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 나리는 멍해졌다. 그가 본래부터 간사한 사람이라는 것을 왜 잊은 걸까? 그는 요즘이 되서야 겨우 성장했다.소원을 이룬 우문호는 집으로 돌아와 가벼운 발걸음으로 소월각을 향해 걸어갔다. 기라는 그에게 장자에서 장부를 보내와 태자비가 회계방에서 장부를 대조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우문호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지금 집에 돈이 얼마나 있는지, 그는 정말 모른다. 원경릉이 계산을 하는 틈을 타 먼저 그녀에게서 알아내려 했다. 무기를 연구하는 돈을 모두 매부에게 내라고 하는 건 그도 마음속으로 타당하지 않다 생각되었다. 만약 부중에 여유가 있다면 일부분 낼 수 있다.생각 끝에 그는 직접 구기자차 한 잔을 우려 들고 회계방으로 갔는데, 탕양도 안에 있었다. 탕양이 먼저 한번 대조한 뒤, 다시 원경릉에게 넘겨 확인을 하게 했다. 장방은 한 묶음 정리를 해놓았고 3개월간 장부를 대조하지 않아 탁자 위에 한무더가 쌓여있었다."돌아왔어?"우문호가 들어오자 원경릉은 장부를 내려놓고 시큰해진 눈을 비비며 말했다."피곤하지? 어서 차 마셔!"우문호는 바로 구기자차를 주고 그녀의 뒤로 걸어가 어깨를 살살 주물렀다.탕양이 웃으며 말했다."전하, 이렇게 정성스러우신 걸로 보아 무슨 꿍꿍이가 있나 봅니다?"우문호는 그를 힐긋 쳐다보고 말했다."부인에게 잘해 주면 안 돼?""당연히 됩니다!"탕양은 보고 난 장부를 원경릉의 앞으로 넘기며 말했다."태자비께서 피곤하시면, 오늘은 이만 먼저 쉬시고 내일 계속하시지요."원경릉은 지금 오래 앉아 있을 수 없으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나머지는 내일 대조합시다.""예!"장방이 답했다.앉아서 장부를 뒤적거리며 열어 보던 우문호는 빽빽이 적힌 기록을 보고 바로 눈이 어지러워 닫고 물었다."올해 작황은 괜찮지?""응, 장자는 돈을 벌 수 있지만, 좋은 밭은 수확 전에 물에 잠겼어. 소작 세는 받을 수 없을 거야. 마침 당신과 상의하려 했는데, 사람을 보내 상황을 확인하고 정말 수확이
"응, 이리 나리와 일을 좀 하는데, 아마 돈을 좀 써야 할 것 같아.""장사할려고?"원경릉은 조금 의아해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우문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장사를 하는 건 아니고 그냥 꺼낸 거야, 다시 돌려받을 방법이 없거든. 아마 20만, 30만 냥이 필요할 것 같아."원경릉은 냉기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그렇게나 많이? 장사를 하는 것도 아니면 대체 이렇게 많은 돈이 왜 필요한건데?"우문호는 결국 그녀에게 숨기지 않고 사실대로 말했다. "음... 그 병기 일 말이야, 부황께서 동의하지 않으셨어, 그리고 나도 병부 쪽에서 주조에 착수해서는 안 될것 같아서, 생각해 보다가 이리 나리랑 사적으로 처리하려고 해. 하지만 투입할 돈이 적진 않을것 같아, 영이가 조금 빌려주겠다고 약속은 했는데 그렇다고 그들 부부한테만 돈을 다 내라 할 수도 없는 것 같아서 우리도 조금 보태는건 어떨까 싶어."원경릉은 상황 설명을 듣고는 응했다."그래, 그럼 안배 잘 하고 돈이 필요할 때 꺼내줄게.""진짜? 20만에서 30만 냥인데 이렇게 허락한다고?"우문호는 원래 그녀가 그다지 찬성을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과거 용돈을 좀 더 가지려 해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원경릉은 깜짝 놀란 그의 표정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이것은 국가 대사인데 내가 어떻게 허락하지 않을 수 있겠어? 돈은 중요한 일에 쓰는 거고, 이게 바로 그 중요한 일이지.""당신은 정말 최고야!"우문호는 그녀의 얼굴에 힘껏 뽀뽀를 했다. 눈가에는 그윽한 애정이 담겨 있었다. 이렇게 사리에 밝은 부인을 어디서 찾는단 말인가?두 사람은 손을 잡고 걸어 나갔다. 초왕부에서 지금 모든 사람들이 그녀가 임신을 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먹고 마시는 것은 그녀 스스로 조심하고 있다. 밖에서 유언비어가 돌고 있는데 그녀가 임신한 소식마저 전해지면 이번 풍파가 오랫동안 소란스러워질수도 있다."경호 쪽은 어떻게 됐어?"우문호가 물었다."요즘 조금 피곤해서 먼저 신경 쓰지 않았
이 말을 들은 우문호는 그녀의 의연한 표정을 보자 문득 지난 일들이 생각나 웃음을 참지 못했다."난 지금 진지한데 왜 웃어?"원경릉은 그를 노려보았다.우문호는 멈추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들었고 눈가의 웃음기는 적어지지 않았다."그때 기억나? 황조부께서 아프셔서 우리가 명을 받고 궁에 들어가 시중을 들어줬잖아. 그때 난 당신한테 아주 악랄했어. 당신이 중상을 입고 비녀를 들어 자신을 지키며 날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하고는, 내가 가까이 가자마자 바로 뛰어올라 비녀를 나에게 대고 있었잖아."그는 웃고 있었지만 눈가에서는 점점 후회와 안타까움이 가득해졌다."난 그때 정말 쓰레기였어."원경릉은 쓴웃음을 지었다."왜 기억 못 하겠어? 그때 난 정말 구렁에 빠져 살길이 없는 줄 알고 전전긍긍하며 살얼음판을 걷는 것만 같았어. 다행히 태상황을 찾아 도움을 청해서 그제서야 사람답게 살 수 있었지.""미안해…!"우문호는 침울하게 한숨을 내쉬었다."그건 내가 살면서 가장 잘못한 일이야."원경릉이 제일 답답했던 건, 애초에 잘못을 한 건 다른 원경릉이었지만 고생은 그녀가 했다는 것이다."됐어, 요 몇 년 동안 나한테 괜찮게 대해준 것을 봐서 이만 용서해 줄게."원경릉이 너그럽게 말했다."괜찮게?"우문호는 동의할 수 없었다."이걸 괜찮다고 할 수 있는 거야? 나 몇 년 동안 당신 말고 다른 여자들은 거들떠 본 적도 없어.""그건 당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 나한테 잘해준 건 아니잖아."그녀는 눈웃음을 지었다. 다섯째는 이렇게 은혜와 원한이 분명하고 선을 그을 줄 아는 게 귀엽다. 그때 주명취가 간사한 여인인 걸 알고 바로 옛정을 끊고 쓸데없는 엮임이 없었다.그와 방금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수를 잘 쓰지 못했었다. 하지만 몇 년 동안 각종 풍파와 교활한 음모 속을 헤쳐 나오며 지내온 것은 정말 쉽지 않았다.시간은 정말 빠르게 흘러간다. 그 일들은 마치 어제 일어난 것 같은데, 그들은 이미 셋째까지 임신했다."부인, 천천히 가, 길
"부황께서는 동의하시지 않을 거에요."우문호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괜찮아요, 당신이 미래의 황제가 될 테니 저와 계약을 하면 됩니다."이리 나리가 입을 삐죽거리자 누군가 계약서를 들고 우문호 앞으로 왔다.우문호는 계약이 모두 준비된 것을 보고 그가 임시로 생각해낸 게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어젯밤에 그렇게 침착하게 한 사람이 절반씩 내자고 했는데, 어쩌면 그는 자신이 돈을 내놓지 못할 것을 예상했을지도 모른다.아니나 다를까 이리 나리가 담담하게 말했다."어차피 당신은 돈을 모을 수 없어 공주에게 달라 해야 할 텐데요. 공주의 돈도 제 돈이라 결국 제가 모든 돈을 내는 것인데 왜 절충하는 방법을 취하지 않습니까, 당신과 조정이 모두 돈을 낼 필요가 없어요. 내가 손익을 홀로 부담할건데 이러면 서로 좋은 일 아닌가요?""난 50만 냥이 있네!"우문호는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50만 냥 보다 더 꺼낼 수도 있어요."우문호는 이 말을 꺼내자마자 바로 속았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의 이 계략은 공격도 방어도 할 수 있다. 동의를 하지 않는다면 우문호는 돈을 더 꺼내야 하고, 동의를 한다면 무기의 소유권을 잃는 것과도 같다.아이고, 요즘 세상, 공짜로 얻어먹는 게 왜 이리도 힘든 걸까?이리 나리가 웃으며 말했다."굳이요? 이 100만 냥을 다 꺼내게 된다면, 분명 초왕부는 가난에 허덕일 것인데, 혼자 가난하면 그만이지, 처자식에게까지 누를 끼쳐야 합니다. 알고 계시죠? 이 돈을 꺼내서 쓰고 나면 엎질러진 물처럼 돌려받을 수도 없다는 것을."우문호는 이를 악물었다."돌아가서 원 선생이랑 상의를 해봐야겠어요.""그럼, 그러세요!"이리 나리가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우문호는 몸을 돌리고 돌아갔다. 백만 냥은 정말 너무 많으니 원 선생이 동의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돌아가 원경릉에게 말하자 원경릉은 반대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위로했다."괜찮아, 그저 백만 냥일 뿐이야. 나중에 설랑을 이리 나리네에 빌려주면 바로 본전을 얻을 수 있을 거야
이 일이 다 처리된 후 우문호는 원경릉에게 궁에 한 번 더 함께 가자고 했다. 호비 마마를 찾아 얘기를 해보고 방법을 강구해 부황을 궁 밖에 갈 수 있게 달래야 했기 때문이다.우문호는 그렇게 생각했다. 부황은 약 값과 진찰금이 높은 게 조정에 있어 이득이 결점보다 많다 느끼고 있기에 필경 세금을 받을 때는 편하다고 말이다.우문호가 찾아보니 북당 의원과 약방에서 납부한 세수는 비교적 많았다. 부황은 가난을 두려워했고 국고를 위해 수입을 늘일 수만 있다면 뭐든지 기꺼이 하려 했다.그는 약 값이 그저 10~20냥 정도만 비싸지니 의원에 가서 병을 보는 백성들이 개의치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그러나 이것은 높은 자리에 위치한 그의 생각일 뿐이다. 그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가장 좋은 방법은 그가 직접 보고 백성들의 고통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마음을 단단히 먹고 개혁할 수 있다.원경릉은 우문호의 말대로 궁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호비에게 직언을 할 수 있고 호비도 사리에 밝은 사람이니 태자와 원경릉을 지지했다. 모든 일의 경과를 듣고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경성도 그러한가? 난 고한(苦寒) 지역에서만 그런 줄 알았어. 그 당시 변방에 있을 때도 의원의 진료비는 아주 값비싸서 일반 백성들은 병을 볼 수가 없었어. 병에 걸리면 그저 스스로 약초를 캐오거나 시골 의사를 찾았지. 부중 한 계집애의 동생이 나무에서 떨어졌는데, 처음에는 크게 다치지 않아 보였어. 하지만 의원을 청할 돈이 없으니 그 아이의 어머니가 산에서 약초를 캐와 상처에 덮어 놓았어. 그렇게 덮고 있다 보니 상처는 고름이 생겼고 아주 크게 부어올라 며칠 동안 고열에 시달렸지. 그제야 그 계집애가 본 궁의 앞에 무릎을 꿇고 의원을 청해달라 부탁하더구나.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고, 의원이 보고는 되돌릴 수 없다 하더군. 그러니 애초에 치료를 할 수 있었다면 그 목숨은 잃지 않았을 거야."원경릉은 마음속으로 괴로웠다. 그런 사람들이 아마 적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어쩔 수
"황후에게로 갔다."호비가 말했다.원경릉은 다소 의아했다."황후 마마에게요? 혹시 황후 마마께서 부르신 건가요?"호비가 물었다. "스스로 모후에게 가서 8황자와 놀겠다고 중얼거렸어, 하지만..."호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하려다 머뭇거리는 모습이었다."왜 그러십니까?"원경릉이 이를 보고 묻자 호비는 목소리를 낮추고 말을 이어 나갔다. "요새 귀비 마마가 황후와 우호적으로 지내고 있는 것 같아. 매일 동행하러 가는 것도 모자라 특별히 사람을 불러 궁에 개인 주방까지 만들라 명했어. 가끔은 아예 황후 쪽에서 지내기도 하는데, 귀비는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냐? 태자비가 알려줄 수 있겠나?"원경릉은 당연히 알고 있다. 하지만 호비는 종래로 잡담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아닌데도 왜 알아보기 시작하는 걸까. 아마도 귀비와 황후가 연합을 해 무슨 일을 할지 몰라 걱정하는 듯하다. 아무래도 그녀는 지금 총애를 많이 받고 있고 아들을 낳은 뒤 또 임신을 했다. 어머니가 된 사람이니 조심스러워지기 마련이다.원경릉은 이 일을 호비에게 알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 생각해 귀비가 부탁했던 일을 그녀에게 알려주었다.호비는 그 말을 듣고는 마음이 조금 놓였다."이 일 때문이었구나, 그럼 정말 다행이네.""너무 많은 걱정을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마마. 몇 년 동안 그렇게 많은 일들이 일어났으니, 후궁에서도 더 이상 소란이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호비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본 궁은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얼마 전에 누군가가 황귀비 앞에서 얘기를 꺼냈어, 후궁이 오랫동안 수녀를 뽑지 않았으니, 수녀를 뽑을 때가 되었다고. 그건 조상이 정한 규칙이라고, 황상이 본 궁만 총애해서는 안 된다 말했어.""누가 제기한 것입니까?"원경릉은 의아했다. 이 일은 들어본 적 없었다.호비는 눈가에 다소 근심을 품고 말했다."진비다."원경릉은 진비가 또 소란을 일으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우문군이 죽었으니 진비도 착실하게 살아갈 것이라 생각했다."지금 후궁에서 가장
그녀는 원경릉을 바라보며 말했다."그러니 너와 태자가 정말 부럽구나, 이렇게 오랫동안 태자는 한 번도 다른 사람과 결혼할 생각을 하지 않고 너만 지키며 살았다."원경릉이 가볍게 답했다."예, 그렇습니다. 저는 그래서 행복하다 생각합니다."원경릉은 말은 이렇게 했지만 속으로 조금 풍자적으로 느껴졌다. 그녀가 행복하다고 느낀 건 다섯째가 그녀만 지키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다섯째가 그녀에게 잘해주고 그들이 서로 사랑하며 함께 있기 때문이다.자신의 배우자에게 충성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것이지만, 이 시대에서는 행복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호비는 이내 웃으며 말했다."그러나 내 마음속에는 어떤 원한도 있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나 자신의 선택이다. 내가 선택을 할 때, 이미 언젠가 이런 일에 직면하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요 몇 년 동안 황상이 잘해주시니 헛생각을 안 할 수가 없더구나. 그의 곁에 더 이상 여자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내가 너무 욕심이 많은 거지? 결국엔 세속에 얽매이는 것을 면치 못했다."원경릉은 억지로 웃어 보였다."여자는 모두 자신의 남자가 자기밖에 없기를 바랍니다, 욕심이 아니에요.""하지만 그는 황상이다. 황상은 아무리 한 여자를 깊이 사랑한다 하더라도 그녀만 지킬 수 없어. 대를 이을 자식을 낳으려면 후궁을 채워야 한다. 어느 황제의 후궁이 미녀들로 넘쳐나지 않았냐? 그리고 이것은 조상의 제도이기도 하다."호비는 자신의 슬픔에만 빠져 이 말들을 듣고 있는 원경릉의 기분이 언짢은 것을 차마 생각하지 못했다.호비의 궁에서 떠나고 원경릉은 황후를 찾아보러 갔다. 황후는 지금 한약을 먹고 있으니 많이 호전된듯했고 적귀비와 황귀비와 안에서 얘기를 하고 있었다.마침 그녀들은 수녀를 뽑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비록 지금 황후는 후궁을 관리할 권리가 없지만 황귀비는 그녀에게 큰 변화가 생긴 것을 보고 시종 그녀를 황후로 모셨다. 그래서 황귀비는 직접 와서 이 일을 그녀에게 보고하였다.원경릉은 그저 안부만 묻고 물러나
황귀비는 몰래 웃기 시작했다."이번 간택은 사실 젊고 미혼인 황실 자손에게 어울리는 규수(閨秀)를 찾아주기에도 좋습니다, 궁안이 드디어 떠들썩해지겠네요."원경릉은 황귀비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진심으로 이 말들을 하는듯했다. 하지만 그녀는 정말 많은 여자들이 들어와 그녀와 은총을 빼앗는 것을 전혀 개의치 않을까?적귀비는 처음 그녀의 말을 듣고는 그다지 찬성하지 않았지만, 주최권을 얻으니 더 상관하지 않았다. 이렇게 보면 황제가 그녀들 마음속의 무게에서는 주최권보다도 못했다.그녀들이 말을 마치자 원경릉은 황후에게 진료를 하러 갔다. 황후의 부종은 많이 좋아졌고 복수의 상황도 호전되었다. 그러나 아직 상황이 아주 이상적인 것은 아니다. 원경릉도 그저 위로를 하며 계속 약을 먹으라고 전한 뒤, 될수록 다른 일들에 너무 많은 신경을 쓰지 말라 당부하였다.말을 하고 있을 때, 원용의가 상궁을 데리고 왔다. 상궁은 손에 약을 들고 있었고 원용의가 직접 와서 황후의 약을 시중들었다.원경릉은 그녀가 궁에 들어와 병시중을 드는 동안 살이 많이 빠지고 피곤해 보여, 떠날 때 원용의에게 데려다 달라고 했다."직접 시중을 들 필요는 없지 않아? 얼마나 힘들었는지 눈 주위마저 껌해졌어."원경릉이 말하자 원용의가 창백하게 웃었다."예, 사실 제가 직접 올 필요는 없이 일곱째가 오면 됩니다. 하지만 제가 일곱째를 안타까워하니 어쩌겠어요? 요즘 관아가 바쁘다 보니 그는 이미 심각한 수면 부족이에요. 의원 문제로 요즘 도처에서 싸우는 사람들이 생겨나요, 어제 그가 궁에 들어왔을 때 두 사람이나 맞아 죽었다고 했어요.""싸워? 왜 싸우는 건데?"원경릉은 의아했다. 두 사람이나 때려죽였다면 꽤 심각한 문제였기 때문이다."많은 의원들이 지금 50명의 환자만 받고 있고, 50명이 넘으면 병을 보지 않아요. 급한 병에 걸려 정원을 뺏기 위해 가족들이 싸우기 시작했어요. 얼마나 세게 싸우는지, 칼부림에 벽돌까지, 그렇게 두 사람의 목숨이 없어졌죠."원경릉은 멍하니 그녀의 말을 듣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