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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Penulis: 서담
신책대장군 휘하에는 뛰어난 장수 둘이 있었다.

그중 한 명이 바로 한표였다. 그만큼 그를 알아보는 사람도 많았다.

지난 십 년, 신책장군은 전투를 지휘해야 했기에 도성으로 돌아온 적이 없었다. 그러나 3년에 한 번씩 자신의 부하를 보내 정사를 보고하게 했었다. 한표가 바로 그 대표였다. 그는 신책장군을 대신해 도성에 돌아올 때마다 황제를 알현해 변방의 군정 보고를 해왔다.

그렇다 보니 장 공주도 당연히 그를 알아보았다. 그 한표가 허정안 앞에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두 손을 모으며 예의를 표했다. 장 공주는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죄송합니다, 큰 아가씨. 소인이 제대로 호위하지 못한 탓에 아가씨께서 홀로 도성에 돌아오게 했습니다.”

허정안이 손목을 주무르며 소영의 부축을 받아 일어났다.

“괜찮네. 군도 통솔해야 하고, 장례도 준비해야 하는데, 괜히 짐이 될까 봐 먼저 출발한 것뿐이네.”

한표는 머리를 들어 허정안과 눈을 마주치며 다시 한번 죄송함을 전했다. 그러고는 날카롭게 빛나는 눈빛으로 하녀장을 노려보며 말했다.

“대장군께서 생전에 가장 아끼시던 분이 바로 이분이시니라. 그런데 감히 이분께 이런 치욕을 줘? 목숨이 아깝지 않으냐!”

한표는 키가 팔척에 달하는 장신이자, 위엄이 넘치는 무장이었다. 서른이 넘는 나이에 조금도 지친 기색 없이 적들을 도륙할 정도로 대단한 위력을 뿜어내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눈을 부릅뜨자, 하녀장은 더 이상 잡아뗄 수 없음을 느끼고 바로 허정안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고는 자기 뺨을 연달아 몇 번 내리치면서 눈물을 쏟았다.

“제가 눈이 뼜나 봅니다. 늙으면 눈치라도 빨라야 하는데, 감히 아가씨를 못 알아보다니,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다급해진 것은 그녀뿐만 아니었다. 장 공주가 급히 장 상궁에게 부축받으며 마차에서 내렸다.

한표가 그녀를 발견하고 서둘러 두 손을 모아 고개를 숙였다.

“소인, 장 공주마마를 뵙습니다.”

장 공주라는 말이 들리는 순간, 안 그래도 하얗던 하녀장의 얼굴이 더 창백하게 질렸다.

'망했다...! 이제 정말 끝장이야! 장 공주마마까지 와 있었다니, 유진 아가씨도 큰일 났네!'

장 공주가 성큼성큼 허정안 앞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이 바보 같은 아이야. 허씨 집안에서 너를 데리러 사람을 보낸 적도 없는데, 왜 내게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느냐? 그랬더라면 이렇게 치욕을 겪을 일도 없이 내가 너를 도왔을 텐데....”

허정안이 고개를 숙이며 담담하면서도 슬픔이 묻어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송구하옵니다, 공주마마. 저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안 그래도 오라버니의 죽음 때문에 힘드실 텐데, 부모님이 심신에 여유가 없으셔서 잠시 깜빡한 거라 생각했습니다.”

한표가 옆에서 때맞춰 말을 덧붙였다.

“이분은 대장군의 쌍둥이 누이로, 수년간 함께 변방에 머무르셨습니다. 그만큼 대장군과 아주 정이 깊으셨고, 언젠가 함께 집으로 귀환하자 약속까지 하셨는데....”

허정안 또한 그의 말에 맞추어 눈물을 흘렸다.

“설마... 오라버니의 유품만 들고 돌아오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그러고는 피 묻은 갑옷을 꼭 껴안고, 홍영이라 불리는 붉은 장식을 꼭 쥔 채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이 모습을 본 장 공주는 더 마음이 아파졌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허씨 가문 하인들 탓에 괜히 자신이 허정안을 오해하게 된 것에 크게 분노했다.

“여봐라, 당장 이것들을 끌고 가서 매질하라! 신책장군의 혼백이 돌아오는 것을 방해하는 이는, 누구를 막론하고 모두 엄벌할 것이다!”

“예!”

그러자 옆에 있던 호위들이 신속하게 움직이며 하인들을 끌고 갔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드디어 허씨 집안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허명진은 보이지 않았고, 대신 창평후 부인이 함께 있었다.

허정안은 조용히 속으로 냉소를 지었다.

'이제야 얼굴을 내비칠 마음이 생겼나 보네?'

하지만 이들은 상을 치르고 있는 사람들 치곤 안색도 좋았으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너무나 화려했다. 특히 허유진은 선홍색 외투에 분홍색 치마, 고급스러워 보이는 여우털 목도리까지 두르고 있었다. 꽃처럼 화사하고 달빛처럼 빛나는 모습이었다.

그래서인지 눈길을 무릎으로 뚫고 온 허정안의 모습과는 너무나 대비되었다. 누가 봐도 여기에 애지중지 키운 딸은 허정안이 아니라 허유진이었다.

허유진은 허 부인의 손을 잡은 채 위국공인 허함산 뒤에서 남들 모르게 허정안을 훑어보았다. 미세하게 엿보이는 경멸의 눈빛, 찰나의 순간이지만 분명 자신과 허정안을 비교하고 있었다.

물론 그녀도 알고 있었다. 허정안이 변경에서 돌아온 이상, 더 이상 이 집에서 우위를 점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장 공주마마, 한 부장군.”

허함산이 큰 걸음으로 다가오며 두손을 모아 두 사람에게 인사를 올렸다.

“방금 하인들에게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모두 오해입니다. 유진아, 어서 나와 장 공주께 인사드리거라.”

그러자 허유진이 기다렸다는 듯이 걸어와 옆에 섰다. 하지만 그녀가 인사를 올리기도 전에 장 공주가 날카롭게 물었다.

“누가 너더러 이런 옷을 입으라고 했느냐?”

장 상궁이 뒤에서 냉정하게 말을 덧붙였다.

“폐하께서 전국에 조서를 내려 신책장군을 위해 삼 개월 동안 상을 치르라 하신 걸 모르십니까? 도성 전역, 온 백성이 상복을 입고 있는데 어찌 이토록 화려한 옷을 입고 있단 말입니까?”

그러자 허유진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마치 뒤통수를 맞은 듯 멍해졌다. 그녀는 곧장 상황을 파악하고서는 서둘러 무릎을 꿇으며 머리를 조아렸다.

“공주마마, 부디 용서를... 소녀는 그저 몸이 차가워 집에서만 입으려 했던 것뿐입니다... 절대로 이렇게 밖으로 나갈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연약한 새처럼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장 공주는 그녀를 냉랭하게 바라보며 허정안을 가리켰다.

“몸이 차갑다고? 이 아이는 장군의 유품을 가지고 수천 리를 절하면서 도성까지 돌아왔다. 이 아이의 무릎과 손은 동상에 걸려 자주색이 되었는데, 너는 따뜻한 집에서 포근함을 탐했단 말이냐? 네가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장 공주는 이미 속에 쌓인 분노가 가득했다. 허씨 하인들 탓에 자신까지 허정안을 오해하게 되었다. 그 분노가 허씨 일가에게 향한 것이다.

허유진이 겁에 질린 얼굴로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그 모습을 본 허 부인이 안쓰러움에 곧바로 무릎을 꿇으며 간청했다.

“공주마마, 부디 노여움을 거두어 주십시오! 이 모든 것은 소인의 잘못입니다. 오늘 창평후 부인께서 방문해 주셨는데, 그래도 예를 다해야 할 것 같아 제가 입힌 옷입니다. 그러니 부디 탓하려거든 저를 탓해주십시오, 이 아이는 용서해 주십시오!”

느닷없이 호명당한 창평후 부인이 암암리에 조용히 허 부인을 바라본 뒤, 분위기를 수습하듯 웃으며 말했다.

“공주마마, 부디 노기를 거두어 주십시오. 저도 신책장군을 애도하고자 들렀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때, 허정안이 허 부인을 바라보며 의아함을 연기하며 물었다.

“어머니, 그런데 이 유진이라는 아가씨는 누굽니까? 아까 문지기가 저에게 이미 안에 큰 아가씨가 와 있다며, 절 못 알아보는 눈치였는데... 제가 아니면 누가 이 집의 큰딸이라는 말입니까?”

그러자 자리에 있던 모든 시선이 다시 허 부인에게 향했다. 창평후 부인 또한 의문 가득한 얼굴이었다.

좀 전, 연회 자리에서 허 부인은 분명 허유진을 데려와 자기 딸이라 소개했었다. 그래서 자연스레 창평후 부인은 허유진이 신책장군의 쌍둥이 여동생이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호감을 보였고 자신이 30년간 손목에 차고 있던 불주도 건넸다. 허 부인은 자신에게 시선이 집중되자, 순간 숨쉬는 것조차 잊을 정도의 압박감을 느꼈다. 무엇보다 마치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듯한 허정안의 눈빛이 가장 날카롭게 느껴졌다.

'내 딸이... 내 딸이 맞나...? 어떻게 돌아오자마자 이런 핀잔을....'

허 부인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장 공주도 있는 자리에서 허정안의 신분을 부정할 수는 없어 입술을 떨며 말했다.

“유진이는 불쌍한 아이야. 어릴 적 부모에게 버려져 나와 너의 아버지가 데려와 키웠어.”

허정안이 담담히 물었다.

“그럼 그동안 왜 편지 한 통도 없으셨습니까? 오라버니와 저, 그 누구도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없습니다.”

장 공주의 표정이 극도로 차가워졌다.

“신책장군의 친동생도 아니면서 이런 화려한 옷차림을 하다니... 참으로 간사하구나. 장 상궁, 당장 저 옷을 벗겨라.”

명령을 받은 장 상궁은 곧바로 움직였다. 순식간에 선홍색 외투와 분홍색 겉치마가 벗겨졌다.

그러자 허유진은 마치 끔찍한 고문을 당하는 것처럼 비명을 지르며 외쳤다.

“어머니, 어머니!”

허 부인은 허유진을 보호하려 했지만, 허함산이 붙잡고 있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장 공주가 있는 자리에서, 그 누구도 감히 함부로 나설 수 없었다.

한표와 병사들 또한 갑작스러운 상황에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허 부인이 눈물을 쏟으며 안타까운 목소리로 허유진을 불렀다.

“아이고, 우리 유진이... 내 귀한 딸이....”

그녀가 절절하게 우는 모습을 본 허정안은 회귀 전 잔인하게 자신의 손가락을 부러뜨리면서 외면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겨우 이 정도로 눈물을 흘리다니... 어머니, 이제 시작입니다.'

보다 못한 허함산이 소리를 내서 허정안에게 말했다.

“정안아, 그래도 네 동생인데 그만해달라고 말해주시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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