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금성대군은 음식을 먹는 내내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하루빨리 이 자리를 떠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이 주막은 북방을 오갈 때마다 여러 번 들렀던 곳이었다. 지금까지는 오늘처럼 괜한 시비를 거는 손님이 나타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일부러 이곳을 사신단의 식사 장소로 정한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소란이 벌어진 탓에 주막 안의 분위기는 아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혹시라도 또다시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금성대군은 슬며시 거란족 사신단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족장이 말렸다고 해도, 부하들까지 끝까지 참아 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자칫 작은 다툼 하나가 조선과 거란 사이의 외교 문제로 번질 수도 있었다.
“입에 맞지 않소?”
“예?”
-의금부-수양대군이 갇혀 있는 옥사에 어둠이 내려앉자, 내시 복장을 한 사내 하나가 주위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다가왔다.인기척을 살핀 사내가 옥 앞에 멈춰 서서 목소리를 낮췄다.“대군마마, 접니다.”벽에 기대 눈을 감고 있던 수양대군이 천천히 눈을 떴다.그는 놀란 기색도 없이 눈앞의 사내를 바라보았다.“그래. 뭘 좀 들었느냐?”“예. 전하께서 중전마마를 비롯한 몇몇 사람을 은밀히 불러 대군마마에 관한 이야기를나누셨습니다.”수양대군의 눈빛이 미세하게 변했다.“해서?”“우선 대군마마의 처결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그리고…….”사내가 잠시 주위를 살핀 뒤 목소리를 더욱 낮췄다.“백윤이라는 자를 하루빨리 잡아야 한다는 말도 나왔습니다.”“백윤을?”“예. 대군마마께서 옥에 계시면서도 지나치게 평온하시다는 것을 김종서 대감이 수상하게여긴 듯합니다.”그 말에 수양대군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김종서답군.”“그리고 전하께서도 대군마마의 처결을 마냥 미루지는 않으실 듯합니다.”“…….”이번에는 수양대군의 미소가 조금씩 사라졌다.“생각보다 시간이 많지는 않겠구나.”“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이상한 이야기?”“중전마마께서 수양대군께서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할 수도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수양대군의 표정이 순간 멈췄다.“……뭐라?”“마치 대군마마께서 앞으로 무슨 일을 하실지 알고 계시는 것처럼 들렸다고…….”“잠깐.”수양대군이 사내의 말을 끊었다.조금 전까지 여유롭던 그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방금 중전이 뭐라고 했다고 했느냐?”“아, 중전마마께서 대군마마께서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할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분명 그리 들었습니다.”수양대군의 눈빛이 미세하게 변했다.“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한다…….”“예. 그런데 아무래도 실수로 내뱉으신 말 같았습니다.”“실수?”“예. 사람이 무심코 해서는 안 될 말을 내뱉고 나면 순간 아차 하지 않습니까.”사내는 잠시 당시의 모습을
늘 고요하던 왕의 서재가 오늘만큼은 평소와 달랐다.단종을 비롯해 이번 수양대군의 일을 해결하는 데 힘을 보탤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흠, 조선이라는 나라는 은밀한 공간이 제법 많은가 보오.”검은 천으로 얼굴을 가린 거란족 족장이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며 말했다.단종은 그런 족장을 바라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그리고 찻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마신 뒤입을 열었다.“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단종이 천천히 찻잔을 내려놓았다.“다만 왕이라는 자리는 누구도 쉬이 믿을 수 없는 자리이지요.”잠시 말을 멈춘 단종이 서재 안을 둘러보았다.“그러다 보니 선대의 왕들께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남의 눈을 피할 수 있는 곳을 한두 군데 마련해 두신 것입니다.”“왕이라는 자리라…….”족장이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우리와 사는 방식은 달라도 높은 자리에 있는 자가 사람을 쉽게 믿지 못하는 것은 어디나 마찬가지인가 보군.”단종은 그 말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아마도 그런 모양입니다.”단종의 얼굴에 번진 씁쓸한 미소를 바라보던 지우는 탁자 아래로 가만히 손을 뻗어 그의 손을 잡았다.갑작스러운 온기에 단종이 살짝 놀란 듯 지우를 바라보았다.“전하, 너무 씁쓸해하실 필요 없습니다.”지우가 그의 손을 살며시 감싸 쥐며 미소 지었다.“그래도 이렇게 전하를 믿고 지지해 주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맞습니다, 전하.”금성대군 역시 곧바로 지우의 말에 힘을 보탰다.“저와 김종서 대감도 있고, 다른 방에 임시로 머물고 있는 저잣거리 의원 역시 전하의 편이지 않습니까.”단종은 아무 말 없이 한자리에 모인 사람들을 천천히 바라보았다.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지우에게 시선을 돌렸다.조금 전까지 남아 있던 씁쓸함이 그의 얼굴에서 서서히 사라졌다.“……그렇구려.”단종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과인이 잠시 잊고 있었던 모양이오.”그러고는 천천히 지우의 손을 마주 잡았다.하지만 지금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있을 때만
-의금부-평소보다 경계가 한층 삼엄해진 의금부.옥 안에 갇힌 죄수들마저 서로 눈치를 살피며 목소리를 낮추고 있었다.“이런, 제길. 하필이면 왜 저분이 우리 옥에 들어오셔서는 사람을 이리 불편하게만드는 게야.”“참게. 아직 판결도 나지 않았잖나. 혹시 아나? 운 좋게 풀려나실지.”“설마. 아무리 대군이라 해도 이번에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라던데.”“그래도 왕실의 종친이시잖나.”“종친이면 뭐 하나. 듣자 하니 전하께 칼을 겨누다시피 했다는데.”“쉿! 목소리 낮추게. 그러다 옥졸이라도 들으면 어쩌려고 그러나.”그 말이 떨어지자 죄수들은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그리고 슬쩍 한쪽을 바라보았다.다른 죄수들과 떨어진 가장 안쪽 옥사.그곳에는 수양대군이 벽에 등을 기댄 채 조용히 앉아 있었다.그리고는 백윤이 자신이 붙잡힐 때 건낸 쪽지를 바라보았다.‘대군마마 계획대로 마마께서 옥에 갖쳐 있는 동안 전 그동안 숨겨놓은 군사들을 한데 모으겠습니다.“쪽지내용을 훝터 본 수양대군은 희미하게 웃으며 쪽지를 품 안으로 넣고는 눈을 감았다.’뚜벅뚜벅‘갑자스럽게 발소리가 들리자 수양대군은 옥졸이라도 왔겠지 하는 생각으로 자세을 유지했다.그러나 무언가 죄수들이 아까와는 다르게 소곤거리는 소리가 커 눈을 떠보니 앞에 금성대군이서 있었다.“형님.”수양대군이 벽에 기대던 자세를 고치고는 천천히 입을열었다.“네가 여긴 어쩐 일이냐.”“마지막으로 묻고 싶은 것이 있어 왔습니다.”“마지막이라…… 벌써 내가 죽기라도 한 것처럼 말하는구나.”금성대군의 표정이 굳어졌다.“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신 겁니까?”“…….”“전하의 자리가 그리도 탐나셨습니까? 조카의 목숨을 빼앗고, 중전마마를 겁박하고, 제 목에 칼까지 겨누실 만큼 말입니다.”수양대군은 한동안 금성대군을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너는 아직도 아무것도 모르는구나.”“무엇을 말입니까?”“왕좌란 말이다.”금성대군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결국 왕좌 때문이었다는 말씀입니까?”“아니.”예상 밖의
지우의 질문에 단종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 채 머뭇거리자, 지우는 피식 웃으며 다시읽던 서책으로 시선을 돌렸다.“그럴 줄 알았습니다.”“……무엇을 말이오?”“저와 전하는 아직 거기까지의 관계는 아니지 않습니까?”지우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하며 책장을 한 장 넘겼다.사락—하지만 말과 달리 어딘가 뚱해진 표정까지 감추지는 못했다.단종은 그런 지우를 자신도 모르게 곁눈질했다.‘왜 저리 서운한 표정을 짓는 것이지?’아니, 어쩌면 자신이 그렇게 보길 바라는 것인지도 몰랐다.단종이 계속 아무 말 없이 바라보고 있자 지우가 결국 서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전하.”“……왜 그러시오?”“계속 그렇게 보고만 계실 겁니까?”그제야 단종이 흠칫하며 시선을 돌렸다.“읽던 서책을 보러 오셨다면서요.”“아…… 그렇소.”단종은 황급히 아무 서책이나 한 권 집어 들었다.그런데 책을 펼치고도 글자는 좀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머릿속에는 조금 전 지우가 한 말만 계속 맴“돌았다.‘아직 거기까지의 관계는 아니지 않습니까?’‘아직……이라.’탁—지우가 읽고 있던 서책을 덮었다.“아무래도 저는 이만 가봐야겠네요. 전하께서는 읽던 책 마저 보고 가세요.”지우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이었다.단종은 당황한 듯 그녀를 바라보다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덥석—지우의 손목이 아닌 손을 조심스럽게 붙잡았다.지우가 놀란 눈으로 단종을 바라봤다.“전하?”단종 역시 자신이 무슨 행동을 했는지 뒤늦게 깨달은 듯 순간 당황했다.하지만 이번에는 손을 곧바로 놓지 않았다.“저기…….”단종이 조심스럽게 지우의 표정을 살폈다.“혹시 내가 아까 중전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해서 기분이 상한 것이오?”지우는 잠시 단종을 바라보았다.그러다 자신을 붙잡고 있는 그의 손을 천천히 풀어내며 담담하게 대답했다.“솔직히…… 아니라고는 못하겠습니다, 전하.”“중전…….”단종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지우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조금 전보다 목소리가
편전을 나선 단종은 편전을 지나자 마자 굳은 표정을 하며 상선을 바라보았다.“상선이 보기에 내가 대신들을 잘 중재하건 같소?”“예, 전하. 신이 보기에는 충분히 잘 중재하셨사옵니다.”상선에 말에 안심이 된 표정을 한 단종이 편전에서의 일을 중전에게 얘기할 겸 중궁전쪽으로걸음을 옮겼다.“전하 저 중전마마를 뵙기 전에 아뢰것이 하나 있습니다.”“말해 보시오.”상선에 말에 단종이 고개를 돌려 대답하자 상선은 약간 조심스러운 어투로 입을 열었다.“전하, 종친들께서 연명하여 장계를 올렸사옵니다.”“무슨 내용이오?”“전하와 중전마마의…… 합방에 관한 것이옵니다.”“…….”단종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뭐라?”“왕실의 안정을 위해 더는 합방을 미루어서는 아니 된다는 내용이옵니다.”이내 얼굴이 살짝 붉어진 단종이 당황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그... 그게, 중전이 이번에 여러 일을 겪지 않았소. 아직 몸과 마음을 추스를 겨를도 없었을 텐데 합방은 조금 이르지 않겠소?”“허나 종친들께서는 그리 생각하지 않으시는 듯하옵니다.”“그게 무슨 말이오?”“오히려 지금과 같은 난국일수록 왕실에 경사가 있어야 한다고 여기시는 듯하옵니다. 더구나 전하께서는 아직 후사가 없으시니, 하루라도 빨리 원자를 보시는 것이 왕실을 안정시키는 길이라 생각하시는 것이지요.”단종은 더욱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아무리 그래도 중전의 몸이 먼저 아니겠소.”“소신 역시 그리 생각하옵니다. 허나 종친들의 재촉이 워낙 거세어 그냥 넘기기도 어려운 상황이옵니다.”“…….”단종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 채 괜스레 시선을 돌렸다.합방이라는 말만 들어도 지우의 얼굴이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렸다.“아무튼... 중전에게는 아직 아무 말도 하지 마시오.”“예?”“괜히 그 말을 듣고 부담이라도 느끼면 어쩌겠소.”단종은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미 붉어진 귀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그리고 단종은 중궁전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슬며시 다른 곳으로 돌렸다.상선이 의아한 표정으
한양은 며칠째 온갖 소문으로 시끌벅적했다.한명회의 탈출 사건부터 단종과 중전의 실종까지.굵직한 사건들이 연이어 벌어지면서 저잣거리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말들이 오갔다.그리고 이상하리만큼 그 모든 소문의 끝에는 한 사람의 이름이 따라붙었다.수양대군.“이번 일도 수양대군이 벌인 일이라던데?”“전하와 중전마마까지 해하려 했다는 말도 있더군.”처음에는 그저 확인되지 않은 소문에 불과했다.하지만 수양대군이 임금과 중전을 압박하고 역모를 꾀하다 적발되었다는 내용의 벽보까지한양 곳곳에 붙기 시작하자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이제 백성들의 관심은 하나로 모이고 있었다.과연 전하는 수양대군을 어떻게 처분할 것인가.그리고 앞으로 전하가 어떤 행보를 보일 것인지에도 모두의 관심이 쏠리고 있었다.이른 아침부터 조정에서도 그 문제를 두고 대신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해서, 수양대군을 어찌하면 좋겠소?”단종의 물음이 떨어지자 대신들 사이에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이내 한 대신이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무엇을 더 고민하시옵니까. 전하와 중전마마를 겁박하고 왕위를 넘본 자이옵니다.”대신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마땅히 조선의 법도에 따라 엄히 다스리셔야 하옵니다.”“허나 전하, 수양대군은 왕실의 종친이자 전하의 숙부이옵니다. 극형에 처하신다면 조정과민심에 적지 않은 파장이 일 것이옵니다.”또 다른 대신이 신중론을 내놓자, 조금 전 엄벌을 주장했던 대신이 날 선 목소리로 응수했다.“하 대신께서는 지금 다른 일도 아닌 역모를 논하는 자리에서, 왕실의 종친이라는 이유로죄를 눈감아 주기라도 하자는 말씀이오?”“누가 죄를 눈감아 주자 했소?”하 대신 역시 지지 않고 목소리를 높였다.“생각해 보시오. 이 일이 온전히 백성들에게 알려지고, 전하께서 친숙부를 극형에 처하신다면 백성들이 왕실을 두고 무어라 말하겠소?”“그럼 역모를 저지른 자를 살려두면 백성들이 전하를 뭐라 생각하겠소!”“그래서 신중해야 한다는 말이오!”두 대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