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계획을 짜는 임무는 또 나에게 떨어졌다. 나는 더욱 난감해졌다.“너희 혹시 나한테 말할 기회 양보하는 거야?”민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아니. 절대 아니야. 난 정말 좋은 아이디어가 안 떠올라서 그래.”“난 더 안 돼. 너희들도 알다시피 나 학교 다닐 때 머리 나빴잖아. 지금 나이 들어서 더 나빠졌어.”“나이 들긴 무슨. 네가 몇 살이라고.”민우는 현성을 발로 퍽 걷어찼다.현성은 히죽 웃으며 말했다.“24이면 이제 어리지 않아. 내 친구 중에 나랑 동갑인 애가 있는데 벌써 애 둘 낳았어.”“그건 너무 일찍 장가가고 너무 일찍 애 낳은 거고. 젊은 나이에 오히려 부담감만 생기고 부러워할 거 뭐 있어?”민우와 현성은 늘 이렇듯 아침부터 저녁까지 말싸움이 끝나질 않는다. 하지만 이 덕에 가게 분위기가 딱딱하지도 무겁지도 않고, 출근하는 게 즐거운 일이 되는 거다.나는 두 사람을 바로 저지했다.“내 말 들어 봐.”두 사람은 동시에 조용해졌다.나는 두 사람에게 말했다.“우리는 매번 주해진이 먼저 시비 걸기를 기다렸다가 반격하잖아. 그러면 끌려다닐 수밖에 없어.”“이미 주해진과 김진호를 쫓아내기로 마음먹은 이상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가 먼저 움직이는 거야.”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나는 말을 이었다.“주해진의 술집은 우리가 직접 나서면 안 돼. 무조건 우리랑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을 보내 문제 일으켜야 해.”현성은 가슴을 팍팍 두드리며 말했다.“그건 나한테 맡겨. 내가 아는 사람 많아. 찾을 수 있는 사람도 많고.”나는 고개를 끄덕였다.“응. 이 일은 너한테 맞아. 그럼 네가 해.”그때 민우가 곧장 물었다.“그럼 나는? 난 뭐 해?”“넌 아무것도 할 것 없어. 가게만 잘 보면 돼.”민우는 그 말에 살짝 서운해했다.“지금 나 무시하는 거야? 너희 둘은 모두 할 일이 있는데 나 혼자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왜? 내 능력이 부족해서 그래? 혹시 방해할까 봐 그래?”“아니야. 오히려 네가 가게 잘 지키는 게
주해지은 워낙 해야 할 일이 많은 몸이다....천수당.민우와 현성은 주해진과 김진호가 의기소침해서 떠나는 걸 보더니 ‘푸하하’ 웃음을 터뜨렸다.“갔네. 드디어 갔어.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으니 분명 화 엄청 났을 거야.”“주제도 모르는 것들. 우리 셋이 얼마나 완벽하게 준비했는데, 본인들 실력으로 우리를 이기려고?”민우와 현성은 너무 기뻐 어쩔 줄 몰라 했다.하지만 나는 두 사람더러 경계를 늦추지 말라고 했다.“주해진이 이번에 실패했으니 아마 불만이 가득할 거야.”“불만이 많아 봤자 뭐 해? 지금 천수당은 우리한테 달렸는데, 설마 그렇다고 반란이라도 일으키겠어?”나는 진지하게 말했다.“현재 천수당이 우리 손에 달렸으니 그 둘은 아마 더 불만이 많을 거야. 애초에 투자할 때는 주해진과 김진호가 먼저 가게를 사들였잖아.”“그런데 지금 본인들이 오히려 밀려나고 우리가 가게를 차지했으니. 너희들이 주해진 입장이었어 봐. 불만 안 생기겠어?”“수호 말이 맞아.”현성이 맞장구쳤다.그때 민우가 물었다.“그럼 앞으로 어떡해야 해? 계속 두 사람 경계할까? 그건 너무 끌려다니는 것 같은데.”“경계는 당연히 해야지. 하지만 계속 경계할 수는 없어. 우리 상황이 복싱과 비슷해. 우리는 현재 끌려다니고 있어 계속 방어만 하고 있어. 방어하면 너무 처참하게 발리지는 않았겠지만 승리하려면 먼저 공격하는 법도 배워야 해.”민우는 흥미진진한 듯 나를 바라봤다.“네 모습을 보니까 방법이 있나 본데? 뭐야 얼른 말해 봐.”“본진을 친다는 말 들어 봤지?”“본진을 친다고?”현성과 민우는 어리둥절했다.나는 얼른 설명했다.“고대에는 싸울 때 전술을 많이 사용했잖아. 적군이 전군 출동할 때, 총명한 장군들은 병사들더러 맞서 싸우라고 하지 않아. 일부는 적과 싸우게 하고 일부는 뒤로 돌아가 적의 본진을 털게 하지.”“아. 알아들었어. 하지만 우리 상황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데?”현성은 이내 호들갑 떨었지만 완전히 알아들은 건 아니었다.민우는 현성을 발로
김진호는 그 말을 듣고도 포기하지 않았다.“그럼 어떡해요? 우리 둘은 지금 남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있고, 천수당이 한 달에 얼마나 버는지도 모두 정수호와 나머지 두 자식이 정하잖아요.”“형, 내가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지금 이러는 거 국물이라도 좀 차려지지 않을까 기다리는 똘마니들 같아요. 그러니 우리는 정수호가 정해준 대로 받을 수밖에 없고, 정수호가 주지 않으면 그것조차 차려지지 않을 거잖아요.”“그건 너무 수동적이에요.”주해진은 어두운 얼굴로 김진호를 흘긋 봤다.하지만 김진호의 말은 틀린 것 하나 없었다.주해진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렇게 가다가 자기가 쫓겨날 거라고.주해진과 김진호는 천수당에서 아무런 권력도 없기에 뭐라 말하든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 그러다가 연말이 되면 배당금 좀 받는 게 전부다.돈 버는 것도 문제지만 아무런 실권이 없으면 알바생과 다를 게 없다. 이건 주해진이 원하는 게 아니다.주해진은 돈을 버는 게 목적이기에 권력도 어느 정도 원했다.“진호야, 보아하니 머리 좀 굴려 봐야겠어.”주해진은 모처럼 진지하게 말했다.그 말을 들은 김진호가 입을 열었다.“형, 난 총명하지 않지만 힘은 있어요. 힘쓰는 거라면 나한테 맡겨요. 우리 한 명은 머리를 쓰고 한 명을 힘을 써서 꼭 천수당 빼앗아 와요.”주해진은 웃으며 말했다.“넌 다 좋은데 성격이 너무 급해. 그러면 안 돼. 자제할 줄도 알아야지. 넌 혹시 못 느꼈어? 정수호가 많이 변했다는 거?”김진호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난 모르겠던데?”“제대로 생각해 봐. 예전에 정수호가 어땠고 지금 정수호가 어떤지. 예전에도 지금처럼 점잖고 기분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았어?”주해진의 귀띔 덕에 김진호는 열심히 기억을 되짚었다. 그러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다는 생각에 김진호의 눈은 저도 모르게 둥그레졌다.“형, 그렇게 말하니까 나도 정수호가 달라졌다고 느껴져. 예전에는 이렇게 세심하지 않았어. 젠장. 대체 무슨 묘약을 먹었길래 이렇게 잔꾀가 많아졌지?”
때문에 두 사람이 장부를 대조해 봐도 잘못된 점을 찾아낼 리가 없다. 난 이미 주해진이 얼마나 많은 걸 바라는지 알고 있다. 그는 아마 우리가 돈 많은 고객을 많이 접했다는 걸 알고 그 돈을 차지하려고 하고 있었다.만약 주해진이 매번 끼어들지만 않았더라도 나는 그 부분까지 이들과 함께 나눴을 거다. 하지만 주해진과 김진호는 계속 우리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우리를 믿지 못했는데, 내가 두 사람에게 우리가 번 돈을 나눠줄 리 없다.그건 너무 허황한 꿈이나 다름없다.이번 식사 자리에서 우리는 각자 각자 꿍꿍이를 숨긴 채 끝마쳤다.연승호는 우리와 협력 건 얘기를 하려고 기다렸지만, 식사가 끝날 때까지 우리는 협력의 협자도 꺼내지 않았다.결국 연승호가 s를 잡으며 물었다.“정 사장, 우리 협력 건은 언제 얘기할 거야?”“아, 사실 식사하면서 말하려고 했는데 아가 봤다시피 내부 모순이 좀 있어서 우선 그걸 해결해야 해.”“그건...”“나중에 따로 얘기해.”우리는 한꺼번에 썰물 빠지듯 모두 가게를 빠져나갔다.단숨에 혼자가 된 연승호는 할 말을 잃었다.“젠장. 공짜 밥 먹으려는 거였네. 누가 뭐 겁먹을 줄 알고.”우리는 주해진과 김진호를 데리고 한의관으로 돌아왔고, 나는 사전에 준비한 장부를 꺼내 보여주었다.주해진은 장부를 펼쳐보며 우리가 무슨 꿍꿍이인지 생각했다. 솔직히 그는 이미 임화영을 약점으로 협박해 그녀 입에서 우리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때문에 주해진은 우리가 본인과 김진호를 쫓아낼 완벽한 계획이 있다고 생각했다.사실 그도 우리 셋을 쫓아내고 본인과 김진호가 함께 가게를 운영할 생각이었다.어쨌든 천수당도 이제 고객 자원이 안정적이라 돈 못 벌 걱정할 필요는 없으니까.주해진은 이번에 장부에서 꼬투리를 잡을 생각으로 온 거였다. 하지만 장부에서는 아무 문제점도 발견하지 못했다.주해진은 속으로 중얼거렸다.‘이럴 리 없는데?’‘임하영이 그렇게 쉽게 장부를 손에 넣었다고?’주해진은 허허 웃으며 말했다.“문제없네... 어, 우리
김진호는 겉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그냥 둘러보러 왔던 거야. 어쨌든 우리도 주주잖아. 그러니 와서 볼 권리는 있는 거잖아.”나는 고개를 끄덕였다.“그건 당연하지. 하지만 뭘 둘러보려 한 거야? 장사가 잘되는지? 아니면 장부?”장부라는 글자에 주해진과 김진호의 표정이 매우 이상해졌다.주해진은 ‘허허’ 웃으며 말했다.“무슨 그런 말을 하고 그래? 장부는 정 사장이 사람을 찾아 정리하고 있는데, 우리야 당연히 믿지.”현장에 있는 우리는 모두 연기를 하고 있었다. 분명 서로의 계획을 다 알고 있으면서 모르는 척.나는 허허 웃으며 말했다.“그럼 마침 때를 잘못 골랐네. 장사가 잘되는지 보려면 낮에 와야지 지금은 밤이라 고객 적어.”나는 은근슬쩍 두 사람에게 다른 목적이 있는 걸 안다고 말했다.김진호는 직설적인 성격이라 빙빙 돌려 말할 줄 모르기에 몇 마디 주고받지도 않았는데 바로 짜증을 냈다.“형. 빙빙 도려 말하지 말고 직접적으로 말하면 안 돼요? 원본 장부를 보고 싶다고.”김진호는 끝내 자기 목적을 드러냈다.그 순간 주해진은 다급히 막아 봤지만 여전히 한발 늦어 결국엔 얼굴색이 어두워졌다.나는 웃으며 말했다.“장부를 보고 싶었던 거였어? 그게 뭐 별거라고. 이따가 식사 다하면 보여줄게. 대충 계산해 보니 천수당이 영업 시작한 지 거의 한 달이 다 돼 가네. 확실히 한 달 매출을 결산해 볼 때가 됐어.”김진호는 내 말에 무척 기뻐했지만 옆에 있던 주해진은 미간을 팍 구겼다.나의 시원시원한 대답에 주해진은 오히려 생각이 많아졌다. 그는 이내 웃으며 말했다.“사실 난 그냥 이번 달 매출이 얼마인지 보고 싶은 것뿐이야. 하, 우리가 이 가게를 오픈하려고 투자 많이 했잖아. 만약 예상했던 매출액에 달성하지 못하면 속상할 거야. 하지만 비슷하면 앞으로 당연히 마음 놓고 가게 맡길 거야.”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물었다.“주 사장 예상 매출은 얼마인데?”“어...”주해진은 사실 핑계를 대기 위해 아무 말이나 내뱉었던 거지
민우는 허허 웃으며 머리를 쓸었다.“나도 얼른 돈 많이 벌고 싶어 그러지. 나 임설아랑 결혼할 날만 기다려.”그 말에 현성이 끼어들었다.“누구는 아니야? 뭐든 적당히 해야 해.”“나랑 네가 같아? 넌 재벌 2세고 집에 돈이 많잖아.”“헐, 그러면 나도 날 증명할 필요가 없었지. 잊지 마. 우리가 투자한 돈은 우리 아버지가 나 세차장 오픈하라고 준 거야.”“그런데 세차장이 아니라 약방이 됐으니 나도 집에 그럴싸한 말은 해야 할 거 아니야.”“나 아직 가족한테 내가 머 하는지 말 못 했어. 매번 부모님이 세차장 오겠다고 할 때마다 계속 날짜 미뤘어.”“하하하...”민우는 웃음을 터뜨렸다.사실 한약관이 잘 발전하여 돈 많이 벌기를 바라는 건 모두 똑같다.하지만 이건 조급해하면 안 된다.“저녁에 같이 밥 먹자.”우리 셋은 대화하면서 밖으로 걸어나갔다.그때 익숙한 차 한 대가 우리 앞에 멈춰서더니 문이 열렸고, 안에서 주해진과 김진호가 모습을 드러냈다.두 사람을 본 순간 민우는 바로 화를 주체하지 못했다. 현성도 참지 못하고 눈을 부릅떴다.나는 두 사람더러 적당히 하라고 눈치를 줬다. 지금은 상대의 경계를 불러일으키면 안 되니까.”“주 사장, 왔어?”나는 웃으며 주해진과 인사했다.주해진 영시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한동안 와보지 않아 둘러보려고. 설마 우리를 반기지 않는 건 아니겠지?”“그럴 리가. 내가 말했잖아. 두 사람이 가게 일에 끼어들지만 않는다면 언제든 환영한다고.”“그럼 됐어. 식사하러 가나 보네? 같이 가지 그래?”주해진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나는 그 요청을 거절하지 않았다.“그래, 같이 가.”주해진과 김진용이 한차를 타고 우리 셋이 한차를 탔다.민우는 이해가 단 된다는 듯 물었다.“수호야, 주해진과 김진용은 분명 무슨 일이 있어서 온 거야. 그런데 왜 밥까지 같이 먹어?”나는 차에 시동을 걸면서 말했다.“식사를 같이하지 않는다고 상대가 트집 잡지 않는 것도 아니잖아. 피할 수 없다면 직면해서 대체
“정수호, 오늘 아침 얘기는 잘했어?”내가 사무실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돼서 민우가 와서 임설아 아버지와 얘기는 잘했는지 물었다.나는 웃으며 대답했다.“아주 잘했어. 상대가 나에 대한 걸 대충 다 안대. 앞으로 그 사람이 오기만을 기다리면 돼.”“나 요즘 가게 일 못할 것 같으니 네가 관리해. 난 J시 고객한테만 집중할 거야.”민우는 소파에 앉아 말했다.“당연히 그래야지. 서아한테서 들었어, 이 고객만 잘 치료하면 앞으로 천수당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거라더라.”민우는 아주 기뻐하며 미래에 기대하고 선망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니 살짝 귀띔해 줄 필요가 있어 보였다.“희망 너무 품지 마.”“어? 왜?”민우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내가 조사한 자료를 민우한테 보여주면서 말했다.그 연시우라는 사람 능력이 엄청 뛰어나, 확실히 우수하긴 하더라. 하지만 아주 큰 문제가 있어. 잘 지내기 어려운 타입이야.”“얼마나 어려운데?”민우는 자료를 보며 물었다.“연시우가 사랑 때문에 상처받은 적이 있어서 그 뒤로 여자 친구도 사귀지 않고 지금껏 결혼도 안 했대. 그렇다는 건 아주 편집적이고 고집불통이라는 뜻이겠지.”“그런 사람은 잘 지내기 어려워. 그 사람으로 고객을 더 끌어모으려는 건 더 불가능하고.”민우는 웃으며 말했다.“그래도 상관없어.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면 앞으로 그 사람 이름만 대도 다른 사람들이 우리 가게를 대단하게 봐줄 거야. 그러니 너무 부담 갖지 말고 평소대로 치료하고 하던 대로 해.”“천수당은 이미 충분히 잘 되고 있어. 다만 더 발전시키려면 우리 노력이 필요할 뿐이지.”민우는 내가 부담을 느낄까 봐 이런 말을 했지만, 사실 나는 조금도 부담스럽지 않았다.나는 소여정의 일을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기도 했고. 이번 치료에서 나는 해야 할 것만 하면 된다.그날 오후, 현성이 돌아오자 민우가 헐레벌떡 달려가 물었다.“어때? 새로운 고객 생겼어?”현성은 물 한 모금을 먹었다.“그게 어디 그렇게
나는 소여정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특히 사람은 아플 때 가장 취약하고 허튼 생각을 하기 십상이다.소여정한테 필요한 건 배려와 관심이다. 하지만 정태곤의 등장은 소여정의 뺨을 때린 것처럼 강제로 그녀를 현실로 끌어냈다.때문에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이 한꺼번에 몰려와 감정 통제가 잘되지 않는 건 어쩔 수 없었다.나는 얼른 소여정을 위해 혈자리를 눌러 기분을 풀어주었다.얼마 뒤, 소여정의 마음은 점차 가라앉았다. 나는 얼른 뒤돌아 정태곤을 바라봤다.“이제 가. 나도 갈 거야. 소여정 씨 혼자 휴식하게 해.”정태곤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임 회장님이 나더러 소여정 씨 보살피라고 했어.”“필요 없어. 꺼져!”소여정은 언짢은 듯 울부짖었다. 돌보기는 무슨, 이건 감시였다.소여정은 정태곤을 발로 뻥 차버리고 싶었다.정태곤의 얼굴은 더 어두워졌다.그때 내가 끼어들었다.“네가 여기 있으면 소여정 씨 기분이 더 나빠질 거야. 정말 소여정 씨를 위한다면 당장 가.”“걱정하지 마. 나도 갈 거야. 난 의사라 진찰하러 온 거지 이상한 짓 하러 온 거 아니야.”정태곤은 여전히 망설였다.소여정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서서 손에 잡히는 대로 마구 던졌다.“꺼져! 꺼져! 꺼지라고!”우리 둘은 동시에 쫓겨났다.밖으로 나온 정태곤은 나를 차갑게 쏘아봤다.“오늘 일은 사실대로 임 회장님께 고할 거야. 내가 문 앞에서 들었던 대화까지 전부.”나는 상관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마음대로 하던가. 그냥 말만 그렇게 한 거야. 임천호는 그렇게 쪼잔한 사람 아닐 거야.”정태곤은 내 멱살을 덥석 잡았다.“왜 그렇다고 생각하지? 정수호, 감히 임 회장님 여자를 건드려? 너 죽고 싶어?”나는 정태곤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펴고는 그를 밀쳐냈다. 그러고는 옷을 정리한 뒤 정태곤의 차가운 눈빛을 마주 봤다.“나도 경고하는데, 나한테 함부로 손대지 마. 나도 이제 예전의 내가 아니야. 네가 만약 나 건드리면 나도 네 강냉이 털어버리는 수가 있어.”“하하.
정태곤은 여전히 차가운 표정으로 무표정한 로봇처럼 서 있었다.안 그래도 아파서 정서가 불안정한 소여정은 저를 자꾸만 몰아붙이는 정태곤을 보니 결국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 하지만 그녀는 임천호가 지금 나타날 리 없고, 자신도 임천호한테 정말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소여정은 단지 임천호의 정부다. 그녀의 신분은 이미 그녀가 사랑과 진심을 받지 못한다는 걸 결정했다.분풀이하고 난 소여정은 오히려 더 무력감이 들었다. 그 무력감은 마음에서 온 거고, 캄캄한 앞날에 대한 걱정에서 비롯된 거다.소여정은 몸이 나른해서 곧장 소파에 넘어졌다.나와 정태곤은 동시에 달려갔지만, 정태곤이 나보다 한발 빠르게 소여정을 부축했다. 하지만 나는 이내 소여정을 빼앗아 왔다.정태곤은 분노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손 떼!”“손 떼야 할 사람은 너야, 본인이 무슨 신분인지 생각해 보지 그래? 네 신분으로 소여정 씨한테 손댈 수 있어?”정태곤의 눈에는 약간의 당혹함이 스쳐 지났다. 하지만 이내 대답했다.“난 임 회장님 대신 아가씨를 돌봐 주는 거야.”“하, 임천호가 그걸 믿을까? 넌 임천호 곁에 있는 개일뿐이야. 소여정 씨 건드릴 자격 없어. 네가 소여정 씨한테 딴마음 품고 있다는 거 알아. 하지만 임천호와 일하려면 그 마음 접어야 할 거야.”말을 마친 나는 어깨로 정태곤을 툭 밀쳐냈다.정태곤은 섭섭하면서도 이대로 인정하기 싫었고, 무엇보다 이대로 포기하는 게 아쉬웠다.정태곤은 소여정과 만날 기회가 많지 않기에, 현재가 몇 안 되는 소중한 기회였다. 그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때문에 재차 앞으로 걸어왔다.나는 싸늘한 눈초리로 정태곤을 쏘아봤다.“왜? 설마 임천호를 배신할 거야?”“헛소리하지 마. 임 회장님은 내 은인이야. 내 우상이기도 하고. 난 영원히 회장님 배신하는 일 없어.”‘어쩐지 정태곤이 임천호를 위해 목숨 바쳐 일한다 했더니, 우상이었던 거였네.’나는 차갑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그렇다면 소여정 씨와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