ログイン낮에는 냉철한 예조참판, 밤에는 저주에 시달리는 남자. 배도진을 구할 유일한 사람은 극음 체질의 침모 연화뿐이다. 남몰래 시작된 치료가 이어질수록 두 사람 사이엔 신분보다 더 위험한 감정이 싹튼다. 저주가 풀리는 날, 그들은 다시 남이 될 수 있을까?
もっと見る소담이 가져온 비단은 희었다. 강 서방이 떨리는 손으로 매듭을 풀자 고운 광택이 접힌 결마다 번졌다. 집안에서 오래 보관해 온 천년 설백금 3필이었다. 곁에는 당귀주 한 병도 놓였다.연화는 비단을 받기 전에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혼례에 쓸 것은 남겨 두었니?""예. 저희가 함께 정했습니다. 약방 식구들께도 쓰셨으면 해서요."소담이 대답하자 강 서방도 고개를 끄덕였다. 연화는 더 사양하지 않고 비단의 모서리를 펼쳤다. 포목점에서 강 서방이 몇 번이나 잘못 접던 손이 떠올랐다. 이제 그는 자기 무릎 위의 천을 천천히, 바르게 접고 있었다."마님 자리와 대감마님 자리는 비워 두겠습니다. 꼭 오셔야 해요.""진료가 밀리면 대감께서 데리러 오신답니다."도진이 비단 꾸러미를 들어 올렸다. 소담은 그가 정말 머슴처럼 짐을 들고 있는 것을 보고 웃었다. 첫날에는 웃을 엄두도 내지 못했던 모습이었다.그날 밤 연화는 안방 문 앞에서 멈췄다. 도진이 다시 삼베옷을 입고 있었다. 잠행 때 찢긴 옷 대신 새 삼베옷을 걸친 모습이었다."그 옷이 마음에 드셨습니까?""봇짐을 나르는 데는 관복보다 낫더군.""내일부터도 그렇게 오시면 장작까지 맡겨 드리겠습니다."도진은 대꾸하는 대신 그녀의 앞에 앉았다. 연화가 웃으며 내려다보자 그가 고개를 들었다. 포목점에서 가게 주인에게 들었던 말이 떠오르는지 잠깐 입가가 굳었다가 풀렸다."누구도 내가 하는 말을 먼저 듣지 않더군. 물건을 내려놓으라거나 길을 비키라는 말뿐이었소.""서방님께는 처음이었겠지요.""그랬소. 그래서 부인이 불러 주는 말이 더 반갑더이다."연화는 그를 놀리려던 말을 거두고 요에 앉아 손을 내밀었다. 그가 다가오자 제 옆자리를 두드렸다. 도진의 손이 그녀의 손목을 감쌌다."여기 오세요. 바닥에 앉아 계
소담은 강 서방이 제 발로 들어오지 못하는 것을 보고 문턱에서 멈췄다. 달려가 안으려던 팔이 허공에 남았다. 연화가 곁을 내주자 그제야 침상 가까이 다가왔다."어디 다쳤습니까? 얼마나…….""손목부터 봐야 해. 약기운도 아직 남아 있어. 지금 길게 묻지는 말자."소담은 고개를 끄덕이고 물을 가져왔다. 울며 달려든 손으로 붕대를 감을 수는 없었다. 그녀는 대야를 내려놓고 숨을 고른 뒤, 연화가 쓴 천을 하나씩 받아 냈다.강 서방이 눈을 떴다. 시선이 소담의 얼굴에 오래 머물렀다. 소담은 이름을 알아보느냐고 묻지 못했다."소담아."그 짧은 부름에 그녀가 입을 가렸다. 강 서방의 손이 움직였으나 손목이 아파 도로 내려앉았다. 소담이 얼른 그 손을 받쳤다."움직이지 마세요. 제가 여기 있습니다."연화는 두 사람 사이에 물을 놓고 나왔다. 도진이 마당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삿갓을 잃은 채였고 어깨에 걸친 겉옷도 군관에게 빌린 것이었다. 연화가 다가가 그의 소매를 살피며 속삭였다. "괜찮으세요?""소담이가 이름을 불렀소?""강 서방이 먼저 불렀습니다."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그 말로 잠시 쉬었다. 안에서 새어 나오는 울음을 멎게 하려고 다시 들어가지는 않았다. 도진이 그녀의 손을 가볍게 잡았다.아침이 되어 투견장에서 거둔 장부가 왔다. 밤마다 일꾼들에게 피 묻은 먹이를 나르게 하고 우리를 치우게 한 기록이었다. 제대로 쉰 적 없는 사람들이 낮에는 다시 포목점으로 돌아갔다.연화가 소담이 가져온 소매 조각을 펼쳤다. 장부에는 강 서방이 먹이를 날랐던 날도 적혀 있었다. 옷에 피 냄새가 밴 까닭을 짚을 수 있었으나, 소매의 얼룩만으로 그가 겪은 밤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었다. 연화는 기억이 없는 날의 빈칸을 그대로 두었다.도진은 염색 공방
도진의 부채가 철창의 고리를 내리쳤다. 올라가던 빗장이 다시 떨어졌다. 강 서방을 끌던 사내가 뒤를 돌아볼 때, 도진은 이미 그와 우리 사이에 서 있었다."사람부터 풀어라."사내가 칼을 뽑았다. 도진은 부채로 팔을 쳐 내고 발로 쇠사슬을 눌렀다. 당기는 힘이 끊기자 강 서방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연화가 무릎을 꿇어 그의 이마가 돌바닥에 닿지 않게 받쳤다."강 서방, 제 말 들립니까?"대답이 없었다. 연화는 손목에 감긴 사슬부터 느슨하게 잡아당겼다. 쇠가 파고든 자리에 피가 굳어 있었다. 강 서방이 움찔했지만 눈은 다시 감겼다."누구야! 저 머슴 놈을 끌어내!"조칠성의 고함에 사내들이 달려들었다. 도진은 단상으로 올라가지 않았다. 그가 옆으로 물러서면 연화와 일꾼들이 바로 드러나는 자리였다. 그는 떨어진 각목을 집어 들고 칼을 쳐 냈다.앞줄의 사내가 넘어진 뒤에도 도진은 쫓지 않았다. 우리 쪽으로 달려가는 자가 보이면 그 길을 막았다. 조칠성이 사람을 밀쳐 도망치는 것이 보였으나, 지금 자리를 비울 수는 없었다.연화가 곁의 군관에게 열쇠를 찾게 했다. 강 서방 뒤에 묶인 일꾼 하나의 고개가 가슴으로 떨어져 있었다. 그녀는 그부터 받쳐 눕혔다. 여러 사람을 한꺼번에 깨우려 침을 흩뿌릴 상황이 아니었다.은침을 쥔 손끝에 극음의 기운이 모였다. 흐트러진 기혈을 살피며 침을 놓자 거칠던 경련이 조금 늦어졌다. 연화는 일꾼이 한 번 길게 숨을 내쉬는 것을 확인하고 옆 사람에게로 자리를 옮겼다.도진의 삿갓 끈이 끊어졌다. 얼굴이 드러나자 단상 곁의 군관 하나가 칼을 든 손을 멈췄다."배 판서……?"도진은 그를 보았다. 관군의 옷을 입고도 묶인 사람들을 등진 자였다. 그가 정말 한성부 소속인지 따지는 것은 나중이었다. 도진은 발밑의 쇠사슬을 가리켰다."알아보겠으
강 서방은 해가 진 뒤에도 가게를 나오지 않았다. 연화는 건너편 골목에서 그가 있는 뒷방의 불빛을 지켜보았다. 도진은 문석진에게서 넘겨받은 쪽지를 접었다. 뒤따를 군사들은 이미 길목마다 흩어져 있었다."몸이 더 나빠지면 데리고 나와야 합니다.""나도 오래 기다릴 생각은 없소."연화의 손이 약낭에 머물렀다. 낮에 강 서방의 손등을 더 자세히 보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때 뒷문이 열렸다. 강 서방이 낡은 겉옷을 걸치고 나왔다.그의 뒤에 선 사내가 어깨를 쳤다."오늘 것까지 받아 가야지. 정신 차리고 가."강 서방은 대답 없이 골목을 걸었다. 멀쩡할 때 다니던 길을 더듬는 듯 모퉁이마다 잠깐씩 멈췄다. 연화가 뒤따르자 도진이 그 옆을 지켰다. 두 사람 뒤로 군사들도 거리를 두고 움직였다. 도진의 손이 그녀의 허리를 살짝 받쳤다.한 차례 비틀거리던 강 서방이 담장을 짚었다. 연화가 다가가려는데, 앞 골목에서 사내 둘이 나타났다. 한 사람이 그의 팔을 어깨에 걸치며 웃었다."마지막 날이라고 벌써 쓰러지는 거냐? 빨리 와. 기다리신다."그들은 강 서방을 부축하는 척 양옆에서 잡고 걸었다. 도진이 연화와 눈을 맞췄다. 순라군에게는 그 둘을 놓치지 말라는 손짓을 보냈다.길은 폐도축장 뒤편으로 이어졌다. 벽을 돌아서자 낡은 배수로 입구가 보였다. 문이 열리고 강 서방이 안으로 밀려 들어갔다. 한 사내가 뒤를 돌아보는 바람에 도진과 연화는 건초더미 뒤로 몸을 낮췄다.거친 숨소리 사이로 짐승 울음이 들렸다.연화는 냄새만으로 안을 짐작하려 하지 않았다. 귀를 기울이니 사내들이 환호하는 소리와 쇠사슬 끄는 소리가 번갈아 났다. 누군가 그릇을 걷어차고 욕설을 했다."더 기다릴 수는 없겠소."도진의 말에 연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문석진이 뒤편 길을 확인하러 가는 동안 앞을 지키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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