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는 세면대 위에 놓았던 바나나 반 개를 크게 베어 물고 바로 문을 열었다.“변비 때문에 바나나 좀 먹은 거야. 넌 허구한 날 이상한 생각만 하더라? 머릿속에 대체 뭐가 들었어?”애교의 반격에 남주가 오히려 할 말을 잃었다.하지만 남주도 그렇게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니다. 남주는 애교를 꿰뚫어 볼 듯 한참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설마 내가 네 말을 믿게 하려고 일부러 바나나를 먹어버린 건 아니지? 그렇다면 정말 비위가 좋은데? 어떻게 자기 걸...”남주는 말하면서 애교의 치마를 바라봤다.그 뜻을 이해한 애교는 인정사정없이 남주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튕겼다.“너 무슨 생각하는 거야? 내가 그렇게 변태야?”남주 누나는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헤실 웃었다.“농담이야. 뭘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여? 네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모를까? 네가 나랑 같았으면 호르몬 이상이 생길 리도 없잖아. 게다가 네 얼굴과 몸매면 손가락 까딱하면 남자들이 미친 듯이 달려들 텐데, 그런데 너 정말 해결할 생각 없어?”“우선 남편이랑 얘기해 볼게. 어떻게 말하는지 보고.”“네 남편은 절대 솔직하게 말하지 않을걸? 아니면 내가 먼저 찔러봐?”남주의 제안에 애교도 왠지 괜찮겠다 싶어 얼른 남주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그럼 부탁할게. 네가 나 대신 우리 남편 좀 찔러 봐. 꼭 녹음 혹은 영상 증거 남겨야 해.”“너도 이미 다 알고 있나 보네. 입으로는 그렇게 부인하더니”남주는 한숨을 쉬며 애교의 손등을 토닥였다.애교는 사실 집안일을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지만 왕정민의 약점을 잡으려면 남주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게다가 이미 마음을 편히 먹었기에 남이 알든 말든 상관없었다. 어찌 됐든 왕정민과 이혼하는 건 기정사실이니 다른 사람이 아는 것도 시간문제일 뿐이니까.“지금 마침 한가하니까 이따가 정민 씨 회사에 들를게.”남주의 말에 애교가 걱정되는 듯 말했다.“무조건 조심해. 절대 발각되지 말고. 안 그러면 너한테 무슨 짓 할지 모르니까.”“왕정민이
“아니야, 요즘 매일 회사에서 야근하느라 집에 갈 시간이 어디 있다고.”왕정민이 다급히 설명했다. 사실 왕정민도 본인 마음대로 되지 않아 너무 답답했다.‘설마 내가 요즘 너무 무리했나?’그때 전소혜가 싸늘하게 말했다.“사실이어야 할 거야. 만약 나를 속이는 게 발각되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왕정민은 얼른 소혜를 품에 안았다.“내가 그럴 리가 없잖아. 자기는 내 가장 소중한 사람인데, 내가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와도 절대 자기 배신하는 일은 하지 않아.”왕정민은 소혜를 품에 안고 있었지만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소혜도 사실 예쁘장하다. 가슴도 크고, 골반도 있고, 얼굴도 예뻤으니까.물론 애교와 비하면 한창 멀었지만.왕정민이 소혜를 만나는 건 순전히 소혜가 저한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소혜의 아버지는 큰 건설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왕정민은 늘 소혜의 아버지와 협력하고 싶어 했다.그런데 계속 기회를 찾지 못하다가 우연히 전승빈의 딸 전소혜를 알게 되었고 그 뒤로 미친 듯이 구애하기 시작했다.그러다 끝내 소혜의 마음을 얻고 말았다.애초에 소혜와 만날 때 왕정민은 자극적인 관계에 취해 매번 관계도 오래 가졌지만 지금은 좀처럼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아예 서지 않거나, 몇 번 하지 못하고 죽어버리는 일이 허다했으니.그 때문에 소혜가 자꾸만 왕정민이 아내를 만나러 집에 들르는 건 아닌지 의심하곤 한다.소혜도 애교가 본인보다 훨씬 예쁘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그때 소혜가 화가 난 듯 투덜거렸다.“내가 대체 오빠 어디가 좋아서 만나는지 모르겠다니까. 유부남에, 잘생긴 것도 아니고, 이제 그것도 안 된다니. 나 아직 이렇게 젊은데 오빠랑 계속 이렇게 지내야 하는지 모르겠어.”그 말에 왕정민은 덜컥 겁을 먹고 다급히 말했다.“내가 잘 치료할게. 나도 계속 이런 건 아니잖아. 요즘 피곤해서 그래. 시간을 줘, 내가 꼭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게.”“그럼 치료 빨리 받아. 난 오빠 오래 기다릴 마음 없으니까.”소혜가 으름장을 놓자 왕정민은 헤실거리
왕정민은 얼른 손을 빼고 소혜를 밀어버렸다.“남주 씨가 여긴 어쩐 일로 왔어요?”남주는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내가 오면 안 돼요? 갑자기 쳐들어와야 밖에서 뭘 하는지 알 수 있을 거 아니에요. 왕정민 씨, 이제 나한테 약점이 잡혔네요? 역시나 밖에 여자가 있으니 반년 동안 들어가지도 않은 거였네.”그 말에 소혜가 언짢은 듯 끼어들었다.“저 여자 누구야? 어디서 감히 우리를 말해?”남주는 입가에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소개하지. 최남주, 애교의 베프거든. 저 자식 아내의 베스트 프렌드. 당신들 바람피우는 현장 잡으러 왔어.”왕정민은 하하 큰 소리로 웃어댔다.“바람피우는 현장을 잡는다고? 우리는 아무 짓도 안 했는데요?”“나 다 봤어요. 저 여자가 정민 씨 품에 안겨 있고, 정민 씨 손이 저 여자 옷 안에 들어가 있는걸. 그러면서 뭐? 아무 짓도 안 했다고? 왕정민 씨 사람 참 뻔뻔하네요.”왕정민은 여전히 아무렇지 않은 듯 허허 웃었다.“소혜가 가슴이 불편하다고 해서 그냥 눌러준 것뿐인데, 이건 그저 치료라고요.”“아하, 저 여자 치료를 도와줬다고? 그렇다면 그쪽 머리도 정상은 아닌 듯한데, 내가 치료해줄까요?”남주는 말하면서 왕정민에게 걸어가 테이블 위에 놓인 재떨이를 집어 들고 당장이라도 왕정민을 내리칠 것처럼 굴었다.그 동작에 돌란 왕정민은 연신 뒷걸음쳤다.“최남주 씨, 지금 뭐 하는 겁니까? 미쳤어요?”남주는 어두운 표정으로 차갑게 말했다.“치료해 주려는 건데, 왜 도망쳐요?”“그렇게 치료하는 게 어디 있어요?”“여자 옷 안에 손 넣고 가슴 주무르는 게 치료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건 왜 치료가 아니에요?”남주가 당연하다는 듯 말하자 왕정민은 버럭 소리쳤다.“미친년이! 경고하는데 당장 여기서 나가. 안 그러면 나도 안 봐줄 거니까.”남주는 왕정민의 말에 팔짱을 끼고 받아쳤다.“안 봐준다고? 누가 할 소리! 덤벼!”“사람이 왜 그래요?”그때 소혜가 언짢은 듯 달려 나와 남주한테 따져 물었다.그러자 남주는
왕정민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너무 난감했다.한쪽은 소혜를 구해야 한다는 마음이었지만 또 한편으로 증거를 포기할 수 없었다.왕정민이 어떻게 결정할지 생각지도 못했는데 남주는 왕정민이 망설이는 모습을 보더니 또 소혜의 뺨을 후려쳤다.“아, 너 가만 안 둬!”소혜는 아예 폭발하여 미친 듯 소리쳤다.“가만 안 둔다고? 더러운 년이 어디서, 남의 남편 꼬신 주제에. 너 같은 게 조선 시대에 태어났으면 돼지우리에 갇혔어! 쓰레기 같은 것들, 내가 오늘 내 친구 대신 너희 분리수거한다!”남주는 워낙 성깔 있기에 소혜의 머리채를 쥐고 아예 때려죽일 것처럼 굴었다.상황이 점점 심상치 않자 왕정민도 다른 걸 따질 겨를이 없이 다급히 남주에게 달려들었다.“최남주 씨, 미쳤어요? 당장 놔요!”아무리 그래도 왕정민은 남자이기에 힘이 세서 단번에 남주를 떼어냈다.그 힘에 못 이겨 남주는 비틀거리며 하마터면 발을 삘 뻔했다.“왕정민, 해보자 이거지? 감히 나한테 손을 대? 내가 오늘 너 매장하지 않으면 성 바꾼다.”남주는 핸드폰을 꺼내 아까 찍은 사진을 인터넷에 올렸다.그걸 본 왕정민은 다급히 달려들어 핸드폰을 빼앗았고, 순식간에 세 사람은 치고받고 싸우기 시작했다.소혜는 남주에게 뺨을 맞았다는 게 너무 분해 복수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달려들었지만 오히려 남주에게 또 머리채를 잡히고 말았다.남주는 왕정민의 손에 잡혀 아무것도 보지 못했지만 두 손을 허우적대며 계속 공격을 이어나갔다.한 손은 소혜의 머리채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마구잡이로 쥐어뜯어 왕정민과 소혜의 얼굴에 븕은 손톱자국이 남았다.왕정민이 경비원을 부리지 않았다면 이 싸움은 얼마나 지속될지 모르는 일이었다.“이거 놔. 더러운 손으로 어딜 만져?”남주는 경비원들에게 버럭 소리쳤다.그게 얼마나 카리스마 있었는지 경비원들마저 놀라 가까이하지 못했다.그러자 남주는 머리와 옷을 정리하고 입가에 냉소를 지었다.“왕정민, 오늘 일은 시작에 불과해. 어디 천천히 두고 보자고.”이윽고 말을 마친 뒤
“왕정민은 눈이 먼 게 틀림없어. 너 같은 미녀를 놔두고 어떻게 그런 여자를 찾아?”애교는 남주가 보내온 사진을 보고 있으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했다.원래라면 화나고 분하고 억울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순간 자기가 불쌍하다는 생각 외에 큰 감정 기복은 없었다.“남주야, 고마워.”남주는 애교의 평온한 목소리에 무슨 일이 있는 줄 알고 걱정스레 물었다.“너 괜찮아? 목소리가 왜 그렇게 평온해?”애교는 덤덤하게 웃었다.“진작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서 그런 모양이야. 아니면 왕정민에 대한 사랑이 그렇게 깊지 않았던가. 아무튼 사진을 봐도 괜찮네.”“맞아, 이래야 해. 왕정민 같은 배불뚝이 아저씨에 인성 쓰레기는 너랑 어울리지 않아. 차라리 그 인간이 바람피운 게 잘된 일이야. 너도 헤어질 이유가 생기잖아. 안 그러면 평생 그런 남자와 있어야 하는데 네 인생이 아까워.”남주의 사고방식은 일반인과는 많이 다르다.애교는 걱정되는 듯 물었다.“그럼 넌 괜찮아? 왕정민이 너한테 무슨 짓 하지 않았지?”남주는 득의양양해서 말했다.“왕정민이 나를? 그러라고 해도 못 그럴 인간이야. 나 이따가 일 있어서 조금 있다 집에 돌아갈 테니 네 몸 잘 돌봐.”“응, 알았어.”남주는 애교와 통화를 끝낸 뒤 바로 태연에게 전화했다.하지만 태연의 목소리는 왠지 이상했다.“무슨 일이야?”“고태연, 너 설마 집에서 혼자 하는 건 아니지?”“넌 어쩜 그런 말밖에 할 줄 몰라? 할 말 없으면 끊는다.”태연은 화가 난 듯 투덜거렸다.“아니야, 나 할 말 있어. 왕정민 바람피워. 이미 애교한테 사실대로 말해줬어. 걔 혼자 있는 게 걱정돼서 그러는데 네가 가서 곁에 있어 줘.”태연은 남주의 말에 다급히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뭐? 왕정민이 바람피우는 걸 목격했다고?”“내가 왕정민 회사를 찾아갔는데 웬 여자를 끌어안고 그 짓을 하고 있는데 나한테 딱 들킨 거 있지. 내가 사진도 찍어뒀어.”남주는 태연에게 사진 한 장을 보냈다.그 사진을 보는 태연의 낯빛은
나는 순간 몇 초 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이 상황에 대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으니까. 게다가 앞으로 어떻게 헤야할지도 막막했다.왕정민이 바람피우는 건 나도 애교 누나도 진작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애교 누나가 상관하지 말라고, 본인 스스로 알아서 할 거라고 해서 나도 손 놓고 있었던 거고.하지만 남주 누나가 이렇게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바람에 우리의 계획은 완전히 흐트러졌다.내가 한참 동안 생각하고 있을 때 남주 누나가 갑자기 내 팔을 꼬집었다.“왕정민이 바람피우면 네가 땡잡은 거지.”“제가 왜 땡잡은 건데요?”남주 누나는 헤실 웃으며 말했다.“그럼 네가 당당하게 애교를 꼬실 수 있잖아.”“...”나는 애교 누나가 이런 말을 할 줄은 생각지도 못해 조심스럽게 말했다.“애교 누나 남편이 바람났으면 애교 누나 마음이 말이 아닐 텐데, 제가 지금 꼬신다고 허락해 주겠어요? 그냥 없는 일로 해요. 저 해치지 말고.”남주 누나는 내 엉덩이를 세게 때렸다.“나를 농락할 때는 아주 대담하더니 왜 이래?”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귀띔했다.“이러지 마요. 여기 병원이에요. 사람들이 오가는데 보기라도 하면 안 좋아요.”“무서울 거 뭐 있어? 우리가 무슨 사이인지 아는 사람도 없는데. 말 돌리지 말고 다시 물을게. 애교랑 자는 거 싫어?”나야 당연히 좋지. 문제는 우선 애교 누나와 얘기해 봐야 하고 형수한테도 말해봐야 한다.내가 망설이며 대답하지 않자 남주 누가가 갑자기 내 거기를 덥석 잡았다.“누나, 이거 놔요.”나는 너무 놀라 어쩔 줄 몰랐다. 특히 남이 볼까 봐 제일 겁이 났다.그러자 남주 누나가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그럼 먼저 동의해. 애교랑 자겠다고.”“남주 누나, 이렇게 급할 거 뭐 있어요? 저 생각할 시간 좀 주면 안 돼요?”“내가 왜 이렇게 급한지 알아? 네가 애교랑 자야 나도 얼른 너 자빠뜨릴 수 있으니까. 내가 너를 얼마나 기다렸는데.”남주 누나는 손으로 주물럭거리며 말했다.그 순간 나는 온몸의 피가
“내가 어떻게 도와요? 설마 여기서 도와달라는 말이에요?”나는 눈으로 화장실 쪽을 가리켰다.“저쪽에 가요.”그 말에 남주 누나는 매혹적인 미소를 지었다.“아주 기회 한번 잡았다고 본인 욕구 채우는 데 급급하지?”“당연하죠. 그러게 누가 이렇게 매력적이래요?”내 말은 사실이었다. 남주 누나는 정말 너무 예쁜 데다 매력이 넘치는 여자다. 결혼하지 않았다면 아마 내가 쫓아다녔을 정도로.남주 누나는 내 말에 기분이 좋았는지 주동적으로 내 팔짱을 끼며 말했다.“안 되는 건 아니야. 하지만 화장실은 너무 별로라 기분도 안 날 텐데, 오늘 밤 내 방에 찾아와, 뭐든 들어줄 테니까.”“정말이죠? 나 속이는 거 아니죠?”내가 조심스럽게 묻자 남주 누나는 일부러 나에게 몸을 비볐다.“예전에 너 자꾸 속인 건 걱정이 돼서 그런 거야. 그런데 지금 내가 애교 약점 잡고 있는데, 더 이상 걱정할 건 없지.”남주 누나가 말하면서 또 주무르는 바람에 나는 몸이 부르르 떨렸다.심지어 당장 남주 누나를 이 자리에서 안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고작 몇 번 주무른 거로 이렇게 된 거야? 내가 정말 하면 아주 좋아 죽겠네?”남주 누나는 입을 막으며 웃었다.그때 나는 잔뜩 긴장해서 말했다.“남주 누나,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누나랑 닿으면 너무 흥분돼요.”“아직 동정이라는 말 하지 마.”남주 누나는 예쁜 눈으로 빛이라도 뿜어낼 듯 나를 째려봤다.나는 일부 중년 여성이 동정인 소년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다.게다가 형수 앞에서도 애교 누나 앞에서도, 또 남주 누나 앞에서도 경험 없는 것처럼 행동했으니 계속 연기해야 했다.때문에 나는 일부러 부끄러워하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그랬더니 남주 누나는 마치 신대륙을 발견한 것처럼 흥분하며 나를 바라봤다.“어머, 내가 아주 보물을 주웠네. 애교 먼저 맛보게 하는 게 아쉬운데?”나는 오늘 저녁에 희망이 있다는 생각에 순간 흥분했다.남주 누나의 모습은 마치 나를 먼저 맛보고 싶어 안달 난 모습이었으니.“남주 누나,
“여기서는 뭐?”남주 누나는 일부러 물었다.남주 누나가 나를 놀리기 좋아하고 내가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는 걸 즐긴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그만 놀려요. 제 말 무슨 뜻인지 알잖아요.”“모르겠는데? 말해 봐.”남주 누나의 요염한 모습을 보자 나는 순간 대담해져서는 누나를 품에 와락 껴안았다.“계속 놀리면 여기서 할 거예요.”내가 용기 내어 말하자 남주 누나는 일부러 내 옷 안에 손을 넣어 가슴을 꼬집었다.“그래? 어디 해봐. 정말 할 수 있으면 앞으로 푸들이라고 안 부를게.”‘젠장, 정말 요물 맞네.’나는 괴로워 미치겠는데 일부러 더 희롱하기나 하고.나는 갑자기 후회되었다. 남주 누나한테 나는 상대조차 안 되니까.하지만 나는 패배를 인정하기 싫었고, 남주 누나가 나를 동생으로 대하며 그저 놀리기만 하는 게 싫었다.결국 나는 대담하게 누나의 치마 속으로 손을 집어넣고 긴장해서 말했다.“정말이죠? 두렵지 않아요? 나 정말 할 건데?”남주 누나는 두려워하기는커녕 일부러 엉덩이를 흔들었다.“그래, 해봐. 네 동료한테 들키는 게 괜찮으면.”‘남주 누나는 역시 내가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너무 요물이잖아.’결국 나는 기가 죽어 말했다.“그래요. 제가 잘못했어요. 여기서 누나 희롱하면 안 되는데.”“어린 게 어디서 나를 이기려 들어? 네 생각은 다 보여. 하지만 방금 같은 모습 좋아.”남주 누나는 발꿈치를 들고 내 귀에 속삭였다.“난 몰래 하는 거 좋아하거든. 누나 젖은 거 못 발견했어?”방금 너무 긴장한 탓에 확실히 발견하지 못했다.그런데 남주 누나의 말을 들으니 다시 손을 넣어 확인해 보고 싶었다.하지만 남주 누나는 바로 내 손을 쳐냈다.“꿈 깨. 넌 이미 기회를 잃었어.”“제가 뭘 하는 것도 아니고, 만져보기만 할게요.”나는 애원하는 투로 말했다.“그래도 안 돼.”“왜요? 아까 이미 만졌잖아요.”“내가 기회를 줬는데 버린 건 너야.”나는 방금 왜 제대로 느끼지 않았을까 후회되었다.그렇게 좋은 기회도
요즘 겪은 일이 너무 많은 탓인지 나도 가끔 감회가 새로울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다.특히 사장님처럼 좋은 분이 유골이 된 걸 보니 마음이 무거웠다.우리는 한동안 돌아갈 수 없기에 사모님은 부모님을 불러 사장님의 유골함을 강북으로 가져가 매장했다.두 어르신은 충격이 너무 컸는지 순식간에 더 늙어진 것 같았다. 항상 친아들처럼 생각했던 사위가 그렇게 됐으니. 간암인 줄 알았을 때도 그렇게 믿기 어려웠는데 또 이런 불상사를 겪었으니 당연히 충격이 컸을 거다.하지만 임민수는 딸이 더 걱정됐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유미야, 너 정말 강북에 안 돌아갈 거니?”사모님은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진실을 파헤치기 전에 절대 안 돌아가요. 엄마, 아빠, 호섭 씨는 두 분께 맡길게요.”사모님은 무척 아쉬워하며 사장님의 유골함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그 순간 사모님의 눈빛은 매우 복잡했다. 아쉬움과 슬픔, 괴로움 그리고 아름다운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도 한데 섞여 있었다.나는 절친한 사람을 잃어본 적 없어 사모님의 심정을 깊이 공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가족을 잃은 고통이 얼마나 괴로운지는 알고 있었다.나와 윤지은은 사모님을 위로하려고 했지만, 사모님은 우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아무 말도 하지 마.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아니까.”사모님은 매우 침착했고 엉엉 울지도 않았다.그런 사모님의 모습이 나와 윤지은은 모두 걱정되었다.하지만 사모님이 말했다.“걱정할 거 없어. 내 상태는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비록 슬프고 안타깝지만 이대로 주저앉아 있지 않을 거야. 호섭 씨도 내가 이러는 모습 원하지 않을 거야.”“유미야,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니 다행이야.”윤지은은 감개무량하듯 말했다. 하지만 내가 앞으로 다가가려 하자 이내 나를 째려봤다.‘벌써 하루가 지났는데 아직도 화가 안 풀렸나?’무엇보다 난 아직도 내가 대체 언제 무엇 때문에 윤지은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결국 나는 할 수 없이 묵묵히 두 사람을 따라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
우리는 희망을 이연화에게 거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때문에 그 백수들이 소식을 전하기 전에 우리는 호텔에서 기다리기만 했다.하지만 윤지은은 호텔에 갇혀만 있으면 사모님이 답답해할까 봐 한가할 때면 사모님과 함께 산책하곤 했다.사모님이 자기 컨디션을 끌어 올리려고 얼마나 노력하는지 우리는 알 수 있었다.하지만 동력과 희망이 없는 탓에 사모님은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Y시에 온 지 사흘 만에 강한나는 다시 강북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면서 떠나기 전 우리와 함께 시사 자리를 가졌다.“정말 여기 남아서 조사할 거야?”나와 윤지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강한나가 말했다.“알았어. 나도 도와줄 건 없으니 성공하길 빌게.”나와 윤지은은 곧바로 강한나가 우리에게 할 말이 있다는 걸 눈치챘다. 아니나 다를까, 사모님이 화장실 간 틈에 강한나는 얼른 우리에게 말했다.“호섭 씨 시신 어느 때 화장할 거야?”나와 윤지은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몰라. 유미가 아직 동의하지 않았어.”그 말에 강한나가 말했다.“시체를 화장하지 않아도 시체에서 단서를 찾는 건 어려울 거야. 난 고인 편히 쉬게 해주는 게 좋다고 봐.”“하. 그런데 문제는 유미가...”사모님이 아쉬워하는 게 문제다.화장하지 않으면 그래도 보러 갈 수 있지만 화장하면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사실 나도 강한나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우리도 그 말 이해해요. 사모님은 저희가 설득해 볼게요.”식사를 마친 뒤 강한나는 그 길로 떠났다.나와 윤지은은 호텔로 돌아가는 내내 어떻게 말을 꺼낼지 고민했다.“두 사람 먼저 돌아가. 난 장례식장에 가볼 거니까.”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우리는 사모님이 또 사장님 보러 간다는 걸 알았다.하지만 장례식장도 규정이 있는데, 아무 때나 들여보낼 수 있을 리가 없다.그건 다른 것도 아닌 시신이니까.그때 윤지은이 입을 열었다.“유미야, 이번에 보고 난 뒤 호섭 씨 편히 자게 해주자.”“안 돼!”사모
“왕정민 이 파렴치한 놈. 어떻게 이럴 수 있지?”분명 자기가 잘못했으면서 뻔뻔하게 애교 누나한테 집착하다니.“애교 누나는 그럼 어떻게 처리했어요? 신고는 했어요?”[애교가 예전보다 많이 강해졌더라고요. 그걸 다시 왕정민한테 보냈어요. 심지어 안에 뭔갈 더 추가해서.]“네? 하하. 애교 누나가 정말 변했네요.”나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그러니까요. 그것도 다 왕정민 때문에 할 수 없이 변한 거긴 하지만요. 애교가 만만한 줄 알고 애교만 괴롭히다니. 그렇게 대단하면 그 여자를 그렇게 괴롭히지... 아마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게는 못 할 걸요.][그런 사람들은 원래 그래요. 여자들은 뭐 드세고 화를 자주 내는 여자가 되고 싶어서 되겠어요? 다 남자들이 행복한 줄 모르고 기어오르니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변한 거죠.][특히 우리 여자들은 가끔 독해질 필요가 있어요. 독하지 않으면 남들이 괴롭혀도 되는 줄 알아요...]나는 형수의 말에 백 번 동의한다.애교 누나가 이토록 강해졌다니 나는 많은 걱정을 덜 수 있었다. 형수도 마찬가지고.두 사람이 다른 사람의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내가 마음 놓고 할 일을 할 수 있다.형수와 한참 얘기한 뒤 나는 곧바로 애교 누나에게 전화했다.“누나, 왕정민 일은 왜 말 안 했어요?”애교 누나 목소리는 여전히 간질거리고 듣기 좋았다.[수호 씨가 Y시에 있는데 얘기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어요? 수호 씨 가 나 때문에 와달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나 이제 많이 변했어요. 다른 사람의 보호만 받으면서 살 수는 없어요.][그동안 아빠한테 반항하면서 독립적인 여자가 될 거라고 큰소리쳤는데, 지금껏 한 번도 그렇게 산 적이 없어요.][예전에 결혼에 묶여 나를 잃었고, 행복한 결혼만 있으면 모두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알았어요. 여자는 자기 마음이 강해져야 진짜 강한 거예요.]애교 누나의 말을 들으니 나는 순간 누나를 다시 알게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이 사람이 아직도 내가 알던 나약하기만 하고, 무
“내가 방 하나 더 잡을게요.”나는 말하면서 방을 나가려고 했다. 그때 뒤에서 갑자기 사모님 목소리가 들렸다.“수호 씨, 먼저 내 침대에서 눈 붙여요.”고개를 돌아보니 사모님은 안쪽으로 자리를 옮겨 내가 누울 공간을 내주었다.나는 속으로 거절했다.비록 사모님이 다른 마음 없이 그저 나를 휴식하라고 호의를 베푸는 거라는 걸 알지만, 사장님이 그런 일을 당했는데 내가 사모님과 같은 침대에 누워 있는 건 말도 안 됐다.게다가 윤지은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는데, 내가 동의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나는 결국 거절했다.“아니에요. 가서 다른 방 구하면 돼요.”나는 다급히 방을 나가 프런트 데스크로 달려갔다.처음 온 날 우리는 사실 싱글룸 세 개를 잡았다. 하지만 나중에 사모님 상태가 걱정되어 나와 윤지은이 사모님 방에 들어와 지내게 되면서 나머지 싱글룸 두 개를 취소했다.확인 결과 더블룸 하나가 나왔다는 말에 나는 얼른 그 방을 잡았다. 그러면 사모님과 윤지은이 더블룸에서 함께 지내고 내가 싱글룸에서 지내면 되니까.나는 카드키를 챙겨 방으로 들어갔다. 이 방은 조용한 데다 환경도 좋아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았다.하지만 내가 침대에 눕기 바쁘게 핸드폰이 징징 울렸다. 전화한 사람은 다름 아닌 형수였다.요즘 사장님 일 때문에 여기저기 달려 다니느라 형수와 오랫동안 얘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때문에 마침 조용한 틈을 타 나는 형수와 얘기하려고 여상 통화를 받았다.형수는 사모님 상태를 걱정하며 일의 진전을 물어봤다.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쉽지 않아요. 조사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어 한동안 여기서 지내야 할 것 같아요.”[수호 씨 사장님 내외가 수호 씨한테 그렇게 잘해줬는데, 이번 기회에 유미 씨 옆에서 많이 도와줘요.]형수가 말했다.그 말에 나는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네, 저도 알아요. 형수는 요즘 어때요?”[좋아요. 잘 먹고 잘 자고 이제 천천히 걸을 수도 있어요.]“진짜예요? 사진 찍어 보내 봐요.”나는 너무 기뻐 흥
내가 노랑머리한테 준 것도 적은 돈이 아니었다. 족히 10만 원 가까이는 됐으니까. 백수들한테는 이것도 큰돈이나 다름없다.노랑머리 역시 같은 생각이었는지 결국 입을 다물었다.아직 대답을 못한 사람들은 얼른 다른 질문을 하라고 나를 재촉했다.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두 번째 질문을 했다.“그럼 혹시 이연화 혹은 조금희가 요즘 낯선 사람과 만난 걸 본 사람이 있어요?”그 물음에 모든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 그 순간 나는 실망했다.“세 번째 질문, 혹시 누가 나 대신 이연화를 감시할래요?”모든 사람이 동시에 손을 들었다.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좋아요. 그럼 다 같이 해요.”“그럼 돈은 어떻게 계산하는 거예요?”노랑머리가 물었다.나는 가방에서 또 돈 두 뭉치를 꺼냈다.“세 명이 감시해요. 한 사람당 200씩 줄게요.”세 사람의 눈은 커다래지더니 급기야 반짝반짝 빛이 났다.나는 세 사람에게 귀띔했다.“이 돈은 수고비예요. 누가 만약 유용한 단서를 제공하면 이 외에도 큰 보상을 받게 될 거예요.”‘역시 돈이 있으니 뭐든 쉽게 되네.’이 사람들이 나를 위해 성실하게 일하게 하려면 이 사람들 마음을 매수하는 게 우선이다.몇백만 원은 지금의 나한테 큰돈이 아니다. 무엇보다 사장님과 사모님을 도울 수 있다면 나는 뭐든 할 수 있다.모든 일을 마친 뒤 나는 다시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의 말을 들어보니 사모님은 이미 잠든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모님 정서가 여전히 불안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기분이 다운된 사람은 쉽게 졸리고 무기력해지고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나는 방금 전 일을 윤지은에게 말했다.“이번 일 조사하기 엄청 어려울 거예요. 언제 진실이 밝혀질지도 모르겠고. 장기전을 할 준비는 됐어요?나는 윤지은을 보며 말했다.그러자 윤지은이 나를 째려봤다.“그걸 말이라고 해? 유미는 내 베스트 프렌드야. 유미한테 이런 일이 생겼는데 내가 같이 있어 주지 않으면 누가 같이 있어 줘? 그러는 너야말로,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는데? 설마
나와 윤지은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우리는 사모님 마음이 편치 않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사모님, 비록 어렵지만 아무 희망도 없는 건 아니에요. 우리가 끝까지 견지하면 분명 수확이 있을 거예요. 게다가 사장님이 하늘에서 우리를 지켜줄 거예요.”사장님을 언급하자 사모님의 정서는 드디어 조금 안정되었다. 사모님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호섭 씨, 정말 우리를 지켜줄 거야?”“당연하지.”윤지은도 사모님을 위로했다.그때 내가 분석했다.“제가 볼 때 이연화가 거짓말하는 것 같아요. 그 여자가 한 말 진짜 아니에요.”“너도 그래?”보아하니 윤지은도 똑같은 느낌을 받은 모양이었다.“넌 어떻게 보아냈는데?”“느낌이 그래요. 이연화가 그렇게 드센데 남편 일을 물어보지 않았다는 게 말이 안 돼요. 게다가 조금희 카드에 입금된 2억이 이연화랑도 연관된 것 같아요.”이건 내 직감이다.나는 왠지 이연화 같은 신분과 배경에 성깔 있는 여자라면 통제욕이 엄청날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여자가 자신을 배신했던 남자를 나 몰라라 방치할 수 있을 리가 있을까?그건 그 여자 성격에 부합되지 않는다. 윤지은의 관점 역시 나와 어느 정도 비슷했다. 윤지은은 내 말에 일리가 있다며 맞장구치면서 보충했다.“그리고 또 이연화가 2억을 얘기할 때 자꾸 눈빛을 피했어. 그건 거짓말한다는 표현이야.”“문제는 그 여자가 진실을 말하지 않으려 한다는 거예요.”이건 가장 골치 아픈 부분이다.그때 윤지은이 말했다.“그건 간단해. 내가 사람을 시켜 그 여자를 감시하라고 할 거야. 그러면 분명 허점을 보일 거야.”이런 건 역시 돈이 많아야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다.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진짜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 있다.나는 얼른 맞장구쳤다.“만약 그곳 주민을 감시자로 붙여두면 더 좋을 거예요. 그 사람들이 이연화 행적을 더 잘 알고 있을 테니까요.”윤지은은 팔짱을 끼고 나를 바라봤다.“그건
사모님의 기세에 눌린 이연화는 오만하고 안하무인이던 태도가 싹 사라지고 다급히 대답했다.“말할게, 말한다고. 이거 먼저 놔.”사모님은 그제야 이연화 머리채를 놔주었다.이연화는 머리를 마구 문질러댔다. 심지어 얼굴까지 시뻘게진 걸 봐서는 사모님의 공격에 적지 않게 다쳤음을 알 수 있었다.이연화는 한참 동안 머리를 쓰다듬은 뒤 그제야 입을 열었다.“그 2억은 나도 어떻게 된 건지 몰라요. 그 인간이 우리 모자한테 주는 보상이라면서 줬어요.”“당신은 그 사람 아내인데 모른다는 게 말이 돼?”우리는 여자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자 이연화가 조급히 말했다.“내 말 다 사실이에요. 난 정말 어떻게 된 건지 몰라요. 우리가 부부인 건 맞지만 명의상 부부나 다름없었어요. 그 인간이 나 몰래 불여우를 만나다가 잡힌 적도 있어요.”“그때 그 인간이 이혼만 하지 말자고 싹싹 빌지 않았으면 진작 헤어졌을 거예요.”여자의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어 나는 차가운 표정으로 물었다.“그 2억이 어디서 났는지 몰랐다면, 조금희 씨가 불치병이라는 건 알았겠죠?”이연화는 고개를 끄덕였다.“그건 알아요. 그 인간이 오래전에 내 앞으로 보험을 들어 놓을 걸 줬었거든요. 자기가 가면 보험사에서 돈이 나올 거라면서.”이건 모두 일가 조사했던 내용이었다. 다만 이연화가 말한 사실이 모두 진짜인가 하는 게 문제였다.나는 이연화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봤다.“그날 장례식장에서 화장을 미뤄달라고 했는데 왜 안 들었어요?”“나 할 일 많아요. 당신들과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 인간이 당한 사고가 단순 사고든 인위적인 사고든 난 관심 없어요. 그 인간이 내 앞으로 돈을 남겼으니 난 그 돈을 얼른 받아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었어요.”이연화는 조금희와 더 이상 감정이 남아 있지 않아 조금희 일에 일말의 관심조차 없어 보였다.하지만 2억의 존재를 모른다는 게 진짜일지 의문이었다.만약 진짜라면 사건의 실마리는 또 끊기게 된다.나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질
그렇다면 우리의 추측이 거의 맞는 거로 증명이 된 셈이다. 게다가 이연화는 분명 뭔가를 알고 있을 거다.“이러면 이연화 모자만 찾으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칠 수 있겠네요.”우리는 일이 이렇게 순조로울 줄 몰랐다.심지어 사모님은 마음이 급해 벌떡 일어섰다.“더는 못 기다리겠어. 나 지금 당장 이연화 만나러 갈래.”“유미야. 아직 조급해하지 마. 지금 이연화 모자가 어디 있는지 모르잖아. 이렇게 해, 내가 한나한테 조사해 보라고 할게.”윤지은은 강한나에게 전화해 이연화 모자가 사는 곳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직무상 편의를 이용해 강한나는 곧바로 이연화 모자의 거주지를 찾아냈다.[미리 말하는데, 이연화 모자 좋은 사람 아니야. 이연화 아버지는 판자촌 터줏대감이라 되도록 갈등을 만들지 마.]“알았어.”이연화가 만만치 않다는 걸 알지만 우리는 무조건 가봐야 했다. 그건 사모님한테는 더더욱 간절했다.아무리 그곳에 불바다라도 사모님은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것만 같았다.이연화 집 주소를 알아낸 우리는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판자촌은 낡은 건물 지역이라 외지고 낡은 곳에 있는 데다 교통도 불편했다. 다만 이연화의 집은 그 판자촌에서 가장 큰 집이었다.우리가 이연화의 집을 찾았을 때 이연화는 집에서 화투를 치고 있었다.남편이 죽은지 얼마 되지 않는 여자가 이곳에서 한가하게 화투나 치고 있다니 침 한심했다.“이연화 씨, 할 얘기가 있어서 찾아왔어요.”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그러자 이연화는 나를 흘긋 보더니 말했다.“나 지급 바빠서 시간 없어요.”“이건 당신 남편 조금희 씨와 관련된 일이라 이연희 씨가 저희랑 반드시 가주셔야 해요.”기분이 살짝 언짢아진 나는 당연히 다정한 목소리가 나가지 않았다.하지만 이연화는 자기 구역에 있어 무서울 게 없어 심지어는 나에게 소리까지 질렀다.“반드시? 내가 왜? 당신들이 누군데? 경찰이야? 내가 왜 당신들 말을 들어야 해? 당장 꺼져. 화투 치는 거 방해하지 말고.”여자는 말하면서 다시 화투 치는 데
“보아하니 두 사람 모두 조금희 씨 몸에 종양이 퍼지고 있어 곧 죽는다는 걸 알고 있었네요.”“혹시 조금희 씨가 뒤에서 꼼수 부린 거 아닐까요?”나는 문득 뭔가 떠올라 의문점을 제기했다.현재 상황으로 분석해볼 때 조금희의 혐의가 가장 높았다.그때 윤지은이 말했다.“자세한 건 조사해 봐야 하지만 나도 조금희 씨가 이상한 것 같아.”사모님은 참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혔다.“다음에 조사할 때 나도 끼워줘. 나도 같이 조사하고 싶어. 두 사람 말 맞아. 호섭 씨가 억울한 죽임을 당했는데, 나라도 진실을 밝혀 억울함을 풀어줘야 해. 이게 내가 살아갈 유일한 동력이야.”사모님은 말하면서 또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슬픔 속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와 윤지은은 항상 사모님 곁을 지킬 거다.그날, 우리는 곧장 종양 전문 병원에 가 조금희의 병력을 조사했다.조금희 몸에서 종양이 발견된 건 1년 전인데, 처음에 양성이었다가 악성으로 번지기까지 적지 않은 돈을 들였던 거로 확인되었다.게다가 조금희는 불치병에 걸리기 전에 아내와 갈등을 겪었다.“자세한 건 저도 모르는데, 조금희 씨가 우리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젊은 여자가 항상 와서 돌봐줬어요. 그러다가 부인이 병원에 찾아와 그 아가씨를 때렸고요. 그 일은 병원 사람들 다 알아요.”‘그렇다는 건 조금희가 바람을 피웠다는 거네?’조금희가 이런 사람일 주은 생각지도 못했다.윤지은은 여간호사에게 돈다발을 건넸다. 그러자 간호사는 아주 기뻐하며 떠나갔다.조사를 마친 뒤 우리는 밖에서 식당을 찾았다.식당에 도착한 윤지은은 분석을 시작했다.“조금희 씨가 불치병에 걸렸고, 예전에 아내와 아들한테 잘못을 저질렀다면 혹시 자기가 얼마 못 살 걸 알고 호섭 씨를 배신해 돈을 챙겼던 건 아닐까?”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그럴 가능성이 커요. 만약 조금희 씨 계좌에 큰돈이 입금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아쉽지만 이곳은 강북이 아닌 Y시다. 안 그랬다면 윤지은의 인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