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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Penulis: 서담
소영과 장 상궁 모두가 자리에 얼어붙었다.

마차 안에서 소란을 들은 허정안은 예상했던 상황에 당황하지 않고 침착했다. 회귀 전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도 문지기가 그녀를 사기꾼 취급하며 내쫓으려 했다. 그녀는 단순히 자신이 오랫동안 떠나있었기에 문지기가 알아보지 못한 것으로 생각했었다. 허유진이 그녀의 신분을 빼앗았다는 건 상상도 못 했었기 때문이다.

말다툼이 격해졌고, 결국 그녀는 하인과 몸싸움을 벌였다. 소란이 일어나자 그제야 허씨 부부가 얼굴을 내밀었고, 이웃에게 혹시라도 발각될까 봐 두려워 마지못해 그녀를 안으로 들였다.

그러면서 만에 상황을 대비해 이웃에겐 가난하고 먼 친척이 무턱대고 찾아와 도움을 요청하며 난동을 부렸다고 알렸다.

졸지에 먼 친척 신세가 된 그녀는 자기 집에서 눈치를 봐야 했다.

하지만 이번엔 절대로 그렇게 두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이들이 정중히 자신을 모시게 할 작정이었다.

곧 소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아가씨께선 장군님의 유품을 가지고 오느라 이제서야 변방에서 돌아오셨는데, 어떻게 아침에 이미 도착하셨단 말입니까?”

옆에 있던 장 상궁도 거들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허씨 부부가 직접 나와서 확인해 보면 될 것 아니오?”

그러자 문지기가 장 상궁 뒤에 있는 마차를 한번 힐끔 훑었다.

이날 장 공주는 눈에 띄지 않게 일부러 검소하게 나온 상태였다. 그랬기에 마차는 그녀의 신분을 나타내는 그 어떠한 상징도 없었다.

“그분들이 한가한 줄 아시오? 당신들 같은 사기꾼을 만날 시간은 없소이다!”

문지기가 코웃음을 치며 무례하게 말했다.

“네 이놈! 하인 주제에 어찌 이리 무례할 수 있단 말이냐!”

장 상궁은 살짝 화가 났다.

장 공주를 꽤 오랫동안 보필해 온 사람으로서, 어디 가서든 존중을 받으면 받았지, 이런 문전박대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이때, 가만히 듣고 있던 허정안이 마차의 장막을 걷고 높지 않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얼마 전에 저를 변방에서 데려오시려 사람을 보내셨지만, 오라버니의 유품을 가지고 도성으로 돌아오는 길에 길이 엇갈렸다. 정 의심이 된다면 안에 들어가서 물어보도록 하거라.”

그러자 문지기가 곧바로 답했다.

“큰 아가씨는 줄곧 시골 저택에서 나오지 않으셨는데, 그분들이 변방에 사람을 보낼 일이 뭐가 있소? 어디서 감히 가짜가 진짜 노릇을 하려 드는 것이오! 당장 물러서지 않으면 관에 신고하겠소! 썩 꺼지시오!”

그러자 장 공주가 조용히 물었다.

“너 자신을 증명할 만한 물건은 없느냐?”

“없습니다... 다른 이들과 엇갈리는 바람에 은전도 챙기지 못했습니다.”

허정안은 일부러 창백한 얼굴을 연기하며 말했다.

그러나 모두 거짓은 아니었다. 지난 십 년간 전장을 누비며 다니느라, 이미 자신을 증명할 만한 증표는 사라지고 없었다.

이렇게 되니 장 공주의 눈빛에도 서서히 의심이 깃들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문지기 뒤쪽에서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웬 소란이냐? 오늘 어르신과 부인께서 누굴 만나는지 모르는 것이냐?”

“마침 잘 오셨습니다. 청 하녀장님. 밖에 어떤 여자가 자신이 이 집의 큰 아가씨라며 주장하고 있습니다.”

머리에 은비녀를 꽃은, 인상이 상당이 사나워 보이는 한 여인이 문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녀는 허 부인의 혼수 때 따라온 인물로, 현재 허씨 가문의 안살림을 좌우지하는 하녀장으로 꽤 권력이 있었다.

그런데 이때, 하녀장의 눈에 마침 장막을 걷어 올리고 있던 허정안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의 눈동자가 자기도 모르게 살짝 흔들렸다.

허정안이 이 집을 떠나기 전에 어떤 모습이었는지 제일 잘 기억하는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그녀였다. 아무리 전장에서 고생했다고는 하지만, 못 알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하녀장은 잠시 멈칫했을 뿐, 헛기침하며 외면했다.

“또 사기꾼이야? 전에도 돈을 노리고 작은 도련님의 아이를 가졌다고 주장하던 사기꾼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큰 아가씨를 사칭해? 간덩이가 부었구나!”

그리고는 문지기를 향해 소리쳤다.

“큰 도련님께서 돌아가신 지 얼마 됐다고, 벌써 사기꾼들이 판을 치는구나! 어서 쫓아내지 않고 무엇하느냐!”

가만히 있다가 꾸짖음을 당한 문지기가 억울한 표정으로 소영을 노려보았다.

“이분이 누군지 아시오? 허 부인을 바로 곁에서 모시는 하녀장이오! 이분이 아니라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하오! 썩 꺼지시오, 썩! 아니면 정말 나도 더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오!”

그 말에 장 공주의 입가가 단단히 굳었다.

그녀는 더 이상 허정안을 따뜻하게 바라보지 않았다.

“널 여기까지 데려다준 것만으로도 나는 할 도리를 다한 것 같구나. 다음은 네가 알아서 하거라.”

장 공주가 차갑게 말했다. 하지만 허정안은 전혀 당황한 기색이 없이 침착하게 감사를 표했다.

“분명 오해가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오늘 도움 주신 건 정말 깊이 감사드립니다. 훗날 기회가 된다면 반드시 이 은혜를 갚겠습니다.”

하지만 장 공주는 무표정한 얼굴로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허정안은 쓰린 무릎을 부여잡고 마차에서 내렸다. 날씨는 어두침침했지만, 허정안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자 하녀장은 자신이 잘못 보지 않았음을 다시 확신했다.

'큰 아가씨가 진짜 죽지 않고, 돌아왔어....'

허정안이 미소를 지은 채 하녀장을 바라봤다.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당당했으며 기품이 넘쳤다.

“진짜 날 못 알아보겠어? 어서 가서 아버지와 어머니께 전해. 내가, 이 집의 큰딸이 돌아왔다고.”

하지만 하녀장은 그녀의 시선을 외면한 채 말했다.

“진짜 뻔뻔한 사기꾼이네. 여봐라! 거기 누구 없느냐? 당장 이 여자를 묶어 관청에 끌고 가거라!”

그러자 안에서 우르르 하인들이 몰려나왔다. 과거에도 있었던 일이었다. 허정안은 이들의 손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몸싸움까지 벌여 제법 큰 소란이 일어났었다. 그땐 당연히 하녀장이 늙어 제대로 자신을 못 알아본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하녀장은 진작 어머니, 허 부인한테서 지시를 받았던 듯했다.

이들은 자신이 도착하기 오래전부터 이 모든 것을 계획했던 것이다.

만에 하나 그녀가 돌아올 경우, 절대로 이 집의 장녀로 받아들이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말이 관청에 넘긴다지, 실제로는 그녀를 죽이려 들 가능성이 더 높았다.

하지만 허정안은 저항하지 않고 그저 당황한 듯 외쳤다.

“이게 무슨 짓이냐! 나야, 나! 허정안이라고!”

“어서 묶어라! 감히 허씨 가문을 더럽히려 들다니!”

하녀장이 표독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그 모습을 보며, 장 공주도 떠나갈 채비를 했다. 하지만 이때, 갑자기 모퉁이 쪽에서 말발굽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곧 철갑옷을 두른 무장한 한 무장이 네 명의 병사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매우 급하게 달려온 듯, 모두 온몸에 덕지덕지 눈과 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허정안이 제압당해 있는 모습을 발견한 무장의 눈에서 살기가 번뜩였다. 그는 말이 멈추기도 전에 땅으로 뛰어내리며 무서운 기세로 하인들을 향해 돌진했다.

“이 개같은 것들, 이게 무슨 짓이냐! 당장 큰아가씨를 풀지 못할까!”

그리고 휘둘려진 채찍이 매서운 소리와 함께 하인들의 얼굴에 그대로 내리 찍었다.

무장의 정체를 알아차린 장 상궁이 다급히 장 공주에게 속삭였다.

“저분, 신책장군의 곁을 지키던 부장군 한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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