몫은 주셔야 합니다.”안풍 친왕이 추호도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안심해, 내가 뱉은 말은 반드시 지킨다. 그리고 증서로 보증을 해 뒀으니 넌 일단 기다리거라, 우선 저들에게 나눠주고 다음에 너랑 나랑 나누도록 하지.”전 황제가 이 말을 듣고 의아해하며 물었다. “또 누구에게 나눠 주신다는 말씀입니까?”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이 앞으로 한 걸음 다가와 기세로 몰아붙이며 말했다. “우리들이요!”전 황제는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을 보니 전부 따르던 호위들이라 품삯이군 하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러시죠, 우선 저들부터 주세요.”10만 냥을 꺼내 품삯을 줘도 전 황제 몫은 아직 50만 냥이 남았기에 괜찮았다.하지만 안풍 친왕이 만 냥짜리 지폐를 꺼내 한 사람에게 한 장씩 나눠줬다.전 황제가 놀라서 얼른 안풍 친왕을 붙잡았다. “큰아버지, 왜 이렇게 많이 주세요? 전부 만 냥씩 입니까?”안풍 친왕이 나눠주면서 말했다. “맞아, 저들이 힘을 쓴 공로가 크니 당연히 많이 받아야지. 우리는 힘쓴 게 없으니 나누는 것도 작은 거야. 네 생각은 다른 거냐?”그러자 전 황제는 기가 막혀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당연히 생각이 다르지, 생
안풍 친왕이 고개를 돌려 싸늘한 눈빛으로 증서를 흔들어 보였다. “왜? 종이에 쓰인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 큰아버지까지 속이고 싶은 것이냐? 황자들에게 효도를 가르친다고 들었는데 정작 본인이 효도가 뭔지를 모르면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겠느냐?”안풍 친왕이 박해받는 표정을 지으며 억울하고 분하다는 듯 전 황제를 대했다.전 황제가 당황해서 안풍 친왕을 바라봤다. 증서가 얼굴 앞에서 나부끼고 산바람이 자신의 서늘한 등줄기를 훑고 지나가도록 전 황제는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냉수를 끼얹은 듯 마음이 싸늘해졌고 증서가 비웃듯 눈앞에서 뒹굴었다. 원래는 자신을 보호해 주어야 할 증서가 결국 악인을 보호하는 것으로 변해 버리다니 세상은 불공정하구나!“왜, 트집 잡아 계약을 어기게?” 안풍 친왕이 눈을 가늘게 뜨고 죄인을 성토하는 자세를 취했다.“아…. 아닙니다!” 전 황제의 기세가 약해졌다. 밉지만 입도 뻥긋할 수 없었다.“그런 억울한 모습 하지 말거라. 말해 봐, 처음에 내가 뭐라고 그랬느냐? 내 몫의 절반을 준다고 했지, 맞지? 증서에도 쓰여 있는데 말이다. 안 그래?”“그렇습니다…. 하지만 나눠줘야 한다고 하시지는….”안풍 친왕이 말을 끊어 버리고 흑영위를 가리키며 전 황제에게 물었다. “저들이 꼬박 한 달 동안 산에서 공무를 봤지? 해가 뜨면 일을 시작해 해가 지도록 쉴 수가 없었지. 얼마나 고단했는지 너도 봐서 알 거야. 안 그러느냐?”“그…. 그건 봤습니다.”“저들이 피땀을 흘려 이렇게 많은 금은보화를 파냈는데 그중 일부를 받아야 마땅하지 않겠어? 세 사람이 광산에서 채굴하는 거에 비유하면 한 사람은 기획하고 다른 두 사람은 채굴하는 일을 했어. 너라면 채굴한 사람에게는 나눠주지 않을 것인가?”“그…. 그건 절대 아닙니다. 허나 이건 상황이 다릅니다... 저들은 큰아버지 사람입니다.”안풍 친왕이 냉소를 지었다. “내 사람이 어쨌다고? 내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얕잡아봐도 된다는 뜻이느냐? 내 사람은 돈을 나눌 자격이 없어? 네가
안왕은 깜짝 놀랐다.“그가 꿈을 꿨다고? 셋째 형님이 사고를 당하는 꿈을?”“예!”“언제 꾼 꿈이더냐?”원경릉은 많이 지친탓에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말했다.“아마 저녁 해시쯤 인 것 같습니다.”안왕이 물었다.“저녁 해시? 강북부에 있던 것이냐? 해시에 꿈을 꿨는데, 어떻게 자시가 되어 도착한 것이냐?”원경릉은 멈칫하다가, 그제야 무심코 자신이 말을 잘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이제 와서 며칠 전에 꾼 꿈이라고 수습하려 해도 방법이 없었다. 다섯째와 함께 온 것이 아니라, 홀로 왔기 때문이다.안왕은 여전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사실 그는 황후에게 무슨 능력이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다만 황후에 관한 일은 늘 완전히 드러나지 않아, 무슨 상황인지 제대로 알 수 없었다.안왕은 셋째 형님의 일로 마음이 무거운 터라, 더 캐묻지도 않았다. 사실, 더 캐묻는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아무리 황후가 대단하다 해도, 그를 해치지 않기 때문이다. 정말 그를 해칠 사람이었다면, 진작 그를 죽였을 것이다.그는 다만 셋째가 위험에 빠진 것을 다섯째가 꿈에서 알았다는 것이 놀라왔다. 게다가 그 꿈 하나로 황후를 먼저 급히 보내왔다는 것도 놀라웠다.꿈을 꾸는 건 어쩌면 이상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형제끼리는 어느 정도 교감을 하니 말이다. 하지만 꿈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황후를 심야에 먼저 보낸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그는 예전에도 다섯째를 대단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번에는 단순한 존경을 넘어, 그들의 형제애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원경릉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갔다.그리고 수술이 끝나자마자, 그에게 산소를 공급하고 주사를 놓았다.큰 상처들은 처리했지만, 얼굴과 손에 있는 작은 상처들은 아직 손도 못 댄 상태였다. 원경릉은 생리식염수를 꺼내 천천히 상처를 닦아주었다.얼굴에는 작은 상처들이 여러 군데 있었고, 손에 특히 많았다. 그녀는 예전에 그가 강북부에서 병사들과 함께 산을 오르고 밭을 일구며 텃
수술실은 즉시 가장 빠른 속도로 준비되었고, 원경릉은 직접 소독했다. 소독이 끝난 후에는 아무도 들어올 수 없었다.그 후 위왕을 이송했는데, 이송하는 사람들도 전부 소독을 마쳤다.문이 닫히는 순간, 본격적인 대수술이 시작되었다.원경릉은 마음이 몹시 아팠다.과거 사생활은 그렇다 해도, 그는 정말 훌륭한 신하였고, 뛰어난 장군이자 좋은 형제였다.수년간 그가 얼마나 고생했는지도 모두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다들 그가 속죄를 위해 스스로 고통을 택했다고 말하지만, 원경릉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양심의 가책이 없는 사람은 속죄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도 속죄의 방법은 다양하다. 1년, 2년 정도 고생하면 본인과 타인에게도 속죄한 것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었다.하지만 그는 십여 년 동안 매일 이 춥고 황량한 변경에서 모진 세월을 견디며 고통 속에서 살아왔다. 속죄하려는 마음도 있긴 하겠지만, 원경릉은 북당의 변방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가장 컸다. 비록 예전엔 그에게 화가 난 적이 있긴 했지만, 지금은 오로지 존경과 가족으로서의 따뜻한 감정만이 남아 있었다.그래서 수술 중 그의 옛 상처와 새로운 상처를 볼 때마다 그녀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팠다.조금만 늦었더라도 그는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이 모든 것은 안왕의 도움도 컸다. 변경의 바람과 모래가 그들 형제가 진정한 화해를 할 수 있게 이끌었다.그때 태상황이 그를 변경으로 보낸 것은 그에게 새로운 삶을 주는 기회였고, 북당에도 십 수년의 안정을 가져다 준 일이었다.위왕의 복부 상처는 너무 깊었고, 어깨와 등에도 칼에 찔린 자국이 있었다. 부상 당시 출혈도 심각해 생명이 위태로웠다.수술이 끝났을 땐, 이미 날이 밝아 있었다.원경릉은 혼자 수술을 집도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 이미 익숙해지긴 했지만, 이번 수술은 유난히 위험했다. 그녀는 행여나 너무 늦게 도착한 것은 아닌지, 마음이 조마조마했다.위왕은 언제나 강한 사람이었기에, 그녀는 그가 이번에도 버텨내길 바
위왕의 병사들이 저택 문 앞에 모여 무릎을 꿇고 있었다.위왕은 오랜 세월 병사를 이끈 뛰어난 장군이었기에, 병사들의 모든 선망을 받고 있었다. 그가 사고를 당한 일만으로도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의원들이 하나둘 고개를 저으며 떠나는 모습과 안왕비가 하늘에 기도를 올리려 무릎을 꿇은 것을 보고 병사들도 애타는 마음에 함께 무릎을 꿇었다.주변의 백성들 역시 사정을 듣고 자발적으로 찾아와, 저택 밖에 몰려들었다. 위왕은 평소 허세를 부리지 않았으며, 이웃들과도 농담을 주고받는 친근하며, 모두에게 사랑받는 왕이었다. 사실은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일부러 몰락한 왕인 척했고, 그런 모습 덕에 백성들과 가까워질 수 있었다.한편, 저택 안에서는 안왕이 위왕에게 내공을 주입하며 심맥을 지키고 있었는데, 곧바로 의술이 뛰어난 의원을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모두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원경릉은 도착하자마자 이 광경을 목격했고, 다섯째의 꿈이 사실인 것에 깜짝 놀랐다. 누군가가 큰일을 당한 것이 분명했다.그녀는 곧 사람들의 기도 속에서 위왕의 이름을 들었고, 사고를 당한 이가 정말 셋째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그리고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함께 기도하는 모습에 감격을 금치 못했다. 그녀는 위왕이 북당을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바쳤는지도 절실히 느꼈다.그녀는 워낙 빠르게 달려온 터라, 출발해서 도착까지 한 시진도 걸리지 않았다. 그녀는 길가에 말을 세우고, 서둘러 가려고 했지만 가득 찬 인파에 가로막힌 탓에, 어쩔 수 없이 큰 소리로 외쳤다.“의원입니다, 비켜주세요!”그 외침에 사람들은 바로 길을 내주었고, 원경릉은 재빨리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문 앞에 서 있던 집사는 안왕과 함께 경성에서 온 사람이라 원경릉을 알아보았다. 집사는 기쁨에 복받쳐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황후마마께서 오셨다니…! 위왕은 무탈할 것입니다.”병사들과 백성들은 그 말을 듣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황후가 직접 뛰어오셨다니? 그리고 다들 그제야 마음을
우문호 일행은 강북부로 향하는 내내 북방의 풍경과 풍속을 경험했다. 그로 인해 속도는 매우 느리긴 했지만 말이다.그날 밤, 우문호는 갑자기 악몽에서 깨어나 온몸에 땀을 흘리며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다.그러자 원경릉이 벌떡 일어나 그를 껴안으며 물었다.“무슨 일이오? 악몽을 꾼 것이오?”우문호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아직 날씨가 덥지 않은 데다가 북방에 있어 오히려 날씨까지 쌀쌀했기에, 그는 아직도 악몽이 생각나는 듯, 창백한 표정을 지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꿈에서 셋째 형님이 피투성이인 채 죽어가고 있었소…”원경릉은 그저 꿈이라 생각하고 위로해 주려 했지만, 이내 우문호의 강한 감응 능력을 떠올렸다. 갑자기 나타난 이 꿈이 형제간의 영적 감응일지도 몰랐기 때문이다.우문호도 점점 불안한 생각에 빠졌다.“강북부가 비록 평온해 보여도 사실 북당에서 가장 복잡한 곳이오. 온갖 사람들이 섞여 있고, 북막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네. 게다가 셋째 형님도 무모한 사람이니, 진짜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지 걱정되오. 원 선생, 어서 빨리 가야겠소.”원경릉이 서둘러 옷을 입으며 말했다.“아니, 내가 먼저 가겠소. 정말 상처를 입었다면, 내가 가야지 도움이 되지 않겠소? 게다가 난 빨리 갈 수 있잖소.”“좋소. 그럼 먼저 가시오. 우리도 곧 출발하겠소.”우문호는 너무 생생한 꿈 탓에, 더 이상 천천히 갈 수 없었다.“사람을 불러야겠소.”원경릉은 재빨리 옷을 입은 후, 우문호에게 포옹하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먼저 가겠소.”“조심하시오.”우문호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 원경릉은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원경릉이 사라지자마자 우문호는 방 문을 두드리며, 출발하자고 소리쳤다.우문호의 소리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이 밤중에 출발이라니, 무슨 큰 일이 생긴 걸까?이때 수보가 겉옷을 걸치고 나오며, 우문호의 팔을 잡고 물었다.“무슨 일입니까?”우문호가 답했다.“나도 모르네. 하지만 셋째 형님에게 무슨 일
스무 명이 넘는 자 중 단 한 명만 생포하고 나머지는 전부 섬멸되었다.안왕은 재빨리 위왕의 혈을 눌러 지혈한 후, 중상을 입은 위왕을 데리고 저택으로 돌아왔다. 먼저 의원을 찾으러 간 사람이 있었기에, 의원은 이미 저택에 도착해 있었다. 이때 안왕이 피투성이가 된 채, 의원의 옷깃을 움켜잡았다.“살리시게, 살려야 하네. 꼭 살아야 하네.”의원이 바로 약상자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진정하십시오.”의원이 위왕의 옷을 가위로 자르자마자, 상처가 바로 드러났다. 다행히도 먼저 지혈한 덕분에 저택까지 돌아올 수 있었다.하지만 심각한 부상 상태와, 깊은 복부의 자상 때문에 장기를 다친 것으로 판단한 의원은 간단한 처리를 마친 후, 안왕에게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소인의 의술이 부족한 탓에, 치료를 감당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경성에서 다치셨다면,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강북부는 의료가 낙후된 지역이다. 비록 혜민서를 설립한 이후 의사를 집중적으로 양성하긴 했지만, 경성에 비하면 여전히 많이 부족했다.안왕이 숨을 헐떡이며 눈에 핏줄을 세우고 소리쳤다.“중상을 입었는데 어찌 도성으로 돌아가란 말인가? 긴 여정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은가?”의원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그것도 참 문제입니다. 황실 친왕이 자금단을 가지고 계신다고 들었는데, 혹시 저택에 있습니까?”“없네!”안왕은 위왕의 호흡이 점점 미약해지는 모습을 보며 절망감에 휩싸여 털썩 주저앉았다.“내가 갖고 있던 자금단은 이미 먹은 지 오래된 것이네.”“경성… 경성으로…”의식을 잃은 위왕은 그저 경성이라는 말만 중얼거렸다.안왕은 눈물을 닦으며 무릎을 꿇었다.“형님, 조금만 더 버티십시오. 의원이 약을 썼으니, 황후가 오실 때까지 며칠만 버티십시오.”심각한 상황이니, 경성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돌아가려면 최소 일주일 이상은 걸리지만, 황후는 아마 사흘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경성으로……”위왕은 의식을 잃기 전까지 계속해서 경성을 찾았다. 그곳은 그가 너무
위왕은 마음속에 또 하나의 걱정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다섯째가 곧 강북부에 오는 것이었다. 비록 이 일은 소문내지 않았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순행했으니, 소문이 새어나가게 마련이다.설령 그가 강북부에 온다고 밝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의 최종 목적지가 강북부라는 것은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북막인들이 다섯째에게 해를 가하려는 것은 아닐지 걱정되었다.아무래도 단 한 순간도 북막인의 야심은 멈춘 적 없었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는 방심하지 않고, 허점을 찾아내겠다는 결심을 다지며 이들을 감시했다. 확실한 증거가 없는 어디까지나 본인의 추측일 뿐이기에, 그는 이 일을 아직 넷째에게 말하지 않았다. 섣불리 말을 꺼냈다가, 그들이 진짜 금나라 상인이라는 것이 밝혀지기라도 한다면, 두 나라의 사이만 영향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비록 무장이지만, 외교적인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아주 작은 불씨라도, 마음먹은 자가 부추기면 걷잡을 수 없는 큰불이 될 수 있는 법이기에, 섣불리 행동해서는 안 되었다. 그리고 감시 끝에 마침내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 처음엔 열댓 명 정도였던 이들 무리는 이틀 사이 스무 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새로 온 자들은 앞선 사람들과는 다르게, 군인이라기보다는 강호 인사의 분위기를 풍겼으며, 무공 또한 약하지 않아 보였다.위왕은 경계심을 품고, 밤새 직접 사람들을 이끌어 조사에 나섰다.앞서 만났던 금나라 사람들은 여전히 질문에 순순히 응했지만, 새로 온 강호인들은 거만한 태도를 보였다. 위왕의 질문에도 그저 시큰둥한 태도만 보이며 북당인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위왕은 건방진 그들의 태도에, 몇 마디 호통을 쳤고, 그 모습에 강호인들은 참지 못하고 바로 위왕에게 손을 쓰려고 했다.위왕은 조사하기 위해 온 터라, 데리고 온 부하도 단 몇 명 뿐이었기에, 상대가 일반적인 조사에도 이렇게 쉽게 공격하려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앞서 온 금나라인들이 말리려 했지만, 그들이 손을 쓰자, 사태가 수습되지 않을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남강에 며칠 머무는 동안, 아홉째와 함께 남강의 풍경을 둘러보고, 북강에도 다녀왔다.지금 북강 백성들은 조정에 대한 소속감이 아주 강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남강을 다스린 정책이 정말 훌륭했기에, 백성들 모두 좋은 날을 보낼 수 있었기에, 자연스레 황제에 대한 존경심도 깊어진 것이었다.황제와 황후가 지나가는 곳마다 백성들은 길가에 모여서 열렬히 환영했다.그들은 이번 순행 내내 오계부에서 신분을 밝힌 것 외에는 항상 미복으로 다녔다. 하지만 남강에서 우문호는 황제의 신분을 드러냈다.우문호는 백성들의 신뢰와 경외심에서 큰 성취감을 느꼈고, 매우 기뻤다. 그는 줄곧 원경릉의 손을 잡고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과거 북강은 방어를 위해 무술 함정이 많았지만, 이제는 모두 제거되었다. 그리고 많은 백성이 산 아래 평원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마을을 이루었다. 정화를 구하러 왔을 때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기쁜 마음과 함께 우문호는 감사함도 느꼈다. 이것은 결코 그 혼자만의 공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남강을 떠나야 하는 날이 다가오자, 원경릉은 만아와 여덟째를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곧 변성으로 가야 했기에, 아쉬움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잠시였다. 남강을 벗어나자마자, 그녀는 아이들과 만날 생각에 들뜨기 시작했다."원 선생, 그들에게 말했소?"길에서 우문호가 물었다."아니, 몰래 가는 것이오."원경릉은 웃으며 말했다."교활하구먼. 그래도 만두가 이미 알려줬을 수도 있을 텐데."지금은 경단과 찰떡, 그리고 계란이 셋만 그곳에 있었다."셋이 다섯 개 성을 다스린다니, 분명히 힘들 것이오."원경릉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그렇소.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졌네. 이제는 태평해 보이니."우문호도 아이들이 안쓰러웠다."이번에 가서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충분히 쉬게 해줘야 하오."사실 성하나를 다스리는 것과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점 없이, 매우 힘든 일이었다.한편, 강북부에서는 최근 강북부 무구산 주변에 신비한 상단
그러자 홍엽이 그를 바라보며 멈칫했다."자네가 중매를 서겠다고?""안 되오?""말도 안 되는 소리 말게. 자기 혼사도 해결 못 하는데 중매는 무슨. 난 못 믿네!"냉정언이 어깨를 으쓱였다."못 믿으면 말고. 이래 봬도 내가 명문가 아가씨나 협녀를 많이 알고 있소."홍엽은 손으로 그의 목을 움켜잡으며 소리쳤다."알고 있는 아가씨가 있으면 진작 말했어야지! 경성으로 돌아가자마자, 당장 소개해 주시게!"냉정언은 웃으며 그의 손목을 옆으로 밀어냈다."중매 값이 워낙 비싸서. 십만 냥 아니면 쉽게 안 나서오.""돈이 대수요?"홍엽이 교활하게 웃으며 말했다."우린 지금 한집에 살고 있소. 그러니 자네가 돈을 어디에 숨겼는지, 다 알고 있네. 그동안 꽤 많이 챙겼으니, 돌아가서 돈은 두둑이 주겠네."그 말에 냉정언이 깜짝 놀랐다."내 돈을 노리고 있었소? 진짜 도둑을 집에 들였군! 늙어서 쓸 돈이네, 그 돈을 혼사에 쓸 생각은 하지 마시오!""명여가 우리를 챙길 테니, 그렇게 쩨쩨하게 굴지 마시오."홍엽이 새침하게 말했다."나도 돈이 많소. 다만 남의 돈을 쓰는 게 훨씬 재밌을 뿐이네."냉정언이 숨을 들이쉬었다."안 되겠네. 경성에 돌아가자마자 자네를 쫓아내야겠소."홍엽이 말했다."쫓아낼 수 있으면 쫓아내 보시게. 게다가 자네가 나를 청할 때, 뭐라고 했는가? 얼마든지 살아도 된다고 했잖소. 이제 와서 후회하는 것이오?""이야, 홍엽, 어찌 이리 뻔뻔스러워진 것이오?""뻔뻔하지 않으면, 어찌 당신 집에서 이렇게 공으로 먹고살 수 있겠나?"홍엽은 크게 웃으며 그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수보, 신을 모시는 건 쉬워도 보내는 건 어렵다고 하잖소. 이미 집안에 들어갔으니, 쫓아내기는 힘드네. 후회해도 소용없소. 수보의 등골 빼먹다 죽을 것이오. 관에 수의까지 얻어 쓸 생각이라, 죽으면 자네가 장례식까지 마련해줘야 하네."수보는 그를 한참 바라보다가, 애써 이를 악물며 말했다."진짜 뻔뻔하오!"홍엽은 박장대소했다.멀리 복도 끝에
“예, 그립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놀고 싶기도 합니다.”그는 말하다가, 갑자기 신이 난듯 몸을 들썩이며 말을 이어갔다.“여긴 정말 재미있습니다. 아홉째와 나가면 큰 산도 있고, 꽃도, 나무도 많습니다. 물고기도 많고, 사람도 많고, 뭐든지 엄청 많았습니다.”우문호는 웃으며, 못내 안쓰러움을 느꼈다. 예전에 그를 궁 안에 가두고, 거의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사람이 그를 데리고 나가는 것도 신경 쓰였다.“이곳이 마음에 들면, 좀 더 오래 있어도 된다.”우문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예, 정말 좋습니다. 다만, 형님과 형수님이 그리웠습니다. 이렇게 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여덟째는 흥이 오른 상태로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어서 들어가시지요! 아홉째가 형님이 내일 오신다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준비했습니다.” 그는 뒤돌아 원경릉에게 외쳤다.“형수님, 빨리 따라오십시오. 맛있는 거 많습니다.”미색은 웃으며 꾸짖었다.“이 무심한 녀석, 다섯째 형수님만 챙기고, 여섯 형수가 배고픈지는 묻지도 않는 것이냐?” 여덟째는 그제야 미색을 본 듯,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여섯째 형수님도 오셨습니까? 여섯째 형님도 오신 것입니까? 와, 너무 좋습니다!”“질투하다니?”원경릉은 미색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미소를 지었다.“여덟째는 너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것이다.”“아유, 참!”미색은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여덟째는 바로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항상 그림과 책자를 선물하는 여섯째 형수님도 좋아했기 때문이다.그는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그... 그럼 같이 드시지요. 음식 많습니다.”“장난이다. 난 질투 안 해.”미색은 기쁘게 말했다.여덟째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고, 다들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원경릉이 만아에게 말했다.“정말 이곳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구나. 예전보다 훨씬 활발해졌고, 말도 많이 하네. 이 모든 게 아홉째 덕분이다.”만아는 웃으며 말했다.“예, 둘이 시간이 날 때마다 밖으로 나가,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