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동은 미리 음식을 준비해 두고, 서늘한 돌계단에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적동은 붉은 옷을 입고, 얇은 망토를 몸에 두르고 있었다. 그녀의 부드러운 옷자락은 아래 계단을 덮고 있었고, 진주가 박힌 비단 신을 가리고 있었다.적동은 두 손으로 턱을 괴고, 눈처럼 하얀 얼굴은 기대감으로 빛났다.오늘 밤 그녀가 만든 음식은 비교적 간단했지만, 맛은 아주 훌륭했다. 요즘 그녀의 입맛은 사람과 거의 같아졌고, 아마 오랫동안 함께 지내며 동화된 덕분일 것이다.적동은 만두 오라버니가 밥 먹는 모습을 좋아했고, 설랑이 허겁지겁 고기를 먹는 모습도 너무 좋았다. 그녀가 지금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먼 미래는, 바로 만두 오라버니와 혼인하여 매일 직접 요리를 해주는 것이었다.적동은 그 생각만으로도 기뻤다.별빛이 흐릿하고 달빛도 구름에 가려질 무렵, 드디어 익숙한 발소리가 들렸다. 적동은 머리를 번쩍 들었고, 그녀의 눈동자에는 별들이 반짝이는 것 같았다."만두 오라버니, 설랑! 돌아왔습니까?"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망토를 펼쳐 들고 그들을 향해 달려가더니, 설랑을 와락 껴안고 실컷 쓰다듬었다. 설랑은 바닥에 누워 하얀 배를 드러낸 채 축 늘어져 있었다. 설랑은 드디어 누군가 자기를 만져주는구나 싶어 기분이 좋았다.그러나 적동은 오래 쓰다듬지 않고, 이내 일어나 만두 오라버니 앞에 서서 반짝이는 눈으로 말했다."오늘 밤엔 어슷하게 썬 애호박 생선볶음, 고기볶음, 그리고 새우가 들어간 국을 만들었습니다! 어서 들어와서 드셔보세요!""그래, 힘들진 않았냐?"태자는 부드럽게 웃으며,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고 걸음을 옮겼다."전혀요. 너무 재미있었습니다."적동은 그의 옆에 바짝 붙었다. 걸음걸이도 전보다 훨씬 얌전해졌고, 폴짝거리던 발걸음도 차분해졌다."내일은 여덟 가지 약재가 들어간 보신탕을 끓여보려고 합니다. 정말 맛있습니다.""그래? 어떤 여덟 가지 약재가 들어가는 것이냐?""아직 몰라요. 희 상궁께서 가르쳐준다고 하셨습니다."적동은 손을 흔
금나라 사절단이 떠난 후, 태자는 바쁜 일상에 허덕였다. 그는 아침 일찍 침소를 떠나, 밤늦게까지 일을 계속했다. 금나라 체결한 상업 협약은 조정의 향후 몇 년간의 정책이 서북부 개발에 집중될 것임을 의미했다.워낙 큰 전략이니, 이리 나리와 자주 회의를 열고 향후 조치를 논의해야 했다.나라가 부유해지려면 먼저 길을 닦아야 한다는 법칙은 어느 시대든 변하지 않는다.길을 닦으려면, 많은 돈을 써야 한다. 북당의 비단, 곡식, 차 같은 상품들은 금나라로 대량 운송될 수 있고, 금나라의 광물도 북당으로 대량 수입될 것이다.길이 통해야 돈도 통하니, 길을 만드는 것은 시급한 과제였다.이전에도 길을 만들 계획은 있었지만, 작업이 크지 않으니,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동안 궁핍했던 강북부는 항상 개발에 걸림돌이 되었다. 하지만 이번에 태자는 강북부를 금속 중심지로 삼자는 제안했다. 중공업을 그곳에 집중시키고, 금나라에서 원광(原鑛)을 수입해 강북부에서 가공 후 북당 각지로 판매하자는 것이다.한편, 적동은 무서울 정도로 지식과 배움에 열중하고 있었다. 한자 공부를 마친 뒤에는 요리까지 도전했다. 만두 오라버니가 요즘 계속 일에 바빠, 늦게 귀가하기 때문이었다. 늦게 돌아오면 조금이라도 배고픔을 달래야 하니, 적동이 한 수 뽐낼 때가 되었다.적동은 무슨 일이든 늘 진지하게 임하고, 특히 만두 오라버니의 식사에 더 정성이었다.적동은 희 상궁의 요리 실력이 뛰어난 것을 알고 있었다. 특히 볶음 요리가 강했기에, 볶음 요리를 좋아하는 만두 오라버니를 위해, 그녀는 직접 숙왕부에 찾아가 희 상궁에게 요리를 배워왔다.적동은 수라간에서 신선한 고기를 골라 설랑에게 주기도 했다. 요즘 만두의 설랑도 피곤한 탓인지 살이 빠졌다. 만두 오라버니와 함께 있으면서 좋은 식사를 못 했을 것이다.원경릉은 특별히 수라간에 만두를 위한 보양식을 마련하게 했지만, 적동이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말을 듣고는 수고를 덜었다.적동은 참으로 착하고 효심 깊은 아이였다. 자신이 만든 요리
금나라 사절단은 북당에 열흘 동안 머물렀고, 체결할 협정도 모두 체결되었다. 북당과 금나라는 만족스러운 변방 무역 협정은 맺었고, 양국의 경제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킬 것이다.금나라 사절단을 송별하는 연회가 시작되기 전, 우문호는 경천과 어서방에서 반 시진 동안 대화를 나눴다.열흘 내내 우문호는 그가 공개적으로 혼담을 꺼낼까 봐 경계했지만, 막상 떠나는 날이 되었음에도 경천은 단 한 마디도 그런 말을 꺼내지 않았다. 우문호는 괜히 그를 의심했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그래서 우문호는 작별 인사를 하면서 먼저 말을 꺼냈다."네가 혼사를 청할지 늘 걱정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구나. 무슨 생각이냐? 혹시 이제는 택란에 대한 마음이 식은 것이냐?"정말이지, 그 말이 딱 맞았다. 소중한 딸을 데려갈지 걱정되면서도, 정작 안 데려가겠다고 하면 또 서운한, 복잡한 마음이었다.택란 이야기가 나오자, 경천의 눈빛은 부드러운 빛을 내뿜었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닙니다. 택란이 북당으로 돌아오기 전, 함께 이야기를 나눈 적 있습니다. 확실히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저는 택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아직 혼인하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첫째는 폐하와 마마 곁을 더 지키고 싶은 마음이고, 둘째는 하고 싶은 일이 있기 때문이지요. 예전에는... 제가 철이 없어, 모두를 곤란하게 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혼인하고 싶은 사람이 택란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기다릴 수 있습니다. 저는 택란이 원하는 일을 하기를 바라고, 언제든 묵묵히 기다릴 것입니다."다섯째는 그의 말에 위로받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그렇게 생각하다니, 참 기쁘구나. 하지만 한 가지 미리 말해두마. 네가 기다린다고 해도, 택란이 꼭 너에게 시집갈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마음의 준비는 해두어야 한다. 결국 기다림이 헛된 것이 될 수도 있다."경천은 멈칫하다 말했다."마음의 준비도 되어 있습니다. 만약 그녀가 저와 혼인하지 않는다면, 분명 그녀에게 정말 좋은 사람
서일은 한숨을 쉬며 따라붙으며, 여전히 황제를 설득하려 했다.“폐하, 폴짝이가 크고 혼례를 올리면, 충용후부에서 지내게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황후 마마의 친정에 갔을 때, 며느리가 시부모님과 함께 지내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그럼, 저도 궁에서 머물러야지 않겠습니까? 폐하께서 제가 필요하실 때, 언제나 편히 부리실 수도 있고, 얼마나 좋습니까?”우문호는 다음부터 원경릉이 바쁠 땐, 쉬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러다 서일의 잔소리에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서일을 궁 밖으로 내보내기로 결정을 내렸으니, 그는 후회하지 않는다. 비록 아쉬움은 있지만, 서일에게는 아들이 있고, 앞으로는 손자도 생길 것이다. 그러니 서가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집안을 세우고 자손을 위해 가업을 번창시키고 인맥을 다져야 했다.목여 태감은 황제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기에, 뒤에서 서일을 천천히 설득하며, 그가 황제의 뜻을 알아차리기를 바랐다.우문호는 앞에서 걸으며, 뒤에서는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듣고 있었다. 햇살은 포근하고 바람은 부드러웠다. 이런 평범한 오후가 하나하나가 모여, 그의 드문 평범한 나날들을 이루고 있었다.우문호는 이런 시간이 좋았다.우문호는 충용후부를 떠나, 말도 없이 바로 남대영(南大營)으로 향했다.군 출신인 그는 군영에 특별한 소속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황제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남대영의 장군들과 병사들은 깜짝 놀랐다. 금나라 황제가 북당에 머무는 중인데, 어찌 이런 시기에 군영을 방문했을까? 게다가 사전 통지도 없이 왔기에, 병사들은 정신없이 황제를 영접할 수밖에 없었다.남대영에는 그의 옛 부하들이 많았다. 우문호는 익숙하고 감격스러운 그들의 얼굴을 보자, 괜히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수년이 지나도록 그들과 한 번도 모이지 못했으니 말이다.흥이 난 우문호는 즉시 술을 사 오라고 명했고, 장군들과 함께 실컷 마시자고 했다.서일도 더는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그도 오랜만에 장군을 보니, 전장에서 함께 피를 흘리던
북당의 경성은 저녁에도 통금이 없어, 늦은 밤에도 거리가 떠들썩했다. 거리에는 먹고 마시고 즐기는 오락거리가 넘쳐났다.경천은 낮에는 마음껏 즐기기가 조심스러웠지만, 해가 질 무렵 주루에서 식사와 함께 술을 조금 마시자, 금세 취기가 올라 마음을 놓고 즐기게 되었다.그는 오랜만에 평범한 백성처럼 마음껏 뛰놀고, 웃으며, 자유롭게 즐길 수 있었다.택란도 조금 술을 마셨다. 평소엔 조용한 그녀였지만, 오늘 밤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시끌벅적하게 놀았다. 택란은 번화한 청란 거리를 달리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웃음을 가득 머금고 있는 얼굴들이 보였고, 그녀는 마음엔 자부심이 피어올랐다. 이 시대는, 정말 북당에서 가장 찬란한 시대가 아닌가?아버지는 정말 대단한 분이었다.경천은 택란의 아름다운 미소를 보며, 마음속에서 격한 감정이 솟구쳤고, 본능적으로 달려가 그녀의 손을 잡고 함께 뛰었다.만두와 경단은 서로 눈을 마주친 뒤, 그저 참기로 했다. 워낙 즐거운 날이고 아버지도 이 모습을 보지 않았으니, 그냥 넘어가려 했다.이날 밤, 궁문은 그들을 위해 문 닫는 시간을 늦췄다. 그들이 궁으로 돌아왔을 땐 이미 자시가 지난 시각이었다. 서일은 궁문 앞에서 계속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돌아오자, 급히 뛰어가 황제에게 알렸다.우문호는 그제야 마음을 놓고, 겉옷을 벗고 잠자리에 들었다.우문호는 아들을 걱정한 적은 없었다. 다만 딸이 걱정이었다. 경천이 함께 갔기에, 혹시라도 이상한 마음을 품고, 손이라도 잡고, 뽀뽀라도 하면 어찌한다는 말인가?경천이 북당에서 머무는 동안, 자유로운 시일도 오늘뿐이었다. 이후에는 두 나라가 논의에 들어갔고, 변경 무역 협정 체결을 위한 육체와 정신적 소모전이 시작되었다.우문호는 모든 것을 태자에게 맡기고, 여유로움을 만끽했다. 상업과 경제는 이리 나리가 직접 나서야 했고, 수보 역시 때때로 상황을 살펴야 했다.모두 이렇게 바쁘니, 원경릉은 수라간에 특별히 보신할 음식들을 준비하라고 명해, 그들의 기력을 회복시키고자 했
우문호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숙왕부에 술과 고기를 좀 보내라고 명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이를 막았다. 원경릉이 설명하고 나서야, 다섯째는 얼마 전 그들이 금주를 외치던 일이 떠올랐다. 며칠이나 갈까 싶었는데, 이렇게 오래 버틸 줄은 몰랐다.게다가 무상황은 며칠 전부터 경천제가 언제 도착하는지를 계속 물어보고 있었다. 무상황의 고집스러운 성격상, 웬만한 사람은 그를 이길 수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누군가에게 철저히 제압당하고, 강제적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술을 금하겠다고 하다니?오늘 밤의 경성은 온통 술향으로 가득했다. 택란과 사탕이, 안지도 계화주(桂花酒)를 마셨다. 계화주는 향이 은은하고, 쉽게 취하지 않는다. 살짝 취기가 돌자, 소녀들끼리 은밀한 이야기를 하기에 딱 좋았다.궁 안은 풍악과 춤, 술이 끊이지 않았고, 매우 떠들썩했다.하지만 우문호와 경천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냉정을 유지했다. 오늘 밤은 정사 이야기를 하지 않기로 했지만, 결국 말을 꺼내고 말았다. 바로 택란이 전에 제안했던 일이었다. 우문호는 처음엔 급하게 의논할 생각도 없었고, 먼저 상업에 관해 이야기하려 했던 참이라, 경천의 말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하지만 택란의 제안이라는 말에, 다섯째는 오늘 당장 의논하자고 말했다.그리하여 이 이야기는 술상 위에서 오갔고, 양측 관리들이 의견을 하나둘 내기 시작했다.양국 모두 추진 의사가 있었지만, 세부 조정이 필요했다.원경릉과 궁중의 내명부 부인들은 자리를 떠나, 별채에서 담소를 나누며 막걸리를 마셨다. 경성에서 지내는 부인들은 자주 모였다. 하지만 어쩌다 안왕비가 돌아왔기에, 더욱 화기애애했고, 밤이 새도록 이야기꽃이 피는 법이다.부군이 있는 여인들이라, 대부분 부군 이야기를 하였다. 다들 그동안 많은 일을 겪었고, 젊은 부군도 어느새 연세가 있는 아저씨가 되었다. 부부 사이에 작은 다툼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에, 다들 주로 부군 험담으로 분위기를 띄웠다.하지만 다들 부군을 사랑하기에, 그저 말로만 투덜댈 뿐, 행복감이 가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