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셔오거라!”원경릉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잠시 후,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남자가 들어왔다. 원경릉은 들어오는 그 남자를 자세히 보았다. ‘풍채도 좋고 외모도 위왕보다 뛰어난 청양군을 놓치다니…… 위왕비도 참……’그의 눈동자가 깊고 풍겨오는 아우라가 어마어마한 남자였다. 원경릉은 청양군의 평판이 좋다는 서일의 말이 단박에 이해가 갔다.“초왕비를 뵙습니다!” 청양군이 말했다.“들어오세요. 청양군.” 원경릉이 고개를 숙이고 그를 맞이했다.청양군은 손을 저었다. “저도 집으로 돌아가 옷도 갈아입어야 하고 입궁도 해야 해서 앉아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전 그저 위왕비의 상태를 묻고자 한 겁니다. 위왕비는 괜찮으십니까?”“위왕비께서는 목숨을 부지했습니다. 어쩌면 금방 좋아질지도 모르겠네요. 한 번 들어가서 보시겠습니까?”청양군의 눈빛이 반짝였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아닙니다. 괜찮다는 것만 알면 됩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그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인사를 하고 떠났다. ‘저렇게 생각이 깊은 남자를 놓치다니…… 복을 제대로 걷어찼구나.’사식이가 원경릉의 속마음을 읽었다는 듯 조용히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위왕비께서 청양군과 혼인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원경릉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 세상에 여자는 시집가면 끝이구나. 이 시대에 좋은 신랑감을 만나서 혼인을 하는 게 팔자를 고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게 딱 맞아.”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위왕비가 성벽에 앉아 있을 때, 위왕은 왜 그녀를 자극했을까요? 도무지 알 수가 없네요. 비록 오해 때문이라고 하지만 위왕비는 위왕이 한 때 사랑했던 여인이잖아요.”라고 말했다.“왕비, 고지의 환술법은 팔찌 방울이 아니라 눈에 있었습니다. 위왕비가 뛰어내리기 전에 고지가 눈으로 환술을 쓴 것이지요.”만아가 말했다.“눈? 어떻게 눈으로 환술을 쓴 거지?”원경릉은 의아한 표정으로 만아를 보았다.만아는 환술이 자신이 알고있던 신장 최면술과 같다고 여겼으나 지금 보니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어난 고지만아가 고개를 흔들며, “몰라요.”사식이가 원경릉에게, “원언니 생각은요?” 원경릉이 추측하고 싶지 않아서: “자신만 알겠지.”사식이가 한숨을 쉬고 매정하게: “위왕비가 고지에게 독을 써서 조지가 죽은 건 조금도 안타깝지 않네요 뭐, 고지가 와서 심지어 환술로 위왕비를 해치려 했잖아요.”위왕부.고지가 침대에 누워 있는데, 의원이 와서 무슨 독인지 몰라 해독할 수 없고 침을 놔서 독이 퍼지는 걸 늦추고 있다고 했다.위왕도 의원이 지혈과 상처 치료를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둔 채 미동도 하지 않고 죽은 사람처럼 있다.지금 성루 위에서의 그 순간을 회상해보니 성루에서 떨어져 내릴 때 위왕의 심장이 하마터면 순간 멈춰버릴 것 같았다.위왕이 왜 그런 말을 해야 했는지 떠올려봤지만 모르겠다.원경릉의 말이 위왕의 귀에 맴돌며 머릿속엔 온통 환술이란 두 글자가 가득하다.최씨의 몸종 야야(雅雅)가 문을 열고 들어와 바닥에 꿇어 앉았는데 손에 약병이 들려 있다. 야야는 울었는지 눈이 심하게 부었다.야야가: “왕비마마께서 만약 그녀가 살아나거든 이 해독약을 왕야께 드리라고 했습니다.”“무슨 뜻이지?” 위왕이 차갑게 야야를 바라봤다.야야가 말했다. “왕비마마의 심리상태가 줄곧 안 좋으셔서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셨습니다. 하지만 마마께서는 살기위해 노력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결국 죽을 경우, 고지는 왕비마마께서 구해주신 목숨이니 그 목숨은 돌려받아 가져 가는 걸로. 만약 살아 나실 경우, 모든 건 다 지난 일로 하시겠다고.”야야가 엎드려 절하고 약을 바닥에 놓고: “쇤네 왕야께 작별인사 올립니다. 돌아가서 아가씨를 위해 물건을 정리해야 해서요. 아가씨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어떻게 되든 다시는 여기 돌아오시지 않겠다고요.”“그래서 처음부터 죽으려는 생각이 없었던 거였군.” 위왕이 쓴 웃음을 지으며, “연극을 했을 뿐이야.”야야가 답답하다는 듯이, “하지만 뛰어내리셨어요, 자신이 살아갈 이유를 찾고자 했지만 찾지 못했죠. 왕야의 마지막 말씀
손왕의 질책과 고지의 유혹고지의 눈알이 산채로 굴러 떨어졌다.고지는 고통으로 침대를 구르며 비명을 질렀다.위왕은 천천히 물러나 손에 피를 닦았다.하인이 달려 와 피비린내나는 현장을 보고 놀라서 그 자리에 우뚝 섰다.위왕이 아무렇지도 않게: “고지 아가씨가 실수로 눈을 다쳤으니 지혈해 주고 의원을 불러 주어라.”말을 마치고 위왕이 천천히 걸어 나가는데 귓가에 고지의 처참한 통곡소리가 들렸다. 위왕은 입술을 말아 올리며 쓴 웃음을 짓는데 눈이 얼음처럼 차갑다.위왕은 위왕부 본관에 앉아 최씨 집안 사람이 오길 기다렸다.하지만 날이 저물도록 기다려도 최씨 집안 사람이 오지 않고,손왕만 왔다.손왕이 궁에서 나오자마자 손왕부로 돌아가는 길에 이 일을 듣고 바로 말을 달려 위왕부로 온 것이다.문으로 들어와 뚱뚱한 주먹을 위왕 얼굴에 날리고, 연속으로 몇 대를 때리는데 위왕은 여전히 꼿꼿하게 앉아 있고 손왕 자신이 먼저 지쳐서 바닥에 나가떨어졌다. 혀를 빼물고 헥헥 숨을 몰아 쉬는 손왕은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한다고, “이 놈의 새끼야!” 욕은 잊지 않았다.위왕이 피를 닦고 떨떠름하게 묻길: “아직 살아있어요?”“당연히 살아 있지, 너는 설마 그녀가 죽었는 줄 알았어?” 손왕이 화를 냈다.위왕의 얼굴이 잿빛으로 썩어 들어 갔다.손왕이 일어나서 위왕의 멱살을 움켜쥐고 손바닥으로 당수를 내리치며, “어쩌자고 이런 병신 같은 짓을 저질렀어? 너 귀신 들렸냐?”위왕이 고집스럽게: “난 틀리지 않았어, 그녀가 먼저 나한테 잘못 했어.”“아직도 고집을 부려?” 손왕이 반대쪽 손으로 한 대 더 때리고, “고집 부려서 쓸데가 있어?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어?”“난 틀리지 않았어!” 위왕이 고개를 들자 편집증에 사로잡힌 미치광이 얼굴로 주먹을 꼭 쥐고, “난 틀리지 않았어.”손왕이 위왕의 이 모습을 보고 그를 놓아주며 고개를 젓더니: “네가 틀리지 않았어? 정말 그렇게 생각해? 셋째야, 잘못을 인정해. 그녀는 너한테 미안하다는 말 들을 자격이
손왕의 일갈“닥쳐!” 위왕이 튀어 오르며 소리를 질렀다. 미친 사람처럼 의자를 집어 들고 던지며, “당장 꺼져, 꺼지라고, 나가, 네 염불소리 듣고 싶지 않으니까, 천한 무당 계집!”고지는 날아온 의자에 맞아서 바닥에 넘어지며 슬픈 목소리로: “당신은 왜 자신의 마음을 똑바로 인정하지 못하죠? 당신 이렇게 하면 안돼요. 우린 아직 아이가 있잖아요.”아이라는 말에 위왕은 멈칫하더니 화산이 폭발하는 것처럼 불길이 치솟아 오른 눈으로 다가와 전신의 힘을 다해 고지의 목을 누르고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죽어버려.”손왕이 당수로 위왕의 뒷목에 일격을 가하자 위왕은 바닥에 픽 쓰러졌으며 고지는 풀려났다.고지도 바닥에 무너져 내려 숨을 헐떡였다.손왕이 명을 내려, “이리 오너라, 저 여자를 명월암으로 보내라.”손왕이 다시 명을 내려, “너희 집 왕야는 차가운 연못에 라도 빠뜨려서 정신 좀 들게 해라.”두 사람은 서둘러 끌려 나갔다.위왕을 차가운 연못에 빠뜨렸다가 다시 건져냈더니 정신을 차리고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정신이 드냐? 정신이 들었으면 얘기 좀 하자.” 손왕이 차갑게 위왕을 바라보며 잔을 하나 건넸다.위왕이 받아 들고 단숨에 털어 넣더니, 벽 귀퉁이에 쭈그리고 음산한 표정을 지었다.“저 여자가 눈을 사용해 환술을 부린다는 걸 어떻게 알았어?” 손왕이 물었다.위왕이 한동안 입술을 떨더니 냉랭하게: “고지가 깰 때 눈에 옅은 안개가 가득하고, 그녀가 그런 눈일때마다 내가 뭘 생각하든지 상관없이 빠르게 빨려 들어갔거든. 하지만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바닥으로 떨어지던 그 장면이 떠올라 말을 꺼내려던 찰나 고지의 눈에 또 그 안개가 생기더군. 매번 내가 고지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보여줄 땐 늘 같은 눈빛을 본 뒤야. 성벽에 있을 때도, 다섯째 제수씨가 그러더군, 고지가 환술을 쓰고 있다고. 환술이란 두 글자를 듣고 나니 마음속으로 번쩍하는 게 있었어, 많은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고 의심이 들었어. 고지를 봤을 때 모든 의심이 다시 나를 찔러 댔
배후의 안왕과 아라안왕부(安王府)!오늘밤 친왕들은 모두 궁중에서 진북후를 위해 개선의 피로를 푸는 연회를 하고 있다.안왕(安王)은 반쯤 취해서 돌아와 대문을 들어서자 마자 서재로 갔다.붉은 비단치마를 입은 여인이 서재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안왕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일어나 예를 취하는데, 얼굴 가득 미소가 번지며, “왕야, 돌아오셨습니까?”안왕이 문을 닫고 겉옷을 벗어 옷걸이에 걸더니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아라야, 어떤 상황이야?”아라라 불린 여자는 약간 근심이 서린 눈으로: “위왕비는 성벽에서 자진했으나 초왕비가 구해서 지금 정후부에 있습니다.”안왕이 자리에 앉으며 짙은 눈썹을 찡그리고, “초왕비가 구해?”“예, 계산 착오였습니다.” 아라가 말했다.안왕이 ‘흠’하더니: 그걸 것까진 아니고, 적어도 셋째는 이번 일로 철저하게 망가졌겠지, 최씨 집안의 지원을 잃으면 큰형도 셋째와 어울릴 필요 없고.”“예, 기왕은 위왕을 버릴 게 확실합니다.” 아라가 말했다.안왕이 옅은 냉소를 띠고, “큰형이 셋째를 버리는 걸로 끝나지 않고 아바마마도 셋째에게 벌을 내릴 게 틀림없어, 이것도 다 자업자득이지, 당초에 셋째가 큰형 편을 들 때부터 이럴 운명이었던 거야.”아라도 애석한듯: “그래요, 만약 위왕이 그때 황제 폐하 앞에서 기왕을 구명하지 않았으면, 호부가 도난 당한 일로 폐하께서 기왕의 죄를 다스렸을 텐데 말이죠. 위왕이 정에 호소하며 선처를 바라는 바람에 폐하께서 핏줄의 정에 이끌려 기왕을 풀어 주셨죠. 정말 아까운 큰 기회를 놓쳐버렸어요”안왕의 눈에 사악한 기운이 스치고 지나가며, “지금도 뭐 괜찮아, 최씨 집안 쪽에 사람을 시켜서 소문 좀 내. 고지는 큰형을 찾아갔다고, 그리고 고지를 죽여서 입을 막을 거라고, 쓸모가 없어졌으니까.”아라가 예를 취하며, “예!”조금 있다가 아라가 다시: “그런데, 왕야는 최씨 집안이 확실히 우리 쪽에 붙게 할 방법이 있으신 가요?”창으로 회오리 바람이 들어와 등불이 갑자기 흔들리고 안왕의 얼굴이 절반
위왕비를 살린 원경릉위왕비가 뛰어내리던 그 순간을 떠올리니, 원경릉은 또다시 심장이 오그라드는 기분이다.원경릉은 침대에서 잡다한 생각을 하는데 마음이 차분해지질 않는다.우문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원경릉은 얼른 두손으로 얼굴을 문지르고 따스하고 평화로운 미소를 만들어 낸 뒤 생기발랄한 척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우문호가 들어와서 얼른 앞으로 오더니 원경릉 표정을 훑어보고: “척하지 마라. 눈꺼풀도 못 들어올리면서.”원경릉이 얼굴에서 힘을 빼고 작게 내뱉듯이, “밥 먹었어?”“배 터지겠어, 셋째 형수는 정후부에 계셔?” 우문호가 앉아서 손가락으로 눈가에 근육을 풀어주었다.“응, 여기 계셔, 최씨 집안에서는 데려가고 싶다는데, 지금은 얘기 안 했어.” 원경릉이 말했다.우문호가: “상태가 심각해?”“심각해, 그런데 엄청 심각한 건 아니야.” 원경릉이 우문호의 손을 내리고 우문호에게, “진북후 봤어? 호 아가씨는 만났고?”우문호가: “호 아가씨는 데리고 입궁하지는 않았고, 진북후는 호공자(扈公子)를 데려 갔어, 보긴 봤지만 눈도 마주치지 못 했어.”“아마 그 사람이 왕야가 마음에 안 들었나 봐.” 원경릉이 위로했다.우문호가 풀이 죽은 얼굴로, “그럼 어쩔 수 없지, 나만큼 똑똑하고 잘생긴 사람이 눈에 안 찬다는 데 별 수 있나?”원경릉이 가볍게 우문호의 볼을 때리며, “너무 자만하지 말자, 잘 봐, 뒤에서 왕야를 유념해 두고 있을 걸, 아바마마께서 진북후의 딸을 왕야의 후궁으로 삼으려는 심산을 진북후가 틀림없이 아는데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을 리가 있겠어?”우문호가 웃으며: “진북후가 만약 살펴봤다면 나한테 사자처럼 흉폭한 아내가 있다는 걸 알아차렸을 거야. 딸이 시집와서 구박받는 게 두렵지 않았을까? 진북후가 딸을 엄청 사랑하거든.”원경릉이 시큰둥하게 마지못해서 웃었다.우문호가 원경릉을 보고, “이 얘긴 그만해, 오늘 성루에 올라갔어?”“올라갔어.”“무엄하다!”“’목숨이 먼저’라는 다섯 글자를 알아줬으면 해.”“’위험’이란 두
위왕비의 속마음원경릉은 위왕비와 잠깐 얘기를 나누고 싶어 노부인에게: “약간의 검사와 문진을 좀 해야 하는데, 여러분들께서는 잠시 나가셔서 야식이라도 좀 드시고 오시는 게 어떨까요?”노부인은 사리에 밝은 사람으로 손녀 마음의 괴로움을 헤아릴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이 여기 있으면 감정을 표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하지만 집안 여자들도 쉽게 나갈 분위기가 아닌 것이, 위왕비가 또 목숨을 끊을까 걱정해서다. 하지만 초왕비가 있으니 우리 다 큰 바보손녀를 진정시켜 주겠지.노부인은 모든 집안사람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과연 그들이 나가자 위왕비 얼굴에 미소가 스르륵 꺼지고 눈빛이 어두워졌다.“전부 갔어요.” 원경릉이 작게 말했다.위왕비가 외로운 표정으로, “그러네요, 전부 갔네요.”위왕비가 눈을 들어 원경릉을 보고: “오늘 놀라게 해서 미안해요.”“진짜 놀랐어요, 뛰어내리면 안돼요.” 원경릉이 아주 낮은 소리로 말했다: “만약 정말 죽었으면, 오늘밤 만난 이 사람들이 얼마나 슬퍼했겠어요?”위왕비의 눈가에 물기가 맺히며, “요 며칠 머리속이 복잡해서 자신을 통제할 수가 없어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다 가도 또 할 수 있는 게 뭔지 모르겠어요.”원경릉이: “정서에 문제가 생긴 거예요, 그건 병이에요, 치료가 필요한. 여전히 같은 말을 하지만, 만약 제가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제가 치료하게 해주세요. 치료를 마친 뒤에는 오늘 같은 그런 일을 다시는 생각도 하지 않을 게 확실해요.” 위왕비가 한동안 침묵하다가: “성루에 있을 때, 당신 눈빛을 봤어요. 아주 따뜻했어요. 한줄기 불꽃이 내 마음속에 불붙기 시작해 돌아가고 싶었어요, 결코 당신을 실망시킬 생각은……”“알아요.” 원경릉이 얼른 말하고 위왕비의 손을 잡으며, “그래서 계속 말하잖아요. 당신은 특히 용감하고, 특히 이성적이라고.”“이성적이면 그런 짓을 하지 말아야죠.” 위왕비는 쓴 웃음을 지으며, “사실 고지를 죽이고 싶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고지를 죽이는 건 식은 죽 먹기였
우문호가 최대인에게 은밀하게 하는 부탁최대인 본인은 원래 돌아가는 게 맞고, 집안 식솔만 여기 남겨 두면 된다.하지만 딸이 당한 일을 생각하면 속이 분노로 활활 타오르고 가슴이 저미듯 아프다. 한사코 정후부에서 나가지 않는 것은 일단 나가면 사람을 죽일 같아 두렵기 때문이다.우문호는 사람을 위로하는 재주가 없어서: “최대인, 화를 참기 힘드시거든, 위왕부에 가서 위왕을 흠씬 두들겨 패셔도 됩니다.”최대인은 상처입은 야수처럼 숨을 몰아쉬며 차갑게: “위왕부에 가게 되면 사람을 죽이게 될까 두렵군요.”우문호가 탄식하며, “셋째를 죽여도 시원치 않지요, 이번에 셋째가 정말 너무 했습니다.”최대인이 우문호를 흘끔 보더니 입을 다물고, “송구합니다. 소신이 순간 분을 참지 못하고 헛소리를 지껄였습니다.”“아닙니다. 그래도 너무 심려 마십시오, 원선생이 따님 상황이 그래도 낙관적인 편이라고 했으니 좋아질 겁니다.”“원선생이라 하심은?” 최대인이 순간 누군지 몰라서,우문호가: “안사람이요.”최대인이 우문호를 보고, “이번에 초왕비마마께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조어의도 만약 응급조치가 제때 이루어지지 않았으면 목숨을 보전하지 못했다고 하더군요.”우문호가: “안사람이 일찍부터 이상하다 느끼고 오씨 어멈에게 셋째 형수를 잘 살피다가 거동이 수상하면 바로 알려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심각한 일이 터질 줄은 몰랐습니다.”최대인이 작은 목소리로: “소신은 성벽위에서 벌어진 일을 다른 사람에게 들었습니다. 왕비마마께서 어장으로 그 짐……위왕 전하를 때리고 적극적으로 돌아오라고 권하셨다고 하더군요, 왕비마마는 참으로 의협심과 충성의 표본입니다.”우문호가 쓴웃음을 지으며, “초왕비를 칭찬하실 거 없습니다. 좋아서 그렇게 하는 거거든요.”최대인이 예를 다하며, “진심입니다. 우리 최씨 집안은 초왕비마마께 이루 말할 수 없이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왕비마마께서 필요하시면 우리 최씨 집안은 왕비마마를 위해 견마지로를 다할 것입니다.”우문호가 당황해서 얼른
우문호 일행은 강북부로 향하는 내내 북방의 풍경과 풍속을 경험했다. 그로 인해 속도는 매우 느리긴 했지만 말이다.그날 밤, 우문호는 갑자기 악몽에서 깨어나 온몸에 땀을 흘리며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다.그러자 원경릉이 벌떡 일어나 그를 껴안으며 물었다.“무슨 일이오? 악몽을 꾼 것이오?”우문호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아직 날씨가 덥지 않은 데다가 북방에 있어 오히려 날씨까지 쌀쌀했기에, 그는 아직도 악몽이 생각나는 듯, 창백한 표정을 지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꿈에서 셋째 형님이 피투성이인 채 죽어가고 있었소…”원경릉은 그저 꿈이라 생각하고 위로해 주려 했지만, 이내 우문호의 강한 감응 능력을 떠올렸다. 갑자기 나타난 이 꿈이 형제간의 영적 감응일지도 몰랐기 때문이다.우문호도 점점 불안한 생각에 빠졌다.“강북부가 비록 평온해 보여도 사실 북당에서 가장 복잡한 곳이오. 온갖 사람들이 섞여 있고, 북막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네. 게다가 셋째 형님도 무모한 사람이니, 진짜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지 걱정되오. 원 선생, 어서 빨리 가야겠소.”원경릉이 서둘러 옷을 입으며 말했다.“아니, 내가 먼저 가겠소. 정말 상처를 입었다면, 내가 가야지 도움이 되지 않겠소? 게다가 난 빨리 갈 수 있잖소.”“좋소. 그럼 먼저 가시오. 우리도 곧 출발하겠소.”우문호는 너무 생생한 꿈 탓에, 더 이상 천천히 갈 수 없었다.“사람을 불러야겠소.”원경릉은 재빨리 옷을 입은 후, 우문호에게 포옹하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먼저 가겠소.”“조심하시오.”우문호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 원경릉은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원경릉이 사라지자마자 우문호는 방 문을 두드리며, 출발하자고 소리쳤다.우문호의 소리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이 밤중에 출발이라니, 무슨 큰 일이 생긴 걸까?이때 수보가 겉옷을 걸치고 나오며, 우문호의 팔을 잡고 물었다.“무슨 일입니까?”우문호가 답했다.“나도 모르네. 하지만 셋째 형님에게 무슨 일
스무 명이 넘는 자 중 단 한 명만 생포하고 나머지는 전부 섬멸되었다.안왕은 재빨리 위왕의 혈을 눌러 지혈한 후, 중상을 입은 위왕을 데리고 저택으로 돌아왔다. 먼저 의원을 찾으러 간 사람이 있었기에, 의원은 이미 저택에 도착해 있었다. 이때 안왕이 피투성이가 된 채, 의원의 옷깃을 움켜잡았다.“살리시게, 살려야 하네. 꼭 살아야 하네.”의원이 바로 약상자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진정하십시오.”의원이 위왕의 옷을 가위로 자르자마자, 상처가 바로 드러났다. 다행히도 먼저 지혈한 덕분에 저택까지 돌아올 수 있었다.하지만 심각한 부상 상태와, 깊은 복부의 자상 때문에 장기를 다친 것으로 판단한 의원은 간단한 처리를 마친 후, 안왕에게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소인의 의술이 부족한 탓에, 치료를 감당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경성에서 다치셨다면,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강북부는 의료가 낙후된 지역이다. 비록 혜민서를 설립한 이후 의사를 집중적으로 양성하긴 했지만, 경성에 비하면 여전히 많이 부족했다.안왕이 숨을 헐떡이며 눈에 핏줄을 세우고 소리쳤다.“중상을 입었는데 어찌 도성으로 돌아가란 말인가? 긴 여정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은가?”의원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그것도 참 문제입니다. 황실 친왕이 자금단을 가지고 계신다고 들었는데, 혹시 저택에 있습니까?”“없네!”안왕은 위왕의 호흡이 점점 미약해지는 모습을 보며 절망감에 휩싸여 털썩 주저앉았다.“내가 갖고 있던 자금단은 이미 먹은 지 오래된 것이네.”“경성… 경성으로…”의식을 잃은 위왕은 그저 경성이라는 말만 중얼거렸다.안왕은 눈물을 닦으며 무릎을 꿇었다.“형님, 조금만 더 버티십시오. 의원이 약을 썼으니, 황후가 오실 때까지 며칠만 버티십시오.”심각한 상황이니, 경성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돌아가려면 최소 일주일 이상은 걸리지만, 황후는 아마 사흘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경성으로……”위왕은 의식을 잃기 전까지 계속해서 경성을 찾았다. 그곳은 그가 너무
위왕은 마음속에 또 하나의 걱정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다섯째가 곧 강북부에 오는 것이었다. 비록 이 일은 소문내지 않았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순행했으니, 소문이 새어나가게 마련이다.설령 그가 강북부에 온다고 밝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의 최종 목적지가 강북부라는 것은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북막인들이 다섯째에게 해를 가하려는 것은 아닐지 걱정되었다.아무래도 단 한 순간도 북막인의 야심은 멈춘 적 없었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는 방심하지 않고, 허점을 찾아내겠다는 결심을 다지며 이들을 감시했다. 확실한 증거가 없는 어디까지나 본인의 추측일 뿐이기에, 그는 이 일을 아직 넷째에게 말하지 않았다. 섣불리 말을 꺼냈다가, 그들이 진짜 금나라 상인이라는 것이 밝혀지기라도 한다면, 두 나라의 사이만 영향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비록 무장이지만, 외교적인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아주 작은 불씨라도, 마음먹은 자가 부추기면 걷잡을 수 없는 큰불이 될 수 있는 법이기에, 섣불리 행동해서는 안 되었다. 그리고 감시 끝에 마침내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 처음엔 열댓 명 정도였던 이들 무리는 이틀 사이 스무 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새로 온 자들은 앞선 사람들과는 다르게, 군인이라기보다는 강호 인사의 분위기를 풍겼으며, 무공 또한 약하지 않아 보였다.위왕은 경계심을 품고, 밤새 직접 사람들을 이끌어 조사에 나섰다.앞서 만났던 금나라 사람들은 여전히 질문에 순순히 응했지만, 새로 온 강호인들은 거만한 태도를 보였다. 위왕의 질문에도 그저 시큰둥한 태도만 보이며 북당인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위왕은 건방진 그들의 태도에, 몇 마디 호통을 쳤고, 그 모습에 강호인들은 참지 못하고 바로 위왕에게 손을 쓰려고 했다.위왕은 조사하기 위해 온 터라, 데리고 온 부하도 단 몇 명 뿐이었기에, 상대가 일반적인 조사에도 이렇게 쉽게 공격하려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앞서 온 금나라인들이 말리려 했지만, 그들이 손을 쓰자, 사태가 수습되지 않을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남강에 며칠 머무는 동안, 아홉째와 함께 남강의 풍경을 둘러보고, 북강에도 다녀왔다.지금 북강 백성들은 조정에 대한 소속감이 아주 강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남강을 다스린 정책이 정말 훌륭했기에, 백성들 모두 좋은 날을 보낼 수 있었기에, 자연스레 황제에 대한 존경심도 깊어진 것이었다.황제와 황후가 지나가는 곳마다 백성들은 길가에 모여서 열렬히 환영했다.그들은 이번 순행 내내 오계부에서 신분을 밝힌 것 외에는 항상 미복으로 다녔다. 하지만 남강에서 우문호는 황제의 신분을 드러냈다.우문호는 백성들의 신뢰와 경외심에서 큰 성취감을 느꼈고, 매우 기뻤다. 그는 줄곧 원경릉의 손을 잡고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과거 북강은 방어를 위해 무술 함정이 많았지만, 이제는 모두 제거되었다. 그리고 많은 백성이 산 아래 평원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마을을 이루었다. 정화를 구하러 왔을 때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기쁜 마음과 함께 우문호는 감사함도 느꼈다. 이것은 결코 그 혼자만의 공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남강을 떠나야 하는 날이 다가오자, 원경릉은 만아와 여덟째를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곧 변성으로 가야 했기에, 아쉬움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잠시였다. 남강을 벗어나자마자, 그녀는 아이들과 만날 생각에 들뜨기 시작했다."원 선생, 그들에게 말했소?"길에서 우문호가 물었다."아니, 몰래 가는 것이오."원경릉은 웃으며 말했다."교활하구먼. 그래도 만두가 이미 알려줬을 수도 있을 텐데."지금은 경단과 찰떡, 그리고 계란이 셋만 그곳에 있었다."셋이 다섯 개 성을 다스린다니, 분명히 힘들 것이오."원경릉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그렇소.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졌네. 이제는 태평해 보이니."우문호도 아이들이 안쓰러웠다."이번에 가서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충분히 쉬게 해줘야 하오."사실 성하나를 다스리는 것과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점 없이, 매우 힘든 일이었다.한편, 강북부에서는 최근 강북부 무구산 주변에 신비한 상단
그러자 홍엽이 그를 바라보며 멈칫했다."자네가 중매를 서겠다고?""안 되오?""말도 안 되는 소리 말게. 자기 혼사도 해결 못 하는데 중매는 무슨. 난 못 믿네!"냉정언이 어깨를 으쓱였다."못 믿으면 말고. 이래 봬도 내가 명문가 아가씨나 협녀를 많이 알고 있소."홍엽은 손으로 그의 목을 움켜잡으며 소리쳤다."알고 있는 아가씨가 있으면 진작 말했어야지! 경성으로 돌아가자마자, 당장 소개해 주시게!"냉정언은 웃으며 그의 손목을 옆으로 밀어냈다."중매 값이 워낙 비싸서. 십만 냥 아니면 쉽게 안 나서오.""돈이 대수요?"홍엽이 교활하게 웃으며 말했다."우린 지금 한집에 살고 있소. 그러니 자네가 돈을 어디에 숨겼는지, 다 알고 있네. 그동안 꽤 많이 챙겼으니, 돌아가서 돈은 두둑이 주겠네."그 말에 냉정언이 깜짝 놀랐다."내 돈을 노리고 있었소? 진짜 도둑을 집에 들였군! 늙어서 쓸 돈이네, 그 돈을 혼사에 쓸 생각은 하지 마시오!""명여가 우리를 챙길 테니, 그렇게 쩨쩨하게 굴지 마시오."홍엽이 새침하게 말했다."나도 돈이 많소. 다만 남의 돈을 쓰는 게 훨씬 재밌을 뿐이네."냉정언이 숨을 들이쉬었다."안 되겠네. 경성에 돌아가자마자 자네를 쫓아내야겠소."홍엽이 말했다."쫓아낼 수 있으면 쫓아내 보시게. 게다가 자네가 나를 청할 때, 뭐라고 했는가? 얼마든지 살아도 된다고 했잖소. 이제 와서 후회하는 것이오?""이야, 홍엽, 어찌 이리 뻔뻔스러워진 것이오?""뻔뻔하지 않으면, 어찌 당신 집에서 이렇게 공으로 먹고살 수 있겠나?"홍엽은 크게 웃으며 그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수보, 신을 모시는 건 쉬워도 보내는 건 어렵다고 하잖소. 이미 집안에 들어갔으니, 쫓아내기는 힘드네. 후회해도 소용없소. 수보의 등골 빼먹다 죽을 것이오. 관에 수의까지 얻어 쓸 생각이라, 죽으면 자네가 장례식까지 마련해줘야 하네."수보는 그를 한참 바라보다가, 애써 이를 악물며 말했다."진짜 뻔뻔하오!"홍엽은 박장대소했다.멀리 복도 끝에
“예, 그립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놀고 싶기도 합니다.”그는 말하다가, 갑자기 신이 난듯 몸을 들썩이며 말을 이어갔다.“여긴 정말 재미있습니다. 아홉째와 나가면 큰 산도 있고, 꽃도, 나무도 많습니다. 물고기도 많고, 사람도 많고, 뭐든지 엄청 많았습니다.”우문호는 웃으며, 못내 안쓰러움을 느꼈다. 예전에 그를 궁 안에 가두고, 거의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사람이 그를 데리고 나가는 것도 신경 쓰였다.“이곳이 마음에 들면, 좀 더 오래 있어도 된다.”우문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예, 정말 좋습니다. 다만, 형님과 형수님이 그리웠습니다. 이렇게 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여덟째는 흥이 오른 상태로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어서 들어가시지요! 아홉째가 형님이 내일 오신다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준비했습니다.” 그는 뒤돌아 원경릉에게 외쳤다.“형수님, 빨리 따라오십시오. 맛있는 거 많습니다.”미색은 웃으며 꾸짖었다.“이 무심한 녀석, 다섯째 형수님만 챙기고, 여섯 형수가 배고픈지는 묻지도 않는 것이냐?” 여덟째는 그제야 미색을 본 듯,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여섯째 형수님도 오셨습니까? 여섯째 형님도 오신 것입니까? 와, 너무 좋습니다!”“질투하다니?”원경릉은 미색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미소를 지었다.“여덟째는 너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것이다.”“아유, 참!”미색은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여덟째는 바로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항상 그림과 책자를 선물하는 여섯째 형수님도 좋아했기 때문이다.그는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그... 그럼 같이 드시지요. 음식 많습니다.”“장난이다. 난 질투 안 해.”미색은 기쁘게 말했다.여덟째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고, 다들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원경릉이 만아에게 말했다.“정말 이곳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구나. 예전보다 훨씬 활발해졌고, 말도 많이 하네. 이 모든 게 아홉째 덕분이다.”만아는 웃으며 말했다.“예, 둘이 시간이 날 때마다 밖으로 나가, 더
원경릉은 발끝을 들어 그의 뺨에 입을 맞추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우문호는 그런 그녀를 와락 끌어안으며 말했다.“원 선생, 행복하오?”“행복하오.”“하하하. 지금이 아닌, 나와 함께했던 모든 날이 행복했냐고 물어보는 것이오.”“모든 순간이 당연히 행복하고, 기쁘오!”원경릉은 스스로를 자조하듯 웃었다.“나 같은 집순이가 이렇게 결혼생활이 행복할 줄 누가 알았겠소?”한때 그녀는 자신이 평생 결혼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고, 사랑 없는 삶도 부족함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그녀는 사랑을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었지만, 사랑은 사실 정말로 중요했다.산꼭대기에 앉아, 차가운 바람을 맞고 있었지만,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의 풍경을 눈에, 그리고 마음에 깊이 새기고 싶었다.그리고 함께 늙어간 후, 다시 천천히 되새기고 싶었다.영산에서 내려온 후, 그들은 다시 여정을 이어나갔다. 이번 목적지는 바로 남강이었다.명절이 지난 뒤, 아홉째는 여덟째를 데리고 먼저 남강으로 돌아갔다. 다들 그가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남강 땅은 오랜만이었다. 마지막으로 발을 디딘 건, 정화를 구하러 갔을 때였다.남강으로 가는 내내 홍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냉정언이 물었다.“남강에 가면, 못난이를 만날 것이오?”“만나야지.”홍엽이 답했다.“물론 만나야지!”못난이는 오랜 시간 그와 함께했던 사람이니, 만나야 했다. 못난이가 종종 편지를 보내오긴 했지만, 자기 상황은 거의 말하지 않았다.반면 아홉째는 편지에서 북강의 소식을 자주 전해주었다.지금의 남강은 어느 정도 통일되어 있었고, 북강과 남강도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그동안 이익 문제로 양측의 왕래가 더욱 빈번해졌다.아홉째는 편지에서 못난이가 북강의 민심을 얻었고, 성격도 예전보다 훨씬 밝아져,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하다고 전했다.홍엽의 마음엔 기대와 기쁨이 섞여 있었다. 그도 지금 잘 지내고 있으니, 못난이도 잘 지내길 바랐다.우문호는 남강에서 돌아온 후, 변방으로 갈
그 일을 떠올리자, 꿈에서 본 일이라 그런지 마치 얼마 전에 있었던 일처럼 느껴졌다.그때 그들은 죽을 만큼 힘든 소년들이었는데, 지금은 한없이 한가한 노인이 되었다.세월은 덧없이 흘러갔고, 그동안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잃었다.무상황은 자신의 황후였던 소봉을 떠올렸다.그들은 줄곧 전형적인 황제와 황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나라를 다스렸고, 그녀는 후궁을 다스렸다. 비록 그가 그녀를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많은 애정을 주지도 않았다.그렇게 평범하게 평생을 함께했지만, 그녀가 떠나는 날, 그는 마음속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간 듯한 슬픔을 느꼈다.평생 함께했던 사람이 자신보다 먼저 떠날 거라 생각하지 못했기에 더욱 아팠다.세 사람은 한참 동안 넋을 잃고 있다, 다시 길을 나섰다.유아독존과 관련된 일이 생각보다 커졌지만, 모든 소란은 결국 가라앉게 될 것이다. 모든 소문도 점점 사그라들기 마련이니, 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세 사람이 여행하는 영상이 점점 유명해지면서, 유아독존은 더 심하게 비난을 받았다.현실에서 함부로 욕설을 내뱉으면 얻어맞을 수도 있지만, 인터넷에서는 당당한 명분이 있었기에 악성 댓글을 다는 자들은 마음껏 욕을 퍼부었다.그리고 어느 날, 추 어르신이 오래도록 인터넷의 댓글을 훑어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는 이내 해가 지는 장면을 찍어 짧은 영상을 올렸다. 그리고 영상에 한마디만 덧붙였다.“분쟁 없이, 오직 평화만 있기를.”그는 모든 다툼이 끝나길 바랐고, 누군가를 벼랑 끝으로 몰지 않기를 바랐다. 단지 말로만 승부를 겨루는 사람은 그들의 적이 아니기 때문이다.음... 무엇보다 적이 될 자격도 없었다!영상이 올라간 지 이틀 뒤, 유아독존은 마침내 사과 영상을 올렸다. 그는 질투와 시기로 무술을 모독한 것을 사죄했고,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직접 그들의 계정을 태그해 진심으로 사과했다.진심 어린 사과는 항상 용서를 가져오는 법이다. 그리고 악성 댓글을 달던 사람들도 마침내 욕설을 멈췄다.
삼대 거두는 늦은 시각이 되어서야 일어났고, 숙취에서 깨어나니, 이미 날이 밝아져 있었다. 그들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아, 눈앞의 모든 것이 몽롱해 오늘이 무슨 날인지조차 모를 정도였다.태양이 서서히 떠오르며 하늘에 떠 있는 주황빛 구름은 점점 짙은 금빛으로 변했고, 금빛 가장자리에는 붉은색이 덧씌워져, 눈부시게 아름다웠다.소요공이 눈을 비비며 말했다."꿈을 꿨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동시에 그를 바라보며 이구동성으로 물었다."무슨 꿈을 꿨는가?""꿈에서 숭이가 사내에게 속았는데, 우리가 직접 나서서 복수를 해줬다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놀라서 동시에 숨을 들이켜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귀신이 곡할 노릇이네."말이 끝나자,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깜짝 놀라 외쳤다."자네도 꾼 것인가?""그렇네!""그렇네!""설마 우리 셋이 똑같은 꿈을 꾼 것이오?"소요공도 깜짝 놀랐다.그 일은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었고, 어떻게 된 일인지 가물가물할 정도로, 그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할 정도였는데, 꿈에서는 그 장면 장면이 또렷하게 떠올랐다.그리고, 이 꿈은 당시 엄청난 부담을 받고 있던 그들에게 정말 훌륭한 감정 해소가 되었다. 그들은 모든 고통과 억울함, 스트레스를 주먹질로 시원하게 풀어냈다.한편, 무상황은 자신이 황후를 소홀히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때 무슨 상황이었는지 기억하는가?"추 어르신이 흥분한 듯 말했다."물론 기억은 나네. 당시엔 소봉이가 궁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적성루 사람들을 많이 그리워했네. 게다가 나도 자네들과 어울리느라 바빠서 황후를 소홀히 했네. 그래서 적성루 상궁과 숭이를 궁으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게 했지."사실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꿈속에서 다시 겪은 덕분에 자세히 생각났다.그때 어서방의 회의가 끝나고, 소복이 무심히 물었다."폐하, 황후 마마를 오랫동안 못 뵙지 않으셨습니까?"그는 소복의 말이 소봉을 보러 가자는 암시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